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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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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랑의 원리3. 종류4. 관련 말
4.1. 대사/문장4.2. 명언/격언
5. 창작물에서
5.1. 사랑을 개성있게 표현한 작품들
6. 관련 항목

1. 개요

Love
파일:attachment/rkwhrdodmlthsdl.jpg
파일:romantic couple love kiss cute alone sad wallpapers (1).jpg
「1」어떤 사람 또는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어떤 사물 및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1]
「5」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6」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는 "사랑"
우정은 관조와 대화를 양분 삼아 자라날 수 있는 반면 사랑은 무언의 해석에서 태어나고 또 그것으로 양육된다. 사랑받는 존재는 하나의 기호, 하나의 '영혼'으로 나타난다. 그 존재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가능 세계를 표현한다. …… 사랑,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 속에 감싸여진 채로 있는 우리가 모르는 세계들을 '펼쳐서 전개시키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다.
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중

우리말의 고어로는 괴다,닷다,사랑하다 이며(이 세 가지는 정신적 사랑)[2], 어루다(육체적 사랑) 등이 있고, 한자로는 愛(애), 戀(연)이 사랑의 의미를 갖고 있다. 情(정)의 경우 愛(애)나 戀(연)보다 의미가 매우 포괄적이며 사랑이라는 단어로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일본어의 경우 愛(あい)와 恋(こい)[3]의 두 가지로 나뉜다.[4]

가장 유력한 설은 '살다', '사르다' 에서 '살'과 앙/엉이 결합되어 살앙/살엉이 사랑으로 변화되었다는 설과 양주동 시인이 주장한 어원은 상대를 헤아린다는 뜻인 '사량(思量)'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대체로 이 2가지 설이 있다. 가끔 인터넷에 양주동 시인이 주장한 '사량(思量)'이 사랑의 유력한 어원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나 이것은 틀린 주장이다. 사실상 이 주장은 양주동 시인의 추측이자 별개적 생각이며 양주동 또한 학설적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적 의견으로 하나의 의견을 피력한 것 뿐이기 때문이다.[5]

양주동에 의하면 한글이 쓰이진 않은 시절 한자로된 서적들을 보면 생각한다 위한다라는 단어에 사(思)가 나오는 경우가 있으며 그 쓰여진 문장에 늬앙스가 마치 남을 위하여 생각하는 듯한 의미로 쓰인 것도 있기 때문에 [6] 양주동 시인은 옛 한자에서 생각한다라는 늬앙스로 쓰인 사(思)에서 그 정도를 뜻하는 양(量) 을 붙여 사랑의 어원이 사량(思量)에서 왔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 것이다. 하지만 한자로된 서적들도 사실상 '사량(思量)'이라는 단어가 확실하게 사랑 즉 애(愛)로 쓰인 적은 없다.[7] 또한 '사량(思量)'이라는 한자의 뜻은 그저 단순히 생각하는 양이라는 뜻으로 다른 별개의 뜻은 없으며 이 단어를 마치 계속 생각하며 사랑하다 라고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런 경우 오히려 '사량(思量)'이 아니라 '계사(繼思)'라는 단어가 어울린다는 점도 양주동 시인의 주장의 비판이다. 또한 '사량(思量)이라는 한자어에서 왔다면 중국에서도 '사량(思量)'이 사랑이나 정을 뜻하는 의미로 쓰여야 하는데 중국에서 '사량(思量)'이라는 단어는 쓰이지 않는다. 그저 생각하는 양을 뜻하는 '사량(思量)'에서 한다라는 동사가 붙는다는 것은 '생각하는 양을 한다'라는 의미불명의 단어가 되며 사랑의 어원이라고 하기엔 근거가 많이 부족하며 의미 또한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사량(思量)'단어를 무리하게 동사화하여 '생각하며 헤아린다'라고 말한다면 굳이 사량한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되지 사랑이라는 단어가 존재했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며 생각하며 헤아린다를 사랑(愛)으로 해석하기엔 두 단어의 의미가 너무 다르다. 특히 세조 8년(1463년) 법화경언해에서 하나의 문장에 사랑하다와 사량(思量)하다가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인 것을 보면 옛부터 어원이 전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단순 명백한 감정인 희노애락과는 달리 도저히 그 정의를 내릴 수가 없는 오묘한 감정. '슬픈 연민', '아낌', '무엇이든 줄 수 있는 것' 등 사랑을 정의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어느 것도 딱 들어맞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감정은 인류의 예술의 많은 부분을 지배해 왔으며, 주로 노래로 승화되는 편이다.

인류의 감정 중 가장 흔하지만 복잡 미묘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 이 감정을 가진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 대상을 좋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게 하며, 반대로 그 대상이 떠나갈 때에는 기분이 매우 슬프게 된다. 이 감정이 지나쳐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면 사람을 망치기도 한다. 이로서 사랑이라는 것은 한 사람을 웃고 울리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

또한, 희로애락과의 융합이 가능한 특이점이 있으며, 사랑에서 희로애락이 파생되고, 희로애락에서 사랑이 파생이 가능하기에 인간의 감정 중 가장 복잡한 감정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미움(증오)과는 정반대인 듯하면서도 동전의 양면과 같은 모습을 갖고 있어서 사랑에서 미움이 파생되는 경우도 많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8] 반대의 경우 미운 정이라고도 하며, 아이러니하게도 情(정) 중에서 가장 오래가는 정이라는 설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로 친다.[9] 서양에서는 사랑 관련 문구로 성경의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3장 4~7절이 많이 인용된다고 한다.[10][11] 또한 이것은 교리/전통/신앙을 넘어서서 신의 속성이기 때문인지 구원의 문제와 직결된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사랑도 밥과 같은 것이라 계속 충족되지 못하면 결핍으로 인한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부모님의 사랑, 친구들과의 우정, 연인 간의 사랑을 많이 할수록 좋은 밥을 많이 먹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고. 반증으로 상당수의 흉악범들이 어린 시절 부모나 이웃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현실의 사랑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홀로 지내는 사람이나, 오덕인 상태라면 현실에 없는 존재를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증오와 더불어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매우크게 끼치는 감정 중 하나이다. 감정의 크기가 매우매우 거대하기때문에 한번 제대로 사랑에 빠져버리면 이성을 마비시켜버리고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사랑 때문에 온갖 구질구질한 모습 다 보여가면서 매달리거나, 스토킹과 데이트폭력을 비롯한 범죄까지 일어난다는 점을 상기해보자.[12] 범죄의식이나 도덕관마저 찍어누르고 느끼지 못하게 해버릴 정도로 강력한 감정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2. 사랑의 원리

여타할 다른 감정(기쁨, 슬픔, 분노)에 비해서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증거들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사랑이라는 것은 사실 감정보다는 호르몬 활동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생물학적으로 사랑은 강력한 신경적 조건으로 사랑을 하고 싶은 욕구는 성욕이 동반되는 이유도 있지만 호르몬상의 이유로 배고픔과 목마름이나 비슷하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뇌에서 여러 화학물질들이 분비되는데 페로몬,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등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껴안거나 단순히 애인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체내에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두통에 대한 진통제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만약 이별을 한다면 겪게 되는 실연 증상은 마약 중독자들이 겪는 금단 증상과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 실연으로 인한 금단증상은 몸에서 심장을 약화시키는 화학물질을 분비할 수도 있다고 한다.

생화학적으로는 뇌 변연계에서 분비하는 페닐에틸아민[13]이 작용하는 현상인데, 이건 각성제인 천연 암페타민의 일종이다! 페닐에틸아민이 1착이라서 그렇지 다른 호르몬들도 작용하는데, 그 호르몬이란게 아드레날린, 도파민, 엔돌핀, 옥시토신, 세로토닌 같은 물건들인데, 이거 다 각성제류다. "사랑은 마약이다"는 표현이 은유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그대로 담은 설명문인 것이다. 게다가, 상대를 바라보고 소위 말하는 첫눈에 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초. 이 2초만에 페닐에틸아민이 분비되어 가득 차게 되면서 뇌를 자극하여 상대를 넋놓고 멍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상대에게 페닐에틸아민을 분비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게 바로 창작물에서 징그럽게 나오는 반하게 만드는 XXX의 탄생이다.

다만 이 페닐에틸아민의 분비는 유통기한이 있어서, 일반적으로 2년을 넘기지 못한다. 이것도 개인차가 있어서, 상당수는 3개월이면 끝이고 좀 길게 가는 경우는 3년까지 간다. 둘이 동시에 불꽃이 튀었다가 한 사람은 3개월에 끝나고, 다른 한 사람은 2년 3년을 가면 그 때부터 비극이 생기는 것. 그 기간이 지나면 약물에 쩔어있던(?) 뇌가 다시 정신줄을 잡게 된다는 이야기다. 콩깍지 OFF 링크. 이때부터 사랑은 화학의 단계는 끝나고 사회학의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다소 낙천적이긴 하지만 이 2년 반의 기간이 상대와의 유대, 친밀감을 쌓고 다지기 위해 있는 것이며, 이때를 잘 지낸 커플은 잉꼬 커플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커플은 호르몬의 약빨이 떨어지고 나면 들뜬 상태에서 한순간에 가라앉아 권태기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때 페닐에틸아민의 분비가 줄어들지만,[14] 옥시토신이 활발하게 분비되면서, 서로에게 편안함을 가지게 된다. 링크

하지만 이 페닐에틸아민을 평생 분비하는 부부도 꽤나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결국은 천생연분을 찾으란 소리(...). 근데 이 경우도 평생 같은 농도로 쭉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다른 커플들처럼 분비되는 시기와 분비가 사그러드는 시기가 반복적으로 온다. 근데 이 패턴의 주기가 두 사람이 비슷해서 평생 죽이 잘 맞는 것.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잠깐씩 권태기가 왔다가 다시 서로에게 반해서 빠져드는 것이다. 반대로 깨지는 커플들은 아직 한쪽이 분비기인데 반대편이 휴지기에 접어들어 분비기인 쪽이 상대의 사랑이 식었다고 여기거나, 휴지기에 접어든 쪽이 상대방이 집착한다고 여겨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남자와 여자가 사귀고 깨지는 주 패턴인 한 쪽이 고백 - 사귐 - 고백했던 쪽이 상대가 집착한다고 느낌 - 소원해짐 - 헤어짐의 패턴은, 먼저 호감을 느낀 쪽이 분비기가 일찍 시작되었으므로 더 빨리 휴지기에 접어들고, 그 시점에 뒤늦게 분비기의 절정을 달리던 상대쪽의 행동을 집착으로 여겨버리는 것일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단순한 호르몬 변화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과학적으로 사랑을 느낄 때 어떤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밝혀졌다 하더라도 언제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밝히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적으로 그것들을 밝혀낼 수 없는 이유가 '사랑'이라는 것은 정의되지 않았지만 모순적이게도 모두가 알고있는 즉, 과학과는 정 반대편에 있는 그런 추상적인 감정[15]이기 때문이다. 일예로 사랑에 대한 다양한 연구결과들에서 사랑을 느낄때 어떠한 호르몬이 분비되고 뇌에서 어떠한 반응들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피실험자가 실험 당시 느낀 감정이 정말 '사랑'이었는 지, 아니 정말 '사랑'이란 '왜'라는 질문으로 가기 전 무엇인지 역시 알 수 없을 뿐더러 피실험자의 부인이나 애인 등 사랑하고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인물들의 사진을 보여줬을때와 부인과 애인이 아닌 포르노에 관련된 사진을 보여줬을때의 호르몬과 뇌의 변화가 아주 유사했다는, 혹은 피실험자 스스로가 결코 사랑이라고는 정의하지 않는 스카이다이빙을 할때 페닐에틸아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즉, 사랑에 대한 호르몬 연구결과들 역시 많은 사람들 자신이 사랑을 느낀다고 정의하는 순간 뇌와 호르몬 변화에 있어서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 페닐에틸아민, 페로몬, 도파민과 같은 물질들이었다는 것이지 절대 페닐에틸아민이 곧 사랑이다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며 그 어떤 것도 사랑 이꼴이라고 하기에는 사랑 자체가 아주 추상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사랑 연구에 대한 한 일화로 1975년 3월에 미국 상원의원이자 과학계에서 반(反)과학적인 정치인으로 이름이 알려진 윌리엄 프록스마이어(W. Proxmire)는 사랑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엘렌 버샤이드(E.Berscheid)와 일레인 하트필드(E. Hatfield)에게 일명 세금 도둑상, 밑 빠진 독상으로 불리는 황금양털[16]을 수여하면서 "2억 명 미국인들이 수수께끼로 남겨놓고 싶어 하는 것 중에서 으뜸은 어떻게 해서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지 하는 문제일 것"이라고 혹평했다. 다만 이후로도 두 사람의 연구는 이런 논란에도 굴하지 않은 채 계속 진행되어졌고, 이후로도 그 둘로 인해 시작된 사랑에 대한 연구는 여러 연구자와 과학계에서 계속 연구하게 되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결국 프록스마이어는 사랑의 법칙을 알고 싶지 않으려 했다는 사적이면서도 너무 보수적이었던 감정으로 그런 상을 그 둘에게 수여했다고 비판받게 되었다.[17]

3. 종류

쉽게는 사랑은 크게 알고 있는 사랑과 알게 되는 사랑으로 나눠볼 수 있다. 전자는 가족애, 동료애, 박애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후자는 남녀 간의 사랑으로 대표되며 급격히 찾아오는 편이나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찾아오는 것도 많으니 주의할 것.

플라톤이 정의한 사랑의 단계이자 종류는 총 4가지로 육체적 사랑(Eros)[18], 도덕적 사랑(Philia), 정신적(신앙적) 사랑(Stergethron),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무조건적인 사랑(Agape)이다.[19] 플라톤의 주장을 따르자면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서서히 발전해 간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 남자 간의 사랑을 더 숭고하게 보았는데, 남자간의 사랑은 육체적 단계를 건너뛰고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기독교적 윤리관에 입각한 근대 서양 학자들의 주장으로,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에서 발굴되는 암포라 등에는 동성 간의 육체적인 사랑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들도 있으니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거기에 '사랑(에로스)'에 대해 논의한 플라톤의 향연 같은 작품에서도 남자끼리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구절이 있으며 그다지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는다. 그리스인들이 남자들끼리의 사랑을 더 고귀하게 여긴 이유는 그 당시에는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이성'을 남성만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여자를 제대로 된 사람 취급도 해주지 않는 심각한 성차별적인 사회였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

예수가 제자인 베드로에게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세 번을 물어보았는데 이는 각각 도덕적, 정신적,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후세에 한글 번역 중 이것이 무조건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번역되어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였을 수 있다는 것. 신약성서 사본들은 당시의 대중적인 언어인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각각 사랑이란 말이 다르게 써져 있긴 하다. 허나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쓰던 언어 중 히브리어는 사랑이 한 단어이다. 이 주장이 모든 사람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되지 않는 이유.[20]

J.A.Lee라는 심리학자도 사랑의 유형을 6가지로 나누었다.

일단 이렇게 다양하게 있는 편이지만, 가장 완벽한 사랑은, 위에 적힌 모든 사랑들중 하나라도 완벽하면서 조화롭게 존재할 때, 가장 진정한 의미의 완벽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25]

4. 관련 말

4.1. 대사/문장

사랑이 가냘프다고? 너무 거칠고 잔인하고 사나우면서도 가시처럼 찌르는 게 사랑이네.
1996년에 개봉한 '로미오+줄리엣'에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To love another person is to see the face of God.
뮤지컬 레 미제라블
Pōkarekare ana, ngā wai o Rotorua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로토루아 호수는
Whiti atu koe hine, marino ana e.
그대가 건너온다면 잠잠해질 겁니다.
E hine e, hoki mai ra.
오 그대여, 내게로 돌아와 주세요.
Ka mate ahau I te aroha e.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마오리족의 전통 민요 포카레카레 아나의 가사.[26][27]
Foolish heart, hear me calling
Stop before you start falling
Foolish heart, heed my warning
You've been wrong before
Don't be wrong anymore
어리석은 마음아 내 호소를 들어줘
사랑에 빠지기 전 잠시 멈춰
어리석은 마음아 내 경고를 잘 들어줘
넌 한번 틀린 적 있잖아
더 이상은 틀리지마
록그룹 저니{Journey}의 리드 보컬출신인 스티브 페리{Steve Perry}의 1984년 솔로 데뷔 앨범 Street Talk의 수록곡인 'Foolish Heart'의 후렴.[28]
가슴 터질 듯 열망하는 사랑
사랑 때문에 목숨거는 사랑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 멀고마는
활화산처럼 터져오르는 그런 사랑
혜은이의 노래 "열정"[29]중에서.
그 사람에게 끌리거나, 끌리지 않는 이유는 알 방법이 없다. 우리가 아는 건 그 사람에게 끌리느냐, 아니냐뿐이다.
영화 "캐롤"에서.
(생략) ...그러나 우선, '사랑'이라는 말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한계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넓은 의미 폭을 갖게 되어, 그 말을 사용하기가 주저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정이 '사랑'의 원의인데, 이제는 식욕이나 기타 물욕 내지 정복욕 등과 구별되지 않는 탐욕에 이끌려 도달하는 심정적 경개(景槪)나 행위마저 '사랑'이라는 말로 지칭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누가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근엄한 음성으로 말하면, 그것이 음란한 농담으로 들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말이 특정 집단이나 유사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너무 헤프게 사용되다 보니, 그 말 속에 있던 의미적 절박성과 곡진함이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그 말이 거짓과 위선의 냄새마저 풍기게 되었다. 지극히 아끼고 애틋하게 근심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리키던 말이, 음욕이나 기타 야욕까지도 지칭하게 되었으니, 진정한 연인들이나 개결한 벗들, 이웃들, 우애 깊은 혈연들은 오히려 그 말을 사용함에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요컨대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가 모호해진 것이다... (이하 생략)
〈정염의 맥박(부제: 프랑스 문학, 그 천 년의 몽상)〉 이형식 저, 서울대학교 출판부. p.3~p.4 머리말에서 인용

4.2. 명언/격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30]
요한의 복음서 15장 中-예수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3장 1절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틀림없이 돈이 사랑을 망칠 것이다.
장 자크 루소
사랑이 있는 곳에 삶도 있는 법이다.
Where there is love there is life.
마하트마 간디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
If you would be loved, love and be lovable.
벤자민 프랭클린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매력적이었으며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 달라 보였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구두가 딱딱거리면서 돌길 위를 걸을 때
왜 아무도 자기처럼 정신을 잃지 않는지,
그녀의 베일에서 나오는 숨소리에 왜 아무도 가슴 설레지 않는지,
그녀의 땋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거나 손이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왜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미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l amor en los tiempos de cólera
《콜레라 시대의 사랑》 中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죽음도 사랑을 이길 수는 없어요
솔로몬 따라잡기[31]
(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공자
죽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마라, 해리. 산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겨라. 그 중에서도 사랑 없이 사는 사람들을 가장 불쌍하게 여기렴.
알버스 덤블도어
사랑은 마음의 송곳이자 독이요,
그 송곳이자 독은 인생의 시작이요.
의문의 시인

5. 창작물에서

예시 문단이 포화될 수 있으니 해당 문단의 하위 문단에 해당하지 않는 창작물은 등재하지 말 것.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이든 가요든 여러 문화 매체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다. 예를 들어, 한국가요에서 이성과의 사랑은 노래 주제 1순위이다.[32] 그래서 한국 가요를 까는 사람들은 이런 노래들을 사랑 타령이라고 까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 비율에는 나라마다 전부 차이가 있지만, 이성과의 사랑은 한국만 그런게 아니라 어느 나라를 가도 거의 대부분 노래 주제 1순위이다. 그만큼 보편적이고 공감하기 쉬운 감정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사랑이라는 주제는 옛날부터 흔히 창작물에 사용되던 제재(題材)이다. 예를 들면 고대가요 “가시리”나 운영전 등이 있다.

사랑은 셀 수도 없이 많고 다양한 매체에서 오만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지만, 잘 표현해내기가 정말로 어려운 주제 중 하나이다. 일단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되면 아무리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도 최고를 바라게 되기 때문일지도. 긍정적으로 묘사하면 진부하고 오글거리기가 쉽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면 한도 끝도 없이 지저분해지는 것이 사랑이란 것이다.

일본 창작물에서는 사랑해(愛している/아이시테루)보다는 좋아해(好き/스키)나 정말 좋아해(大好き/다이스키)를 더 많이 쓴다. 그 이유는 일본어로 사랑한다는 말인 아이시떼루(愛している)는 단순한 사랑고백이 아닌 평생동안 함께 하고 싶을 만큼 열렬히 사랑하는 상대에게 목숨 바쳐 사랑한다고 말하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愛/あい/아이」는 사랑(혹은 그 개념 자체), 「恋/こい/코이」는 연애(나 그러한 감정)를 주로 의미한다. 소설가 소세키의 영향으로 직접 좋다고 하지 않고 '달이 아름답네요.(月が綺麗ですね)'와 같이 돌려 말하기도 한다.

5.1. 사랑을 개성있게 표현한 작품들

이게 나무위키다. 이런 사랑꾼들

6. 관련 항목


[1] 2020년 기준 국립국어원의 정의. 2012년성소수자를 포괄하는 뜻으로 '사랑'의 정의에 '남녀'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애정', '연애', '애인'등의 정의에 있는 '남녀'를 '두 사람'으로 바꾸었었으나, 기독교계의 큰 반발로 2014년에 다시 남녀로 되돌렸다가 다시 돌아왔다.[2] 중세 한국어에서 'ㅚ'의 발음은 "오이"에 가까웠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일본어의 '恋(こい: "코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괴다'가 훗날 귀엽다 등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3] 戀의 신자체. 참고로 こい는 일본의 고유어이고 恋의 일본식 독음은 れん이다.[4] 한문에서 恋는 주로 연애 관계에서의 사랑, 愛는 그것보다 좀 더 포괄적인 사랑을 의미한다.[5] 양주동 시인은 나중에 국문학자로 활동하지만 전문학자라기 보단 유명시인으로서 타이틀을 하나 더 가져온 셈이다.[6] 양주동 시인 개인의 생각이며 사(思)라는 것이 사랑이 아닌 생각한다라는 의미가 더 어울린다는 의견도 많다[7] 야운자경의 사량 또한 그저 생각하는 양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며 사랑이란 뜻으로 말하기 어렵다.[8] 그래서 오노레 드 발자크는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는 말을 남겼다.[9]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요한 1서의 내용 중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구절이 있기에...[10]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11] 사랑의 기본 특징 중 '오래 참음'은 최소한의 기준이고 기독교상에서 영원한 사랑은 오직 하느님과 천국 백성들에 한한다.[12] 다만 후자의 경우, 순수했던 사랑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집착으로 나쁘게 뒤틀려버린탓이 크다. 만약 자신의 애정이 배신당했다 느꼈다면 이윽고 집착을 넘어서 대상에 대한 분노증오로 변하기도 한다.[13] 주로 포도주초콜릿, 이나 새우, 등의 고단백 식품에 많다. 보면 죄다 정력제 혹은 최음제로 알려진 물건들이다.[14] 늘리고 싶다면 운동을 하거나, 로맨스 소설이나 멜로 영화 등 로맨스 매체를 접하면 된다. 링크[15] 물론 실체하지 않고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어쩌면 허무맹랑한 것일지도 모르나 그것을 믿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는 인간의 한 면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들이 바로 사랑과 같은 것이다.[16] 원래는 유사과학이나, 외계인 연구, 초능력 연구, 영능력 연구등을 여러 연구자들이 과학계에서 지나치게 연구해대서 세금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서 조롱 겸 막으려는 목적으로 만든 상이다.[17] 이후 1975년 심리학자인 로널드 허친슨이 자신의 연구과제에 황금양털상이 주어지자, 프록스마이어를 상대로 명예훼손 등의 소송을 제기했으며, 두 사람은 1979년 미국 대법원의 판결 전에 합의했는데, 프록스마이어는 공개 사과와 함께 2만 5천 달러를 배상했다.[18] 여기서 육체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육체적인 충동으로서 자신에게 결여된 무언가에 대한 일방적 갈구의 의미이다. 욕구라는 것이 육체에서 기인한다고 보면 옳겠다. 그래서 정신적인 사랑이라는 플라토닉도 에로스의 일종이다.[19] 이러한 구분은 고대 그리스 시절에는 그렇게 명확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그냥 다 사랑으로 쓰였다는 이야기로 에로스가 정신적 사랑을 지칭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20] 다만 복음서를 포함한 성서라는 것들이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려는 게 아니라 사가가 주장하려는 바를 내포하는 진실을 서술하는 것(사실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기술하는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의 일이고, 당시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저술이 그랬다. 그리고 성서의 경우는 주장하려는 바가 사가의 신앙고백이고 거기다가 사가의 신학관이 겹쳐있기 때문에 더 정밀한 해석이 필요하다.)이기 때문에 복음사가는 그것을 표현하려 한 것일 수도 있다.[21] 그런데 에로스(큐피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에로스가 왜 육체적 사랑에 가까운지 의아한 부분이 있다.[22] 자기중심적에 가까운 에로스와는 방향성의 차이가 난다.[23] 특히 기독교의 사랑은 오직 '신'만 100%라고 본다. 그래서 여기에 따르면 세상에 사랑스러운 것은 드러낼 수 있어도 완전한 사랑은 그 누구도 될 수 없다.[24] 본래 단순히 "마음에 든다”, “만족하다”, “환대하는 정신”, “동정” 등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었던 단어가 신약성경에 영향을 받아 저런 의미로 범위가 좀 더 확대되었다.[25] 만약 어느 쪽도 불균형적이게 되었을 경우에는,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장 끔찍하게 여겨질 수 있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충분히 생길 것이다. 집착, 카사노바, 얀데레, 스토커, 광신, 애정결핍, 이기주의 등 현실에서도 이런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병적인 상태는 치유의 대상이지 결코 사랑을 주는 건강한 대상이라 볼 수 없다.[26] 이 민요에는 이런 전설이 내려져 온다. 육지에 사는 아리족 족장의 딸 히네모아와 호수섬 모코이아에 살던 휘스터족 족장의 아들 트타네카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었지만 적대시하던 두 부족의 반대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트타네카이가 밤바다 호숫가에 나와 피리를 불고 그 소리를 듣고는 히네모아는 호수를 직접 건너서 만났다고 한다. 트타니카에가 애타는 마음에 불렀던 노래가 바로 포카레카레 아나였다는 것이다. 이 두 남녀 이야기에 감동한 두 부족은 화해하고, 히네모아와 트타네카이는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출처[27] 한국에는 연가라는 이름으로 번안되어 널리 불린다. 뉴질랜드에선 제2의 국가 취급을 받으며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노래이다. 뉴질랜드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불리기도 했다.[28] 가사의 내용은 사랑에 실패한 화자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전 분별력있는 마음이 가지자며 자기 자신을 타이르는 내용이다.[29] 특정 상대와의 사랑을 다룬 것이 아니라, '열정적이고 맹목적인 사랑' 자체를 바라는 특이하다면 특이한 노래이다.[30] 예수의 가르침을 대표하는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며 동시에 예수가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최고의 사명이자 선물이기도 하다.[31] 할아버지가 바람과 잠을 비롯한 모든 것들보다 죽음이 강하다고 하자 주인공이 한 말. 그리고 이 말을 들은 할아버지가 사랑의 힘은 영원하도다.라고 한다.[32] 서양에선 특히 음악이 기독교쪽과 관련이 깊어 그럴 수도 있다.[33] 이쪽은 연인 간 사랑이 아닌, 어머니와 자식 간의 사랑이다.[34] "사랑을 느끼는 것"은 감정이지만, 사랑 자체는 약속이라는 뜻.[35] 다만 이는 이누야샤쪽은 50년동안 쭉 봉인당한 채 있었던 영향도 있다. 키쿄우를 사랑하던 시절에서 세월이 하나도 흐르지 않았기에 키쿄우의 죽음은 그리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 하지만 그래도 50년 전에 죽은 연인을 그토록 그리워한 것은 사랑 아니면 대답할 수 있는게 없긴 하다.[36] BGM: '사랑빛 매직', '사랑빛 마스터 스파크' 스펠: 연심「더블 스파크」[37] 특히 이 작품에선 모성애, 부성애, 부부애, 우애 등 다양한 사랑이 나온다.[38]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가족 간의 사랑을 다룬다.[39] 일본어로 恋와 愛는 둘 다 사랑을 의미하는 한자지만, ‘恋(코이)’는 짝사랑, 숨기고싶은 연심에 더 가깝고 ‘愛(아이)’는 노골적인 사랑,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대체로 연인 사이에서는 愛(아이)를 사용한다.[40] 단순한 연애감정이 아닌 가족애, 우정, 이타심 같은 넓은 의미의 사랑이다.[스포일러1] 그리고, 이 사랑이라는 가치의 진정한 수호자는 다들 아시는 이분이다.[스포일러2] 이 말처럼 두 주인공은 정말 로운 사랑을 하고 결국엔 한 쪽한 쪽을 위해 희생하면서 이별하게 된다.[43] 타타가 화분에 마법을 쓰지 않고 물을 주면서 한 말이다. 설정상 BT 행성의 왕자이며 마법으로 행성에 사랑을 공급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그를 제외한 가족들은 사랑을 공급할 수 있는 건 마법 뿐이라고 한다. 결국 타타는 이런 가치관의 충돌로 반을 타고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가 물을 준 화분에 꽃이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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