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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colbgcolor=#000><colcolor=#fff> 박경원 朴敬元 | |
출생 | 1897년 6월 24일[1] |
경상북도 대구군 서상면 덕산동 (現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 | |
사망 | 1933년 8월 7일 (향년 36세) ## |
일본 제국 시즈오카현 다가타군 하코네산 중턱 | |
직업 | 간호사 → 파일럿 |
가족 | 4남매 중 셋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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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의 여성 파일럿[2]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하지만 주로 일본에서 활동한 데다가 후술하는 친일 행적 때문에, 동 시기에 중국에서 항일 활동을 한 비행사 안창남과 권기옥에 비해 존재감이 크게 떨어진다.
2. 생애
1897년 경상북도 대구군 서상면 덕산동[3]에서 태어났다. 간호사가 되어 일하던 중 1925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다치가와 비행학교에 입학해 1927년 3등 비행사, 1929년에 2등 비행사 자격을 취득하여 여성 비행사로 활동하였다.도쿄-서울-평양-만주 루트의 동해 횡단 비행을 위해 1933년 8월 7일 하네다 공항을 출발했다가, 이륙한 지 50분 만에 교신이 두절됐다. 그 때 하코네의 측후소에서 폭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원인 모를 사고로 시즈오카현의 겐가쿠 산에서 추락사했으며, 반토막난 기체에 핸들을 꽉 잡은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 날은 안개가 꽤 끼어 있었다고 한다.[4]
3. 평가: 친일 행적 비판을 중심으로
1931년 자신의 비행기 청연(靑燕: 푸른 제비)[5]을 소유하는 과정에서 당시 일본 체신대신인 고이즈미 마타지로[6]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의 마지막 비행조차 일만친선 황군위문(日滿親善 皇軍慰問) 행사[7]였고, 하네다에서 이륙한 자신의 비행기에는 당연히 일장기가 걸려 있었다.이런 친일 행적 때문에, 일부는 "한국의 진정한 첫 여성 파일럿은 권기옥이지, 박경원은 절대로 아니다"라면서 꽤 비판하고 있다. 대한민국 공군에서도 당연히 권기옥만 인정한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비행을 접했지만, 주 활동 지역은 서로 정반대편이었다.[8]
4. 기타
2005년에 개봉한 청연(장진영, 김주혁 주연)이라는 영화가 박경원의 일생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이 영화랑 같이 박경원이 친일파라는 게 드러나서, 영화는 욕을 실컷 먹고, 제작사를 망하게 하고, 흥행도 참패하며 묻혔다. 당연히 장진영에게도 흑역사. 이 영화에 애착[9]을 가졌던 장진영은 그 여파로 인해 한동안 밖에 나가지도 못하다가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영화로 이듬해 재기하긴 했지만, 건강이 나빠져서 암투병까지 해야했고, 결국 2009년 9월에 세상을 떠난다.현재 시즈오카현 아타미시의 우메조노초에 있는 아타미 매화원의 한국 정원에 박경원의 추모비가 있으며, 1934년에 세워졌다. 1983년에는 아타미시 소재의 의왕사에서 ‘박경원 추락사 50주년 추모제’가 열렸다.
[1] 1901년은 줄인 나이로 비행학교에 들어가고자 4살 나이를 줄인 듯 하다. #[2] 한국인 최초로 "비행을 한 여성"은 독립군에서 실전을 치른 권기옥이다. 권기옥이 일본의 민간 비행사 자격을 취득한 비행사가 아닌 중화민국군의 훈련과정으로 비행했으므로 최초의 비행사가 아니라는 말도 있으나, 엄연히 비행학교(중국운남항공학교)를 졸업하고 비행사 자격증을 획득했으며 7,000시간의 비행기록이 있다. 비행사 취득일은 권기옥이 1925년 2월 28일로, 1927년 1월 28일에 비행사 자격을 취득한 박경원보다 2년 빠르다.(권기옥이 파일럿으로 활동할 때, 박경원은 이제 막 항공학교에 입학한 상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정희가 박경원보다 먼저 조종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정희가 다치카와 비행학교에 입학한 것은 박경원이 3등 조종사 자격을 취득하기 1달 전이었기에 이 또한 잘못된 정보다.[3] 現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4] 알다시피 시계 비행(VFR)시 안개가 낀 날에 항공기를 띄우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사실상 박경원은 자살행위를 한 것.[5] 일본어로는 '아오쓰바메'라고 읽는다. 프랑스제 샘슨 2 기종으로,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일보에서 취재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6]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 준이치로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야는, 원래 '사메지마 준야'였다. 마타지로의 유일한 친자식인 고이즈미 요시에와 결혼하면서 고이즈미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었고, 처가의 성씨를 따라 '고이즈미 준야'로 바꾸었다.[7] 구체적으로는 일제의 만주국 건국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식이었다.[8] 권기옥은 중국에서, 박경원은 일본에서 주로 활동했다. 사상도 사상이거니와 단순 활동 위치도 정반대였던 것.[9] 영화에서 묘사된 박경원은 적극적인 친일파라기보다는 비행사가 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오직 꿈만 쫓는 인물상이어서 단독 주연을 노리는 여배우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배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