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해양경찰공무원에 대한 내용은 김성종(1972) 문서 참고하십시오.
일본의 범죄자에 대한 내용은 오바라 조지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金聖鍾1941년 12월 31일 ~ ([age(1941-12-31)]세)
대한민국의 소설가.
한국 추리소설의 시조가 김내성이라면 김성종은 중시조라 할 수 있다. 20세기 한국 추리소설을 논할 때 광복 이전에 김내성이 있었다면 광복 이후 한국 추리소설계에선 김성종이 독보적으로, 19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한국 추리소설의 전성기를 이끌어 냈다. 현재까지 100여권의 추리소설을 출간했으며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위치한 추리문학관 관장이기도 하다.
추리소설 뿐만 아니라 역사소설, 일반소설 분야에서도 많은 작품을 썼다.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는 드라마로 크게 히트를 치기도 했다.
2. 생애
1941년 12월 31일 왕징웨이 정권 치하의 산둥성 지난시에서 태어났다. 네이버 인물정보 등 인물 웹사이트에서는 전라남도 구례군을 출생지로 적고 있으나, 1990년 8월 19일자 동아일보 8면에 실린 '自傳 에세이 나의 길 (19) 金聖鍾'에서 김성종 본인이 "내가 태어난 곳은 中國 濟南이다. 全南 求禮가 고향인 아버님께서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평안도가 고향인 어머님을 만나 그곳에서 한동안 사셨기 때문에 제남이 나의 출생지가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1945년 8.15 광복 후 귀국하여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에 자리잡았으나 그가 서울일신국민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경상남도 부산시, 진해시 등지를 거쳐 전라남도 여수군까지 피난을 갔다. 피난 중에 아버지는 노무자로 일하러 갔고, 당시 임신 중이었던 어머니는 피난지인 여수군에서 아이[1]를 낳고 12일만에 36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몇달 후 아버지가 돌아와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남도 구례군에 정착해 농사를 짓게 되었다.
이후 고등학교 입학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구례농업고등학교[2]에 입학했고, 졸업 후 1963년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치외교학과(63학번)에 진학했다. 연세대학교 입학 후에도 '대학생이기 전에 먹고 입고 자는 것이 더 큰 문제'였던 그는 졸업할 때까지 그의 표현에 의하면 '지긋지긋한 가정교사 짓'을 해야 했기에 대학생활의 낭만 같은 것은 느껴보지 못했다고 한다. 대학 시절 한 번은 도저히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강도짓을 결심했으나 실행 직전 포기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경찰관」이 당선되었고, 1971년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았다.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200만원 현상 장편소설 공모에 추리소설 『최후의 증인』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날 입때껏 따뜻한 밥 한끼 먹어보지 못한 나에게는 장편소설 현상금이 군침을 돌게도 했다. 그래,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16년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현상 모집에 응모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추리소설 「최후의 증인」이 당선됐다. 그것이 당선되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만약 이것이 실패했다면 죽음밖에는 기다리는 것이 없었는데 다행히도 당선된 것이다.
출처: 自傳 에세이 나의길 <19> 金聖鍾 "나는 살고싶다"「고독한 自由人」, 동아일보 1990년 8월 19일 8면
출처: 自傳 에세이 나의길 <19> 金聖鍾 "나는 살고싶다"「고독한 自由人」, 동아일보 1990년 8월 19일 8면
김성종 본인에 의하면 1974년 당시 상금 200만원은 "당시 시세로 서울에 집 한 채 사고 결혼식 비용까지 해도 남았던 거액"이라고 한다.[3] 1971년경 출판사에서 일하다 만난 아내 최애경과 1974년 결혼했다.
1980년 서울특별시에서 부산광역시로 가족과 함께 내려와 이후 줄곧 부산광역시에 살고 있다. 1992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고개에 개관한 국내 유일무이의 추리미스테리 문학관인 '김성종 추리문학관'이 있다. 이후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아 부산광역시의회 의원 해운대구 제2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권영대 후보에 41.39%p 차이로 밀려 낙선하였다.
3. 작품 목록
- 최후의 증인 (1974년)
-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200만원 현상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1980년 이두용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1987년에는 MBC에서 드라마화 되어 방송되었다. 2001년 배창호 감독에 의해 흑수선 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영화화 되었다.
- 여명의 눈동자 (1975~1981년)
- 1975년 10월부터 1981년까지 6년간 일간스포츠에 연재.[4] MBC에서 드라마화 되어 1991~1992년 방송되었다. 여명의 눈동자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김성종의 원작은 상당히 외설적이고 수위가 높으며 자극적이다.
- 제5열 (1977~1978년)
- 1977년 3월부터 1978년까지 일간스포츠에 연재. MBC에서 드라마화되어 1989년 방송되었다. 이영하, 한진희, 박인환, 박근형 등이 출연하였다.
- 제5의 사나이
- 비련의 화인 (1986년)
- 제2회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수상작.
- 국제열차 살인사건 (1987년)
- KBS에서 백색미로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되어 1993년 방송되었다.
- 후쿠오카 살인 (2008년)
- 일본 후쿠오카를 배경으로 한 추리 스릴러. 후쿠오카 시내의 디테일한 묘사가 압권이다.
이 외에 수많은 작품들이 있으나, 만족도가 대단히 널뛰기를 한다.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들 중 대필작품이 아주 없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4. 기타
- 동생 김인종(金仁鍾)이 도서출판 남도(南島)를 운영하고 있다.
5.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부산광역시의회 해운대 2 | [[열린우리당|]] | 7,973 (21.24%) | 낙선 (2위) |
6. 참고자료
- 自傳 에세이 나의 길 (19) 金聖鍾 (1990년 8월 19일 동아일보 8면)
- 추리문학관 20년 : 나의 인생 나의 문학 김성종 (2012년 3월 31일 부산일보)
[1] 당시 김성종의 형제는 4남 1녀였다. 이때 태어난 여섯번째 아이는 곧 사망했다.[2] 현재 교명은 전남자연과학고등학교[3] 출처: 이승렬 (2013년 3월 28일), 국제초대석 <12> 김성종 추리문학관 관장, 국제신문.[4] 출처: 최보식 (2015년 6월 7일), 최보식의 만난 사람: 한국 추리소설의 代父 김성종, 프리미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