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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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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ffffff,#1f2023><bgcolor=#ffffff,#1f2023><(>토론 - "역사 왜곡"은 역사학적인 사실에 대한 왜곡과 역사학적인 가치판단에 대한 왜곡으로 정의
토론 - "역사학적인 사실"임을 입증하려면 최소 7순위 이상 근거 1개 이상·동 순위 반론이 있을 경우 상위 순위의 근거를 제시할 것
토론 - "역사학적인 가치판단"임을 입증하려면 최소 6순위 이상 근거 1개 혹은 역사 분야 박사학위 이상 소지자의 주장이 인용된 7순위 이상 근거 1개 이상·동 순위 반론이 있을 경우 상위 순위의 근거를 제시할 것
토론 -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평가라도 역사학적인 평가가 아닌 비역사적인 평가를 달리하는 경우는 역사 왜곡으로 간주하지 않음
토론 - 기타 서술 기준에 대해서는 #10의 합의안을 따름
토론 - 합의사항6
토론 - 합의사항7
토론 - 합의사항8
토론 - 합의사항9
토론 - 합의사항10
토론 - 합의사항11
토론 - 합의사항12
토론 - 합의사항13
토론 - 합의사항14
토론 - 합의사항15
토론 - 합의사항16
토론 - 합의사항17
토론 - 합의사항18
토론 - 합의사항19
토론 - 합의사항20
토론 - 합의사항21
토론 - 합의사항22
토론 - 합의사항23
토론 - 합의사항24
토론 - 합의사항25
토론 - 합의사항26
토론 - 합의사항27
토론 - 합의사항28
토론 - 합의사항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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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합의사항39
토론 - 합의사항40
토론 - 합의사항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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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합의사항44
토론 - 합의사항45
토론 - 합의사항46
토론 - 합의사항47
토론 - 합의사항48
토론 - 합의사항49
토론 - 합의사항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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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3. 범위4. 사례
4.1. 대한민국4.2. 북한4.3. 중국4.4. 일본4.5. 대만4.6. 베트남4.7. 독일4.8. 영국4.9. 미국4.10. 프랑스4.11. 벨기에4.12. 튀르키예4.13. 소련4.14. 러시아4.15. 벨라루스4.16. 우크라이나4.17. 중동4.18. 인도 아대륙4.19. 번외: 고대 시대
5. 세계 교과서의 한국 역사 왜곡 사례6. 픽션에서7. 참고 문서

1. 개요

/ Historical Negationism

역사에 대한 왜곡.

2. 설명

Wer aber vor der Vergangenheit die Augen verschließt, wird blind für die Gegenwart.
과거에 눈감은 자, 현재에도 눈 멀게 된다.
독일 연방공화국 제6대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אנחנו לא יכולים ולא צריכים לנסות למחוק את העבר רק בגלל שהוא לא מתאים להווה.
과거가 현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과거를 지우려고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

역사 왜곡은 실행하는 주체도 원인도 다양하며, 그 형태도 정치·외교에서 문화적 종주권이나 인식 문제까지 실로 광범위하다. 이상적으로는 역사 연구에 대한 독립성을 존중하고 학술적인 결론을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으나, 현실적으로 역사가 역사로 그치지 않고 정치행위의 명분으로 작용하는지라 역사학계 내에서조차 갈등이 빈발하는 만큼 아무래도 중립적인 평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1]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정도의 역사 왜곡은 상시로 진행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개중 정부 주도의 역사 왜곡은 대체로 내치에서는 반대파에 대한 정치적인 공세로, 외교에서는 적성국·경쟁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위협하는 수단으로 나타난다. 정부는 교과서로 대중적인 인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고 사법절차를 통해 특정 관점을 억압할 수 있는 권력까지 가졌기 때문에, 역사 왜곡과 역사 왜곡을 막는 것 모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2] 반면 민간 주도의 역사 왜곡은 대체로 국가주의·민족주의 성향의 국민들이 비뚤어진 애국심을 채우기 위해 퍼트리는 경우가 많으며, 드물게 자국 혐오 성향의 인물들이 주변국의 역사 왜곡에 동조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민간 주도의 왜곡은 정부 주도의 왜곡에 비해 덜 치밀하여 학술적으로는 쉽게 반박되지만, 대중들 사이에서 정서적인 공감을 얻기도 쉽기 때문에 논리적 근거와 무관하게 더 빨리 퍼져나간다는 특성이 있다.[3]

모든 기록은 인간이 남기는 것이고 그 인간의 주관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될 수밖에 없기에 현실적으로 100% 객관적인 기록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나마 굉장히 객관적으로 기록되었다고 평가받는 조선왕조실록조차 당시 조선의 당파에 따라 왜곡된 부분이 많이 존재하며, 고대 시대로 가면 카데시 전투에서 람세스 2세의 몸에 신이 현현해서 히타이트군을 쓸어버렸다는 등 판타지적인 기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조작된 것이 분명한 기록들도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 것은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면 거기서 당시의 어떤 주체가 어떤 정치적 필요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어떠했던 사건을 어떻게 기록했다는 추가적인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역사 왜곡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세상은 힘의 논리로 돌아가고, 승자만이 역사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승자, 강자 입장에서 맘에 들지않는 역사를 왜곡할 힘이 생기는 셈이다. 예를 들어 만약 히틀러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면 우리들은 히틀러를 역사 속의 영웅중 한명으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결국 패했기에 역사에는 나치 독일의 악행들이 미화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왜곡을 비판하고 보다 객관적인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이유는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과거의 잘못을 교훈삼아서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보다 더 긍정적인 발전을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3. 범위

국어사전에 따르면, 역사 왜곡이란 역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거나 거짓으로 지어 쓰는 일이다. 즉, 역사 왜곡은 크게 (1) 역사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왜곡(2)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가치 판단 왜곡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개중 전자는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났다고 주장하며, 극단적인 경우 있는 기록을 폐기하거나 위서 혹은 가짜 유물 따위를 날조하여 거짓된 근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반면 후자는 가짜 사실관계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그 사실관계를 해석함에 있어 유리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여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일컫는다. 대체로 전자의 경우 사실관계를 입증하면 자연스럽게 논파되므로 반박이 용이하지만, 후자의 경우 가치 판단의 비중이 큰데다 정치사회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역사 왜곡의 범위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하는 편이다.

한편, 역사에 대한 왜곡이 아닌 행위를 단순히 역사와 밀접하다는 이유로 역사 왜곡이라 오인하는 사례들이 있으며, 이러한 인식은 때로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상대 진영에 의해 확산되기도 한다.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개인의 주관이 근거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설사 일반적인 기준에서 비판의 소지가 있는 주장일지라도 역사에 대한 왜곡이 아니라면 역사 왜곡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4] 또한 현대사에서도 역사적 사실관계를 부정하는 경우[5]는 분명한 역사 왜곡이지만, 개인의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문제들[6]이나 단순히 편향성이 지적받는 경우는 역사 왜곡으로 볼 수 없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예들에서 역사 왜곡의 범주를 쉽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물론 상기한 주장들이 역사 왜곡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타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며, 역사에서 기인한 잘못된 이념들은 때로 역사 왜곡 그 자체보다 더 끔찍한 범죄를 낳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나치가 독일 민족의 레벤스라움을 주장하며 단치히, 주데텐란트 등 동방 영토를 요구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관계로만 보면 딱히 왜곡이 아니지만, 거기에 민족주의가 결합한 나치즘은 역사 왜곡 그 자체보다도 훨씬 더 금기시되는 상황이다. 다만 이러한 사례들은 '역사 왜곡'이 아니라 '정치적 편향성'이나 '이념적 극단성'의 관점에서 비판해야 하며, 역사 왜곡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여기저기 갖다붙이는 것은 범주의 오류에 속하므로 지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역사적 판단은 언제든 새로운 연구 결과로 뒤집힐 수 있기에 현재 참이라고 해도 어느 순간 거짓으로 바뀔 수 있다.

4. 사례

4.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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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북한

4.3.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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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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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대만

4.6.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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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독일

대부분 나치 독일과 관련되어있다.

4.8. 영국

4.9. 미국

4.10. 프랑스

4.11. 벨기에

4.12. 튀르키예

4.13. 소련

4.14. 러시아

4.15. 벨라루스

4.16. 우크라이나

이후 현재 우크라이나는[26] 스테판 반데라를 공식적으로는 옹호하지 않으며 사실상 르비우를 비롯한 서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우크라이나인 대부분은 반데라를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하르키우오데사 등에서는 거의 히틀러와 동급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현대 우크라이나에서 스테판 반데라에 대한 숭배와 미화가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라서, 여전히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반데라를 추종하고 있다. 2016년도에는 키이우 시의회에서 압도적인 지지(키이우 시의회 의원 97명 중 87명의 지지#)로 주요 거리의 이름을 변경해 새롭게 스테판 반데라의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 "Stepan Bandera Avenue"로 바꿨으며[27] 2020년도에도 반데라 탄생일 기념 행진# 주독 우크라이나 대사 안드리이 멜니크의 반데라의 대량학살 연루 의혹 부정과 미화 시도#1 #2, 우크라이나 의회의 스테판 반데라를 기념하는 SNS 게시물#1 #2 올리기 등으로 현재 진행형으로 터지는 역사왜곡으로 이에 폴란드,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는 중이다.

4.17. 중동

4.18. 인도 아대륙

4.19. 번외: 고대 시대

5. 세계 교과서의 한국 역사 왜곡 사례

사실 이는 해당국가 교육부 관료나 실무자가 교과서 만들 때 중화권 및 일본의 서적만을 참고하거나, 한국이 자료제공에 신경 쓰지 않은 측면이 크다.[28][29]

6. 픽션에서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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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참고 문서


[1] 당장 한일관계에서의 역사 이슈도 역사가 역사로 그치지 않고 현실 정치에서 자국민들에게까지 손해를 안겨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두 국가 모두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역으로 역사를 둘러싼 다툼이 진짜로 "역사적인 진실을 밝히고 그걸로 끝"이라면 이렇게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2] 전자의 예로는 중국동북공정을 비롯한 각종 역사공정들이나 일본 극우사관이 있고, 후자의 예로는 나치 독일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이 있다.[3] 환빠식민사관이 논리적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기저 인식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4] 대표적으로 모든 영유권 다툼은 현실정치의 영역이지 역사의 영역이 아니므로,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일단 역사 왜곡으로 볼 수는 없다. 역사 왜곡은 영유권 주장이 아니라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과거에 지배한 적이 없는데도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5] 예컨대 벌어진 학살을 벌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거나, 사료나 기록물로 입증되는 통계적인 지표를 부정하거나.[6] 산업화민주화, 성장복지, 국가주의국제주의처럼 개개인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 달라지며, 사회적으로 명확한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7] 북한이 5.18에 개입했다는 정황과 증거는 전혀 없다.[8] 5.18에 대해 국가가 공인한 역사적 평가를 부정하는 것이다.[9] 신군부내란행위들을 옹호하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5.18 진압을 정당했다고 판단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성향의 시민들은 정당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것이다.[10] 백두산정계비 이후로도 조선이 간도를 영토로 편입시켰다고 보기는 어렵고, 백두산정계비의 구문과 상충되는 이후의 정황 등 다른 역사적 사료들을 무시한 채 유리한 자료만 취사선택한 것이다.[11] 백두산정계비구한말 대한제국의 간도 영유권 주장은 실재했으며, 간도 지방에서 조선에 유리한 사료가 남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 전략적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는 역사가 아닌 현실정치와 외교의 영역이다.[12] 민족주의·팽창주의·반중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중국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든 한민족의 부강을 위해서든 간도의 조선족을 편입시키기 위해서든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으며 이건 역사의 영역이 아니다.[13] 애초 평양고조선이 BC 3세기 초반, 연나라에게 요동 지역을 빼앗긴 뒤 중심지로 삼았다.[14]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1', 역사비평사, 2009, p79-80[15] 덕분에 이 날조를 그대로 믿은 일부 탈북자들이 5.18 광주폭동설(...)도 주장한다.[16] 주로 똥침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손침이 아니라 똥침이듯,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라는 식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두 단어에서 쓰인 한자는 아예 다른 한자다(남침: 侵(침범하다), 똥침: 針(바늘)). 일종의 거짓짝인 셈.[17] 나치 독일이 들어설 시점에는 이미 고인이었기 때문에 본인은 생전에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18] 해당 책이 2000년대 초~중반 나와서 현재진행형이다.[19] 물론 영국 한정이고, 다른 나라는 당연히 제대로 가르친다. 세계인들에게 산 비웃음은 덤.[20] 심지어 영국에서는 아문센의 죽음을 축하하는 파티까지 여는 바람에 여러 국가에서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21] 정작 콩고 주민들을 착취하고 학살한 걸 넘어서, 이 작자의 콩고 점령 때문에 다른 열강들도 아프리카에 침공해서 제국주의의 마수가 뻗어나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정반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22] 레닌그라드 공방전을 겪은 노인부터 아직 어린 꼬마아이까지 모두 잡아서 구속시키는 막장 짓거리를 하고 있다. 참고로 러시아가 주장 중인 우크라이나의 나치세력이 누구냐면, 바로 밑 우크라이나 문단에서 소개되는 스테판 반데라 추종자들이다. 과거에는 이들의 문제가 주변국과의 외교적 충돌을 야기할 정도로 심했으나 유대인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집권 후로는 거의 죽어버린 사상인지라 이젠 소수의 극우파를 제외하면 그냥 무시당하는 수준이다. 근데 러시아는 젤렌스키를 반데라주의자로 규정하면서 개전을 한 것이다.[23] 히틀러는 이들을 해산시킨 이후 국가정부 주요인사를 죄다 수용소로 보내버리며, 이로 인해 상당수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나치로부터 등을 돌리고 일부는 반나치 게릴라 단체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극우성향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라 유대인이나 폴란드인을 향한 공격은 지속되었다.[24] 그런 전쟁말 나치 독일은 다시 회유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25] 폴란드 정부는 반데라의 행보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하고 국가적으로 규탄중이다[26] 특히 유대인이면서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된 이후 더더욱. 가끔 네오나치 집단인 아조프 대대를 정규군으로 채용한 젤렌스키를 네오나치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보이는데, 아조프 대대가 군인이 된 데에는 푸틴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의해 인력이 부족해진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전투경험이라도 풍부한 아조프 대대가 필요했기에 채용한 것이지 절대 네오나치 반데라주의자라서 채용한 것이 아니며 전쟁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해산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집단이다. 참고로 젤렌스키는 반데라를 좋게 평가하지 않고 있으며 독립운동가를 치켜세울 때에도 반데라 말고 다른 사람들을 치켜세운다.[27] 결국 논란이 돼서 법적 소송 중. 현황은 stepan bandera avenue 명칭이 유지 중이며 패소에 대해 키이우 시의회는 항소할 예정.#[28] 참고 자료: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한다>[29] 단, 이 책은 2009년 출판된 책으로써 2024년 현재 무려 15년 전에 출판된 책이기에 현재의 사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도 있음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당장 한국만 하더라도 2009년부터 현재 사이에 교육과정 개편이 두 차례나 존재했으며, 당시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국가인지도가 굉장히 낮은 국가에 속했다.[30] 심지어 임나일본부설과 시기도 안 맞다. 임나일본부설은 369년부터 562년까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설이다. 바로 밑에 적힌 영국 교과서가 실제 학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 할 수 있다[31] 366년은 근초고왕 시대이고 562년에는 신라 때문에 대가야가 멸망했다. 그럼 일본이 가야나 백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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