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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09:45:40

기미독립선언서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독립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 2.8 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

<colcolor=#fff> 기미독립선언서
己未獨立宣言書
파일:external/blog.joinsmsn.com/4f4dbb8e732c9.jpg
<colbgcolor=#0047a0> 시기 1919년(3.1 운동)
별칭 3.1 독립선언서
발표자 민족대표 33인
1. 개요2. 내용3. 문학적 특성4. 원문
4.1. 현대어 풀이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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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대한민국(조선)의 독립을 세계 만방에 알리기 위해 작성된 장문의 선언서. 3.1독립선언서(三一獨立宣言書)라고도 한다.

민족대표 33인의 공동명의로 발표되었으며, 초안을 쓴 사람은 최남선,[1] 대원칙을 세운 사람은 손병희라고 한다.[2] 손병희가 독립선언서를 고쳐 쓰려고 했으나 시일이 얼마 안 남아 대원칙만 썼다고 한다. 처음에는 여러 단체에서 서로 자기 단체의 이름을 먼저 올리겠다고 격렬히 싸우자, 기독교계통으로 참여한 이승훈의 훈계로 결국 연장자이자 주최자인 손병희가 대표로 첫 번째로 실렸다. 그리고 만해 한용운의 주장으로 뒷부분에 '공약 3장'이 추가되었다.

당초에는 대중이 모일 탑골공원에서 발표하려고 했으나,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태화관(泰和館)이라고 하는 요릿집[3]으로 장소를 바꿔 조용히 선언식을 진행했다. 또한 민족대표 33인은 선언문을 낭독한 즉시 경찰에 자수하고 순순히 연행되었다. 그 덕분에 탑골공원에 모여 있었던 사람들은 머뭇거리다가, 민족대표 33인의 선언식과는 별도로 선언식을 진행하고 만세운동을 개시했다.

민족대표 33인은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손병희 등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도 있고, 이후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사한 사람도 많다. 당시 옥고를 치르는 것과 현재 교도소 생활하는 것은 처우가 천지 차이이기에 옥사하는 경우가 많았다.[4]

이 기미독립선언서는 딜쿠샤의 주인이자 당시 AP통신 소속 기자였던 앨버트 테일러가 해외에 처음으로 알렸다. 이 부분의 자세한 이야기는 딜쿠샤 문서를 참조할것.

2. 내용

선언서의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다른 선언문에 비해 기미독립선언서는 상당히 온건하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무오독립선언서는 물론, 신채호조선혁명선언과 비교하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선언문에는 무력을 이용해 투쟁하자는 내용은 눈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다. 오로지 '정의라는 이름의 군대'와 '인도주의라는 이름의 무기'에 힘입어 독립을 주장할 뿐이며 '우리는 일본의 배신을 죄주거나 무도함을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난 잘못을 꾸짖을 겨를이 없다'는 등의 내용도 들어 있다. 일제 통치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부분도 일제에 합병되어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었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글귀로 일관된다.

기미독립선언서는 독립선언이라기보다는 일제 당국을 상대로 "지금 세계 추세가 독립이니까, 우리 조선도 독립시켜 달라. 결코 당신네 일본과 싸우거나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식의 청원서에 가깝다. 이렇게 온건한 독립선언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국제사회와 관련이 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천명한 민족자결주의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의 해체로 자주독립 의지만 보이면 독립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람들이 바라던 것과 같은 식민지 독립은 일어나지 않았다.

3.1운동 당시 지방에 뿌려진 독립선언서들 중에는 기미독립선언서에 비해 훨씬 강경한 것들도 있다. 가령 3.1운동 당시 충무에 뿌려진 일명 '충무 독립 선언서'를 보면 아래의 내용이 언급된다.
패자, 약자, 떠돌이, 고향을 잃어버린 자, 조국에서 쫓겨난 자, 국경 없는 유랑군이 우리의 별명이요, 오대양 육대주 사람 사는 거리 거리 가는 곳마다 발구르는 소리요, 피눈물이었다. 엄청난 형벌을 받아야만 하는 죄가 나라 없는 죄요, 뼈저린 설움이 나라 잃는 설움이어라. 벽옥같은 조국의 하늘, 기름진 이 강산을 두고 갈 곳이 으드메뇨? 제 어깨로 제 몸뚱이를 지지는 못할지니 형제여 금수로 살려하는가? 나라 없는 개가 되랴? 이 피맺힌 목청으로 조국의 서울에서 함성이 솟았다. 삼천 리는 전민족의 함성과 발등마다 핏물이 흐르는 세기의 행진곡이 시작되었다. 동포여, 대도의 거리로 나아오라! 봉사여, 귀먹이여, 입 있는 벙어리여, 굶주린 내 동지여! 삼천 리 내 땅 내 거리, 내 형제, 내 누이 저통히 죽은 혼들이여 모두 나오려무나!
이런 식의 직설적이고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는 내용들이 기미독립선언서의 난해하고 온건한 문체보다 민중들의 호응을 얻기에 더 적절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인 김산(1905~1938)은 기미독립선언서를 맹렬하게 비판했다. 기미독립선언서와 3.1운동의 실패를 본 김산은 “조선은 어리석고 늙은 할머니처럼 평화와 자유를 구걸했으나, (세계 열강들로부터) 배신당하고 말았다. 조선이 그렇게 외쳐댄 평화는 3.1운동이 피를 쏟으며 실패한 다음에야 왔다. 차라리 자유를 얻기 위해 모두가 싸우는 러시아가 조선보다 더 낫다!”라고 환멸감을 털어 놓기도 했다.[5] NLPDR 성향 사학자들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를 지적한다.

더불어 민중의 관념과 동떨어진 선언 내용에 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식민지 노예로 전락한 민족의 입에서 무슨 한가하게 세계 문화 기여 운운이 나오느냐? 이건 마치 지하철역의 노숙자가 세계 평화를 지키자고 외치는 한심한 꼴이다."라는 식이다.[6][7]

기미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과 편집자 이광수는 3.1 운동의 실패를 보면서 좌절하여 조선 독립의 희망을 버리고 식민체제에 협력했다. 최남선 본인은 1940년 중국 동북 지역(만주)을 방문해서 조선인 독립군들한테 "조선 독립은 불가능하니, 일제에 항복하라."는 글을 직접 썼고, 이광수는 일제의 침략적 제국주의에 열렬히 찬성하면서 조선인 청년들한테 일본군에 자원입대하라는 글을 연이어 썼다. 최남선 본인이 기미독립선언서에서 말한 "위력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다."라는 내용을 그 스스로 부정한 것이었다.

3. 문학적 특성

문장력은 깔끔하고 수려한데 현대에 비해 한자어 및 한문투 표현이 상당히 많이 사용됐다. 예를 들어 "이로써"는 "此로써", "얼마이뇨"는 "幾何ㅣ뇨"라고 하는 등 실질형태소는 거의 다 한자어로 표현했고, 恒久如一(항구여일)[8], 壓縮銷殘(압축소잔)[9], 土昧人遇(토매인우)[10] 등 사자성어나 오늘날에 잘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무더기로 나온다. 한문에 익숙했을 당대 지식인에게는 그리 어려운 문체가 아니었겠지만, 문맹률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당시에는 다수 민중에게는 이해하기 훨씬 까다로웠을 것이다.[11] 오늘날에도 그다지 읽기 쉬운 문장은 아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에게는 온건함과 더불어 민중에게 어필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4. 원문

宣言書
吾等은玆에我朝鮮[12]의獨立國임과朝鮮人의自主民임을宣言하노라此로써世界萬邦에告하야人類平等의大義를克明하며此로써子孫萬代에誥하야民族自存의正權을永有케하노라半萬年歷史의權威를仗하야此를宣言함이며二千萬民衆의誠忠을合하야此를佈明함이며民族의恒久如一한自由發展을爲하야此를主張함이며人類的良心의發露에基因한世界改造의大機運에順應幷進하기爲하야此를提起함이니是ㅣ天의明命이며時代의大勢ㅣ며全人類共存同生權의正當한發動이라天下何物이던지此를沮止抑制치못할지니라
舊時代의遺物인侵略主義强權主義의犧牲을作하야有史以來累千年에처음으로異民族箝制의痛苦를嘗한지今에十年을過한지라我生存權의剝喪됨이무릇幾何ㅣ며心靈上發展의障礙됨이무릇幾何ㅣ며民族的尊榮의毁損됨이무릇幾何ㅣ며新銳와獨創으로써世界文化의大潮流에寄與補裨할機緣을遺失함이무릇幾何ㅣ뇨
噫라舊來의抑鬱을宣暢하려하면時下의苦痛을擺脫하려하면將來의脅威를芟除하려하면民族的良心과國家的廉義의壓縮銷殘을興奮伸張하려하면各個人格의正當한發達을遂하려하면可憐한子弟에게苦恥的財産을遺與치안이하려하면子子孫孫의永久完全한慶福을導迎하려하면最大急務가民族的獨立을確實케함이니二千萬各個가人마다方寸의刃을懷하고人類通性과時代良心이正義의軍과人道의干戈로써護援하는今日吾人은進하야取하매何强을挫치못하랴退하야作하매何志를展치못하랴
丙子修好條規以來時時種種의金石盟約을食하얏다하야日本의無信을罪하려안이하노라學者는講壇에서政治家는實際에서我祖宗世業을植民地視하고我文化民族을土昧人遇하야한갓征服者의快를貪할ᄲᅮᆫ이오我의久遠한社會基礎와卓犖한民族心理를無視한다하야日本의少義함을責하려안이하노라自己를策勵하기에急한吾人은他의怨尤를暇치못하노라現在를綢繆하기에急한吾人은宿昔의懲辦을暇치못하노라今日吾人의所任은다만自己의建設이有할ᄲᅮᆫ이오決코他의破壞에在치안이하도다嚴肅한良心의命令으로써自家의新運命을開拓함이오決코舊怨과一時的感情으로써他를嫉逐排斥함이안이로다舊思想舊勢力에覊縻된日本爲政家의功名的犧牲이된不自然又不合理한錯誤狀態를改善匡正하야自然又合理한正經大原으로歸還케함이로다當初에民族的要求로서出치안이한兩國倂合의結果가畢竟姑息的威壓과差別的不平과統計數字上虛飾의下에서利害相反한兩民族間에永遠히和同할수업는怨溝를去益深造하는今來實績을觀하라勇明果敢으로써舊誤를廓正하고眞正한理解와同情에基本한友好的新局面을打開함이彼此間遠禍召福하는捷徑임을明知할것안인가ᄯᅩ二千萬含憤蓄怨의民을威力으로써拘束함은다만東洋의永久한平和를保障하는所以가안일ᄲᅮᆫ안이라此로因하야東洋安危의主軸인四億萬支那人의日本에對한危懼와猜疑를갈스록濃厚케하야그結果로東洋全局이共倒同兦의悲運을招致할것이明하니今日吾人의朝鮮獨立은朝鮮人으로하야금正當한生榮을遂케하는同時에日本으로하야금邪路로서出하야東洋支持者인重責을全케하는것이며支那로하야금夢寐에도免하지못하는不安恐怖로서脫出케하는것이며ᄯᅩ東洋平和로重要한一部를삼는世界平和人類幸福에必要한階段이되게하는것이라이엇지區區한感情上問題ㅣ리오
아아新天地가眼前에展開되도다威力의時代가去하고道義의時代가來하도다過去全世紀에鍊磨長養된人道的精神이바야흐로新文明의曙光을人類의歷史에投射하기始하도다新春이世界에來하야萬物의回穌를催促하는도다凍氷寒雪에呼吸을閉蟄한것이彼一時의勢ㅣ라하면和風暖陽에氣脈을振舒함은此一時의勢ㅣ니天地의復運에際하고世界의變潮를乘한吾人은아모躕躇할것업스며아모忌憚할것업도다我의固有한自由權을護全하야生旺의樂을飽享할것이며我의自足한獨創力을發揮하야春滿한大界에民族的精華를結紐할지로다
吾等이玆에奮起하도다良心이我와同存하며眞理가我와幷進하는도다男女老少업시陰鬱한古巢로서活潑히起來하야萬彙羣象으로더부러欣快한復活을成遂하게되도다千百世祖靈이吾等을陰佑하며全世界氣運이吾等을外護하나니着手가곳成功이라다만前頭의光明으로驀進할ᄯᅡ름인뎌
公約三章
一. 今日吾人의此擧는正義,人道,生存,尊榮을爲하는民族的要求ㅣ니오즉自由的精神을發揮할것이오決코排他的感情으로逸走하지말라
一. 最後의一人ᄭᅡ지最後의一刻ᄭᅡ지民族의正當한意思를快히發表하라
一. 一切의行動은가장秩序를尊重하야吾人의主張과態度로하야금어대ᄭᅡ지던지光明正大하게하라

朝鮮建國四千二百五十二年三月一日 朝鮮民族代表

孫秉熙 吉善宙 李弼柱 白龍城 金完圭 金秉祚 金昌俊 權東鎭 權秉悳 羅龍煥
羅仁協 梁甸伯 梁漢默 劉如大 李甲成 李明龍 李昇薰 李鍾勳 李鍾一 林禮煥
朴準承 朴熙道 朴東完 申洪植 申錫九 吳世昌 吳華英 鄭春洙 崔聖模 崔 麟
韓龍雲 洪秉箕 洪基兆
<띄어쓰기 및 한글화 적용문>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 만대에 고하야 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장(仗)하야 차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誠忠)을 합하야 차를 포명(布明)함이며 민족의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자유 발전을 위하야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發露)에 기인한 세계 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順應幷進)하기 위하야 차를 제기함이니 시(是)이 천(天)의 명명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 공존 동생권의 정당한 발동이라 천하 하물(何物)이던지 차를 저지 억제치 못할 지니라.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작(作)하야 유사 이래 누(累) 천년에 처음으로 이민족 겸제(箝制)의 통고(痛苦)를 상(嘗)한지 금(今)에 십년을 과(過)한지라 아(我) 생존권의 박상(剝喪)됨이 무릇 기하(幾何)이며 심령상 발전의 장애됨이 무릇 기하이며 민족적 존영의 훼손됨이 무릇 기하이며 신예와 독창으로써 세계 문화의 대조류에 기여 보비(補裨)할 기연(奇緣)을 유실(遺失)함이 무릇 기하이뇨.
희(噫)라! 구래(舊來)의 억울을 선창하려 하면, 시하(時下)의 고통을 파탈(擺脫)하려 하면, 장래의 협위(脅威)를 삼제(芟除)하려 하면, 민족적 양심과 국가적 염의(廉義)의 압축소잔(壓縮銷殘)을 흥분 신장하려 하면, 각개 인격의 정당한 발달을 수(遂)하려 하면, 가련한 자제에게 고치적 재산을 유여(遺與)치 아니하려 하면, 자자손손의 영구 완전한 경복(慶福)을 도영(導迎)하려 하면, 최대 급무가 민족적 독립을 확실케 함이니 이천만 각개가 인(人)마다 방촌(方寸)의 인(刃)을 회(懷)하고 인류 통성과 시대 양심이 정의의 군(軍)과 인도의 간과(干戈)로써 호원(護援)하는 금일 오인(吾人)은 진(進)하야 취(取)하매 하강(何强)을 좌(挫)치 못하랴, 퇴(退)하야 작(作)하매 하지(何志)를 전(展)치 못하랴.
병자수호조규(丙子修好條規) 이래 시시종종(時時種種)의 금석맹약(金石盟約)을 식(食)하얏다 하야 일본의 무신(無信)을 죄(罪)하려 아니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아(我) 조종세업(祖宗世業)을 식민지시하고, 아(我) 문화 민족을 토매인우(土昧人遇)하야, 한낱 정복자의 쾌(快)를 탐할 뿐이오, 아(我)의 구원(久遠)한 사회 기초와 탁락(卓犖)한 민족 심리를 무시한다 하야 일본의 소의함을 책하려 아니하노라.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吾人)은 타(他)의 원우(怨尤)를 가(暇)치 못하노라. 현재를 주무하기에 급한 오인(吾人)은 숙석(宿昔)의 징변을 가(暇)치 못하노라. 금일 오인(吾人)의 소임은 다만 자기의 건설이 유(有)할 뿐이오 결코 타(他)의 파괴에 재(在)치 아니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함이오 결코 구원(舊怨)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타(他)를 질축배척(嫉逐排斥)함이 아니로다. 구사상, 구세력에 기미(覉縻)된 일본 위정가의 공명적 희생이 된 부자연 우(又) 불합리한 착오 상태를 개선광정(改善匡正)하야, 자연 우 합리한 정경대원(政經大原)으로 귀환케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서 출(出)치 아니한 양국 병합의 결과가 필경 고식적(姑息的) 위압과 차별적 불평(不平)과 통계 숫자상 허식의 하에서 이해 상반한 양 민족간에 영원히 화동할 수 없는 원구(怨溝)를 거익심조(去益深造)하는 금래 실적을 관(觀)하라. 용명과감(勇明果敢)으로써 구오를 확정(廓正)하고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기본한 우호적 신국면을 타개함이 피차간 원화소복(遠禍召福)하는 첩경임을 명지(明知)할 것 아닌가. 또, 이천만 함분축원(含憤蓄怨)의 민(民)을 위력으로써 구속함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소이(所以)가 아닐 뿐 아니라, 차로 인하야 동양 안위의 주축인 사억만 지나인의 일본에 대한 위구(危懼)와 시의(猜疑)를 갈수록 농후케 하야 그 결과로 동양 전국이 공도동망(共倒同亡)의 비운을 초치할 것이 명(明)하니, 금일 오인(吾人)의 조선 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영을 수(遂)케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사로(邪路)로서 출(出)하야 동양 지지자(支持者)인 중책을 전(全)케 하는 것이며, 지나로 하여금 몽매(夢寐)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 공포로서 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 문제이리오.
아아, 신천지가 안전(眼前)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來)하도다. 과거 전세기에 연마장양(鍊磨長養)된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始)하도다. 신춘이 세계에 래(來)하야 만물의 회소(回蘇)를 최촉(催促)하는도다. 동빙한설(凍氷寒雪)에 호흡을 폐칩(閉蟄)한 것이 피일시(彼一時)의 세(勢)이라 하면 화풍난양(和風暖陽)에 기맥(氣脈)을 진서(振舒함은 차일시(此一時)의 세(勢)이니, 천지의 부운에 제(際)하고 세계의 변조를 승(乘)한 오인(吾人)은 아무 주저할 것 없으며 아무 기탄(忌憚)할 것 없도다. 아(我)의 고유한 자유권을 호전(護全)하야 생왕(生旺)의 낙(樂)을 포향(飽享)할 것이며, 아(我)의 자족한 독창력을 발휘하야 춘만한 대계(大界)에 민족적 정화(精華)를 결뉴(結紐)할 지로다.
오등(吾等)이 자(玆)에 분기(奮起)하도다. 양심이 아(我)와 동존하며 진리가 아와 병진하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울한 고소(古巢)로서 활발히 기래(起來)하야 만휘군상(萬彙羣象)으로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성수하게 되어도다. 천백세 조령(祖靈)이 오등(吾等)을 음우(陰佑)하며 전세계 기운이 오등을 외호하나니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전두(前頭)의 광명으로 맥진(驀進)할 따름인뎌.

 공약 삼장
하나、금일 오인(吾人) 의 차거(此擧)는 정의、인도、생존、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하나、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一刻)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하나、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야 오인(吾人)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던지 광명정대(光明正大)하게 하라.

조선 건국 4252년 3월 1일 조선 민족 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4.1. 현대어 풀이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5천 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가 있은 지 몇천 년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압제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 지 이미 10년이 지났으니, 그 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라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모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딸 아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 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의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의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 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를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닦아 물려 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 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에 빠진 이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로운,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던 두 나라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필경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과단성으로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타개하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인 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2천만 민족을 위력으로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서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굴대인 4억만 지나 민족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워함과 시새움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13] 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지나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요?

아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도다. 위력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한 세기 내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 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새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구나.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 하게 한 것이 저 지난 한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천지의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 온 권리를 지켜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 문화를 맺게 할 것이로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 내게 되어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공약 3장
1.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
1.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1.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단기 4252년 3월 1일 조선민족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5. 기타



[1] 이 사람은 민족대표 33인이 아니고 나중에는 친일파로 변절한다. 최남선이 쓴 최초 원문을 위창 오세창 선생이 보고는 요즘 젊은 것들은 글도 제대로 못쓴다고(한문 실력이 형편없다는 뜻) 야단 맞았다는 일화가 있다.[2] 그런데 정작 손병희 본인은 경찰에 연행되어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나는 한일합병에 대하여 별로 찬성이라든가 불찬성도 하지 않았다."라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 과연 조선 독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에 있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출처: 손병희에 대한 경성지법 조서, 4월 10일자.[3] 당대 가장 유명한 기생집 명월관의 분점. 자세한 것은 요릿집 문서의 태화관 부분 참고.[4] 일제시대 수감자의 처우는 현대와 비교하면 열악했고, 일종의 반체제 사범인 독립운동가로서 잡혀간 이들에 대한 처우는 더 열악했다. 독립운동으로 잡혀간 이들의 끼니는 겨와 모래가 잔뜩 섞인 가축여물같은 밥에 소금국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식민지 당국이 정한 수감자의 등급에 따라 조립식 그릇의 받침을 높이는 식으로 밥의 양을 더욱 줄여 배급했다. 일제는 냉난방은 고사하고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을 모두 수감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또한 다른 주도자들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수감자들을 고문했다.[5] 출처: 한국 근대사 산책 6권: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6] 그런데, 이는 노숙자와 국가라는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유이고 비판이다. 예를 들면 캄보디아나 라오스, 혹은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 같은 극빈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조차도, 국제사회에서 자국에 대한 발언을 할 때는 자국의 우수함을 이야기하지만 어느 나라도 그것을 한심하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기미 독립 선언문은 무슨 노숙자의 취중진담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국가의 병합이 잘못된 것이라는 내용을 발표하는 글인데, 자국의 우수함을 이야기하여 일제의 지배가 부당함을 설파해야지, 자국이 한심하다고 이야기하면 세계 각국은 오히려 일제의 지배가 합당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례로 만일 에티오피아가 "유구한 전통을 가진 우리 에티오피아가 세계 평화와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기아로 인해 상실되었습니다. 부디 원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좋은 반응을 받을지 아니면 최빈국 따위가 무슨 평화와 문화를 논하냐는 비난을 받을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7] 당장 1981년, 당시 일본보다 가난했던 한국이 88올림픽 유치를 위해 한국의 우수함을 이야기하고 서울의 올림픽 개최가 세계평화와 문화에 기여할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국제 사회에서 한심하게 받아들여졌는지 아니면 진지한 검토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만일 당시에 한국이 우리는 일본보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면 절대로 올림픽을 유치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미독립선언서는 전투의욕 고취가 주목적이 아니라, 조선의 백성들은 물론, 세계열강들에게 조선의 식민지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한 글이기도 하여 영문본이 따로 존재하는 선언서이다.[8] 오래도록 변함이 없음[9] 눌리어 쪼그라들고, 힘없이 사그라짐[10] 미개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대우함[11] 1920년대 조선의 문맹률은 전체 인구의 무려 80%에 달했으며, 1945년 광복 직후 미군정이 시행한 조사에서도 문맹률(한국어와 일본어 중 어느것도 읽고 쓸 줄 모르는 비율)이 78%나 되는 등 일제강점기 때의 문맹률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전체 조선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다 읽고 그 내용과 뜻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이승만 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한글 보급과 의무 교육을 도입하여 문맹률을 낮추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 문맹률은 1959년 22%까지 떨어졌다.[12] 보성사판 원문에는 선조(鮮朝)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회[13] 이 부분을 두고 최남선이 당시 시대적 정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왜냐하면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당시, 중국은 여러 개의 군벌들이 제각기 땅을 차지하고 서로 치열한 내전을 벌이며 괴거에 비해 동아시아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떨어지는 중이었던 중국이 동아시아 안위의 주축이라거나 일본을 경계하여 일본을 망하게 한다는 기미독립선언서의 내용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졌기 때문. 실제로 일본을 패망시킨 것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었다. 이러한 서술을 두고 최남선 본인의 정신 세계가 중국을 숭상하는 모화사대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의견들도 있다. 다만 중국이 그렇게 돌아서면 동아시아의 화합과 평화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얼추 맞는다.[14] 현 종로구 수송공원 자리. 보성고고려대의 설립자인 이용익 선생이 세운 인쇄소이다.[15] 2013년 3월 1일, 연합뉴스, 서울 탑골공원 '3·1독립선언서' 영문번역 엉망[16] 2013년 3월 1일, 경향신문, '오역' 논란 제기된 탑골 독립선언서 영문본, 3·1 동참 미 교포가 쓴 것[17] 2019년 KBS 1TV에서 방영된 3.1절 특집 드라마.[18] 김원웅 당시 광복회장과 모델 한현민이 낭독. 이 중 한현민은 다문화가정 대표 자격으로 초청되었다.[19] 영화 기생충의 번역을 담당했던 번역가 달시 파켓이 낭독했다.[20] 세종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인 호사카 유지가 낭독했다.[21] 중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조계화 청주청원경찰서 경정이 낭독했다.[22]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후손인 최일리야 씨가 낭독했다.[23] 이현화 수어통역사가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