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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19:06:01

이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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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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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9대 합동참모의장
이순진
李淳鎭 | Lee Soon-jin
파일:이순진.jpg
출생 1954년 10월 3일 ([age(1954-10-03)]세)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면 정동
(現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정리)
본관 영천 이씨
재임기간 제40대 제2작전사령관
2014년 8월 11일 ~ 2015년 9월 16일
제39대 합동참모의장
2015년 10월 7일 ~ 2017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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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1a24><colcolor=#ffffff> 종교 천주교 (세례명 : 가롤로)
학력 대구고등학교 (졸업)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 / 학사)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1] / 석사[2])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77년 ~ 2017년
임관 육군3사관학교 (14기)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
주요 보직 제2작전사령관
육군항공작전사령관
수도군단장
합동참모본부 민군심리전부장
제2보병사단장
육군부사관학교장
제2군단 참모장
제71보병사단 연대장
서훈 보국훈장 통일장 수훈 }}}}}}}}}
1. 개요2. 생애
2.1. 주요 경력
3. 평가4. 논란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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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예비역 육군 대장. 최초의 육군3사관학교 출신 합동참모의장이다.

2. 생애

1954년 10월 3일 출생.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면 정동(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정리[3])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14회)를 졸업했다. 1977년 육군3사관학교(14기)를 거쳐 보병 소위임관했으며, 이후 군 위탁생으로 선발되어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준장 때는 육군부사관학교[4] 제2군단 참모장, 소장 진급 후에는 제2보병사단, 합참 민군심리전부장, 중장 진급 후에는 수도군단, 육군항공작전사령관, 2014년 8월 3사 출신으로선 역대 3번째로 대장으로 진급하여[5] 제2작전사령관 등을 지냈다.
파일:/image/001/2014/08/11/PYH2014081108460005300_P2_99_20140811171107.jpg
육군 제2작전사령관 취임식 당시의 모습.
2015년 9월 3사 출신으로는 최초로 합동참모의장으로 지명되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 해군 대장 최윤희 제독의 후임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10월 7일 정식으로 제39대 합동참모의장에 정식 취임하였다.

당시 박선우 연합사 부사령관이 합참의장으로 영전하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졌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전에도 해군 출신 최윤희 의장을 지명하는 등 군 내 균형을 맞추기 위한 파격적인 군 인사를 단행해 왔기에, 그 흐름을 이어서 이번엔 역대 최초로 3사 출신인 이순진 대장을 의장에 임명한 것이다. 다만 좋은 소리만 있는 건 아니었는데 호남(광주) 출신인 박선우 대장을 제끼고 영남(대구)출신의 이순진 대장을 올려 호남 차별을 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3사 14기는 77년에 임관했으므로 임관 연도로만 따지면 육사33기, 학군15기와 임관 동기가 된다. 그러나 3사 14기는 77년 임관 이후 학사 학위 보수교육을 2년간 받았기 때문에 2년 늦은 육사 35기, 학군 17기와 차 상위 1차 진급을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6]
파일:/image/025/2015/10/08/htm_2015100814356213747_99_20151008131809.jpg

합동참모의장 취임식에서의 모습. 옆은 이임한 前 합참의장 해군 제독 최윤희 대장이다. 이순진이 합동참모의장에 오른 나이가 만 61살인데 이는 이 당시 기준으로 전군 최고령 군인으로, 육해공군을 통틀어 가장 나이 많은 군인이었다. 그래서 자네가 주임원사인가를 시전해봤자 형이 동생한테 "자네가 내 동생인가"라고 말하는 꼴밖에 되지 않을 정도이다.

2018년 공개된 계엄령 모의 사건에서 당시 국군기무사령부에 의해 배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문건에서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당시엔 장준규[7] 대장)으로 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는데, 이는 군령권(軍令權)이 합참의장에게 있는 현행법을 무시한 내용이라 기무사 주도의 친위쿠데타는 물론, 당시 합참의장이던 이순진 대장도 지휘 계통에서 기수열외 시키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순진 합참의장은 3사관학교 출신이었고, 평소 행실도 속물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8] 계획에서부터 배제된 것으로 추측되었다. 실제로 기무사가 이순진을 사찰하고[9] "성향상 계엄을 수행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라고 평가내린 문건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7년 7월 18일, 합참의장 퇴임 및 전역을 앞두고, 국방부장관 및 다른 주요 지휘관들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예방했다.

2017년 8월, 후임자가 정경두 공군참모총장[10]으로 정해지는 등 퇴역을 앞둔 시점에 북한이 미사일 발사 도발을 계속하여 말년까지 고생을 했다.



2017년 8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합참의장 이임과 동시에 3사관학교 생도 시절을 포함하여 42년간의 군 생활을 명예롭게 끝마쳤다.[11] 관련기사 관련영상 합참의장 이·취임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작은 거인, 순진 형님이라고 칭하면서,[12] "우리는 작은 거인 이순진 장군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찬사를 보내며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리고 40여 년 군생활 내내 한 번도 해외 여행을 가지 못한 이순진 장군 부부를 위해 딸이 거주 중인 캐나다행 비행기 왕복 티켓을 포상했다.

2018년 8월 문재인 정부 1차 개각에서 국방부 장관직을 제의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알려졌다. 그 결과로 후임 합참의장이었던 정경두 장군이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2020년 9월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방부 장관 유력 후보로, 청와대 방문설 등 이 전 의장이 거의 확실시 된것 처럼 거론되었으나, 국방부 장관은 서욱 전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3사 출신으로 군내에서 '훌륭하고 강직한 인품'으로 순수 야전 군인으로서 성실한 삶을 살아온 이 전 의장을 문 대통령이 각별히 좋아했다고 알려졌으나 '낙마'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것은 5.16 군사정변에 대한 과거의 발언, 지난 달 이후 불거진 김관진 전 안보실장의 재판 참석 문제 등 문 대통령과 다른 정치성향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 전 의장은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한사람으로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을 꼽아왔다고 한다.[13] 이에 대해 군내에선 이 전 의장이 정말 의리가 있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으나, 현 정권 핵심부에서는 매우 껄끄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14]다만 이 전 의장 본인은 낙마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말을 측근에 남겼다고 한다. 밤잠까지 설쳤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아 국방부 장관의 직이 매우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 듯 하다.[15]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성결대학교에서 교양과목을 강의하며 겸임교수 생활을 했다.

2021년 현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이사, 대구가톨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2.1. 주요 경력

3. 평가

우리는 작은 거인 이순진 대장의 42년 애국의 길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이순진 합참의장 전역식 축사 中

소대장 시절부터 실적이 우수했는지 1979년에 소대장을 마치고 바로 학군단에 파견되어[17] 활동했다. 과거 3사 출신에 대한 대우를 생각하면 당시 엄청난 엘리트였음을 짐작케 한다.

2사단장 재임 시절, 신교대 수료식에 참석해 250여 명이나 되는 훈련병들과 하나하나 악수하며 격려하기도 했으며, 출근길에 사단 주요 도로를 정비하던 병사들을 발견하고 자동차에서 내려 "수고한다"며 간식을 지급해준 일화가 전해질 정도의 덕장이었다. 이 때문에 사단 내에선 장교, 부사관, 병, 군무원 망라하고 그를 '순진이 형'으로 애칭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18] 또한 폭설로 새벽 4시~5시에 조기기상 후 사단 주요 도로를 제설하는 경비소대원들에게 운동복 차림으로 손수 탄 커피와 과자를 쟁반에 들고 걸어와 소대장을 포함한 모든 소대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역시 2사단장 시절의 이야기인데, 전역 전 휴가까지 반납하고 대대전술훈련을 실시한 모 중대장(대위)을 직접 불러서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참고로 그 중대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학군장교(군장학생) 40기 출신으로, 전역 후 노량진에서 행정고시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합격한 뒤 현재 서울시청에서 5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순진 장군님의 은혜 덕분에 공직생활 매우 잘 하고 있다고 손편지를 써서 합동참모본부에 전해 이순진 장군님의 안부를 여쭸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양구 고등학생 군인 집단 폭행 사건도 이때 일어났는데, 같은 양구지역에 위치한 21사단장이었던 장준규 소장과 협력하여 "양구군 내에서 아무것도 사지도, 이용하지도 말라"는 보이콧을 실시했다.[19]

수도군단 지휘관 시절에도 이 성품은 그대로라,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신병 휴가를 나가는 모 이등병이 안쓰러웠는지 타고 있던 체어맨에서 직접 내려 위병소 앞에 서있던 이등병의 짐을 자신이 직접 트렁크에 싣고 부대 근처 역까지 데려다 준 일화도 있다.[20]

또한 당시 군단 경비소대원[21]의 경험담 역시 이순진 군단장은 매일 출근할 때마다 위병들에게 격려와 함께 목캔디도 두어개씩 주고 가시고, 부인 또한 그에 못지 않은 인품의 소유자라 겨울철 위병소 바로 옆에 위치한 A공관 근처까지 눈을 쓸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공관병과 함께 나와 고생한다며 따끈한 홍차 혹은 커피와 함께 쿠키 세트를 나눠주셨다고 한다.

이 외에도 생일을 맞은 장병에게 직접 손 편지를 써주는 등 말단 병까지 신경 쓰는 지휘관이었으며, 공관에 있을 때에도 이미 있던 전담 조리병을 원대 복귀시키고 부인과 본인이 직접 식사를 챙겼다.

이후 2작사 사령관일 때에도 조리병 없이 공관병[22] 1명만 데리고 생활했으며, 그 공관병도 식사시간에는 인근에 있는 병사식당을 이용하도록 배려했다. 또한 이 사실은 이후 후임 2작사 사령관 부부의 갑질 사건이 폭로된 뒤 긍정적으로 재조명됐다.

이처럼 사병들에겐 한없이 인자했고 사병들과 작전을 책임지는 휘하 참모들에겐 엄격해 FM과 체력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합참의장 시절에는 합참 주임원사보다도 더 군경력이 오래된 인물이었으며[23] 전군 짬밥 1위, 즉 그 당시 기준으로 군대에 가장 일찍 입대한 사람이었다. 그가 합참의장에 임명되었을 당시 그를 제외하고는 1970년대에 입대한 현역 군인이 아무도 없었다.

4. 논란

5. 여담


[1] 국가안보정책 전공[2] 석사 학위 논문: 21世紀 安保環境 變化에 따른 韓國의 民軍關係 發展方向 (2002. 08.)[3] 김영만 전 군위군수도 이 마을 출신이다.[4] 지금은 소장 보직이나, 원래는 준장 보직이었다. 지금 부사관학교장은 소장으로 승격되었는데, 소장 보직을 1개 늘리고 싶어하던 육군이 부사관의 위상도 올려줄 겸 일을 진행했다는 후문.[5] 박영하(1기), 박성규(10기)에 이어 3번째 대장이다.[6] 이게 또 그럴 법도 한 게, 예전의 3사 출신들은 지금처럼 다른 대학교에서 2년을 교육 받고 입교해 2년 군사교육 받고 임관한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교해서 군사교육을 받고 임관했기 때문에 육사/학군보다 나이가 최소 2살 이상 어린 나이에 임관했다. 그래서 지금도 3사 진급은 육사 출신보다 2년 늦게 들어간다.[7] 후술할 양구 고등학생 군인 집단 폭행 사건 당시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했던 관계였다. 물론 핵심 사건의 주역인 알자회 소속이 아니기에 설령 되더라도 바지사장 취급될 가능성이 높았다.[8]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 문서에서 잠깐 언급되듯 이순진은 최소한 군인으로서의 바른 자질은 갖춘 인물이다.[9] 군 정보기관이 제복군인 서열 1위에 해당하는 합참의장을 계엄령 모의를 위하여 무단으로 사찰한 것이다. 그것도 조현천 당시 사령관은 이순진 장군의 고등학교 후배(이순진 대구고 14기, 조현천 대구고 18기)였음에도 선배를 사찰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했다.[10] 공교롭게도 이 분 또한 덕장으로 칭찬이 자자했다.[11] 참고로 대한민국 국군은 전 계급을 통틀어 40호봉까지밖에 없다. 한마디로 이순진 장군은 군인으로서 채울 수 있는 호봉을 모두 채운 셈이다.[12] '순진 형님'이라는 칭호는 과거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후술.[13] 김관진이 중장 2차 보직으로 합참에서 작전본부장을 하던 시절에 작전본부에서 과장을 맡던 사람 중 하나가 대령 이순진이었다.[14] 또한 이재수기무사령관의 장례식에 예비역, 현역 장성 중에서 혼자 다녀오면서 청와대 참모진의 반대가 극심했다고 한다.[15] 서욱 전 장관은 정권교체 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구속되었는데, 이순진이 임명되었다면 정권교체 후 서욱 대신 구속당하거나 사건 당시 청와대와 정면 충돌하거나 둘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고 어느 쪽이건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니 결과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장관 낙마가 정말로 득이었다.[16] 권오성 사단장의 국방부 정책기획관 영전에 따라 2008년 3월 12일부터 2008년 4월 4일까지 사단장 직무대리 수행.[17] 위탁교육을 받을 때 군인은 그 학교의 학군단 소속으로 배정한다.[18] 사실 소속이나 계급을 망라하고 친근한 상대를 '형, 동생, 선배님'으로 지칭하는 것은 군 내에서도 드문 일은 아니다. 본인도 이러한 애칭을 마음에 들어했다.[19] 차별 대우 경험자들은 통쾌하다는 의견이 절대다수였다. 그리고 이렇게 합심한 두 사단장은 이후 대장 진급에도 성공하여 각각 합동참모의장육군참모총장으로 예편했다.[20] 비슷한 일화가 제28보병사단에도 존재하는데, 이쪽은 80연대장이 아침에 기차역으로 뛰어가는 82연대 소속 이등병을 안쓰러워서 1호차에 태워준 경우다. 다만 이쪽은 휴가 가는 줄 알고 태워줬더니 탈영병이었다는 게 함정(...!)[21] 군단급 이상부터 헌병대가 아니라 따로 본부근무대에 편제된 경비소대가 위병소 통제를 맡는다.[22] 이 역시 전화 응대 등 행정 잡무만 시켰다.[23] 참고로 원사의 정년은 만 55세이며, 대장의 정년은 만 63세이다.[24] 이때 당시에 그를 앞장서서 공격한 의원들 중에 한 사람이 문재인이었는데, 그 이후 이순진 장군의 합동참모의장 이임식에서 대통령의 신분으로 참석하여 그가 그동안 해온 군생활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그간 이순진 장군이 가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위한 비행기표까지 선물함으로써 두사람의 인연은 다행히도 서로 훈훈하게 끝났다.[25] 처음에는 완전한 토박이는 아니었는데 2023년 군위군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며, 이제는 완전히 대구광역시 출신이다.[26] 육군항공학교장을 겸한다.[27] 정말 여담이지만, 계급이 대장인 군인이나 장관급 공무원은 공무로 해외 출장을 갈 경우 ‘공무원 여비 규정 여비 지급 구분표 1호 가목’에 포함되기 때문에 1등석 항공권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공무로 갔을 경우에만 한정이다. 이 장군과 부인이 캐나다 항공권을 이용할 시점엔 퇴역한 민간인 신분이므로 정황상 문 대통령의 사비로 제공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28] 창군 당시에는 김석원, 이응준, 신태영 같이 일본군/만주군 출신 장성들도 합류했는데 이들이 전후까지 한동안 군에 있었던지라 한직이지만 60대 장군들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계급정년, 연령정년 등이 생겨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29] 중장 - 대장을 1차에 진급한 신현돈 예비역 대장은 소장 진급을 2차에 했다.[30] 육사 35기 및 동 기수 2차 진급자: 류제승, 박남수, 방원팔. 3차 진급자: 임국선(학), 황인무, 김학주, 4차 진급자: 전동운, 한동주. 심지어 3차 진급 때는 36기에서 2명, 4차 진급 때는 36기에서 2명이 진급했다.[31] 이순진 장군의 중장 5차 진급 때에는 36기 3차 진급자 2명과 37기 1차 진급자 2명이 같이 진급했다. 사실상 진급 막차를 탄 셈.[32] 대장에 진급한 신현돈, 박선우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를 보면 황인무 육군참모차장, 방원팔 인사사령관, 전동운 군수사령관은 군단장 미역임 때문에 대장 진급이 불가능했다. 김학주 6군단장은 육사 출신이지만 천안함 사건 당시 합참 근무이력 + 후발주자였기 때문에 대장 진급은 무리였다. 임국선 7군단장은 무난했으나 소대장 미역임이 걸려 여기서 밀렸다. 류제승 8군단장은 하나회 이력이 있어 대장 진급까지는 무리가 있었다. 박남수 수도방위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장 시절에 터진 사건 때문에 전역했다. 인사자력 때문에 대장 진급이 불가능했던 황인무, 방원팔, 전동운, 임국선과 육사교장 시절의 사고 때문에 전역한 박남수를 빼면 비육사 출신인데다가 좋은 평가를 받던 이순진 중장의 대장 진급이 최선의 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