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word-break: keep-all; min-height:(25/18*1em + 5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be673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 | 1권 「신라 1권 (新羅 一)」 | 2권 「신라 2권 (新羅 二)」 | |
| 혁거세 · 남해 · 유리 · 석탈해 · 파사 · 지마 · 일성 | 아달라 · 벌휴 · 내해 · 조분 · 첨해 · 미추 · 유례 · 기림 · 흘해 | ||
| 3권 「신라 3권 (新羅 三)」 | 4권 「신라 4권 (新羅 四)」 | 5권 「신라 5권 (新羅 五)」 | |
| 내물 · 실성 · 눌지 · 자비 · 소지 | 지대로 · 원종 · 김삼맥종 · 김사륜 · 김백정 | 김덕만 · 김승만 · 김춘추 | |
| 6-7권 「신라 6-7권 (新羅 六-七)」 | 8권 「신라 8권 (新羅 八)」 | 9권 「신라 9권 (新羅 九)」 | |
| 김법민 | 김정명 · 김이홍 · 김융기 | 김승경 · 김헌영 · 김건영 · 김양상 | |
| 10권 「신라 10권 (新羅 十)」 | 11권 「신라 11권 (新羅 十一)」 | ||
| 김경신 · 김준옹 · 김청명 · 김언승 · 김수종 · 김제융 · 김명 · 김우징 | 김경응 · 김의정 · 김응렴 · 김정 · 김황 · 김만 | ||
| 12권 「신라 12권 (新羅 十二)」 | 13권 「고구려 1권 (高句麗 一)」 | 14권 「고구려 2권 (高句麗 二)」 | |
| 김요 · 박경휘 · 박승영 · 박위응 · 김부 | 고주몽 · 고유리 | 고무휼 · 고색주 · 고해우 | |
| 15권 「고구려 3권 (高句麗 三)」 | 16권 「고구려 4권 (高句麗 四)」 | 17권 「고구려 5권 (高句麗 五)」 | |
| 고궁 · 고수성 | 고백고 · 고남무 · 고연우 | 고우위거 · 고연불 · 고약로 · 고상부 · 고을불 | |
| 18권 「고구려 6권 (高句麗 六)」 | 19권 「고구려 7권 (高句麗 七)」 | 20권 「고구려 8권 (高句麗 八)」 | |
| 고사유 · 고구부 · 고이련 · 고담덕 · 고거련 | 고나운 · 고흥안 · 고보연 · 고평성 · 고양성 | 고원 · 고건무 | |
| 21-22권 「고구려 9-10권 (高句麗 九-十)」 | 23권 「백제 1권 (百濟 一)」 | ||
| 고장 | 부여온조 · 부여다루 · 부여기루 · 부여개루 · 부여초고 | ||
| 24권 「백제 2권 (百濟 二)」 | |||
| 부여구수 · 부여사반 · 부여고이 · 부여책계 · 부여분서 · 부여비류 · 부여계 · 부여구 · 부여수 · 부여침류 | |||
| 25권 「백제 3권 (百濟 三)」 | |||
| 부여진사 · 부여아신 · 부여전지 · 부여구이신 · 부여비유 · 부여경사 | |||
| 26권 「백제 4권 (百濟 四)」 | 27권 「백제 5권 (百濟 五)」 | 28권 「백제 6권 (百濟 六)」 | |
| 부여문주 · 부여삼근 · 부여모대 · 부여사마 · 부여명농 | 부여창 · 부여계 · 부여선 · 부여장 | 부여의자 | |
| 금석문 및 문헌기록상 신라 최초로 성씨를 사용한 왕은 진흥왕임 {{{#!folding [ 표(表) / 잡지(雜志) ] | |||
{{{#!folding [ 열전(列傳) ]
}}} |||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신라 한림(翰林) 고려 증 홍유후(弘儒侯) 설총 薛聰 | |
| 설총 표준영정 | |
| 생몰연도 | ?[1] ~ ? |
| 본관 | 경주 설씨[2] |
| 성 | 설(薛) |
| 이름 | 총(聰) |
| 자 | 총지(聰智) |
| 관등 | 나마(奈麻) |
| 추증 | 고려 홍유후(弘儒侯)[3] |
| 부모 | 부: 원효대사[4] 모: 요석공주[5] |
| 자녀 | 자: 설중업(薛仲業) - 대판관(大判官) |
1. 개요
신라의 유학자, 언어학자이자 동국18현의 첫 현인. 시호(諡號)는 홍유후(弘儒侯).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 아버지는 원효대사 설서당(薛誓幢)이며 어머니는 태종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이다. 자(字)는 총지(聰智)이며 경주 설씨 시조 호진(虎珍)의 후손으로, 설총은 경주 설씨의 중시조이다. 한글 이전 고대 한국어의 표기법인 이두(吏讀)를 집대성했으며 신라에 유교를 확립시킨 뛰어난 유학자로, 약간 앞 세대의 사람인 강수(強首), 후대의 최치원(崔致遠)과 함께 신라 삼현으로 추앙받았다.아버지 원효대사가 승려 출신[6]인 것은 여러모로 유명하지만 설총은 아버지와 달리 유학자였다. 단, 약간 앞 세대의 또 다른 대표적 유학자 강수는 불교가 세속을 도외시했다고 비판하며 유교를 강조하는 입장이었던 것과 달리 설총은 아버지 원효의 영향을 받았다.
원효의 골품을 따라 설총 또한 6두품이다.
2. 범상치 않은 탄생
설총의 탄생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그의 아버지는 고승 원효(본명 설서당)라고 한다.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가 해골물을 먹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한 뒤에 노래를 지어 불법을 전했는데 갑자기 그가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줄 것인가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지을 텐데"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아무도 원효가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알지 못하던 중, 태종 무열왕이 이를 듣고서는 "원효가 자기한테 여자를 주면 뛰어난 현자를 낳게 하겠다라는 거로구나"라고 하고선 원효를 자신의 과부된 딸인 요석공주와 맺어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관리를 보내 원효를 데려오게 했는데 문천교라는 다리를 지나던 원효가 일부러 발을 헛디뎌서 물에 빠져버렸다. 관리는 원효를 요석궁으로 데려가서 옷을 말리게 했는데, 옷이 마르기를 기다리다가 요석궁에 있던 요석공주와 하룻밤을 보냈고 그래서 나온 아들이 바로 설총이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설총은 무열왕의 외손자가 되는 셈이다.
요석공주의 원래 남편은 정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사서에 나오는 무열왕의 사위 중 젊을 때 사망한 게 확실한 인물이 김흠운뿐이라 대체로 김흠운이 원래 남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문왕의 계비이자 효소왕, 성덕왕의 어머니인 신목왕후가 김흠운의 딸이기 때문에 요석공주가 김흠운의 부인이 맞다면 신목왕후는 설총의 이부 누나가 된다.
3. 통일 신라의 대학자
고승과 과부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출생 문제로 세상의 지탄을 받을수도 있었지만 설총은 이를 뛰어난 학문으로 극복한 듯하다. 원효가 승려가 되기 전의 신분이 6두품이었던 탓에 설총도 6두품이라 크게 출세하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문장과 학식으로 세간의 큰 존경을 받았다고 전한다.흔히 문자 이두를 만든 사람이 오랫동안 설총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쓰였던 문자 체계로 한자의 형태를 빌려서 썼다. 조선 초에 대체제인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민간의 사용빈도가 크게 줄었으나 관료층들 사이에서는 구한말까지 여전히 널리 사용되었다. 한글 전용이 보편화된 현대에는 그 존재감이 사라진 상태긴 하지만, 한민족이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사용한 기간을 따져 보면 한글보다 훨씬 오래 썼던 것이 이두고 이런 점에서 설총의 업적을 마냥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국문학자들의 연구로는 이미 설총 이전부터 우리 말을 한자로 표기하는 이두나 향찰식의 표기가 있어왔다고 하며, 돌에 새긴 금석문을 통해 설총시대 이전에도 정통 중국식 한문이 아닌 이두식 문장을 쓴 정황이 발견되고 있다. 다만 삼국사기는 설총이 방언(한국어)으로 구경을 읽고 후생을 훈도했다 하였고, 삼국유사는 우리말로 화이의 방속과 물건의 이름을 이해하고 육경과 문학을 풀이했다고 서술했다. 이로 미루어보면 설총은 그 전부터 존재하던 이두와 향찰의 표기를 집대성한 공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문자를 직접 만든 세종대왕 유형이 아니라 현대 국어학의 기초를 닦아놓은 주시경과 비슷한 업적이다. 사실 세계사에서 보편적으로 세종처럼 문자를 아예 새로 만들어내는 사례보다는, 이렇게 기존에 중구난방이던 걸 다듬고 정리하는 경우가 더 많고 이 또한 대단한 업적이다.
학자들 중에는 설총이 우리말(한국어)로 유교 경전을 읽고 풀이하는 노력을 한 데에는 아버지 원효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원효가 난해한 불교의 교리를 쉽게 풀어서 일반 대중에게 설파했듯이, 설총도 어려운 한문으로 된 유교경전을 우리말로 풀어서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전파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7][8]
안타깝게도 이런 설총의 노력 중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것은 없다. 강수, 최치원과 더불어 신라 3대 명문장가로 꼽혔지만, 후삼국시대와 여요전쟁을 거치며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고려 중엽의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당시에 이미 설총의 문장이나 저서의 대다수가 전해지지 않고 있었고, 설총이 지은 비문은 고려 중기까지는 그래도 다수가 남아 있었지만, 이마저도 글씨가 훼손된게 대부분이라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히도 신문왕[9]을 훈계하고자 지었다는 화왕계와 719년(성덕왕 18년)에 지은 감산사 아미타여래조상기만큼은 남아서 오늘날까지 전한다.
조각에도 나름 조예가 있었는지 원효가 죽은 후에 원효의 유골을 모아서 거기에 흙을 붙여 원효회고상이란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대각국사 의천이 시에서 '원효가 살아있는 듯한 모습을 뵈었다.'고 읊었음을 보면 대단히 생생한 조각상이었던 모양.
고려시대 현종 때 홍유후로 추증되고 동시에 문묘에 배향되었다. 비교적 문인의 성향이 강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심지어는 관련 일화까지 조작된 것으로 보이는 최치원과는 달리, 설총은 유학자적 권위를 인정받아 배향에 큰 무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시 보문동 423에 설총의 묘로 전해지는 '전 홍유후 설총묘'가 있다.
4. 기타
- 이두 표기를 확립했다는 점(나중에 이두를 만들었다고 와전되었지만) 때문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만드는 것 반대하던 신하들에게 격노하며 언급한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에도 '설총이 이두를 만들었다'는 것은 거의 상식으로 통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설총(薛聰)의 이두(吏讀)도 역시 음이 다르지 않으냐. 또 이두를 제작한 본뜻이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 함이 아니하겠느냐. 만일 그것이 백성을 편리하게 한 것이라면 이제의 언문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 한 것이다. 너희들이 설총은 옳다 하면서 군상(君上)의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 또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
- 출신지가 경산시라 그런지 경산시 남산면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로 설총로가 있다. 원효와 일연도 같은 경산 출신이라 경산시는 경산시를 이들을 3명의 성현, 삼성현의 고장이라 부르고 있다.
- 래원의 곡 <원효대사>에서도 '설총 사회적 파장 가져와'로 언급된다.
5. 둘러보기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rowcolor=#212529,#e0e0e0> 문성공(文成公) 안향 | 문창후(文昌侯) 최치원 | 홍유후(弘儒侯) 설총 |
| 남종향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bgcolor=#ffc81e> 서무 종향 | <colbgcolor=#fff078> 문창후(文昌侯) 최치원 | <colbgcolor=#78f0ff> 홍유후(弘儒侯) 설총 | <colbgcolor=#1ec8ff> 동무 종향 |
| 문충공(文忠公) 정몽주 | 문성공(文成公) 안유 | |||
| 문헌공(文憲公) 정여창 | 문경공(文敬公) 김굉필 | |||
| 문원공(文元公) 이언적 | 문정공(文正公) 조광조 | |||
| 문정공(文正公) 김인후 | 문순공(文純公) 이황 | |||
| 문간공(文簡公) 성혼 | 문성공(文成公) 이이 | |||
| 문열공(文烈公) 조헌 | 문원공(文元公) 김장생 | |||
| 문정공(文正公) 송시열 | 문경공(文敬公) 김집 | |||
| 문순공(文純公) 박세채 | 문정공(文正公) 송준길 | |||
| <colcolor=#212529,#e0e0e0>■■: 조선 5현 {{{#c00d45 적색}}}: 조선 종묘 배향공신 | }}}}}}}}} | |||
| '''[[한국 문학|한국 문학사 {{{#!wiki style="font-family: Times New Roman, serif; display: inline"]]''' | ||||
| {{{#!wiki style="word-break: break-all; 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bgcolor=#c1c1c1,#4a4a4a> 고대 (BCE 23c~CE 10c) | <colbgcolor=#eeeeee,#222222> 시 · 가요 | [[고조선| 고조선 ]] 저자 미상(공무도하가) | |
| [[신라| 신라 ]] 월명사(제망매가), 충담사(찬기파랑가), 처용(처용가), 최치원(추야우중), 득오(모죽지랑가), 의상(화엄일승법계도), 김위홍(삼대목) | ||||
| [[고구려| 고구려 ]] 유리명왕(황조가), 을지문덕(여수장우중문시) | ||||
| [[백제| 백제 ]] 저자 미상(정읍사), 무왕(서동요) | ||||
| [[가야| 가야 ]] 저자 미상(구지가) | ||||
| [[발해| 발해 ]] 양태사(야청도의성) | ||||
| 설화 · 소설 | [[신라| 신라 ]] 설총(화왕계) | |||
| 산문 | [[신라| 신라 ]] 원효(금강삼매경론 · 대승기신론소 · 판비량론), 혜초(왕오천축국전), 최치원(토황소격문) | |||
| [[고구려| 고구려 ]] 이문진(신집) | ||||
| [[백제| 백제 ]] 고흥(서기), 저자 미상(백제본기), 혜균(대승사론현의기) | ||||
| [[발해| 발해 ]] 이광현(금액환단백문결) | ||||
| 금석문 | [[신라| 신라 ]] 진흥왕(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김○○, 한눌유(문무왕릉비) | |||
| [[고구려| 고구려 ]] 장수왕(광개토대왕릉비 · 중원고구려비) | ||||
| [[백제| 백제 ]] 저자 미상(미륵사지 금제사리봉영기), 정지원(금동정지원명삼존여래입상 금석문), 사택지적(사택지적비) | ||||
| [[발해| 발해 ]] 저자 미상(정혜공주 묘비명 · 정효공주 묘비명) | ||||
| 중세 (CE 10c~14c) | 시 · 가요 | [[고려| 고려 ]] 저자 미상(청산별곡), 저자 미상(가시리), 저자 미상(동동), 저자 미상(쌍화점), 경한(직지심체요절), 나옹(나옹화상가송 · 청산은 나를 보고), 균여(보현십원가), 이규보(동명왕편), 우탁(탄로가), 이방원(하여가), 정몽주(단심가), 정서(정과정) | ||
| 설화 · 소설 | [[고려| 고려 ]] 한림의 유생들(한림별곡), 이규보(국선생전), 임춘(국순전), 저자 미상(최치원), 저자 미상(조신의 꿈), 저자 미상(김현감호), 김부식(온달 설화), 일연(단군 신화 · 주몽 신화 · 만파식적) | |||
| 산문 | [[고려| 고려 ]] 김부식(삼국사기), 일연(삼국유사), 지눌(권수정혜결사문 · 원돈성불론), 의천(천태사교의주 · 대각국사문집), 각훈(해동고승전), 이승휴(제왕운기), 이규보(동국이상국집), 이인로(파한집), 최자(보한집), 이제현(역옹패설), 혁련정(균여전) | |||
| 근세 (CE 14c~19c) | 시 · 시조 | [[조선| 조선 전기 ]] 신사임당(유대관령망친령 · 사친), 정인지 등(용비어천가), 정극인(상춘곡), 성삼문(이 몸이 죽어 가서), 황진이(동짓달 기나긴 밤을), 세종(훈민정음, 월인천강지곡), 정철(관동별곡 · 사미인곡), 허난설헌(규원가), 홍랑(묏버들 가려 꺾어) | ||
| [[조선| 조선 후기 ]] 박인로(누항사), 윤선도(어부사시사 · 오우가), 이매창(고인), 김천택(청구영언), 김수장(해동가요), 김인겸(일동장유가), 정학유(농가월령가), 저자 미상(사설시조) | ||||
| 소설 | [[조선| 조선 전기 ]] 김시습(금오신화) | |||
| [[조선| 조선 후기 ]] 허균(홍길동전), 김만중(구운몽 · 사씨남정기), 조성기(창선감의록), 박지원(허생전 · 양반전 · 호질), 저자 미상(임경업전), 저자 미상(유충렬전), 저자 미상(최고운전), 저자 미상(운영전), 저자 미상(박씨전), 저자 미상(임진록), 저자 미상(춘향전), 저자 미상(심청전), 저자 미상(흥부전), 저자 미상(토끼전), 저자 미상(전우치전) | ||||
| 산문 | [[조선| 조선 전기 ]] 유효통(향약집성방), 인수대비(내훈), 서거정(동문선), 김구(화전별곡), 보우(권념요록), 이황(성학십도), 이이(성학집요), 이응태 부인(이응태 묘 출토 편지) | |||
| [[조선| 조선 후기 ]] 류성룡(징비록), 이순신(난중일기), 이중환(택리지), 박지원(열하일기), 혜경궁 홍씨(한중록), 박제가(북학의), 정약용(목민심서 · 경세유표 · 흠흠신서), 의유당(의유당관북유람일기), 휴정(선가귀감), 홍만종(해동이적) | ||||
| 언해 | [[조선| 조선 ]] 수양대군, 김수온 외 (석보상절), 유윤겸 외(두시언해) | |||
| 근대 (CE 19~20c) | 시 · 가사 | [[대한제국| 대한제국 ]] 최남선(해에게서 소년에게) | ||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 김기림(바다와 나비), 한용운(님의 침묵 · 조선불교유신론), 심훈(그날이 오면 · 상록수), 김소월(진달래꽃 · 초혼), 윤동주(서시 · 별 헤는 밤), 이상(오감도), 정지용(향수 · 유리창), 백석(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이육사(광야 · 청포도), 임화(우리 오빠와 화로), 김영랑(모란이 피기까지는), 이상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
| 소설 · 극 | [[대한제국| 대한제국 ]] 이인직(혈의 누 · 은세계), 이해조(자유종), 안국선(금수회의록) | |||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 강경애(인간문제), 홍명희(임꺽정), 이광수(무정), 염상섭(삼대 · 만세전), 김동인(감자 · 배따라기), 현진건(운수 좋은 날 · B사감과 러브레터), 채만식(태평천하 · 레디메이드 인생 · 탁류), 이효석(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동백꽃 · 봄·봄), 이상(날개), 박태원(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 천변풍경), 계용묵(백치 아다다), 오영진(맹진사댁 경사), 최서해(탈출기), 한설야(과도기) | ||||
| 산문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 신채호(조선상고사), 김구(백범일지), 여운형(조선독립의 당위성 · 동경기행), 이태준(무서록), 장준하(돌베게) | |||
| 동화 · 아동청소년문학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 백석(집게네 네 형제), 마해송(곶감과 호랑이), 이원수(고향의 봄 · 숲 속 나라), 현덕(하늘은 맑건만) | |||
| 현대 (CE 20c~21c) | 시 · 가사 | [[대한민국| 해방·전후 ~ 1970년대 ]] 김지하(타는 목마름으로 · 오적 · 무화과), 고은(만인보), 박목월(나그네), 조지훈(승무 · 낙화), 서정주(국화 옆에서), 김수영(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풀), 김춘수(꽃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신동엽(껍데기는 가라), 손로원(봄날은 간다), 신경림(농무 · 목계 장터), 이형기(낙화), 천상병(귀천), 백기완(묏비나리) | ||
| [[대한민국| 1980년대~2020년대 ]] 김민기(아침이슬 · 상록수), 나태주(풀꽃), 도종환(접시꽃 당신 · 흔들리며 피는 꽃), 박노해(노동의 새벽), 박주연(너에게로 또 다시),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이영훈(사랑이 지나가면), 장정일(샴푸의 요정), 기형도(입 속의 검은 잎), 최영미(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승자(삼십세), 정호승(슬픔이 기쁨에게), 제페토(그 쇳물 쓰지 마라), 허수경(혼자 가는 먼 집), 황지우(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
| 소설 · 극 | [[대한민국| 해방·전후 ~ 1970년대 ]] 황순원(소나기 · 카인의 후예), 박경리(토지 · 김약국의 딸들), 최인훈(광장), 이청준(당신들의 천국), 김승옥(무진기행), 윤흥길(장마 ·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현기영(순이 삼촌), 황석영(장길산 · 삼포 가는 길 · 황석영 삼국지), 오정희(중국인 거리 · 유년의 뜰), 이강백(파수꾼 · 결혼), 하근찬(수난이대 · 흰종이 수염 · 야호), 이범선(오발탄), 손창섭(비오는 날 · 잉여인간) | |||
| [[대한민국| 1980년대 ~ 2000년대 ]] 조정래(태백산맥), 이문열(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평역 삼국지), 최인호(고래사냥 · 상도 · 해신), 복거일(비명을 찾아서), 최명희(혼불), 양귀자(원미동 사람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신경숙(엄마를 부탁해), 은희경(새의 선물), 윤대녕(은어낚시통신), 공지영(고등어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마광수(즐거운 사라),박완서(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영도(드래곤 라자)[1], 이우혁(퇴마록)[2] | ||||
| [[대한민국| 2000년대 ~ 2020년대 ]] 조창인(가시고기), 김훈(칼의 노래), 한강(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김영하(살인자의 기억법), 박상영(대도시의 사랑법), 장강명(표백), 정보라(저주토끼), 정유정(종의 기원, 7년의 밤), 김초엽(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3], 천선란(천 개의 파랑)[4], 손원평(아몬드) | ||||
| 동화 · 아동청소년문학 | ||||
| 산문 | ||||
| 세계의 문학사 둘러보기 동양문학( 한국문학(장르·고전·현대) | 중문학 | 일문학 | 인도문학 ) 서양문학( 희랍문학 | 라틴 문학 | 영문학 | 불문학 | 독문학 폴란드 문학 | 노문학 | 이문학 | 서문학 | 포문학 | SF 문학 ) | ||||
관련 문서: 한국 문학|향가|고려가요|시조|가사|고전소설|판소리|신소설|참여문학|순수문학|민중문학|장르문학|웹소설 | ||||
| }}}}}}}}}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white><tablebgcolor=#fff,#1f2023> | 이달의 문화인물 (1998-2005) |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1998년 | |||||
| 1월 신윤복 | 2월 안향 | 3월 이상화 | 4월 석주명 | 5월 이익 | 6월 송흥록 | |
| 7월 조철호 | 8월 윤봉춘 | 9월 한성준 | 10월 정태진 | 11월 최제우 | 12월 이순신 | |
| 1999년 | ||||||
| 1월 이중섭 | 2월 혜초 | 3월 유형원 | 4월 최한기 | 5월 김창숙 | 6월 권율 | |
| 7월 맹사성 | 8월 황현 | 9월 김시습 | 10월 최세진 | 11월 정부인 안동 장씨 | 12월 이승훈 | |
| 2000년 | ||||||
| 1월 남궁억 | 2월 나혜석 | 3월 김육 | 4월 서경덕 | 5월 진감국사(혜소) | 6월 하규일 | |
| 7월 정인보 | 8월 김좌진 | 9월 김수영 | 10월 류희 | 11월 김창하 | 12월 장승업 | |
| 2001년 | ||||||
| 1월 김부식 | 2월 최용신 | 3월 강항 | 4월 함석헌 | 5월 지눌 | 6월 이병기 | |
| 7월 이현보 | 8월 오세창 | 9월 허균 · 허난설헌 | 10월 설총 | 11월 의천 | 12월 송만갑 | |
| 2002년 | ||||||
| 1월 정약종 | 2월 김환기 | 3월 이상재 | 4월 박두성 | 5월 박수근 | 6월 조지훈 | |
| 7월 성삼문 | 8월 박효관 | 9월 김병연 | 10월 신숙주 | 11월 김승호 | 12월 손진태 | |
| 2003년 | ||||||
| 1월 안확 | 2월 양주동 | 3월 이동백 | 4월 양팽손 | 5월 정지용 | 6월 정몽주 | |
| 7월 김장생 | 8월 박세당 | 9월 유정 | 10월 월명 | 11월 이인성 | 12월 유길준 | |
| 2004년 | ||||||
| 1월 조희룡 | 2월 신흠 | 3월 이항로 | 4월 이경석 | 5월 의상 | 6월 백광홍 | |
| 7월 이첨 | 8월 김창조 | 9월 조헌 | 10월 최항 | 11월 장욱진 | 12월 박두진 | |
| 2005년 | ||||||
| 1월 정정열 | 2월 이예 | 3월 강경애 | 4월 신동엽 | 5월 임윤지당 | 6월 김종직 | |
| 7월 강정일당 | 8월 이규보 | 9월 나철 | 10월 이승휴 | 11월 효명세자 | 12월 최북 | |
| ※ 선정 당시 기관명은 문화부(1990~1993) → 문화체육부(1993~1998) → 문화관광부(1998~2005)였다. | ||||||
| 이달의 문화인물(1990-1997) | }}}}}}}}} | |||||
[1] 654년 ~ 660년 사이 출생 기록이 있다. 족보에는 655년 출생, 743년 사망으로 되어 있다.[2] 19세.[3] 1022년(현종 13) 1월 24일 추증.[4] 아명은 설서당(薛誓幢), 설신당(薛新幢).[5] 부왕은 태종 무열왕.[6] 아들을 가졌다는 데서 알 수 있듯 파계승이 되었다.[7] 이두가 표음문자가 아니고 한자를 빌려 써서 표기하는 방법이라서, 당시의 한국어 음가를 제대로 추정하기가 어려워서 그렇다.[8] 온양 방씨 집안에는 시조인 방지가 중국에서 건너와 신라에 귀화했고, 설총이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할 때 도움을 주었다는 전승이 있다. 유교 경전의 본고장이 중국임을 생각하면 그럴듯한 전승이다.[9] 골품을 배제한 순수 혈연으로 보면 신문왕과 설총은 사촌 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