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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송호성 | 제2대 이응준 | 제3대 김석원 | 제4대 유승렬 | 제5대 백선엽 | |
제6대 최영희 | 제7대 백선엽 | 제8대 강문봉 | 제9대 박임항 | 제10대 김동빈 | |
제11대 임충식 | 제12대 박경원 | 제13대 류흥수 | 제14대 박준윤 | 제15대 김종순 | |
제16대 이병형 | 제17대 윤태호 | 제18대 박영석 | 제19대 최석신 | 제20대 문흥구 | |
제21대 박학선 | 제22대 김봉수 | 제23대 우종림 | 제24대 전두환 | 제25대 최연식 | |
제26대 황관영 | 제27대 김을권 | 제28대 최평욱 | 제29대 김동진 | 제30대 김상준 | |
제31대 이충석 | 제32대 길형보 | 제33대 강종필 | 제34대 이강언 | 제35대 조남진 | |
제36대 송영근 | 제37대 송기석 | 제38대 김경덕 | 제39대 정승조 | 제40대 황중선 | |
제41대 이성호 | 제42대 신현돈 | 제43대 서형석 | 제44대 하창호 | 제45대 장경수 | |
제46대 이종화 | 제47대 박정환 | 제48대 김홍석 | 제49대 강호필 | 제50대 서진하 | |
제51대 최창수 | 제52대 양진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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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군단 부군단장 하창호 Ha Chang Ho | |
학력 | 강원사대부고 (7회 / 졸업) 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 / 석사) 목원대학교 (정책학 / 박사)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83년 ~ 2019년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39기) |
최종 계급 | 소장 (대한민국 육군) |
최종 보직 | 제5군단 부군단장 |
주요 보직 | 육군교육사령부 전력발전부장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 제1보병사단장 육군본부 군구조개편차장 제2작전사령부 검열과장 육군사관학교 부생도대장 제35보병사단 제105보병연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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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육군 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후 보병작전직능으로 소위로 임관후, 중부전선 백골부대 소대장을 시작으로 동부전선과 동서해 해안등지에서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직을 수행하였으며, 동부전선 GOP대대 작전장교, 3사단 작전참모, 작전보좌관, 18연대 작전과장, 합참전력기획부 실무자, 육사생도부대장, 2작전사 전투지휘 검열과장, 6군단 참모장, 육군 군구조개편차장에 이어 1사단장과 합참전력기획부장 육군교육사령부 전력발전부장, 5군단 부군단장을 끝으로 소장 계급으로 예편했다.2. 생애
경기광주중학교, 강원사대부고(7회)에 이어 1979년 육군사관학교 39기로 입학 및 1983년에 육군사관학교(39기)를(컴퓨터공학사) 졸업하고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 야전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했다.독실한 가톨릭 신앙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가톨릭에 입문, 대천사 미카엘이라는 영세명을 받았다. 참신앙인이자 참군인의 길을 걸으신 안중근 의사를 롤모델로 삼고자 하였다. 전후방 각지에서 야전 군인으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도 국방대학교 군사전략 석사 과정과 군사영어반에서 수학하였다. 육군대학 수학 중에는 국무총리 우등상을 수상하였고, 제대별 지휘관 임무 수행 중에는 다수의 전투력 측정에서 최우수 부대상을 수상하는 등 전투 임무 수행 능력 향상에 정진하였다. 현역 전 기간 특등사수와 특급 체력자에게 부여하는 특급 전사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백골부대 대대장 시절에는 국방부 최우수 지휘 성공 지휘관 사례자로 선정되었다. 군사 전략과 작전, 전력 소요 기획 분야에서 실무자 및 과장, 부장 등 다양한 보직을 수행하였다.
본질적 철학과 분별력을 중시하는 군인으로, 도덕적 용기를 지닌 안중근(도마)과 이순신을 존경하고 닮고자 노력한 군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부하들에 대한 본질적인 리더십 발휘를 통해, 입대하는 장병들에게 목표 지향적인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적용하여 수백 명의 병사들이 고등학교 검정고시 자격을 획득하였고, 수천 명이 각종 자격증을 획득하였다. 군 복무 기간이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기간으로 인식한 장병들의 자긍심과 자발적인 참여로 높은 부대 전투력 수준과 선진화된 병영 문화를 조성하여 병영 부조리나 사고 없이 병사들이 자신 있고 당당한 부대를 육성하였다.
평소 상급자에게도 본질적 철학과 분별력을 바탕으로 소신 있는 언행을 하여 그를 깊이 신뢰하는 지휘관과, 반대로 그런 행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상급자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본질적 철학을 바탕으로 소신 있는 언행을 전역 때까지 실천했다. 그를 잘 아는 선배나 동료는 그렇게 소신 있게 군 생활을 하였음에도 소장까지 진급한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군대가 제대로 된 군대였다는 증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6월에 시행된 전역식 행사 때, 전역사를 하는 동안 장병들을 연병장 잔디밭에 앉혀 듣도록 한 것은 그의 내면에 형성된 본질과 분별력을 통한 부하 사랑의 한 단면이다. 군 복무 중 만난 장병들과 부모들이 추억을 회상하며 올린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3. 주요 직위
4. 여담
- 키가 183cm이고 다리도 길며 어깨도 굉장히 넓어 직접 마주치면 굉장히 거대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별명이 몽키 D 가프였다.
- 3사단 대대장 시절, 주말 면회를 오는 여자친구들과 외박을 허락해 달라는 병사들의 건의를 듣고, 전 병력을 달이 뜬 밤에 연병장에 집결시킨 후,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면서 "모두 눈을 감아라. 지금 자기 여동생이 전화가 왔는데, '오빠, 나 지금 군에 있는 남자친구 면회하러 철원에 왔는데, 자고 가도 될까?' 했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병사들이 모두 "당장 집으로 가라"고 답했고, 그 후로는 더 이상 건의가 없었다고 한다.
- 여군들이 부대에 차츰 전입되면서 이성 간의 문제가 여러 부대에서 발생하여 이슈가 되자 전 장병과 여군들에게 "나는 여러분을 여성으로 대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입대한 군인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전 장병은 부대와 전투원의 임무 수행에 지장을 주는 행위는 스스로 판단하여 금지하라"고 지시하였는데, 그 결과 1사단장 재임 당시 이성 간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 전역 후 목원대학교에서 "육해공군 창설부터 현재까지 참모총장 취임사에 나타난 메타포 분석을 통한 각군 무기체계 발전 비교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안보학 객원교수(정책학 박사)로 활동했다. 학생들에게 선진국 대학에서 시행하는 하브르타식 교육 방식을 적용하여 학생들이 사명감을 지닌 자긍심 있는 희망 리더로 성장하도록 이끌었으며, 매 학기 강의 평가에서 최우수 강사로 선정되었다..
- 1사단장 재임 기간에는 1사단의 위수 지역을 상급 부대인 1군단과 협의하여 확장한 공로가 있다.
- 1사단장 시절에 휴가를 상당히 많이 보냈다. 그렇다고 조건 없이 휴가를 퍼주는 것은 아니었고, 신상필벌이 확실한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1사단 휘하 아무 부대를 기습적으로 방문 후 데프콘 상황을 발령하여 수행을 잘 하면 포상휴가를 주고, 수행을 못할 경우 해당 부대 부대장과 주임원사가 며칠간 연병장에서 군장을 돌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덕분에 하창호 소장이 취임 후 2달이 되지 않아 1사단 모든 부대가 데프콘 상황을 완벽하게 수행했고, 그만큼 포상휴가도 자주 주어졌다. 다른 사례로는 저녁에 사복 차림으로 부대를 기습적으로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단장임을 알아보고 부대 문을 그냥 열어줄 경우 부대장과 주임원사가 군장을 돌았고, [2] 수하 실시 등 경계근무를 확실하게 한 경우에는 해당 초병에게 포상휴가를 주었다.
- 휴가를 받고 집으로 가던 병사가 파주역에서 사복 차림으로 다니던 사단장 부부를 알아보고 경례를 크게 했는데, [3] 이때도 당연히 포상휴가가 주어졌다. 그 외에도 우렁찬 경례를 한다거나 모범적인 자세를 취하면 그 자리에서 포상휴가를 주는 경우도 많았다. 또, 예하대대에서 훈시 도중, 탈북자가 남파공작원일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김정일이나 김정은 개새끼 해보라고 합니다!"라고 외친 병사가 포상휴가를 받는 사례도 있었다.
- 최전방 순찰 중 한 소초에 기습 방문했는데, 사단장을 보고 놀란 병사 두 명이 도망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를 본 하창호 사단장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려가 그들을 잡고 "너희들 사단장이 무섭냐? ㅎㅎ"라며 웃으며 말하자, 그 병사들은 뒤늦게 우렁찬 경례를 했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한 군장 엔딩이었다.
- 상당히 군인다운 자세와 군기를 중시했던 인물이다. 훈련과 부대 관리도 빡세게 했던 편.# 단체 경례를 할 때는 "나는 성공한다! 성공한다!"를 외치도록 하는 등 장병들의 자긍심 향상에 관심을 기울였다.
- 사단장 시절, 병사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좋은 음악을 부대에서 자주 틀어 부대 분위기를 밝게 하고자 노력했다. 임재범 팬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 보병 출신으로 작전 직능이다. 합참에서 육해공군 무기를 기획하는 전력기획부장을 역임했다. 육해공군 작전사 및 무기체계를 현장 점검했으며, 워싱턴 항모, 핵잠수함, 이스라엘 작전 부대 현장 점검 등을 통해 무기체계 분야에 대한 이론과 현장 경험을 갖췄으며, 백령도와 연평도 피격 현장 등을 방문했다.
- 전역 후, 무기체계 관련 분야에서 중요한 직책에서 근무한 관계로 방산업체 취직 관련 권유가 있었지만, 후학 양성에 더 깊은 뜻을 두고 취업을 고사하였다.
- 합참 전력기획부장 시절 해군 전투함을 방문 탑승 시 배 가장 아래층에 있는 기관실에 내려가 부사관들을 격려하니 그들이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공군 비행단 방문 시에는 비상 출동 대기 조종사들을 반드시 찾아가 격려하였고, 예하 부대 순찰 시에는 항상 취사장과 초소 근무자, 영창과 교도소를 찾아가 격려했다. 전역 후에는 대전역, 동대구역에서 노숙자들에게 음식과 기부금을 전달하였고, 골프장에서는 그린 관리를 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께 감사와 기부금을 드리고 골프장 사장에게 그분들의 복지 개선을 당부하는 등 늘 어려운 분들에 대한 마음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