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인의 육군 중장(육사47기)에 대한 내용은 김규하(육사47기)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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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D46AF><colcolor=#fff> {{{#fff 대한민국 제33대 육군종합행정학교장}}} 김규하 Kim Kyuha | |
군사 경력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39기)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83년 ~ 2017년 | |
최종 계급 | 소장 (대한민국 육군) |
최종 보직 | 육군종합행정학교장 |
주요 보직 | 육군인사사령관 육군훈련소장 제56보병사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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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최종 계급은 소장. 제7대 육군인사사령부 사령관을 역임했다.2. 생애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9회)를 졸업하고 1979년 육군사관학교(39기)에 입교해 1983년에 졸업과 동시에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직능은 인사.육군 제2보병사단 제32보병연대장(독수리연대), 대한민국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제도관리과장, 선발관리실장을 역임했으며, 2012년 5월 소장으로 2차 진급하여 육군 제56보병사단장과 육군훈련소장을 역임했다.
2015년 10월 27일, 중장급 정기 군인사가 있었는데 그 결과 김규하 소장은 중장진급에 실패했다. 이후 육군교육사령부 예하 육군종합행정학교장으로 취임했다.
2017년에 전역했다.
현재 경운대학교 군사학과 초빙교수에 임하고 있다.[1]
3. 여담
- 2019년 11월 장성급 장교 인사에서 육사 8기수 후배이자 동명이인인 김규하 준장이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게다가 저 쪽은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수도방위사령관으로 영전하면서 중장 진급도 성공했다.
-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의 여파로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권오성 대장이 전역하고, 육군참모총장으로 새로 취임한 김요환 대장에 의해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으로 영전할 뻔 했다. 그러나 전임자인 류성식 소장[2] 징계가 확정되기 전에 인사 조치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한민구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의 태클에 의해 없던 일이 되었다. 이래저래 김규하 장군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일. 문제의 류성식 소장은 기소유예로 끝났지만, 39기의 인사/군수 몫 중장 TO는 아예 물거품이 되었다.
- 이후, 김규하 소장은 취임 예정이던 소장직위 인사참모부장이 아니라 중장직위인 인사사령관으로 영전했는데, 이는 육군인사사령관이 중장 직위에서 소장직위로 격하되었거나 김규하 소장의 중장 진급이 유력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3] 그러나 결국 중장으로 진급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건 인사, 군수[4] 직능의 중장 진급이 어렵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5]
[1] 군사학 세미나, 국방안보론, 국방경영 등[2] 육사 39기. 30사단장을 거쳐 인사참모부장에 보임되었으나, 육사 동기인 당시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홍OO 소장(사실 해당 기수에 홍씨 소장은 단 1명이었다.)이 성추문에 연루되어 전역 지원서를 제출하자 동기를 보호한답시고 전역사유를 조작하였다가 적발되어 징계를 받고 한직인 육군부사관학교장으로 좌천되었고 더 이상의 진급 없이 전역했다.[3] 유력한 인사사령관(중장) 후보이던 육사동기 39기에서 그 유명한 류성식가 떨어져 나갔으니 2인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인사의 당연한 순리.[4] 사실상 진급 상한선은 중장급인 육군군수사령관[5] 보통 인사, 군수 직능은 1기수당 각 1명 정도만 중장에 진급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데 인사참모부장을 맡지 못 했던 것이 패널티로 다가온 듯 하다. 결국 진급은 1기수 후임인 김해석 소장이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