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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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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기 (1946년 입교/임관)3. 2기 (1946년 입교/임관)4. 3기 (1947년 입교/임관)5. 4기 (1947년 입교/임관)6. 5기 (1947년 입교/1948년 임관)7. 6기 (1948년 입교/임관)8. 7기 (1948년 입교/임관)9. 8기 (1948년 입교/1949년 임관)10. 9기 (1949년 입교/1950년 임관)11. 10기
11.1. 생도1기 (1949년 입교/1950년 임관)11.2. 생도2기 (1950년 입교/임관)
12. 11기 (1951년 입학/1955년 임관)13. 12기 (1952년 입학/1956년 임관)14. 13기 (1953년 입학/1957년 임관)15. 14기 (1954년 입학/1958년 임관)16. 15기 (1955년 입학/1959년 임관)17. 16기 (1956년 입학/1960년 임관)18. 17기 (1957년 입학/1961년 임관)19. 18기 (1958년 입학/1962년 임관)20. 19기 (1959년 입학/1963년 임관)21. 20기 (1960년 입학/1964년 임관)22. 21기 (1961년 입학/1965년 임관)23. 22기 (1962년 입학/1966년 임관)24. 23기 (1963년 입학/1967년 임관)25. 24기 (1964년 입학/1968년 임관)26. 25기 (1965년 입학/1969년 임관)27. 26기 (1966년 입학/1970년 임관)28. 27기 (1967년 입학/1971년 임관)29. 28기 (1968년 입학/1972년 임관)30. 29기 (1969년 입학/1973년 임관)31. 30기 (1970년 입학/1974년 임관)32. 31기 (1971년 입학/1975년 임관)33. 32기 (1972년 입학/1976년 임관)34. 33기 (1973년 입학/1977년 임관)35. 34기 (1974년 입학/1978년 임관)36. 35기 (1975년 입학/1979년 임관)37. 36기 (1976년 입학/1980년 임관)38. 37기 (1977년 입학/1981년 임관)39. 38기 (1978년 입학/1982년 임관)40. 39기 (1979년 입학/1983년 임관)41. 40기 (1980년 입학/1984년 임관)42. 41기 (1981년 입학/1985년 임관)43. 42기 (1982년 입학/1986년 임관)44. 43기 (1983년 입학/1987년 임관)45. 44기 (1984년 입학/1988년 임관)46. 45기 (1985년 입학/1989년 임관)47. 46기 (1986년 입학/1990년 임관)48. 47기 (1987년 입학/1991년 임관)49. 48기 (1988년 입학/1992년 임관)50. 49기 (1989년 입학/1993년 임관)51. 50기 (1990년 입학/1994년 임관)52. 51기 (1991년 입학/1995년 임관)53. 52기 (1992년 입학/1996년 임관)54. 53기 (1993년 입학/1997년 임관)55. 54기 (1994년 입학/1998년 임관)56. 55기 (1995년 입학/1999년 임관)57. 56기 (1996년 입학/2000년 임관)58. 57기 (1997년 입학/2001년 임관)59. 58기 (1998년 입학/2002년 임관)60. 59기 (1999년 입학/2003년 임관)61. 60기 (2000년 입학/2004년 임관)62. 61기 (2001년 입학/2005년 임관)63. 62기 (2002년 입학/2006년 임관)64. 63기 (2003년 입학/2007년 임관)65. 64기 (2004년 입학/2008년 임관)66. 65기 (2005년 입학/2009년 임관)67. 66기 (2006년 입학/2010년 임관)68. 67기 (2007년 입학/2011년 임관)69. 68기 (2008년 입학/2012년 임관)70. 69기 (2009년 입학/2013년 임관)71. 70기 (2010년 입학/2014년 임관)72. 71기 (2011년 입학/2015년 임관)73. 72기 (2012년 입학/2016년 임관)74. 73기 (2013년 입학/2017년 임관)75. 74기 (2014년 입학/2018년 임관)76. 75기 (2015년 입학/2019년 임관)77. 76기 (2016년 입학/2020년 임관)78. 77기 (2017년 입학/2021년 임관)79. 78기 (2018년 입학/2022년 임관)80. 79기 (2019년 입학/2023년 임관)81. 80기 (2020년 입학/2024년 임관)82. 81기 (2021년 입학/2025년 임관예정)83. 82기 (2022년 입학/2026년 임관예정)84. 83기 (2023년 입학/2027년 임관예정)85. 84기 (2024년 입학/2028년 임관예정)86. 85기 (2025년 입학예정)87. 역대 대통령상, 대표화랑상 수상자8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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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늘의 주인공 00기 졸업생도들이 입장하겠습니다!
00기 졸업생 000명은 가슴엔 조국을, 두눈은 세계로! 라는 슬로건으로,
지난 4년동안 초급장교로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자기주도적 임무수행능력을 배양하기 위하여,
도약적 변혁과 임무형 지휘체계 정착을 선도해왔습니다.
또한, 학업에도 매진하여, 교육부가 인증하는
문학사 000명, 공학사 000명, 이학사 000명이 학사학위를 받음은 물론,
끈끈한 전우애로, 한명의 낙오자 없이 특급전사가 되는등,
군사학분야에서도 전원이 군사학사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이제 00기 000명은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헌신,봉사할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되어있으며, 선배들처럼 국방의 초석이자, 국가안보와 한반도 평화수호의 선방에 서서, 대한민국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中 졸업생도 입장소개문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유명 인물을 정리한 항목이다. 본 항목은 기수별로 정리했다. 「육군사관학교에 재학한 사실이 있는 자」 한정으로 출신(出身) 인물에 기재할 수 있다. 단, 졸업·수료·자퇴·제적 등 학적 변동 여부를 명시한다.

2. 1기 (1946년 입교/임관)

입교일: 1946년 5월 1일
입교 인원: 88명
교육기간: 1개월
임관일: 1946년 6월 15일
임관인원: 40명





3. 2기 (1946년 입교/임관)

입교일: 1946년 9월 24일
입교 인원: 263명
교육기간: 3개월
임관일: 1946년 12월 14일
임관인원: 196명

특이사항으로 역대 육군사관학교 단일 기수 중 가장 많은 수의 대장[1]을 배출했다.

4. 3기 (1947년 입교/임관)

입교일: 1947년 1월 13일
입교 인원: 338명
교육기간: 3개월
임관일: 1947년 4월 19일
임관인원: 296명

5. 4기 (1947년 입교/임관)

입교일: 1947년 5월 16일
입교 인원: 120명
교육기간: 4개월
임관일: 1947년 9월 10일
임관인원: 107명

6. 5기 (1947년 입교/1948년 임관)

입교일: 1947년 10월 23일
입교 인원: 400명
교육기간: 6개월
임관일: 1948년 4월 6일
임관인원 : 380명

7. 6기 (1948년 입교/임관)

입교일: 1948년 5월 5일
입교 인원: 227명
교육기간: 3개월
임관일: 1948년 7월 28일
임관인원: 235명

특이사항으로, 육사 47기까지를 기준으로 역대 육사 기수 중에서 유일하게 대장을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기수다. 참고로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특전사령관 정병주 장군이 육사 6기[5]라고 나오지만 잘못된 것이며, 정 장군은 육사 9기다.

8. 7기 (1948년 입교/임관)

입교일 입교인원 임관일 임관인원
정기 1948년 8월 9일 602명 1948년 11월 11일 561명
특별 1948년 8월 17일~9월 13일 246명 1948년 10월 12일 190명
후기 1948년 11월 22일 350명 1948년 12월 21일 345명

9. 8기 (1948년 입교/1949년 임관)

입교일 입교인원 임관일 임관인원
정기 1948년 12월 7일 948명 1949년 5월 23일 1263명
1949년 1월 27일 37명
1949년 3월 19일 315명
특별1 1948년 12월 7일 11명 1949년 1월 1일 11명
특별2 160명 1949년 1월 14일 145명
특별3 190명 1949년 3월 2일 181명
특별4 1949년 2월 21일 ~ 3월 5일 250명 1949년 3월 29일 148명
1949년 4월 27일 99명

특이 사항으로 정규육사 이전 기수들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임관한 기수로 정규 및 특별입교를 다 합치면 1500명은 거뜬히 넘어간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선발한 것은 당시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맞물려 주한미군이 일시적으로 철수하면서 보다 많은 인원을 충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10. 9기 (1949년 입교/1950년 임관)

입교일: 1949년 7월 15일 ~ 10월 25일
입교 인원: 647명
임관일: 1950년 1월 14일
임관인원: 580명

11. 10기

11.1. 생도1기 (1949년 입교/1950년 임관)

입교일 : 1949년 7월 15일 ~ 7월 30일
입교 인원: 338명
임관일: 1950년 7월 10일
임관인원: 134명

11.2. 생도2기 (1950년 입교/임관)

입교일: 1950년 6월 1일
입교 인원: 333명
임관일: 1950년 10월 23일
생도 2기는 불운의 기수이다. 본래 첫 정규 4년제 교육과정 기수였으나 입교한지 한 달도 안 되어 6.25 전쟁이 터져버렸다. 정신 나간 참모총장 채병덕은 입교한지 한 달도 안 된 이들을 육사 10기(생도 1기)[21]와 함께 전장에 투입시켰고 98명이 전사, 실종되었다.

전쟁 중 장교가 부족해지자 뒤늦게 이들이 생각난 지휘부는 일선에서 소총수로 뛰던 생도 2기를 불러모아 육군종합학교 2기로 편입시켜 교육 후 장교 임관하였다.[22] 그 바람에 전쟁 동안 동기생의 43%가 사망한 '죽음의 기수'가 되었다. 전쟁이 교착되자 생도 2기에 대한 복교 문제가 불거졌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23] 생도 2기는 이후 육사 기수에서 사라져버린 비운의 기수가 되었다. 이들은 국방부에 대해 명예 졸업이란 정당한 요구를 촉구하였고 1996년 5월 4일, 생도 2기 전원에게 명예졸업장이 수여되었다. 대충 육사 10-2기 정도로 퉁치는 것으로 합의 보았다.

12. 11기 (1951년 입학/1955년 임관)

11기부터 정규 4년제 교육과정을 거쳤다. 1951년에 입학해 1955년에 임관했다.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전두환과 노태우는 사실상 스스로 대장 진급을 해 버렸으며, 전역하고 정치인이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11기는 대장만 5명을 배출했고 그 5명이 예편 후에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에 오르면서 대통령 2명, 국방장관 3명을 배출하는 이력을 남기게 되었다.



13. 12기 (1952년 입학/1956년 임관)

1952년에 입학해 1956년에 임관했다. 11기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이쪽도 12.12 군사반란 당시에 반란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들이 몇몇 있다. 이 때문에 12기도 대장 진급자가 4명이나 나왔다.


14. 13기 (1953년 입학/1957년 임관)

1953년에 입학해 1957년에 임관했다.





15. 14기 (1954년 입학/1958년 임관)

1954년에 입학해 1958년에 임관했다.






16. 15기 (1955년 입학/1959년 임관)

1955년에 입학해 1959년에 임관했다.

17. 16기 (1956년 입학/1960년 임관)

1956년에 입학해 1960년에 임관했다.

18. 17기 (1957년 입학/1961년 임관)

1957년에 입학해 1961년에 임관했다.김영삼의 하나회 대숙청 작업으로 김진영 참모총장이 숙청된 후 동기인 김동진[52]이 참모총장에 오름으로써 2명의 참모총장을 배출한 기수가 되었다. 이후 31기와 34기에서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모총장이 두 명 배출되었다.

19. 18기 (1958년 입학/1962년 임관)

1958년에 입학해 1962년에 임관했다.

20. 19기 (1959년 입학/1963년 임관)

1959년에 입학해 1963년에 임관했다.

21. 20기 (1960년 입학/1964년 임관)

1960년에 입학해 1964년에 임관했다.


22. 21기 (1961년 입학/1965년 임관)

1961년에 입학해 1965년에 임관했다.

23. 22기 (1962년 입학/1966년 임관)

1962년에 입학해 1966년에 임관했다.

24. 23기 (1963년 입학/1967년 임관)

1963년에 입학해 1967년에 임관했다.

25. 24기 (1964년 입학/1968년 임관)

1964년에 입학해 1968년에 임관했다.

26. 25기 (1965년 입학/1969년 임관)

1965년에 입학해 1969년에 임관했다.

27. 26기 (1966년 입학/1970년 임관)

1966년에 입학해 1970년에 임관했다.

28. 27기 (1967년 입학/1971년 임관)

1967년에 입학해 1971년에 임관했다.

29. 28기 (1968년 입학/1972년 임관)

1968년에 입학해 1972년에 임관했다.

30. 29기 (1969년 입학/1973년 임관)

1969년에 입학해 1973년에 임관했다.


31. 30기 (1970년 입학/1974년 임관)

1970년에 입학해 1974년에 임관했다.




32. 31기 (1971년 입학/1975년 임관)

1971년에 입학해 1975년에 임관했다. 2000년 선두주자들이 준장으로 진급했고, 2003년 소장으로 진급했다.




33. 32기 (1972년 입학/1976년 임관)

1972년에 입학해 1976년에 임관했다.

34. 33기 (1973년 입학/1977년 임관)

1973년에 입학해 1977년에 임관했다.

35. 34기 (1974년 입학/1978년 임관)

1974년에 입학해 1978년에 임관했다. 17기, 31기에 이어 육군참모총장을 두 명 배출하게 된 기수이다.




36. 35기 (1975년 입학/1979년 임관)

1975년에 입학해 1979년에 임관했다.

육사는 이 기수 전까지는 6기를 제외[85]하고는 모든 기수에서 합참의장 혹은 육참총장을 배출한 역사가 있었다. 4년제 정규육사인 11기 이후부터는 모든 기수에서 합참의장이나 육참총장을 배출했는데, 18기에 이어 35기가 합참의장 뿐만 아니라 육참총장도 배출하지 못했다.




37. 36기 (1976년 입학/1980년 임관)

1976년에 입학해 1980년에 임관했다. 2005년에 처음 준장으로 진급했다.





38. 37기 (1977년 입학/1981년 임관)

1977년에 입학해 1981년에 임관했다. 2006년에 처음 장성급에 진출했다. 18기, 35기에 이어 합참의장과 육군총장 모두 배출하지 못했다. 박지만의 기수로 유명하다.



39. 38기 (1978년 입학/1982년 임관)

1978년에 입학했고 1982년에 임관했다. 2007년 10월에 준장 1차, 2010년 12월에 소장 1차가 있었다. 그리고 중장 1차 진급자가 2013년 10월에 나온 김용현 중장 1명이고, 2차는 2014년 4월에 정연봉, 최병로, 정항래 중장이, 2014년 10월에는 3차로 임호영, 조현천, 위승호 중장이 진급했다.

38기의 입학생은 377명이었고, 입학 경쟁률은 137:1 이었는데 경쟁률이 이렇게 높았던 건 대위로 전역한 뒤 5급 사무관으로 채용되는 유신사무관이란 제도 때문이었다.[105] 그런데 1988년에 유신사무관이 폐지되는 바람에 단체로 낚인 꼴이 되어 정작 혜택도 받지 못히게 되고, 육사 38기부터 인사적체가 심각해졌다. 결국 37기와 마찬가지로 육참총장과 합참의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40. 39기 (1979년 입학/1983년 임관)

1979년에 입학했고 1983년에 임관했다. 2008년에 처음 준장으로 진급했으며, 2011년에 첫 소장, 2014년에 첫 중장, 그리고 2017년에 김용우 장군만이 유일하게 4성장군이자 육참총장으로 영전했다. 여담으로 알자회를 최초로 고발한 기수이다.




41. 40기 (1980년 입학/1984년 임관)

1980년에 입학했고 1984년에 임관했다. 2009년에 처음으로 준장, 2012년 10월에 처음으로 소장, 2015년 10월에 첫 중장, 2017년 8월에 대장 진급자가 나왔다.

바로 1기수 선배들이 알자회를 고발할 때 이들도 함께 목소리를 냈는데, 한술 더떠서 아예 25기수 선배인 권영해 장관을 찾아가서 알자회의 군내퇴출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기수이다. 특히 김운용 전 지상작전사령관이 더 적극적이었는데 이 때문에 알자회를 가장 강력하게 후원하는 박근혜 정권 때 소장 진급을 사실상 막차를 탔고 이대로 군생활이 끝나나 싶었지만 2014년 한 해 동안 온갖 사고가 터져 소장급 선두그룹들이 3명이나 한꺼번에 날아가는 바람에[120] 운좋게 중장 2차진급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3달 뒤 전격적으로 3군사령관에 승진발령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비육사-비육군 인사 등용 정책에 영향을 받아 육군참모총장합동참모의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수혜자와 동시에 피해자인 셈.





42. 41기 (1981년 입학/1985년 임관)

1981년에 입학했고 1985년에 임관했다. 2010년에 첫 준장, 2013년에 첫 소장, 2016년에 첫 중장, 2019년에 대장 진급자가 나왔다.





43. 42기 (1982년 입학/1986년 임관)

1963년생이 주류이며, 1982년에 입학했고 1986년에 임관했다. 42기부터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는데 2011년부터 기간이 4년에서 5년으로 늘어남에 따라 2012년에 처음 준장을 배출했으며, 2014년 10월에 첫 소장 진급, 2017년 9월에 첫 중장 진급, 2020년 9월에 대장 진급자가 나왔다.

현역 중장급 인사들 가운데 비육사 출신 임관 동기(3사 21기[137], 학군 24기[138])가 없어 육사 42기 내부에서만 경쟁을 하게되었는데 2020년 9월 21일, 김승겸, 김정수 중장이 대장 진급에 성공하였다. 그 후 같은 해 12월 3일 인사에서 중장급 동기들은 박주경 중장만이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하고 나머지는 전역하였으며 박주경 중장은 백신수송지원본부장을 역임하다가 2021년 12월 9일 인사에서 전역하였다. 그리고 2022년 5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 중인 김승겸 대장이 합동참모의장에 지명되었으나 인사청문회 문제로 약 2개월간 시간을 끌다가 7월에서야 인사청문회 없이 이.취임식을 가졌다.




44. 43기 (1983년 입학/1987년 임관)

1964년생이 주류이며, 1983년에 입학했고 1987년에 임관했다. 2013년에 첫 준장 진급, 2015년 10월 첫 소장 진급, 2018년 11월 첫 중장 진급자가 나왔으며, 2020년 9월 안준석 대장만이 유일하게 대장 진급에 성공하였으며 2021년 12월 인사에서 이영철 국방정보본부장을 제외한 중장들은 추가 진급자 없이 모두 예편하였다. 결국 안준석 대장 역시 윤석열 정부 출범 15일 만인 2022년 5월 25일에 전역이 확정되면서 43기 역시 합동참모의장과 육군참모총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45. 44기 (1984년 입학/1988년 임관)

1965년생이 주류이며, 1984년에 입학했고 1988년에 임관했다. 2014년 10월에 첫 준장 진급, 2016년 10월에 첫 소장 진급, 2019년 11월에 첫 중장 진급, 2022년 5월에 박정환 대장이 유일하게 대장 진급 및 육군참모총장에 영전했다.

44기의 경우 소장 시기까지 선두를 질주한 작전통, 1차 진급자들이 사건사고에 휘말리거나 그렇지 않았던 경우라도 비육사 선호 기조로 인해 대거 중장 진급에서 배제되었다. 김정유와 이진형이 전자, 강인순과 김종철이 후자의 사례이다.





46. 45기 (1985년 입학/1989년 임관)

1966년생이 주류이며, 1985년에 입학했고 1989년에 임관했다. 2015년 10월에 첫 준장 진급, 2017년 12월에 첫 소장 진급자가 나왔으며, 2020년 12월에 첫 중장 진급자가 나왔다. 그리고 2022년 5월 정권 교체 이후 첫 인사에서 이루어진 세대 교체에 따라 좀 빠르게 대장 진급자 2명을 배출했으나, 합동참모의장과 육군참모총장은 배출하지 못했다.




47. 46기 (1986년 입학/1990년 임관)

1967년생이 주류이며, 1986년에 입학했고 1990년에 임관했다. 2012년에 첫 준장 진급[164], 2018년 11월에 첫 소장 진급, 2021년 12월에 첫 중장 진급, 2023년 10월 대장 진급자가 나왔다.



48. 47기 (1987년 입학/1991년 임관)

1968년생이 주류이며, 1987년에 입학했고 1991년에 임관했다. 2014년에 첫 준장 진급[168], 2019년 11월에 첫 소장 진급, 2022년 6월 첫 중장 진급, 2023년 10월과 2024년 4월에 대장 진급자가 나왔다.




49. 48기 (1988년 입학/1992년 임관)

1969년생이 주류이며, 1988년에 입학했고 1992년에 임관했다. 2018년 11월에 첫 준장 진급, 2020년 12월에 첫 소장 진급, 2023년 4월에 첫 중장 진급자가 나왔으며 앞 기수의 대장 진급 시기 등을 고려하면 2025년에 대장 진급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50. 49기 (1989년 입학/1993년 임관)

1970년생이 주류이며, 1989년에 입학했고 1993년에 임관했다. 2019년 11월에 첫 준장 진급, 2021년 12월에 첫 소장 진급자가 나왔으며, 2024년 상반기에 첫 중장 진급자가 나왔다.

육사 49기는 문재인 정부의 군 인사의 비육사 우대 기조의 직격탄을 맞은 탓인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소장 3차 진급으로 구제된 인원이 5명이나 될 정도로 많았다.[180] 중장 1차 진급자도 49기 선두주자인 합참 작전통 이승오를 제외하면 윤석열 정부에서 소장 2,3차 진급한 인원이다.




51. 50기 (1990년 입학/1994년 임관)

1971년생이 주류이며, 1990년에 입학했고 1994년에 임관했다. 2020년 12월에 첫 준장 진급, 2022년 하반기에 첫 소장 진급자가 나왔으며 빠르면 2025년 상반기 내지는 하반기에 첫 중장 진급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52. 51기 (1991년 입학/1995년 임관)

1972년생이 주류이며, 1991년에 입학했고 1995년에 임관했다. 2021년 12월에 첫 준장 진급자(11명)가 나왔으며, 2023년 하반기에 첫 소장 진급자가 나왔다. 소장 1차 진급자가 무려 9명이나 나오며 윤석열 정부의 육사 우대 혜택을 톡톡히 봤다.[186]



53. 52기 (1992년 입학/1996년 임관)

1973년생이 주류이며, 1992년에 입학했고 1996년에 임관했다. 졸업식 날 묘하게도 대선배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법정에 섰다.# 동기 김훈 중위의 의문사에 대한 군의 대처에 실망한 인원이 많아, 5년차 전역으로 군을 떠난 인원이 평년 10명 내외인 것에 비해 33명이나 나왔다. 관련 기사[188] 2022년 하반기에 첫 준장 진급자가 나왔으며 2024년 하반기에 첫 소장 진급자가 나왔다.



54. 53기 (1993년 입학/1997년 임관)

1974년생이 주류이며, 1993년에 입학했고 1997년에 임관했다. 2023년 하반기에 첫 준장 진급자가 나왔으며, 빠르면 2025년 하반기에 첫 소장 진급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55. 54기 (1994년 입학/1998년 임관)

1975년생이 주류이며, 1994년에 입학했고 1998년에 임관했다. 2024년 하반기에 첫 준장 진급자가 나왔다.


56. 55기 (1995년 입학/1999년 임관)

1976년생이 주류이며, 1995년에 입학했고 1999년에 임관했다. 2025년 하반기에 첫 준장 진급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57. 56기 (1996년 입학/2000년 임관)

1977년생이 주류이며, 1996년에 입학했고 2000년에 임관했다. 2021년부터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58. 57기 (1997년 입학/2001년 임관)

1978년생이 주류이며, 1997년에 입학했고 2001년에 임관했다. 2022년부터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59. 58기 (1998년 입학/2002년 임관)

1979년생이 주류이며, 1998년에 입학했고 2002년에 임관했다. 처음으로 여성 사관생도를 받아들인 기수이다. 2023년부터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60. 59기 (1999년 입학/2003년 임관)

1980년생이 주류이며,1999년에 입학했고 2003년에 임관했다. 2024년부터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61. 60기 (2000년 입학/2004년 임관)

1981년생이 주류이며,2000년에 입학했고 2004년에 임관했다. 2025년부터 대령으로 진급할 예정이다.[200]

62. 61기 (2001년 입학/2005년 임관)

1982년생이 주류이며, 2001년에 입학했고 2005년에 임관했다. 이 해에 처음으로 대통령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2020년부터 중령으로 진급하였다.

63. 62기 (2002년 입학/2006년 임관)

1983년생이 주류이며, 2002년에 입학했고 2006년에 임관했다. 2021년부터 중령으로 진급하였다.

64. 63기 (2003년 입학/2007년 임관)

1984년생이 주류이며, 2003년에 입학했고 2007년에 임관했다. 2022년부터 중령으로 진급하였다.

65. 64기 (2004년 입학/2008년 임관)

1985년생이 주류이며, 2004년에 입학했고 2008년에 임관했다. 2023년부터 중령으로 진급하였다.

66. 65기 (2005년 입학/2009년 임관)

1986년생이 주류이며, 2005년에 입학했고 2009년에 임관했다. 2024년부터 중령으로 진급하였다.

67. 66기 (2006년 입학/2010년 임관)

1987년생이 주류이며, 2006년에 입학했고 2010년에 임관했으며, 2025년부터 중령으로 진급할 예정이다.

68. 67기 (2007년 입학/2011년 임관)

1988년생이 주류이며, 2007년에 입학했고 2011년에 임관했으며, 2020년부터 소령으로 진급했다.

69. 68기 (2008년 입학/2012년 임관)

1989년생이 주류이며, 2008년에 입학했고 2012년에 임관했다. 졸업자는 199명(남 179, 여 20). 관련기사 2021년부터 소령으로 진급하였다.

70. 69기 (2009년 입학/2013년 임관)

1990년생이 주류이며, 2009년에 입학했고 2013년에 임관했다. 졸업자는 205명. 관련기사 2022년부터 소령으로 진급하였다.

71. 70기 (2010년 입학/2014년 임관)

1991년생이 주류이며, 2010년에 입학했고 2014년에 임관했다. 졸업자는 198명 임관.(남 178, 여 20) 관련기사, 2023년부터 소령으로 진급하였다.

72. 71기 (2011년 입학/2015년 임관)

1992년생이 주류이며, 2011년에 237명(남214/여23)[215]이 입학했고 2015년에 220명(남 201, 여 19)이 임관했다. 2024년부터 소령으로 진급하였다.

73. 72기 (2012년 입학/2016년 임관)

1993년생이 주류이며, 2012년에 입학했고 2016년에 임관했다. 2025년부터 소령으로 진급할 예정이다.

74. 73기 (2013년 입학/2017년 임관)

1994년생이 주류이며, 2013년에 입학했고 2017년에 임관했다. 2020년부터 대위로 진급하기 시작했다.

75. 74기 (2014년 입학/2018년 임관)

1995년생이 주류이며, 2014년에 입학했고 2018년에 임관하였으며 오랜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졸업 및 임관식을 주관하였다. 2021년부터 대위로 진급하기 시작했다.

76. 75기 (2015년 입학/2019년 임관)

1996년생이 주류이며, 2015년에 입학했고 2019년에 임관하였다. 2022년부터 대위로 진급하였다.

77. 76기 (2016년 입학/2020년 임관)

1997년생이 주류이며, 2016년에 입학했고 2020년에 임관하였다. 2023년부터 대위로 진급하였다.

78. 77기 (2017년 입학/2021년 임관)

1998년생이 주류이며, 2017년에 입학했고 2021년에 임관하였다. 2024년부터 대위로 진급하였다.

79. 78기 (2018년 입학/2022년 임관)

1999년생이 주류이며, 2018년에 입학했고 2022년에 임관하였다. 2025년부터 대위로 진급할 예정이다.

80. 79기 (2019년 입학/2023년 임관)

2000년생이 주류이며, 2019년에 입학했고 2023년에 임관했다. 2024년에 중위로 진급하였다.

81. 80기 (2020년 입학/2024년 임관)

2001년생이 주류이며, 2020년에 입학했고 2024년에 임관했다. 현재 소위로 복무중이며 2025년에 중위로 진급할 예정이다.

82. 81기 (2021년 입학/2025년 임관예정)

2002년생이 주류이며, 2021년에 입학했고 2025년 3월에 임관할 예정이다. 현재 4학년이다.

83. 82기 (2022년 입학/2026년 임관예정)

2003년생이 주류이며, 2022년에 입학했고 2026년 3월에 임관할 예정이다. 현재 3학년이다.

84. 83기 (2023년 입학/2027년 임관예정)

2004년생이 주류이며, 2023년에 입학했고 2027년 3월에 임관할 예정이다. 현재 2학년이다.

85. 84기 (2024년 입학/2028년 임관예정)

2005년생이 주류이며, 2024년에 입학했고 2028년 3월에 임관할 예정이다. 현재 1학년이다.

86. 85기 (2025년 입학예정)

2006년생이 주류이며, 2025년에 입학예정이다.

87. 역대 대통령상, 대표화랑상 수상자

대통령상은 졸업성적이 가장 높은 수석졸업생에게 수상되고, 대표화랑상은 성적, 체력, 훈육, 생도생활 등을 종합평가하여 가장 우수한 졸업생에게 수상되는데 주로 연대장생도(여단장생도)를 역임한 졸업생이 수상한다. 대통령상과 대표화랑상을 수상한 졸업생은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는 백년탑이라는 기념물에 이름이 새겨진다.

육사 생도 시절 인망이 뛰어났던 대표화랑들은 대부분 교수나 군의/법무사관으로 빠지는 수석보다 군에서 높이 출세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하나회가 활개치던 시절 집중적으로 견제를 당하거나 하나회에 가담했거나 둘 중 하나라서 제 능력을 다 못 펼치고 군을 떠난 경우가 많았다.# 93년 하나회 숙청 이후 상황이 뒤집혀서 비하나회원들이 제대로 평가받고 하나회원은 장군을 못 달았다. 또한 아래 목록에서 대령 전역자들은 육사 교수로 근무하다 퇴임한 경우가 많다.

11기 : 대통령상 김성진[준장][수석입학자]
12기 : 대통령상 이병간
13기 : 대통령상 장기철, 대표화랑상 정일성[소장]
14기 : 대통령상 박희용[대령], 대표화랑상 박동원[소장]
15기 : 대통령상 양창현, 대표화랑상 신대진[소장]
16기 : 대통령상 정형식, 대표화랑상 최평욱[중장]
17기 : 대통령상 김동진[대장][수석입학자], 대표화랑상 김진영[대장]
18기 : 대통령상 조성환, 대표화랑상 황원탁[소장]
19기 : 대통령상 이종원, 대표화랑상 이준[대장]
20기 : 대통령상 윤여길, 대표화랑상 이현부[중장]
21기 : 대통령상 홍순용, 대표화랑상 서장원[중령]
22기 : 대통령상 심창섭, 대표화랑상 강재수[중령]
23기 : 대통령상 온창일, 대표화랑상 이재[대령]
24기 : 대통령상 최승의, 대표화랑상 김덕중[대령]
25기 : 대통령상 김순효, 대표화랑상 안광찬[소장]
26기 : 대통령상 송운호, 대표화랑상 김창호[중장]
27기 : 대통령상 김종훈, 대표화랑상 신용수[대령]
28기 : 대통령상 김병관[대장][수석입학자], 대표화랑상 이성규[중장]
29기 : 대통령상 박명진, 대표화랑상 이강호[대위]
30기 : 대통령상 임웅환, 대표화랑상 이현중[대령]
31기 : 대통령상 임성택, 대표화랑상 임치규
32기 : 대통령상 정승조[대장][수석입학자], 대표화랑상 최진학
33기 : 대통령상 김종수, 대표화랑상 김돈수
34기 : 대통령상 이장송[수석입학자], 대표화랑상 박종래
35기 : 대통령상 남인우, 대표화랑상 최승주
36기 : 대통령상 김춘도, 대표화랑상 김용빈
37기 : 대통령상 김권희, 대표화랑상 고장호
38기 : 대통령상 최영윤, 대표화랑상 이창형
39기 : 대통령상 장경석[중장], 대표화랑상 이형국
40기 : 대통령상 성인용, 대표화랑상 김호익
41기 : 대통령상 이희범, 대표화랑상 김병묵
42기 : 대통령상 장진섭, 대표화랑상 정동영
43기 : 대통령상 심상선, 대표화랑상 홍장원[대위]
44기 : 대통령상 김현종[중장], 대표화랑상 박일송[대령]
45기 : 대통령상 조창래[준장], 대표화랑상 허태근[준장]
46기 : 대통령상 최인수[소장], 대표화랑상 김대욱
47기 : 대통령상 함형필[대령], 대표화랑상 이춘주[대령]
48기 : 대통령상 김성민[중장][수석입학자], 대표화랑상 손광제[소장]
49기 : 대통령상 석용규[준장], 대표화랑상 류승민[소장]
50기 : 대통령상 정관, 대표화랑상 윤만영[대령]
51기 : 대통령상 곽태신[준장], 대표화랑상 하형호
52기 : 대통령상 이진우, 대표화랑상 김주희
53기 : 대통령상 이선우[중령], 대표화랑상 최형진
54기 : 대통령상 김성제, 대표화랑상 이창호
55기 : 대통령상 최정원, 대표화랑상 이상준
56기 : 대통령상 김병석, 대표화랑상 탁희철
57기 : 대통령상 양준혁, 대표화랑상 이상훈
58기 : 대통령상 오홍상, 대표화랑상 조종희
59기 : 대통령상 임성훈, 대표화랑상 우현우
60기 : 대통령상 강대현, 대표화랑상 이광현
61기 : 대통령상 황원중, 대표화랑상 이용경
62기 : 대통령상 서동현, 대표화랑상 이상협
63기 : 대통령상 조성환, 대표화랑상 이원용
64기 : 대통령상 및 대표화랑상 조홍래[265]
65기 : 대통령상 정태희, 대표화랑상 이익현
66기 : 대통령상 서창원, 대표화랑상 유준성
67기 : 대통령상 이승준[266], 대표화랑상 하정훈
68기 : 대통령상 윤가희[267], 대표화랑상 백인준
69기 : 대통령상 양주희[268], 대표화랑상 윤성원
70기 : 대통령상 김수찬, 대표화랑상 기형관
71기 : 대통령상 김승태, 대표화랑상 송형석
72기 : 대통령상 전영준, 대표화랑상 전다훈
73기 : 대통령상 이은애[269], 대표화랑상 조성래
74기 : 대통령상 이도현[270], 대표화랑상 권남기
75기 : 대통령상 이하민[271], 대표화랑상 김정균
76기 : 대통령상 나호선[272], 대표화랑상 이지홍
77기 : 대통령상 이윤호, 대표화랑상 곽동헌
78기 : 대통령상 김지용, 대표화랑상 이윤태
79기 : 대통령상 장우형, 대표화랑상 이상신
80기 : 대통령상 및 대표화랑상 이승민[273]

88. 관련 문서


[1] 문형태, 박정희, 심흥선, 이세호, 이소동, 한신까지 총 6명.[2] 육군사관학교 출신 인물 중에서는 가장 이른 나이에 대장이 되었다. 대장이 될 당시 그의 나이는 만 43세였다.[3] 장영자의 남편[4] 사위 차기문(육사23기)도 제37보병사단장을 역임했다.[5] 전두환이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를 붙잡기 위하여 요정으로 초대하는데 정병주 장군(배우: 민욱)이 요정에 도착 후 차에서 내리는 씬.[6] 2013.11.17 미국에서 사망.[7] 중국군 중장으로 한국군의 소장 계급에 상당[8] 제20연대 소위 화랑무공훈장, 원호대 대위 화랑무공훈장.[9] 2009년 포항시에 위치한 무명 380고지에서 유품인 중위 계급장, 군번줄, 허리띠 버클을 통해서 신원을 확인했지만, 현재까지 유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10] 12.12 군사반란 당시 육군본부 헌병감 및 계엄사령부 치안처장으로 반란 진압을 위해 노력했으나 반란 직후 반란군에 의해 예편되었다.[11] 12.12 군사반란 당시 합참본부장으로 반란 진압을 위해 노력했으나 반란 직후 반란군에 의해 강제 예편당했다. 여담으로 반란군은 반란 직후 숙청 작업에서 윤성민과 문홍구 둘 중에 1명만 살리려고 했었는데 윤성민이 선택되어 대장으로 진급했다.[12] 윤성민이 진압 과정에서 반란군에 유화적이었던 점,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고려되어 회유 대상이 되었다. 윤성민은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 1군사령관, 합참의장, 국방부장관을 역임한다.[13] 12.12 군사반란 당시 군수참모부장으로 진압군의 일원이었으며, 반란군에 대한 강경 진압을 주장했다. 또한 이듬해 5.17 내란 하루 전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노태우, 정호용이 밀어붙인 계엄 확대론에 대해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한 인물이다.[14] 12.12 군사반란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반란 진압을 위해 노력했으나 직속 부하 최세창에 의해 체포되었고, 반란 직후 반란군에 의해 강제 예편당했다. 1989년, 야산에서 교수형 형태의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그의 죽음에는 의문이 있다. 종교가 가톨릭(세례명: 요셉)인데도 군당국에서는 계속 자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5] 12.12 군사반란 당시 육참차장으로 진압군의 총지휘관이었다. 그러나 반란 이후 신군부 정권에서 국방부장관, 합참의장을 역임했다.[16] 장남 홍두승 한민고등학교 이사장(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은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후 학군사관 9기를 거쳐 중위로 전역, 4남 홍두영 前 포스코인터내셔널 상무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졸업 후 학군사관 23기를 거쳐 중위로 전역하였다. 손자 홍찬민은 공군 학사사관후보생 141기로 임관하여 3대 군인 장교 가족이 됐다.[17] 반란 직후 논공행상과 반대파 숙청 작업을 했던 6인 위원회(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유학성, 차규헌, 김윤호)의 1인이다.[18] 12.12 군사반란 당시 하나회에 반기를 들었던 9공수여단장 윤흥기 장군의 형[19] 김병로의 오타로 추정되나 출처에는 "깁병로"로 표기됨 확인 필요함.[20] 특히 1965년 맹호사단 제1진 초대 재구대대장(고 강재구 소령 순직을 기리기 위해 명명)으로 참전 발군의 전공을 세우고 국위를 떨쳤다. 12.12군사반란 직후 정치군인과 결별, 전업작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2016년 기준 79권의 저서를 펴냈다.[21] 생도 1기는 당장 임관 시켜도 무리가 없는 게, 앞서 육사 1~9기보다 훨씬 긴 무려 1년간 교육 받은 자원들이고, 2기는 아직 이등병이나 다름 없는데 채병덕은 뒷날에 대한 생각도 없이 소중한 장교 재원들을 총알받이로 갈아버린 것이다. 패전 직전의 일본군도 이런 짓은 하지 않았다. 패전 직전의 일본군은 이등병중 고등교육 받은 이들을 대량으로 갑종간부후보생이라는 이름의 장교 트랙에 태웠는데 무려 2년 과정이었다.[22] 일선 소충수로 있다가 뒤늦게 개별적으로 한두 명씩 오는 사람들이 많아 종합학교 3기 이후에도 골고루 섞여 있었다.[23] 가뜩이나 장교가 부족한 판국이라 이미 장교인 이들을 상급 지휘관들이 보내주려 하지 않았고, 본인들에게 의견을 조회한 결과 이미 정당한 교육을 받은 장교 신분임으로 다시 사관후보생 신분이 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즉, 지금 이 상황에서 다시 사관학교로 가면 후배들의 후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24]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핵심인물이며, 하나회의 수장. 갑종장교에 탈락하고 시간을 때우다 육사에 입학한 관계로 동기들에 비해 나이가 많았고, 그래서인지 동기들에게는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2021년 사망(향년 90세).[25] 12.12 군사반란 때 9사단장으로, 전방 병력을 불법으로 동원했다. 하나회의 2인자였다. 이 인물의 경력은 마치 전두환을 복사한것처럼 거의 비슷하다. 군인으로서도 그렇고 심지어 둘이 연달아 대통령을 했다. 2021년 사망(향년 89세).[26] 12.12 군사반란 후 신군부의 일원으로 (당시 50사단장으로 지방에 근무했기 때문에 12.12 군사반란 당일에는 빠졌으나, 반란이 끝난 다음날 새벽에 반란군에 합류했다. 다만 본인은 반란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노태우에 이은 명실상부한 하나회의 3인자였다.[27] 합동참모의장 시절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에 휘말렸으나 살아남았다. 평화의 댐 사기극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으며 국보위에서도 활동한 전력이 있다.[28] 하나회가 아닌 경쟁 사조직인 청죽회 출신이다.[29] 하나회. 작전통으로 유명했으며 12.12 군사반란 즈음부터 전두환, 노태우[274]와 갈라섰다. 2000년 사망(향년 68세).[30] 하나회 설립자 중 하나로, 박정희의 전속부관 출신으로 육사 11기 선두주자였으나, 윤필용 사건에 연루되어 강제 예편당했다. 손영길은 박정희의 총애를 바탕으로 초기에는 전두환보다도 더 잘나가는 실력자였다. 윤필용 사건에서 전두환, 노태우가 하나회 주도권을 쟁취하고자 자신을 배신하고 모함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전두환이 이 사건에서 윤필용과 손영길이 숙청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여러 정황으로 확인된다.[수석입학] [대통령상] 수석졸업자다.[33] 육사 11기 수석졸업자. 비하나회로 야전군인이 아닌 기술관료에 가까운 인물이다.[34] 윤필용 사건으로 강제 예편되나 후에 친구 전두환이 집권하자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고 민정당 사무총장을 역임했다.[35] 12.12 군사반란 당시 휘하 특전사 1공수여단을 동원해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유혈 점령한 반란군 1등 공신으로 전두환의 충복으로 전두환 정권에서 영화를 누렸다.[36] 12.12 군사반란 참여자이나 반란 당시 휘하 20사단이 서울로 출동하지 않아 후일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처벌을 피했다. 본인은 전두환의 명령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37] 하나회. 12대 총선 직후 야권이 약진하자 전두환을 위해 국회를 해산하려는 친위 쿠데타를 계획하려 한 전력이 있다.[38] 12.12 군사반란에 참가했으나,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유혈 점령한 박희도의 1공수,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유혈 체포한 최세창의 3공수와 달리 당일 장기오의 5공수는 효창 운동장에서 예비대로 대기했다. 그래서 다른 멤버들에 비해 비교적 한직을 맡았고 중장으로 예편했다.[39] 하나회 12기의 실세인 쓰리박(박세직, 박준병, 박희도)의 일원으로 이 중에서 가장 선두주자였으나, 실언 때문에 전두환의 진노를 사 강제 예편당했으나 후에 용서 받아 정계에 다시 중용되었다. 심지어 12.12 군사반란에 참가한 인사도 아니어서 정권에 상관없이 중용되었다.[40] 12.12 군사반란 당시 휘하 특전사 3공수여단을 동원해 직속 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유혈 체포한 반란군 1등 공신. 전두환의 충복으로 전두환 정권에서 영화를 누렸다. 반전으로 부친은 의열단광복군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다.[41] 12.12 군사반란 당시 경호실장 직무대리로 경호실 병력을 무단으로 동원해 최규하 대통령이 있는 총리공관을 접수했다. 이후 승승장구하나 국방위 회식 난투극의 책임을 지고 예편, 정계로 진출했다.[42] NO.1 경호실장 차지철이 김재규에 피살, NO.2 경호차장 이재전이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 NO.3 경호차장보 김복동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좌천되는 바람에 NO.4인 정동호가 3계급을 뛰어넘어 경호실장 직무를 대리하고 있었다. 경호실장 직무를 맡은 인간이 반란군 수괴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을 사실상 감금했다.[43] 12.12 군사반란 당시 허삼수와 함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했다. 납치 중 같은 편의 오인사격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44] 12.12 군사반란 당시 하나회 측에 섰던 인물.[45] 베트남 전쟁 당시 수도사단 제1보병연대 제2보병대대 제5중대장 참전. 비호6호작전 맹호5호작전의 영웅. 을지·충무무공훈장 및 미국 은성무공훈장 수훈. 12.12사태 당시 수경사작전참모. 말년 신군부에 의해 한직을 맴돌다 소장 전역. 그나마도 12.12 이후 수경사령관으로 온 노태우가 그를 상부에다 적극 추천해서 장성 진급을 시켜줬다고 한다.[대통령상] 수석졸업자다.[47] 자신의 잘못을 비판하는 장태완(갑종 출신)을 자신은 정규 육사 출신이라며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대놓고 깔보며 항명했다. 전두환의 하나회와 장태완의 악연의 장렬한 시작이었다.[48] 노태우의 9공수여단장, 9사단장 재임 시절 직속 부하들로 이루어진 군맥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크게 중용되었다.[수석입학] [대통령상] [대표화랑상] 공부로 뽑는 다른 상과는 달리 주변의 종합평가를 통해 뽑은 기수의 얼굴. 육군사관학교 교정의 백년탑에는 4년제 정규 육사인 11기부터가 배출한 생도들 중 대표적인 이름들이 동판에 새겨져 있는데, 각각 졸업식 때 대통령상을 받은 수석 졸업자와 육사 생도의 ‘꽃’인 대표화랑이다. 대표화랑은 생도 시절의 성적, 체격, 근무생도 활동 들을 고려해 동기생 가운데 가장 촉망받는 사람을 대표화랑으로 뽑기 때문에 동기생의 간판이자 얼굴이다.[52] 17기의 후임 기수 대장들인 1군사령관 조남풍, 3군사령관 구창회는 모두 하나회 핵심 멤버여서, 부득이하게 동기인 김동진을 올렸다.[53] 휘하 9사단의 불법 출동 소식을 접한 3군사령관 이건영이 전화를 걸어 사실이냐고 묻자 그런 일 없다고 여러 번 발뺌하고, 출동하지 말라고 재차 지시했음에도 계속 출동시켰다.[54] 당시 인사참모부장-수방사령관-기무사령관-3군사령관이라는 그야말로 최강 진급 코스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차기 참모총장으로 매우 유력했다.[55] 하나회 대숙청의 시작이었던 김진영 참모총장 전격 해임 후 약 1년 뒤인 1994년 4월 해임되었다.[56] 통상 3차만 넘어가도 진급하기가 힘든데 무려 7차다. 독보적인 기록.[대표화랑상] [58] 확실하진 않으나 상황실에서 반란군에 협력한 정황이 있다.[59] 본인은 하나회가 아니라고 주장해서 하나회 1차 숙청 때 살아남아 대장으로 진급했으나 결국 40일만에 예편되었다. 본인은 하나회가 아니라고 하지만 12.12 군사반란 이후 무척 애를 써 뒤늦게 하나회에 가입한 정황이 있다.[대표화랑상] [61] 문민정부 때 가장 군부에서 잘 나가던 인물이었다. 하나회 숙청 이후 비하나회 장성 중에서는 가장 높은 축에 속했기 때문.[62] 아들도 장군이다. 3사단 18연대장과 국방부 대북정책관, 미8군 부사령관을 지낸 조용근 준장이다.[63] 하나회라는 설도 있고 아니라는 설도 있으나, 이른바 노태우의 9-9 인맥에 속해있던 장성으로 어찌 되었던 줄을 잘 서서 잘나간 사실은 같다.[대표화랑상] [65] 하나회 20기 멤버로 거론되나 오늘날까지 진위가 불분명하다.[66] 군복무의 대부분을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복무한 특이한 경력이 있다.[67] 이현부 예) 중장의 육사 동기이지만 진급이 늦어서 대부분의 보직을 물려받았다. 기갑 병과 최초의 중장이다.[68] 하나회 출신으로, 11군단장 임기 끝나고 바로 전역했다.[69] 12.12 군사 반란 관련자이나 하나회 멤버는 아니다.[70] 군소 정당을 차려 기호 9번으로 출마하여 유명해졌다. 대선에서는 최저득표율로 낙선하는 굴욕을 겪었다.[71] 1980년 12월 29일의 추운 겨울이였다.[대표화랑상] [대표화랑상] [74] 당시 중령이던 보좌관이 정해일 소장(육사 46기)이다.[수석입학] [대통령상] [대표화랑상] [78] 건군 56주년(2004년)[79]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인한 시장직 상실.[80] 박근혜 정부 시절 역임[수석입학] [대통령상] [83] 항작사령관 재임시절인 11년 8월 공금 유용 혐의로 집무실이 압수수색된 적이 있다. 횡령혐의가 인정되어 교도소에서 형을 살았다. 국방비를 횡령하여, 예비사돈 줄 도자기그릇과 골프웨어를 산 이력, 맞후배에게 횡령죄를 대신 뒤집어써주면, 재대후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한 내용이 법정에서 밝혀져 실형을 면하지 못하였다. #[84] 최익봉 특전사령관이 여군하사 성군기 문제로 보직해임 당했을 때 특전사 부사령관 윤광섭 장군이 직무대리를 했었다.[85] 육사 6기이자 백골부대장으로 유명했던 박정인 장군의 자서전에서는 육사 6기는 5.16 쿠데타에 참여하지 않았고, 박경원 같은 유능한 장군이 일찍이 공직분야로 차출되는 바람에 대장을 배출하지 못했다고 써져 있다. 또한 육사 5기와 육사 8기가 주축이 된 5.16이기 때문에 육사 6기는 찬밥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86] 특별경계태세 기간 중 음주 논란으로 전역조치됐다.[87] 육군사관학교 여생도 성폭행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88] 1991년에 방공포병이 공군으로 전군함에 따라 공군으로 전군되었다.[89] 재임 도중이던 2010년 육군기계화학교 K-21 장갑차 사고로 인해 전역했다.[90]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91] 참고로 하나회의 마지막 생존자이다.[92] 문재인 정부에서 역임.[93] 문재인 정부에서 역임.[94] 문재인 정부에서 역임.[95] 재임 중 제23보병사단장 시절 성추문 사건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해임[96] 기무사령관을 소장 계급으로 지냈다.[97] 아나운서 강지영의 부친이다.[98] 역임 후 2014년 7월 후배들을 위하여 명예퇴직하였으나 5개월 만인 2014년 12월 26일 새벽에 급성간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56세.[99] 군 특채 출신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 1급 공무원.[100] 독일 육사 유학생 출신이다. 기갑 병과 역사상 최초의 대장이자 사상 두번째로 구속수감된 대장. 이분의 갑질사건으로 인해 공관병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101] 박지만 EG회장과 중앙고 동창이다. 기무사령관 맡기 전에 반년 정도 육군인사사령관도 지냈다. 3군 부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전역 후 세월호 불법사찰관련 조사를 받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102]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시절에 수석부관을 지냈다. 남재준 총장이 당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운 탓에 진급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얘기가 장교단 내에서 돌았다. 남총장이 국정원장이 되자 부사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고대령을 국정원 국방보좌관(본래는 준장)으로 불러들였고 2013년에 7차 진급으로 준장을 달았다. 이 해에 육사 43기가 처음으로 준장에 진출했다. 본래는 3차 진급 이상 떨어지면 진급을 시키지 않으나 관행에서 벗어나 4차 이상의 진급 대상자들도 포함하게 되었다고 한다.[103] 1992 제7기동군단 헬기추락 사건으로 순직하였다.[104] 1981년 졸업과 동시에 방공포병 소위로 임관하였으나 1985년 3월 교통사고로 후유증을 얻었고, 결국 5년차인 1986년 3월 대위로 예편했다.[105] 당시 재수생과 삼수생의 비율이 동기생의 절반을 넘었다.[106] 알자회로서 대장진급후 1년도 안 되어 2기수 후배인 김병주 장군에게 이임하였다.[107] 정권이 바뀌면서 대장진급이 유력했으나, 1기수 후배인 김용우한테 물먹었다.[A] 청주고등학교(51회) 졸업[109] 현역임에도 국방부 정책실장을 맡았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THAAD보고 누락에 대한 책임으로 직무배제되고, 얼마 후 전역했다.[110] 전역 후에 2016년 계엄령 모의사건의 책임자로서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2023년 3월 29일 자진 귀국하였다.[111] 육사에서 생도 간 성폭행 사건으로 육사교장 박남수 중장이 자진전역하고, 후임으로 육사 교장을 임명하였는데 이례적으로 소장계급의 고성균 장군이 맡게 되었다.[112] 3사단장까지는 진급코스를 잘 밟았으나 그 다음 보직인 합동참모대학 총장때부터 진급이 꼬이기 시작했으며, 총장 역임 후 육군종합행정학교장으로 발령받음으로써 중장 진급에 완전히 밀리게 되었다.[113] 원주고등학교(22회) 졸업[114] 노크귀순 사건으로 인해 22사단장직에서 보직해임 이후 사이버사령관을 맡았는데, 국정감사 때 김진태 의원에게 '작전에 실패한 군인'이라는 말을 들었다.[A] 청주고등학교(51회) 졸업[116] 육군 內 동명이인으로 3사 24기인 예비역 준장이 있다. 다만 그 박찬웅 준장은 3군지사 사령관과 1군지여단장을 지냈었다.[A] 청주고등학교(51회) 졸업[대통령상] [119] 2000년 6월 27일 경기도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작전에 나섰다가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었다. 수색대대장(중령)으로 후임 대대장(설동섭, 육사 40기, 중령 예편)에게 임무 인수인계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후임 대대장이 지뢰를 밟았고, 함께 있던 중대장도 관통상을 입었다. 이 대령은 두 사람이 쓰러진 곳까지 갔다. 수년 동안 수색작전을 하며 파악해 놓은 이 지역 지리에 대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음하는 후임 대대장을 업으려고 쪼그려 앉는 순간 그의 발 아래에서 다시 지뢰가 폭발했다. 수도 없이 다녔던 길이라 지뢰가 없다고 확신했던 곳이었다. 전날 비가 왔지만 지뢰가 떠내려 올 정도는 아니었다. 북한군이 우리 군 동선을 파악해 의도적으로 지뢰를 매설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이 대령은 두 다리를 잃었다. 다리를 잃은 뒤 이 대령은 2년 반 동안이나 치료를 받았다. 전역할 줄 알았지만 군은 하반신이 절단된 그에게 정년까지 복무토록 했다. 2015년 9월 전역.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자로 나왔다. 그리고 이번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비례대표는 여자는 홀수, 남자는 짝수 순번이기 때문에 이종명 당선자는 사실상 비례 1번이나 마찬가지였다.[120] 여기에 헌병병과 선두주자 선종출 예)준장까지 포함하면 병과별 1차 진급자들 네명이 날아간 셈이다.[121] 재직 중에 부사관 성추행 혐의로 구속되었고, 신분이 박탈되었다.[122]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당시의 사단장. 본인은 병영 생활 개선에 상당히 노력을 기울였지만 안타깝게도 사고가 터졌다. 이후 한직인 국군복지단장을 역임 후 전역하였다.[B] 수원 수성고등학교(23회) 졸업.[124] 남영신 장군이 특전사령관에서 기무사령관으로 보직을 옮기면서 육군특수전사령관 직무대리를 맡았음. 참고로 병과는 포병임.[125] 공병병과 출신[126] 대령 때는 육군종합군수학교 전발처장, 국군수송사령부 항만운영단장을 역임하였다.[127]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당시 보고누락으로 경질되었다.[128] 염라대왕이라는 별명이 있을정도로 성격이 불같았다고 함[129] 경희고등학교(18회) 졸업.[국무총리상] 차석 졸업자다.[131] 알자회[132] 아내인 김귀옥(여군 31기) 대령이 2014년에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소장인 본인과 같이 장관급 장교에 오름에 따라 창군 이래 첫 장성 부부가 되었다.[133] 알자회[134] 빠른 63년생으로 국군 통신분야 전문가다.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135] 임기제 준장[136] 대령 진급을 무려 7차에 성공했다.[137] 임관년도는 육사 40기와 같은 1984년이지만 학사학위 위탁교육으로 인해 육사 42기와 임관동기로 간주된다. 중장은 없고 장달수 장군이 소장까지 진급했다. 3사 22기에서는 이진성 장군, 3사 23기에서는 허강수, 정철재 장군이 중장으로 진급했다.[138] 중장은 없고 박신원, 정재학 장군이 소장까지 진급했다. 학군 25기에서는 박상근 장군이, 학군 26기에서는 박양동 장군이 중장으로 진급했다.[139] 중위부터 대장까지 모든 진급을 1차로 했다. 마법의 을지무공훈장...[140] 강신명 경찰청장과 고등학교 동창이다.[141] 육군공병학교장과 더불어 공병에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책이다.[142] 공병병과 진급 상한선이다.[143] 양조부는 제주 4.3사건 당시 남로당원 부하에 암살당한 박진경 대령, 부친은 준장으로 예편하고 11-12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익주 씨. 3대가 군인 집안이다.[144] 2018년 4월 30일 예편했으나 계약직 2급 군무원 신분으로 다시 국군체육부대장에 부임하였으며, 2021년 12월 퇴임하였다.[145] 충북 음성군 출신으로 관성초등학교(7회), 생극중학교(9회)를 졸업했다.[146] 이 대령은 예산중학교 1학년인 1976년에 캐슬린 스티븐스 씨의 제자이기도 하였다. 참고로 캐슬린 스티븐스 씨는 08~11년에 주한 미국대사로 재직했었다.[147] 이 쪽도 동기인 김경수 예)소장과 더불어 공무원으로 재임용되었다.[148] 하지만 공관병 폭행으로 보직해임당했다.[149] 국군복지단장직이 군무원 보직으로 바뀌면서 군무원 신분으로 재임용되어 단장직에 복귀했다.[150] 통영고등학교(37회) 졸업[151] 남대전고등학교(7회) 졸업[152] 김천고등학교(송설 47회) 졸업[153] 순천고등학교(32회) 동기생으로 김종삼 해군 중장이 있다.[재임] [대표화랑상]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158] 임기제 진급[159] 공병병과에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책이다.[임기제] 2022년 3월 31일에 열린 준장 진급자 삼정검 수여식 당시 김 준장이 있었는데, 이후 같은해 5월 인사에서 동기인 박정환이 대장 진급 및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걸 보아 임기제 진급으로 추정되며, 준장 연령정년이 58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2023년 중으로 퇴역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래 교수부장은 임기 끝나면 은퇴하는 자리다.[수석입학] [대표화랑상] [대통령상] [164] 군법무관, 군의관 한정. 일반 병과 준장은 2016년 10월에 나왔다.[대통령상] [참모총장상] 5등 졸업자다.[167] 배우 이성재의 형.[168] 군의관 한정. 일반 병과 준장은 2017년 12월에 나왔다.[국방장관상] 3등 졸업자다.[수석입학]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대표화랑상] [174] 부안고등학교(19회) 졸업[175] 배우자 정경화 대령(간호사관 32기)이 2023년 11월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창군 이래 두 번째 장성 부부가 되었다. 첫 번째는 육사 41기 이형석 예비역 소장과 여군사관 31기 김귀옥 예비역 준장이다.[176] 대구영신고등학교 졸업[177] 춘천고등학교(60회) 졸업[178] 대전고등학교(67회) 졸업[국방장관상] [180] 육사 윗 기수의 소장 3차 진급자 수를 보면 46기 1명, 47기 2명, 48기 3명 정도로 49기가 확실히 많은 편.[대표화랑상]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합참의장상] 4등 졸업자다.[수석입학] 수석입학자다.[186] 윗 기수를 보면 보통 4~5명이다. 물론 2023년 10월 군 인사에서 대장급이 물갈이되며 그 아래에도 낙수효과가 미친 것도 무시할 수 없다.[대통령상] [188] 이런 식으로 군에 실망한 졸업생이 대거 전역한 비슷한 사례가 일본에도 있었다. 1991년 방위대학교 35기생들은 걸프 전쟁 당시 자위대 파견을 중심에 둔 일본 사회의 여러 논쟁 속에 자위대에 대한 실망을 표하며 임관을 포기한 인원(방위대는 졸업 후 임관포기가 가능함)이 평년보다 많았다. 졸업생 494명 가운데 무려 95명이 임관을 포기했다. 관련기사[합참의장상] 4등졸업[대표화랑상] 공부로 뽑는 다른 상과는 달리 주변의 종합평가를 통해 뽑은 기수의 얼굴. 육군사관학교 교정의 백년탑에는 4년제 정규 육사인 11기부터가 배출한 생도들 중 대표적인 이름들이 동판에 새겨져 있는데, 각각 졸업식 때 대통령상을 받은 수석 졸업자와 육사 생도의 ‘꽃’인 대표화랑이다. 대표화랑은 생도 시절의 성적, 체격, 근무생도 활동 들을 고려해 동기생 가운데 가장 촉망받는 사람을 대표화랑으로 뽑기 때문에 동기생의 간판이자 얼굴이다.[191]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근무하던 2003년 5월 20일, DMZ 수색작전 도중 군견이 미확인 지뢰를 건드려 폭발사고가 일어났고, 본인도 몸에 지뢰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지만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중대원들을 대피시켰다.[대통령상] [193] 법무병과이기에 22년 후반기 동기들보다 2년 빨리 준장에 진급했다.[194] JSA 경비대대장 재임 당시 JSA 북한군 귀순 사건에서 북한군 병사를 직접 몸을 이끌고 나가 구해온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러 화려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준장 1차 진급에 실패했다.[수석입학] [수석입학] [국무총리상] [198] 기사[199] 2007년에 미 보병학교 고등군사반을 수석졸업했다. 기사[200] 윤비나 방첩사 법무실장은 예외적으로 2024년 4월에 일찍 대령으로 진급했다.[수석입학] [202] 원래 중령급 자리이나 임기가 안 끝난 전 실장을 일찍 교체 및 계급 진급한 상태로 보직을 차지했다.https://youtu.be/xGZVUuXKsyUhttps://youtu.be/3GavW76OoPc[수석입학] [204] 이순진 前 합동참모의장의 아들이다.[대통령상] [대통령상] [대표화랑상] [수석입학] [수석입학] [수석입학] [수석입학] [수석입학] [213] 5년차 전역으로 전역했고, 예비역 진급을 했다.[수석입학] [215] 외국수탁생 합치면 240명[수석입학] [대통령상] [대표화랑상] [219] 64기 조홍래 생도 이래 16년만에 대통령상과 대표화랑상을 동시에 수상했다.[준장] [수석입학자] 수석입학자이자 수석졸업자.[소장] [대령] [소장] [소장] [중장] [대장] [수석입학자] [대장] [소장] [대장] [중장] [중령] [중령] [대령] [대령] [소장] [중장] [대령] [대장] [수석입학자] [중장] [대위] [대령] [대장] [수석입학자] [수석입학자] [중장] [대위] [중장] [대령] [준장] [준장] [소장] [대령] [대령] [중장] [수석입학자] [소장] [준장] [소장] [대령] [준장] [중령] [265] 역대 최초로 대통령상, 대표화랑상을 동시 수상[266] 장기군의관[267] 여생도로서는 최초로 수상, 장기법무관[268] 여생도로서는 두번째로 수상[269] 여생도로서는 세번째로 수상[270] 여생도로서는 네번째로 수상[271] 여생도로서는 다섯번째로 수상[272] 여생도로서는 여섯번째로 수상[273] 역대 두 번째로 대통령상과 대표화랑상 동시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