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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7:20:36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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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학 신학3 · 변경지대의 과학
비학문 병적 과학 · 쓰레기 과학 · 유사과학(대체의학) · 반과학
1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유사과학의 일종인 대체의학으로 분류하나, 한국, 중국, 북한, 대만 4개국에는 독립된 한의학부가 존재하여 의학사에 준하는 학위를 부여한다.
2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에 걸쳐져 있다.
3 인문과학과 비과학에 걸쳐져 있다. 독일에서는 과학으로 분류한다. 최근에는 사회과학적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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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280px-The_Historian_(The_How_and_Why_Library).jpg
〈역사가〉
E. 어빙 코스 作, 1902년

1. 개요2. 역사3. 분과 및 인접분야
3.1. 보존과학3.2. 철학3.3. 주제에 따른 분류3.4. 시대에 따른 분류3.5. 지역에 따른 분류
4. 역덕후와의 관계5. 중등 교육6. 고등 교육7. 수험 과목으로서의 사학8. 인물9. 관련항목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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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어나기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른다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을 것이다."
"Nescire autem quid antequam natus sis acciderit, id est semper esse puerum."

키케로, 기원전 46년
역사학(, history) 또는 사학()은 말 그대로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접근과 공부하는 방법에 따라 인문학에 분류되기도, 사회과학에 분류되기도 한다. 역사를 연구한다고 하면 과거 문헌들을 줄줄 읽고 유물을 줄창 파며 연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과거의 사료를 평가, 검증해서 역사적인 사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학생들에게는 암기 과목으로 여겨지지만, 사학이란 하나의 사건을 정치, 경제, 외교, 지리, 과학기술, 사상, 종교, 문화 등 여러 관점에서 뜯어보는 학문이다. 이러한 훈련은 일반인들은 고사하고 사학과 학생들이라고 해도 자신이 진심으로 역사를 좋아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 순전히 점수에 맞춰서 들어온 학생들, 심지어 좋아하는 학생이라고 해도 매우 버거운 훈련이다. 그래서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쉬우면 쉽고, 어려우면 어려운 학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또한 역사를 공부하면서 과거와 현재나 결국 근본적인 정치 체제는 비슷 하므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어느 시대나 뛰어난 인물들이 나라를 이끌었다.

사학계의 학문적인 성과는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서 국가부터 개인까지의 역사관, 정치, 외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문제가 해방 이후인 현재까지도 사회적 이슈이며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었을때 학계에서는 크게 문제없었으나, 정치권에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나치정권은 역사를 통해 아리안족을 위대한 종족으로 설명하고 유대인에 대한 증오의 근거를 찾기도 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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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분과 및 인접분야

바로 위에서 언급 됐듯이 사학은 하나의 사건을 인과관계를 따져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사학은 정치, 경제, 철학, 지리, 문화 등 다양한 학문들과 관련있다. 결국 사학은 인간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인간의 역사는 곧 인간의 생태이며 사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

3.1. 보존과학

광학, 전자기학, 화학, 수학, 통계학, 지질학 등 자연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유물, 문헌, 유적지의 연대를 추정하고 보존하는 분야다.

3.2. 철학

3.3. 주제에 따른 분류

가령 연구할만한 사료가 자서전이거나 선전물이라면 저자의 사견이 상당히 많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므로 그 부분을 적당히 가려내어서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고, 후대에 기록된 역사서의 경우 특정 사실이 앞 시기로 소급되어 기록되었는지의 여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컨대 전자의 사례로는 춘추필법이 있는데,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는 기록을 편찬할 때 실제를 담는다기보다는 지나간 왕조를 평가한다는 의도를 담아서 용어를 임의로 고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가령 칭제한 나라인데 후대에 보기에는 정통성이 부족하여 천자국 자격이 없다고 여겨서 칭호와 관등, 관제 등을 전부 격을 낮추어 제후국의 것으로 적는 것이 있다.[1] 후자의 예시로는 삼국사기가 있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A'라는 것이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김부식이 "아무래도 이건 A라고 해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겠군!"이라고 생각하여 'A'라고 미리 적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2] 또한 단어 하나하나, 맞춤법 하나하나를 면밀히 검토하여 "이때는 존재하지도 않은 단어가 쓰여 있으므로 이 책은 가짜."라고 판정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핵심만 이야기하자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과연 이 사료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시기를 올바르게 반영하고 있는가?"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거칠게 요약하면 "과연 이 연구자는 어떤 상황에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쓰고 있는가?"를 연구한다.

3.4. 시대에 따른 분류

3.5. 지역에 따른 분류

모든 지리에는 역사가 붙어오기 마련이다. 지리와 연관되는 학문들과 매우 밀접해질 수 있다. 지리, 지도, 지역 등과 밀접하다.

4. 역덕후와의 관계

아마추어 역덕후의 연구 분야는 전쟁사나 무기사, 무술사 등인 경우가 많으며, 정치사라 할지라도 어느 국가가 최강이냐 같은 쪽으로 흐르거나, 특정 국가를 지지하는 쪽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분은 흥미를 끌기 쉬우나,[6] 실제 그 시대 사회상을 파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학계에서 깊이 있게 다루지도 않는다. 카페와 블로그에서 다루는 것들은 흥밋거리, 토픽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덕질을 뛰어넘어 보다 의미 있는 연구를 하려면 다른 전문성 있는 학자들이 쓴 논문들을 많이 읽고 스스로 생각해보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료의 원문을 직접 찾아보고 해석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7]

역사학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과거에 대한 객관적 지식에 대한 탐구, 과거 사건의 여러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것[8], 역사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혹은 역사를 통해 사회 구조를 파악하거나 역사가 지닌 다양한 관점과 가능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역덕후라고 함은 자극적인 소재 혹은 흥미를 끌기 쉬운 소재를 통해 역사를 파악하며 로망스적인 해석이 주를 이룬다. 개개의 영웅기를 중요시 여기며 전쟁사가 역사 파악의 핵심이 된다. 물론 이러한 역덕후에서 발전하여 학습을 통해 역사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역덕후라 함은 역사학에서 추구하는 바와는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유비, 관우, 장비 세 명의 일대기를 보거나 그들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며 제갈량의 식소사번하고 살신성인 하는 모습, 강유가 촉한의 마지막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통해 애잔함과 슬픔을 느낀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라기보단 문학을 바라보는 태도이며 이들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원말명초 나관중의 역사 소설인 <삼국지연의>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특히 <삼국지연의>의 시작은 후한 말 황건적의 난으로 시작하나, 역사학에서 바라 보는 삼국시대는 조비가 헌제에게 황위를 선양 받고 조위를 건국했을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 위진남북조 시대 연구는 토지 제도의 변화[9]와 호한 융합[10], 육조 문화[11]의 발흥과 호족의 성장과 귀족들의 대토지 겸병[12]을 핵심으로 삼는다. 삼국시대는 이 시대를 연 시기로 이러한 후한이라는 거대한 통일 왕조가 무너지고 중세를 거치면서 다시 통일 왕조로 이어지는 대변혁의 시대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13]

로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로마를 선호하는 이들은 카이사르의 일대기, 로마의 광활한 영토, 강력한 군사력 등이 주관심사이며 로마가 유럽에 끼친 영향력에는 큰 관심이 없다. 공화정 초기부터 이어지던 평민 계급과 귀족 계급 간의 갈등, 포에니 전쟁을 통한 로마 내부의 모순 발생과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그리고 암살,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 된 원로원의 폭정과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 술라의 숙청, 카이사르의 삼두정치와 제정으로의 이행, 아우구스투스의 프린키파투스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왜 사회가 민주정 혹은 공화정이라는 권력이 분산된 체제에서 전제정이라는 권력의 독점 현상이 일어났는가, 그 과정에서 일어난 로마 토착 종교의 몰락과 밀라노 칙령을 통한 기독교의 공인화가 로마사 연구의 핵심이 된다. 그리고 476년 로마가 서방 영토를 상실하고 일시적으로 서유럽의 체제와 문화가 후퇴했을 때 프랑크족의 발흥, 프랑크 왕국과 카롤루스 대제의 르네상스, 서로마 황제 대관, 베르됭-메르센 조약으로 인한 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동프랑크 오토에 의한 신성 로마 제국 건설, 그리고 이를 보면서 대립을 세우는 동로마 황제와 동서 교회의 대분열은 중세 유럽과 로마의 관계를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

역사학은 그 스스로 독립적인 학문이 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했고 이를 통해 역사학은 ①역사는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 ②역사학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③역사학은 단순 사실 관계의 나열이 아닌 여러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것 ④역사는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존재하며 과거에 기록된 텍스트를 통해 새로운 해석을 창작하는 과정이라는 존재 의의를 얻었고 이로 인해 지금의 역사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역덕후가 바라보는 관점보다 더 폭넓고 다양한 견해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역덕후는 전쟁사와 무기사라는, 역사에서 다루는 분야보다 극히 지엽적인 부분을 탐구하므로 역사학의 근본적인 영역과는 거리가 멀다.

5. 중등 교육

6. 고등 교육

7. 수험 과목으로서의 사학

8. 인물

9. 관련항목

10. 관련 문서


[1]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조선 초에 편찬된 고려사인데, 당초에는 이것도 춘추필법에 따라 용어를 전부 고쳐서 쓰일 뻔했다가 세종이 개입하면서 원래 쓰였던 어휘 그대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2] 예를 들어 백제본기의 경우, 고이왕 때에 좌평제가 완비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학자들 가운데에서는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 같은 시대 중국의 정치조직보다 발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도성이 제대로 정비되지도 않은 도시국가 단계인데 "도성에…" 라는 식의 기록이 보이기도 한다.[3] 보통 전자는 사학계에서, 후자는 철학계 등 여타 학계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에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사학자들이 역서서술이라는 말과 개념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4] 대표적으로 근대 사학에서 흔히 실증주의라고 알려진 역사주의적 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테오도르 몸젠도 실제로는 사상이나 호불호 등 자기 주관이 뚜렷한 학자였고, 그 관점의 특성상 국가주의민족주의하고도 쉽게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 점은 사료비판에 의한 객관성 확보와는 별개로 서술 및 연구 태도에서 알음알음 반영되었다. 마찬가지로, 휘그사관을 비롯한 많은 진보사관들에서도 은연 중에 진보적인 것으로 규정하지 아니한 것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투영하기도 하였다.[5] 대표적으로 흔히 "서구중심적"이나 "중화주의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다.[6] 괜히 삼국지가 인기있는 것이 아니며, 역사를 배경으로 다룬 전략 게임 카페에 역덕후가 많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7] 역덕후와 진짜 전문가를 가려내는 방법도 이와 유사하다. 만약 논쟁이 발생했을 때, 단순한 역덕후라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미 가공된 누군가의 견해를 근거로 드는 경우가 많지만, 진짜 전문가는 원사료를 근거로 든다.[8] 즉, 역사는 단순한 사실 관계의 나열이 아니다.[9] 둔전제 → 점과전제 → 균전제 → 장원 형성과 양세법[10] 북위 효문제의 호한융합정책[11] 동오 - 동진 - 남조(송 - 제 - 양 - 진)으로 이어지는 강남 지방의 문화 발전[12] 균전제의 붕괴를 통한 율령체제의 붕괴로 귀족의 대토지 겸병을 인정했고 송대에 이르러 권문세족이 생겨나는 빌미를 제공했다.[13] 민간에서 촉한정통론이 주목받는 이유도 삼국지연의에 의해서이다. 더 이상 전근대적인 정통성이 필요 없어진 현대에서는 건조하고 냉정한 시각을 통해 조조라는 호족이 권력을 잡고 그 아들 조비가 후한 헌제에게 선위 받았으니 위나라를 핵심으로 삼는다. 당연히 중화의 중심인 화북 지방에 자리 잡은 국가였기도 했고. 때문에 중세 중국의 혼란기를 진남북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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