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 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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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노동당 ^볼셰비키 · 멘셰비키 (국제파 · 주류) ^ | 사회혁명당 ^좌파 · 우파 ( 트루도비키 · 민중사회주의) ^ | 입헌민주당 | 진보당 | 10월 17일 연합 ^ 좌파 · 우파[1]^ |
[1] 입헌민주당, 진보당, 10월당 좌파가 결성한 진보블록에 참여하지 않고 10월당 우파(right-wing of octobrists)라는 이름의 당파를 결성해 독자적으로 선거에 출마했다. |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당시 레프 트로츠키와 레프 카메네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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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볼셰비키(большевики́, Bolsheviks)는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두 파로 분열될 때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좌익의 다수파를 일컫는 말이며, 1918년 7회 대회에서 당명을 러시아 공산당으로 고친 뒤부터 볼셰비키는 레닌주의자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볼셰비키는 '다수파'라는 뜻의 러시아어. 1903년 런던에서 열린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전당대회에서 당규약 문제로 레닌안과 마르토프안이 대립했을 때, 표결에서 다수파였던 레닌파가 스스로를 '볼셰비키(다수파)'라 불렀고 마르토프파를 '멘셰비키(소수파)'라고 이름붙였다.[1] 런던에서 진행된 제 3차 전당대회에서는 맨셰비키가 참가하지 않았다.
멘셰비키 일부는 온건파로 부르주아 민주혁명을 당면 과제로 삼아 소극적이고 비폭력적인 전략을 강조한 데 반해[2], 볼셰비키는 무산 계급에 의한 정권 탈취와 체제 변혁을 위한 혁명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언제나 폭력 혁명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폭력 혁명을 주장한 것은 어디까지나 노동자 다수의 지지를 받아 민주적 절차를 거친 뒤 였다.
이후 1917년 러시아에서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중 '10월 혁명'을 '볼셰비키 혁명'이라 한다. 볼셰비키 혁명은 그레고리력으로 따지면 1917년 11월 7일에 일어났지만 당시 러시아는 율리우스력으로 10월이어서 역사 기록 상으론 '10월 혁명'이다. 이 혁명을 위해 당시 전쟁 중이던 독일에 불리한 조건으로 정전 협상까지 해가면서 총력을 기울였다.
차르 전제정부를 전복시킨 1917년 2월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는 그해 7월 온건파 사회주의자 알렉산드르 케렌스키에 의해 케렌스키 내각이 수립된다. 그러나 새로 성립된 러시아 공화국 임시정부의 개혁 추진은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였으며, 이때에 망명처로부터 귀국한 레닌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민중의 지지를 넓혀, 11월 7일 무장봉기를 일으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볼셰비키는 소비에트 정권을 출범시키고, 1918년 7회 대회에서 당명을 '러시아 공산당'으로 고쳤다.
2. 볼셰비즘화
볼셰비즘화(Bolshevization)란 1920년대 중반 이후 국제 사회주의 운동이 점차적으로 소련 공산당의 직접적인 지도아래 놓이게 된 과정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전까지는 다양한 경향성의 공산주의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정통 마르크스[3]의 분석에 따라 소련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도 했지만, 이후 볼셰비즘화로 소련의 지도 이념과 크렘린의 외교적 정책을 따르고, 러시아 혁명과 소련 성립을 목도하게 된 여러 열강들이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면서 그런 경향성은 거의 궤멸되었다.특히 1929년 트로츠키의 추방 이후부터는 소련 공산당 내부에선 점차 스탈린의 반대파가 줄어들고 결국 소멸하며 공산주의 운동의 스탈린주의적 획일화를 뜻하는 단어로 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