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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왕릉

신라 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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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경주 미추왕릉
慶州 味鄒王陵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89-2번지
분류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고대
면적 5,515㎡
지정연도 1969년 8월 27일
건축시기 신라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유네스코 세계유산
<colbgcolor=#000> 경주역사유적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
Zones historiques de Gyeongju
<colcolor=#fff> 국가·위치 <colbgcolor=#fff,#1f2023>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경상북도 경주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지정번호 976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i)[1], (iii)[2] }}}
파일:경주_미추왕릉_봉분_(촬영년도___2015년) 문화재청.jpg
<colbgcolor=#4a2d5b> 미추왕릉

1. 개요2. 상세3. 외부 링크4. 사적 제175호

[clearfix]

1. 개요

味鄒王陵

신라 제13대 국왕 미추 이사금의 능이라고 전해지는 무덤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에 위치한다. 1969년 사적 제175호로 지정되었다.

2. 상세

높이 12.4m, 지름 56.7m의 타원형의 흙과 돌을 쌓아 만든 무덤으로, 대릉원 내부 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담장이 둘러쳐져 있는 무덤이다.

문헌 상에 기록된 김씨 첫 번째 왕으로서 경주 김씨 문중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284년 10월에 승하해 '대릉(大陵)에 장사지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대릉원이라는 이름도 바로 여기서 따 온 것이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14대 유리왕조의 '미추왕 죽엽군' 편을 보면 유리왕 14년(297년) 이서국[3]이 공격해왔을 때 미추왕릉에서 대나무를 귀에 꽂은 병사들이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 사라졌다는 전설에 따라 죽현릉(竹現陵), 죽장릉(竹長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미추왕릉 주위에는 작은 대나무 숲이 있다.

하지만 이 고분이 진짜 미추 이사금의 능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경주에 전해지는 왕릉들은 18세기에 경주 김씨와 박씨, 그리고 석씨 문중에서 임의로 비정한 것들이 태반이라...[4] 그래서 경주의 신라왕릉들은 무열왕릉, 원성왕릉, 흥덕왕릉, 선덕여왕릉 등처럼 기록에 딱 맞아떨어지거나 무열왕릉비처럼 비석이 일부라도 남은 몇몇 예외를 빼고 피장자가 확실하지 않은 능들은 이름 앞에 (전할 전)을 붙여서 "그렇다 카더라"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이미 문중에서 어느 왕의 능이라고 믿고 제사를 지낸 역사도 수백 년이 지났기 때문인지, 일반적으로는 그냥 전 자를 빼고 미추왕릉 이라고만 부르는 쪽으로 굳어졌다.[5]

아무튼 현대 학계는 이 미추왕릉을 진짜 미추왕의 무덤으로 추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대와 사람은 비록 달라도 어느 수장격 인물이 묻힌 왕릉급 무덤으로 여긴다. 인교동 119호와 황남대총의 사이에 있으며 인교동 119호분의 주인이 내물왕으로 추정된다고 볼 때 황남대총이 실성왕 혹은 눌지왕으로 추정되므로, 능원의 형성 과정을 참고하면 이곳도 왕릉은 맞는다고 추측한다. 물론 규모상으로도 기본적으로 봉황대, 서봉황대, 황남대총 다음으로 큰 고분이므로 왕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추가로 미추왕릉 정면에는 숭혜전이 있는데 미추 이사금, 문무왕, 경순왕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현재 위치에는 1794년에 세워졌다.

3. 외부 링크

4. 사적 제175호

신라 최초의 김씨 왕으로 백제의 여러차례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한 신라 13대 왕인 미추이사금(재위 262∼284)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는 미추왕릉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유례왕 14년(297) 이서고국(伊西古國) 사람이 수도인 금성을 공격하여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군사가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 사라졌다. 누군가 미추왕릉에 댓잎을 수북이 쌓인 것을 보고 미추왕이 죽어서도 신라를 도와주었다하여 미추왕릉을 죽장릉(竹長陵), 죽현릉(竹現陵)이라 부른다고 한다.

경주 황남동 무덤들 중 가장 잘 정비된 대릉원 내에 높이 12.4m, 지름 56.7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앞에는 혼이 머무는 자리인 혼유석이 있고, 담장을 돌려 무덤 전체를 보호하고 있다. 무덤 앞쪽에는 숭혜전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794년 다시 세운 것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곳이다. 내부는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추정된다.

※(신라미추왕릉 → 경주 미추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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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이서고국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과 화양읍 일대에 위치한 진한의 소국이었다.[4] 조선 후기 정부에서 예우 차원으로 옛 신라 왕실 가문들에게 제향을 올릴 왕들의 능묘가 있으면 조상님들 모시는데 보태 쓰라고 토지를 하사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시기를 기점으로 갑자기 경주 지역에 "~왕릉"이라고 불리는 고분들이 늘어났다. 문중들도 삼국사기 등에 남은 옛 기록을 참고하기는 했지만 무열왕릉 등 일부 정보가 확실한 것을 제외하면 어느 산 동쪽이다 이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그쪽에 가서 보이는 왕릉 같은 큰 무덤이 있으면 때려맞히는 정도였다. 그나마 법흥왕 이후 왕들은 문헌자료에 왕릉의 위치가 어느 산의 동쪽이라느니 북쪽이라느니 하는 정도라도 쓰였지만, 그 이전 초기 임금들은 그 정도 힌트도 없다.[5] 고대 일본의 전방후원분들 역시 현재 무덤의 주인이 특정되었는데, 이 역시 신라왕릉들과 비슷하게 문헌자료를 토대로 후대에 지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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