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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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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보병사단
第十五步兵師團
The 15th Infantry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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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산 이상 무
전투와 사람 중심 불패신화 승리부대!
창설일 <colbgcolor=#fff,#191919> 1952년 11월 8일
상징명칭 승리(勝利)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2군단
경례구호 필승
규모 사단
역할 군사분계선 중부전선(철원군, 화천군) 방위
사단장 소장 강현우(육사 50기)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사내면 삼일리[1]

1. 개요2. 역사3. 예하부대4. 출신인물
4.1. 사단장4.2. 장교/부사관4.3. 병
5. 특징
5.1. 근무환경5.2. 사단가5.3. 부대구호
6. 사건 사고
6.1.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6.2. 노승원 소령 성추행 사건6.3. 구상훈 이병 가혹행위 은폐 사건
7. 여담
7.1. 매체에서의 등장

[clearfix]

1. 개요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대한민국 국군 육군 제2군단 예하 제15보병사단. 상징명칭은 승리부대. 사령부는 강원특별자치도 화천에 위치하며 철원군의 최전방 GOP, GP를 지키는 철책사단이다.

GOP대대, 38, 39연대 예하대대와 수색대, 방공중대, 일부 포대는 철원에 위치해 있으며, 직할대 대부분과 각 여단본부 및 일부예하 대대들과 포대들은 화천군에 위치해 있다.

2. 역사

한국 전쟁 중에 창설된 승리부대는 강원도 고성지구 전투를 포함 한 10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부대로, '승리부대'라는 이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가는 곳 마다 승리한다." 는 의미로 부여했다고 한다.

1952년 11월 8일 제12보병사단과 함께 강원도 양양 전진리에서 38, 39, 50 보병연대를 기반[2]으로 창설되었고 이듬해 2월까지는 후방에 주둔하였으나, 5사단과 임무를 교대함을 시작으로 최전선에 투입되었다. 53년도부턴 1군단에 배속되었으며 직후 강원도 고성군 351고지에 배치돼 북한군을 상대로 351고지 전투 등 수차례 쟁탈전 끝에 현 위치를 고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 부근에 세워진 통일전망대 한 켠에도 이를 기리는 전적비가 있다.

이후 60년대에는 여주, 이천, 양평에 주둔하다 춘천시 오음리로 이동 후 2군단에 배속된 뒤 64년부터 현 화천 및 철원군 동쪽(근남면 일대)에 주둔 중이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27사단 여하 부대를 대부분 흡수함과 함께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승격되었다.

3. 예하부대

파일:제15보병사단 부대마크.svg
제15보병사단의 예하부대
제38보병여단 제39보병여단 제50보병여단
포병여단 신병교육대
※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3.1. 사단직할대

3.2. 제38보병여단 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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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39보병여단 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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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50보병여단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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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포병여단 명포

3.6. 신병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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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출신인물

4.1. 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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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정석
제2대
백인엽
제3대
오덕준
제4대
최영희
제5대
김병휘
제6대
박기병
제7대
이명재
제8대
조재미
제9대
유양수
제10대
이민우
제11대
최민섭
제12대
류병현
제13대
강원채
제14대
이범준
제15대
이남구
제16대
김학순
제17대
박완식
제18대
방덕제
제19대
김홍한
제20대
이기백
제21대
최문규
제22대
여운건
제23대
홍순철
제24대
민찬기
제25대
최권영
제26대
김현태
제27대
미상
제28대
이종규
제29대
이선민
제30대
김창호
제31대
김선홍
제32대
김영한
제33대
김종태
제34대
미상
제35대
권오성
제36대
이용광
제37대
김영식
제38대
조국제
제39대
최영철
제40대
안준석
제41대
전동진
제42대
권영현
제43대
김경중
제44대
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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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15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이정석 예) 준장 사단장
2대 백인엽 예) 중장 군영 제1군단장, 제6군단장, 특무부대장 선인재단 이사장
3대 오덕준 예) 중장 군영 육군교육사령관 농업협동조합 회장
4대 최영희 예) 대장 군영 육군참모총장, 연합참모본부 총장 국회의원
5대 김병휘 예) 소장 군영 사단장
6대 박기병 예) 소장 군영 제5군관구사령관
7대 이명재 예) 소장 사단장
8대 조재미 예) 준장 육사 2기 사단장
9대 유양수 예) 소장 육사 7기 사단장 교통부장관, 동력자원부 장관
10대 이민우 예) 소장 사단장
11대 최민섭 예) 소장 사단장
12대 류병현 예) 대장 육사 7기 합동참모의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농림부 장관, 주미대사
13대 강원채 예) 소장 육사 5기 동해안경비사령관, 제3야전군 부사령관
14대 이범준 예) 중장 육사 8기 육군군수사령관, 제2군단장 교통부 장관
15대 이남구 예) 소장 사단장
16대 김학순 예) 준장 사단장
17대 박완식 예) 준장 사단장
18대 방덕제 예) 소장 사단장
19대 김홍한 예) 대장 육종 9기 제2야전군사령관
20대 이기백 예) 대장 육사 11기 합동참모의장 국방부장관
21대 최문규 예) 중장 육사 13기 수도군단장
22대 여운건 예) 중장 육사 13기 제7기동군단장
23대 홍순철 예) 소장 사단장
24대 민찬기 예) 소장 사단장
25대 최권영 예) 소장 육사 19기 사단장
26대 김현태 예) 소장 사단장
28대 이종규 예) 소장 육사 23기 사단장
29대 이선민 예) 중장 학군 6기 제7기동군단장
30대 김창호 예) 중장 육사 26기 수도방위사령관
31대 김선홍 예) 중장 육사 28기 육군사관학교장
32대 김영한 예) 중장 육사 29기 국군기무사령관
33대 김종태 예) 중장 3사 6기 국군기무사령관 국회의원
34대 손무현 예) 소장 3사 7기 육군감찰실장 육군3사관학교장
35대 권오성 예) 대장 육사 34기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대리 이순진 예) 대장 3사 14기 합동참모의장, 제2작전사령관 [4]
36대 이용광 예) 중장 학군 16기 제3군단장
37대 김영식 예) 대장 육사 37기 제1야전군사령관, 제5군단장, 육군항공사령관
38대 조국제 예) 소장 육사 39기 사단장
39대 최영철 예) 중장 육사 41기 육군교육사령관
40대 안준석 예)대장 육사 43기 지상작전사령관, 제5군단장
41대 전동진 예)대장 육사 45기 지상작전사령관, 前 제3군단장
42대 권영현 예)소장 학군 27기 육군학생군사학교장
43대 김경중 소장 육사 48기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44대 강현우 소장 육사 50기 사단장

4.2. 장교/부사관

4.3.

5. 특징

좌측에는 제3보병사단, 우측에는 제7보병사단과 함께 중부전선을 담당하는 최전방 부대로, 휴전선 155마일 정중앙에 위치해있다고 설명한다. 부대가 주둔하는 강원도 철원군화천군의 산악지형 특성상 산악전 부대로 분류된다고 한다.[8] 그래서 포병도 산악포병이라는 희한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행군은 거의 을 타는 게 당연시되며[9] 이 산을 중심으로 사단의 거의 모든 부대가 산 중턱 혹은 근처에 퍼져있기에 부대에 따라서는 산을 오르내려야 밥을 먹거나 눈을 치울 수 있는 곳도 많다. 현재는 DMZ 책임지역을 관리하고 1차적으로 적의 도발을 방어하는 최일선 부대이다.

경례구호로 대한민국 해군공군의 경례구호와 동일한 '필승'을 사용하고 있다. 육군에서 15사단 이외에 같은 '필승' 구호를 사용하는 부대로는 제30기갑여단이 있다. [10]
붉은색 원 태양을 상징하며, 사단의 용맹성을 의미.
푸른색 원 평화를 상징하며, 자유와 평화를 의미.
노란색 원 을 상징하며, 사단의 무궁한 번창을 의미. [11]
부대 심볼은 3개의 동심원이 겹친 형태로, 각 원에는 다음과 같은 상징과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12] 15야(음력 15일 밤)의 밝은 보름달을 상징하며 작전 지역을 음영없이 밝게 비추고 살펴 지킨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생긴게 양궁 과녁판같이 생겼다고 해서 과녁판 부대라고 부를 때도 있다. 또는 계란 후라이 부대. 또는 케토톱. 또는 트라스트 부대.

멍(푸른색), 피(붉은색), 고름(노란색)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심볼이 동그라미라 위아래 구분이 없다. 신병이 오면 부대마크 뒤집혔다고 똑바로 달으라는 드립을 한다. 적당히 알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정도로 받아주면 된다. 가끔은 안달고 찍찍이만 있어도 잘모른다.

5.1. 근무환경

재수가 좋지 않은 이상 별별 힘든 곳에 걸릴 공산이 크다. 연대의 경우 미묘하게 산지지역과 평야지역이 교차되어있는 작전지역이 있고 이 중 사단이 덜 신경쓰는 연대도 있으며, 그런 연대 산하는 고생을 더 한다.

그렇기 때문에 12사단, 21사단과 더불어 피박 중 하나다. 7사단도 이런 취급을 받지는 않는다. 거기에 15사단 자체도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실례로 몇몇 전역자들은 15사단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은둔부대로서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갑자기 튀어나와 막아내는 부대."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워낙 산골인데다가 양쪽이 메이커 부대로 둘러싸여 있다!!! 때문에 이 사단에 배치받게 되는 신병들에겐 괜찮은 부대로 소문 나 있으나... 훈련이 상당히 빡세며[13] GOP 섹터는 7사단에 버금가게 최악이다.

특히 38여단의 '남산-해운대' 섹터는 전방 전체 GOP 섹터 중 가장 험난한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여기 배치되는 보병 특기 신병들은 개고생이 확정이다. 일단 여름에는 40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는 저주받은 기후에 GOP 지역의 거의 모든 섹터가 맥도날드 로고 마냥 이어져 있고, 운전병들에게도 굉장히 애로사항이 꽃피는 지형이었으나 도로만큼은 점차 나아지는 중... 예전 사고사례를 보면 고개부분의 도로가 비포장도로 길이었기 때문에 간부들이 오토바이타고 출퇴근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20년 전만해도 전 구간이 포장 도로가 아니라 죄다 비포장 길이었다. 현재 GOP 지역 일부분을 제외하고 어지간한 도로는 포장이 되어있어 운전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14] 하지만 사단 본부마저 영내 지형이 험악하기에(...)[15]

그리고 화천산천어축제 같은 행사가 열릴 때마다 각 부대에서 잉여 및 자원자들을 뽑아 주말 때 머릿수 늘릴 겸 즐기라고 내보낼 수 있다. 공짜 외출을 할 수 있으므로 좋긴 하지만 가을에는 민ㆍ관ㆍ군 한마음 축제라는 이름으로 대성산 축제를 하는데 걸그룹을 초청한적도 있었다. 근처 감성마을에 사는 이외수가 축제기간에 부대 위병소로 찾아와서 근무자에게 랜덤으로 한장 주고 가는 식의 포상휴가증을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여러가지 행사가 있다. 가령 예를 들어 의무대에서는 인바디 체크를 해서 측정 결과를 알려준다든가 유격체험 및 타로카드 심리체험, 플스로 위닝 대회나 철권을 하여 상품을 주기도 한다. 2011년 기준. 축제하는 곳 뒤에 대성산회관이 있는데 목욕탕을 이용해도 좋다. 근처 다목리의 식당에서는 파닭이나 중화요리, 순대, 막걸리 떡볶이 등 여러가지 음식을 팔며 물가는 당연히 비싸며 서울보다 500원 정도 비싼수준. 옆에 다목초등학교에서 본격적인 축제가 벌어지는데 놀다가 뒤를 보면 사열대 위에 사단장님이 허허허 하면서 앉아계신게 보인다. 여기서 잘하면 포상휴가! 2011년에는 포병연대 소속 모 대대가 받았다.

간부들 사이에서는 2군단 예하 최악의 부대로 손꼽힌다. 사단 자체가 돈이 없는 거지 사단이고, 과장 좀 보태서 왼쪽의 3사단보다는 10년, 오른쪽의 7사단보다는 5년정도 낙후된 정책과 근무여건, 시설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히도 사고는 많이 안나는 편이다.

5.2. 사단가

1절
화랑의 넋을 이은 대한의 건아
무쇠같이 뭉치어 달려나가자
산천도 떠는구나 거칠 것 없다
지키자 금수강산 우리 손으로
드높이 휘날려라 승리의 깃발
원수를 무찌르는 제15사단

2절
철모를 조여라 굳게 조여라
겨례의 비원을 풀어야 한다
오늘도 다시 한 번 맹세 하노라
이루리라 조국통일 우리 손으로
드높이 휘날려라 승리의 깃발
원수를 무찌르는 제15사단

5.3. 부대구호

승리부대 용사의 다짐이라는 게 있다. 주 용도는 아침점호.

하나, 나는 자랑스러운 승리부대 용사다
하나, 나는 승리 5대 전투영웅의 군인정신을 계승한다
하나, 나는 최고의 전사가 된다
하나, 나는 보름달 정신을 이어 밝은 병영문화를 창출한다
하나, 나부터 현장에서 행동하고 실천한다

6.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6.1.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용의자는 15사단에서 복무하던 장병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 문서 참조.

6.2. 노승원 소령 성추행 사건

현역 육군 소령이 현역 육군 대위에게 각종 가혹행위와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 편하게 해주겠다"는 등의 파렴치한 성희롱성추행을 가한 끝에 피해자인 여군 대위가 자살한 사건. 여군 대위에 대한 성추행, 피해자 자살, 가해자의 아버지가 장성 출신이라는 보도, 소속부대의 증거 위변조 의혹 보도, 1심 집행유예, 결국 국회의원 4명이 국방부를 항의방문하고 국방장관이 재조사를 지시한 뒤에야 대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등 한국군 내의 여군의 처우와 군내 사망사고를 다루는 고위 장교의 안이함, 군사법원의 한계 등 국군의 많은 문제점이 결집된 사건이다.

2013년 10월 16일, 15사단 부관부 인사행정장교로 복무했던 오혜란 대위(여군 54기)는 15사단 부관참모인 노승원 소령(3사 35기)에게 10개월 동안 지속적인 언어폭력과 성추행에 시달리다 자신의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노승원 소령은 오 대위에게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 편하게 해주겠다"라며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다. 약혼자가 있는 오 대위는 이를 거부하자, 10개월 동안 매일 보복성 야간근무를 시키는가 하면, 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는 막상 야간근무한 서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집어던지는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

피해자의 기록으로 사건을 재구성한 기사. 지독한 모욕과 가혹행위가 이어졌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피해자가 불교 신자였음에도 기독교도인 노 소령은 매주 교회에 나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무리 군대고 장교 사이라지만 신앙 생활에 이런 식으로 강요와 간섭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다. 이 사건을 보도한 한겨레의 기사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아버지가 장성 출신이라, 사건을 보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피해자 오 대위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노 소령이 다른 여군 6명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일로 인하여 부관부가 전격 해체되었으며 1심 판결에서는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되어 논란[16]이 되었다. 군 검찰과 노 소령 변호인 둘다 항소할 뜻을 밝힘에 따라 2014년 11월 기준으로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가해자 노 소령은 집행유예 상태로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15사단의 대응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증거 위변조 의혹은 1심의 약한 형량에 더해 여론의 공분을 사는 계기가 됐고, 결국 국회의원들이 국방장관에게 직접 항의방문을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백미는 부사단장이 무속인의 말을 빌미로 유족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권한 사건. 유족이 분노한 것은 당연하다. 그보다 한국 육군 부사단장 정도 되는 고위 장교가 자살한 부하 장교 유족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이다.

증거 위변조 의혹도 제기돼 결국 국회의원 4명이 국방부를 항의 방문했고 국방장관이 재조사를 약속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피해자 오 대위는 순직이 인정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2014년 11월 4일, 군인권센터의 심리부검결과 오 대위의 자살원인이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인한 우울증으로 나왔다. 15사단 배치 이전에는 정신적인 문제가 없었는데, 15사단 배치이후 노 소령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인해 정신병이 생겼고, 이로 인해 자살했다. 군인권센터는 죄목을 강제추행죄에서 강제추행 치상죄로 격상하라고 고등군사검찰부에 요청했다.

2014년 12월 18일, 고등군사법원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2015년 7월 9일, 대법원은 가해자 노 소령에게 징역 2년 선고를 확정했다. 그와 동시에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 제시하지 않았던 성폭력 특례법 제42조 제1항에 따른 신상정보 등록대상자로도 등록되었다.

2021년 공군에서 발생한 군 내 성추행과 이로 인한 자살사건 이후 노소령 사건도 다시 주목을 받았다.관련 기사 사건 경과가 유사한데다 군이 그 동안 말로만 재발방지를 외치며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로 피해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다고 절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건을 묻으려 한 관계자들에 대한 비판도 커졌다.

6.3. 구상훈 이병 가혹행위 은폐 사건

파일:external/www.mediafire.com/nx9xzgi3qykyg0bzg.jpg[17]

2012년 2월, 해당부대에서 근무하던 구상훈 이병이 19일만에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지 1년 7개월만에 깨어나고, 1년이 지나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자신은 구타당해 실신한 것이라고 KBS 취재기자를 통해 최초로 폭로된 사건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KBS 시사기획 창에서 2014년 11월 11일 방영되므로 사건내용이 추가될 수 있다.

구 이병의 뒤통수에 난 상처가 욕창[18]이라는 군의관의 말에 관계자들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고 당시 군의관은 진술서를 쓰지 않았다. 또한 군 수사기관은 구 이병 부모들에게는 뇌동정맥 기형에 의한 뇌출혈이라 말해 가족들이 납득했다고 군 수사기관은 주장했다. 문제는 KBS 취재기자가 입수한 2012년 3월 9일 구 이병 간호 기록집을 보면 욕창없음이라고 표기되어있다. 3월 5일, 부모에게 욕창이라고 설명한 군 당국이 거짓말 했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사건 당일 구 이병의 상처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 구 이병이 의무대에서 누워있을 당시에는 생활복 상의에 군복 하의 상태였다고 한다. 구 이병 부모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군 관계자에게 구 이병의 군복, 옷가지, 소지품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항의를 했음에도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구타 가해 지목 선임병사 7명중 한 명[19]은 '구타나 가혹행위 본 적도 없고 한 적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건 물론 무고죄로 맞고소하겠다고 나섰다.

구 이병 가족들은 사건 초기에 청와대 신문고,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리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구 이병의 증언으로 가족들은 현재 사건 당시 가해 선임병사들을 형사고소 준비하고 있다. 구 이병 변호인은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임병장 공동변호인과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가해병사 하 병장 변호인을 맡고있는 김정민 변호사다.

사건이 커지자, 육군 측은 구 이병이 의식을 회복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육군 측에서 정부 유관기관 및 민간 수사기관 등과 공조하고, 또한 가족이 원하면 가족을 참여시킨 가운데 재수사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가해자들이 전부 전역했고, 피해자도 전역해서 육군이 수사할 권한이 없는데 여론이 빗발치니깐 사건을 무마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와중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재조사한다면서도 기존 군 수사결과를 신뢰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4년 12월 17일, 육군에서 재수사가 밝혀졌는데 사건이 은폐된 그대로 발표했다.# 구 이병 가족들 및 시민들은 이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 절대 다수다. 조사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병사들은 계속 무고죄라고 주장해 구 이병과 가해자들은 민간인 신분이기에 고소가 접수되면 민간수사기관을 통해 수사진행될 예정이다.

유투브댓글중 같은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었던 당시 선임병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에 따르면 정확히는 폭행당하고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다가 화장실에서 쓰러진걸 발견하고 군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증언1증언2

7. 여담

7.1. 매체에서의 등장


[1]제27보병사단 사령부 부지. 제27보병사단 해체 후 제15보병사단 사령부가 이전했다.[2] 사단 창설 이전 38연대와 39연대는 육군본부 소속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경비 임무를 담당하였다.[3] 구 27사단 사령부로 이전했다.[4] 2008.03.∼2008.04. : 육군 제15보병사단 사단장직무대리. 대위 시절 38연대에서 3대대 10중대장과 연대 작전장교, 4대대 작전과장을 역임했다.[5] K201 사수였다.[6] 사단 보충중대에서 전출 대기도중에 본부근무대 막사 내에서 생활했는데 기간병들이 몰려가서 싸인을 받았다(...) 분위기는 좋았다.[7] 이후에는 제1수송교육연대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군생활을 했다.[8] 15사단 사병들은 처음 자대배치하면 선임이 자신들의 부대를 육군 유일의 산악보병부대라고 조소를 흘리며 말한다. 잠깐?[9] 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행군도 마찬가지다. 제1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행군의 경우, 4km 행군을 제외하고는 모 고개 정상(해발 695m)까지 등반하는 것은 필수이며 제2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40km행군의 경우 여기에 추가적으로 근처에 있는 모 산의 정상까지(해발 1100m) 등산해서 다른 길로 내려왔다가 앞에서 언급한 고개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코스가 포함되어있다. 이 구간이 굉장히 힘들다. 20도 기울기의 길이 15km 정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쪽으로 자대 배치를 받는다면 2년 동안 1100m 정상을 훈련, 제설 등의 이유로 뒷산 가듯이 동, 서, 남, 북로를 통해 최소 10번 이상 갈 것이니 미리 익숙해지는 게 편할 수도 있다. 그나마 동,서,북로는 경사가 봐줄 만 한데, 남로는 중반쯤 걷다보면 그 이후의 경사는 가히 기절할 수준이다. 하지만 훈련소에선 남로를 통해 등반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서로가 더 힘들다. 남로보다 수 km는 긴 듯. 거기다가 서로는 구간 포장에다 거진 비포장길이다. 하지만 동로는 포장길이라 매우 등산하기가 좋다. 물론 민간인은 출입금지다. 북로도 나쁘지 않으며 여긴!! 짧다[10] 예전에는 제6보병사단의 경례구호도 필승이었다. 지금은 '청성'으로 변경되었다.[11] 달이 가장 강조되는 이유는 보름달->15일->15사단이라는 연상 때문. '십오야 둥근 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2] 4개라는 말도 있지만 애초에 사단 창설 당시부터 3개의 원이라고 말한다.[13] 50여단의 경우 행군훈련이 굉장히 많다. 더군다나 행군코스는 산으로... 산악 대대 부대원이라면 상황 걸릴 때마다 인접산과 고개를 제집 드나들 듯이 갈 것이다. 산이 하나같이 경사가 더럽다.[14] 가끔가다가 씽크홀이 보이긴 한다.[15] 당장 타부대에서 전출 온 간부들이 사단사령부가 다른 사단 여단본부보다도 작다고 한탄하는데, 그마저도 지형이 안좋다. 그나마 다행인건 사령부가 구 27사단 사령부로 이전해서 더 넓어졌다.[16] 피해자 유가족과 합의도 하지 않았고 노 소령조차 반성의 기미가 없었는데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피해자 유가족을 우롱하고 있단 증거. 일단 1심을 맡은 군단 소재 보통군사법원이 독립성 보장 제로인 곳인지라...[17] 해당 사건의 뉴스화면을 캡쳐하여 인터넷에서 재구성한 짤방이다.[18] 주로 쇠약하거나 누워서 지내는 환자, 노인 등에서 발견되는 질환. 쉽게 말해 몸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혈액 순환이 안되는 부위가 썩어들어가는 질병이다.[19] 간부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당시에 이미 제대했을 것이다.[20] 거의 대부분 할줌마[21] 산악대대는 훈련중이었는데 원래 행군경로는 송승헌이 전역하는 부대 앞 도로를 따라가는 것이었는데 많은 버스와 인파로 인하여 경로를 수정하여 멀쩡한 도로를 두고 산길로 행군을 계속했다. 강원도의 겨울이었기에 당연히 산에는 눈이 많이 있어 행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