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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14 14:33:15

에스페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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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의 상징기인 녹성기(綠星旗), 에스페란토로 Verda Stelo, 또는 La Espero 라고도 불린다.
Esperanto
에스페란토
언어 기본 정보
주요사용국 인공어
화자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음
사용인구 약 200만 명
모어 화자 약 3000명
어족 인공어, 인도유럽어족의 형태
문자 로마자
언어 코드
ISO-639 EO
주요 사용 지역
파일:external/www.mondeto.com/5728942.png
에스페란토 화자들의 위치[1][2]
에스페란토[3] Esperanto
프랑스어 Espéranto
러시아어 Эсперанто
그리스어 Εσπεράντο
아랍어 إسبرانتو
히브리어 אספרנטו
일본어 エスペラント
중국어 世界语/世界語
라틴어 Lingua Esperantica
Namuviki: la arbo de scio, kiun vi kulturas.[4]
나무위키, 여러분이 가꾸어 나가는 지식의 나무.
에스페란토로 읽은 세계 인권 선언.

1. 개요2. 역사
2.1. 국제어의 가능성2.2. 한국에서2.3. 중국과 일본에서
3. 특징4. 문자와 발음
4.1. 수페르시그노의 대체 표기
4.1.1. X 체계4.1.2. H 체계
5. 문법6. 에스페란토의 장점과 단점
6.1. 장점
6.1.1. 쉬운 난이도(문법의 합리성)
6.2. 단점
6.2.1. 특정 어족에 편향된 어휘와 문법6.2.2. 수페르시그노 표기의 비합리성
7. 에스페란티스토8. 문화예술에서의 에스페란토9. 예문
9.1. 자멘호프 예문9.2. 실생활 예문
10. 한국어에서 자주 쓰이는 외래어 단어11. 에스페란토화12. 에스페란티도13. 관련 문서14. 관련 사이트


복사용 문자는 언어별 확장 라틴 문자 목록에서 얻을 수 있다.

1. 개요

Ekbruligis mi fajron en kor’, 내 마음에 불씨 하나 피웠네,
Ĝin estingos nenia perfort’; 그 불씨 힘으로는 끄지 못하리.
Ekflamigis mi flamon en brust’, 내 가슴에 불꽃 하나 타오르네,
Ĝin ne povos estingi eĉ mort’. 나 죽어도 꺼지지 않으리.

Brulos fajr’ ĝis mi vivos en mond’, 세상 사는 날까지 피어 오르리 그 불씨,
Flamos flam’ ĝis ekzistas la ter’. 지구가 사라지는 날까지 타오르리 그 불꽃.
Nom’ de l’ fajr’ estas am’ al homar’, 그 불씨, 인류를 향한 나의 사랑,
Nom’ de l’ flam’ estas am’ al liber’. 그 불꽃, 자유를 향한 나의 사랑.

바실리 야코블레비치 에로셴코(Vasilij Jakovleviĉ Eroŝenko, 1890년 1월 12일 ~ 1952년 12월 23일). "인류의 일원(Homarano)."[5] TERanidO 238호, 2016년 12월 5일,
http://teranido.blogspot.com/2016/12/teranido-238-2016-12-5.html.
에스페란토는 유대계 폴란드인 안과의사였던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가 국제적 의사소통을 위한 공용어를 목표로 하여 1887년에 발표한 인공어이다. 에스페란토라는 명칭은 에스페란토로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 문법서를 처음 발표할 당시에 사용한 가명(D-ro Esperanto)에서 유래하였다. 흔히 "에스페란토어"라고 쓰기도 하는데, 에스페란토라는 사람 무리나 에스페란토라는 나라에서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는 겹말이지만 산스크리트어의 예도 있고 해서 무작정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는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인공어 중에서는 가장 많은 수치이다. 에스페란토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사람도 수천 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경우는 부모가 모두 에스페란토를 구사해 자연스럽게 이를 모국어로 습득한 경우다.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Universala Kongreso de Esperanto)도 있는데, 1905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열린다. 1994년에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되기도 했고, 2015년에는 대망의 100차 대회가 프랑스의 도시 에서 개최되었다. 또한 2017년 대회가 다시 대한민국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7월 29일까지 진행되었다.

2. 역사

자멘호프 박사가 태어난 폴란드 북동부의 비아위스토크(Białystok)시는 당시에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폴란드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독일인, 유대인 등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었는데[6] 이들 사이의 반목이 극심했다. 박사는 그 원인을 언어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언어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누구나 배우기 쉽고 소통이 용이한 언어를 만들고자 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에스페란토이다.

자멘호프 자신은 언어학자가 아니라 폴란드안과의사였다. 하지만 유년시절부터 언어에 소질이 특출나서 이디시어폴란드어만 아니라 그리스어라틴어, 영어 등도 배웠다. 당시 상황이 상황이라 러시아어도 모국어에 가깝게 사용했다. 오죽하면 자신이 한때는 위대한 러시아 문인이 되고 싶었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1878년 에스페란토의 시험판인 '린그베 우니베르살라'(세계어)를 만들어 고등학교 동급생에게 가르쳤다. 그 후 6년간 여러 문학작품과 시를 번역하며 언어를 발전시켜나갔다. 1887년 최초의 에스페란토 서적인 <첫번째 책>(Unua Libro)를 발표하였다. 이 책에는 에스페란토의 문법과 어휘, 예문과 자멘호프의 창작시 두 수가 실렸다.

에스페란토는 발표되자마자 당시 국제 인공어계의 주류인 볼라퓌크를 누르고 대표적인 인공어로 발돋움하기에 이른다. 1905년 프랑스 볼로뉴 쉬르 메르에서는 첫 번째 에스페란토 세계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는 에스페란토 문법의 변경을 자멘호프의 '에스페란토 기초'에서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선언이 채택되었다. 하지만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음운과 문법 등 여러 부분에서 미약한 수준이지만 변화가 이루어졌다.1920년 1차 국제연맹 총회에서는 에스페란토를 국제어로 각 회원국의 공립학교에서 가르치자는 결의안이 올라오기까지 했지만 프랑스의 반발로 통과되지 못했다. 그 외로는 중립 모레스네에서의 공용화 시도가 있었다. 결과는 물론 실패를 하였다.

당시에는 에스페란토를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이 겨우 2가지 뿐이었다. 직접 만나거나 아니면 편지를 보내거나. 하지만 이마저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사이에 터진 세계 대공황 등으로 에스페란토는 대위기를 맞았다. 이 시기 유럽에 퍼진 전체주의나치즘, 파시즘은 에스페란토의 확산을 경계하였고, 결정적으로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에스페란토를 '유대인의 모략'이라고 주장한 게 에스페란토 운동을 직격하였다. 하필 에스페란토의 창시자인 자멘호프가 유대계라는 점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고, 이로 인해 독일, 포르투갈, 소련 등 여러 지역에서 에스페란토는 박해를 받았다. 1935년 나치 독일이 내린 에스페란토 금지령에 관한 기사. 이와 같이 노골적인 박해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자멘호프는 유태인으로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았던 사람이었고, 오히려 반-시오니즘에 가까운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나치한테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결국 나치는 1942년 라인하르트 작전[7] 당시 자멘호프의 세 자녀까지 잡아들여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에서 살해했다. 그나마 손자가 탈출하여 자멘호프 가의 핏줄은 끊겨지지 않았고,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는 1947년에 들어서야 다시 열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에스페란토에 대한 박해는 50년대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나마 현대,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에스페란토의 보급과 확산이 더욱 쉬워졌다. lernu!나 에스페란토판 위키백과 등의 인터넷 사이트, Kurso de Esperanto 등의 프로그램, 그리고 듀오링고 같은 앱 등이 에스페란토 사용자와 학습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비록 20세기 초(세계 대전 이전)와 같은 수준의 열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에스페란토 운동에 참가하고 있다. 인터넷 등의 도구 뿐만 아니라 게임화 등의 방법론도 나와 있어, 에스페란토 학습의 용이성은 초창기보다 오히려 나아졌다.

2014년에는 세계 에스페란토 축구 협회의 주도로 에스페란토 축구팀(Esperanta teamo de futbalo)이라는 다국적 축구팀이 창설되었으며 홈 구장은 슬로바키아 니트라에 있다. 국가 대표가 아니므로 FIFA가 아닌 NF-Board에 소속되어 있다. 2017년 서울에서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가 열렸을 때 동대문팀을 상대로 1대0으로 승리한 바 있다.

아시아에서 에스페란토 운동이 활발한 국가는 한중일이다.

2.1. 국제어의 가능성

흔히 국제 공용어를 목표로 한다고 해서 '에스페란토는 언어의 다양성을 훼손한다'라는 오해를 하기 쉽다. 하지만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모든 언어를 에스페란토로 통일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1인 2언어 운동을 펼쳐서, 각자의 고유 언어를 지키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필요할 때는 에스페란토를 공용어를 쓰자고 하는 것이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는 영어나 프랑스어처럼 힘 있는 언어가 국제어라는 미명하에 타민족에게 강요되는 현실을 비판하여 언어의 평등을 지향해서 나온 인공어다. 다만, 특정 언어가 강요되는 현실을 비판해서 만들어진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근거해 결국 에스페란토에서 말하는 평등이라는 것은 인도유럽어족 사용자만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에스페란토가 만들어진 때는 19세기로, 당시의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자멘호프가 제3세계권의 국가들을 고려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유대인으로서 차별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유럽 중심적인 언어라는 비판의 화살을 자멘호프에게 돌리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당시 시대상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한계점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런 비판점을 염두에 두어, 근래에 고안된 인공어들은 여러 대륙의 여러 언어들을 참고하거나 고안자의 출신과 다른 대륙의 언어를 바탕으로 만들기도 한다. 또는 기존에 존재하는 언어에 기초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는 경우도 있다.

에스페란토가 모든 이들의 제1외국어가 된다면 현재 영어가 하는 역할을 에스페란토가 수행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또다른 언어적 헤게모니가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가능하다[8]. 에스페란토가 다수언어나 국제적 공용어가 된다면 이와 동시에 에스페란토에 반대하는 세력이 생겨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에스페란토에 대항하는 또다른 인공어들이 주목받게 될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는 특히 두 에스페란티스토 사이에서 태어나 에스페란토가 모어인 사람이 아주 많아질 경우라면(즉, 다소 비약적이지만, 서로 모국어가 다른 부부가 인도인과 한국인이 영어로 대화를 하듯 서로 에스페란토로 대화하며, 자식교육도 에스페란토로 하여. 가족끼리 에스페란토로 대화하게 된 경우) 높은 확률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런 시나리오의 경우 1인 2언어를 지향하고 있는 에스페란토 특성 상 부모가 에스페란티스토라고 해도 그 자손은 부모 중 한 쪽의 언어나 자기가 사는 지역에 토대로 한 모국어를 가지게 될 경향이 높다. 가령, 각각 한국과 일본이 모국인 에스페란티스토 부모가 결혼하여 한국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면, 그 자식은 자연스럽게 에스페란토를 모국어로서 습득하겠지만, 동시에 학교와 사회를 거치며 한국어 또한 모국어로 구사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글쎄 두 개가 섞여서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거 같은데 이렇게 되면 모국어로서 에스페란토를 습득하였다 해도 에스페란토가 한국어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므로 한국어는 여전히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유럽 연합공용어로 에스페란토를 채택하자는 주장은 비교적 최근에 제기되었다. 이 주장의 선두주자는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다. EU가 법적으로는 모든 가입국들 언어를 인정하기 때문에 통역 또는 번역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한다. 물론 외교관쯤 되면 영어는 기본이고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비롯하여 특정 언어를 공용어로 제정하기에는 부심 자존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에 통번역 비용으로 지출되는 금액도 막대하며, 각 언어마다 표현의 범위가 다른지라 이로 인한 오역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중립적인 에스페란토를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주장이 있다. 생각 외로 이 주장에 호응이 커서, 20% 정도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채택되기에는 근시일에는 불가능함이 확실하다.[9]

현실적으로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어차피 영어 등 세계적으로 힘있는 다른 언어를 익혀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현재 사용 인구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닌 에스페란토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단순히 정치적 문제 때문에 새롭게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만약에 사용 인구가 많아져서 지정이 된다면 그것은 에스페란토가 '또 다른 힘 있는 언어'가 됨을 의미할 뿐이다. 인터넷이 없던 20세기 초반에는 지금의 영어같은 특정 언어권 국가들이 압도적으로 전세계 경제력을 장악하진 않았지만, 21세기에는 국제공용어가 영어임을 누구나 공감하므로 굳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가면서까지 기존의 영어를 대체해야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EU의 공용어 중에 하나로 등록하는 것이면 오히려 번역해야 하는 언어 수를 하나 더 늘려놓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에스페란토를 대표 언어로 지정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EU에서 활동하는 외교관·정치인들이나 EU 산하 각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상당수가 영어와 불어는 알아도 에스페란토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2.2. 한국에서

최초로 에스페란토를 배운 한국인은 벽초 홍명희라고 한다.[10] '벽초'란 호 자체가 '최초의 청록인', 즉 최초의 에스페란티스토를 의미하는 거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 에스페란토가 보급된 것은 1920년 김억이 YMCA에서 공개 강습회를 개최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조금씩 사람들이 모여 '조선 에스페란토 협회'가 창설되었고, 당시 유명한 동인지에는 거의 대부분 에스페란토에 대한 글이 실리는 등 많은 보급활동이 있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찾아보면 1930년대동아일보 등에 연재된 에스페란토 학습코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비 연구로 유명한 석주명 박사가 에스페란토를 사용하여 논문내용을 발표하였다. 문학시간에 배우는 카프도 사실은 에스페란토 약자라 '코아뽀포'라고 읽어야 맞는다.[11] 그러나 한국 전쟁으로 인해 한국에서의 에스페란토 운동은 위태로워진다.

독립운동가 이재현 선생이 쓰고 김교영이 감수한 에스페란토어 사전이 1969년에 발간되고, 1975년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가 창립되면서 한국의 에스페란토 운동은 새 전기를 맞는다. 1985년 단국대학교에서 에스페란토를 정규교과목으로 채택한 이후로 한국외국어대학교, 경희대학교, 원광대학교 등에서 에스페란토를 정식 교양과목으로 개설하였다. 1994년에는 제79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고, 2017년에 23년 만에 제102차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는 전국에 10개 지부를 갖추고 있으며, 매년 한국 에스페란토 대회(가끔 한일공동대회)를 개최한다. 이를 중심으로 여러 에스페란토 강좌가 열리고 있다. 특히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는 교재와 사전을 발간하고 있는데, 대형서점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사서 독학할 수 있다. 교재는 언어학습 도서치고 양이 적다.

한편 원불교가 종단 차원에서 에스페란토를 후원했다. 에스페란토로 경전을 번역하고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때마다 사람을 파견한다. 외국인들 앞에서 에스페란토로 지은 기도문을 한국의 절에서 축문하는 식으로 낭송하기도 했다.

에스페란토 동아리로는 1983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에 생긴 콜롬보(Kolombo), 2015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에 생긴 올리보(OLIVO)가 있다.

한국내에서도 유럽언어기준에 맞춘 에스페란토 시험이 실시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한국전쟁 직후, 에스페란토를 지원하던 박헌영이 간첩으로 몰려 숙청되며 에스페란토 운동은 거의 사라졌지만, 1959년에 다시 조선 에스페란토 협회[12]가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1964년 350쪽의 에스페란토 사전을 출판하였으며, 120여 명의 학생이 강의에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후로는 당국에서 에스페란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사라진 모양으로 1989년 TEJO의 대표단이 평양의 세계청년대회 참가 차 방문했을 때는 에스페란토 화자와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13] 현재는 조선친선협회 등에서 가끔 에스페란토로 된 프로파간다 등이 올라오며, 공식적인 에스페란토 운동이나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 듯하다.

2.3. 중국과 일본에서

인지도가 낮은 한국에서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영어는 미국의 언어라는 인식으로 지위를 상승시키기 싫고, 그 대체제로서 에스페란토어를 장려하는 모양. 중국 에스페란토 대회가 개최될 쯤에 후진타오가 "표준중국어만 잘 배울 게 아니라 계속하여 에스페란토도 배워야 한다."고 하였고 중국 대륙에 워낙 다른 언어라고 할 정도로 사투리가 많아 소통에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 역시 한 몫 하였다. 중국 정부에선 중국인들을 더욱 통합시키는 공통 언어로서 표준중국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것과,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켜줄 언어로서 에스페란토를 배울 것을 권장하였다.

일본에서는 오모토교(大本敎)[14]가 교단 차원에서 에스페란토를 후원한다. 창교조 데구치 나오 이후 메이지 정부로부터 탄압받아온 종교인데, 교리에 언젠가 세계가 단일화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2대 교주의 남편이자 실질적 교조인 데구치 오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가 에스페란토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에스페란토 전파에 공이 큰 사람을 골라 매년 '데구치상'을 수상하는데, 이게 에스페란토계에서는 꽤 권위가 있다고 한다. 현 교조는 여자인데, 역시 데구치 나오의 후손이다.

3. 특징

인도유럽어족 언어를 기초로 어미의 통일, 발음의 구조화, 호격 변화의 일관화 등을 통해 쉽게 배울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문법에 예외가 없다. 인공언어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점. 또한 에스페란토가 그 당시 나타났던 수많은 인공어를 제치고 현재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멘호프 박사가 주창했던 '언어의 공유를 통한 평등과 평화'가 현재까지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에스페란토는 언어이며 동시에 세계평화 운동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라틴 문자를 사용해온 사람들은 특히 더 쉽게 습득할 수 있다.

인도유럽어족 언어가 기본이고 어휘의 선택이 라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망스어족 계열에 모여있어 유럽인에게는 배우기가 매우 쉽다. 문법은 슬라브어에 가깝고 기초어근은 로망스어에서 유래한게 많다. 그러나 복수와 목적격을 나타내는 접사 j와 n이 수식어와 피수식어에 모두 붙는 모습은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수식어와 피수식어가 모두 굴절하는 모습을 연상케하며, 이 때문에 굴절이 거의 완벽하게 제거된 영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들은 에스페란토의 이 규칙에 익숙해지는데 상당히 고생한다.

심지어 로망스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도 완전히 익숙해지는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런 면은 오히려 한국어일본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이 더 익숙해지기 쉽다는 평을 받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부분 한정이고. 언어 전체를 공부한다는걸 볼때는 당연히 넘사벽급으로 유럽인이 배우기 쉽다. 당장 단어만 해도 로망스어군에 많이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연히, UN 보고서에 의하면, 유럽 학생이 아시아 학생보다 에스페란토를 더 빨리 익히며, 다만 아시아 학생이 에스페란토를 배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다른 유럽어를 배우는 시간에 비해" 크게 적게 든다고 한다.

에스페란토어 기초단어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많은데, 이는 초창기 에스페란토계에 '루이 드 보프롱(Louis de Beaufront, 1844년 10월 3일 ~ 1935년 1월 8일)이라는 프랑스인의 영향력 때문이다. 드 보프롱은 프랑스어스러운 에스페란토어 문장을 구사했는데, 이 때문에 비프랑스인 에스페란티스토들마저 프랑스어스러운 문장이 좋은 문장인줄 알고 따라하는 통에 드 보프롱의 단점까지 널리 퍼졌다. 루이 드 보프롱은 후에 이른바 '이도(ido)'라는 '개정 에스페란토'를 발표한다.[15] 이하 문서 참조.

에스페란토의 배신자로 평가받는 또 다른 인물로 '카지미에시 베인'(필명 '카베')이 있다. 그는 적극적으로 에스페란토 운동을 펼치다 갑자기 운동을 떠났는데, 이 때문에 그의 행위를 비꼬는 의미로 [16]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다. 갑자기 떠난 이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31년 인터뷰에서 당시 에스페란토 운동에 진전이 없어 에스페란토가 국제어가 될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고는 한다. 어찌됐든 고유명사가 보통 동사로 변화한 사례로, 2002년 솔트레이크 당시 아폴로 안톤 오노의 불량스러운 행동에 빗대어 '오노스럽다'고 했던 것과 유사하다 보면 된다. 딱히 한국인에 비유하자면 스티브 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카베 역시 초창기 에스페란토 운동에 크게 일조했기에 업적 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17]

4. 문자와 발음

에스페란토는 기본적으로 1문자 1발음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든 문자가 항상 같은 발음으로 발음된다. 다만 kz, ng, nk는 각각 /gz, ŋg, ŋk/로 발음하는 것도 인정한다. 인도유럽어족의 대부분의 언어가 이와 같은 발음 예외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문자 명칭 발음 비고
A a a /a/ 전설 비원순 저모음
B b bo /b/ 유성 양순 파열음
C c co /t͡s/ 무성 치경 파찰음 영어 sports의 ts, 독일어 z와 발음과 같다.
Ĉ ĉ ĉo /t͡ʃ/ 무성 후치경 파찰음 영어 church의 앞뒤 ch와 발음과 같다.
한국어 '자동차'의 ㅊ(/t͡ɕ/)과 발음이 비슷하다.[18]
D d do /d/ 유성 치경 파열음
E e e /e/ 전설 비원순 중고모음
F f fo /f/ 무성 순치 마찰음
G g go /g/ 유성 연구개 파열음
Ĝ ĝ ĝo /d͡ʒ/ 유성 후치경 파찰음 영어 judge의 j 및 dge와 발음이 같다.
한국어 '감자'의 ㅈ(/d͡ʑ/)과도 비슷하다. 물론 한국어는 치경구개음이고 d͡ʒ는 후치경음이지만 그렇게 따지면 한도끝도 없으니 그냥 같은 소리로 여겨도 된다.
H h ho /h/ 무성 성문 마찰음
Ĥ ĥ ĥo /x/ 무성 연구개 마찰음 독일어 buch의 ch, 러시아어의 X자, 한국어 '흐리다'의 ㅎ과 발음이 같다.
I i i /i/ 전설 비원순 고모음
J j jo /j/ 유성 경구개 접근음 영어 you의 y, 독일어 j와 발음이 같다.
한국어 '대야'의 야(/jɐ/)에도 같은 발음이 포함되어 있다.
Ĵ ĵ ĵo /ʒ/ 유성 후치경 마찰음 영어 vision의 s와 발음이 같다.
K k ko /k/ 무성 연구개 파열음
L l lo /l/ 유성 치경 설측 접근음
M m mo /m/ 유성 양순 비음
N n no /n/ 유성 치경 비음
O o o /o/후설 원순 중고모음,/ɔ/ 후설 원순 중저모음
P p po /p/ 무성 양순 파열음
R r ro /ɾ/ 유성 치경 탄음, /r/ 유성 치경 전동음에스페란토의 r발음은 딱히 정해진 게 없지만 대부분의 화자들은 치경 탄음으로 발음(한국어 '바람'의 ㄹ 발음)하는 듯 하다.
스페인어 'Gracias'의 r와 발음이 같다.
S s so /s/ 무성 치경 마찰음
Ŝ ŝ ŝo /ʃ/ 무성 후치경 마찰음 영어 she의 sh와 발음이 같다.
한국어 '시장'의 ㅅ(/ɕ/)과 발음이 비슷하다.
T t to /t/ 무성 치경 파열음
U u u /u/ 후설 원순 고모음
Ŭ ŭ ŭo /w/ 유성 양순 연구개 접근음 영어 we의 w와 발음이 같다.
한국어 '더위'의 위(/wi/)에도 같은 발음이 포함되어 있다.
V v vo /v/ 유성 순치 마찰음
Z z zo /z/ 유성 치경 마찰음

자음의 이름은 뒤에 o를 붙이고(예 : M-모, P-포), 모음의 이름은 모음을 그대로 발음한다. J와 Ŭ의 이름은 각각 '요(jo)'와 '우오(ŭo)'(이중모음. 영어의 'wo'와 매우 비슷하다.)다.

로마자 중에서 Q,W,X,Y가 빠져 있으나, 외국어 고유명사(인명, 지명 등)를 표기하는데 드물게 쓰인다. 각기 명칭도 있어서 Q는 kuo, W는 duobla vo(또는 ĝermana vo), X는 ikso, Y는 ipsilono라고 한다. 위에서 언급하다시피 1문자 1발음을 채택하기 때문에 2개 이상의 글자를 붙여서 하나의 발음을 만드는 일은 없다. 대신 글자 위에 삿갓처럼 생긴 보조기호를 붙이는데, 이것을 Supersigno 또는 Ĉapelo라고 부른다.

한국인이 에스페란토로 말할 때 주로 할 수 있는 발음상의 실수는 다음과 같다.

4.1. 수페르시그노의 대체 표기

에스페란토 알파벳 중 총 5개의 글자 (Ĉ,Ĝ,Ĥ,Ĵ,Ŝ)에는 곡절 기호가, 1개의 글자 (Ŭ)에는 반음표가 붙어있다. 이 6개의 글자를 전부 원래대로 온전하게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유니코드를 사용하지 않는 환경 등 글자 위에 붙은 기호를 표시하기 곤란한 상황에서는 다른 표기법을 사용해 대체한다.
아래에 있는 두 체계가 가장 보편적이지만, 그 외에 C^, G^, H^, J^, S^, U^와 같이 표기하는 방법도 존재하며, 전용 키보드 레이아웃을 이용해 입력하는 방법도 있다. 유닉스 계열에서는 진작에 키보드 레이아웃을 지원하고 있지만, 윈도에선 아직 tajpi 등 서드파티에 의존하고 있다.

4.1.1. X 체계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표기법으로,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널리 사용되는 표기법. 글자 위에 붙은 기호를 표기하지 않는 대신 그 바로 뒤에 x자를 붙여 표기하는 것이다. X는 에스페란토에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H 체계와 달리 중의성의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없다. 다만 타이포그래피 표현 시에는 적절하지 않으며, 발음 유추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문자 Ĉ Ĝ Ĥ Ĵ Ŝ Ŭ
표기 CX GX HX JX SX UX

4.1.2. H 체계

자멘호프 박사가 직접 제안한 표기법. 글자 위에 붙은 기호를 표기하지않고 그 뒤에 h자를 붙이는 방식으로 표기하는데, u의 뒤에는 예외로 붙이지 않는다. 발음 유추가 비교적 쉽다는 장점은 있지만, H가 이미 에스페란토 알파벳에 포함되어 있는 탓에, 경우에 따라서는 중의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Ŭ를 U로 표기할 경우, 읽는 사람이 다른 모음에 강세를 잘못 둘 가능성도 있다. 사전 정렬 시 D 앞에 와야 할 Ĉ가 CE와 CI 사이에 들어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타이포그래피 표현 시 글꼴이 에스페란토를 지원하지 않는 등의 특수한 상황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아무튼 이래저래 피곤한 표기법.
문자 Ĉ Ĝ Ĥ Ĵ Ŝ Ŭ
표기 CH GH HH JH SH U

5. 문법

에스페란토/품사론, 에스페란토/문장론 문서를 볼 것.

6. 에스페란토의 장점과 단점

6.1. 장점

6.1.1. 쉬운 난이도(문법의 합리성)

대부분의 인공어가 그렇듯이 매우 쉽다. 문법 역시 그리 어렵지 않다. 에스페란토는 불규칙 동사도 없고, 독음도 규칙적이니 처음 배우는 사람도 읽을 줄은 알게 된다. 여기서 문법 등에 더 익숙해 지면 어휘는 잘 몰라도 이게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말인지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6.2. 단점

6.2.1. 특정 어족에 편향된 어휘와 문법

에스페란토는 인공어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어마냥 어느 어파라고 분류해도 될 정도로 자연어의 요소를 많이 반영했는데[25] 사실상 그냥 인도유럽어족 켄툼어파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유럽언어들을 베이스로 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작게는 유럽인 크게는 아르메니아, 페르시아와 북인도인에게까지 굉장히 친숙하고 익히기 쉽게 느껴지겠지만 다른 어파 언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들이라면 굉장히 수용하기 번거롭다. 예를 들어 터키어나 한국어, 일본어 사용자라면 일단 서유럽어를 한가지 이상 배워서 아시아의 교착어에는 없는 인도유럽어 문법요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갖추기 전에는 빠르게 익히기 어렵단 이야기다. 결국은 유럽중심주의적으로 만들어진 언어이며 때문에 결국 세계 공용어로는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유럽어 몇 개를 외국어로 배워서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배우면 어디서 많이 본 단어나 표현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반가움으로 받아들일 사람도 있겠으나 불쾌함으로 받아들일 사람도 있을 것이다.

6.2.2. 수페르시그노 표기의 비합리성

인공어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자음의 표기가 음성학적으로 굉장히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다. 에스페란토는 매우 간단한 5모음에 비해 자음의 종류가 많아서 기본 26자로는 다 표기를 못하기에 수페르시그노를 쓰는데, 수페르시그노 표기의 경향을 보면 특정 음가의 구개음화를 표기하는 식으로 쓰임을 알 수있다. c-/t͡s/, ĉ-/t͡ʃ/, s-/s/, ŝ-/ʃ/ 이런 식으로. 그런데 /z/를 z로 표기한다면 /ʒ/는 ẑ가 되어야 하는데 뜬금없이 j발음과는 상관 없는 ĵ가 나온다. 제일 어긋난 것이 바로 ĝ-/d͡ʒ/인데, 애초에 이탈리아어만의 구개음화 표기법을 반영하려고 했으려면 /t͡ʃ/는 k̂가 되어야 했을 것 아닌가? 더구나 프랑스어에서 구개음화된 g는 /ʒ/로 소리나는데 굳이 ĵ와 ĝ라는 잘 변별도 안되는 두개의 자음을 억지로 구별할 필요가 있었는가 싶은 부분이다. 이런 표기상 합리성의 결여는 인공어로서는 상당한 단점이다.

7. 에스페란티스토

Esperantisto

에스페란토를 쓸 줄 아는 사람. 충분히 저변이 넓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그룹이 이 언어를 선호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채식주의자무민족주의자들이 이 언어를 선호한다. 여행을 많이 하거나, 여러 종류의 언어를 배우는 언어덕후들 사이에도 이 언어는 인기가 있는 편이다.

최초의 에스페란티스토는 당연히 에스페란토를 고안한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 박사와 그에게서 에스페란토를 배운 고등학교 동급생이다. 한국에서 최초의 에스페란티스토는 벽초 홍명희. 그 외 나무위키에 등장하고 있는 에스페란티스토는 다음과 같다.한국에선 마영태, 한무협, 이중기 등이 에스페란토 보급에 나서고 있다.

인공언어이므로 원어민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몇 천명 정도의 에스페란토 원어민이 있다. 원어민이 발생하는 가장 흔한 사례는 에스페란토를 배우고 일정수준에 이른 두 사람이 눈이 맞아 결혼을 한 후 둘의 일상 대화를 에스페란토로 하는 경우다. 그들의 아이는 자연스럽게 에스페란토를 모어로 습득해, 에스페란토 원어민이 되는 셈이다. 피진이나 크리올과 어느 정도 비슷한 경우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 아이는 에스페란토뿐만 아니라 부모의 모어나 사는 나라의 공용어도 함께 익히게 된다. 이 아이들 중엔 에스페란토 운동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고, 자라면서 사는 나라의 공용어만 익히며 에스페란토를 잊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쓸 곳이 별로 없으니까.

'원어민'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에스페란토 사용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갑론을박 중인 이슈이다. 언어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자연어와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기위해 원어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중립성'이라는 거대한 언어 이념이 훼손될까 원어민의 존재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용자도 있다. 원어민이 있다는 것은 언어평등, 즉 1인 2언어주의에 위배되는 것이기에 그만큼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어민이 있더라도, 원어민은 자신이 몸담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부모의 모어 또는 사는 곳의 공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에스페란토만이 통용되는 사회는 잠시 모이는 에스페란토 대회 등을 제외하곤 없기 때문에 원어민의 존재로 언어평등이 위협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무엇보다도 에스페란토는 징검다리 언어 역할을 다른 언어들보다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에스페란토 원어민이 오히려 1인 다언어 운동을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원어민 하기 나름이라는 소리.

8. 문화예술에서의 에스페란토

9. 예문

9.1. 자멘호프 예문

자멘호프 예문은 에스페란토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다루므로, 항상 맨 앞에 둔다. 따라서 이 쪽에 예문을 추가할 때에는 가급적 링크 또는 출처를 제시할 것.
에스페란토한국어
En la lingvo "Esperanto" ni vidas la estontan lingvon.에스페란토어에서 우리는 미래 언어를 본다.[ZE]
En la mondon venis nova sento세상 속으로 새로운 느낌이 왔도다
Vi parolas sensencaĵon, mia amiko.자네는 쓸데 없는 말을 하고 있구만, 친구여.[ZE]

9.2. 실생활 예문

자멘호프 예문 외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예문.

10. 한국어에서 자주 쓰이는 외래어 단어

한국어의 외래어/기타 참조.

11. 에스페란토화

기존의 단어나 이름 등을 에스페란토 발음에 맞춰 변형시키는 것을 "에스페란토화"(Esperantigo, 에스페란티고)라고 한다. 에스페란토는 아에이오우 밖에 발음 못하는 사람을 위해 배려된 언어이기 때문에 이에 맞춰 발음에 신경 쓸 필요가 있는 단어를 발음이 쉽게 고친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어일본어 등과 비슷해진다. 에스페란토화 과정에서 주로 W는 V로 대체되는데 자멘호프가 폴란드 사람임을 감안하면 폴란드어에서 본딴 듯하다.

12. 에스페란티도

에스페란토의 단점(정확히는 단점이라고 주장되는 사항들)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도다.

보프랑은 다른 에스페란티스토가 만든 '수정 에스페란토어'인 '이도'를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여, 에스페란토계에서 극심한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도는 에스페란토어와 비교하여 좀 더 로망스어에 가깝다. 에스페란토는 문법상 교착어이면서도 굴절어처럼 접사가 수식어와 피수식어에 모두 관여하는데, 이도는 피수식어에만 관여한다.

불편함의 개선도 있지만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에스페란티도도 있다. 많은 목록을 보고 싶다면 여기를 참고.

13. 관련 문서

14. 관련 사이트


[1] 물론 색칠된 나라의 국민의 대부분이 에스페란토를 술술 하는 건 아니고... 술술 한다면 이 위키가 에스페란토로 적혀있을 수도 있지 색칠된 국가들은 공인 에스페란토 협회가 존재하는 국가들이다.[2] 참고로 에스페란티스트 화자의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안도라로, 1백만명당 약 620명꼴로 화자가 존재한다고 한다. #[3] 라틴 문자를 쓰는 대다수의 언어, 즉 영어, 독일어, 체코어, 덴마크어, 아프리칸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노르웨이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 슬로바키아어, 스웨덴어, 터키어, 베트남어, 마인어 등이 Esperanto라고 표기한다.[4] 번역이 잘못되었거나 더 나은 번역이 있다면, 수정하기 전에 이곳에서 의견을 나눠주세요.[5] 에스페란티스토 시인이자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친일로 전향한 김억(金億, 1896년 11월 30일 ~ ?)이 일찍이 이 시를 번역하기도 하였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26/2011062601056.html?Dep0=twitter&d=2011062601056[6] 1897년 기준으로 비아위스토크의 언어 사용 상황을 보면, 이디시어가 62%, 폴란드어가 17%, 러시아어가 10%, 독일어가 5%, 그리고 벨라루스어가 3%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세계대전홀로코스트, 전후 강제 이주 등을 겪으면서 현재는 인구의 97%가 폴란드인이다.[7] 폴란드 유대인 절멸 작전.[8] '인공어' 분야로 한정하면 이미 헤게모니가 된 것이 사실이다. 저 아래에도 나오지만 에스페란토의 장점으로 '인공어 중 높은 사용 인구'를 꼽았다.[9] 이에 따라 에스페란토의 EU 공용어 지정을 목표로 하는 정당2003년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지지율을 보면 인지도 없는 소수정당인것 같다.[10] 다만 1906년 일본에스페란토협회의 기관지에 고종이 에스페란토를 연구 중에 있다고 기록한 것도 있긴 하다. 해당 문서에는 확실한 사실처럼 적혀 있다. 자세한 건 확인바람[11] 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즉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 동맹이라는 뜻이다.[12] 일제 시대의 조선에스페란토협회와는 다른, 북한 공산 정권의 통제하에 있는 단체이다. 에스페란토 명칭은 Korea Esperanto-Asocio, 현재의 한국에스페란토협회와 같다.[13] 출처: François Lo Jacomo의 글 Esperanto en nord-Koreio, https://www.google.co.kr/url?sa=t&source=web&rct=j&url=https://esperanto.berlin/wp-content/uploads/2017/06/LoJacomo-Norda-koreio.pdf&ved=0ahUKEwjnn5Dgp5PVAhXEVxoKHfr5Cu0QFggrMAY&usg=AFQjCNHk19m0p5XbMXnbwPPoM2KlNXGFoQ[14] 이 이름은 모시는 신을 오모토스메오미카미(大本皇大御神)라고 하기 때문에 붙여졌음.[15] 이 때문에 드 보프롱은 에스페란토의 배신자로 평가 받은 바 있으며 에스페란토 언사이클로피디아에서는 마치 에스페란토계의 이완용으로 서술해놓았다.[16] 카베 짓 하다, 에스페란토 운동을 아무 말 없이 떠나다[17] 순수 에스페란토 사전(에-에 사전)을 최초로 편찬한 것도 카베였다.[18] '비슷하다'라고 서술한 이유는 듣기 비슷하고 구별도 안하기 때문. 후치경음치경구개음은 조음점이 비슷하다.[19] 한국어에는 무성음/유성음 대립이 없어서 무기음/유기음 대립으로 대체해서 발음하는데, 당연히 대부분의 유럽계 에스페란토 화자는 못알아듣는다.[20] 외국어를 접한 경험이 있다면 C는 영어의 ts, 독일어의 Z나 일본어의 つ, 중국어의 C('草[cǎo\]'의 자음)를 생각하면 되고, 아니라면 '타'의 입모양으로 '차'를 발음한다 생각하면 된다. Ĉ는 평소 '차'를 발음하는 대로 발음하고.[21] Z와 Ĵ는 제쳐두더라도 Ĝ는 이미 한국어에 비슷한 발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걸로 익히면 된다. 옛한글을 안다면 Z는 ㅿㅏ, Ĵ는 ㅿㅑ 식으로 익히면 된다.[22] F와 V는 아랫입술을 물고 기류를 살살 흘리며 발음하는 것이고, P와 B는 두 입술로 기류를 막았다가 터트려 발음하는 것이다. 혹은 이미 한국어에도 양순 마찰음이 있으니('후'의 ㅎ) F/V를 그걸로 발음하면 그나마 쉽다.[23] 이경우 Ĥa는 '흐아', Ha는 '하'라는 식으로 익히면 수월하다.[24] 이 경우, R을 전동음으로 발음한다면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25] 사실 이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보는 에스페란토 사용자들도 있다. 인공적인 요소들이 많으면 자연스럽지 못하기에 볼라퓌크 같은 이전의 인공어가 실패했다는 것이다.[26] 실제로 Terra 는 포르투갈어로 땅 혹은 지구라는 뜻이다.[27] 이 때문에 이우혁이 직접 블랙서클 단원들이 에스페란토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해명하기도 했다.[28] 관사 la를 so라고 쓴다거나, si를 j^e라고 쓴다거나...[29] 이는 영어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다.[30] mal('~아닌, ~와 반대의') + grava('중대한, 엄중한') peto('부탁')[31] ことのはアムリラート(Kotonoha amrilato). amrilato는 amo(사랑) + rilato(관계)의 합성어로, '연인'의 의미이다.[32] 사실 인간의 영혼을 빼앗는 주문이었다.[ZE] Zamenhof Ekzerco 출처[ZE] [35] 밤에 헤어질 때는 물론, 밤중에 만났을 때에도 사용할 수 있다.[36] 영어의 Fuck과는 발음이 유사하지만 어원은 다르다. 동사형인 Feki는 '똥을 싸다'의 의미로, 영어의 Shit과 비슷한 의미. 이렇게 보통 어미가 따라붙는 단어가 어근만 사용되는 경우는 주로 감탄사로 쓰인다. Shit을 그대로 빌려 Ŝet라 하는 경우도 있다.[37] La knabo manĝas la fiŝon도 맞는 표현이다.[Duolingo] 듀오링고 예문[39] 듀오링고에서 가장 유창한 에스페란토 표현으로 평가받는 예문 중 하나이다.[40] 직역하면 '신의 배(腹)'라는 의미, 빌립보서 3장 19절에서 나온 관용구이다. 프랑스어로는 'Le Ventre de Dieu'라 하는데, 이 표현을 딴 샴페인이 존재한다.[41] 다만 외국인 이름 같은 경우는 스스로 에스페란토 표기를 규정하지 않는 이상 원래 로마자 표기 그대로 쓰인다.[42] 에스페란토 자모에는 'W'가 없는 관계로 'W'를 'Ŭ'로 치환했다. 다만, 미야자와 켄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이상향의 이름으로서 자신의 고향인 이와테의 이름을 'Ihatov(이하토브)'로 에스페란토화 했다.[43] 공시 및 통시언어학으로 유명한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동생. 아울러 국제화폐단위를 제안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