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적
東文選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역대 시문선집으로, 총 세 종류가 존재하고 있다.
1.1. 서거정의 동문선
1.1.1. 개요
동국통감, 동인시화, 필원잡기, 태평한화골계전, 오행총괄, 사가집, 경국대전 서문 등을 편찬한 서거정이 성종 9년(1478)에 성종의 명을 받아 우리나라 역대 인물들의 시문들과 산문들을 모아 편찬한 국가 시문집. 총 133권 45책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었다.김인문, 설총, 최치원, 김부식, 이규보 등 신라시대의 인물들부터 시작하여 조선 초기의 위인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대 500인의 작품 총 4302편을 수록했다.
동문선의 주요 특징은 작품을 선정할 때 그 내용이 편찬자의 관점, 즉 조선시대 유학자 기준으로 보았을 때 문제점이 있어도 딱히 검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 유학자가 보면 배은망덕한 간신인 최충헌 부자를 미화하고 찬양한 당대의 시문이나,성종 당대까지만 해도 단종복위운동으로 역적 취급이었던 성삼문의 조선 태조 찬양문, 숭유억불적 사상에 크게 문제가 되는 원효(元曉)의 불서 서문 등 기타 승려 29인의 작품 82편 등이 동문선에는 그대로 수록되었다.[1] 또한 성종 때까지도 완전하게 신원되지 못한 정도전의 작품도 실려 있다.
구성은 크게 권1∼3까지가 사(辭)와 부(賦), 권4와 5는 오언고시, 권6에서 8은 칠언고시, 권9에서 10은 오언율시, 권11은 오언배율, 권12에서 17은 칠언율시, 권18은 칠언배율, 권19에서 22는 오언, 칠언, 육언절구, 권23에서 30은 조칙(詔勅)과 교서(敎書), 제고(制誥), 책문(冊文), 비답(批答), 권31에서 45는 표전과 비답, 권46에서 48은 계(啓)와 장(狀), 권49에서 51은 노포(露布), 격서(檄書), 잠(箴), 명(銘), 송(頌), 찬(贊)이다.
이후 권52에서 56은 주의(奏議)와 차자(箚子), 기타 잡문, 권57부터 63까지는 서독(書牘), 권64부터 95까지는 기(記)와 서(序), 권96에서 98까지는 설(說), 권99는 논(論), 권100과 101은 전(傳), 권102와 103은 발(跋), 권104는 치어(致語), 권105는 변(辯), 대(對), 지(志), 원(原), 권106은 첩(牒)과 의(議), 권107은 잡저, 권108은 책제(策題)와 상량문, 권109에서 113까지는 제문과 축문, 소문(疏文), 권114는 도량문(道場文)과 재사(齋詞), 권115는 청사(靑詞), 권116부터 121까지는 애사(哀詞), 뇌(誄), 행장, 비명(碑銘), 권122에서 130까지는 묘지(墓誌)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한국 역대 위인들의 방대한 주요 작품들을 최대한 원형을 보존한 모습으로 현재까지 물려주었다는 점에서 당연히 매우 가치가 높고 소중한 문화재로 평가받는다. 예컨대 《삼국사기》의 표문인 진삼국사기표의 내용도 오직 동문선에만 전해진다. 서거정이 동문선에 이 표문을 싣지 않았다면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역사서인 《삼국사기》는 표문조차 전해지지 않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03년에 열린 도전 골든벨 울산 무룡고등학교 편에서 골든벨 문제로 출제되었다.
1.1.2. 외부 링크
1.2. 신용개, 김전, 남곤의 속동문선
1.2.1. 개요
조선 중종 13년(1518)에 신용개(申用漑, 1463 ~ 1519), 김전(金詮, 1458 ~ 1523), 남곤(南袞, 1471 ~ 1527) 등이 서거정이 지은 동문선의 뒤를 잇는다는 취지에서 편찬한 국가 시문집. 총 23권 11책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성종대부터 중종 연간까지의 중요 문학 작품들을 분류, 수록한 것으로 문체 종류는 37종, 작품 수는 1281편이다.
서거정의 동문선과 구분되는 특징은 속동문선이 편찬되던 당시는 사림 계열의 진출이 있던 시기로, 내용면에서 기존 동문선이 신라, 고구려 때의 불교와 관련된 문헌이 풍부하게 실려 있었던 것에 반해 완전히 유교문화 중심 체제의 작품만을 수록한 것이 주요 특징이다. 또한 기존 동문선에는 큰 문제 없이 실려 있던 중국에 보내는 표문(表文)들이 속동문선에서는 모두 제외되었데, 이는 사림 진출 초기 이들이 가지고 있던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편찬의식을 살펴볼 수 있음과 동시에 속동문선은 기존 동문선과 달리 상당한 취사선택과 검열이 있었음도 알 수 있다.
1.2.2. 외부 링크
1.3. 송상기의 신찬동문선
1.3.1. 개요
조선 숙종 39년(1713)에 송상기(宋相琦, 1657 ~ 1723) 등이 동문선, 속동문선의 뒤를 이어 편찬한 국가 시문집. 총 35권 15책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당시 중국 청나라에서 조선에 고문연감(古文淵鑑)[2], 패문운부(佩文韻府)[3] 등 300여 권의 주요 중국 책들을 선물로 보내면서 양국의 우애로서 조선의 작품들 또한 보내달라 청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당시 조선 왕실에서 북경에 보내기 위해 편찬한 시문집이다.
당시 국내에 반청의식이 매우 강하여 대부분의 조선 작품들이 혐중사상과 반청사상을 강하게 내포했기 때문에 청나라의 심기에 거슬리지 않는 문장들을 뽑느라 크게 고생했다는 일화가 있다.
청나라의 요구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청나라에 보따리 싸 보낸 후 우리나라에서는 신경 끄고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때문에 중국에서의 유명세와는 달리 정작 국내에서는 언급이 거의 없고 알려지지도 않았던 책이다.
1.3.2. 외부 링크
2. 출판사
도서출판 동문선 | |
대표자 | 신성대 |
업종명 | 잡지 및 정기간행물 발행업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40 |
외부링크 | 홈페이지 / 공식 블로그 |
1984년 신성대 대표가 설립한 출판사.[4] 위 서거정의 동문선과는 관계가 없는 듯 관계가 있다. (후술된 작명 관련 서술 참조)
2.1. 특징
2.1.1. 작명
처음 신 대표는 '글을 가려 뽑는다.’는 의미에서 출판사의 이름을 ‘문선(文選)’이라고 지을 생각이었는데, 중국에 같은 제목의 책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동(東)’자를 하나 덧붙여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라며 소개하자 많이 들어본 출판사라며 반겼다고 한다. '신생출판사인데 어떻게 들어 봤다는거지?'라며 궁금해한 대표는 나중에서야 위의 동문선이 존재한다는걸 알게 되었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름에 걸맞은 출판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였다고 한다.#[5]2.1.2. 인문서
출판사의 대표적인 시리즈 작품으론 문예신서와 현대신서 시리즈들이 있다. 위 결심의 산물로 출간하고 있는 시리즈로 인문학도, 철학과생이라면 몇번 책장을 뒤적여 봤을 법한 책들을 내고 있다. 롤랑 바르트,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등 프랑스 현대철학서적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대한민국 출판 실정에서 돈이 안되는 인문서를 다량 내기 때문에 고마운 출판사라는 평도 있고, 반대로는 막 저작권법이 바뀐 시기에 저작권 계약을 독점해서 이득을 본 것에 불과하다는 평도 있다. 돈이 안 된다고 하지만, 해당 이론가들의 핵심 저서이기 때문에 주요 도서관에는 반드시 비치되어야 하는 책들[6]이었고, 이 경우 저작권 계약+번역료+출판사 내부 비용을 제해도 상당히 남는 장사가 됐던 것. 애초에 연구자들 입장에서도 동문선이 한국 판권 계약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약해서 냈던 경우가 허다하다는 의견도 있다.
2.1.3. 번역
연구자들이 번역한 것을 특별한 교정교열 없이 그대로 낸 수준이기 때문에[7] 번역의 질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외국어 어순을 차례로 훑어가듯 그대로 번역을 하는 경우가 많고 해당 저자들 또한 정확한 설명을 위해 복잡한 문장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비문에 가까운 번역 문장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특유의 문장이 동문서 출간 인문서 전반적으로 이어지고 있어 본의아니게 특징이 되어버린 수준이다. 심한 경우에는 번역 자체에만 의의를 두었다 싶은 번역서도 있다. 실제로 어려운 내용과 개념을 다루는 책들이 많다보니 뒤섞여서 번역의 질에 대해서는 평가가 좋지 않은 편이다.2.2. 기타
- 대표는 우파에 가까우나 번역서 대부분이 좌파이나 극좌의 사상가들도 다루는 것이 특징이라는 평가도 있다. 심도 깊은 현대 우파 사상가들의 책은 거의 내지 않는다는 불평도 있는데, 이에 대해 유명세와 무관하게 좌파 성향의 학자들의 판권료가 훨씬 싸고 우파 학자들의 판권료가 훨씬 비싼 경우가 많다는 해석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8] 반대로 이념과 관계 없이, 베른 조약으로 저작권법이 바뀌던 시기에,[9] 팔릴 것 같은 책들 중 판권료이 싼 책들을 덮어두고 다 싹쓸이 계약을 했는데, '그냥 어쩌다' 계약하고 보니 좌파 철학자들 책이여서 좌파 철학자들 책을 내고 있을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10]
[1] 이게 얼핏 당연한 것 같아도, 조선 이전 기록을 인용할 때 조선 유학자의 가치관 기준으로 살짝살짝 고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고려사 지리지는 삼국유사의 내용을 가져오되 가야의 한자 표기 가 자를 불교의 영향 받은 절 가(伽)에서 더할 가(加)로 바꾸어 옮겼다.[2] 강희 49년인 1710년에 강희제가 직접 선정하고 청나라 서건설(徐建興, 1631—1694)등이 편찬한 64권의 책[3] 청 강희제의 칙명에 따라 장옥서(張玉書) 등 76명이 편찬한 책으로 강희 50년인 1711년에 완성[4] 정확하게는 신문광고를 내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의 '서낭당' 출판사 등록증을 사들여 개명하였다고 한다.[5] 인터뷰 기사를 보면 꽤나 솔직한데다 고집 뚜렷한 괴짜임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인터뷰 기사는 '異人열전'이란 이름으로 실렸는데 월간조선에서 이인열전으로 검색되는 인물은 이 분과 '칭기스칸의 조상은 고주몽이다'(...)라는 전원철 변호사 둘뿐이다.[6] 주요 도서관, 대학, 연구자들이 구입할 경우 최소 1,000부 이상 고정적으로 판매할수 있고, 해당 이론가 붐이 일 경우 2,000부 이상 판매가 가능하다.[7] 번역 능력이 있는 것과 번역가 일을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인문서가 아닌 문학을 주로 다루는 민음사나 문학동네 같은 출판사들의 문학 번역서들도 전문 번역가의 손을 거치지 않고 교수 등의 연구자가 바로 번역해서 낸 경우에는 번역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 저자의 전문가인 것과, 외국인인 ○○ 저자의 글을 한국어로 제대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평가 영역이기 때문이다.[8] 그러나 적용되지 않는 해석이다. 판권료는 원저의 해외 판권 계약 권리를 가지고 있는 출판사와 저자의 상황에 따라 정해질 뿐이다. 이 해석대로라면 우파 학자들은 책을 잘 출간하지 않아 경쟁자가 적어 판권료를 낮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9] 국제 기준을 적용 받기 때문에 해적판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열린 것.[10] 하지만 이 역시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은 해석이다. '저작권이 바뀌었다'는 시기 즉 베른 조약에 가입해 국제 기준에 따라 해적판을 몰아내야 할 상황이 된 것은 1996년인데, 그때부터 계약을 한 책들을 그대로 낸다는 전제하에 나온 상상이다. 절판을 출판사가 일부러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일례처럼, 기본적으로 출판 시스템에 대한 이해는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저작권이 말소된 저서가 아닌 이상 외국 저서의 번역서의 출간 계약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기간이 반드시 정해지며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계약 연장을 할 뿐이다.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설령 사후 기간이 50년, 70년 지난 외국 저자라고 하더라도, 외국의 출판사가 이후 복원을 하거나 손을 본 판본이 최신 판본이라면 저작권은 말소되지 않고 살아있어 계약을 따로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만약 1996년 당시 저작권이 만료되어 계약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던 저서들이라면 애초에 계약을 하지 않고 (판권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이) 그냥 출간해도 되기 때문에, 판권료 싸다든가 하는 해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저작권이 말소된 저서가 아닌 이상 외국 저서의 번역서의 출간 계약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기간이 반드시 정해지며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계약 연장을 할 뿐이다.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설령 사후 기간이 50년, 70년 지난 외국 저자라고 하더라도, 외국의 출판사가 이후 복원을 하거나 손을 본 판본이 최신 판본이라면 저작권은 말소되지 않고 살아있어 계약을 따로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만약 1996년 당시 저작권이 만료되어 계약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던 저서들이라면 애초에 계약을 하지 않고 (판권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이) 그냥 출간해도 되기 때문에, 판권료 싸다든가 하는 해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