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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09:04:06

고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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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940><colcolor=#ffffff> 제4대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이사장
고성균
高聖均 | Ko Sung-kyun
파일:고성균 장군님.jpg
출생 1958년 3월 20일 ([age(1958-03-20)]세)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現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임계면 #)
거주지 경기도 용인시
본관 제주 고씨[1]
현직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이사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82년 ~ 2016년
외부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2]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3]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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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940><colcolor=#ffffff> 부모 아버지 고광선, 어머니 지금선
형제자매 남동생 2명
학력 도암국민학교[4] (전학)
임계국민학교[5] (전학)
강릉국민학교[6] (졸업)
경포중학교 (졸업)
강릉고등학교 (14회 / 졸업)
육군사관학교 (전쟁사학 / 학사)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7] / 석사[8])
광주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박사[9])
서울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대학 (성악과 / 재학[10])
임관 육군사관학교[11] (38기)
최종 계급 소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주요 보직 육군사관학교장
육군훈련소장
제2작전사령부 참모장
제31보병사단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
육군본부 선발관리실장
육군본부 인사근무과장
제17보병사단 제101보병연대
수도군단 인사참모
제11보병사단 인사참모
육군사관학교 훈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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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군생활2.2. 전역후2.3. 유튜버 활동2.4.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이사장
3. 군 생활 중 일화4. 여담
4.1. 병역제도에 관한 입장
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군인. 최종 계급은 소장이며, 제31보병사단장, 육군훈련소장육군사관학교장을 지냈다.

2024년 12월 2일,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2. 생애

2.1. 군생활

1958년 3월 20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서 6.25 전쟁 참전용사[12]인 아버지[13]와 어머니[14] 사이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강릉초등학교[15]와 경포중학교, 강릉고등학교[16]을 졸업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공무원 생활을 하다 1978년 육군사관학교(38기)[17]에 입교하여 1982년 전쟁사학과 학사로 졸업과 함께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현재는 유튜버를 하고 있는 그에게 한 유튜브 시청자가 동영상 댓글로 3군 중에 육군, 여러 병과 중 보병을 선택한 이유를 물어본 적 있는데, "기계를 만지는 것에 자신이 없다고 생각해서."라고 답한 적이 있다. 이후 인사 직능을 부여받았다. 군 복무 중이던 1992년에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인사관리 전공으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전역 이후에는 2017년 2월에 광주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2. 전역후

2.3. 유튜버 활동

군대 관련 콘텐츠를 다루던 유튜브 TV러셀 채널에 출연한 것이 그 계기가 되어서,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다.[19] 당시 조리 있는 언변들로 군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냈는데, 이를 본 TV러셀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후 2021년 5월 31일에, 《고성균의 장군!멍군!》이라는 채널명으로 군 시절의 각종 경험들과 각종 지식들을 이야기하는 군튜버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과거 교수를 했었던 경험과, 군 시절 교육 기관에 많이 있었던 경험으로 인해 비교적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능숙한 편이다. 실제 유튜브 《BODA》 채널에 출연해서, 자신이 출연한 해당 방송이 1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평소 접할 일이 거의 없었던 장성급 장교에 대해서 자신도 알고 있는 얘기를 소상히 푼 점이 작용한 듯으로 보인다. 그 이후로도, 여러 채널들에 출연하면서 유튜브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특히, 군 관련 유튜버들과의 합방도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예비역 병장인 군튜버 효자손과도, 사단장이 군부대를 방문했을 때에 벌어지는 상황을 가장한 콩트 합방을 한 적이 있었다. 또한 타 군과의 소통도 비교적 잘 되는 편인데, 아무래도 본인이 군 복무 시절에 장성급 장교까지 되었었고, 사단장 직책을 해안가였던 부대에서 했었던 점이 그 원인인 듯하다.

특히, 군 내부의 여러 사안과 관련해서도 제시하는 해결 방향 등이 젊은 세대들의 것과 일치하는 편이다. 《D.P.》가 나온 이후 각종 병영부조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동영상 세 개에 걸쳐서 피력한 바 있었는데, 여타 다른 일부 장성들과 다르게 병영부조리 등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20]

이와 같은 활발한 활동에 힘입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지 1년 만에 구독자를 5만까지 늘렸다. 보통의 군튜버들이 군사, 국방 , 안보 이슈, 정치사안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을 감안하면 본인만의 영역들을 구축한 셈이라고 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본인의 군 복무 시절과 관련하여 각종 썰들을 풀거나, 구독자들과 소소한 소통, 혹은 사연들을 받아서 이에 관한 썰들을 푸는 등[21]의 가벼운 콘텐츠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다만 라이브 방송 등지에서, 간혹 구독자들이 군 현안들에 대해 질문하거나 하면 꽤 묵직한 얘기들도 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영화 서울의 봄 리뷰를 진행했는데 12.12를 바라보는 여러가지 시선이 있지만 확실한 건 군의 정치 중립을 명시한 헌법 5조를 위반한 군사반란 행위임을 설명했으며 현재도 그런 쿠데타가 있을 수 있느냐는 구독자들의 질문에 과거에야 보안사가 군의 통신망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고 전군을 관리감독해야하는 합동참모의장에게 군령권이 없었기 때문에[22] 특정 인물이 이러한 허점을 파고들어 군을 무력 장악하는게 가능했지만 현재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차량 통행량의 증가로 인해 비밀리에 병력을 이동시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민도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에 이러한 군사반란 행위는 가능하지도 않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이라는 의견을 남겼다.[23] 하지만 육사 동기의 건의로 계엄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어 예측이 틀리게 되었다. 병력 투입 또한 헬기로 이루어졌다.

영상 제작 PD는 연대장 시절 사진병 출신으로, 걸어서 세계속으로 PD 경력이 있다. 또한, 라이브 방송 시 채팅창을 관리하는 전속부관이 존재한다.

2.4.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이사장

2024년 12월 3일, 본인 유튜브 커뮤니티와 영상에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는 소식을 올렸다.@@. 임기는 3년이다.

3. 군 생활 중 일화

소장까지 진급을 모두 1차로 했을 정도로 엘리트였다. 소장 진급 이후 31사단장[24], 육군훈련소장을 맡았지만[25] 소장 계급에 맞지 않는 육군사관학교장을 맡으면서[26] 경력이 꼬여 중장 진급은 하지 못했다.[27] Boda의 영상에서 진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본인도 정말 중장 진급을 하고 싶었으나 장성 진급은 운이 절대적이며, 인사 직능으로 관련 실무를 해본 입장으로 이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28] 본인은 중장까지 못 간 것이 아쉽긴 하지만 인사 업무를 많이 하면서 여러 사례를 많이 접해 소장까지 간 것만 해도 굉장한 행운이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병사들 복지에도 꽤 신경을 쓴 편이다. 그 예시로 육군본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일반 병사들도 선글라스를 사용 할 수 있게 규정을 바꾸었다고 한다. 보급에 필요한 구매 예산 등의 여러 장벽이 있었지만, 당시 한 사단장이 부대운영비로 일단 운전병 등 꼭 필요한 인력들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선글라스를 도입하면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규정변경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후 육군에서만 규정되어 있었던 선글라스 착용 규정을 국직 부대들까지 확대하면서 현재는 전 군에서 선글라스 착용이 가능해졌고, 2020년 하반기부터는 아예 초도 보급품에 군용 선글라스도 같이 지급한다.

1987년 6월 동원사단인 75사단의 2차 중대장으로 보직을 맡았는데 갑자기 '사단 작전처에 민원장교로 근무하라'는 지시가 왔으나[29] 본인은 '직속상관은 대대장이니 대대장에게 허가를 먼저 받겠다' 답하고 대대장에게 보고했으나 대대장은 '네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며 은근슬쩍 발을 뺐고 결국 민원장교로 가지 않겠다 생각하고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참모장이 몇 번 연락했으나 못 들은 척 하며 피했으나 참모장이 직접 부대까지 찾아와서 '너 뭔데 사단장 지시를 안 따르는 거냐?'며 화를 내며 대대장실로 끌고갔고 대대장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본인을 민원장교로 보냈다고 한다.

작전장교로 근무하던 중 가을이 되어 작전참모가 갑자기 호출하여 가 보니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돈 먹었나?"고 뜬금없이 물어 무슨 이야기냐고 반문하니 참모가 옆의 민원인을 가리키며 "이 분이 작전성 검토 관련해서 고 대위 네 통장에 사례금을 입금했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 물었고 본인은 흥분해서 "아니 당신이 누군데 처음 보는 나한테 돈을 보냈다고 모함하냐?" 소리를 질렀고 민원인은 "x월 x일 그쪽 통장에 2500만원을 입금하지 않았느냐?" 언급하고 참모 또한 "사실대로 불어라" 닥달하자 본인은 정말 억울하고 화가 나서 민원인을 한 대 때리려는 생각으로 다가가자 참모가 깜짝놀라 제지한 후 서로 진정하고 대화를 다시 나눠보니 5군단 작전처의 A소령이 민원인보고 "고 대위가 지금 안을 검토하는 거 같은데 한 2500만원 정도 주면 공장 짓는 것을 조건부로 동의를 해줄 거 같다"고 이야기했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날 사단장이 호출하여 갔더니 사단장이 "군단장님이 호출했으니 내일 군단에 가 봐라" 지시했는데 본인이 고민하고있는 모습을 본 같은 사무실의 계원이 "저번에 A소령이 사무실에 찾아와서 고 대위에게 허락을 받았으니 너희가 만들고 있다는 도면을 달라했고 이를 몇 번이고 거부했으나 결국 계급에 밀려 꺼내줬다" 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 다음 날 군단장[30]을 찾아갔더니 군단장이 군단 감찰참모와 같이 앉아있다가 본인을 보더니 "야 인마. 너 육사에서 어떻게 배운 거야? 너 돈먹으라고 배웠어?" 라고 화를 내며 감찰참모보고는 "저 녀석을 말이죠 바로 감찰조사해서 규정대로 처리하시오" 라고 지시하자 본인은 다급하게 "무조건 욕하지 말고 제 말씀 좀 들어주십시오"라 말하자 군단장은 "그래 어떻게 먹었는지 이야기해봐라" 라며 돈 먹은 게 기정사실인 양 이야기해서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그리고 어제 사무실 계원한테 들었던 이야기를 군단장에게 이야기하자 군단장이 감찰참모에게 "A소령을 먼저 조사해라" 지시했고 후에 A소령은 중징계를 받았다고 한다.영상

2005년 경 연대장 연임 시절 겪은 한 일화가 있었다. 자정시에 개인의 휴대전화로 예하 부대의 병사에게 전화가 왔었는데 그 병사가 말하길, '야간에 당직사관이 순찰을 돌아야 하는데 당시 당직사관이 술 먹으러 나가서[31] 간부가 없다' 고 보고했다.[32] 당시 연대장이었던 그는 작전을 위해 주둔지를 멀리 떠나 있었기에 전화를 건 병사에게 '중대장도 있고 대대장도 있는데 왜 다이렉트로 연대장(본인)에게 연락을 했냐'고 묻자, 병사는 '중대장도 믿음이 전혀 가질 않고 대대장에게도 보고해 봤자 그냥 쉬쉬하고 대충 넘어가는 걸로 무마할 게 뻔하기에, 연대장님이 가장 믿음이 많이 가고 일을 확실히 할 것 같아서' 라고 말했다고 한다.

갑작스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충격받아 병사에게 '지금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데 멀리 작전에 나와있어서 갈 수 없으니 우선 간부 없이 근무 잘 서달라고, 그리고 복귀 후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이 통화는 비밀로 하자[33]' 고 당부하였다. 그 후 작전을 마친 뒤 복귀해 예하부대를 뒤엎었고, 결국 당시 당직사관이었던 간부는 상습적 직무유기로 인해 불명예 전역에 당첨되었다.[34] 이후 창작애니메이션 채널인 갓쇼툰 에서 이 일화를 토대로 영상을 제작하였다. 자신의 과거 일화가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해당 채널에 감사의 댓글을 남겼다.영상

군 내부에 있을 때 입바른 소리를 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도군단 인사참모(당시 대령) 시절에 중장 이하 관사 난방비 징수 문제가 터지자 이걸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에게 메일을 보내서 징수에 문제가 있음을 밝혔는데, 당시 육군본부 ○○참모부장[35]이던 ○○○ 소장과 그 밑의 ○○처장인 ○○○ 준장이 전화를 걸어서 욕설을 했다고 한다.[36] 부장과 처장뿐만 아니라 육군본부에서 유류 담당하는 과장까지도 전화해서 뭐라 했다고 한다. 후일담으로 해당 건의는 후임 육군참모총장에게 인수인계되어 해결되었다고 한다.영상

결정적인 사건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근무과장 시절에 있었다. 제3군단 모 부대[37]에서 일어난 A형 간염 집단 발병 사건에 관해 참모총장에게 보고하는 감찰을 나가서는 오히려 현장 지휘관 및 병원장에게 포상을 내려야 한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군에서 이 감찰을 보낸 취지는 말할 것도 없이 이번 사건을 책임지게 만들 희생양, 즉 부대장의 책임 있는 징계사유를 찾으라는 것이었지만, 당시 대령이던 그가 둘러보니 현장에서는 열악한 여건에서 최선의 조치를 하고 있었고, 깨끗한 상수원 확보를 위해 심정개발 등을 수 년간 건의해 왔는데 제1야전군사령부와 제3군단, 나아가 육군본부에서 이를 묵살해 온 것이 근본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징계는 오히려 상급부대에 해야 한다고 보고서를 올리자, 1차 결재는 그럭저럭 통과하였으나 2차와 3차 결재자는 아연실색해서 결론을 바꿔서 다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이 2, 3차 결재권자들은 해당 부대의 조치 부실로 감염환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결과가 아닌, 현장의 관계자들을 칭찬하면서 육군본부를 포함한 상급부대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내용에 매우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이때도 강단이 장난이 아니게 강한 것이, 자신이 본 그대로 쓴 것이어서 조금도 바꿀 수 없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다며 밀고 나갔다고 한다. 그나마 2차까지는 어찌 넘어갔으나 3차 결재에서 결국 문제가 터지게 된다. 3차 결재자는 "책임질 사람을 확인해서 오라 그랬는데 무슨 보고서가 이러냐? 정신이 나갔냐?"는 식으로 야단치며 결재를 끝까지 강하게 거부하였고, 고 대령은 "현장에 나가서 직접 본 것이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장교도 직접 확인한 내용이다. 본인을 현장으로 내 보낸건 있는 그대로 보고 올리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자꾸 보고내용을 바꾸라하면 어쩌는가?" 라고 이야기하며 3차 결재란을 공란으로 둔 채 최종 결재로 넘어가겠다고 보고하고 실제로 참모총장실에 갔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당시 인사참모부 인사근무과장이었고 4차 결재자가 참모총장인 점을 감안하면 참모총장 이전 1차 결재자는 인사참모부 인사차장(준장), 2차 결재자는 육본 인사참모부장(소장), 3차 결재자는 육군참모차장(중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령으로서는 엄청나게 소신있게 행동한 셈이다. [38]

3차 결재자에게 거부하면 패스하고 위로 가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나, 3차 결재란이 거부 사유로 비어 있다고 하면서 보고서를 최종 결재자에게 내미는 것이나, 보통 강단이 아니다. 그래도 참모총장이 이건 좀...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다시 방효복 당시 육군참모차장에게 돌아갔고 결국 참모차장의 결재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고성균 본인은 참모차장에게 해당 내용이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결재 의견난에 보고서에 대해 반대한다는 내용과 자신은 해당 내용에 대해 책임이 없고 고 대령쪽이 모든 책임을 진다는 것을 적어달라고 요청했으나 정작 저런 내용들을 구두로만 언급한채 의견난에는 적지않고 서명 했다고 한다[39]. 당시를 생각하면 여러 감정이 교차했던 것 인지 말을 줄이기도 했다.[40]이후 박흥렬 참모총장은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해당 부대 지휘관, 철정병원장, 고성균 대령 본인 모두 진급 대상자였는데 진급에 성공했고 셋 모두 장성까지 진급했다.영상

이후 장군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조건적인 보직해임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과거 본인도 억울하게 보직 해임을 당할 뻔했던 적이 있고[41] 인사업무를 하면서 억울하게 보직해임을 당해 군 생활을 끝낸 사례를 많이 접해서로 보인다. 사단장 시절에 예하 부대장에 대한 보직해임 지시가 위에서 내려온 것을 부당하다고 판단하여 거부하였는데 위에서 압박이 계속되자 본인부터 보직 해임하라면서[42] 매우 강하게 나갔었던 일도 있었다.

실방 중 한 시청자가 "현재 육군은 병참, 병기, 수송 병과 장교들은 소령이 되면 군수 병과로 통합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은 적 있는데, "본인은 현직에 있을 때 그에 대해 강력 반대했던 사람 중 하나"라고 답한 바 있다.

4. 여담

4.1. 병역제도에 관한 입장

병역제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있다. 2023년 4월 1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여성에 대한 병역의무 이행 관련 질문을 받고 현행처럼 남성만 병역의무를 이행해서는 군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에 여성도 어떠한 방법으로든 병역의무 대상자에 포함되어야 하며, 대신 그렇게 되면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남녀 모두에게 군 가산점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병력감소를 피할 방법이 없는것도 사실이기에 전문병사제도를 활성화 시켜 징병+모병 체계로 가야된다는 의견도 같이 내놨다. [53] 또한 공무원 일부 직렬에 대해 군필을 지원자격으로 하자는 주장에는 입대가 이런식의 조건이 되는건 적절치 않다면서 이럴바에는 차라리 병역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토론을 하자고 하면서도, 정치인들이 그걸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드러냈다.@

2024년 5월 24일 '할 말을 잃었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에서 과거 군삼녀 영상을 보고 "우리나라가 군 가산점을 너무 섣불리 폐지시켰다. 그리고 여성은 군대를 안가는데 (군가산점 주는 게) 불공정하지 않냐는 이야기에 대해선 그럼 여성징병제를 도입을 고려하고 군대를 다녀 온 남,여 모두에게 가산점을 주면 된다" 이야기했고 김희철 예)소장의 경우는 "가장 큰 문제가 남여를 구분한다는 게 문제, 남성에 의해 여성이 피해입었다며 여성가족부가 생기고 그랬는데 현재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 이제는 양성평등 시대니까 여성이라 해서 남자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으로는) 인구절벽에 따라 군 병력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남,여 모두 군대 다녀오게 하고[54] 여기에 복무기간을 좀 더 늘려야한다. 그리고 군대 다녀온 사람은 군가산점을 부여해주자." 언급했다.

그리고 장희민 교사의 EBS 강사 군대 비하 사건 영상을 보고서는 둘 다 엄청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고 장군은 "남성들이 군대가서 사람죽이는 걸 배워온다? 참 진짜 참담하다. 저런 사람들 때문에 결국 역설적으로 여성들이 군대를 가봐야 된다는 말이 나온다. 대단히 잘못되었으며 자신이 평상시 화를 잘 안내는데 이 영상을 보고 매우 화가 난다" 이야기했고 김 장군은 "군대는 사람죽이는 걸 배워오는 게 아니라 가장 많이 배우는 건 '조직'이다. 조직의 사회원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윗사람을 존중해주고 아랫사람을 리드할 수 있는 걸 배운다는 것이며 건전한 애국심을 키울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이야기했다.영상

해당영상 에서는 병력자원을 늘릴 방안이 마땅치 않다면 군 복무기간을 육군기준 24개월로 환원시켜야 될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물론 진짜로 복무기간을 늘리면 해당정권은 목숨을 내놔야 할 것이기에 현실성은 없는 방안이다.

5. 관련 문서



[1] 화전군파-정선(旌善) 순창(順昌)계 33세 균(均) 항렬.[2]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계정. 사용 하던 시절에는 댓글만 달던 계정이였다.[3] 김영식 예비역 대장과 맞팔을 하고 있다.[4] 現 대관령초등학교[5] 現 임계초등학교[6]강릉초등학교[7] 인사관리 전공[8] 석사 학위 논문 : 軍 리더쉽 效率性향상에 관한 연구 (1992)[9] 박사 학위 논문 : 변혁적 리더십과 거래적 리더십이 리더십 효과성에 미치는 영향 (2017)[10] 현재 열심히 다니면서 배우고 있다고 한다.[11] 전공은 전쟁사학과.[12] 다부동전투에 참전했다고 한다.[13] 고광선(高光善, 1931. 4. 24 ~ )[14] 충주 지씨 지금선(池衿仙, 1938. 7. 29 ~ )[15] 맨 처음 입학은 강원도 대관령에 있는 도암초등학교였으나 1학년 2학기 때 강릉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1년 정도 다니다 정선 임계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5학년 중반 쯤 다시 강릉초등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다고 하며 동창회의 경우 임계초, 강릉초 양쪽에 속해 있다고 한다.[16] 14회 졸업생[17] 육사동기로 임호영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김용현 국방부장관,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최병로 전 육사교장, 정연봉 전 육군참모차장, 그리고 정승화 前 육군참모총장의 아들인 정이열이 있다. 앞 기수인 37기가 일명 박지만 기수로 이들이 대부분 고위직으로 승진한 탓에 바로 아랫 기수였던 38기는 의도치 않은 피해를 보게 되었다. 4성장군도 임호영 장군 한 사람뿐이다. 사실 윗 기수인 37기도 유신사무관제도 폐지등의 여파로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을 배출하지 못한 기수였는데 38기의 경우 대장진급자가 단 한명만 나왔을 정도로 그 여파가 더 심했다.[18]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겪기도 했다.[19] 허나, 정작 TV러셀 채널은 그 이후 군튜버에서 방향을 전환하여서 자신의 전역 이후의 직업인 부동산(주택)에 관련한 콘텐츠를 특화했다.[20] 참고로 과거 장성들의 경우에는, 간부들 서로 간에도 자행했던 병영부조리를 그야말로 온 몸으로 겪었던 세대라서 그런지 이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거나 오히려 없어져야 할 부조리들을 정당화하는 의견을 보이는 경우까지도 있다. 괜히 '똥별'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며, 장성급 장교의 수를 줄이는 것에 대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환영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본인들의 안위는 눈에 불을 켜고 잘 챙기면서 정작 군내 부조리와 비리, 그리고 부하들의 처우 개선에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21] 군 생활을 오래 했고 사단장 직책까지 했었기에, 과거의 이야기들부터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들까지 소통이 원활한 편이다.[22] 이 당시에는 각군 참모총장이 군령권과 군정권(인사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합동참모의장은 사실상 명예직에 가까운 자리였고 국방장관 역시 실권이 크지 않았던 시기였다. 더군다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계엄 하의 계엄사령관이였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정총장이 납치된 순간 군 전체의 컨트롤타워가 치명상을 입은 셈이였다. 고성균 장군 역시 이 점을 설명하며 합동참모의장에게 군령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별일 아닌것 같아도 꽤나 큰 변화라고 설명한 바 있다.[23] 여담으로 고성균 본인은 12.12 당시에 생도 신분이였는데 당시 내막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1979년 당시는 신문이나 방송사 등도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가 대놓고 통제하던 시절이라 민간에도 반란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군 내부인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제5공화국에서 장태완 사령관을 연기했던 김기현 성우도 비슷한 증언을 한 적이 있다. 다만 사람 일이 으레 그렇듯 통제가 백프로 완벽하진 않았기에 후일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육군대학교에서 교관으로 재임하던 중에 반란 사실을 알게되자 강의 도중 울분을 토하며 군이 정치중립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성토하다가 신군부에 찍힌 적이 있다. 다만 남재준은 사건 당시 순직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과 친구였고, 나이 먹어서까지 친구를 죽게 만든 신군부를 증오했던 만큼 해당 사태에 반쯤 엮여있었다.[24] 광주광역시전라남도를 담당하는 제2작전사령부 예하 후방 사단이다. 다만 후방 사단장 출신임에도 대장 진급자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백군기 장군이 대표적이며 모종화 장군처럼 중장 진급자도 꽤 배출했다.) 사단의 중요성에 따라 경력 대우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독립 사단의 사단장은 어디든 절대 한직이 아니다. 일단 해안 경계라는 막중 임무가 있고 포스코 광양제철소, 여수석유화학단지, 현대삼호중공업 등 산업 시설들이 소재하고 있으며 나로호, 영광 핵발전소 등 국가 A급 주요시설도 존재하며 특히 북괴 간첩선을 기관포로 격침시킨 부대가 제31보병사단이다.[25]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은 한직, 요직간의 차이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육군에서 교육기관장은 상대적으로 한직이며 육군훈련소장 역시 마찬가지다. 참고로 육사 교장조차도 대외적 위상과는 별개로 중장 보직 중에서는 대장 진급에 실패한 중장들이 가는 명예직이다.[26] 육군사관학교장은 원래 중장 보직이다. 마침 교장 부임연도 하반기에 중장 진급 심사 대상자였는데, 임명 당시 기사들을 보면 이를 착각한 것인지 '중장 진급 대상'이라고 오보한 기사도 몇 보인다.[27] 비슷한 경우가 현재 천안함재단 이사장인 윤공용 제독(해사 33기)으로 소장 계급으로 제42대 해사교장을 맡으면서 경력이 꼬여 중장 진급을 하지 못했다.[28] 간혹 고성균의 영상 댓글에 왜 육사 교장 중 혼자 소장이시냐? 중장은 왜 못 다셨냐?라는 질문들이 보이는데 부디 자제하자. 알다시피 육군사관학교장 부임은 매우 특수한 경우였고, 본인이 원해서 진급하지 않은 것도 아닐뿐더러, 임기제 진급이든 통틀어 장군 인사는 대한민국 국방부장관대통령실에서 결정나기 때문에 이분이 답변해 줄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아무리 엘리트라 하더라도 저 정도 고위직이면 진급에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 괜히 관운이니 운칠복삼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장성 진급은 형평성을 고려하여 능력, 근무부대, 병과, 직능 외에 출신 지역, 종교,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개인의 정치적 성향조차도 암암리에 영향을 미친다. 참고로 장군은 여러 병과를 총괄해야 하는 자리이므로 장군부터는 병과 마크를 떼기도 한다. 사실 소장도 국가직 2급 공무원에 해당되는 굉장히 높은 계급이다. 육군사관학교 38기 및 진급 심사를 같이 들어가는 기수에서는 9명이 진급했는데, 작전 직능이 5명(김용현/최병로/정연봉/임호영), 인사/군수 직능이 2명(정항래/조현천), 정책 분야 1명(위승호), 비육사 2명(고현수/박종진)이었다. 보통 사관학교 + 인사/군수는 합쳐봐야 1~2명 밖에 할당되지 않기 때문에 진급 자체가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기 조현천이 알자회 빨로 3차 진급(후 기무사령관 영전)을 해버리면서 밀린 것이다.[29] 동원사단이 서울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위락시설 개발 관련하여 당시 민원장교가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발생하여 사단장이 민원장교를 바꾸라 지시했는데 그 와중에 전입신고를 했던 본인을 보고 사단장이 '저 친구가 제대로 할 거 같으니까 고 대위에게 임무부여하라' 고 참모장에게 지시했다고 한다.[30] 시기를 보면 아마 정만길 중장으로 추정되는데 이전 군단장인 장준익 중장의 경우 87년 6월 말 육군사관학교장으로 보직을 옮겼기 때문이다.[31] 문제는 이 일이 하루이틀도 아닌 유독 당직사관으로 근무할 때마다 상습적으로 술먹으러 나갔다고 한다. 이것으로 봐서는 당직사관이 자리를 비우면서 병사 혼자 순찰을 나가는 일이 빈번했던 것으로 보인다.[32] 아마도 간부의 비상연락망을 보고 연락했던 모양이다.[33] 전화한 병사가 불리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이 불시점검 차 당직실에 전화를 했는데 당직병사에게 그런 보고를 받았다는 식으로 한 듯 하다.[34] 불미스러운 근거로 정년 전에 전역했기에 연금을 받을 수 없다.[35] 아마 군수참모부장으로 추정이 된다.[36] 쌍욕을 시전한 건 ○○부장이었고, 처장은 욕설은 안 했으나 대단히 고압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방송에서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건 시점과 당사자들의 직책을 슬쩍 흘렸기에 사실상 실명을 투척한 것이나 다름없다. 군문에 있으면서 웬만큼 험한 처우는 워낙 많이 겪어서인지 부정적인 에피소드들은 철저히 익명화해서 말하는 편인데도, 이 건만큼은 앙금이 깊이 남았을 정도로 모독이 심했던 모양이다.[37] 내린천 상류지역인 인제 상남에 있는 부대이다.[38] 참고로 이 보고서는 특수한 상황에서 지시를 받고 고성균 당시 대령이 직접 작성했기에 결재가 총 네 단계였고 통상적으로 참모총장까지 올라가는 서류는 인사근무과 예하 실무자가 보고서를 작성하기에 결재단계는 총 5단계다. 상술한 4단계 앞에 과장이 첫 결재자로 추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당 보고서를 고 대령이 아닌 예하 실무장교가 작성했다면 당시 인사근무과장이었던 고 대령이 첫 결재자가 된다.[39] 참모총장이 찬성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자 태도를 바꾼것으로 보인다.[40] 당시 분위기를 감안하면 인격 모독성 발언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발언까지 해놓고 상급자가 동의한다고 참모차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의견 한줄도 안 적고 자신의 소신을 꺽는 모습을 보고 여러가지를 느꼈던 듯...[41] 본인이 대대장 시절 병사가 외박 중에 범죄를 저지른 건으로 뉴스를 타자 제1군사령관이 사단장에게 대대장 보직 해임을 지시했으나 사단장이 월권행위라며 반발하여 막아냈다. # 군 인사법상 대대장과 연대장 인사, 징계는 사단장의 고유 권한이기에 사단장이 보직 해임을 충분히 막아줄 수 있었다. 참고로 월권 행위는 관련 권한이 없거나 권한을 넘어선 행동뿐만 아니라 하급자 고유의 권한을 상급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침해하는 행위도 충분히 될 수 있다.[42] 장성급의 인사는 상급지휘관이 즉석에서 할 수 없고 국방부와 대통령실에서 주관하기에 어느 정도는 가능한 행동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장성급은 보직 해임 즉시 전역이라 꽤 강단있는 행동을 한 셈이다.[43] 다른 유튜버 채널에 출연해서 당시 5급 을류 (현 9급 공무원)에 합격 후 강릉시청에 출근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44] 재미있게도, 비교대상이 된 할랜드 샌더스도 인자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실제 성격은 매우 매서웠다.[45] 당시에는 검문소마다 헌병들이 검문을 했는데,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살펴볼 수는 없으므로 젊은 남자 위주로 검문이 이루어졌다.[46] 현재 국방부 장관인 예비역 중장 김용현과 육군사관학교 동기다. 김용현은 수방사령관과 국방부장관 자리를 신원식에게 물려받았고 작전본부장도 신원식처럼 역임하게 된다. 수방사령관 시절부터 인연이 가까운 직속부하인 강호필이 대장계급으로 합참차장한게 대표적이다. 이때문에 지난 문재인 정권때 직속후배인 안찬명 현 합참 작전부장과 함께 강인순 뺨치게 정권차원 핍박을 많이 받았다.[47] 예비역 장성들이 현재처럼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자유롭게 표출하게 된 것은 정말 최근의 일이다. 과거에는 진보정당은 고사하고 민주당 계열의 성향만 보여도 집단 내에서 눈총을 보낼 지경이었다. 현재 남양주에서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4성장군출신 김병주 의원의 경우에도 민주당 입당을 선언하자 동기회에게 본인을 제명시켜야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48] 실제 육사 이전에 관한 질문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는 반대지만 정치권에서 밀어붙이면 방법이 있겠냐는 식으로 답하기도 했다. 통상 육사 출신들이 육사 이전을 결사반대하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현실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49] 자력을 서로 비교해보면 전인범 장군은 작전, 전략기획, 대외협력(한미연합사령부) 보직을 주로 역임했고, 고성균 장군은 인사, 교육훈련 보직을 주로 역임했다.[50] 당연하게도, 일면식도 없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를 찾으러 무작정 군부대로 돌격한 이 학생들의 패기를 고 장군은 아주 기특하게 여겼다고 밝혔다. 다만 그 당시 학생들을 PX로 데려가 무슨 이야기를 해주었는지까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51] 실제 고성균 본인도 육군 본부에 있을 때 본인이나 여러곳에서 혁신적인 제안들을 많이 했었고 이를 참모 총장에게 보고해 긍정적인 답을 받았던 적이 있었으나 결국 임기 문제로 무산된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52] 또한 김성민 중장은 현재 본인의 기수에서 진급의 최선임자이며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2025년부터 육사 48기 인원들은 대장 진급자가 나올 시기이고 또한 김성민 중장이 중장까지 모든 계급을 1차진급 했음을 고려했을 때, 대장으로 진급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53] 운동선수 병역 특례 문제를 지적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댓글 중에 "병역특례도 문제지만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독박시키는 걸 현 정치권 및 재판관(법관)들이 문제시하지 않고 회피하는 한국현실도 문제다.(정치인들이) 표심을 중요시한다지만 눈치나 살살보고 있다. 헌재에서 (이번 4번째) 병역법 합헌결정의 경우도 위헌이 부담스러우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어야하는데 그 조차도 하지 않는 걸 보면 헌재가 정의롭고 공정한 기관으로 볼 수 없다"는 댓글에 공감한다는 댓글을 달았다.[54] 그렇다고 여성이라고 행정 등 편한 병과/보직에만 몰아주면 안 되고 남성과 동일하게 전투 병과로 가야한다 이야기했다. 당장 하마스 수장을 드론으로 사살한 훈련병이 무려 여군이라 전투 투입해도 무방하다는걸 이스라엘이 몸소 보여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