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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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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고성 송학동 고분군 固城 松鶴洞 古墳群 | ||
소재지 | <colbgcolor=#fff,#1f2023>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470번지 일원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 |
수량/면적 | 67,325㎡ |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
소유단체 | 고성군 등 | |
관리단체 | 고성군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colbgcolor=#000> 가야고분군 Gaya Tumuli Tumuli de Gaya | ||
<colcolor=#fff> 국가·위치 | <colbgcolor=#fff,#1f2023>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경상남도 고성군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1666 | |
등재연도 | 2023년 | |
등재기준 | (iii)[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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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에 위치한 소가야(고자국)의 고분군으로, 고성읍 북쪽의 무기산 일대에 7기 가량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유적이다. 소가야(小加耶)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19호로 지정되었고, 2023년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100년 전, 흑백사진에 담긴 《고성 송학동 고분군》 모습2. 특징
규모나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소가야의 왕릉급 위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지배계층이 다른 가야 연맹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활동을 전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와 금동 귀걸이, 마구(馬具), 금동장식 큰칼, 청동제높은잔, 유리구슬 등이 출토되어 소가야 왕릉의 면모를 짐작케해 주었다. 출토된 유물의 특징을 통해 고분군은 대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모든 고분의 봉토(封土)는 인공으로 다져 쌓아 올려졌다. 언덕 위를 평평하게 고른 뒤 한 켜씩 다져가며 쌓아 올린 판축(版築)의 기술이 확인되었다. B-1호 돌방은 전통적 가야고분과는 다른 모양인데, 입구·돌벽·천장에 붉은 색이 칠해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2.1. 1호분
송학동 1호분의 90년대 당시 사진(위-왼쪽), 발굴 당시 사진(위-오른쪽), 복원 조성 사진(아래). |
고분 가운데에는 고분군 내 고분 가운데 제일 큰 송학동 제1호 고분이 있다. 이 고분은 과거 일본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 닮았다 하여 주로 전라도 남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분 문화의 영향이 이 곳까지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무덤벽이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 점, 가야, 신라, 백제의 토기 외에 일본 양식의 토기가 있는 점 등이 논거가 되었다.
발굴 인생 30여년에 처음 보는 채색고분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채색고분을 ‘장식고분(裝飾古墳)’이라 한다. 규슈지역에서만 해도 지금까지 110여기의 무덤에서 확인된, 일본 특유의 무덤내부 장식이다. “마치 일본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어요”. 심봉근 교수의 얼굴은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일본 규슈대에 유학하여 일본 고고학을 전공했으니 일본의 채색고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소상히 알고 있는데, 생각지도 않은 채색고분이 이곳 고성에서 확인되다니.
경향신문 "[한국사 미스터리](16) 고성 송학동 ‘채색고분’"# 중
경향신문 "[한국사 미스터리](16) 고성 송학동 ‘채색고분’"# 중
그러나 후속 조사에서 이 고분은 내부 구조가 13개의 돌덧널과 돌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개의 독립된 둥근 봉토를 가진 고분이 합쳐진 것으로 판명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고고학계 및 사학계에서는 "가야의 독자적 고분 형태이며, 일본의 전방후원분과는 다른 양식의 무덤이다."라고 결론내렸다.
3. 기타
- 이 고분군에서 도로명이 유래한 송학고분로가 바로 옆에 있다.
4.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고성 송학동 고분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고성송학동고분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송학동제2의고분군
- 고고학사전: 송학동 고분
- 답사여행의 길잡이 11 - 한려수도와 제주도: 송학동 고분군
- 대한민국 구석구석: 고성 송학동 고분군
- 두산백과: 고성 송학동 고분군
5. 사적 제119호
고성읍 무기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구릉 주변에 있는 7기의 가야 무덤들이다. 가장 높은 곳에 1호 무덤이 있고 점차 밑으로 내려가면서 나머지 6기의 무덤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에서 북쪽으로 300m 거리에 기원리 무덤들이 있고, 동쪽으로 300∼400m 거리에 송학동 조개더미가 있어, 삼국시대 소가야국의 자리를 나타내주고 있다.
1호 무덤은 겉모습에서 앞이 네모나고 뒤가 둥근 무덤인 전방후원형 무덤으로 보여지기도 하나, 발굴조사 결과 흙을 쌓아 구릉처럼 만든뒤 돌무덤방을 만든 가야 고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 7기의 무덤은 1호 무덤인 무기산 무덤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1호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는 딸린무덤(배총)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호 무덤은 좋은 위치와 무덤의 규모 등을 생각했을 때 이 지방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며, 만들어진 시기는 A·D 400년을 중심으로 앞뒤 50년의 범위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쪽에는 고성 동외동 조개더미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조개더미에서는 널무덤(토광묘)·독무덤(옹관묘)·돌널무덤(석관묘) 등의 유적과 청동 투겁창(청동광모)·청동 칼자루 끝 장식(검파두식)·거울조각·불탄쌀·회색토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이 지방의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송학동 무덤은 동외동 조개더미의 초기철기시대를 뒤 이은 후대 문화를 대표하는 가야 문화 유적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이 지역에서 북쪽으로 300m 거리에 기원리 무덤들이 있고, 동쪽으로 300∼400m 거리에 송학동 조개더미가 있어, 삼국시대 소가야국의 자리를 나타내주고 있다.
1호 무덤은 겉모습에서 앞이 네모나고 뒤가 둥근 무덤인 전방후원형 무덤으로 보여지기도 하나, 발굴조사 결과 흙을 쌓아 구릉처럼 만든뒤 돌무덤방을 만든 가야 고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 7기의 무덤은 1호 무덤인 무기산 무덤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1호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는 딸린무덤(배총)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호 무덤은 좋은 위치와 무덤의 규모 등을 생각했을 때 이 지방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며, 만들어진 시기는 A·D 400년을 중심으로 앞뒤 50년의 범위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쪽에는 고성 동외동 조개더미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조개더미에서는 널무덤(토광묘)·독무덤(옹관묘)·돌널무덤(석관묘) 등의 유적과 청동 투겁창(청동광모)·청동 칼자루 끝 장식(검파두식)·거울조각·불탄쌀·회색토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이 지방의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송학동 무덤은 동외동 조개더미의 초기철기시대를 뒤 이은 후대 문화를 대표하는 가야 문화 유적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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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