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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09:32:48

석보상절

석보상절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3권과 11권은 중간본, 취소선은 현재 전하지 않음
파일:석보상절.jpg
1. 개요2. 내용3. 현대어 완간4. 외부 링크5. 보물 제523호6. 보물 제523-2호7. 보물 제523-3호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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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석보상절()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수양대군이 김수온 등과 함께 편찬, 번역한 불경 언해서이다. 총 24권 24책이나 현재는 7권 7책만이 남았다. 국립중앙도서관, 동국대학교 도서관,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었고, 보물 제523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2. 내용

1446년 세종의 정실인 소헌왕후가 죽자 수양대군은 크게 충격을 받고[1]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중국 양나라(梁)의 승우(僧祐)가 지은 석가보(釋迦譜)와 당나라(唐)의 도선(道宣)이 지은 석가씨보(釋迦氏譜) 등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설법들을 참조하여 모은 뒤 분류, 편철하여 처음 석보를 제작, 어머니의 제단에 올렸다.

이를 본 세종이 수양대군에게 석보를 완성하라는 명을 내리자, 신미, 김수온 등과 함께 기존 석보에 증수석가보(增修釋迦譜), 아미타경(阿彌陀經), 무량수경(無量壽經), 지장경(地藏經), 법화경(法華經) 등의 내용을 추가하고 원문들을 한글로 풀어쓴 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석보상절이다.

이후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어본 뒤 찬가로 월인천강지곡을 지었고,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쳐 월인석보를 편찬했다.

인쇄에 사용된 한글 활자가 훈민정음 창제된 뒤 최초로 만들어진 점, 석보상절의 한국어 문장이 다른 언해 자료와 다르게 한문을 직역한 문체가 아닌 점, 최초로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부기한 점, 이 책의 표기법이 그 뒤의 한글 표기법의 전범이 된 점 등을 볼 때 15세기 중엽의 한글과 한자음 번역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또한 한글로 표기된 최초의 산문 작품이며, 문장 또한 세련되고 유려하여 후대의 한글 고전소설 편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왕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불경 언해서로 세조와 그 주변 인물들이 지니고 있던 숭불 의식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으며, 한국 최초의 국문 활자본 책으로서의 가치 또한 매우 높이 평가받는다.

석보체라는 폰트는 여기의 글꼴을 참고해서 만들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 로고에 쓰였다.

3. 현대어 완간


2018년 10월 9일, 한글날에 석보상절 주해본이 작업 6년 만에 현대어로 완간되었다. 다음 연구로는 조선 세조의 명으로 간경도감에서 편찬했던 15세기 간경도감본 언해불전이 예정되었다.

4. 외부 링크

5. 보물 제523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4권 4책

『석보상절』은 세종 28년(1446년)에 소헌 왕후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명으로 수양 대군(후의 세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권6, 9, 13, 19는 초간본으로 갑인자 활자로 찍은 것이다. 책 머리에『교정(校正)』이라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고, 이 책 속에 잘못 활자가 찍힌 것이나 또는 초고에서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것을 교정하여 난외(활자판 바깥부분)에 정오(正誤)를 표시한 것이 보여 문자 그대로 교정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6. 보물 제523-2호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2권 2책

『석보상절』은 세종 28년(1446년)에 소헌 왕후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명으로 수양 대군(후의 세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석보상절 권23, 24(釋譜詳節 卷二十三, 二十四)는 초간본이며, 갑인자 활자로 찍은 것이다.

7. 보물 제523-3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1권 1책

『석보상절』은 세종 28년(1446년)에 소헌 왕후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명으로 수양 대군(후의 세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석보상절 권11(釋譜詳節 卷十一)은 전기활자본의 복각본(한 번 새긴 책판을 그대로 본떠 다시 목판에 새겨 발행한 본)이다. 복각한 사실에 대해서는 연산군 1년(1495년)에 성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내탕금(內帑金 : 임금이 사사로이 쓰는 돈)으로 여러 가지 불교 서적을 간행했는데, 그 중 『석보상절』 20부가 수록되어 있음이『선종영가집』과『반야심경언해』에 붙은 학조의 발문에 나타나므로 이 책이 혹 연산군 1년에 만들어진 판이 아닌가 짐작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글자 새김이 거칠고 또 난외(활자판 바깥 부분)에 시주자들의 이름이 많이 새겨져 있는 점과, 종이의 질 등으로 미루어보아 연산조판으로 단정하기에는 너무 문제점이 많고, 이것은 후대에 어느 사찰에서 복각한 것인 듯 싶다. 1959년 대구 어문학회에서 영인본으로 간행하였다.

8. 관련 문서


[1] 참고로 소헌왕후는 수양대군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세조 역시 어머니에게는 엄청난 효자였다. 어머니 사후에 동생 둘하고 조카를 죽여버린 건 넘어가자.[2] 여태까지 발견된 서적 가운데 처음으로 '돈'이라는 낱말이 적힌 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