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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조선 신덕왕후의 왕릉 정릉 貞陵 | |
| |
매장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 19길 116 |
조성형태 | 단릉(單陵) |
매장자 | 신덕고황후 (1396년 9월 15일 사망) |
조성시기 | 1396년 10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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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안내도 |
1. 개요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 사적 제208호로 지정되어 있다.
2. 상세
본래는 도성 안쪽 지역인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었던 무덤이었다. 살아생전 신덕왕후를 총애했던 이성계가 자신이 기거하던 경복궁 인근에 신덕왕후의 무덤을 두고자 했기 때문에 4대문 안쪽 지역인 정동에 무덤을 뒀다. 그러나 1409년 태종의 명령에 따라 지금의 자리인 정릉동으로 옮겼다. 한양의 중심가였던 4대문 안쪽에서 당시로서는 한양의 외곽이었던 정릉동으로 무덤이 옮겨진 것은 계모 신덕왕후에 대한 이방원의 증오심과 경계심 때문인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후술한다. 처음 능지를 정한 곳은 정동이었으나 묘역을 조성할 때 물이 솟아나와 지금의 정릉동 자리로 정해지게 되었다.능을 이장하면서 능 주변에 있던 비석 및 석상을 모두 제거하고 능을 묘로 격하, 사실상 주인없는 가묘(假墓)로 전락시켰다. 세종대왕 때는 영정마저 불살랐다. 그러다가 1669년 우암 송시열이 현종에게 제창하면서 종묘에 모셔지고 이 때 들어서 정릉으로 봉안되었다.
태종 이방원은 이성계를 꼬드겨 이복동생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한 계모 신덕왕후를 싫어하였으며, 신덕왕후 역시 방원을 경계하였다. 신덕왕후가 사망한 후, 결국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잡아두고 이복동생 이방번과 이방석을 붙잡아 죽였다.
이후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면서 신덕왕후(를 비롯한 외척에 대한) 경계심을 버리지 못해 결국 정동에 있던 능을 지금의 정릉동으로 강제이장시키고 능에서 묘로 격하하며 심지어 정릉에 있던 석물들을 청계천 다리 공사에 쓰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청계천 광통교 밑을 지나가다 보면 광통교 돌다리나 벽돌에 화려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 돌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정동 정릉에 있던 석물들이다. 그리고 이 돌들을 보면 제대로 놓은 게 아니라 아예 뒤집힌 채 끼워진 돌들도 볼 수 있다. 조선이 사라진 후인 오늘날까지도 신덕왕후와 태종의 악연을 제대로 보여주는 건축물.[1]
아이러니 한 것은 이방원이 정릉 석물들을 광통교 밑에 처박아 놨기 때문에 청계천에 잠겨 사람 손이 타지 않았고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21세기까지 남아있다는 것이다. 조각들을 보면 구름에 휩싸인 도사나 스님이 들고 다니는 금강저등이 보이는데 도교적이거나 불교적이어서 아직 유교 문화가 강고히 정착하기 이전 고려 말 조선 초의 문화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금강저에는 중앙에 조선왕조의 어기에도 그려저 있는 태극 문양이 있어서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서울 중구의 정동은 정릉을 처음 조성한 곳이었기 때문에 동네 이름을 그대로 정릉의 '정'에서 가져왔으며, 이후 정릉을 현 위치로 이장하면서 그곳의 마을 이름 역시 능 이름을 다시 가져와 현재의 성북구 정릉동이 되었다.
그리고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또 하나의 정릉(靖陵)이 있는데 이 곳은 별개로 조선 11대 왕 중종이 홀로 묻힌 능이다. 상세내용은 정릉(서울 강남)으로.
3. 창작물에서
-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정릉이 누구의 무덤이냐"는 교수의 질문에 "정조?"라고 대답하는 여주인공 양서연(수지)의 대사가 있었다. 정조가 정답이 아닌 거 같자 정종? 정약용? 이라고 연속으로 틀린 답을 내놓는다. 틀린 답을 내놓을 때마다 강의실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커진다.[2]
-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133회 어전회의 대목에서 태종이 정릉의 석물을 청계천 돌다리에 사용하고, 자신의 친어머니인 신의왕후 한씨가 정통성있는 조선의 첫 국모라는 것을 신하들 앞에서 천명한다. 한편 태종은 아버지 태조 시기의 역사인 실록을 속히 편찬할 것을 명하고 그 총책임에 하륜을 명한다. 이에 하륜 및 주변 신료들은 크게 놀란다. 1차 왕자의 난에 적극 참여했던 조영무마저 역사책은 당대의 인물들이 모두 조정에서 물러난 후에 기록해야 한다고 아뢰지만 태종은 있는 그대로 쓰면 된다고 모든 반론을 제압해 버린다.
한편 신덕왕후의 국모로서의 권위를 훼손하기 위해 정릉의 석물을 청계천 돌다리로 사용하며 처박아버리자 조정 신료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한다. 1차 왕자의 난의 주동자로서 어쩌면 신덕왕후의 철천지 원수인 하륜마저도 국모의 무덤을 파헤쳐서 훼손시키는 행태에 대경실색한다.
성우 이강식의 해설로 정릉에 대한 사연, 200여년 후에야 재정비된 사연 등이 시청자들에게 설명된다. 그리고 정릉이 당한 수모를 전해들은 상왕 정종(태민영 배우 분)과 당시 병석에 누워있던 정안왕후 김씨(박윤선 배우 분) 부부도 경악을 금치 못한다. 혹시 자신들의 무덤도 저런 취급을 받지 않을까 대놓고 걱정하는 대사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