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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15:08:01

최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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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 천도교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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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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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13대, 17대, 19대, 51대, 58대, 60대: 대령, 준장, 소장 / 14대~현임: 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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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9대 외무부장관
최덕신
崔德新 | Choi Deok-shin
파일:Choi_Duk_Shin.jpg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 1914년 9월 17일
평안북도 의주군 월화면 마룡리
(現 평안북도 피현군 용흥리)#
사망 1989년 11월 16일 (향년 75세)
평양시 중구역
묘소 애국렬사릉
본관 해주 최씨
재임기간 제9대 외무부장관
1961년 10월 11일 ~ 1963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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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부모 아버지 최동오
배우자 류미영
자녀 아들 최건국, 최인국
딸 최근애, 최경애, 최순애
학력 조선경비보병학교 (졸업)
통위부 보병학교 (졸업)
육군보병학교 (졸업)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 1기)
종교 천도교
경력 제9대 외무부 장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군사 경력
임관 황포군관학교 (기수 불명)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특3기)
복무 국민혁명군
1936년 ~ 1946년
한국광복군
?~?
대한민국 육군
1947년 ~ 1956년
최종 계급 대령 (국민혁명군)
중장 (대한민국 육군)
주요 보직 제8사단장
제11사단장
제1군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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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장의위원회 구성4. 논란5. 기타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남한, 북한의 정치인. 남한 출신 월북자중 최고위급이다.

2. 생애

평안북도 의주군 월화면 마룡리#에서 독립운동가 최동오(崔東旿)의 아들로 태어났다.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화민국 국민혁명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선전과장을 맡았다. 국민혁명군에서는 주로 미군과 국민혁명군간의 군사외교, 협력 업무를 맡았는데 이는 후일 휴전협정에서 한국 대표를 맡거나 혁명정부에서 외무부장관을 맡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 육군 장교로 임관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거쳐 6.25 전쟁 당시 제8사단, 제11사단의 사단장으로 참전하였으며 막바지에는 휴전회담 대표를 역임하였다. 제1군단장을 지낸 뒤 1956년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전역 후 초대 남베트남 대사, 태국 대사 등 외교관을 역임하다가 박정희가 집권하면서 1961년 외무부장관에 임명되었고 1963년 8월 서독 주재 대사로 부임했다. 동백림 사건의 수습이 실패하여 외교 문제로 비화되면서 사태 수습을 위해 박정희는 그를 해임해 버렸다.

1967년부터 6년간 천도교 교령을 지냈고, 1976년 2월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수시로 북한을 방문하고 공개적으로 6.25 전쟁 북침설을 주장하는 등 친북 활동을 벌이다가 1986년 아예 북한으로 망명하였다.[1]

김일성은 10대 소년 시절에 그의 부친인 독립운동가 최동오 선생이 만주에 설립한 화성의숙을 다닌 과거가 있는데 김일성은 이런 인연을 들면서 그를 설득했다고 한다.

역사상 최고위급 인사의 월북이어서 북한 정권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조선골프협회 회장 등을 맡았다.

사후 북한판 현충원인 애국열사릉에 묻혔는데 김일성이 직접 조문했다고 한다.

3. 장의위원회 구성

4. 논란

5. 기타

6. 둘러보기

양민학살과 관련된 대한민국 제1공화국 군인들
김종원 김창룡 송요찬 최덕신 탁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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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명단
외무부장관 <colbgcolor=#ffffff,#1f2024><colcolor=#000> 김홍일송요찬최덕신김용식
내무부장관 한신박경원
재무부장관 백선진김유택천병규김세련황종률
법무부장관 고원증조병일장영순민복기
국방부장관 장도영송요찬박병권김성은
문교부장관 문희석김상협박일경이종우
건설부장관 박기석신태환박임항조성근
농림부장관 장경순류병현
상공부장관 정래혁유창순박충훈김훈
보건사회부장관 장덕승정희섭
교통부장관 김광옥박춘식김윤기
체신부장관 배덕진김장훈
공보부장관 심흥선오재경이원우임성희
내각사무처장 김병삼이석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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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도교는 10년 뒤인 1997년에도 오익제 교령이 월북해서 큰 곤욕을 치렀다.[2] 다만 일단 물질적으로는 밀리는 것을 인정하기는 한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사회주의권 영화를 비교해 보면 동독이나 소련 영화는 사회주의의 합리성을 강조하는 데 반해 북한 영화는 일관되게 민족주의적 순수성과 정신력을 강조한다는 것이다.[3] 90년대 후반부터는 독립운동가나 사회 현상 기타 다른 주제로 나갔지만 초기는 월북자 전기 영화였다.[4] 1942년생. 대표작은 림꺽정이며, 2020년 2월 사망했다.[5] 국군의 계급을 분할하는 장면에서 일본군 출신들은 전부 출신 계급에 맞게 계급을 받지만 국부군 대령 출신인 최덕신은 소위를 주면서 대놓고 꼽을 주는 장면이 일품이다. 다만 이후 높으신 분의 눈에 들어가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승진하긴 하지만... 애초에 일본과 전면전을 치렀던 미국이 뜬금없이 일본군 출신을 편애했다는 내용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다.(...)[6] 북한 영화에서 이 부분에서 동백림 사건과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재현된다. 물론 사실과 다르게 영화에서 최덕신은 동백림 사건이 터지자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며 노발대발한다.[7] 최덕신의 아버지는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8] 군인으로서의 과거, 외교관으로서의 과거, 천도교 교령으로서의 과거.[9] 이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 최인국은 부모의 월북 이후에도 아내와 함께 살았다. 게다가 미국 망명 후에도 모 대기업의 차장으로 근무했으나 취업알선사기로 구속되었고 취업도 못 하게 되었다.[10] 독립유공자 유동열의 딸. 대한민국을 버리고 월북한 사람이 갑자기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의 대표자로 나타났기 때문에 남한 일각에서는 북한이 우릴 우롱하는 것 아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