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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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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 木維基、汝等徒亦 養良出去白臥乎 知識矣 木。
한글 표기: (나무위키, 너드레이 갓고아나가삷누온 디식ㅅ 나모)
현대어: 나무위키, 여러분이 가꾸어나가는 지식의 나무.
1. 개요2. 어형3. 역사4. 특징5. 예시6. 목록7. 관련 문헌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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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필지》(儒胥必知, 1870?) 이두 어휘 소개

1. 개요

이두()는 한글 창제 이전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고안, 사용되었던 문자 표기 체계로, 한자의 음훈을 활용하여 한국어를 표기한다. 삼국시대 때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최종 형태는 통일신라에 이르러 굳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2. 어형

이두()란 하급 관리들인 이서(吏胥) 계층이 쓰는 말이라는 뜻이다. 讀 대신 로 쓰기도 하고[1] 吏道, 吏吐, 吏書 등 다양한 표기가 등장한다.

넓은 의미의 이두는 구결, 향찰 등을 포함한 한국어의 한자 차자 표기법 전반을 이르지만, 좁은 의미의 이두는 한문한국어 어순대로 재조정한 후 조사나 어미와 같은 형식 형태소를 중간중간 삽입하는 방식의 한자 표기를 이른다.

좀 더 세분화하면 '이두'는 한국어 문법 요소를 표기하는 한자들을 가리키고, 이두가 사용된 문장은 '이두문'이라고 한다. 가령 아래 대명률직해의 예 本國乙背叛爲遣에서 한국어 문법 요소를 표현한 '乙', '爲遣'는 이두이고[2] '本國乙背叛爲遣' 전체는 이두문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 말음 첨기와 같은 이두의 방식을 사용해 만든 국자과 같은 글자를 '이두식 한자', '이두자'라고 부르곤 한다. 다만 베트남쯔놈과는 달리 한국의 이두는 이렇게 자체적으로 만든 글자가 주가 되지는 않는다. 대다수 이두는 한자문화권에서 두루 쓰이는 글자들로 이루어져 있다.[3]

한문이 원문인 저서를 이두로 번역하여 간행한 것을 '직해'()라고 한다.[4] 한글을 써서 번역한 것은 '언해'()라고 불렀던 것과 차이를 보인다.

단어의 구성이 유사한 이문(吏文)과는 다르다. 이문은 중국과 한국 사이를 오가는 사신들의 공문서 양식을 말한다.# 이 역시 관리들이 쓰는 문장 형식이라 ''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이다. 20세기 초 이두 초기 연구에서는 이문과 이두를 혼동한 몇몇 사례가 있어 유의해야 한다.[5]

3. 역사

흔히 설총이 만든 표기체계라고 한다. 이런 기록은 제왕운기나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등의 여러 고서적에서 나타나며, 최만리의 상소에서 드러나듯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두는 설총이 만들었다는 것이 조선시대에 이미 상식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근현대에 들어서 이런 방대한 차자 표기 체계를 한 개인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게 되었고, 경주 월성해자 출토 목간 등이 발견됨으로써 이두가 완성된 시기가 설총이 살았던 시기보다 앞선 최소 6세기 중엽으로 앞당겨졌다. 기존 기록과 목간의 정보를 절충하면, 설총은 이두의 창시자라기보다는 그동안 쓰이던 차자 표기법을 집대성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두를 가장 먼저 창제한 사람은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문자 체계가 그렇듯 서서히 자연발생했을 것이다.[6]

현존하는 이두에 대한 금석문 자료가 있는 기록은 5세기 초반(412년)에 만들어진 고구려 광개토왕비문이 최초다. 해당 기록에는 한문의 어순과 다른 일종의 변체한문(變體漢文)이 쓰여 한국어의 요소를 다분히 있다. 구체적으로 '지(之)'나 '상(上)' 같은 이두식 표현이 발견된다. 그러나 고구려나 백제의 이두는 자료의 한계인지 많이 발견되지 않고[7] 본격적인 이두는 통일신라 시기에야 확인된다. 흔히 '설총이 이두를 만들었다'라는 시기가 이 시기로, 설총은 이 시기의 이두를 종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공식적인 문서 행정에는 한문을 썼지만 6세기 중엽에 이미 신라인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은 경우) 자신들의 고대 한국어를 완벽한 이두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포항 냉수리 신라비, 울진 봉평리 신라비 등 신라비에서도 이두적 표현이 나온다.

앞서 언급했듯 이두는 하급 관리들이 주로 썼지만 민간에서도 쓰였다. 조선 초기에는 이두로 된 편지도 종종 나타난다(안승준 2016).[8][9] 고려 왕조를 거쳐서, 조선시대에서도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는 사용 빈도가 비교적 줄었으나 하류 관료층(아전, 향리)들 사이에선 계속 사용되었으며 위에서 보듯 한글로 독음이 부기된 이두 학습서도 여럿 출간되었다. <경제육전> 같은 법률서도 이두로 쓰이곤 했다. 공식적으로는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지만 비공식적으로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지방 관청, 가전문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반드시 이두를 알아야 한다.

4. 특징

1000년도 넘는 매우 오랜 기간 쓰였음에도 언어의 변화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보수적인 체계였다. 물론 조선 후기의 이두와 고려시대의 이두는 표현에서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의 이두는 동시대의 입말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고려 시절의 석독구결과 더 유사하다. 이는 역사 문단에서 소개한 대로 조선시대에 이두는 거의 공문서용 글말로만 쓰였으므로 언어 변화를 느리게 겪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형식적으로만 쓰는 글이다 보니 입말의 변화를 반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조선시대 하류 관료층에게도 이두문은 고려 시대의 언어습관이 많이 섞인 옛 말투였기에 따로 공부하거나 전수받아야만 유창하게 구사할 수가 있었다.

이렇듯 보수적 표기 때문에 학습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언어학적으로는 과거 한국어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풍부한 자료이다. 향찰은 신라시대의 향가 몇 수만이 남았을 뿐이고, 석독구결 역시 자료의 수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료의 수는 많기는 하나 문장이 대체로 정형화되었고 생략이 많다는 한계점은 존재한다.

한문과 마찬가지로 이두 역시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10] 다만 이두식 표현과 한자어의 한자 분포가 꽤 차이가 나기 때문에[11] (이두에 익숙해졌다는 가정 하에) 어절 구별은 어느 정도 되는 편이다. 대명률직해 근대 인쇄본처럼 이두식 표현에 윗줄을 그어 구별해둔 것도 있다. 오늘날에 사전에서 이두문 원문을 인용할 때에는 독해의 편의를 위해 대체로 현대 한국어의 띄어쓰기 기준에 맞춰 띄어쓰기를 해서 실어두는 편이다.[12] 종종 1행 2자 형식의 주석으로 이두 부분의 표기를 달리한 문헌들도 있다.[13][14]

이두/목록 문서의 독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독음이 매우 다양하다. 이두 독음도 어쨌거나 언어인 이상 음운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으나 문자 언어에 국한되어 쓰인 이두에서는 이를 표기에 거의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歧等如를 [가로여]라고 읽든, [갸로혀]라고 읽든 이두를 쓰는 사람으로서는 "번갈아"라는 의미만 통하면 읽는 방법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것이다. 구어를 반영했다면 표기가 후대 음을 따라가 표기와 음 사이의 일대일 대응에 가까워졌겠지만 이두에선 이러한 경향성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한글 표기 한국어와는 달리 어미의 생략이 자주 발견된다. 이두 문장의 상당수는 명령문이기에[15] 시제/상/양태 등 문법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16] 이에 따라 어근만으로 끝나는 문장이 많다(只爲 예문 참고). 아니면 [일]과 같은 의존명사를 덧붙여 명령을 표현했다.[17] 이두를 통해 당시 한국어의 온전한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5. 예시

명나라의 한문 법률인 《대명률》(大明律)을 우리나라 말 구조의 이두로 풀이해 둔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에서 그 예시를 살펴보자.[18]
《대명률》 원문: 背本國(배본국)
《대명률직해》 이두문: 本國 背叛爲遣(본국을 배반ᄒᆞ고)[훈음_참고]
대명률직해(1936년 교정본) 2. 십악(十惡) 3. 모반(謀叛),[20] 24쪽(pdf 오른쪽, 밑줄은 원문의 우측 줄)
《대명률》 원문은 한문 어순, 즉 '주어-서술어-목적어' 순으로 되어 있다. 이 경우엔 주어 생략에 서술어 배반할 배(背), 목적어 본국(本國).

반면에 《대명률직해》에서는 우선 한국어 어순인 '주어-목적어-서술어'에 따라 목적어 '본국(本國)'이 앞에 나오고 서술어 어근 '배반(背叛)'이 뒤에 나왔다.[21] 거기에 목적격 조사 '을(乙)'이 '본국' 뒤에 붙어 있고[22] 연결 어미 '-고'를 이용하여 접미사 '-ᄒᆞ다'를 활용한 형태인 '-ᄒᆞ고(爲遣)'가 '배반' 뒤에 붙어 있다.[* 遣의 용법은 오늘날 '-고'와 유사하다. 통상적으로 독음도 '-고'일 것으로 추측하나 이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다(황선엽 2002). 직접적으로 음이 오늘날의 '-고'와 유사한 것은 古(구결
(口))이다. 아울러 현대 한국어는 '-고'가 '-어/아'만큼이나 자주 쓰이지만 이렇게 용례가 늘어난 것은 비교적 근대의 일로, 중세 한국어의 '-고'는 출현 예가 오늘날에 비하자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23]

즉 이두는 실질 형태소는 음독하되 그 어순을 조정하였고, 여기에 음차 혹은 훈자로 된 형식 형태소를 삽입한 표기 방식이다. 또한 형식 형태소에 쓴 한자는 간략화하지 않고 가급적 원형대로 썼다.[24] 기미독립선언서의 문체에서 한글로 쓰인 부분을 전부 한자로 고친 문체를 생각하면 쉽다.

이두의 실제 사용례는 한국학자료포털의 이두용례사전을 참고하자.

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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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헌

8. 여담

일본어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존재했다. 만요가나라 하여 특정 한자의 음훈을 빌어 일본어를 표기하는 방식이었으며, 지금의 가나 문자(히라가나, 가타카나)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널리 이용되었다. 이두 식의 번역문과 구결 독법은 현대까지 이루어지는 일본의 한문훈독과도 방식이 유사하다.[25][26] 베트남어도 비슷한 방식으로 한자를 이용했다가 나중에 쯔놈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훈민정음 창제의 목적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법령문에서 쓰이던 이두를 대체하는 것이다. 정인지 서에서 옥사(獄事)에 관한 언급이 나오고 "설총의 이두가 있지만 쓰기 매우 불편하다"라고 묘사하여 직접적으로 이두를 대체하려는 뜻을 보이고 있다.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최만리 상소문에서는 반대로 당시의 이두가 그럭저럭 유용하게 쓰이고 있으며, 한문 학습에 도움이 되는 등 유용한 점을 어필하고 있다. 다만 한글은 널리 쓰이게 되긴 했지만 위 역사 문단에서 보듯이 법령문에서의 이두를 대체하지는 못했다.[27]

현대 대한민국 교육 과정에서는 국어 교과 시간에 '이런 게 있다' 정도로만 언급한다. 주로 최만리의 한글 창제 반대 상소문을 다루면서 당시에 한문의 번역에 쓰였던 이두가 대략적으로 어떤 것인지 설명이 이루어진다. 설총이 이두를 만들었단 이야기도 그 상소문에 나오기 때문에 잘 알려진 편이다. 구체적인 이두 표현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으며, 한글 전 한국어 표기의 한 예로 '다짐'을 '侤音'으로 적었음이 종종 이야기되곤 한다.

춘원 이광수가 쓴 소설 《마의태자》에서는 양길궁예에게 보내는 이두 편지가 지나가듯 소재로 등장한다. 정확히는 "高白隱聲華隱聞白矣(높삷은 성화은 듣삽대)", 즉 "높으신 성화는 익히 들었사오되"라는 문구가 이두로 되어 있다.


[1] 讀을 '두'로 읽는 다른 예로는 '구두점'(句讀點)이 있다.[2] 이렇게 나누는 경우 '背叛' 같은 부분은 중국에서도 사용하는 한자어이므로 이두에는 속하지 않는다.[3] 이는 형식적으로 한문과 유사하다는 점이 이두의 장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형식상 한문처럼 보이기에 한문 사용층으로부터 이질감을 적게 샀다.[4] 혹은 한문 서적에 한글로 음을 부기한 것(주음)을 직해라고 하기도 한다. "직해동자습"의 직해는 이 의미이다.[5] 오구라 신페이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에서도 이두의 자료 목록 중 실제로는 이두가 아니라 이문을 다룬 것이 잘못 올라간 듯한 부분이 발견된다.[6] 한글처럼 누군가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게 세계사적으로는 특이한 경우이다.[7] 백제 시기의 목간에서는 훈주음종식의 말음 첨기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통일신라 시기의 이두와 다른 점으로 종종 거론된다.[8] 안승준(2016). 15세기 이두편지 사례 연구 - 李蕃의 家內書簡을 중심으로 -. 古文書硏究, 48, 405-435.#[9] 한글 창제 이후에는 이두 편지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이두가 한글보다 훨씬 더 어려운 표기 체계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그야말로 유치원생도 터득할 수 있을 정도지만 이두는 방대한 한자를 익혀야 쓸 수 있다.[10] 사실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가독성 목적으로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가, 근대화 이후에 서양식 글쓰기에 영향을 받아 도입되었다. 오늘날에도 중국어, 일본어는 띄어쓰기를 거의 하지 않고 구절 분절은 쉼표로 할 때가 많다. 전근대 동아시아 문헌에서 나타나는 띄어쓰기는 대개 높임법에 의한 것(대두)일 때가 많다.[11] 가령 는 한문에서도 종종 쓰이는 한자이긴 하지만 이두문에서처럼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 위치도 한문의 乎는 문미에 나타나지만 이두문에서는 문장 중간에 나타난다.[12] 이는 전근대 한글 문헌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13] 논문 중에서도 이승재(1992)에서는 이두 표현은 약간 작은 글자를 써서 구별하고 있다.[14] 이승재(1992), 농서집요의 이두.[15] 법조 판결문은 말할 것 없고 양잠경험촬요 같은 농서 역시 관련인에게 지침을 명령하는 문장이 많다.[16] 일례로 영어 명령문도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매우 간결한 형식을 따른다.[17] 이 양상은 현대 한국어에서 종종 개조식이나 '-(으)ㄹ 것' 등으로 명령을 표현함과 유사하다. 덧붙여 개조식의 경우 일본어 문어 표기의 잔재라는 설도 있다.[18] 대명률직해는 이처럼 한문과 이두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어 이두를 처음 접할 때 용이하다. 20세기에 인쇄된 것은 이두 부분에 한자어 부분과 달리 윗줄이 쳐져 있어서 학습에 더욱 편리하다.[훈음_참고] 本: 근본 본 / 國: 나라 국 / 乙: 새(한자부수) 을 / 背: 등지다 배 / 叛: 배반하다 반 / 爲: 하다 위 / 遣: 보내다 견[20] 여담으로 인용 문헌의 해당 단락에는 1. 모반(謀反)이 별도로 존재해 현대에 일본어 기준으로 謀叛과 謀反을 구별하지 않는 것과 차이를 보인다(한국어 사전에선 일단 표제어는 나뉘어져있다). 1. 謀反은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음모를 꾸미는 것"(謨危社稷)이라고 되어있다.[21] 원문에서는 '배(背)'라고만 되어 있지만 이두문에는 '배반(背叛)'으로 되어 있다. 이두문에서는 때때로 어휘 자체도 당시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조정되었다.[22] '乙(새 을)'의 음인 '을'을 빌렸으되, 실제 의미인 '새'와 상관없으므로 음가자.[23] 황선엽. (2002). 향가에 나타나는 ‘遣’과 ‘古’에 대하여. 國語學, 39, 3-25. #[24] 이를 간략화하면 구결이 된다. 단, 이두에도 약자가 전혀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고 等의 약자 은 이두에서도 자주 나타난다.[25] 다만 방식은 유사하지만 사회에서의 권위는 크게 달랐다. 이두는 아래에서 다루듯 '아전들이나 쓰는 하급 문장'이었지만, 일본 한문훈독은 상류층이 인정한 정격 독법이었다. 일각에선 이 차이가 근대의 한자어 활용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송민호 2016).[26] 송민호(2016), 시각화된 음성적 전통과 언문일치라는 물음- "만세보"의 부속 국문 표기를 중심으로. 인문논총, 73(1), 135-164.#[27] 그런데 아래에서 보듯 이두에 대한 사람들의 인지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한문을 대체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장기적으로는 거기까지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세종대왕과 최만리의 언쟁에서는 그러한 의도가 나타나지 않는다. 중화 문명이 압도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던 15세기에 한문을 쓰지 않겠다는 것은 지식 소통의 창구를 버리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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