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편소설
1.1. 개요
소설가 임철우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전 과정을 담아낸 장편소설.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임철우는 본인이 직접 5.18을 겪은 사람이라서, 집필기간 내내 그 기간의 감정을 다시 체험하며 많이 괴로웠다고 한다. 그 열흘 동안 한 일이라고는 돌멩이 몇 개 던진 것뿐, 내내 집안에 틀어박혀 벌벌 떨며 지냈던 자신을 속죄하고 싶어서 이 작품을 썼다고.연극으로도 만들어져 상연되었다. 분량이 방대한 만큼 많은 부분이 생략되긴 했지만 평은 좋은 듯. 이 연극의 대본은 <5월문학총서> 희곡 편에도 실려 있다.
1.2. 줄거리
1.3. 등장인물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에, 허구의 인물뿐만 아니라 사건을 겪었던 실존 인물들도 소설에 등장한다.[1]
1.3.1. 원구네
- 한원구내가 지금껏 미친 꿈을 꾸고 있었던 거여. 평생 동안 스스로 밑도 끝도 없는 증오의 덫에 묶여서, 내 모든 소중한 것들을, 심지어 내 가족조차도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파괴해왔던 거여. 아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제 와서, 그 엄청난 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전작 <붉은 산 흰 새>의 주인공이자 무석, 명치, 명기, 명옥의 아버지. 광주광역시에서 전당포 일을 했으나 현재는 그만둔 상태다. 전작의 과거와 현재의 가족 관계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다. 특히 첫째 아들 무석과의 갈등이 심한터라 그에게 모진 말을 하여 연락과도 끊긴 상태다. 아들 무석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던 차에 최달식을 만난다. 최달식으로부터 수희네의 소식[2]과 고향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3]를 듣고 놀란다. 이야기를 들은 그 날 밤 달식과 함께 과거사가 얽힌 음식점에 갔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4] 이후 집으로 돌아와 있던 중 계엄군의 만행에 대한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명기를 집에 가둬 놓는다. 하지만 명기가 친구들과 탈출하고 소식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자[5] 답답한 마음에 광주 시내를 휘젓고 다닌다. 또한 명치가 계엄군으로 광주에 내려와 있다는 사실과 무석이 시민군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주변인들의 증언에 크게 놀라, 자식의 안부를 걱정한다.[6] 그리고 자신의 이전 행적과 자신의 현재 상황을 등치시키며 고민하다가, 증오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인생을 문득 깨닫는다. 그러다가 귀단이 머무르고 있는 미용실 앞을 지나가게 되는데[7], 여기서 귀단과 무석을 향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5월 27일 새벽 자신의 전화를 아들 무석이 받자 눈물을 흘리며 무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나, 곧 전화가 끊기고 만다. 도청이 진압당한 후 아들 무석의 행방을 찾아다니지만 불행히도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 귀단
한원구의 첫번째 아내이자 무석과 명치의 어머니. 원구가 광주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낙일도에서 원구와 결혼했다. 하지만 낙일도에서 발생한 여러 어두운 사건들 때문에 결국 원구와 헤어졌다. 이후 행방을 알 수 없다가, 광주의 한 시장에 홀연히 나타나 원구가 가지고 있던 아픈 과거사를 떠올리게 한다.
- 청산댁
한원구의 2번째 아내이자 명기와 명옥의 어머니. 5.18 초기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 소식을 듣고 자식들을 걱정한다.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이라 자신의 친척이 군의관인데 공수부대원으로 몰리자 그를 변호해주며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5.18 동안 명기의 소식을 전화로 매일 받고 있었다.
- 한무석난 다만 이 추한 현실을 용서할 수 없을 뿐이야. 인간이 인간에게 이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 사람이 이렇게 개나 돼지처럼 처참하고 비루하게 죽임을 당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어쩌다가 보니까 총을 들게 되었을 뿐이지.
한원구의 첫째 아들. 출생의 비밀과 관련하여 아버지 원구와 심하게 다투고 집을 나와 시민아파트에 셋방 하나를 얻어 살고 있다. 시민아파트에서 생활하던 중, 그곳에 살고 있던 미순이라는 여인과 함께 5월 18일 영화를 보러 시내로 간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던 중, 계엄군이 난입하여 행패를 부리자 울컥하는 마음에 일어섰다가 어깨를 진압봉으로 얻어맞는다.[8] 5월 20일에는 친구인 칠수, 한기와 함께 국밥을 먹으러 갔다가 그곳에서 공수부대원들의 만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는 트럭을 타고 시내로 향해 운전기사들의 시위에 참여하며 감격한다. 저녁에는 일행과 함께 버스를 타고 광주역 앞의 시위에 나서서 계엄군을 향해 돌진하는 버스에서 겨우 탈출하고, 곧 이어지는 집단발포에 크게 놀란다. 5월 21일에는 도청 앞의 시위에 동참했다가 집단발포와 조준사격을 맞닥뜨리고 총탄에 희생되는 시민들을 보며 울분을 토한다. 그리하여 사람들과 함께 무기 탈취와 시민군 조직에 동참한다. 또한 부상자 병원 이송, 헌혈 홍보 및 헌혈희망자 이송, 약품 조달 등의 활동에도 참여하는데, 계엄군의 공격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긴다. 같이 구호활동을 하던 청년들이 희생된 사실에 분노와 울분을 지새다가 광주 공원에서 무기를 반납하고 자신이 사는 시민아파트에 가서 의식을 잃는다. 다음 날 깨어난 그는 미순이 자신을 간호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동생 명기와도 반갑게 재회한다. 명기과 헤어진 후 친구들과 함께 계엄군에 잡혀간 칠수의 행방을 찾으러 전남대학교로 가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한다. 이후 한기, 봉배와 함께 시민군으로 활동을 하다가 5월 24일 계엄군 간의 오인 사격에 휘말리나 간신히 탈출한다. 5월 26일 상무관에 안치된 봉배의 관 앞에서 한기와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취사반에 소속되어 있는 미순, 도청에서 일하기로 한 명기와 만난다. 이후 미순에게 사랑이 담긴 키스를 받고, 계엄군과의 최후 결전을 위해 전남도청에서 총을 들고 대기한다. 계엄군이 진압이 임박했을 때, 아버지 원구와 겨우 연락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용서해달라는 말을 남기나, 계엄군이 전화선을 끊는 바람에 대화를 미처 끝내지 못한다. 최후 결전 도중 윤상현의 죽음을 목도하고 분노하여 계엄군과 맞서 싸우지만 이내 총을 맞아 사망한다.
- 한명치아아, 대관절 이게 어찌 된 판국인가. 어쩌다가 이런 재수 없는 판에 끼여든 건가. 하필이면 광주에서, 그것도 왜 하필이면 우리 부대가 투입되었단 말인가. 니기미 씨펄......[9]
한원구의 둘째 아들, 계엄군. 1979년 말부터 지독한 훈련에 시달리다가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다.[10]
- 한명기그래, 절망하지 말자. 두려워하거나 증오하지도 말자. 이 추한 세상의 악과 폭력이 오직 절망과 증오만을 가르치려 할지라도, 나는 이제부터 희망을 배워가리라. 인간과 삶을 향한, 가슴 벅찬 소망과 그리움의 노래를...
한원구의 셋째 아들, 전남대학교 학생. 대학 동기, 선배들과 함께 연극활동을 하다가 5.18을 맞는다. 5월 18일 아침부터 계엄군의 만행을 듣고 목격한다. 그리고나서 학생들과 함께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계엄군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다가 공수부대원에게 자전거(!)로 얻어맞는다. 시위 직후 친구들과 함께 광주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후 아버지 한원구에 의해 집에 갇히지만, 그가 잠깐 집을 나간 사이에 친구들과 함께 5월 19일 다시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등사기로 유인물을 작성하여 다음 날 20일 새벽 유인물을 뿌리며 돌아다닌다. 그러다 친구 하나가 계엄군에게 머리를 얻어맞자 성당으로 대피하여 계엄군의 추격을 피하고, 계엄군에게 잡혔다가 풀려난 친구 태영의 집을 방문한다.[11] 태영의 소식을 듣고 난 후 명기는 일행과 함께 들불야학으로 향하고 거기서 들불야학을 이끌고 있는 윤상현을 만나, 들불야학 강학들과 함께 유인물 제작에 참여한다. 그리고 당일 오후부터 동료들과 유인물을 뿌리면서 시위에 동참한다. 무석처럼 그 역시 운전기사들의 봉기와 시민들의 항쟁을 보며 감동한다. 5월 21일에는 전남대 근처에서 활동하다가 계엄군에 의해 임산부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목격하고 도우려 애쓰나 결국 실패한다. 5월 22일에는 시민아파트에서 형 무석과 조우하여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헤어진다. 해방광주 기간 동안에는 투사회보 제작에 꾸준히 참여하는데, 얼굴과 손 여기저기가 잉크로 범벅이 된 채로 돌아다니지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느끼며 자랑스러워한다. 5월 26일 상무관에서 무석과 다시 만나고 이후 YWCA로 이동해 일행을 이끌고 광주를 탈출한다. 진압 이후인 5월 31일, 목포항의 여객선에 서서 광주에서의 패배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지만, 그럼에도 삶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것임을 다짐한다.
- 한명수
한원구의 막내 아들. 어릴 적에 절벽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기에 작중에는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원구네 식구들의 회상에서 가끔 나오는 정도.
- 한명옥
한원구의 고명딸. 여고생이다. 5월 18일 성당 수녀에게 꽃을 주고자 단짝친구 현주와 함께 길을 나서다가 계엄군과 만나게 되고 홀로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탈출하게 된다. 탈출한 이후 성당으로 가서 신부와 수녀에게 소식을 알린다.
1.3.2. 시민아파트 입주민
- 은숙
시민아파트에서 미순과 함께 살고 있는 여자. 어려운 형편 때문에 술집을 드나들고 있다. 5월 19일 술집에서 만난 재일교포 사업가와 호텔에서 잠자리를 같이 하다가, 호텔로 들이닥친 계엄군[12]에게 얻어맞고 성추행을 당하는 등 봉변을 당한다. 결국 만신창이가 된 채로 호텔에서 시민아파트까지 먼 길을 걸어오며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듣는다.[13] 겨우 시민아파트에 도착했으나 미순의 앞에서 쓰러졌고, 이후 어느 정도 회복된 듯하나 여전히 몸과 마음의 상처는 완치되지 않았다. 5월 22일에는 미순을 이끌고 도청 광장으로 가는데, 거기서 자신의 이종사촌 '운봉'의 죽음을 알고 눈물을 흘린다.[14] 그리고 도청에서 시신을 정리하고 염하는 활동에 자원한다. 이후 미순과 함께 취사반으로 옮겨 시민군들의 식사를 담당한다.
- 미순
시민아파트에서 은숙과 함께 살고 있는 여자.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파트 세면대에서 무석을 만난 이후 그에게 호감을 품는다. 5월 18일 무석과 함께 영화를 보고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무석이 계엄군에게 얻어맞자 그를 변호하고 부축해준다. 5월 19일에는 봉변을 당한 은숙을 돌봐주고 간호해준다. 5월 21일 밤부터는 정신을 잃은 무석을 간호해주었다. 5월 22일, 그녀의 간호를 받은 무석이 밖으로 나가자 무석에 대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새삼 깨닫고 그를 걱정한다. 한편 "도청 광장으로 가자"는 은숙의 제안에 따라 그녀도 밖으로 나가고, 상무관에 안치되어 있는 시신들을 보며 통곡한다. 거기서 은숙을 따라 시신 수습에 동참한다. 이후 시신 수습을 도와주던 연숙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더욱 더 시민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취사반으로 들어가 식사를 담당하던 차에 5월 26일 상무관에서 무석을 만난다.
- 박씨
한무석으로부터 세를 받고 사는 집 주인. 아내와 거의 매일 티격태격하지만정도가 심하긴 하다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씨는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 영님
박씨네의 딸로, 미용실에서 잡일을 하던 중 들불야학에 다니게 된다. 5월 20일 시내를 배회하고 있던 명기과 그 친구들을 들불야학 청년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준다.
1.3.3. 수희네
- 수희
- 수길
- 막단
수희와 수길의 어머니.
1.3.4. 대학생
- 경훈
- 명순
- 태영
- 민태
1.3.5. 함평목공소네
- 서씨
함평목공소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 주변 인물들의 말로 볼 때 꽤나 순박하고 '퍽 좋은 사람'이다. 5월 18일 충장로 5가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을 보고, 목공소로 돌아와 봉배에게 가게 단속을 부탁한다. 이후 거리로 나가 있는 가족들을 찾아나서다가, 여성들에게 시비를 거는 군인들을 보고 이를 말리려다 무차별 폭행을 당한다. 결국 의식을 잃은 채로 병원에 실려간다. 봉배의 말에 따르면 초상 치를 날만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중증이라고 한다.
- 봉배
목공소에서 일하고 있는 사내. 5월 18일, 급히 목공소로 돌아온 주인 서씨와 경찰 윤순경을 통하여 시내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만행에 대해 듣는다. 사실을 반신반의하고 있던 차에, 계엄군에게 쫓기던 한 청년이 옆구리에 대검이 찔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5월 20일, 목공소를 지키고 있던 차에 분노한 시민들이 각목을 얻기 위해 목공소로 오자, 시민들에게 각목과 톱을 제공해준다. 몇십 분 후 무석 일행이 도착하자 트럭에 타고 무등경기장으로 향한다. 거기서 운전기사들의 봉기에 함께 하여 시위를 벌이며 눈물을 흘린다. 5월 21일부터는 무석, 한기와 함께 행동하여 무기 탈취에도 참여하고 시민군으로 활동한다. 5월 22일 계엄군에게 체포된 칠수의 행방을 찾고자 일행과 함께 전남대학교를 방문한 적도 있으나 소식은 없었고, 이후 시민군 활동을 지속하다 5월 24일 계엄군 간의 오인 사격에 말려들어 옆구리에 총탄을 맞는다. 병원으로 실려가 수술까지 받았으나 결국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을 위해, 내가 아직 죽어선 안 된다"고 중얼거리며 사망한다. 시신은 '열사-박봉배'라고 적힌 관에 눕혀져 상무관에 안치된다.
1.3.6. 들불야학
- 윤상현이봐, 난 민중의 혼을, 폭발력을 믿고 싶네. 아니, 확실히 믿네. 자네도 지난 며칠 동안의 그 놀라운 싸움을 똑똑히 보지 않았나?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일이 우리들 속에서 일어난 거야. 그것만으로도 우린 이미 절반쯤 승리한 것인지도 몰라...
실존인물 윤상원을 모티브로 한 인물. 무석의 친구이자 들불야학을 이끌고 있는 주도적 인물.
- 민호
- 정수
- 용식
1.3.7. 시민군
- 강한기체, 수습이 어떻게 되겄소? 일은 이미 터져부러가꼬 사망자가 속출했는디, 어찌 수습이 된다요? 이건 학살이요, 학살!
무석의 친구로, 철물점에서 일하고 있다. 5.18이 터지자 겁을 먹은 철물점 주인이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간 터라 혼자서 철물점을 맡고 있던 차에, 친구 무석과 칠구를 만나 시위 현장을 돌아다니며 시위에 적극 동참했다. 5월 20일 저녁에는 계엄군에 대항하고자 버스를 운전하여 광주역의 계엄군 저지선을 돌파하고자 했으며 겨우 탈출에 성공한다. 이후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발생하자 문상수를 비롯한 시민들과 같이 행동하며, 전남 여러 지역에서 무기를 탈취했다.[15] 5월 22일 무석, 봉배와 함께 친구 칠수의 행방을 찾으러 전남대학교에 갔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하고, 이후 시민군 활동을 하다가 5월 24일 계엄군의 오인 사격에 휘말려 위기에 빠지나 겨우 탈출한다. 이 때의 사고로 친구 봉배가 죽자 그의 관 앞에서 무석과 넋두리를 한다. 이후 5월 27일 최후 결전에서 계엄군과 싸우지만 친구 무석의 죽음을 목도하고 자신은 계엄군에게 생포된다.
- 문상수
5월 21일 시민들이 시민군을 조직하기 위해 무기고에 가고자 할 때, 무석 일행 앞에 나타난 인물로 학운동 예비군 소대장 직책을 맡고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인 한기와 말을 튼 후 즉석으로 지휘관이 되어 사람들을 통제하며 무기 탈취를 주도적으로 돕는다.[16]
- 정민
수길의 친구이자 고등학생. 계엄군의 만행을 보며 분노하던 차에 5월 21일 시민군에 참여한다. 위험한 수류탄을 함부로 가슴에 달고 다니다가 문상수로부터 수류탄을 뺏기고 꾸중을 듣는 등 철없는 행동도 보이지만, 매우 능숙하게 총기를 다루고 다른 시민군들의 말도 고분고분 따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의감과 책임을 느낄 정도로 성숙한 면모도 보인다. 심지어는 수길과 함께 시민군 특공대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계엄군과의 교전 중에 계엄군에 붙잡혀 대검에 여러 번 찔려 의식을 잃고 만다. 다행히도 시민들에 의해 구출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생명은 건진다.
- 박남선
실존인물. - 항쟁파
무기 회수를 반대하고 계엄군과 끝까지 싸우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광주시민들의 피를 팔아넘길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요 주장이며, 대부분의 시민군들이 이들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소설 내에서는 윤상현, 정상용, 김종배, 김영철 등의 인물들이 나온다. 향후 항쟁의 향배를 두고 투항파와 대립하다가 투항파가 도청을 이탈하자 자기들끼리 항쟁 지도부를 꾸린다. 이후 5월 27일 계엄군의 진압작전에 맞서 싸우다가 다수가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하여 체포된다.
- 투항파
무기 회수를 찬성하고 계엄군과의 조속한 협상 타결을 촉구하는 사람들이다. 소설 내에서는 학생수습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김영길과 일부 대학생들이 나온다. 이들은 투항파와 대립하다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자 대부분 항쟁의 대열에서 이탈했다.[17]
1.3.8. 경찰
- 서기룡
함평목공소 주인 서씨의 아들, 전투경찰. 계엄군에게 폭행당한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분노한다. 이후 도청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 집단발포와 시민군의 출현으로 경찰들이 집단으로 도청을 탈주하자, 거기에 동참해 도청 뒷담을 넘어 도망간다.[18][19]
- 윤순경
5월 18일 함평목공소를 방문하여 주인 서씨와 직원 봉배에게 계엄군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이야기하며 분노한다.
1.3.9. 계엄군
- 오 하사미쳤어...... 너나없이, 모두들 제정신이 아니야.......[20]
서울 D대학 출신의 병사. 대학 시절 형사의 계략에 빠져, 저도 모르게 반유신 활동을 하고 있던 친구를 공안당국에 넘기게 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자신은 죄책감으로 고통받던 차에 공수부대에 자원하게 된다. 거기서 겪은 고통으로 자신의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씻겨나가기를 바라며 군 생활을 하다가 5.18을 만난다. 대학생이었고 이런저런 과거가 있는 인물인지라 다른 계엄군에 비해서는 유순하게 굴지만, 계엄군과 시위대 간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그 또한 대검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명치가 그에게 "대검을 썼냐"고 물어보지만 대답하지 않는다. 이후 5월 23일, 주남마을 총격사건 당시 사격 도중 여성이 버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사격을 멈추지 못한 것을 고백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5월 26일 저녁, 명치 앞에서 대검을 사용했을 때 겪은 일을 상세히 밝히며[21]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자신의 총으로 자살한다. 마지막으로 편지 한 장을 명치에게 남겼는데, 거기엔 '난 더 이상 이 추악한 음모에 가담하지 않겠어. 피는 지금 이 두 손에 묻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 하사, 그 동안 정말 고마웠다'라고 적혀 있었다.
- 강 상병
- 임 상병
- 유 이병피, 피가 지워지지 않습니더......
부산에서 미술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한 병사로, 본명은 '유호섭'이다. 선임들과 간부들에게 고문관이라며 늘 갈굼을 당하는데 특히 5.18 초기에는 진압에 소극적이라며 중대장에게 몽둥이로 얻어맞기까지 했다. 그 이후 명치네 부대가 광주 외곽을 봉쇄하는 작전에 참여하여 부대원으로 활동하는데, 작전 도중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농부를 보며 자신의 아버지가 생각난다며 울먹거리기도 한다. 5월 23일에는 주남마을 총격사건 당시 사살된 사람들의 시신을 직접 수습하고 묻었으며, 생존자 2명이 사살당하는 광경도 직접 목격했다. 그 때의 충격 때문인지 자신의 손을 '피로 젖었다'며 대검으로 마구 긁어대더니 마침내 정신이 나가버리기에 이른다. 결국 치료를 위해 후방으로 이송된다.
- 추 상사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적이 있는 병사로,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전쟁범죄마저 자랑스럽게 지껄일 정도로 인간 쓰레기이다. 시위대를 진압할 때도 시민들을 향해 온갖 야만적인 폭력을 휘두르다가, 5월 24일 계엄군 간의 오인 사격 당시 로켓포를 직격으로 맞아 끔살당한다.
- 변 대위
- 최 대위마침내 그들은 그 일거양득의 효과적인 대안을 찾아낸 거야. 그게 뭘까, 바로 희생양이지! 제단에 올려질 희생양. 제단 아래 엎드린 군중들에게 그것의 피는 공포심과 함께 저항 의지를 포기하게 만드는 아주 놀라운 신통력을 가지고 있지. 바로 그 제물이 될 양 한 마리가 필요했어.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자 최대의 저항 예상 지역...... 결국 그들에게 선택된 거야, 광주가.[22][23]
31사단에 소속된 대위로서,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이 치밀한 계획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언급을 영준에게 남긴다.
- 조영준
31사단 의무대 소속. 국군통합병원에서 일하며 계엄군에게 온갖 가혹행위를 받으며 실려오는 환자들을 보며 분노를 느낀다. 5월 20일에는 군복을 입은 채로 잠깐 집에 갔다오려 했으나, 공수부대로 오해받아[24][25] 사람들에게 고생한다. 다행히 몇몇 사람들의 중재와 변호로 집에는 도착하지만, 돌아갈 길이 막혀버려 어머니와 청산댁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병원으로 복귀한다.
1.3.10. 그 외의 인물
- 최달식
전작 <붉은 산 흰 새>에 나오던 악질경찰 최판석의 아들. 아버지를 이어받아 자신도 형사로 일하고 있다. 6.25 전쟁 때 좌익에 의해 가족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한원구와 공통점이 있지만, 정작 한원구는 최달식을 언짢게 여기고 있다. 작중에서는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죽은 외할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하러 온 수희네 가족을 감시하는 것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후 전작에서 자신의 가족을 죽인 죄로 처형된 어느 머슴의 유가족이 광주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원구를 설득해 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른다.
- 현주
명옥의 단짝친구. 5월 18일 성당 수녀님에게 드릴 꽃을 사들고 명옥과 함께 길거리를 건너다가 계엄군의 진압을 맞닥뜨린다. 결국 계엄군에게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간다. 후에 전남대학교병원에서 발견되어 뇌수술까지 받으나 회생하지 못하고 5월 22일 사망한다.
- 김상섭'아니다. 이 순간 누군가는 증인이 되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하고도 날카롭게 지켜보리라. 어느 날인가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입을 열어야 할 때가 반드시 올 터이고, 그 날은 내게도 진정으로 큰 용기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을 위해 나는 지켜볼 것이다.[26]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상황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 당시의 취재기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광주 시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계엄군의 만행, 시민들의 분노, 언론의 부재, 시민과 군인 간의 충돌, 광주 MBC 화재 등을 도청에서 지켜본다. 5월 20일, 시위가 격화되는 와중에 실탄 분배를 논하고 있는 군인 간부들의 대화와 광주역에서 발생한 집단발포 소리를 듣고 놀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청 직원들과 함께 도청을 빠져나오며 광주세무서가 불타는 장면을 목격한다. 5월 21일에는 들불야학의 윤상현을 만나 전남지역 운동권의 주요 아지트인 녹두서점을 방문한다. 그리고 거기서 집단발포가 일어나는 소리를 듣게 된다. 5월 22일에는 해방광주의 광경을 보고 시민들의 저항과 단결에 대해 생각하며 감격한다. 또 기자들과 함께 행동하며 도청을 드나들게 되는데, 시민군의 조직력과 향후 행동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 칠수
무석의 친구. 무석, 한기와 함께 5월 20일부터 시위에 동참한다. 하지만 광주역에서 계엄군에게 돌진하는 버스로부터 탈출하던 중 붙잡혀 전남대학교로 끌려간다.[27] 거기서 그는 '폭도'라고 불리며 계엄군들로부터 무자비한 구타와 가혹 행위를 당한다. 이후 광주교도소로 끌려가 거기서도 온갖 고문을 받다가 악에 받쳐 계엄군에게 저항하다 처참히 맞아 죽는다.[28]
- 최미화
실존인물 최미애를 모티브로 한 인물. 전남대학교 부근에 살고 있는 임산부. 5.18이 터지고 나서 안전을 염려한 어머니의 권유로 친정에서 지내고 있었다. 5월 21일 교사였던 남편이 밖에 나가 돌아오지 않자, 그를 마중하러 골목길에 잠깐 나갔었다. 그러나 거기서 그녀는 한 계엄군 병사의 총탄에 머리를 맞아 절명하고 만다. 더불어 그녀의 뱃속에 있던 아이도 사망한다.
- 박금희
실존인물.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발생한 이후 수희가 일하던 병원으로 찾아와 헌혈에 참여한다. 하지만 헌혈을 마치고 병원을 떠난지 얼마 후에 계엄군에 총에 맞아 목숨을 잃고, 자신이 헌혈했던 그 병원으로 실려온다.
- 박연숙
실존인물 박현숙을 모티브로 한 인물. 도청에서 시신 수습을 돕고 있는 여학생. 5월 21일 전남도청 앞의 집단발포를 생생히 목격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다가 시신 수습 활동을 하게 되었다. 처참한 몰골의 시신들을 보고도 슬픔과 공포를 꾹 참아내고, 미순이 수습 도중 괴로워하자 그녀를 위로해주며 같이 울어주는 등 대범한 모습을 보인다. 5월 22일, 시신을 안치할 관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청년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주남마을 부근에서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 버스 탑승자들
화순 방면으로 가는 버스에 탄 사람들. 연숙을 포함하여 관을 구하러 가는 청년들, 고향집으로 돌아가려는 여성 노동자들, 잃어버린 오빠를 찾으러 나선 여학생 등 다양한 사정이 있다. 하지만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인해 1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처참하게 죽는다.[29]
- 송암동 주민들
5월 24일, 계엄군 간의 오인 전투가 벌어졌을 때 거기에 말려들어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들을 당한다. 수많은 사람이 부상을 당했으며, 물놀이하던 중학생과 동산에서 놀던 초등학생이 총에 맞아 목숨을 잃고, 총소리에 놀라 하수구에 숨어있던 청년과 아낙네도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사망한다. 게다가 오인 전투로 분노한 계엄군이 화풀이로 아무 집에나 들어가 사람들을 끌고 나오더니 주민들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사살하는 만행도 당했다. 총격으로 집과 시설물이 파괴된 것은 물론이고, 기르던 가축들마저 몰살당해버렸다.
- 수습대책위원회 위원들
시민군이 광주를 장악하고 계엄군이 광주를 포위하자, 사태의 수습을 위해서 만들어진 '수습대책위원회'의 위원들. 독립운동가, 신부, 기업가, 정치인, 재야인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엄당국과 협상을 벌이나 협상은 지지부진하고 무기 수습의 중요성을 설파하나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한다. 이 때문에 일부는 수습대책위원회를 떠나기도 하지만, 나머지는 도청에 남아서 끝까지 계엄당국과의 협상을 진행하고 무기 수습에도 힘을 보태며, 26일 계엄군이 진입해왔을 때 '죽음의 행진'으로 군인들의 진압을 막아 하루 정도 시간을 벌어주었다.
2. 단편소설
1의 작가인 임철우가 쓴 단편소설. 소재는 마찬가지로 5.18이다. 97년작인 1과 달리 84년작이다. <<실천문학>> 제5집(84년 10월)에 발표되었고 <5월문학총서> 소설 편에 실려 있다.[1]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름만 다른 이로 바꿨을 뿐이고 사실은 실제 인물인 경우가 있다.[2] 수희네 가문이 간첩 사건과 연관되어 박살이 났는데, 주요 혐의자로 수감되어 있던 수희의 외할아버지가 옥중 사망했다는 소식[3] 과거 한원구가 살던 낙원도에 머슴 노릇을 하던 '용술'이라는 사람이 원구의 아버지와 달식의 친족을 살해하여 달식의 아버지에게 처형당했는데, 용술의 유가족이 광주에 와서 음식점을 하고 있다는 소식[4] 머슴 용술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자신의 아버지가 용술의 처를 겁탈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5] 사실 명기는 집에 매일 연락을 했으나, 아버지 원구가 아닌 어머니 청산댁에게만 했다. 설사 원구가 전화를 받는다 해도 바로 끊어(...)버렸다.[6] 명치와 무석의 소식을 듣고 원구가 하는 말이 압권이다. "그렇다면 형제끼리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셈일세그려!"[7] 사실 그 이전에도 한 번 지나간 적이 있었다.[8]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계엄군에게 끌려가지는 않는다.[9] <봄날> 제3권, 325p[10] 하지만 가족들은 그가 광주에 투입되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동생 명기가 진압군 중에 명치를 본 듯한 느낌을 받지만 확신하지 못한다. 물론 명치 자신도 시위대나 시민들 가운데 자신들의 가족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지만 역시 확신하지 못한다.[11] 이때 거리의 사람들이 명기 일행에게 유인물을 나눠줄 것을 요구하자, 명기는 유인물을 나눠준 다음 "우리는 이길 것이다"라고 중얼거리며 벅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12] 이 계엄군들은 자신들이 쫓던 사람 몇 명이 호텔로 도망가자 그들을 잡으러 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들어와서는 호텔 직원은 물론이고 투숙객까지 두드려 패면서 끌고 갔다.[13] 몰골이 말이 아닌터라 그녀를 본 시민들은 모두 계엄군에게 몹쓸 짓을 당한 것이라 여겼고, 불행 중 다행으로 계엄군도 미친 여자로 치부했기에 건드리지 않았다.[14] 운봉의 죽음을 알기 전에 은숙은 상무관에 안치되어 있던 시신들을 보고자 하는데, 미숙은 그녀가 호기심 때문에 시신을 보려는 줄 알고 한 소리 하려고 한다. 그러자 은숙은 "내가 그냥 재미 삼아서 구경하자는 건 줄 알아?"라며 독기에 찬 눈빛으로 공수부대의 만행을 제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말한다.[15] 이 때 카빈 소총과 실탄은 물론이고 다이너마이트까지 얻었다! 물론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지만.[16] 이 때, 학생들과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행동을 지적하고 저지하는 대범한 행보를 보여준다.[17] 하지만 항쟁파와 투항파 모두 "더 많은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라는 점에서는 의도가 일치했다.[18] 이 때 경찰들이 자신들의 복장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시민들의 집에 찾아가 사복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자, 시민들이 순순히 옷을 내주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시민들은 경찰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기자들 간의 대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19] 오히려 경찰과 계엄군 간의 사이가 같은 진압측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험악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전라남도 경찰국 간부가 계엄군에게 과잉진압에 항의하다가 곤봉에 맞아 머리가 깨진 일도 있었고, 시위 학생을 연행하며 진압봉으로 계속 구타하는 공수부대원을 본 전투경찰들은 "아니, 연행만 하면 될 일이지. 저렇게까지 복날 개 패듯이 구타해야 할 이유가 있나?" 라고 아연실색하며 경악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여담으로 안병하 전라남도 경찰국장은 기동대에게 절대 시위 학생이나 시민들에게 가혹행위, 폭력진압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연행된 그들에게 제대로 식사를 지급도 지시했다.[20] <봄날> 제2권, 250p[21] 자신이 학생을 대검으로 찔렀는데, 찔린 학생으로부터 들은 마지막 한 마디가 "엄마"였다고...[22] <봄날> 제2권, 290p[23] 실제로 일부 역사학자들은 '5.18이 신군부 세력의 정치적 정당화를 위해 계획적으로 '선택'되었고 신군부가 일부러 사건을 키웠다'는 설을 주장하고 있다.[24] 사실 그는 31사단 소속으로 엄밀히 말하면 공수부대는 아니었지만, 군인에 대한 적개심이 컸던 시민들에게는 충분히 오해받을 수 있었다.[25] 계엄군의 무차별 폭행으로 동생을 잃은 한 장발 청년이 특히 그에게 사납게 굴었다. 나중에는 미안함을 나타내나, 공수부대에 대한 적의만은 상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의 군중들 또한 같은 심정이었다.[26] <봄날> 제3권, 225p[27] 당시 전남대학교는 계엄군의 주요 주둔지였다.[28] 참고로 칠수가 겪었던 계엄군들의 가혹행위는 5.18 당시 연행자였던 강길조의 증언과 매우 흡사하다. 연행된 사람들이 탄 차에 최루탄을 터트리거나, 갈증을 못 이긴 연행자가 오줌을 마신다거나, 발가락을 대검으로 찍어버린다거나, 원산폭격 자세를 강요한다거나, 항의하는 사람을 때려 죽이는 행위들이 그렇다.[29] 원래는 3명이 살았으나, 2명은 계엄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최후의 생존자는 '홍금숙'으로, 실제 주남마을 총격사건에서 살아남은 여성이다. 총살당한 2명의 이름은 양민석과 채수길로, 20년 넘게 신원미상자로 남아있다가 2002년에야 유골의 유전자 감식으로 신원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