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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20:41:39

유사역사학/필수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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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내의 환빠를 비롯한 유사역사학자와 해외 유사역사학자들의 유사역사학 쪽에서 단골로 우려먹는 소재와 다양한 썰을 정리해놓은 문서다.

2. 국내

70 ~ 80년대환빠들을 위시로 한 유사역사학이 준동을 일으켰을때부터 1990년대르네상스, 2000년대 이후 동북공정을 등에 업고 부활하기까지 환빠들이 지겹도록 우려먹고 있다. 논파 여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1]

대부분 환빠스틱한 것들이지만 재야사학자 또는 제도권 학자가 순수하게 학문적 목적으로 연구한 것을 유사역사학 종자들이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 요서경략설이나 묘족 고구려인설을 예를 들수 있다.

대체로 식민사관 같은 것을 제외하면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사료가 가장 적은 고조선과 삼국시대에 온갖 떡밥들이 난립하고 조선 쯤에 가면 확 줄어든다. 고대에 비하면 사료가 훨씬 풍부해서 고증이 정확한 고려시대만 해도 온갖 떡밥들을 투척하는걸 보면 어지간히 지독하긴 하다…[2]

2.1. 공통

널리 퍼진 역사왜곡이지만 환독과는 무관할 경우에는 ☆표시.
2개 이상의 분류에 해당하는 경우.

2.2. 고조선 이전

2.3. 고조선

이 분야의 중핵과 같은 요소. 고조선이라는 네임드에다가 사료가 희박해서 소설쓰기 좋고, 이부분만 잘 움직이면 한사군, 고구려는 물론 저멀리 발해의 위치까지도 우수수 이동시킬수 있기 때문. 고조선의 지리 비정을 중심으로 고구려, 한사군, 부여, 발해 등이 그물처럼 엮이어 있다고 보면 된다.

2.4. 원삼국시대

2.4.1. 부여

얼핏보기엔 별로 매력없고 고구려나 고조선에 비해 인지도도 떨어지지만 사서 기록이 거의 없이 맘대로 끼워맞출 수 있는데다 이들의 바이블인 위서 환단고기에서 엄청나게 자세하게 다루기 때문에 각종 떡밥이 존재한다. 추가적으로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집단에서는 환단고기에 나오는 지명인 '영고탑'에 대해 부여의 제천행사인 영고가 이루어졌던 장소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부여는 오늘날의 지린성 일대를 중심으로 자리했던 나라이며 지린성 위수현의 '노하심 유적(老河深 遺跡)'으로 대표된다. 반면 영고탑은 오늘날 헤이룽장성 닝안현이며 과거 발해의 상경성이었던 곳이다.

2.4.2. 한사군

이들이 가장 징하게 물고 늘어지는 분야 중 하나. 한사군이 랴오닝성 또는 롼허(灤河) 하류에 있었다고 보는 학설은 비록 비주류이긴 하지만 근·현대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사실 유사역사학의 다수설(...) 또한 한사군을 '고작' 요동이나 요서에 두는 것에 그치진 않는다.

2.5. 삼국시대

2.5.1. 공통

2.5.2. 고구려

2.5.3. 백제


백제 쪽의 유사역사학은 조선이나 고려, 고구려와 신라 등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다른 국가는 대체로 있는 기록을 입맛대로 엉뚱하게 해석하는 성향이 중점인 반면 백제는 유난히 기록이 없는 부분에 제 멋대로 끼워 맞추는 성향이 강하다. 이는 현대 삼국시대 1차 사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삼국사기에서 백제본기가 극도로 부실하기 때문으로 구멍이 워낙 많아 온갖 헛소리를 집어넣어도 숭숭 뚫리기 때문이다.

2.5.4. 신라

2.5.5. 가야

2.6. 발해

2.7. 고려

2.8. 조선

2.9. 대한제국

2.10. 대한민국

2.11. 국내의 해외 역사 왜곡

본 항목에서 외국 부분은 국내 유사역사학자들이 주로 한국사북방민족을 미화하려는 목적으로 외국의 역사까지 건드린 경우나 외국에서의 유사역사학스러운 주장을 한 경우도 등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신대문자라든가. 한국의 유사역사 학자들은 라오스헝가리까지 경이로울 정도로 광역 역사 왜곡질을 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다.

3. 해외

3.1. 공통

3.2. 대만

3.3. 독일

3.4. 미국

3.5. 오스트리아

3.6. 이스라엘

3.7. 일본

3.8. 중국

3.9. 튀르키예

3.10. 핀란드


[1]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이 궤변들을 논파하면 반응이 가히 압권인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무시한다.[2] 하지만 환빠 까자라는 대의명분 하나로 모든 것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이 항목에도 속지주의 드립 같은게 나오기도 하는데, 속지주의는 현재의 지역적 연고를 근거로 하는데 현재 한국 주류사학계는 속지주의와 상당히 거리가 멀다. 이런 입장을 따르면 주요 세력권이 한반도에 포함되지 않았던 초기 고조선, 부여, 초기 고구려, 발해 등은 한국사에 포함되기 어렵다. 연나라와 대립하던 초기 고조선은 요동이 중심지였고, 고구려의 초기 수도인 졸본과 국내성은 현재 중국 땅에 있다. 발해의 수도나 주 세력권은 모조리 현재의 중국 아니면 러시아 땅이고, 부여 정도 되면 한반도에 세력권이 존재했던 시기가 애초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즉 속지주의는 현재의 영토 상황에서 한국이 아닌 중국이나 좋아할 소리라는 이야기다. 단적으로 동북공정 이전에도 중국은 장수왕의 평양천도 이전 고구려를 속지주의적 관점에서 중국사로 봤다. 속지주의적 관점에선 이걸 부정하기가 대단히 어렵다.[3] 따지고 보면 다 아프리카에서 나왔기에 틀린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건 지구과학, 인류학적 부문이지 역사학적 논의가 아니기에, 단순히 인류 문명의 이동이 아닌 종족의 문화권, 언어 등으로 확대되기 시작하면 유사역사학이 된다.[4] 민족사관에 따르면 예맥계에 속하는 역사적 집단은 전부 다 한민족이다. 민족이란 어차피 주관적으로 형성되는 정체성이므로 삼국인들을 한민족이라고 분류해도 큰 문제는 없다. 유사역사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삼국시대에도 한민족 정체성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5] 민족이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들어가는 요소 (언어, 종교, 혈통, 영역) 등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특정 요소가 정체성에 포함되는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세계의 유태인은 외모, 언어, 문화 등이 가지각색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혈통을 중시하여 동족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한족과 후이족은 사실상 종교만 달랐을 뿐임에도 서로 다른 민족으로 갈라졌다. 심지어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의 경우 불과 100년전만 해도 독일계라는 정체성을 공유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사라졌다.[6] 다만 이 설은 (아직 소수설이지만) 현재 사학계에서도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학설이기는 하다.[7] 심지어 일부는 고조선에서 기원했다는 주장까지 한다.[8] 고구려가 역사상 가장 많은 군대를 동원했던 주필산 전투에서도 고구려군은 20만을 넘지 못했다. 백제는 최전성기에도 10만이 한참 안 되었다.[9] 주의할 점은 백제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을 뿐 비류가 세운 미추홀의 해변 국가가 엄연히 존재했고 이것이 후일 백제에 통합되며 백제의 해상 왕국 건설에 이바지했음은 맞는 설명이다. 비류백제설이 유사역사학이 되는 것은 비류가 세운 국가가 백제라고 우기는 시점.[10] 가야가 바다 건너 일본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는 유사역사학적인 가설이다. 오른쪽에 있어서 우가야라고 불린다.[11] 실제 주소가 있긴 하나 휴면 상태다.[12] 다만 이 부분은 기마민족이 외부에서 쳐들어와 일본을 정복했다가 아니라, 일본이 기마문화를 가진 외부인과 접촉을 하면서 기마문화를 받아들였다고 해석해야 적합하다. 실제로 한일양국 학계의 정설은 서기 4세기 말엽부터 한반도에서 벌어진 고구려와 백제-가야와의 전쟁에서 백제나 가야의 용병으로 참전한 왜인들이 고구려와 접촉하면서 기마문화를 받아들였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