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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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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최일남
(1986)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87)
임철우
한승원
(1988)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우리들의 일그러진 英雄
파일: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jpg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373a3c,#dddddd> 장르 단편 소설, 사회 고발[1]
작가 이문열
출판 문학사상사
발표 세계의 문학 1987년 여름호
수록 구로 아리랑 (문학과지성사, 1987)

1. 개요2. 특징3. 등장인물4. 줄거리5. 결말6. 줄거리 해석
6.1. 석대 이야기6.2. 김 선생 이야기6.3. 교양물, 학원물 측면에서6.4. 그 밖에
7. 표절 의혹8. 미디어 믹스
8.1. 만화8.2. 영화8.3. 연극
9. 여담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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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문열의 대표적인 단편 소설. 한국의 현대사를 초등학교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로 표현한 우화라는 것이 보편적인 평이며 이문열은 이 작품으로 1987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2].

당시 심사위원들은 선정 이유에서 "이상이 살아 있어 이 작품을 접하더라도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으리라"며 극찬했다.[3]

2. 특징

대중적인 인지도가 매우 높은데 초등학교 교육 과정부터 국어 교과서의 단골 소재이며 시험 지문으로도 종종 등장한다. 영화화도 이루어졌으며 영화 또한 이문열 소설의 영상화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통한다. 이문열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역작이다. 과거 7차 교육과정 시절 5학년 읽기책에 실리기도 했다.

작중 시간적 배경은 1959년으로, 소설 초두에 "자유당 독재가 아직은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해…"라는 문구와 엄석대가 몰락한 시기를 다룰 때 "석대가 물러난 지 얼마 안 되어 4.19 혁명이 있었다"라는 문장이 있다. 어른 한병태가 과거 일을 떠올린 시기도 나름 의미심장한데, 군사 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시작된, 중학교 입학 후 26년 후인 1987년이다. 이를 근거로 역산하면 작중 한병태와 급우들은 1948년[4]이 되고, 작중 회상 시점인 1987년 시점에서는 39세이다. 엄석대는 "출생 신고가 늦었다"는 작중 언급을 고려하면 그보다 몇 살 정도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5]

파일:attachment/1293963612.jpg

영역판. 해외 독자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해외판은 엄석대가 성장해서 몰락한 첫 번째 결말이다. 이름 표기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문열'의 매큔-라이샤워 표기 'Yi Munyŏl'에서 특수 부호를 떼면 Yi Munyol이 된다.

이문열식 영웅 찬가가 새로운 발돋움을 했다는 평을 듣는 이문열의 기념비적 작품. 영화화되었고, 해외에 번역되어 출간되어 그의 명성을 쌓는 데에 가장 일조한 것으로 알려진 소설이다.

이문열은 《사람의 아들》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유명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문열을 중견 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해준 작품은 바로 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그만큼 이문열의 작가 경력에서 중요한 작품이며, 한국 문학사의 입장에서 봐도 여러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우선,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초등학교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구현한 솜씨가 매우 빼어나며 소설적 재미를 살렸고 통상적인 교양 소설의 형식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3.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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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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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잘나가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좌천[6]으로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하게 된 국민학교[7] 5학년 소년 한병태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당연히 학교도 시골에 있는 조그마한 학교로 전학했는데, 서울에서 유복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며 명문 초등학교에 다니던 병태에게 이사한 동네는 촌 동네, 학교 역시 초라한 시골 학교로만 비쳤다. 그리고 도시 아이를 외국인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보는 반 아이들도, 서울 학교 선생들과 달리 학생들에게 좀체 살갑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교사들도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런데 전학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무척이나 이상한 아이를 보게 되었다. 전학한 학급의 급장(반장)인[8] 반의 1짱 아니, 전교 1짱 엄석대이다. 그는 6학년이 아닌 5학년이면도 불구하고 전교(모든 6학년보다)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학급의 모든 아이들은 석대를 두려워하였고, 학급의 모든 대소사는 철저하게 석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담임을 비롯한 교사들은 이런 석대를 학업을 잘 하는 무척 훌륭한 아이로 평가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고, 석대는 그것을 바탕으로 폭력과 회유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사실상 학급의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런 석대가 두려워서, 그리고 다른 학생들도 모두 그랬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석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석대는 새롭게 같은 반이 된 병태 역시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만들려고 했다. 평등주의자인 병태는 석대의 독재에 반감을 품고 저항했지만, 학급의 상황은 이미 병태 혼자의 힘으로 대적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급장 선거도 결국 석대의 손아귀에서 굴러갔을 뿐이고, 심지어는 서울 및 모범생 출신이라 병태가 자신 있었던 성적조차도[9] 이기지 못해서 등수에서 밀려났다.

석대는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띄면 다른 아이들 소지품이건 뭐건 갈취하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어떤 학생이 학교에 아버지의 라이터를 가져와 자랑했는데, 몇 시간 후 잔뜩 풀죽은 모습이 되어있는 것을 보고 병태는 석대가 그것을 빼앗았음을 짐작하고 비리 고발을 노렸다. 그러나, 석대는 그것을 눈치채고 선수를 쳐 라이터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잠시 빌렸을 뿐입니다."하고 무마해버렸다. 물건 주인도 석대가 두려워 그의 말이 다 바르다고,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해버렸고, 고발을 노리던 병태는 증거를 잃고 망신만 당해버렸다. 물론 석대가 물건을 갈취할 때 '야, 이거 좋은데.', '그것 좀 빌려줘'라는 말을 실제로 하긴 했으나 말하는 태도를 보면 결코 글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님이 뻔히 들여다보였다. 전자는 이게 내 마음에 들었으니 알아서 갖다바치라고 눈치 주는 말, 후자는 (반항한다 싶은 경우)내놓지 못하겠냐는 협박을 돌려서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말이 빌려달란 것이지, 실질적으로는 빼앗아 차지하는 것이었고 그가 한번 가져간 물건은 결코 주인 손에 돌아오는 일이 없었으나, 이때만큼은 위험을 넘기고자 돌려준 것이다.

분명 규칙 위반은 맞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냥 넘어간 사소한 것들도 병태만은 칼같이 고발되어 혼났고,[10] 이런 일이 쌓이고 쌓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병태는 교사들조차 그의 이야기만 나오면 '쟤는 왜 저러니?' 취급 하는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성적도 떨어지고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해봐도 오히려 2차 가해만 당하며 힘겨운 학교생활을 이어가던 병태는 어느날 미화 시간에 창문을 닦는 일을 맡아서 열심히 닦았지만, 석대는 꼬장을 놓으며 보내주지 않았다. 병태는 열심히 닦다가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석대에게 복종했다. 이때 병태가 석대에게 투항하며 드는 심경 변화 묘사가 일품이다. 다음 날은 아예 샤프 펜슬까지 뇌물로 바쳐가며 석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자 석대는 병태에게 자신의 권력을 일부 맛보게 해주며 아예 자신의 오른팔 자리에 앉혔다.[11] 그동안은 불공정했던 싸움 권력 서열도 다시 바로잡았다. 친구들과 싸움에서 이기면 권력 서열이 올라가고 지면 내려가는 구조였지만, 병태가 싸웠을 때는 구경하는 애들이 비겁하게 뒤치기를 하거나 상대 아이를 일방적으로 응원하며 병태의 기를 꺾어 결국 병태가 질 수밖에 없게 조장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병태의 서열도 거의 꼴찌에 가까운 수준으로 내려간 것이다. 그런데 병태가 충성을 맹세하자 반대로 석대가 대놓고 병태를 응원하며 상대 아이의 기를 죽여서 병태를 오히려 실제 싸움 실력보다 조금 더 위의 서열로 올려놓았다. 본문에서는 '싸움 서열도 예전보다 두세 단계 오른 12번째로 올라섰다'고 나오는데, 한 학급이 60명 가량이던 시절이니 상위 20% 정도.

그리고 석대는 병태에게 다른 아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당번, 셔틀짓 등에서 제외해 주는 특권과 이익을 안겨주었다. 사실상 넘버 2로 올려준 것이다. 석대가 주는 달콤한 특권에 맛을 들어 병태도 점차 급우들과 동화되었다. "내가 주는 물건은 받지 않았고, 어쩌다가 한번 받게 되면 반드시 배로 갚아주었다."고 묘사한다. 그런데 결국은 석대가 다른 학생들에게 뺏은 것을 준 것이라서 병태는 내심으로 찝찝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병태는 수학 시험 시간에 석대의 측근 박원하의 이상한 행동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자기 이름을 지우고 석대의 이름을 쓴 것이다. 까막눈이 아닌 이상 자기 이름조차도 쓸 줄 모르는 바보는 없었기에 병태는 남몰래 원하를 찾아가 꼬치꼬치 캐물었고, 원하는 망설이다가 석대의 부정행위 사실을 얘기해주었다. 짧은 부정행위 과정을 살펴보자면, 수학 실력이 부족한 석대와 수학을 잘하는 원하가 나란히 수학 시험을 친다 → 원하는 시험지에 석대 이름을 적어서, 반대로 석대는 원하의 이름을 적어서 내는 성적 바꿔치기.

원작 내용 중 보통 석대의 과목을 대신 시험 친 애들은 보통 그 과목에서 10점 이상은 기본적으로 손해 보고 들어간다고 했다. 작중에서도 이 이야기를 들은 병태가 원하에게 "그럼 너는 최소 15점은 손해를 보잖아?"라며 경악했다. 하물며 그 시대는 중학교도 입시 시험을 치고 들어가는 시대였으니 더욱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원하는 워낙 오래 굴종해온 처지라 그런지, "너는 눈치 봐서 그림을 두 장 그리면 되니까 좋겠어."라고 내심은 병태를 부러워하는 말을 하고도 "그런데 석대는 무조건 나한테만 부탁하지 않고 시험마다 번갈아서 시키기 때문에 나름은 공평해. 또한 우등생 하나한테 두 과목 이상을 부탁하는 일이 없기에 나는 다른 과목에서 다른 애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으니 공평한 거야."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석대를 옹호했다. 또한 석대가 과목당 80점 정도는 받았고 두 과목 정도는 대리 시험 셔틀을 두지 않고도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12]

엄연히 상위권 성적에 속한 병태는 미술 시간에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비교적 사소한 셔틀 짓을 자발적으로 했기에 대리 시험에서 제외되어 있던지라 이런 부정행위를 쭉 몰랐다.[13] 더구나 자기 점수를 아예 석대에게 갖다바쳐야 한 다른 과목들과 달리 미술만큼은 예외적으로 정해진 시간 내에 하나는 석대 것으로, 하나는 자기 것으로 총 두 장을 빨리 잘 그려서 낸 것이며, 시간 손해는 있었을지언정, 점수 손해는 없었다. 덕분에 병태는 학급 2등은 확실하게 지켰고, 석대를 제외한 급우들 중 유일하게 전교 10등 이내에 들어갔다.[14] 물론 석대가 병태를 특별 취급 해준 것도 있지만.

병태는 이것을 교사들에게 고발해야 할지 고민했다. 모른 척하기엔 찜찜하고, 그렇다고 고발에 성공해 교사들이 석대를 처벌해도 자신이 예전보다 더한 아싸 생활을 해야 될지도 몰랐고, 더욱이 라이터 사건의 실패를 겪었기에 일단은 함구하는 길을 택했다. 또한 석대가 다른 상위권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 것에 침묵하면 2등을 거저로 얻을 수 있단 이유도 있어서 일부러 모르는 척을 택한 것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에 석대가 벌인 시험 뒤풀이에 따라가야 했기에 선생님에게 고발할 기회가 없던 것도 이유였다. 석대는 그날의 뒤풀이를 거의 병태를 위한 자리 수준으로 만들었고, 그때 따라간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음식을 가져오게 하거나 용돈으로 군것질거리를 사 오게 하거나[15] 하다못해 모닥불용 장작을 주우라고 보내놓고 병태는 그냥 옆에 앉히고 잡담이나 했다. 권력을 맛본 병태는 석대의 체제에 안주하기로 했다.[16]

그리고 한 해가 지나 학년이 바뀌었다. 병태와 석대는 6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고, 서울에서 새로 부임한 젊은 남교사인 김 교사가 담임이 되었다.

그런데 김 교사는 초반부터 이상한 분위기들을 여럿 느꼈다. 급장 선거를 했을 때 상술됐듯이 만장일치로 석대를 뽑은 것이다. 총 61표 중 무효표 1표와 석대 본인의 표를 제외하고 전원 일치였다. 결과를 본 김 교사가 재투표를 지시하자 다른 후보 9명이 나왔지만, 학생들이 손을 쓴 게 다른 후보 8명에게 단 1표씩만 주고 석대에게 51표를 몰빵한 것이다(나머지 후보 1명에게는 석대가 주었을 것이다). 김 교사는 별수 없이 인정했지만, 묘한 분위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명색이 2년간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아이가 정작 수업 시간 중 문제 풀이 시간에는 몰라서 쩔쩔매는 것에도 의심을 품었다. 선생님은 문제가 조금만 어렵다 싶었을 때마다 바로 석대에게 나와 문제를 풀게 했는데, 특히 한두 과목은 수월하게 풀었으면서 다른 건 전혀 못 한 것이 더욱 의심을 불렀다. 아이들이 담임 교사가 아닌 석대에게서 청소 검사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검사받는 등의 알려진 평판과 실제 행동이 전혀 다른 것 역시 의심을 증폭하였다.

그 때문에 김 교사는 석대를 수상히 여기기 시작했다. 다른 교사들에게도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자기가 잘 알아서 하는 학생이다', '성적도 1등, 청소도 1등, 운동도 1등인 학생이다', '석대 반은 뭐든 1등 반이다' 등등 여전히 둔감한 반응을 드러냈다.

석대는 대리 시험이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그만두어 성적을 떨어트리면 전교 1등이 된 것을 의심받을 게 분명했기에 대리 시험은 포기할 수 없었고, 나름대로의 술수를 부리며 감시망을 벗어나려 했지만, 상술하였듯 새 담임 김 교사는 기존의 교사들과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새 학년이 된 지 한 달 무렵은 사건이 터졌다. 학교에서 시험을 하나 쳤는데, 석대의 시험지에서 다른 이름을 쓰다 지운 자국이 발견된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 성적도 조금 이상해했는데, 상술됐듯이 석대는 독보적으로 전교 1등을 차지했으나, 다른 상위권 아이들은 병태를 제외한 나머지가 전학년 10등 밖으로 밀려났으니. 암만 봤어도 성적 조작이 확실하였기 때문에, 김 교사는 예리한 직감으로 석대가 부정 시험을 치렀음을 알게 되었으며, 석대에게 무지막지한 체벌을 했고, 결국 석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잘못…했습니다."라며 처음으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였으며, 그런 석대에게 김 교사는 교탁에 꿇어앉고 손을 들게 했다.[17]

이어 김 교사는 석대의 대리 시험 셔틀들[18]을 불러내어 누가 셔틀을 시켰는지 질문했고, 석대가 이미 약해진 것을 본 셔틀들은 석대가 시켰다고 자백했다. 김 교사가 그들에게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각자 죄스럽고 들킬까 봐 겁이 났다는 답이 돌아왔다. 잠자코 듣던 김 교사는 마지막 아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자기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모르고 부당함에 굴복한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놈들이다."라고 일갈하며 이들에게도 체벌을 했다.

그리고 김 교사는 석대의 잘못을 출석 번호대로 차례차례 고발하라고 했고, 아이들은 석대의 잘못들을 너도나도 꺼내 담임에게 일러바쳤다. 원작에서는 뒤로 갈수록 석대에게의 '임마', '새끼', '자식' 등 상상도 할 수 없던 욕설들이 튀어나왔으며, 나중에는 대화의 방식도 선생님에게 이르는 식에서 석대 면전에다 쌍욕을 퍼붓는 식으로 변했다고 두루뭉술하게 서술했다.[19]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석대를 매도하는 와중에 병태만은 전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석대의 잘못을 단 한마디도 고발하지 않았다. 이런 병태의 행동에 대한 작중 설명은, 비열한 학우들과 소신을 가진 자신은 다르단 것. 병태는 이 시점에서 학우들이 석대가 실각하기 전에는 오히려 누구보다도 석대한테[20] 덤빌 배짱도 없이 휘둘리며 아첨하고 꿀 실컷 빤 데다가 심지어 자기가 석대에게서 멍석말이를 당했을 때도 방관하는 정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석대 편에서 자기를 괴롭힌 주제에 이제는 석대가 박살 나자 손바닥 뒤집듯이 배신하여 힘이 더 센 담임 편에서 등 밟으면서 까대는 거라고 생각했으며, 이 모습을 경멸을 넘어서서 혐오에 가깝게 보고 있었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석대 왕국에 남은 병태의 심리는 줏대 없이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반 아이들에 관한 반발 심리였다.[21] 비단 학생들 사이에서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는 더욱 비일비재한 일임을 생각해보면 씁쓸해지는 대목.

덧붙여 병태는 의외로 석대의 악행을 잘 모르기도 했다. 5학년 한 학기 동안 석대에게 반항하다 반에서 왕따로 지내고 나머지 한 학기는 역으로 석대의 오른팔처럼 지냈기에 속을 터놓고 지낼 친구는 없었다. 게다가 교활한 석대는 병태를 괴롭혔을 때도 뒤에서 시켜서 음습하게 괴롭히는 식으로, 병태 앞에서는 악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다.[22] 병태도 알고 있는 어지간한 잘못은, 병태의 번호가 뒤 번호이다 보니 다른 애들이 이미 다 말했고.

이때 학우들의 추태가 다시 한번 드러나는데, 병태가 자기들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석대 왕국을 배반하지 않자 담임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병태마저 고발하였다. 병태가 석대에게서 평소는 더 좋은 대접을 받았기에 저런 행동을 한다느니...[23] 김 교사는 알겠다고만 하고 다음 아이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모든 학생의 발언이 끝난 뒤, 김 교사는 아이들이 지난날에 겪은 비열함의 값과 앞으로 삶에서 교훈의 값으로 모든 아이들에게 체벌 5대씩을 하였다. 석대와 셔틀들을 때렸을 때와 똑같은 파워의 매질이었다고 한다.

결국 김 교사는 석대 왕국을 완전히 토벌했다. 그리고 급장 선거가 다시 치러졌는데, 완전히 몰락한 석대는 자신의 표가 하나도 나오지 않자 학교에서 뛰쳐나갔고,[24] 이후에는 등굣길에서 애들을 습격하며 끈질기고 집요한 복수를 하였고, 아이들은 담임인 김 교사한테 고발하였다. 한데 김 교사는 오히려 고발한 아이들을 심하게 나무랐다. 석대에게 당한 것을 일러바친 아이들에게 오히려 "너희들은 손 묶어 놓고 있었어? 다섯 명이 한 명한테 하루 종일 끌려다녀? 병신같은 놈들!" 이라고 일갈하면서 "왜 너희가 스스로 대항을 못 하고 어른의 힘을 빌리려 하는 거야?"라면서 가차없이 비난하고 체벌까지 가했다.[25] 그러자 아이들은 이판사판으로 석대한테 1 대 다수로 덤볐고, 결국 석대를 눌렀다.

반 아이들 중 싸움을 잘 한단 소전거리 아이들 다섯이 석대와 맞붙었다. 석대는 그날도 똑같이 아이들을 압도하였지만, 아이들이 5:1로 기를 쓰고 협공을 했으니 석대도 결국 밀리고 도망쳤다.[26] 이후 미창에서도 엄석대가 기습했으나 똑같이 박살이 나고 결국 동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김 교사는 당시 아이들에게 인기 있던 책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저서로 유명한《용기 있는 사람들》을[27] 복수에 성공한 아이들에게 선물한 다음, 반 아이들한테 그들을 굉장히 치켜세우는 식으로 아이들에게 앞으로의 삶에서도 역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라고 자극했다.[28]

자취를 감춘 석대는 외조부모를 버리고 재가한 어머니가 계신 서울로 떠났다는 소문만이 들려왔다고 한다. 영화판에서는 석대가 병태에게 "너 창신동이 어디있는지 알아?"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아마도 창신동으로 간 듯하다.

5. 결말

시간이 흘러 병태는 지극히 평범한[29] 인생을 바쁘게 살아가던 도중, 가족과 휴가를 보내려고 기차를 타고 지방으로 갈 때 강릉역에서 석대를 우연히 보게 된다.

잘나간다는 소문이 무성하던 그였지만 형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두들겨 맞고 체포돼 연행되는 모습이다. 눈이 마주친 순간 병태는 석대를 알아보나, 석대도 알아보는지는 알 수 없다.[30] 병태는 그날 저녁, 자고 있는 가족 곁에서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을 마시다 눈물을 흘린다.[31]

2005년경 작가의 말에 또 다른 결말을 언급했는데, 석대가 화려하게 성공하는 결말이다. 병태가 가족과 바다로 여행을 갔다가 숙소를 잡지 못하고 있던 도중, 우연히 만난 석대가 병태를 알아보고 여행 동안 지낼 수 있도록 고급 호텔을 잡아주게 된다. 그날 저녁 석대는 병태의 가족에게 만찬을 제공하고 병태와는 단둘이 술을 마시러 가는데 석대는 "나중에 들었다. 그 무효표 둘. 한 표는 틀림없이 너의 것이었겠지. 세월이 지나도 그 귀중한 한 표를 잊을 수 없었다."라고 하며 병태를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32] 그리고 병태가 방에서 나가는 석대를 앞질러서 오래전부터 모셔온 사람처럼 문을 열고 맞이하며 끝난다. 단, 이 결말은 정식 결말이 아닌 개정판을 내면서 작가가 일종의 부록으로 첨부한 것이다. 개정판에서도 본문은 원래의 결말대로 끝을 맺는다.[33]

무엇보다도 악인이 나중에 잘 먹고 잘산다는 결말은 뭔가 찝찝하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현실 반영이라고 하더라도 꼭 모든 케이스가 그런 건 아니라서 이 결말은 사족에 가깝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문열 본인도 이걸 알았기 때문에 부록의 개념으로 첨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병태가 어린 시절에 석대를 모시던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처럼 엄석대를 앞질러 나가서 문을 잡아뒀다느니 하는 묘사는, 아무리 하이퍼 리얼리즘이니 악인이라고 무조건 잘못되는 게 아니라느니 변명을 해대도 이 정도의 결말을 내린 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꽤나 불쾌감을 가져올 수도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작가 스스로도 세 번째 결말도 존재했으나 '작가 본인도 찾을 길이 없다'고 언급했다. 석대가 몰락했는지 성공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한다.[34]

6. 줄거리 해석

90년대부터 꾸준히 교과서에 실리는 작품이기 때문에[35] 이 작품과 그 해석 또한 널리 알려졌다.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이 작품을 정치적인 우화로 해석하는 경향인데, 이는 90년대에 교과서에서 채택하면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식된 해석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면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씩 해석이 달라진다. 당시에는 부당한 권력이나 독재의 종식을 이야기하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양상을 띠었다.

현재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으로 종식되고 새로운 폭력의 시대가 열리는 것에 대한 냉소, 그리고 주인공 병태가 향수를 느끼는 장면 등을 들어서 권력을 순응하고 동경하는 자세를 그린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문열이 이 소설의 결말 부분을 개작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퍼졌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석대가 경찰관에게 끌려가는 결말은 발표 당시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아마도 영화판의 결말이 소설과 다른 뉘앙스로 마무리된 것이나, 또는 2005년 출간 버전에서 또 다른 결말을 작가의 말에서 함께 실어놓은 것이 결말이 개작되어 바뀌었다고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결론을 짓자면, 우선 어떤 결말이든 한병태의 태도가 찜찜하게 끝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그저 한 소시민의 씁쓸한 회상인지 권력에 대한 향수와 동경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병태는 분명 변화된 시대상의 불만족에 빠져 있으며 동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석대의 몰락과 그 이후의 과정에서 강한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석대의 경우도 끝이 좀 다르긴 하지만, 또 한 번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 자체는 동일하다.

이를 통해, 작가가 긍정과 부정을 떠나 한국의 현대사 흐름에 강한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음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식자층이 느껴온 어떤 무기력과 회의주의적인 감성이 나타난다는 측면, 다른 하나로 작가 개인의 보수적인 입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측면이 있다.

사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지식인층의 무력감은 리얼리즘 계열 작품에서는 흔하게 묘사된다. 오히려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작품들은 대체로 혁명가독재자로, 이념가가 현실에 매몰된 속물로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 또한 결코 무탈하게 지나오지 않은 만큼, 그 과정에서 식자층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만족은 문학 작품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이 작품에서 다루는 바는 오히려 주류적인 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뚜렷한 정치적 스탠스의 문제라기보다는 식자들 사이에 만연했던 회의주의적인 자세, 현실 순응적인 자세를 여과 없이 묘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인공 병태가 스스로의 굴종을 타락이라고 인지하고 있으며 작중 스스로의 입으로 "굴종의 단맛에 취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석대가 몰락하기가 무섭게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인 김 선생에게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며 병태가 느끼는 아이러니는, "나는 너희들보다는 지조가 있다."라는 냉소처럼도 읽히며 "지금 설레발을 치는 너희나 나나 똑같지 않느냐? 왜 (내가 투쟁했을 때) 나에게는 아무도 호응해 주지 않았느냐?"라는 비난처럼 읽히기도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결말부에서 병태가 '석대의 새로운 왕국이 생기고, 거기에서 예전과 같은 호사를 누리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다(판본마다 조금 다르긴 하다).

위와 같은 대목들에는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는데, 첫째는 작중 병태는 바뀐 환경에 대해서 강한 괴리를 느끼는 캐릭터이며 항상 거기에 쫓아가지 못하고 소외되는 인물이다. 둘째는 결말부의 병태는 보잘것없는 소시민 신분으로 각박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무엇보다 석대는 결국 또다시 실패하고 잡혀가는 신세로 나온다.

여기서 나타나는 병태의 감정은 결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자기 삶에 대한 자조에 가까운 것이며 당시 한국 사회에 고개를 들기 시작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생각해 보면 자포자기에 가까운 망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 뒤에 나온 다른 작품들, 특히 90년대 이후에 보여준 작품 활동에 대한 비판이 이 작품으로 번진 것도 고려해야 한다.

결론을 내자면,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우화라는 양식에 충실한 작품이다. 정치색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른 이문열의 작품들, 장편 선택, 시인이나 단편 〈아우와의 만남〉, 〈구로 아리랑〉, 〈달아난 악령〉 등과 달리 노골적이지 않다. 정치색에 대한 여과 없는 어필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후의 몇몇 작품들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러한 작풍과 비교하면 명백하게 차이가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일그러진 영웅'이며 그 성장과 절정, 그리고 몰락,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어지는 '영웅의 연쇄'에 있다. 그 사이에서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식자이든 소시민이든 그 틈바구니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이 느끼는 아이러니가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다.

마지막으로, 작품 해석과 다소 동떨어진 부분으로 서울에서 부임한 김 선생의 입장에 대한 해석에도 논란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작품 전체의 해석과는 연관된 부분은 아니다. 우선 김 선생이 석대와 마찬가지로 폭력과 정치적 술수로 권력을 장악한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김 선생의 역할을 통해 '영웅의 연쇄'라는 순환 고리가 완성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도 똑같다. 그러나 분명히 작중에서 김 선생은 또 다른 폭력이며 그 증거로 병태가 초기 석대에게 느꼈던 저항감을 김 선생에게도 똑같이 느끼는 점을 보아야 할 것이다. 김 선생을 '해방자'로 해석하는 경향은 작품의 해석을 '독재 타도'로 보았던 과거의 것이며 오히려 김 선생이 '해방자가 아닌 또 다른 억압자'로 해석된 것이 이 작품을 재평가하게 된 계기였다. 이문열 자신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철저하게 우화적인 구도를 가진 소품이다. 거기서 석대가 보여 주는 행태의 원관념은 정당성과 정통성이 없는 권력이고, 그를 둘러싼 분단장급의 상위 그룹은 지식인 출신의 관료 내지 행정 기술자들이다. 첫 번째 담임 선생은 미국이며, 그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레이먼드 보너가 '독재자와의 왈츠'라 이름 붙인 미국의 6, 70년대 외교 정책이다. 또, 두 번째 담임 선생은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이념이며, 그가 아이들의 의식을 일깨워 주는 방법은 그 폭력성에 다름이 아니다.

6.1. 석대 이야기

병태는 석대한테 굴복하였지만 석대 입장에서 보더라도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비교적 석대 치하에 머무른 시기가 짧아 자유에 대한 갈망도 더 컸던 병태는 무려 반을 넘어 사실상 학교 전체를 적으로 돌린 채, 한 학기가량을 버텨냈다. 한 번 꺾이긴 하였지만, 언제 다시 병태가 반란을 노릴지 모르는 상황이던 것이다. 물론 석대가 세워놓은 왕국이 너무 거대하고 강해서 병태 혼자서는 무리였지만 아예 이런 시도 자체가 없던 이전과는 달리 외부의 저항을 최초로 받은 석대 입장에는 나한테 도전하는 놈도 있을수 있구나 라는 사실을 느끼고 경각심을 가지는 계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겉으로는 잘해주는척 하는 식으로 티가 나지 않게 괴롭히며 기세를 확실히 꺾어주었고, 마침내 병태가 굴복하자 많은 특혜를 주며 특별 대우까지 해주면서 우대한 것이다. 꽤나 소름 끼치는 부분인데, 실제로 많은 독재자들이 자신의 반대 세력에 있다가 전향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특권을 안겨주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작중 주인공이자 화자가 병태이기에 석대의 심리는 전혀 묘사되지 않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석대 입장에서 병태란 인물이 부담이 전혀 되지 않을 리가 없다. 병태는 자신의 왕국에 속한 이도 아니었고 머리도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공무원. 좌천되었다고는 하나 그냥 말단 공무원도 아닌, 군수 다음 가는 자리인 총무부장 자리라 5급 사무관이 기용되는 실세로,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시대상 굉장히 좋은 직업이었고, 위세도 있는 직장이었다. 그런 석대 입장에서 병태가 자진해서 항복해 왔을 때는 반역 의지를 꺾어놓기 위해서 잘해준 것이 분명히 더 컸겠지만, 내심으로는 무려 최초로 자신한테 도전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강적이었던 병태를 자신 한테 귀속 시킨것에 관한 기쁨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병태처럼 영리하고 총명하며 소신있는 아이는 무작정 적으로 돌리기엔 너무 쓸모 있고 유능한 아이였다(아마 자신의 인생에서 병태처럼 유능한 인물은 최초였을듯 하다).

이렇게 지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잔머리와 공부머리는 엄연히 별개. 석대의 성적과 실제 나이를 고려해 볼 때 그의 실체는 사실상 열등생에 가깝다. 석대는 출생신고가 늦어졌다는 언급을 보아 급우들보다 연상으로 추정되는데, 국민학생 신분인 주제에 중학생들을 부리고 심지어 고등학생들과 섞여 다닌 것을 보면 영락없는 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학년 정도 나이다. 그 나이에 초등학교 5학년 시험에서 80점을 받았으면... 게다가 다른 진짜 우등생들은 모든 과목에 시간을 투자하고도 90점 이상을 받을 수 있었으나, 자신은 나머지 과목을 다 대강대강 하고 두 과목에 공부를 몰빵했어야만 겨우 90점대를 받았으면 말이다.[36]

6.2. 김 선생 이야기

나는 되도록 너희들에게는 손을 안 대려고 했다. 석대의 강압에 못 이겨 시험지를 바꿔준 것 자체는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너희들의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듣게 되자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뺏기고도 분한 줄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이라는 너희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모두 교단 위에 손 들고 꿇어앉아 다시 한번 스스로를 반성하도록.[37]

폭압적이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권력자인 엄석대, 거기에 저항하나 결국 무너지고 석대의 회유에 넘어가는 소시민적 지식인 병태, 석대의 압제에 굴복하는 학급 아이들의 경우 소설에서의 성격이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으며 또한 비유한 세력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적은 편이지만 소설 후반부 등장하는 김 선생의 경우에는 상당히 입체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대다수의 해석에선 김 선생 역시 석대와 똑같이 '폭력과 권모술수'를 통해 학급의 정권을 탈환하고 석대 비판 작용을 통해 새로이 권력을 공고히 한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영화판의 결말에서 등장하는 '국회의원 김 선생'의 모습은 이러한 의식을 보다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던 담임 선생님은 장례식에 와서 그 개막장스러웠던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훌륭한 교사"라고 치켜세우는 아부까지 하고 있는 변절해 버린 모습이 나온다.[38]

이러한 해석을 기반으로 하였을 경우 김 선생은 '기존 압제 세력을 제거하여 권력을 가지려는 새로운 압제 세력'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문열의 언급으로 인하여 이런 해석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김 선생의 사회적 위치나, 극 중 배경인 1960~1970년대를 생각해 보면 김 선생을 '해방자 같은 압제자'로 보기만도 어려운 노릇이다. 일단 석대와는 달리 김 선생은 '교사', 즉 '학급 운영에 대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한을 가진 인물'이며 석대도 김 선생에 비하면 하급자에 지나지 않는다.

석대는 전 학급 담임 선생의 방관과 신임 속에서 힘을 얻었을 뿐이고, 반장이라지만 결국 일개 학생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애초에 더 상위에 있는 사람에게 '압제자'라는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애초에 지휘권이나 교육권을 가진 자가 지시하는 것이 불법은 아닌 데다가 오히려 사적 제재를 가하는 불순분자를 뿌리 뽑는 것이 지휘권을 가진 자의 의무다.

즉 김 선생이 석대를 축출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정당하며 애초에 석대와 김 선생은 '같은 권한을 가진 자'가 아니다. 석대도 김 선생의 지시와 교육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엄석대 역시 학생이고 학생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 지시에 순응할 의무가 있다.

방법의 문제는 있었겠지만, 오히려 김 선생이 석대의 권력을 그대로 두고 보거나 전 담임처럼 이용했다면 그것 자체가 직무 유기이며, 방조죄이다. 선생의 제1의무는 '학생의 지적 수준을 특정 수준 이상까지 향상시키는 것과 학생의 인격적 도야를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김 선생이 석대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이 있었으나, 1960년대 당시에는 오히려 그 방법이 교육의 왕도였다.[39] 요즘에는 이런 학생에 대한 체벌이 절대악으로 취급되고 있으나 불과 수도권은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반, 지방은 2010년대 초~중반만 해도 체벌은 정당한 교육 방법으로 인정을 받았었다.

그 이전까지는 부모들이 교사들을 찾아가서 회초리를 선물하며 우리 아이 사람 좀 되게 최대한 많이 때려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도 볼 수 있었고, 아이가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맞은 걸 항의하러 찾아가면 되려 집에서 그리 오냐오냐하니까 애가 그 모양 아니냐고 학생을 팬 교사가 학부모에게 호통을 치며 훈계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상황이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에서 교사에게 맞은 것 이상으로 가정에서 부모에게 맞았던[40] 상황으로, 잘못 툭 치기만 해도 부모들이 빼액거리고 학교가 뒤집어질 뿐만 아니라 교사가 아동 학대로 몰려 직위 해제 당해 학생들과 강제로 격리되는 2010년대 후반 ~ 2020년대 이후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다른 학생들은 죄가 없지만 대리 시험의 당사자가 된 다섯 학생들은 분명히 잘못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대리 시험을 시도하다가 걸리면 학교 차원에서 출석 정지, 전학, 퇴학, 국가시험에서도 중대한 부정행위이기에 시험 자격을 수년 박탈하는 경우도 있다. 김 선생은 그 시절 당시 기준으로는 과도한 체벌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 선생은 학생들에게 매질을 가했지만 부정을 저지른 학생들이 학교 차원에서의 공식적 처벌을 받았다거나 부모에게 혼났다는 말은 없던 걸로 보아 주변에 알리지 않고 학교에서 끝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무르게 끝냈다고 해석하기도 충분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김 선생은 '돌아온 압제자'가 당연히 아니다. 이 경우 김 선생은 석대의 불법적인 권력과 권위를 제한한 선생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인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되면 김 선생은 부당한 권력이 횡행하던 학급을 제 상태로 되돌려 놓은 '해방자'로 해석을 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김 선생은 압제자, 해방자 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입체적 인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김선생은 폭력을 동반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했을 뿐이고, 민중에게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하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측면 때문에 해방자적인 면이 있을지언정 순수한 해방자가 되기는 힘들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무능하고 폭력과 억압의 질서를 방기하는 관리자인 5학년 담임보다는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나, 무능한 민중이라는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이문열 특유의 허무주의로 이어지기 쉽다.

그리고 김 선생에 대한 해석 문제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 중 하나가, 김 선생에 의한 해방은 철저하게 '피해자 자신이 전적으로 그 대가를 부담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석대에 의한 강압적 지배 구조에서 학생들은 설령 굴복하고 영합했을지언정 한편으론 일종의 피해자였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김 선생은 학생들 또한 피해자였다는 점을 고려하기보단 이들을 강압하여 석대에 저항하게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즉, 석대의 독재로 인해 입은 피해에 더하여 석대에게 저항하는 대가까지 치르게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작품에서 다루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는데, 석대가 가진 최대의 권력 기반은 교사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41] 실제로 병태가 석대에게 저항하던 시기에 석대는 주로 숙제 검사나 소지품, 복장 검사, 청소 검사 등 교사의 권한을 대행하는 영역에서 병태를 탄압했다.

즉, 5학년 때의 담임은 단순히 석대가 반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방치한 것만이 아니라, 폭력의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방조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석대에게 굴복한 학급 아이들과 달리 잘못을 저지른 것은 석대의 폭력을 방조한 5학년 때의 담임인 최 선생이다. 이는 현대 대한민국이라면 교직에서 파면되고도 남는 것은 물론이요, 직무 유기 죄로 형사 처벌까지도 가능한 중범죄이다. 그리고 책임자로써의 방관도 공범이라는 논리로 보면 이 5학년 담임을 방관한 또는 석대를 방관한 대다수의 교사들도 김 선생이 말하는 불의를 보고도 분한 줄 모르는 일명 비겁자들이다.

김 선생이 석대를 방조한 것은 아니지만, 학생 대 교사라는 권력 관계 내에서 동료 교사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김 선생의 해결책은 교사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은 아이들에게 교사의 잘못을 만회할 책임까지 떠넘기는 것이었다. 특히 석대가 학급 아이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폭행을 가하던 시기에도 교사라는 입장에 있던 김 선생을 위협했다는 이야기는 작중에서 전혀 나오지 않는다.[42]

결국 김 선생은 석대 문제의 책임을 이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인 최 선생이 아니라 만만한 학생들에게 전가하고,[43] 자기 자신은 편안하고 안전한 위치에서 학생들을 싸움터로 내몰았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 이 부분에서 학교 권력 관계의 최상위 구조인 교사-학생 간의 역학 관계와 이로 인한 책임 문제가 작품 중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렇다고 김 선생이 모든 걸 학생들에게 전가했다고 볼 수도 없다. 김 선생의 발언과 행동을 보면, 단순히 학생들에게 대처를 떠넘긴 게 아니라 불의에 저항하지 않고 굴종하는 짓을 꾸짖은 것이다. 수단이 강압적이고 인도도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김 선생의 목적은 학생들의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행태[44]를 꾸짖음으로써 스스로 불의에 맞서 능동적으로 대항하게 만드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따돌림의 대상을 석대로 바꾸고 내쫓아 버림으로써 문제를 배제한 것이기에 진정으로 학생들의 의식 성장을 노렸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참고로 지금은 소설을 정치에 대입하는 것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정치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가르치진 않지만 과거에는 최 선생을 이승만으로, 그리고 석대를 이기붕곽영주로 해석하고 김 선생을 박정희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봤을때 현 586 출신 과거 운동권 국회의원들의 면모와 같아 이문열 작가의 전체적인 사람의 행동 양식의 흐름을 묘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즉, 이기붕이나 곽영주 등이 대통령의 힘을 업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자신을 비호해 주는 이승만(=합법적 권력, 담임 선생인 최 선생)이 하야하자 급격히 힘을 잃고(=일개 학생에 불과하므로) 박정희(=새로운 권력자인 김 선생)에 의해 축출되었다는 것. 그리고 위 서술에도 나오듯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결국 이런 흉포한 권력을 사실상 묵인하거나 몰랐던 담임 선생님에게 있었듯, 실제적 악인은 이승만이지만 정작 본인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천수를 누린 반면 그 아래 있는 사람은 축출되어 사형까지 당했다는 점, 그리고 새로운 권력자가 새 질서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6.3. 교양물, 학원물 측면에서

작가 이문열이 2010년도 인터뷰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성장 소설"이라고 코멘트한 바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말하는 덕분에 권력에 순종하면서 사는 게 좋다는 역설적인 교훈인가?" 하는 야유도 있다. 그러나 이는 성장 소설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 교양 소설, 성장 소설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는 인간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자연주의 계열에서는 오히려 속물적으로, 타락하는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는 인간을 통해서 인간성이 얼마나 쉽게 유린될 수 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그 인간성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보통 독자들에게는 믿기지 않겠지만 사드 후작의 대표작들 또한 성장 소설, 교양 소설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한병태의 타락과 자포자기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한 소년이 불의를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높여간다는 점에서 분명 성장 소설적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이 소설은 '학원 소설' 측면에서도 읽힐 수 있다. 특히 소위 빵셔틀로 요약되는 학교 폭력 문제의 현실을 보면 이 작품은 수십 년 전 작품임에도 오늘날 교실 내에서의 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매우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 집단 괴롭힘에 대처하는 실질적인 해결 방법은 교사나 공권력에 의한 통제밖에 없으며, 이 구조가 수십 년 동안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걸 볼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45]

학교 폭력이라는 관점에서 이 소설을 바라보면, 소위 "일진"인 석대와 그 패거리가 병태를 "왕따"로 만들고, 복종시킨 다음에는 "셔틀"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석대의 일진-셔틀 행위는 집요하고 치밀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석대는 단순히 폭력을 휘두르는 깡패가 아니라,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이진'들을 조직하여 다양한 이득을 꾀한다는 점[46]에서 깡패내지는 조직폭력배의 학교 버전으로서의 일진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또한 석대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혹은 실체를 눈감아주면서 오직 '성적'과 '질서'에만 골몰하는 교사들의 모습, 병태가 석대의 일진 패거리에 붙어서 또 다른 왕따를 만들고 으스대는 모습, 종국에 석대에게 대처하는 방법마저도 "폭력 교사"에게 석대가 학교에서 "짤리는" 결말, 그 폭력 교사인 김 선생마저도 결국 아이들을 내몰아 석대를 공격하는 '또 다른 집단 괴롭힘'을 저지르며, 교육자로서 석대를 대하기보다는 '문제아를 잘라내는 활동'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일선 교육 현장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런 요소들은 오히려 최근에 발표된 학교를 소재로 한 소설들보다 적나라하다.

또한 작중 김 선생은 아이들의 저항 정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체벌을 가했으나, 당시가 아닌 현대의 일선 교육 현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교사는 "일진 한 마리한테 몇 년을 휘둘린 애들을 보듬어주진 못할망정 어디서!"라는 비난부터 들을 것이다. 특히 학교 밖에서 석대에게 보복 폭행을 당한 것을 일러바친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 가혹한 체벌을 가한 것은 현대 대한민국의 정서로는 빼도 박도 못하는 학부모 민원 대상이며, 더 나아가 해당 교육지원청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을 처벌한 것이니 말이다.[47]

6.4. 그 밖에

이문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일그러진 영웅"형 인물이 이 작품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이전에도 일그러진 영웅형의 인물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 소설에서 엄석대를 기점으로 하여 이러한 인물상이 뚜렷하게 확립되었다. 이문열의 데뷔작인 〈나자레를 아십니까〉에 나왔던 목사의 아들이 일그러진 영웅의 시작 지점처럼 보이기는 하나, 이는 오히려 훗날에 나타나는 타락한 지식인, 냉소적인 지식인의 형태에 가깝다.

여기서 나타난 석대의 처참한 몰락은 후대의 일그러진 영웅들에게는 없는 것인데, 이에 따라 석대 자체도 "보다 큰 권력의 용인하에 설쳐댄 나팔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의 작가인 이문열 특유의 엘리트 의식이 나타나는 소설이라는 평가도 있다. 우선 병태가 전학 초기에 보였던 태도는 전형적인 엘리트 의식의 발현이고 병태가 전반적으로 보이는 식자적 태도, 그리고 결말부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몰락한 인간이나 실패한 인간으로 치부하는 태도에서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엘리트 의식을 싫어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문열의 부정적 특징이 최초로 드러난 소설로 이 소설을 꼽는다. (다만 이 작품 이전에 내놓았던 작품들 또한 그러한 엘리트 의식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작품 내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났던 "식자의 무력함"은 우리나라 식자 계층의 자기 합리화 논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식자 계층의 자기 합리화 자체가 이 소설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없는 데다, 문학 작품을 누군가 악용한다고 해서 그 문학 작품 자체나 그 작가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작품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관계로 악용도 많이 될 뿐이다.

작품의 절정이자 클라이맥스인 엄석대의 몰락 장면은, 현세대를 살아가는 정치가·논객들의 처신과 허탈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부당한 권력이 몰락했을 때, 그에 최대한 저항했던 지식인과 비굴하게 아첨하여 연명한 시정잡배들은 어떤 행동의 차이를 보이는가?"에 관하여 현실을 돌아보면, 부당한 권력이 위세당당할 때에 모든 것을 부딪쳐 저항한 사람은 그 권력이 몰락한 후에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반면 권력이 강성할 때에는 찍소리도 못 하던 비겁자들이 오히려 그 권력이 쇠한 뒤에는 태도를 돌변하여 마치 자신은 그 권력자와 3대째 철천지원수로 지내오기라도 했다는 듯 못 잡아먹어 안달복달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석대가 독재하던 시절에 권위에 억눌려서 찍소리도 못했던 친구였던 만순이 있다.

서상훈은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 석대는 전두환, 어린 병태는 당시의 지식인들, 화자인 다 큰 병태는 이문열 자신, 다른 학생들은 일반 국민들, 5학년 담임인 최 선생은 독재를 묵인하던 미국, 6학년 담임인 김 선생은 독재 정권을 버린 미국으로 6월 항쟁을 평가한 작품이라는 해석이다. 그것도 6월 항쟁에 상당히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 것. 위의 또 다른 결말이 작가가 생각한 진엔딩이고 본래 엔딩은 돈 때문에 타협한 거라는 해석이다[48]. 실제로 작가가 이후 한나라당을 위시로 한 보수, 우익 진영에서 활동한 것도 생각하면 뭔가 앞뒤가 맞는다는 주장이다.

이문열의 다른 작품인 필론과 돼지(필론의 돼지)에서는 비슷한 듯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전형적인 악당형 독재 세력(검은 각반들)이 민중들에 의해 제압되지만, "과연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폭력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와중에 주인공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한다.

7. 표절 의혹

영화화되었을 무렵, 황석영의 단편 〈아우를 위하여〉(1972년 발표)를 표절했다는 소문이 잠시 돌았으나 영화의 흥행으로 인해 별 반응 없이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2004년, 문학 평론가인 반경환이 직접적으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했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꺼내게 됐다. 반경환은 이 주장으로 책도 냈다.

표절설에 이문열은 자신의 위치를 시샘하는 이들이 억지 주장을 한다는 식으로 넘어갔는데, 2008년 즈음부터 다시 재논란이 되었다.

반경환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아우를 위하여〉가 전달하려는 구조와 스토리가 아주 유사하고, 화자로서 5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위치와 성격, 전달하는 부분이 모두 똑같다는 점을 지적하며 집필 당시 정치색을 그리 띠지 않았던 이문열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유독 강렬한 정치색을 주입한 이유는 이와 같은 표절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 밖의 표절 의혹에 관한 의견은 아래에 나와 있다.

문예지나 대중 언론 매체 등에서는 이와 같은 표절설을 대대적으로 다루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 이문열 본인도 표절이라는 주장에 대해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배경 및 스토리 라인의 유사성을 근거로 표절이라고 한다면 이사벨 아옌데가 쓴 <영혼의 집>은 <백년의 고독>의 성별 반전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 영향 관계를 지적하는 평이 있을지언정 이를 표절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이런 이유로 표절이라고 하기 시작하면 남아날 작품이 없기도 하고. 근래 비슷한 맥락의 의견을 원로 평론가 유종호가 자신의 에세이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에서 이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기도 하다.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는 비평계에서 〈아우를 위하여〉보다는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과 많이 비교되었다고 한다.

8. 미디어 믹스

8.1. 만화

현재 절판이 된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라는 제목의 만화판 서적이 있다. 물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고 단순히 엄석대라는 이름만 사용한 작품이다.

거기에서 꿈을 찾아내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에 나오는 빌런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동 인물 정도는 되는 특정 학급의 "폭군" 반장이 바로 엄석대다. 석대가 폭압적으로 반우들을 이끌어 결승점에 도달하려고 하면서 - "성군" 반장인 왕공상 중심의 다른 학급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데, 결론은 모든 아이들이 석대를 동굴에 가둬놓고 빠져나온 걸 왕공상이 다시 빼 오자고 설득하는 것을 통해 석대가 개심하고 왕공상과 친구가 되는 교과서적인 결말.

8.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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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연극

연극판의 경우 엄청난 악평을 듣고 있다. 한 학교는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을 했는데 선생님들이 완전히 멘붕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왜냐하면 해당 연극은 원작을 각색하여 현대식으로 풀이했는데,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석대와 병태의 대립을 거의 전부 생략했고, 석대가 한 비행도 엄청나게 축소되어, 마치 병태같이 반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인도적인 폭력으로 다스리나, 그것도 먹히지 않자 사람적인 대우를 해주는 학교 폭력 미화로 재탄생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무능도 대부분이 생략됐고, 부모님들은 아예 극 중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새로온 선생님도 강압적인 체벌이 아니라 손바닥만 때리는 것 정도로 완전히 가감되어, 극 자체만 본다면 학교 폭력은 경우에 따라선 아주 많이 필요하다. 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방백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데, 이 작품은 인물들의 표정과 심리가 잘 묘사되어야 완벽해지지만, 연극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모든 관객에게 보여줄 수가 없으므로 거의 대부분을 방백으로 처리했다.

9. 여담

10. 관련 문서



[1] 사실상 한국의 현대사를 초등학교 학급으로 표현했다고 봐도 무방한 한국의 대선배 격 되는 사회 고발물이다.[2] 위 표지의 훈장 안에 있는 사람은 날개라는 소설로 유명한 이상 작가이다.[3] 1987년은 이상의 50주기로, 당시 살아있었다면 이상의 나이는 77세였을 것이다. 이해는 1977년 이상문학상이 제정된 지 1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이때의 심사위원들이 김동리, 김윤식, 이병주, 이어령, 이청준이었다.[4] 공교롭게도 이해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해이다.[5] 작가인 이문열 본인도 1948년생이다.[6] 서울에서 일하던 관료였는데, 일에 열중하다가 장관의 초도순시에 나와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골 군청의 총무과장으로 좌천되었다.[7] 이 시기는 '초등학교'라는 말이 아직 생기기 전이었다. '국민학교'는 1996년에 '초등학교'로 바뀌었다.[8] 이 당시에는 '급장'이라는 말을 주로 썼다. 1970년대부터 '반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9] 수도권 학교와 지방 학교의 격차가 상당히 심한 시절에[10] '조금만 손톱이 길어져도, 조금만 이발이 늦어져도'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11] 여기서 석대의 용인술이 드러난다. 나름대로 집안도 부유하고 반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굳이 적으로 돌릴 필요가 없던 것이다.[12] '얼마 전 시험에서는 반에서 국어를 가장 잘하는 황영수가 국어 대리 시험을 쳤다'는 내용을 참고하면 아마 석대가 90점 이상 받은 과목은 사회, 자연(현재의 과학)으로 추정된다.[13] 여기서 담임의 무관심을 알 수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필체의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리고 원래 상위권 아이가 무려 특기 과목에서 갑자기 낮은 점수를 받은 데다 필체마저 다르면 의심할 법한데, 작중 어떤 선생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14] 어느 매체에서는 병태마저 전교 10등 밖인 것으로 설정되었다.[15] 심지어는 술심부름을 시키는 등 호락호락한 심부름이 아니었다.[16] 정황상 원하가 석대에게 병태와 나눈 이야기를 알린 듯하다. 병태도 자신의 기색이 심상찮단 것을 엄석대가 눈치채고 입을 다물게끔 한 일이라 추측했다.[17] 무려 하키 채로 29대나 맞았다. 그나마도 중간에 석대가 잘못을 인정했기에 여기서 멈춘 것이고, 이 시점에서 담임은 이미 모든 정황을 확실하게 파악하였고, 석대가 항복하지 않고 계속 버텼으면 더 맞았을 것이다.[18] 국어 - 황영수, 수학 - 박원하 등등[19] 그 시절에 없던 욕설이라는 게 아니다. 그 시절에도 청소년들의 욕설은 지금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단, 해당 대목은 '감히 그 석대에게' 그런 욕을 한단 것을 평소엔 상상도 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며, 그것도 담임 교사 앞에서 저런 욕을 대놓고 내뱉은 점에서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작중 시점인 1950~1960년대나 현세기인 21세기나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이 책은 엄연히 소설이고 기록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문열이 최대한 절제한 표현이 이 정도인 것이고, 만약 작가가 절제를 안 했으면 더 심한 표현을 내보냈을지도 모른다.[20] 비단 석대뿐만 아니라 거대한 권력에[21] 병태는 최소 한 학기가량 석대의 위치를 위협했다. 게다가 석대에게 가장 비굴하게 굴던 놈들이 이제서야 가장 적극적으로 석대를 욕하고 있었으니 이질감을 받았을 수밖에 없다.[22] 상술한 대로 병태가 원하의 시험지 교대 관련 에피소드를 석대한테 항복하고 나서야 알아챘다는 사실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23] 군중 심리에 따라 다른 급우들까지 모두 동참해 병태를 욕하며 정신적으로 다구리를 쳤다. 이 역시 담임 교사가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24] 이때 나온 명대사가 "잘해봐 이 개자식들아!!!!"다.[25] 중요한 사실은, 이는 현대 기준으로는 엄연히 2차 가해 및 아동 학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는 아직 야만적인 시대이던지라 그런 식의 체벌이 비일비재했다. 전근대적 가치관에 사로잡힌 일부 부모나 선생들이 "왜 병신같이 맞고 다니냐, 너도 때리고 와라." 또는 "너가 알아서 해결하라."라고 말하는 경우와 일맥상통한다.[26] 어느 매체에서는 아이들 중 유일하게 무기를 챙기지 않은 박원하가 초반에 도망친 듯하다가 몰래 석대의 뒤에서 볼링공 크기의 돌덩이로 퍽치기를 하였고, 박원하의 퍽치기에 당한 석대는 신나게 밟혔다고 묘사된다.[27] 1956년 상원의원을 지내던 JFK가 훌륭하게 생각했던 상원의원 여덟 명의 이야기인데, 이들은 모두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옳다고 믿었던 것을 용기 있게 주장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JFK는 이 책으로 다음 해에 퓰리처상을 받았다.[28] 하지만 추후에 병태는 석대의 독재를 끝낸 것이 자기들 스스로의 힘이 아닌 새로운 권력자(김 교사)라, 독재로 말미암아 독재가 종말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씁쓸해하기도 했다. 확실히 김 교사가 석대의 폭거를 멈춘 인물이기도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그가 석대의 독재를 파괴한 방식은 엄연히 똑같은 독재였다.[29]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퇴사하고는 외판원 생활을 거쳐 사업을 하다 실패하여 학원 강사로 재취업했다고 나온다.[30] 병태가 말하길 석대는 모르는 눈치였다고.[31] 이경재 문학 평론가는 "이 눈물은 거의 강박적이라고 할 만큼 새로운 가치 체계를 찾았지만, 끝내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자가 느끼는 비애와 무관하지 않다"라고 해설하였다.[32] 무효표 중 하나는 당연히 석대 본인의 표였다. 그럼 결국 무효표를 던질만한 인물은 어차피 반장 선거의 결론이 난 이상 양심이라도 지키려는 병태의 표일 수밖에 없다. 작중 석대는 병태가 끝까지 양심을 완전히 굴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언급하지만 사적으로는 모든 아이들이 앞다투어 비속어까지 써가며 탄핵할 때 자신을 유일하게 탄핵하지 않은 병태에게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병태는 비록 학우들의 혐오스러운 행동에 대한 반발 심리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이지만 그와 별개로 모든 사람이 자기를 욕하고 비난할 때 단 한 명만 자기가 욕을 먹는 것까지 감수해 가며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33] 엄석대를 현실에서 민중의 힘으로 몰락한 독재자들과 같은 말로를 걸은 것으로 여기는 시선도 있으나, 사실 엄석대는 민중에 대응하는 학우들이 아닌 새로운 권력자인 담임 선생에게 힘을 잃은 것이므로 결이 다르다.[34] 이 결말들에는 추가적인 비하인드가 있는데 영화판을 만들 당시에 이문열과 인터뷰한 걸 보면 당시에는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상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인 결말이 상당히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평가받았다고 한다.(실제로 조선 시대 및 근대 소설의 90% 이상은 이런 식의 권선징악적 요소가 드러난다.) 그래서 이런 결말을 내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는데 이문열은 이에 대한 반발 심리로 엄석대는 나쁜 놈이니까 감옥에 가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낸 게 첫 번째 결말이었다. 그런데 정작 영화를 낼 때가 되자 감독이 그런 결말은 구식이라고 지적해서 이후 개정판에 나온 게 위에 서술된 두 번째 결말이다. 마지막으로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각자 알아서 상상하라고 한 것이 세 번째 결말이다. 참고로 영화판은 세 번째 결말대로 갔다.[35]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삽화가 고증 오류에 위화감 투성이다. 제1공화국이 배경인 소설에서 남학생반, 여학생반이 나누어져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도 남녀 공학두발 자유화에 사복까지.[36] 그리고 싸움도, 2차 성징 및 신체 발달을 고려할 때 그 정도 나이대에서 2~3살 차이는 상당히 큰 차이라 초등학교에서 싸움 짱이 아닌 게 더 이상하다. 웬만한 여고생이래도 초등학교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싸움 짱이다. 과연 제 나이에 걸맞게 학교를 다녔어도 이런 식으로 군림할 수 있었을지 의문인 것이다.[37] 석대의 강압에 못 이겨 성적 바꿔치기를 한 반 내 다른 우등생들에게 매질을 가한 후 한 말. 이후 김 선생은 반 전체 아이들의 손바닥을 또 다시 각각 5대씩 때린다.[38] 엄연히 선배 교사이고 고인인 사람에게 이 정도 립서비스는 당연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젊은 시절의 의기로운 이미지와는 상당히 동떨어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국회의원이 된 시점에서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나 자세를 우선해야 하는 것이고, 국회의원의 일이 죽은 시민에 대한 도덕적 평론은 아니다. 설령 여전히 교사를 하고 있다 해도 죽은 사람 장례식장에 안 가면 안 갔지 와서 가족들 앞에서 이새끼 순 나쁜 새끼였어요 하는 게 말이나 되나. 물론 소설이나 영화는 주된 에피소드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각색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석하라고 애초에 도덕적으로는 안 좋은 이미지의 직업인 국회의원까지 시켜서 이런 장면을 넣었을 터이지만.[39] 그리고 60년대 이후로는 군사 독재의 영향으로 체벌이 오히려 더 강화된 것도 있다.[40] 대략 레퍼토리가 잘못을 저지름 - 학교에서 맞음 - 집에서 부모님이 흔적을 보고 왜 맞았냐고 물음 - 잘못 설명 - 니가 잘못했네 더 맞아라식이다. 때문에 이 시절엔 오히려 체벌을 당해도 꽁꽁 숨기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41] 병태가 석대의 비행을 고자질했을 때 되레 석대를 감싸고 병태에게 훈계한 내용("석대가 하는 행동이 못되게 보일 수 있다"는 논지)을 감안했을 때 그는 석대가 비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묵인했다.[42] 이건 사실 엄석대가 교사한테는 보복하는 타입이 아닌 나름 인정받고 또 아양을 잘 떠는 타입이기 때문이다.[43] 그리고 그런 식이면 불의를 보고도 방관하는 대다수의 교사 또한 책임이 있다.[44] 우등생들이 더 큰 처벌을 받은 것 만큼은 아주 잘못한 것은 아니다. 엄연히 병태 회고로도 '공부든 싸움이든 학급 내에서 우수한 분야가 있는 학생들 중 석대가 받을 비판에서 자유로운 자가 없었으며 그들이 오히려 5학년 1학기 내내 본인을 괴롭히는데 충실한 도구가 되어 본인을 표면적으로는 석대보다 더 열심히 괴롭혔고 언제나 너그럽고 정의로운 중재자로 석대가 등장하게 만드는 데 제일 효과적으로 활동한 것도, 또 5학년 2학기를 제일 시샘했던 것도 그들'이라고 나온다.[45] 학교폭력을 응징하는 말죽거리 잔혹사더 글로리같은 작품이 있지만, 현실적인 방법은 아니다. 권력의 통제가 아닌 그냥 개인 자격으로서의 응징이다.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개인이 폭력을 휘두른다고 해서 학폭이 없어지지는 않는다.[46] 집이 가게나 농가인 아이들에게 물건을 바치게 하는 것은, 현대 일진이 돈을 상납하게 하는 것과 일치한다.[47] 하지만 치안의 사각지대가 현대보다 더 산재해 있던 60년대 초가 배경이라는 점은 적절히 감안해야 할 것이다.[48] 1987년에 출간된 만큼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두가지 엔딩이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처벌받아 몰락한 부분(기존의 결말), 사면된 이후 호의호식하며 여생을 보낸 것(또 다른 결말) 두 모습 전부와 오버랩된다는 평도 있다.[49] 정확히는 윤석열 & 윤핵관들이 전당 대회에서 차례로 후보들을 끌어내리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후보만 살려두는 것을 보고 이를 엄석대에 비유하며 비판한 것이다. 친윤계에서는 엄석대를 윤석열에 비유했다며 분개하고 있지만, 이준석 본인은 특정인을 비유하지 않았다면서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 응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