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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시오니즘

시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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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오해4. 현황5. 여담6. 해당 인물 및 단체7. 관련 문서

1. 개요

좁게 보면 시오니즘을 반대하는 사상을 의미하고 넓게 보면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사상을 의미한다. 영문 위키백과에서는 반이스라엘(Anti-Israel)을 검색해도 반시오니즘으로 넘겨주기가 된다.

반시오니즘 또는 반이스라엘은 미국 같은 유대계 세력이 강한 서구권에서 반유대주의 몰이 당하며 백인우월주의자 혹은 네오 나치 취급 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대한 비판이 원천봉쇄되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다만 유대계에서도 시오니즘에 비판적인 시각이 증가함에 따라 개선의 여지가 보이고 있다.[1]

이런 문제가 있는 건 반시오니즘 자체가 무슨 일관적인 사상이 아니라 그냥 이스라엘이라는 유대민족의 독립국가를 반대하면 어쨌든간에 반시오니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따지면 반시오니즘의 범위는 어마무시무하게 넓다.

당장 일단 유대인들 중에서도 반시오니스트들이 있다. 그리고 본인도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 민족국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디 놈 촘스키, 노먼 핑켈슈타인 같은 미국이나 유럽 대학가나 카페에서 강연하며,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등짝 맞으며 시나고그 끌려다닌 지긋지긋한 시절 이후 종교하곤 1미리도 상관 없이 살아온 세속주의적 유대계 좌파 지식인, 인권운동가들이 있고, 그 정반대 스펙트럼에는 하레디 중 네투라이 카르타 같은 소수 종파처럼 메시아가 강림할 때까지 유대인들은 방랑해야 하고 유대인의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신성모독이라는 유대교 원리주의자들까지 있다.

비유대인 중에서도 그냥 유대인 자체가 싫어서 이스라엘도 싫어하는 그냥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흔한 유럽의 극우 인종차별주의자 같은 반시오니스트들이 있는 반면, 반유대주의 논쟁에서 한결 자유로운 아시아 등에 살면서 유대인들 자체에 감정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여러 충격적 소식이 들려오는 이스라엘에 비판적이라서 반시오니스트인 사람들이 있다. 이스라엘은 건국부터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으로 만들어졌으며 좌우익, 세속주의와 종교적 전통주의 양쪽 모두 걸쳐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고, 따라서 반시오니즘을 얘기할 때는 이스라엘 반대 자체보다 그 의견을 개진하는 개별 사람, 단체의 전반적인 성향과 문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2. 역사

19세기에 시오니즘이 창시될 때부터 하레디 같은 정통파 유대인들은 유대교에서 언급하는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고 멋대로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2] 여기까지만 보면 유대인 내부의 분파로만 보이지만 반시오니즘이 주류 정계까지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러시아 혁명 직후이다.

당시 볼셰비키민족자결주의를 옹호했지만 우파 성향의 시오니스트들이 제국주의에 빌붙어 이스라엘 건국을 옹호하고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하려고 하자 시오니즘을 친제국주의라고 비난했으며, 같은 맥락에서 좌파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역시 시오니즘은 2천여년 간 이어진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라며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시오니즘은 유대인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닌 소수 시오니스트들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유대인을 이용하고 아랍인을 탄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논조는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로 전세계의 여러 좌파, 리버럴 정당에게 확산되었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정론이 이러한 논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세기 초 나치들은 반유대주의를 세계화하기 위해 아랍인들에게 접근하여 반시오니즘과 반유대주의를 일치시킨 논조를 확산시켰다. 이는 아랍민족주의, 이슬람주의에 영향을 미쳤으며 팔레스타인과 상관이 없는 1979년 이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가 팔레스타인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3. 오해

4. 현황

우파 성향의 반시오니즘은 대안 우파 강경파로 이어져 도널드 트럼프가 시오니스트들과 싸우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고 시오니즘이 동성애, 페미니즘, 공산주의, 정치적 올바름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망상을 하고 있다.[5]

좌파, 리버럴 성향의 반시오니즘은 린다 사서 같은 이슬람주의적인 인물이 좌파 진영에 유입될 정도이며, 심지어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ADL를 친이스라엘을 한다는 이유로 손절하자는 운동을 벌일 정도이다. 이스라엘에서 퀴어 축제를 한다고 해도 팔레스타인인을 악마화하는 핑크워싱이라고 비난하고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없애고 팔레스타인으로 통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 미국 등에 남아있는 하레디 중에서도 이스라엘의 건국에 반대하여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이들은 무슬림들의 팔레스타인 탄압 반대 시위에 동조하여 연대하기도 한다.

5. 여담

반시오니즘이 퇴행적 좌파의 기원이라는 추측이 있다. 이는 좌파, 리버럴이 이스라엘, 시오니즘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을 동정하게 되었고 팔레스타인인이 다수로 믿는 이슬람에 대한 동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에 대한 동정은 사우디아라비아, 걸프 아랍 국가들의 이슬람 선교와 서양 내 무슬림에 대한 언더도그마적인 심리의 결과이다. 반시오니즘도 원인 중 하나이지만 그 것이 모두 이슬람주의를 내세우는 하마스에 대한 동정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부분적인 원인이다.

6. 해당 인물 및 단체

7. 관련 문서



[1] 사실 유럽은 기본적으로 미국보다 인종차별에 더 둔감하고, 유대계 로비력도 약하며, 자체적인 반유대주의 전통까지 있어서 반이스라엘=반유대주의 물타기가 잘 먹히지 않는다.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은 아예 친팔레스타인 여론이 다수이고, 미국과는 반대로 어딜 가나 좌익 중심의 현지 팔레스타인 지지 운동에 진짜 나치식 반유대주의자 끄나풀들이 들어오는 걸 경계해야 하는 동시에 그들을 가차없이 쳐내야 할 정도이다.[2] 현재까지도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유대교 분파인 네투레이 카르타로 이어지고 있다.[3] 네탄야후 총리를 비롯한 시오니스트 일각에서 주장하는 아민 알후세이니를 통한 소위 아랍인들의 홀로코스트 참여는 크게 왜곡된 관점이다. 2차대전 당시 알후세이니는 애초에 1936년 팔레스타인 대반란 실패 이후 여파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신임을 잃고, 영국 당국에게 쫒기며 주변국들을 전전하는 신세였다. 반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일반적으로 경제적 동기였다곤 하다 12,000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영국군 소속으로 연합군에서 싸웠다.[4] 골다 메이어 같은 일부 노동 시오니스트들도 백인우월주의적 고정관념이 있었다.[5] 트럼프가 친이스라엘 정책을 하고 있음에도 대안우파 강경파들이 그리 생각하는 것은 딥스테이트의 감시 때문에 어쩔 수가 없이 평범한 정치인마냥 위장할 수밖에 없다고 억측하고 있기 때문이다.[A] 이쪽은 좁은 의미의 '반유대주의'도 겸하고 있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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