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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12 20:32:03

장례식

관혼상제

관례

혼례

상례

제례


1. 개요2. 현대 한국에서의 장례
2.1. 상조 회사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2.2. 장례식장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2.3. 일본 장례 문화의 영향2.4. 인터넷 데이터
3. 문상 및 장례식장 방문 예절4. 동물과 인간의 장례5. 장례방식6. 종교별 장례법
6.1. 불교6.2. 유교6.3. 그리스도교6.4. 조로아스터교6.5. 유대교6.6. 이슬람교
7. 그 밖의 장례 방식8. 장례식 풍경
8.1. 운구중 버스전용차로 이용 관련
9. 반려동물 장례식10. 관련 용어11. 여담

1. 개요

葬禮 / Funeral

죽은 이저승으로 무사히 보내주기 위해 치러지는 의식으로 망자의 육신을 버리는 절차.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시신이 위치한 곳은 장례 방식에 따라 무덤 혹은 봉안당 등이라고 부른다. 지방, 문화권, 종교 교리에 따라 그 방식과 절차가 다르다. 장례식 현장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보통 장송곡이라고 불린다.

2. 현대 한국에서의 장례

현대에 이르러서도 관혼상제 중에서 혼례와 함께 난이도가 극악하기로 손꼽히는 의식이다. 관례(성인식)는 사실상 없어졌고[1] 제례(제사)는 많이 간소화됐다.[2] 과거에는 장례에 필요한 모든 절차적 지식과 풍습들을 가문의 연장자가 전수받는 형태였으나, 점차 사회가 핵가족화되고 세분화되면서 어려워졌다.

현재는 장례지도사가 장례일정을 잡아주게 되며 보통은 3일장을 진행하는데 1일-안치, 분향>2일-입관>3일-발인으로 진행되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2일장이라 해서 안치 후 24시간이 지난 후에(장사법에 의해 24시간 이후 화장이나 매장이 가능) 입관을 하고 바로 발인 나가는 형식이 진행된다. 제사의 경우에는 가족이 많은 경우 집안 어른들이 진행을 하지만 집안 어른들도 잘 모를 경우 장례지도사가 제사를 안내해 준다(상조, 장례식장 상관없음). 제사가 지방이나 동네, 가정마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장례지도사가 안내해줄 때 다른 부분이 있어도 중요한 것은 고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여기며 넘어가면 된다. 보통 국의 위치나 제사 방식으로 지적이나 문의가 올 경우 집안 방식대로 제사를 지내면 된다 하고 자리를 뜨게 된다. 종교에 따라서 스님, 목사, 연령회장(천주교)와 입관시간을 조율하며 스님이나 목사의 경우 입관 전에 입관 전, 입관할 때, 또는 입관 후에 예배하는 등 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참조해야 한다. 천주교는 정해진 방식이 있기 때문에 장례식을 진행하게 되는데 장례식을 주관하는 연령회장은 장의사와 사이가 좋지 않은데 입관을 자기가 한것처럼 주관하거나 시설이용(보통 영결식장)에 트집을 잡거나 자기가 협약 맺은 장례식장으로 고인을 빼가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치르던 장례 방식은 매장이었지만, 현대 한국에서 대부분의 경우는 화장을 거친 다음 납골당에 안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8년 들어서는 90%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2.1. 상조 회사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상조 문서의 s-2번째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2.2. 장례식장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

장례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도 하지 않았어도 상조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 장례식장에는 전문 장례지도사들이 상주하므로 그냥 장례식장만 가면 장례식장의 의전팀장이 알아서 다 해준다. 장례식장의 장례지도사들은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들이다. 장례식장에서는 사장을 포함한 전직원이 반드시 국가장례지도사여야 하도록 제도화되었다.

이처럼 전문가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콘티를 짜주며,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식 절차를 결혼식장에서 전부 도와주지만 신부와 신랑이 넋놓고 있어도 되는게 아니듯이. 특히 상주는 슬플 여지도 없이 매우 바쁘다. 연락하랴, 조문객 받으랴, 여기에 장남장손이라면 설상가상 3일장을 치르는 동안, 장례지도사는 휴식은커녕 수면 시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토나오게 바쁘다. 당연하지만 3일간 장례지도사들은 장례식장에서 외박해야 하며 집에 가지 못한다. 장례식장에서 365일 일하는데다 시신을 만지는 더러운 직업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살인적인 근무시간과 환경, 최저시급을 겨우 받는 수준, 웬만한 3D업종 뺨치는 탓에 꺼려지는 직종이다. 이는 상조회사가 더욱 악독하다고. 대학의 장례지도학과가 줄줄이 문을 닫는 추세다. - 상가가 없을 경우에는 일이 없기 때문에 많이 쉬게 된다.

장례식을 치르거나 상주가 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국가유공자나 기초생활수급자는 그에 알맞은 증명서를, 또한 의사에게 공식적으로 발급받은 고인의 사망증명서를 반드시 장례식장에 제출해야 한다. , 유골함, 수의, 화장터, 납골당 역시 장례식장에서 알아서 카탈로그로 가지고 있다. 맨손으로 찾아가서 고르기만 하면 된다. 단, 매장은 수목장림 등이 아니라 개인적인 매장터가 필요한 경우 직접 산역꾼[3]을 고용해야 하며, 바다 한가운데에 유골을 뿌릴 경우 자신이 탈 배를 미리 구해야 한다. 물론 장례식장에서 알선해 주기도 하기 때문에 상담을 받거나 상조회에서 추가할 경우 지원이 되기 때문에 상조회를 들었다면 그쪽 팀장과 이야기하면 되고 장례식장 직원에게 물어보면 된다.

즉, 사망진단서(자살 등 사고사의 경우 검사지휘서도 포함. 시체검안서도 비슷한 효력이 있다.)[4]를 가지고 고인의 시신을 운구하여[5] 장례식장에 가기만 하면 된다. 장례식장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알아서 해준다. 여기서 상조의 무의미함과 폭리를 알 수 있다. 사실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게 업계 사람들의 평가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말그대로 장례식장이 하라는 대로 다 해서 엄청난 폭리를 취했으나 상조업체가 난립하면서 그나마 폭리 수준이 조금 꺼졌다.

개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영정으로 쓸 사진뿐이다. [6] 영정사진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에 있는 사진을 확대하여 영정사진으로 대용한다. 또는, 회갑, 고희 때 촬영한 사진도 동원되기도 한다. 이 경우 아무래도 사진이 작기 때문에 화질에 문제가 있지만 요즘은 대행업체가 있기 때문에 장례식장에서 연결해서 진행한다. 상조회를 들었을 경우에도 장례식장에서 진행을 하게 된다.

조금 더 나아가서,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는 김에,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해서 유서에 장례식 방식 및 장소를 미리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는 것이 좋다. 집안에 여러 종교가 있는 경우, 어떤 형식으로 장례식을 해주기를 원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본인이 미리 자신의 유서유산 분배와 함께, 장례식의 구체적인 견적을 어느 정도 선으로 제시해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장례식장에 가면 영정사진 액자를 얼마로 할지, 국화를 얼마짜리 국화로 놓을지, 예복은 얼마로 할지 등등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이 때 자식된 입장에서는 제일 저렴한 50만 원짜리 액자로 하면 왠지 죄송한 마음 때문에 수백만 원짜리 액자를 구매해서 사진을 모시게 되고, 그런 식으로 국화도 50만 원짜리는 죄송하니까 백 단위로,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면 예복도 조금 더 비싼 것으로, 생에 정말로 1번밖에 없는 예식인데 유골함은 좋은 유골함으로 선택하게 된다. 부모의 은혜는 상조회사나 장례식장에게 갚을 게 아니라 지금 살아있을 때 좀 더 잘해드리는 게 최고라는 걸 알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선택이 쉽지 않다.

천상 장례식장, 화장시설, 봉안시설의 비용은 같은 지역이라도 크게 다른데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서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장례식장을 찾아가서 알아보는 것인데 법적으로 벽에 비용과 제공되는 항목을 게시해야 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상담받으면서 비교할 수 있다.

개신교의 경우에는 종파와 목사마다 입관 참관 예절 방식이 다른데 입관 전, 입관 중, 혹은 입관 후에 예배를 본다. 목사님과의 연락을 통해서 입관방식과 스케줄을 확인하게 된다.

천주교의 경우에는 연령회장이 천주교 장례예절을 하기 때문에 연령회장에게 입관 시간을 정하게 하고 장례예절의 순서는 보통 얼굴 덮기 전에 장례예절 관에 모시고 장례예절 입관이 끝난 후 영결식장에서 미사를 진행하게 된다. 장례지도사와 연령회장은 사이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장례지도사가 입관 중에 참견을 한다든지 화장이나 옷도 다 장례지도사가 입혀드리고 보정했는데 자기가 한 것마냥 으스댄다든지 장례예절 준비를 대충 해서 촛농이 입관실에 늘어붙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영결식장이 어떻느니 문제삼거나 갑자기 사용 요청을 하고 준비가 안 됐다는 둥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아닌 일반 불교나 유교식으로 진행할 경우 성복제, 발인제를 지내게 되는데 이런 제사의 경우 방법을 모른다면 장례지도사가 진행을 대신 해 준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야 할 사항은 제사란 것이 지방마다 다르고 집안마다 다르기 때문에 대신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현대에는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문제삼지 않는다. 묵념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군인의 경우 보통 국군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하게 되며,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은 국립경찰병원 장례식장을, 그 외의 경찰관과 소방관은 외부 장례식장을 이용한다. 소방관의 경우 문상객들에게 대접할 음식들과 순직 소방관에 바칠 제물들은 소방상조회에서 준비한다.[7]

장례비용 구성 및 예시
장례식 절차및 구성

2.2.1. 수의

2.3. 일본 장례 문화의 영향

상장과 완장, 꽃장식, 삼베 수의와 유가족들이 입는 검은 상복은 일본 식민통치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기#

1934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에 따라 눈에 띄게 변한 건 상복이다. 전통 상복인 굴건제복(屈巾祭服·거친 삼베로 만든 옷)을 생략하고 두루마기와 두건을 입도록 만들었다. 유족이 한복이나 일본 전통복장을 입었을 때 왼쪽 가슴에 나비 매듭으로 맨 검은 리본을 달도록 했다. 또 양복을 입은 사람은 왼쪽 팔에 검은 완장을 달게 했다. 이것이 상장(喪章)과 완장의 시작이다.[14] 상장과 완장은 항일인사들이 장례식에 모여 집회를 열지 못하도록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1969년 ‘가정의례준칙’은 삼베로 만든 상장을 가슴에 달도록 규정했다. 2009년 ‘건전가정의례준칙’에도 상장 조항이 있다. 완장은 가정의례준칙에선 빠졌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장례식장의 꽃도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 1926년 순종 국장 장례식 사진첩에 따르면 영좌 주변에 화환이 놓인 장면을 볼 수 있다.[15] 국내전통장례에 사용된 꽃은 수파련(水波蓮)이라고 상여에 다는 종이꽃이 전부였다. 헌화나 화환 문화가 서양에서 비롯된 것이라 치더라도 요즘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꽃 장식은 100% 일본식이다. 우리 전통은 영좌 뒤에 병풍을 치는 것이었다.

삼베 수의가 전통 수의(壽衣)의 대표가 돼버린 배경에도 일제가 있다. 우리 전통은 수의는 생전 입던 옷 가운데 가장 좋은 걸로 마련하는 것이었다.[16] 그래서 묘 이장(移葬) 과정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수의를 보면 화려하다. 대개 비단이나 명주로 만들어졌다. 부모를 여읜 자식이 ‘나는 죄인’이라는 뜻으로 삼베 상복을 입었다.[17]

현대 유가족들이 검은 상복을 입는 것 역시 일본의 영향.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 흰 옷을 입었다. 사극에서 국상이 나면 모든 백성들이 흰 옷을 입고 남성은 백립이나 삿갓을 쓰는 것도 이 때문. 그러나 일제시기 검은 옷을 상복으로 입는 서양 문화가 정착해 있던 일본 상복문화가 들어왔고, 가정의례준칙에서 양복을 상복으로 입을 때는 검정으로 하는 규정이 생기면서(자료) 지금은 검은 상복이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그래도 편리한 부분이 많아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완장이 그렇다. 사회가 핵가족화되다 보니 대부분의 문상객은 유가족 중 한두 명만 아는 사람인 경우가 많은데, 완장은 항렬에 따라 줄이 나뉘기 때문에[18] 보면 대충 자신이 찾는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쉽다. 가령 친구 할아버지 문상을 왔으면 한 줄짜리 완장을 찬 사람을 찾으면 된다. 또한 유가족이나 문상객이나 대부분 검은 정장을 입고 있어 복장이 비슷한 한편, 문상객은 누가 유가족이고 누가 문상객인지 모를 수밖에 없어 완장의 여부를 통해 상대가 자신이 예의를 갖추어야 할 유가족인지, 자신과 같은 문상객인지 알기가 쉽다.

또한 장례식장의 업무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상주가 장례를 도맡고 대금 결제나 서류 작성 등에서 주축이 되는데, 유가족을 제대로 알지 못할 수밖에 없는 장례식장 입장에선 '그래서 상주가 누구요?'가 되기 십상이다. 현대의 장례식은 전체적인 의전, 음식, 도우미, 매점 등 여러개 분야에서 분업화가 잘 되어 있는 편이라 관련업자들이 상주를 특정하기 어려우면 꽤나 고생스럽다. 완장을 보면 이 사람이 상주 혹은 책임자급인지 아닌지 알 수 있어 편리하다.

검은상복의 경우에도 좋은 부분이 많은데 하얀 상복의경우 여성들이 입었을 때 속이 비치게 된다. 종종 고인이 생전에 준비를 할때 유족들을위해 하얀 상복을 준비해 주시는데 생각보다 얇기 때문에 주로 브래지어의 색이 비치는 문제가 있고, 음식 준비를 돕던 중에 김치나 홍어, 육개장 국물이 튀는 경우가 있어 상조나 장례식장에서는 검은 상복을 취급한다.

삼베나 마 상복도 장례지도사 입장에서는 비단 상복보다 좋은 점이 있는데 일반 옷이나 비단 같은 경우에는 삼베와 비교했을 때 잘 찢어지고 통이 매우 작아서 고인에게 옷을 입힐 때 자주 움직이게 되어 안 좋기도 하고 찢어지는 경우가 많다. 노인들은 특히 욕창이 있거나 많이 마르기 때문에 평소에 입던 옷 같은 경우 체격이 왜소해 보여서 보기 좋지 않지만 삼베 수의는 몇 겹으로 입히기 때문에 풍채가 나와 병원에서 보던 마른 모습보다 보기가 좋다.

2.4. 인터넷 데이터

디지털 시대를 맞아 장례절차 중에 고인의 생전 인터넷 활동기록이나 데이터 등 사생활 정보도 함께 처분해야 한다는 캠페인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고인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카페 가입내역, 각종 사이트 계정, 기타 등등의 흔적들을 일일이 찾아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태. 유럽에서는 이미 이러한 논의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이며, 디지털 장의사라고 하여 고인의 가입정보 및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지워 주는 직업도 등장했다.

또한 이와 유사하게 소위 "디지털 유산"에 대하여 상속권을 요구하면서 법정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즉, 남겨진 고인의 정보들을 보호해 주거나 내지는 삭제해야 하는지, 아니면 가까운 가족들에게 유산상속 개념으로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을 흔히 '잊혀질 권리 논쟁'이라고도 하며, 국내에서도 의외로 발빠르게 법제화 논의를 밟고 있는 중이다.# 일부는 그것들에 대한 당연한 상속을 주장하지만, 고인의 사생활일 수 있는 디지털 유산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은 고인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태.

반대로 간혹 유족의 결정으로, 또는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지우지 않은 흔적은 하나의 작은 분향소(?)가 되어 네티즌들의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그 유족들에게는 중요한 문제. 서울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운영하던 블로그나 세월호 희생자의 게시물[19], 종현이 쓰던 SNS와 같이 고인이 생전에 남긴 인터넷상의 글들이 고인을 기리는 추모의 현장이 되는 경우도 있다. 군 인트라넷에서는 참사로 순직하는 인원이 발생할 때마다 임시로 분향소 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

페이스북 환경설정에서는 본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포스팅/사진/영상을 대신 관리할 사람을 지정할 수 있다.

3. 문상 및 장례식장 방문 예절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동물과 인간의 장례

흔히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사망자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면서 다루기도 한다.[20] 동물도 지능이 있기 때문에 죽음을 인식하긴 하지만, 일정한 절차를 가지고 의례로서의 장례를 치르는 건 인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코끼리의 경우, 건기에 새끼가 견디지 못하고 죽으면 뼈를 냄새 맡고, 모여서 애도한다. 까마귀, 어치, 제비 등의 역시 동료가 죽으면 무리 전체가 그 근처에서 울면서 머물다가 떠난다. 이처럼 죽은 동료의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지 않은 동물들의 특성이나,[21] "의례로서의 장례"는 인간밖에는 치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네안데르탈인이 최초의 매장풍습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왜 이와 같이 매장이라는 새로운 행위를 했느냐에 대해서는 몇몇 의견이 제시되어 있는 상태이다. 특히 망자의 시신은 썩은 고기를 먹는 육식동물들을 네안데르탈인의 거주지로 유인하는 미끼 역할을 했기에, 이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시신을 땅 속에 묻는 행위가 나타났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22]

이후 시간이 흘러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면서 비로소 현대적인 의미의 장례라 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이들은 동굴 밖 따로 지정한 곳에 망자의 시신을 묻고, 망자가 생전에 즐겨 사용하던 석기 도구류, 망자가 생전에 즐겨 착용하던 장신구 종류를 시신과 함께 묻어 주었다고. 즉 망자의 소유물이나 재산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죽어서까지 사용하라고 함께 넣어 준 것일 가능성이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원시적인 믿음인 셈.

5. 장례방식

6. 종교별 장례법

당연한 말이지만 국내의 장례법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거나 하여 설령 개신교장이더라도 유교장의 풍습을 아예 외면 하진 않으므로 엄격하게 특정 장례법에 완전히 맞추기보다는 양쪽의 예절을 따져보고 절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개신교장이면서도 절을 인습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장이든 샤워나 머리를 감는 행동은 실례라는 인식도 존재한다. 집안에 따라 다르며, 아예 유족 측에서 각 조문객이 믿는 종교 방식대로 하라고 퉁치는 경우도 있다.

6.1. 불교

불교화장을 주로 한다. 불교의 화장은 장작 위에 시신을 안치하고 종이로 만든 연꽃 등으로 가린 후 불을 놓는다. 종파에 따라서 칠공을 한지로 막고 그 위에 먹으로 눈, 귀, 입 등을 표시하는 법도 존재한다. 이후 유골을 부수어 유골함을 만들고 부도에 안치한다. 덕망이 높은 승려는 생전에 업적을 필적하여 탑에 모셔두곤 한다.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사리는 공덕의 표시로 사용되며 유골과 함께 보관되거나 사리와 유골을 따로 안치한다.

이는 신자(신도)가 아니라 스님들의 장례를 치르는 방식이며, 불교 신자의 경우에는 유교 장례 방법과 같은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되 나무로 된 염주[28], 다라니경을 관에 넣거나 명정[29]에 연꽃을 그려넣는다. 고인이나 유가족과 친분이 있었던 스님들이 빈소에서 경을 외는 일은 있으나 기독교(천주교)와 달리, 염습이나 제사를 지낼 때에 스님이 제례를 주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간단히 말해 유교와 장례 방식은 같되, 입관에 쓰이는 물품이 조금 다르다.

6.2. 유교

유교매장의식을 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화장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화장묘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매장 방식이 굉장히 복잡한 편인데,[30] 보건복지부 장사정보시스템에서 설명하고 있는 전통 유교식 장례 절차는 총 19개에 달한다. 아래의 설명은 위 링크의 설명을 기본으로 하므로 유교의 의례서에 따른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면 링크를 방문하길 추천.

한국 유교는 동네나 지방, 집안마다 그리고 집안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기때문에 절차나 형식이 가지각색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고인을 기린다는 마음만 중요하게 가지면 된다는 거다. 지금은 장례지도사가 제사방식도 안내해 주고 3일장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빈소를 차리지 않고 2일장(흔히 안치발인이라 한다 입관하고 바로 발인나가는형식)도 가능하다} 아래 내용과는 다른부분이 많이 있다.

유교적 절차에서는 임종 전부터 의례가 시작된다. 우선 '천거정침'이라 하여 자리를 옮긴다. 임종을 맞는 분을 그 분이 평소 거처하시던 곳인 정침에 모시는 절차로, 유교적 세계관에서 안정된 죽음은 죽음의 장소를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침'에 모신 상태로 임종하지 않은 모든 죽음을 '객사'로 치기도 한다.[31] 이어 사람이 죽으면 첫 절차로 고인의 웃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 북향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세 번 '복(復)'을 외친다.[32] 죽은 이의 혼이 다시 몸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식이다. '초혼'[33]이라 하며, 이때 외치는 말을 따라 '복'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극이나 중국역사드라마에서 황제나 큰 인물이 죽으면 내관이 지붕에 올라가 웃옷을 흔들면서 죽음을 알리는것이 이것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왕이나 황제의 죽음이라면 '상위복(上位復)', 왕후나 황후의 죽음이라면 '중궁복(中宮復)'이라 외친다. 집안에 따라 이 단계에서 저승사자에게 대접하는 상인 사잣밥을 차려내기도 한다.

첫날 행해야 할 절차는 크게 네 가지이다. 상주와 그 외에 장례를 주관할 사람들이 문서담당, 금전출납 담당, 손님맞이 담당, 의례 주관자 등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상을 맞아 겉옷과 관과 신발을 벗는 '입상주(立喪主)', 사후경직으로 시신이 굳기 전에 시신을 주물러 풀어주고 손과 발을 가지런히 수습하여 한지로 묶는 '수시(收屍)', 시신을 깨끗하게 닦는 '습(襲)', 사람들에게 고인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이다. 사망 2일 후에 시신에 수의를 입히고 관에 넣을 수 있도록 삼베로 감싸 묶는 것을 '소렴'이라고 하는데, 소렴 때 '반함'이라 하여 시신의 입 안에 흰 쌀이나 엽전, 구슬 등을 물리기도 한다.[34] 일반적으로 수시와 습과 소렴을 함께 행하며, 그래서 염습이라 한다. 염습한 후 명정을 쓰며, 명정을 쓴 이후에는 가까운 사람은 들어와 조문하고 곡 할 수 있다. 이후 염습한 시신을 3일 혹은 5일간 살아 있는 이와 같이 대한 후 관에 집어넣는데 이것을 전통 절차에서 '대렴'이라 하며, 현대에는 흔히 '입관'[35]이라고 한다. 전통 절차에서 대렴을 3일차에 행하는 것은 부모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효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36] 입관시 시신이 관이 움직일 때마다 관짝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보공을 채운다.[37]

4일차에 '성복(成服)'한다. 모든 복인(服人), 즉 상복을 입을 의무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상복으로 갈아입는 절차다. 죄인이라는 의미로 삼베 옷을 입고 가슴에 최를 달며, 대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이때부터 탈상까지 쭉 상복을 입는데, 그 기간은 고인과 촌수가 얼마나 가까우냐 등에 따라 다르다.[38] 참최, 재최, 대공, 소공, 시마의 다섯 가지 복제를 '오복'이라 하며, 입는 기간은 다시 예법에 따라 다르다. 참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상에 3년간 입지만 재최는 1년, 9개월, 5개월 등으로 나뉘는 식으로 매우 복잡하다.[39] 이 오복에 따라 고인을 위해 상복을 입을 의무가 있는 친인척을 '유복친(有服親)'이라 한다. 이때부터 '조(弔)'를 할 수 있는데, 현재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상(問喪)'이다.

또한 이 즈음부터 '치장(治葬)'을 시작한다. 무덤 터를 잡고 고유제, 즉 산신에게 미리 알리는 제사를 치른 다음 미리 묘혈을 판 뒤 회격이라 하여 석회를 바른다. 관도 준비하는데, 역청을 바르고 칠성판[40]을 까는 등 복잡하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관은 죽은 뒤에 머무를 유택이니 맏사위가 준비해야 한다'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정통 유교식으로 장례를 치를 경우 선비, 대부도 3개월을 지내며[41] 제후 5개월, 천자 7개월을 지낸다. 이 기간 동안 미리 무덤 조성 준비를 하는 것. 무덤에 들어갈 지석[42]을 준비하고 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을 작성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조선 왕실의 치장은 '산릉도감'이라 하여 임시관청을 설치하여 감독했으며, 산릉도감의 제조는 가까운 종친이 맡았다.

그 후 관을 상여에 옮기고 장지(시신을 매장할 위치)로 가는 의식을 '발인' 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미리 물건을 진열해두고 한 차례 제사를 올린 뒤 곡을 하는 등 발인 준비를 하는 것을 '천구'라 한다. 이청준의 소설 '축제'에서는 이 천구 절차에[43] 상여꾼들이 손발을 맞추고 상엿소리를 연습하는 모습이 묘사되어있다. 발인할 때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방상씨 탈을 앞세워 명정, 만장, 공포, 상여 등이 순서대로 줄을 서서 행진한다. 상여 뒤에는 상주, 복인, 상복을 입을 의무는 없으나 친인척 관계인 무복친, 일반 조문객 순서로 따라가는데, 만약 죽은 사람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별세한 경우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복인의 뒤에 따른다. 발인 도중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노제(路祭)' 라고 한다. 원래는 발인하여 가는 도중에 길가에서 치르는 제사를 뜻하지만 현대에는 굳이 노제를 따로 준비하여 지낼 경우 고인과 생전에 연이 깊었던 곳을 둘러둘러 가는 식으로 진행된다.[44] 제주도에서는 발인 전날을 일포라 하여 일포날 문상을 간다.

관을 넣은 뒤 흙을 다져 봉분을 만드는 것을 '급묘(及墓)'라 하는데, 묘혈에 관을 내려놓는 절차를 흔히 '하관'이라 부른다. 하관한 뒤 흙을 채우고 땅을 다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달구질'이라고 한다. 많이 할수록 좋으나 홀수회차를 맞춰야 한다. 봉분을 만드는 동안 '제주'라 하여 신주에 글씨를 넣는 일을 진행하고, 제주가 끝나면 한 차례 제사를 지낸 뒤 발인을 따라 왔던 사람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곡을 하며 돌아가는 것을 '반곡(反哭)'이라 하는데, 봉분이 완성된 뒤 후토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석을 묻는 것까지 지켜볼 자식이 한 사람은 남아야 한다. 이제 우제를 치르는데, 총 세 번 치르며 가장 먼저 장사 당일 첫 번째 우제인 초우제를 지낸다. 장지까지 거리가 너무 먼 경우 집에 돌아와 치르지 못하고 여관 등에서 치르기도 한다. 십간을 번갈아 강일(剛日)과 유일(柔日)로 나누는데, 초우제 이후 첫 번째 유일에 재우제를 치르고[45], 재우제 다음 첫 강일[46]에 다시 삼우제를 치른다. 일반적으로 고인을 땅에 묻은 뒤 사흘이 되면 삼우제까지 다 치르게 된다.

고인의 벼슬이 없거나 낮아 죽은 달을 포함해 3개월간 장사지내는 유월장을 치를 경우 삼우제 다음 졸곡제(卒哭祭)를 치른다. 그 이상인 경우 3개월 후에 치른다. 이때부터 수시로 하던 곡을 멈추고 아침저녁에만 곡을 올린다. 흉사를 당해 치르는 제사가 점점 일상적인 제사로 대체되는 과정이다. 국가의 경우 길가빈군흉(吉嘉賓軍凶)의 오례 중 흉례가 길례로 전환되는 시점이며, 이 시점부터 임금은 상복을 벗고, 관례적으로 이 시점에 실록 편찬도 시작된다.

그리고 사후 1년이 지나 처음 돌아오는 기일에 지내는 제사를 '소상'이라고 한다. 재최 1년복을 입는 사람은 이때 탈상한다.[47] 3년간[48]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49]를 지내고, 두 번째 기일에 '대상'을 치른다. 상주도 상복을 벗고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 대상을 치르면 신주를 사당으로 모시며, 이때 5대조의 신주가 사당에서 철거되므로 따로 고하는 제사를 지낸다. 대상이 지나면 빈소를 철거하지만 여전히 일상복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대상 두 달 후, 27개월째 되는 날에 평상시로 돌아가 담담해지기를 기원하는 제사인 담제를 치르고, 27개월 혹은 28개월째에 치르는 길제를 통해 집안의 종손이 바뀌었음을 공표하고 완전히 일상복으로 갈아입는다. 상례의 모든 절차가 완료되며, 이후는 제례로 대체된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너무 길고 복잡하다고 여길 수 있으나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은 작은 절차들은 다 생략한 것이다. 문종, 인종삼년상 제대로 치르려다 건강악화로 죽었다는 설이 제기되는 이유....(...) 현재는 삼일장을 치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임종, 염습, 입관 후 사망 3일째에 발인하고 장례를 마무리하고, 문상은 발인 전까지만 받는 경우가 많다. 탈상 시기는 각기 다른데, 49재[50]때 탈상을 하기도 한다. 삼우탈상이라고 하여 삼우제를 치른 후에 탈상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장례 후 3일째가 되는데, 현대에는 초우제, 재우제는 생략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장례식을 치른 당일에 탈상하기도 한다.[51]

6.3. 그리스도교

대부분 자연사, 병사[52], 사고사, 전사 등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죽음이면 모두 대상이 되지만, 자살은 정신병에 의한 것이 아니면 스스로 죽었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단 가톨릭의 경우 1983년 이후부터는 자살자를 위해서도 장례미사나 사도예식을 치러주고 있다.

교파별 의식에 따라 다르지만 성직자가 집전한 뒤 시신을 매장하고 묘비를 세우는 매장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화장도 부활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여 존중하는 추세다. 장례에 대해서는 교파별로 명칭이 다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는 죽은 이를 위한 전통적인 성찬례를 별도의 준비된 기도문으로(위령 감사송이나 혹은 레퀴엠용 미사곡 등) 바치는 경우가 있으나, 동방 교회처럼 그러지 아니한 경우도 있다. 가톨릭·정교회·성공회에서 장례식은 망자의 사망 시점부터, 빈소에서의 추도식 등 각종 예절, 성당에서의 장례 예식 혹은 장례 미사/성찬례, 그리고 최종적인 매장 혹은 화장 및 유해 봉안의 시점까지 모두 포괄한다.

한국 천주교에는 연도라는 고유한 장례 의식이 있는데, 전통적인 장례 예식과 천주교의 위령기도가 결합하여, 특유의 가락에 맞춰 시편과 성인 호칭 기도 등을 이어 바치며 망자의 안식을 기원하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식의 장례예식에서는 장례미사는 발인 때 장례의 마무리 느낌으로 한 번 하는 것으로 끝내고, 장례의 처음부터 발인할 때까지는 자녀와 문상객들, 성당 연령회를 중심으로 한 같은 성당 신자들이 돌아가며 연도를 반복하는 것이 장례 예식의 중심이 된다. 현재의 양식이 정립된 시기가 무려 18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천주교만의 독특한 기도 양식으로 손꼽힌다. 장례 미사 때 사제와 평신도의 관의 위치가 다른데, 사제가 신자들을 제대에서 바라보듯이 놓여지는 반면, 평신자는 그 반대로 제대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시신이 놓여진다. 이는 각각 마지막으로 집전하는 미사, 그리고 바치는 미사를 의미한다.

천주교의 연령회는 장례지도사(장의사)들에게 인식이 좋지 못한데 몇몇분을 제외하고 입관을 장례지도사가 진행하고 미사안내를 연령회장이 하게되는데 모양이 어떻게 화장이 어떻네 하면서 딴지를거는경우도있고 악수(장갑)을 다시 풀고 고인분 손을 다시 피거나 영결식장을 흉보거나 미사준비를 대충해서 촛농을 떨어트리고 더럽히는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주 등지에서는 장례를 치룰 때 관을 열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경우에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고 있다. 장례 미사 때 때도 김수환 추기경 같은 고위 성직자의 경우가 아니면, 관을 훤히 보이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와 비슷한 문화권의 전통으로, 정교회에서는 원래 장례 예식이 끝난 후 참석자 모두가 망자의 안식을 빌며 시신에 돌아가면서 마지막 입맞춤을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며 관에만 입맞춤을 하며 작별을 고한다.

한편 정교회에서는 죽은 이를 위한 추도식을 장례 기간 중 죽은 지 3일째, 9일째, 그리고 40일째에 한다. 추도식을 할 때는 '꼴리바'(Koliva)라는 특별한 예물을 앞에 두고 하는데, 밀이나 보리 등을 쪄 익혀, 포도, 설탕, 달콤한 향료 등 버무린 뒤 위에 슈가파우더 등을 뿌려 하얗게 장식하고, 이 외에 다양한 달콤한 말린 과일 등으로 장식하여 초를 올린 것이다. 이 달콤한 향료들은 망자가 영혼의 세계에서 달콤한 안식과 낙원에서의 행복함과 기쁨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주재료인 밀 등 곡물은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큰 열매를 맺는' 성경 속 비유에 근거하여, 썩는 육신이나 이 썩을 육신이 부활로 썩지 않은 몸이 되어 큰 기쁨을 누릴 것을 의미하며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토착화되어, 가장 비슷한 음식인 '약밥'을 만들어 예물로 올린다.

성공회의 장례예식은 많은 부분 천주교의 예식과 비슷하다. 다만 '연도'라는 절차가 없어 간소화된 느낌을 받는다. 또한 성공회는 국가나 지역으로 나뉘어진 각 관구의 문화와 전통에 따라 예식의 형태를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성공회 교인들이 조문 시에 절을 하는 것은 떠난 조상의 혼에게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을 기념하고 그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를 얻도록 기원하는 예를 한국의 전통적인 형식에 맞추어 표현하는 것이다.

위의 세 교파에서는 상장예식이 시간과 단계별로 세세하게 구성되어 있다. 천주교는 상장 예식이 별도의 전례서로 편찬되어 있고, 이는 로마 미사 경본, 입교 예식서, 축복 예식서 등과 함께 '로마 전례서'(Rituale Romanum)을 구성한다. 정교회는 망자의 사망 시점부터 망자가 죽은 후 40일째, 최종적인 영혼의 세계의 들어간다는 날 이후부터 하는 일반 추도식까지 포함하여 작은 포켓용 핸드북으로 전례서가 나와있다. 성공회는 성공회 기도서에 상장 예식이 들어있으며, 신자/비신자를 위한 기도문과 매장/화장 등 다양한 경우를 위한 기도문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성공회를 제외한 보수 개신교 일각에서는 장례예배라는 표현 자체가 교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예배의 목적은 어느 때나 절대자에 대한 것이어야지 특정 개인을 주인공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54] 그러나 여전히 개신교계의 주류는 장례예배를 거행하는 것이다. 비신자의 사망에 있어서도 가족이 신자일 경우 가족의 요청을 받아 목사가 장례예배를 거행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이 장례예배나 추도식 그리고 빈소에서 기도를 드릴 때 직접적인 그 영혼의 안식을 빈다는 등의 의도 없이 순수하게 유족에 대한 위로와 기억 정도에만 그치도록 주문한다. 이는 개신교 교리인 '산 자는 죽은 자와 교통할 수 없다'는 것과 '죽은 사람은 그 즉시로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에 근거하여 가르치기 때문이다. 빈소에서 국화꽃을 준비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개신교인들을 위해서다.

또한, 근대 이후 엠버밍 기술의 부활 및 발전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는 가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가톨릭 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멕시코의 경우에는 보통 9일장으로 진행하는데, 그렇다고 9일동안 연속해서 빈소를 지키는 건 아니다 (물론 발인 전까지는 지킨다). 누군가가 세상을 뜨게 되면 그 다음 날에 장지로 향하는 경우가 많아 별세부터 발인까지 걸리는 시간은 20시간도 채 안걸리고, 발인 이후에는 일단 일상 생활로 복귀한 뒤 매일 저녁마다 장례미사를 치르는 등의 행사를 한다. 이게 더 길어서 9일장이 되는 것이다.

장례 예식의 엄숙함은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훨씬 무겁다. 개신교의 경우 장례예식이라고 정해져 있는 것이 없다. 개신교에서 '죽음' 은 고인이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하나의 이동절차이기 때문에, 개신교에서는 죽은 자를 위해서 산 자가 기도하거나 산 자의 기도로 죽은 자의 행선지에 변화가 있다는 믿음이 없다. 그러기에 개신교식 장례는 그저 고인을 추억하는 형태로만 진행된다. 반면 천주교는 개신교에 없는 연옥의 개념을 인정하고 있고,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통해 죽은 자가 천국으로 가는 날이 앞당겨 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장례 기간 내내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연도)를 바치고 장례미사, 입관예식, 출관예식, 화장예식, 하관예식 등이 모두 기도서에 맞춰 딱딱 정해져있기 때문에 확실히 엄숙하다. 성공회는 공식적으로 연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연도'를 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회 장례의 개략적인 형식은 천주교와 비슷한데, 전체적으로 간소화되어있는 느낌을 주며, 엄숙함의 정도도 천주교보다는 덜하지만 일반적인 개신교보다는 무거운 면이 있다.[55]

6.4. 조로아스터교

조로아스터교는 불에 더러운 것을 태우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겨서 풍장이나 조장을 하고 있다. 현재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이런 장례의식은 많이 쇠퇴했다.

6.5. 유대교

현대 유대인들의 경우, 고인이 사망하면 시신에 엠버밍 처리를 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장례식을 치르고 최대한 빨리 땅에 묻는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그날 또는 그 다음 날 꼭 땅에 묻어야 한다. 장례식에서 유가족들은 케리아(קריעה)라는 전통을 따라 옷을 조금 찢는다. 시신을 수습할 때부터 땅에 묻힐 때 까지, 셰미라(שמירה)라는 의식에 의해 시신을 누군가가 계속 지키고 있어야 한다. 옛날에는 시신을 관에 넣지 않고 타흐리힘(תכריכים)이라는 아마포 재질의 옷으로 싸서 그대로 무덤에 묻었지만 지금은 시신을 관에 모시는 것도 보편적이다. 장례식이 끝나면 유가족과 조문객들은 묘지로 이동해서 간단한 의식을 한 후 한 명씩 무덤 옆에 준비되어있는 삽을 들고 흙을 세 번 떠서 묘지에 뿌린다.

묘지가 완성되어 묘비도 올라가면 묘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꽃을 두고 가거나 둥그런 돌멩이를 올려두고 간다.

6.6. 이슬람교

마찬가지로 부활신앙에 따라 땅에 시신을 모시는 매장을 하는데, 염을 한 시신에 수의를 입혀 무덤 안 묘실에 모신다. 관은 사용하지 않는다. 2015년 서거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도 그 수많은 재산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을 관 없이 수의로만 싸서 공동묘지에 매장했다고 하여 국제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슬람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내세에서 부활하여 심판을 받기 때문에, 묘지를 화려하게 꾸미는 등의 행위가 허용되지 않는다.

샤리아에 나와있는 이슬람교의 정통 장례방법은 다음과 같다.

시신을 이맘 앞에 두고 고인이 남성일 경우 이맘은 시신의 머리 쪽에 서서, 고인이 여성일 경우 시신의 중간에 서서 장례예배를 주관한다. 이 때 시신의 머리가 메카를 향하게 한다. 첫 번째 타크비르를 한 후 쿠란의 알-파티하장(개경장)을 암송한다. 두 번째 타크비르를 한 후 무함마드를 위한 기도를 암송한다. 세 번째 타크비르를 한 후 망자를 위한 기도[56]를 한다. 그 후 네 번째 타크비르를 하는 것으로 장례예배를 끝낸다. 그 후 시신을 매장하거나 매장이 불가능하면 대안책으로 바다에 수장한다.

터키의 장례문화를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고인이 사망하면 의사를 통해 사망을 확인하고, 가까운 모스크에서 이맘을 불러서 장례식을 준비한다. 다만 이곳 풍습이 유교식 매장례와 달리 최대한 빨리 매장하는 것을 도리로 여기기때문에, 부고를 요란하게 돌리지는 않으며 대개 아침에 죽은 사람은 그날 저녁에, 저녁에 죽은 사람은 다음 날 아침에 매장하는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고인의 친족이라 할지라도 타지에 나가있으면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흔하다. 대신 부고를 늦게 접하거나, 거리가 멀어서 장례식에 참가하지 못한 고인의 친족이나 가족은 무덤을 방문해 예의를 갖춘다.

장례식은 모스크에서 예배 후에 치러지며, 이때 이맘은 모인 조문객들에게 "고인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라고 묻는데 조문객들은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세 번 대답한다. 상갓집에서는 헬와라는 달콤한 과자를 대접하는데, 상갓집 일손이 바쁠 때면 고인의 이웃들이 과자와 음식을 준비해서 부조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영결식 전에는 조문객들과 유족들이 다함께 모여서 헬와를 만들어 나눠먹는데, 헬와를 만들때 냄비속의 헬와를 한 사람씩 나와서 숟가락으로 저으며 "그는 생전에 내 빚을 탕감해주었다."와 같은 고인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나누며 추모하는 의식을 한다. 이때 울거나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금물인데, 사람이 죽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인데다가 지나치게 슬퍼하면 고인에게 누를 끼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결식때는 남자들만이 장지로 향하며[57], 묘지에는 널판을 깔고 고인의 시신을 모시고 온 관을 열어 시신을 꺼낸 후 시신을 관 없이 안치한 다음에 널판으로 그 위를 잘 덮고 그대로 흙으로 덮는다. 봉문은 대개 관모양으로 돌벽을 쌓는 식으로 만들고, 과거에는 생전 고인의 지위를 본딴 '터번' 모양의 비석을 세웠지만, 오늘날은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쿠란의 구절을 담은 비석을 세운다. 장례식이 끝나면 다시 한 번 조문객과 고인의 이웃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열고 상복은 입지 않는다.

7. 그 밖의 장례 방식

매장된 시신 근처에 나무를 심는 수목장이 있다. 이외에 시신을 화장하여 나온 유골(뼛가루)을 고인이 생전에 가장 가고 싶었던 곳에 뿌려주는 형태가 있지만 허가없이 아무 데나 뿌리면 잡혀간다.[58]

바이킹들은 고인을 고인의 생전 귀중품들과 같이 배에 띄운다음 배까지 태워서 가라앉히는 독특한 장례문화를 갖고있었다. 발할라에 가기 위해서라고. 매체에서는 배를 멀리 띄워보내 불화살로 맞춰 태운다는 심히 간지나는 설정이 붙곤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맞추기도 어려울 뿐더러 빗맞추기만 계속하다가 화살이 닿지 않을 거리까지 배가 너무 멀리 나가기라도 하면 엄청난 결례가 될 테니.

스웨덴에서는 2000년대에 빙장(氷葬)이 개발되었다. 시신을 액체질소로 급속냉동시킨 후 분쇄해[59] 작은 입자들로 만들고, 수분을 제거한 뒤 생분해성 관에 넣어 매장한다. 즉, 동결건조법을 장례에 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매장한 유골의 완전분해는 1년이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매장과 달리 토양의 오염도 적고, 화장과 달리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므로 친환경적이라고 여긴다.[60] 그래서 녹색장이라고도 한다. 의외로 괜찮은 방법이어서 빙장이 개발되자마자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 여러 나라에도 널리 퍼졌으며, 유네스코에서는 빙장을 친환경 장례문화로 인정하고 전 세계 국민들에게 빙장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친환경 장례법인 빙장을 본격적으로 전국에 도입한다고 했다.

티베트에서는 시신을 토막 내어 독수리들에게 주는 조장을 시행한다.[61] 이를 두고 야만스럽다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지리 특성에 따른 장례 방식이니 이해해야 한다. 산지라서 땅이 거칠어서 제대로 파기도 어려워 묻을 수도 없고 나무가 없어서 화장도 하기 힘들기에 택한 장례 문화이다. 예전에 몰지각한 외국인들이 이 장례식을 마구 촬영한 후 야만스럽다 하며 비난하기도 했지만 해외 다큐멘터리로 알려져서인지 요즘은 그런 비난이 없어졌다.[62] 더불어 이 조장은 티베트 말고도 과거 흉노나 미국 원주민들, 많은 지역에서도 흔한 장례[63]였다. 또한, 티베트에서는 시신을 먹은 독수리가 하늘을 날면 죽은 자의 영혼 또한 하늘로 간다고 믿는다.

그 밖에도 극지방 이누이트들은 똑같이 죽은 사람을 북극곰에게 줬다. 여기도 추운 지역이라 시체를 묻을 수도, 묻어봐야 썩지 않고 땔감도 없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었기에 생겨난 장례였다. 이쪽도 곰에게 시신을 먹힌 사람은 곰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 곰이 사람들에게 사냥당해 먹히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세아니아 어느 섬에서 죽은 이를 깨끗히 씻은 다음에 먹는 식인 장례도 있었다. 다만 이런 방식은 인륜적인 건 차치하고서라도 전염병 확산 원인이 될 수 있기에 매우 좋지 않다. 파푸아뉴기니의 포어족은 친척이나 지인들이 사망자의 시신 일부를 먹는 장례문화가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망자의 혼이 산자들과 함께 하게 된다는 믿음이라고. 그러나 이 풍습 탓에 전염병이 돌아 많이 죽었다고 한다. 이는 데드 아일랜드에서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장례방식으로 '풍장'(風葬)이란 것도 있다. 시신을 외딴 곳에 방치해 썩게 놔두는 방식으로, 위의 조장과 다른 점은 짐승이 함부로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높게 지은 오두막에 시신을 안장하고 거적 등으로 가리거나 또는 동굴, 높은 나뭇가지 위 등의 장소에 시신을 안장한다.

형벌 중에서는 죽은 후 장례를 금지시키는 형벌도 존재한다. 이 경우는 대부분 사형수인데 사형으로도 죗값을 치를 수 없다고 판단되는 범죄자에게 내리는 극악무도한 형벌이였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 역시 반역자인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 장례를 치러주는 것을 외숙부 크레온이 금지하자 이에 안티고네가 반발하는 것이 작품의 주요 갈등 구조.

미국에서는 한때 우주 관련하여 SF소설 작가나 우주 과학에 기여한 사람 중 몇몇을 선발하여 화장한 재를 로켓에 심어 우주로 내보내는 우주장을 1997년부터 실행했다. 참고 이렇게 우주장으로 장례를 치른 사람 중에는 스타 트렉의 작가 진 로덴베리, 슈메이커 레비 혜성을 관측한 학자 유진 슈메이커, 전직 우주 비행사인 고든 쿠퍼 등등의 명사들도 있다. 특이한 사례로는 명왕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가 있는데, 명왕성 탐사선 뉴 호라이즌스에 유골 일부가 탑재되어 태양계를 떠나간 최초의 유골이 되었다. 이런 우주장을 대행해 온 셀레스티스 사는 현재 우주장을 치를 사람들에 대해 신청을 받고 있으며, 2019년 6월에 스페이스X 팰컨 헤비 로켓의 미 국방부 미션인 STP-2 미션에서 152명의 유골들을 지구 궤도에 올렸다.#

미국의 우주장이 꽤 신박한 장법이어서인지, 미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일본에서는 우주장례라는 것을 상품화했다. 말 그대로 유골을 로켓을 이용해 우주공간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우주장례 비용은 한화 약 450만 원으로 의외로(?) 저렴하며 인공위성에 실려 240년간 지구 궤도를 도는 것은 950만 원이다. 이외에도 달까지 운반하거나 태양계를 벗어나는 등의 방식이 있다고는 하는데 물론 실제로 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다. 달은 지구 모두의 유산이라 했던 것 같은데 시신을 달로 그냥 보내도 되는 걸까

중국에서는 눕혀서 무덤을 만드는 형태의 매장형 장례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아무래도 인구가 14억이니 그렇게 했다가는 땅이 남아나질 않을 것을 우려한 조치일 것이 높다. 그래서 국가에 큰 공헌을 하거나 어지간히 큰 위인이 아니거나 관을 쓰지 않고 시신을 자동차에 태워서 묻는 경우, 직립매장으로 묻는 경우, 시신이 너무 뚱뚱해서 화장장 소각로나 빙장장 냉각로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64] 그리고 소수민족의 종교적 원인을 제외하면 시신을 관에 담아 눕혀서 묻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대신 묻더라도 관을 세워서 묻는 직립매장의 형태나 수장이나 화장[65]이나 빙장[66]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한다.

화학적으로 시신을 처리하는 수분해장이라는 장례법도 있는데, 주로 시신을 강알칼리용액에 담궈 대부분 액체로 분해시켜 버리고, 뼈나 보철물 등 일부 녹지 않는 성분을 유족에게 전달하는 형태다. 빙장과 쌍벽을 이루는 가장 친환경적인 장례 방식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관심을 끌고 있지만, 시체를 녹여 대부분을 하수도에 흘려보낸다는 행위에 대한 이미지가 극히 좋지 않기에 널리 쓰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미국 뉴햄프셔주는 수분해장을 합법화했다가, 불과 2년만에 지나치게 혐오적이라는 이유로 금지시켜 버렸을 정도.

푸에르토리코나 미국 일부 주에서는 시신을 생전 모습이나 원하는 방식으로 꾸며서 테마를 정해놓고 하는 테마 장례식이 유행이라고 한다. 사망한 택시 기사는 장례식만큼은 진정한 택시 기사답게 치러달라는 유언에 중절모를 쓰고 택시 기사로 변신했으며 링 장례식과 그린 랜턴 장례식 포커 장례식 그리고 드레스를 입고 흔들의자에 앉아서 조문객을 맞은 할머니 장례식 등이 일종.

아르헨티나에서는 축구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데 탱고 축구의 국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건 역시 축구 장례식이다. 생전 고인이 특정 축구클럽의 팬이었다면 장례식장이 클럽의 고유색깔과 소품으로 꾸며진다. 고인이 눕게 될 관도 클럽의 고유색깔이 칠해지고 문장이 새겨진다. 고인이 한때 디에고 마라도나가 활약한 아르헨티나의 세계적 클럽 보카 주니어스의 팬이었다면 관은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지고 중앙에는 보카 주니어스 클럽의 문장이 새겨지는 식이다. 장례식장은 축구공과 유니폼 등 축구소품으로 꾸며지고 고인이 입게 될 수의도 축구 유니폼이 된다.

한국을 제외하고는 바다에서 선원이 사망 한 경우 선원장례가 치뤄지고 바다에서 죽은 선원의 시신은 자신의 고향인 바다[67]에 돌려 보낸다는 전통에 따라 고향인 바다에 장사지내는 수장의 방식로 장사되는 것이 전통이다.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고인이 될 예정인 사람의 주최 하에 생전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가정마다 다르지만 이렇게 장례를 치르는 경우 보통은 "장례 파티"라는 이름으로 잔치에 준해서 치르며, 고인이 될 예정인 사람이 말기암 환자 등의 경우라 죽는 방법에 대해 숭고한 결단을 내린 경우가 많으므로 고인드립은 당연히 무례한 행동이고,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잔치에 준해서 즐기되 고인 예정자와의 좋았던 기억을 공유하는 게 예의이고, 고인 예정자도 와줘서 감사하다는 식으로 환대하는 게 유족 예정자에 대한 예의다. 이렇게 장례를 치른 경우 고인이 운명하시고 난 후에는 별도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바로 입관 후 장지로 향하며, 이런 식으로 장례를 치른 경우 가정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안장 후 바로 탈상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형태의 장례식이 흔하다고 하며, 한국에서는 조선 중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창안한 장례 방법이기도 했다.[68]

고대에 순장이라는 잔인한 장례가 있었다.

8. 장례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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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 때는 한국 팀이 4강에 가자, 상갓집에서 춤추고 만세를 부르는 난리법석이 TV 뉴스를 타기도 했다.

어느 외국인 기자가 대한민국의 장례식장을 직접 가 보고 "축제와 같은 느낌이다."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하긴 그냥 암울한 분위기의 다른 나라의 장례식과는 달리, 육개장수육소주 등을 먹고 마시면서 한쪽에서는 화투를 치고 있고[69] 밖에서는 윷놀이를 하고 있고[70]. 서로 싸우고, 웃고, 울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이를 일종의 카타르시스, 즉 슬픔이라는 감정을 다른 형태로 승화시켜 배설하는 형식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한국 특유의 장례 분위기를 소재로 다룬 장편소설 <축제(祝祭)>가 있다(임권택 감독의 동명의 영화의 원작). 실제 진도군에서는 '다시래기'라 하여 출상 전날 밤에 춤추고 노래하면서 논다. 일종의 재담극.[71] 뿐만 아니라 출상 때에도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상여를 따라간다. 꽹과리 등 악기 필수. 이때 상여를 매고 가면서 부르는 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는 상여소리가 유명하다[72]. 관련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이에 대해 상당히 심도 있게 다루었다.

사실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손님이 장례식장에서 너무 슬퍼하는 것도 유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가장 슬퍼해야 하는 유족들도 애써 참으며 손님 맞이를 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너무 슬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에 와서 가족들과 조문객들이 너무 슬퍼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이승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되어서 쉽게 저승으로 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일부러 밝은 분위기로 즐겁게 놀면서, 저승에 가서도 걱정말고 즐겁게 잘 지내라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 북치고 장구치고 하면 얻어맞는다.

사실 간단하게 이야기 하자면, 이러한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고인의 사망 당시의 나이에 반비례한다. 즉, 고인이 고령일수록 밝고 어릴수록 어둡다.

노환자연사로 사람이 잠 자듯 편히 가면 호상(好喪)[73][74]이라 하여 식장 분위기도 자연히 밝아진다. 조선 시대에도 장례 후에 장구 치고 북 치면서 축제를 벌이는 풍습이 있었다니 나름 유서 깊은 문화다. 만약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먼 친척이나 지인의 장례식에 가게 되면, 유족을 신경쓰며 일부러 슬퍼하는 기색을 보일 필요는 없다. 사실 노환으로 죽은 사람의 장례식 풍경이 의외로 가벼워지는 것은 서양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장례식에서는 친척들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이 예의상 참가하므로 가족끼리 오랜만에 만나기도 하고 수십년만에 친구를 만나기도 하니[75] 의외로 분위기가 가벼워진다. 이러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지, 지인, 옛 이웃, 친구들과만나 담소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인에 대한 얘기가 나오며 추억을 나누면서 울고 웃다 산 사람들간의 관계도 재확인하고, 감정적인 해소도 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적어도 노환으로 자연사한 장례식들은 은근히 축제 분위기가 있는건 충분한 사회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학생을 포함한 젊은 사람이 비명횡사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드물지만 대형 사고로 줄초상이라도 나면 자연히 식장 분위기는 암울해진다.[76] 설령 고인이 모두 고령이라 하여도 분위기가 어둡다. 이럴 땐 분위기 봐서 눈치껏 행동하는 게 좋다. 다만 젊은 사람이 살신성인하여 수많은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상을 당했다던지 하면 유가족들이 의로운 행동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침울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호상이라고 할 수도 없으므로 이럴 때도 행동에 있어 조심하는 것이 낫다. 아무리 분위기가 호상에 준한다고 해도 의사자 선정 등 여러 복잡한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이 자살이라도 하면 그 분위기는 정말 참담해진다. 뭔가 위로를 하고 싶어도 이만큼 충격적인 일을 겪은 사람들이 얼마 없어, 말을 꺼내는거 자체가 무안해져 자연스럽게 슬픔만 짙게 깔린 어색한 침묵이 형성되니 정말로 문상 가는거 자체가 모두에게 비극인 경험. 게다가 고령일수록 조문객들이 고인에게만 인연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나이대가 어릴수록 고인보다는 가족들 전체와 이런 저런 인연이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더욱 그렇다.

장례식장마다 한켠에 초대형 룸이 있고 거기서 식사대접을 하는데, 문상을 가는 사람들이 한번씩 들러서 공짜 밥을 먹고 갈 수 있다. 비용은 상주 측에서 부담하는 데다, 더 달라면 쿨하게 더 주는 업체들이 대부분. 식단은 여러 종류들이 있지만 대개의 경우 육개장편육 or 수육은 사실상 필수로 들어간다.[77] 여기에 더해 김치, 소고기, 새우젓, 전이나 부침, 떡, 사이다, 마른안주, 코다리조림, 제철과일 정도가 더 붙는다. 어지간한 중산층 가정에서 초상이 나면 식사비용만 수십만 원이 들어가는데,[78] 당초 요청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가면 계속해서 영수증이 추가된다. 그리고 이때마다 빈소 입구로 사람이 찾아와서 서명을 받아간다. 처음에는 빈소를 지키던 상주도 시간이 얼마 이상 지나면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과 함께 식당에 죽치고 앉아서 소주를 거나하게 까면서 주거니받거니 하는 경우가 많다. 늦게 문상을 왔는데 상주를 뵈어야 한다면 식당 쪽을 잘 살펴보자(…).

필리핀에서는 상갓집에서 노름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동네에 장례식이 열리면 그 쪽으로 몰려가서 판을 벌인다. 물론 판돈 중에 일부는 걷어서 조의금으로 상주에게 전달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관이 묘지 안으로 들어갈 때 문상객과 유족이 손뼉을 치고 기뻐하며 환호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천주교국가답게, 고인이 그 동안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현실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천국으로 간다고 믿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을 축하하는 뜻이라고.

뉴질랜드에서는 망자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하카를 추기도 한다. 수백명의 정장입은 남정네들이 비장에 찬 모습으로 부르는 하카는 그야말로 장관. 20초 부터 감상

일본은 장례식 후 조문객들에게 소금봉투를 나누어 주는데 집에 들어가기 전 몸에 소금을 뿌려 혹여나 모를 부정한 잡귀를 쫓아내라는 의미라고 한다. 먹는거 아니다. 에비 지지.

아프리카 남부의 장례식도 일종의 축제 분위기를 띄고 있으며 즐겁게 노래를 부를 모습이 보여지는데 넬슨 만델라의 장례식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만의 흔한 장례식 풍경.노래는 흥겨운데 왠지 우주가 느껴진다 대만과 중국은 장례식에 사람이 많이 올수록 호상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장례식장 분위기를 밝게 하고 조문객들을 많이 모으는 편인데,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조문객들을 모은다는게 좀 과했던지라 스트립쇼에 뱀쇼까지 펼쳐지는 지경이 되자(클릭시 후방주의) 정부에서 법으로 장례식장에서의 스트립쇼를 금지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뭐든 적당히

그리고 한국과 일본같은 경우 점점 더 고령화로 진행되면서 70대인 고인의 자녀가 상주를 맡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옛날이었으면 자신들의 장례식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니 이들이 체력적으로 부담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게다가 70대 자녀의 자녀가 되는 고인의 손자도 50줄을 바라보는 경우가 대다수라 체력이 팔팔하지는 않아서 장례식이 진행될수록 피로가 누적된 유족들이 "이러다가 줄초상 나겠다."라는 말을 내뱉기도 할 정도다. 더구나 손자가 수능 출제위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또한 자식들도 50, 60을 바라보면서 부모가 일찍 결혼하여 자녀를 일찍 출산한 뒤 이들이 90살, 100살 넘게 살 경우 자식은 60, 70살이 넘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예전에는 가장 큰 불효로 여겨졌던 일인 자식이 먼저 죽는 일도 늘고 있다.[79][80]

이에 21세기 들어서는 빈소를 안 차리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고 좌식 생활이 좋지 않다는 인식과 맞물려 기존의 좌식 빈소를 입식 빈소로 바꾸는 경우도 늘고 있다.

8.1. 운구중 버스전용차로 이용 관련

운구중 장의버스와 같이 다니는 경우 고속도로에 들어섰다면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장례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일단 범칙금통지서가 날아온 뒤 사망진단서 등 증빙자료를 경찰에 제출하면 감경해주는 방식이다. 반드시 장의버스와 같이 다녀야 버스전용차로에 들어설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없으니 주의.

9. 반려동물 장례식

"뽀삐야 행복하렴"…장례업체 찾는 펫팸족

요즘은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러주는 전문 업체가 많아졌다. 주로 사람처럼 수의를 입히고 화장을 하며 간단히 예의를 표하는 의식을 치르는데 이 의식도 주인의 종교에 따라 달라진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

10. 관련 용어

11. 여담



[1] 고등학교 졸업식이 성인식의 위치에 있기 때문. 친구들끼리 술마시고 노는 걸 성인식이라고도 하기도 한다.[2] 종갓집 같은 곳을 제외하면 제삿상 차리고 술 따르고 절 하는 정도가 끝. 요즘은 제삿상을 차려주는 서비스도 있다![3] 관을 묻기 전에 미리 매장터에 가서 산신제를 지내고 포크레인 등으로 땅을 파두는 직업. 개장·이장 전문이라는 현수막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산역꾼이다.[4] 장례식장, 화장터, 봉안당, 상주 및 유가족의 결석계 등 수많은 곳에서 요구하므로 사망진단서(사망신고서)를 최소 10장은 구비하자.[5] 장례식장에서 운구차를 보내주기도 하고 그냥 사설구급차를 부르면 된다. 119 구급차는 원칙상 집에서 노환으로 자연사한 시신을 운구하지 않는다. 무작정 사람이 죽었으니 와달라고 119를 부르면 경찰이 필수적으로 현장에 도착해야하는 원칙상, 자연사임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진행 될 수도 있다.[6] 평소에 미리 찍어놓는 게 좋다. 노화에 따른 자연사나 암에 걸려 죽는 거라면 그나마 준비할 시간이라도 있으니 좋지만 전쟁터에 갔다가 전사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 그리고 늙고 병들기 직전의 초췌한 모습으로 남기 싫다는 이유로 요즘은 건강할 때 미리 찍어두는 경우도 많다.(그렇지만 종종 너무 예전 사진을 가져오는경우도 있다)[7] 사실 평시에는 군인, 경찰, 소방관 등 특수직업 종사자들 중 장례를 치를 일이 많은 직종이 소방관들이다. 워낙 위험한 곳에서 근무하고, 화재 진압 중 순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래서 전문병원과 전문장례식장이 없고 상조회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8] 다만 학교를 자퇴했거나 학교를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했던 학생이라면 교복이 없으니 평소 학생이 좋아했던 일반 사복을 입힌다.[9] 아래에도 적혀있지만, 삼베 수의를 입히는 것은 일제의 잔재다. 조선총독부가 1934년에 만든 의례준칙이라는 책에 처음 나온다. 삼베 상복은 고인이 아니라 오히려 남은 사람들이 자신은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입었던 것.[10] 일본, 미국, 유럽은 장례식을 할 때 고인에게 양복을 입힌다.[11] 해군/공군은 과거부터 인사참모부에서 관리하였고, 육군은 일본군의 영향 때문에 군수참모부에서 관리하였다. 그러나 이게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 죽은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냐는 맹렬한 비난이 쏟아져 2014년 3월 1일부로 육군 쪽에서도 일본군의 악습을 없애고 기존 군수파트에서 해군/공군처럼 인사파트로 이동되었다. 해/공군도 순직 장병 대우에 대해 적절한 예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약간의 논란이 있긴 했지만 물건 취급했던 육군과는 달리 인사 부서에서 다룬다는 게 민간인의 장례와 마찬가지로 장례 기간 중에는 살아있는 사람처럼 취급되는 게 되기 때문에 민간인 유교식 장례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상식적으로 용납 가능한 수준이라 그냥 넘어갔다.[12] 임용예정 교육생의 경우 정식 소방관과 같은, 혹은 유사한 임무수행 중 순직할 경우 순직 전일에 시보기간이 끝나 임용한 걸로 처리가 되고 훈장이 수여된다. 묘비에도 소방사 계급으로 표기된다.[13] 과거에는 그냥 민간인 취급이었지만, 충남 아산소방서 소속 3명 소방관 순직 사건이 발생한 후 문재인 정부에 의해 소방공무원임용령을 개정하여 순직 전일에 시보 기간이 끝나고 임용하는 걸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이는 2018년 현충일 1주일 전에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그해 현충일에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소개되었다.[14] 검은 완장(black armband)은 먼저 1770년대 영국에서 애도의 표시로 채택되었다. 리젠시 시대(Regency Era, 1795~1837년 사이) 동안 남자와 남자 아이들은 검은색 정장과 검은색 크레이프 완장(black crepe armband)을 착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애도 복장은 1837년에서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 동안 절정에 도달해서 여왕의 사랑하는 남편 앨버트의 사망 시 여왕의 종은 최소 8년 동안 검은색 크레이프 완장을 착용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1907년 3월 28일, 보스턴 아메리칸스 야구단의 감독 칙 스탈이 자살하고 1907년 3월 31일에 열린 야구 경기에서는, 보스턴 아메리칸스의 선수들과 상대 선수들이 필드에 서서 나비 매듭으로 맨 검은 리본(black crepe bows)을 왼쪽 팔에 착용하고 조의를 표하였다. 오늘날은 애도의 상징으로 검은 완장을 착용하는 관습이 퇴색하고 있다. 다만 검은 리본은 여전히 기억 또는 애도의 상징으로 검은 리본을 착용해서 죽음을 슬퍼한다. 그리고 보통은 양복에 검은 리본을 달고 장례식에 가서 애도하지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지에 리본 사진을 올려서 추모하는 방법도 있다. 검은 리본을 착용하거나 표시해서 전쟁 포로, 실종 군인들을 애도하는 등 개인이나 조직은 이따금 특정사건 후 희생자, 피해자를 애도하려고 리본을 사용하기도 한다.[15] 이철영 을지대 교수(장례지도학)는 “영좌를 꽃으로 장식하는 건 일본 문화”라며 “80년대 일본의 상조문화가 부산에 처음 상륙했을 때 꽃 장식이 함께 유입됐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장례업자는 “장례업계에선 매년 일본 전문가를 불러오거나 일본으로 건너가 최신 꽃 장식을 배운다”며 “요즘 꽃 장식이 더 화려해지고 있는데, 이 역시 일본을 따라한 것”이라고 말했다.[16] 만약 우리 전통 장례방식을 현대화시켜서 현대 한국인에게 적용한다면 한복을 입히거나, 평상복 중 좋은 것을 입힐 경우 서양식 장례에 쓰이는 수의와 비슷해져 버린다.[17] 박성실 단국대 명예교수(의상학)는 “조선의 일부 극빈층이 삼베 수의를 썼을 수도 있지만 현재 발굴된 건 없다”며 “수의가 생전에 입던 옷이라 목덜미나 소매에 때가 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18] 상주는 두 줄짜리 완장을 사용하며, 그 외의 가족은 한 줄짜리 완장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우에 따라서 기혼자의 경우 1줄짜리, 미혼자의 경우 줄이 없는 완장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19] 루리웹 회원인 닉네임 '하루카씨'(본명 최민석)의 마지막 글이며, 2014년 4월 15일에 올린, 내일 수학여행 가는데 밀린 애니를 못봤다고 하소연하는 글이었는데, 그는 단원고 2학년 5반 학생이었고 2014년 4월 16일은 절대 잊히지 말아야 할 그날이다. 글을 올리고 약 32시간 후 사고가 터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발 무사히 돌아오라며 몇천개의 댓글을 달며 기원하였으나 사람들의 염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5일 후인 4월 20일에 시신으로 발견된다.(<416 단원고 약전> 5권 참조)[20] 실제로 연세대학교 수시 논술로 출제되기도 했다.[21] 다만 동물들은 생애 수많은 죽음을 목격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애도반응은 전체 죽음 장면들에서 놀랍도록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22] 2010년대 들어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통혼을 했을 정도로 오랜 교류를 했다는점이 드러나면서 이들도 현대적 의미의 장례를 했다는 학설이 더 힘을 얻고 있다.[23] 임기 또는 현역에 한정하며 임기종료로 인한 전임자나 이임자 및 퇴직자는 해당되지 않는다.[24] 임기중 순직한 자에 한정하며 임기가 종료되어 퇴임 및 이임한 전직 행정수반이나 전직 공무원은 해당되지 않는다.[25] 임기중 순직한 자에 한정하며 도중 사직했거나 임기가 종료되어 퇴임 및 이임한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26] 재학 중 사망한 자에 한하며, 졸업생은 해당되지 않는다.[27] 현역자에 한정하며 전역자 및 퇴역자는 해당되지 않는다.[28] 옥이나 돌로 되어 타거나 썩지 않는 제품은 관에 함께 넣을 수 없다. 불법이다.[29] 관을 덮는 붉은 천. 관보(관싸개)와 별개의 물건이며, 위에 고인의 성명이 한자로 적혀져 있다.[30]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을 배운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묵자가 이를 비판하고 맹자가 반박한다. 묵자vs맹자는 윤리와 사상에서 흔하디 흔한 떡밥이다.[31] 특히 임금이 정침에서 죽지 않는 것은 큰 문제로, 공적인 공간에서 고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32] 이때 옷은 허리부분을 붙잡고 흔든다. 영상물에서는 흔히 한복의 동정을 붙잡고 흔드는데, 잘못된 것이다.[33] 지붕이 아니라 산정에서 외친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김소월의 시 '초혼'이 묘사하는 것이 이 절차라 보는 시각도 있다.[34] 이 반함은 보통 '저승길 노잣돈' 정도로 인식된다. 배가 고플 테니 쌀을 물려주고, 저승까지 여비가 필요할 테니 노잣돈으로 엽전이나 구슬을 넣는다는 식.[35] 현대에는 고인이 생전에 매우 아끼던 사람의 경우 입관시 참례시키지 않기도 한다. 고인이 이승에 미련을 못 떼기 때문이라는 듯.[36] 같은 이유로 대형 사고가 나서 구조대원들이 출동했는데,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시신수습이 아닌 구조활동이라고 말하는 것도 유교적인 이유 때문이다.[37]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우는 정인보의 '자모사'에 등장하는 '보공 되고 말어라'의 그 보공이다.[38] 예송논쟁 할 때 헷갈리게 만드는 주범, 아니 예송논쟁 자체를 유발시킨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장자와 차자를 포함한 여러 아들, 장자부와 차자부를 포함한 여러 며느리에 대한 상복이 다르기 때문에 장자 대접이냐 서자 대접이냐를 놓고 싸운 것.[39] 심지어 '단문복'이라 하여, 3개월만 입는 시마 이하의 복제도 있다.[40] 5푼 정도의 두께로 북두칠성 모양 구멍을 뚫은 판. 죽음을 상징한다고 하며, 고문할 때 뉘이는 칠성판의 유래다.[41] 벼슬이 낮거나 없는 사람은 '유월장'이라 하여 죽은 달을 포함해 3개월간 장례를 치르지만 벼슬이 높은 공경대부는 죽은 달을 제외하고 3개월을 지냈다.[42] 무령왕릉 지석에는 모월 모일 이곳의 토지신께 고유하고 얼마에 값을 치러 무덤터를 샀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43] 정확하게 '천구'라고 지칭하지는 않았다.[44] 예를 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는 서울광장에서 치러졌고, 故 신해철의 노제는 그의 분당 작업실 등을 지나는 루트로 진행됐다.[45] 예를 들어 유일인 '을'에 해당하는 날 장사를 치렀으면 다음 유일인 '정'에 해당하는 날 재우제를 치른다.[46] 강일과 유일이 번갈아 오기 때문에 그래봐야 재우재 다음날이긴 하다.[47] 물론 재최 1년복 이하 재최 9개월, 5개월, 3개월과 대공, 소공, 시마는 이미 탈상한 후이다.[48] 여기서 3년은 사실 햇수로 3년이지 실제로는 만 2년을 의미한다.[49] 삭망제(朔望祭). 각각 삭제와 망제로 엄격히 구분하기도 한다.[50] 제(祭)가 아니라 재(齋)다! 해당 항목으로.[51] 이 경우 자신은 고이 보내드리고 장례가 끝난 후 바로 일상으로 복귀하라는 고인의 유언 혹은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교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유족 입장에서는 부모 잃은 슬픔에 극단적으로 간소화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토요일에 돌아가신 분일 경우 월요일 오전이 아닌 일요일 오후에 발인을 해서 주말 안에 모든 장례 절차를 해결하고 월요일부터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하기도 한다.[52] 당뇨합병증으로 갑자기 천국 가는 것이라던가. 참고로 가톨릭 신부들이 취약한데 금욕이 의무화된 데다 온갖 스트레스 받는걸 술, 담배와 폭식으로 푸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53] 정교회는 장례예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성찬예배 전통과 명칭은 없다. 다만, 성찬예배 중간 혹은 끝에 '장례예식'을 별도로 거행한다.[54] 엄격하게 야훼의 거룩함을 지키려는 의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예배에 목적을 따로 두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천주교·정교회·성공회 교인들은 삶과 예배를 분리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일들이 크고작은 예배인 것.(사실 이것은 개신교에서 더 강조하는 내용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든 일터에서 일을 하든 그 자체로 주님께 드리는 예배이다. 이들에게는 장례와 같은 큰 일에 미사 또는 성찬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전혀 어색한 것이 아니다.[55] 천주교의 형식을 개신교의 정신으로 행하는 성공회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56] 오 하나님! 우리들 중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 볼 수 있는 자들과 볼 수 없는 자들, 어린이들이나 어른들, 남성들이나 여성들 모두를 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만일 우리 중 누군가를 살게 해 주신다면 그 사람이 무슬림으로 살게 해주시고 또 누군가를 죽게 하신다면 그가 믿음을 가진 신앙인으로 죽게 해 주십시오. 오 하나님! 고인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관대함으로 그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천국의 문을 더 넓게 해주시고 그를 깨끗한 물과 눈, 그리고 우박으로 정결히 씻어주소서. 흰 천에 묻은 오물이 깨끗이 씻기는 것처럼 그의 잘못을 깨끗이 씻어 주십시오. 오 하나님! 그에게 주어질 보상에 인색하지 마시고 그와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57] 여자들도 고인과 가까운 가족이나 친족들은 함께 장지로 향하지만 고인이 세상에 미련을 남길 수 있다고 하여 일반적으로 고인의 부인이나 고인이 특별히 아끼던 아들, 딸은 동행하지 않는다.[58] 다만 바다에 뿌리는 건 정부에서 문제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59] 분쇄라고는 해도 시신을 통째로 분쇄기에 넣고 갈아버린다던가 하는게 아니라, 급속냉동된 시신은 결정구조가 변화해서 작은 충격만 줘도 부서진다고 한다. 즉, 시신을 흔들어 주는 것만으로 시신이 잘게 분쇄된다.[60] 빙장에서도 기체가 발생하기는 한다. 시신을 냉동할 때 사용되는 액화질소가 기화하면서 질소 가스가 발생하고,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수증기가 발생한다. 물론 질소와 수증기는 환경에도, 인체에도 아무런 해가 없는 기체이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문제시될 부분이 전혀 없다.[61]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글판에서 생생하게 촬영한 바 있는데 그야말로 원초의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참 특이하게도 독수리들이 사람이 죽으면 알아서 모이고 시신을 가지고 오면 차분하게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당시 잡지에선 조장이 아니라 천장(天葬)이라고 부른다고 나온 바 있다.[62] 한비야도 한 백인 관광객이 조장을 비난하다가 현지인들에게 "당신들은 이런 배경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죽은 시체를 그냥 당신의 집안에 두고 방치할 것인가?"라는 분노 어린 반박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져 그냥 물러선 것을 본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63] 소설 <마지막 모히칸>에서도 친구이던 원주민 운카스가 죽자 이렇게 장례를 한다. 이걸 보고 백인들이 야만인이라고 하자, 황량한 배경에서 저것처럼 아름다운 장례는 없다는 주인공(백인이지만 원주민들과 자라났다)의 반론에 백인들은 반론도 못했다.[64] 중국 최고 비만 남성인 쑨모 씨가 사망하자 쑨모 씨의 시신이 화장장 소각로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정부에서 쑨모씨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65] 불에 시신을 태워서 보관하는 형태의 장례 누구나 흔히 알고 있을 것이다.[66] 이 형태의 장례는 특이한데 시신을 얼음처럼 얼려버린 후에(물론 얼음보다 훨씬 강력한 액체질소를 이용) 시신을 부숴 가루로 만들어 친환경 용기에 담아 매장하는 형식이다.[67] 한 평생을 바다에서 일한 선원들에게는 바다가 고향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 전통에 따라서 선원의 시신을 바다에 장사지내게 된다.[68] 자신의 병세가 깊어지자 약을 물리치고 친구들을 계산초당으로 불러 임종 파티를 열었다 한다.[69] 단적인 예로, 장례식에서 섰다를 하면 10과 4의 "장사"를 제일 높은 족보 "38광땡"보다 패를 더 높게 쳐주는 불문율이 있다. 상주에게 돈을 빌리면 끗발이 좋다는 속설도 있고, 또한 상주에게 말이라도 한 번 더 걸 겸 "상주님 돈 좀 빌려주세요"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빌려주면 된다. 물론 빌리는 사람도 상황에 따라 정중하게 말하자.[70] 지금은 장례식장에서 의례를 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지만 2000년대 초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손님을 맞이하고 발인까지 했다. 그러면서 안에서는 화투놀이를, 바깥 마당에서는 윷놀이판이 벌어지곤 했던 것.[71] 중요 무형문화제 제81호.[72] 영화 축제를 보면 이때 상여소리를 하는 상두를 시키기 위해 그 동네의 유명한 소리꾼을 모셔와서 상여소리를 요청하는게 있다. 문제는 소리꾼이 술을 과하게 해서 누워버리는 바람에 결국 마을에서 노래 잘부르는 아저씨가 땜빵을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73] 장의를 관리하는 이른바 장의사를 뜻하는 말도 호상(護喪)인데, 한자만 봐도 다르니 사용시 주의를 요구한다.[74] 병사(病死)여도 치매같은 비참한 병이 아닌 이상 고령으로 병사하였으면 호상(好喪)으로 친다. 현재는 보통 80세 넘어서 노환으로 돌아가시면 호상으로 보는 분위기.[75] 예를 들어, 50넘은 사람이 고등학교 동창을 30년 넘어서 재회하는 상황이 많이 일어난다.[76] 세월호 참사 때 단원고 학생들의 장례를 도왔던 장례식장 대표가 그 말할 수 없이 참담한 분위기에 충격을 받아, 자신의 수익을 전부 털어서 유가족 지원과 단원고 기부에 쏟아부었던 일이 있다. 이분은 이때의 일을 계기로 계속 단원고 학생들의 교복을 사 주는 등의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고.[77] 이 메뉴들이 업체측에서 제공하는 가장 싼 메뉴에 속한다는 점도 있긴 하다.[78]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이상 충실히 했다면 부의금이 식비를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닌 경우가 많다.[79] 대표적으로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있다. 그의 부모가 되는 구자경 명예회장은 아직 생존 중이이였으나 2019년에 돌아가셨다.[80] 다만 이 경우 대를 이을 자식은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었다고 해서 심각한 불효로 여기지는 않는 모양이다.[81] 비슷하게 그리스 신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양권에서는 저승의 뱃사공 카론에게 뱃삯을 줘야 한다는 이유로 동전 두 닢을 망자의 입 속에 넣어 주는 경우가 있었다.[82] 사실 액자 속에 그려진 창고는 관아의 돈을 넣어두는 창고였고, 훗날 한자경은 욕심을 부려 돈을 더 가져가려다가 죽을뻔한걸 전우치가 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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