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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20:17:57

제73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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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보병사단
第七十三步兵師團
The 73rd Infantry Division
파일:제73보병사단 부대마크.svg
하나되어 충성하는 위풍당당 忠一부대
창설일 1981년 9월 25일(73훈련단)
1987년 4월 1일(제73보병사단)
상징명칭 충일(忠一)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육군동원전력사령부
경례구호 충성
규모 사단
역할 평시 예비군 교육관리
사단장 준장 김경일(3사 29기)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1. 개요2. 상세3. 예하 부대4. 과거부대5. 출신인물
5.1. 사단장5.2. 장교/부사관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6.2. 동원훈련장6.3. 충일회관6.4. 사단가
7. 사건 사고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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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육군동원전력사령부 예하 제73보병사단. 별칭은 충일부대. 경례구호충성.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하고 있다.

경례구호는 충일부대답게 충일(忠一. 하나되어 충성)이었으나 2012년도에 충성으로 바뀌었다. 1990년도에는 "충용"(忠勇)이었다.

제73훈련단이 이 부대의 전신으로 1987년 4월 1일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그 당시에는 충용부대라 불리었다. 그러나 제8군단, 제37보병사단과 상징명칭이 겹쳐 1991년 충일부대로 바뀌었다. 또한 창설 당시에는 제6군단 예하였으나 1993~1999년에는 제5군단 휘하에 있었고 이후 제6군단을 거쳐 다시 육군동원전력사령부 예하로 바뀌었다.

2. 상세

파일:external/www.globalsecurity.org/73md.gif
구형 부대마크
동원사단의 특징상 현역 병력의 수가 일반 상비사단의 1/10 수준(1개 중대가 1개 분대 규모이다)으로 자대 배치받는 경우도 드물고, 부대 규모도 작은 탓에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훈련소에서 과정을 모두 마치고 자대배치를 기다리는 병사들에게 자대를 알려줄 때, 조교마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대가 있었나?

규모가 대충 얼마정도냐면..통상적인 보병사단(즉, 상비사단)과 비교하면 병력규모가 1/10 수준으로 축소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예: 상비사단 중대급 = 동원사단 연대급 / 상비사단 분대급 = 동원사단 중대급) 따라서 일반적으로 타 부대의 경우 소대 단위로 움직이지만 동원사단은 중대급으로 움직인다. 분대와 소대의 개념이 없다고 보면 된다.[1]

2010년까지 인원은, 일반 연대는 중대당 약 10명으로 대대가 약 55명 정도였다. 기본 10명에, 본부 중대나 포 중대는 몇 명씩 더 있었다. 이 때는 그나마 중대당 10명이라도 사람이 있어서 근무나 작업 강도가 어찌저찌 버틸만했다라고 한다면...2010년 말에 차기 동원사단 부대개편을 실시하여 차기동원사단이 되면서 타 동원사단보다 더욱 적은 현역병을 보유하게 되었다. 대략 절반 수준. 개편전에는 일반 보병대대 기준으로 TO가 50명이 넘었으나 개편 직후 TO 는 22명선(...)이 되었다. 한 중대당 인원이 4~5명 정도에 불과하다.중대가 아니라 전우조지 이건

이 때 인력문제를 감안하여 동원 물자 창고를 컨테이너화 하고 대형 크레인을 설치했었다. 개편 이후 근무와 작업에 대해 강도가 많이 오른다. 이는 후술한다.

대대본부는 5명, 그 외 중대는 4명씩으로 개편되어 병과 간부 다 합쳐서 1개 대대가 30명이 간신히 넘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되다 보니 참모는 전원 공석이고, 중대장이 대대 작전과장을 겸직하는 등 참모부도 땜빵 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참모부에 담당관이나 계원? 당연히 없다. 부사관은 더욱 심각해서 대대에는 아예 부사관이 없거나 주임상사 혼자인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연대 전체에서 부사관이 주임원사 혼자인 경우까지 있다. 많아봤자 위병조장 용도로 대대에 전문하사를 1~2명 정도 두는 경우는 있다. 또한 연대마다 수송부가 별개로 존재했으나 부대개편 이후 수송부 인원 대부분이 전출+남은 인원은 사단 수송부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1호차(연대장 레토나) 운전병 외의 운전병은 없어졌다. 그나마 1호차 운전병이 없는[2] 대대는 주임상사가 1호차 운전병도 겸직(간부직접운전자)한다. 실제로 모 차기 동원사단도 똑같이 돌아가고 있다. 편제가 너무 줄어들어서 차량관리나 배차운용면에서 비효율이 커지다보니 사단의 모든 수송주특기 인원들을 한 중대에 때려넣어 버린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량대비 운전병이 부족한 실정이므로, 이런 사단 수송부의 배차현황을 보면 레토나나 민수승합차에 연대 간부직접운전자 열 몇명을 줄줄이 달아놓고 자기들끼리 하루종일 끌고 다닐 수 있도록 방임해버린다. 간부직접운전자의 확대가 향후 군의 수송지원작전방향이기도 하며, 일차적으로 말단 1호차 운전병 편제를 죄다 예비군으로 돌려버린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이다. 최근 지침 하달로 간부직접운전자의 군트럭 단독운행도 가능해졌다. 노부스나 5톤 메가트럭도 간부직접운전이 가능해졌다. 간부가 하기 싫어하니까 문제지...

군생활의 꽃인 휴가에 관련해서는, 개편전에도 한 중대에서 4명 이상 휴가 나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는데[3], 한 중대 5인 이하로 편제가 개편되고 나서는 2명도 불가능... 이로 인해, 인원이 20명~25명인 대대에서 3~4 명만 동시에 휴가를 나가도 부대 운용이 삐그덕거리는게 느껴질 정도다. 전체 인원으로 보면 적어 보이지만, 대대 내 모든 중대가 일순간 20% 씩의 공백이 생기는 것.

다음으로 급상승한 근무 강도의 정도를 설명하자면, 부대개편을 실시하여 병력이 반토막난 당시, 당장에 근무부터 전과 다르게 빈도수가 와장창 증가하여 초소를 갔다오니 하루가 끝난다... 라는 말이 있었다. 이는 당장 인원은 반토막이 났는데 해야 할 근무와 작업거리는 반으로 줄지 않았기 때문으로, 병장이라도 말년휴가 갔다온 개말년병장에 전역전날 복귀 혹은 주말만 부대에 있는 상황이 아닌 이상 각종 작업에 끌려나가는 건 예사. 진지공사까지 갈 것도 없이 제초/제설 작업을 한 번 하면 지옥을 맛봤었다.

어떤 여단의 대대는 혹한기 훈련 시 초소 근무를 모두 말년병장에게 돌리고, 3시간 근무 3시간 휴식 체제로 단 두 팀만으로 돌린 적이 있다. 단 소등 상태의 생활관을 이용하게는 해줬다.

전역에 따른 인수인계에 어려움이 생길 것은 당연지사였다. 2010년 인원 개편 이후로 부대 안정전까지 간부, 일반병사 할 것 없이 여러 임무의 겸직은 (암묵적으로) 일상화 되었다. 일례로 주특기 교육 기간에 중대 무선통신병들은 통신 교육을 받은 후[4] 순환식으로 교장을 이동하며 M60 기관총& 팬져 & K201 교육을 연이어 받았다. 또한 한 명의 행정병이 작전, 인사, 보급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실정이니 웬만한 경우 아니면 단체 외박이나 단체 휴가는 꿈도 못꿨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일단 사람이 없으니 포상휴가와 외박이 굉장히 귀하다. 휴가 나갈 일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위병소를 나가기 전까진 안심을 못하기 때문...일정 문제로 짤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인원이 적어서 생기는 장점이 하나 있는데 여타의 부대보다 구타 가혹행위가 현저히 적다는 점이다. 이거 굉장히 큰 장점이다. 사람이 적기 때문에 인적자원의 가치가 상승하고 그래서 지휘관들도 어지간한 일로는 병력들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워낙 인원이 적다 보니 이등병대령을 맨날 만나는 일이 벌어지게 되고 병사들 입장에서 보면 대령이 직접 보는 앞에서 잘못을 저지를 엄두가 안 난다. 병력 수에 따라 논하자면 주로 초편(超編)부대[5][6]에서 구타 가혹행위가 잘 일어난다.[7]

충일회관이라는 영외 면회 공간이 있다. 부대 바로 앞 간부 아파트 단지의 입구에 위치해 있다. 이 면회 공간의 PX는 일반인도 이용가능해서 심심치 않게 외부 방문자가 보인다.

여담으로, 특공방위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빡센 부대였던적도 있고, 군생활이 너무 편해서 충일랜드라는 별명이 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본부근무대의 경우 부대 인원마다 보직이 다 다르다. 크게는 간부식당, 위병소대, 일반참모부, 특수참모부, 충일회관으로 분류되는데 그 안에 또 무수히 많은 참모처가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본부근무대의 대부분 인원이 행정병이라 확실히 편한 곳이라는 인식이 사단 내에 박혀있다. 하지만 위병소대나 간부식당, 충일회관의 경우 다른 어타 연대와 비교했을 때 헬보직이라고도 불릴 수 있다. 그들에게는 낮, 밤의 개념이 거의 없으며 매일매일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일상의 연속이다. 전역자들의 말 대부분을 들어보면 확실히 참모부보다 그 외의 분대가 시간이 잘갔다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방증이다. 어쩔 땐 날짜와 요일 개념도 없이 생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2010년대 말, 본부근무대의 간부식당 분대는 인원이 많게는 8명가지 편제될 때가 있었지만(과거) 적게는 3명에서 4명으로 간부 전체의 식사를 책임진다. 심지어 설거지도 직접 하기 때문에 병영식당에 비해 상당히 힘들다. 게다가 휴가로 한 두명 빠져버리면 식당자체가 굴러가지 않는다. 때문에 계절과 인원수에 따라 어쩔 땐 꿀보직이었다가 어쩔 땐 헬보직이 되기도 한다. 충일회관도 마찬가지이다. 잘해야 본전인 부서인지라 칭찬보다는 항상 욕만 먹는 곳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위병소대는 근무는 크게 어렵지 않다. 주로 사수는 전방을 주시하고 부사수는 후방을 주시하여 간부, 차량,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위병조장과 간부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부대의 모든 차량을 관리, 통제한다.

2010년대 말까지는 모든 차량, 간부의 출퇴근 기록을 수기로 작성하여 하루에 몇명씩 빵구가 나기도 했고 차가 부대앞까지 막히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2018년에는 자동차량인식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모든 출퇴근이 자동으로 기록되었다.

본부근무대 내에서는 위병소대가 아무래도 체격이 좋고 힘든 일을 도맡는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업에 위병소대가 투입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참모부서에서 훈련때마다 위병소대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실제로 위병소대가 작업을 가장 잘한다. 하지만 작업을 한다고 근무를 서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근무를 약 1시간 30분가량 서고 나서 근무 외의 시간에는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 작업이 없는 날의 경우에는 생활관 내에서 근무 전까지 쉴 수 있다.

1980.1990년대 송추방위와 쌍벽을 이루던 전설의 부대 금곡방위 1980년대초부터 1995년말까지 복무했던 단기사병 방위병들로 공수방위 특공방위로 불릴정도로 빡센적이 있었다 방위부대 최초로 1987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 참가, 1989년 한미군사합동훈련 팀스피리트에 참가하여 성공적인 임무수행과 훈련성과로 당시군내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매년 있는 군단장배 전투력측정에서 소총, M60, M-203, 60m, 81m, 90m 항상 최우수차지하며 다른부대들을 놀라게하였고 강원도 군단소속으로 작전계획지역이 무지하게 넓어 남양주에서 철원까지 방위병들이 18개월 근무하는동안 누구나 200km행군을 3번은 해야 했었다. 훈련 중 방위병의 생명인 퇴근과 휴일은 보장되지 않았고 서울방위들이 강원도 산간을 헤메던 기억들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이다.

3. 예하 부대

파일:제73보병사단 부대마크.svg
제73보병사단 예하부대
제203보병여단 제205보병여단 제206보병여단
포병여단
※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3.1. 사단직할대

3.2. 제203보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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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205보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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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206보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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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포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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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거부대

5. 출신인물

5.1. 사단장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73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예) 준장 사단장
00대 조규필 예) 준장 갑종 182기 사단장
00대 강영길 예) 준장 육사 25기 사단장
00대 최운 예) 준장 육사 30기 사단장 [9]
00대 이상균 예) 준장 육사 31기 사단장 [10]
00대 김상철 예) 준장 육사 33기 사단장
19대 이종덕 예) 준장 육사 36기 사단장
20대 이준용 예) 준장 육사 37기 제15보병연대장
21대 박찬웅 예) 준장 육사 38기 사단장
22대 김보선 예) 준장 육사 39기 제102기갑여단
00대 김창영 예) 준장 육사 41기 제2기갑여단
00대 김무수 예) 준장 육사 43기 제2기갑여단
00대 김병곤 예) 준장 육사 45기 사단장
00대 고영준 예) 준장 육사 45기 사단장
00대 마상현 준장 육사 47기 제22보병사단 작전부사단장
00대 김경일 준장 3사 29기 사단장

5.2. 장교/부사관

5.3.

6. 기타

6.1. 근무환경

있을 것 다 있고 특히 PX는 개편전부터 시설이 좋은 편. 개편되면서 새로 생긴 대표적 부대시설로는 '부대 내 민간 헤어샵 입점', '코인 노래방'[11], 자판기 등 부대 시설 카드 리더기 장착' 등이 있다.[12] 생활 시설이 가장 좋았던 203연대[13][14]의 경우 오락기를 들여놓아 다른 연대나 직할대에서도 방문했었다. 시설에 대한 언급에서 계속 203 연대 이야기가 나오는데, 단적으로 말하면 10년전[15]에도 '도서관'이 있었다.[16]

현역병으로 동원훈련장 소속 대대로 배정받았다면, 환영한다. 끝없는 작업의 늪을 보게 될 것이다. 주둔지부대도 끝없는 작업에 시달리고, 연이은 창고작업에 투입된다. 그것도 여느 상비사단의 창고 수준이 아닌, 유사시 완편을 위해 수통부터 화포 같은 온갖 장비들이 빼곡히 보관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웬만한 물류창고보다 규모가 크며, 툭하면 실물조사를 진행한다. 하여간 창고 작업을 하다보면 사회에서 상하차하는 기분이 든다. 물론 작업물품은 사회의 것보다 묵직한 군용품이다.

문제는 동원사단 특성상 인원이 적은데 관리하는 물품의 갯수는 거의 대대급, 연대급 갯수라서 창고관리에 여러 애로사항이 많이 생긴다. 작업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훈련도 병행한다. 하지만 그나마 인원이 적기 때문에 여건에 맞게 훈련한다.

인원이 적기 때문에 근무도 비번이 거의 생기지 않아 주간근무 말번이 야간근무 초번에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타 부대에서 훈련을 할시 타 부대에서 근무할 인원이 적어서 근무지원에 투입되기도한다.

6.2. 동원훈련장

아무래도 동원사단이다보니, 예비군들이 입소하여 훈련받는 동원훈련장은 당연히 있다. 동원훈련장은 사단에서 한 개 대대를 아예 동원훈련장을 자대로써 파견하여 관리한다. 따라서 동원훈련장 소속 대대의 경우에는 73사단 본래 사단을 올 일이 거의 없다.[17] 원래는 한개대대 붙박이었으나(대대라 해봤자 한개소대 인원정도) 독립대대라 작업은 많을지라도 근무관련해서는 널널하게 서는 편이었으나 사단 불시감찰에 적발된 이후 한개 대대씩 돌아가면서 소속되는걸로 변경되었으며 당연하게도 근무도 얄짤없다.

6.3. 충일회관

충일회관
充溢會館
Exuberance Hall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6.4. 사단가

천마산 푸른 정기 한 몸에 안고
조국에 부름받아 모인 건아들
충일의 거센 횃불 함께 지피며
이 강산 영광위해 젊음을 건다
아 우리는 불사신 용사 불사신 용사
그 용맹 영광 이룰 73사단

산천을 뒤흔드는 우렁찬 함성
오늘의 고된 훈련 내일의 다짐
승리의 충용 깃발 높이 날리며
피와 땀 젊은 목숨 조국에 건다
아 우리는 불사신 용사 불사신 용사
그 용맹 영광 이룰 73사단

충일의 나팔소리 백두산까지
평화의 이름으로 총칼을 들고
겨레의 방패되어 오늘을 사는
전우여 승리 위해 전진 뿐이다.
아 우리는 불사신 용사 불사신 용사
그 용맹 영광 이룰 73사단
- 73사단가 -

7. 사건 사고

8. 여담



[1] 워낙 작은 사단이라 가능했던 것인지 아니면 작은 사단이라 걱정하는 부모가족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신병 첫 면회 때 가족들에게 신병이 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위병소에서부터 대대장 레토나에 탑승시켜 막사로 데려가 가족들에게 생활관을 구경시켜주는 경우가 꽤 있었다.[2] 운전병이 제대하고 신병이 새로 운전병이 되는 과정에서 반주일 정도 공백이 있을 수 있다.[3] 3명 동시 휴가까지는 본 적 있다.[4] 여긴 이마저도 유무선 통합 통신병이다.[5] 원래 편제보다 인원이 많은 부대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대대원이 1,000명인 대대라든가 사단원이 18,000명인 사단 같은 부대가 초편부대이다. 평시에는 잘 없지만 전시 중에서도 아군이 패전하는 전쟁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현상인데 패잔병들끼리 뭉치다 보니 지휘를 해야 할 최선임 장교의 계급이 낮고 병에 비해 간부가 턱없이 부족하면 편제보다 훨씬 많은 병력으로 재구성되기도 한다.[6] 정말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보통 완편된 분대는 분대원이 10명인데 11번 예비수, 12번 예비수 이런 걸 보유한 분대는 초편부대가 된다.[7] 초편부대에서 구타 가혹행위가 잘 일어나는 이유는 병사는 많은데 이를 지휘 감독해야 하는 장교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명의 소위가 부사관 없이 병사만 900명을 거느려야 한다든지.[8] 소속은 73사단이지만 생활은 1기갑여단에서 한다.[9] 예편한 뒤 두 달도 안 되어 국방부의 민간인 채용(...)에 합격해서 국방부 ㅇㅇ국장이 되었다.[10] 동작그만에서 메기 병장으로 유명했던 이상운의 친형이다. 참고로 이상운은 학사장교 출신.[11] 코인 노래방은 개편되기 이전부터 이미 대부분의 막사에 존재했다.[12] 2011~2012년도 사단장의 경우 부대 내에 '박준헤어샵'을 입점시켰다. 단, 헤어샵만 민간일 뿐 이발병이 자르는 건 똑같다. 비용은 1,000원. 하지만 다음 단장이 폐점시켰다.[13] 막사가 무려 4층 건물이었다. 그리고 불법 건축물(...)이다.[14] 사단 직할대 몇 곳을 헐고 이 막사를 지었기 때문에 해당 직할대도 이 막사를 이용했다.[15] 2009년 경[16] 부대 내 사단장이 근무하는 곳(이곳을 사단본청이라고 불렀다.)에 도서실이 있었는데, 203연대 현대화막사가 완공된 뒤 이 시설을 203연대로 이전했다. 사단본청에 있을 때에는 도서대출만 가능했으나, 203연대 막사로 옮긴 뒤에는 열람시설도 마련해서 이곳 부대원들은 일과 시간이 끝난 뒤에 도서실에서 자격증을 공부하기도 했다.[17] 동원훈련장 파견 대대는 기간별로 돌아가기 때문에 운이 없을 경우 동원훈련장에서 말년을 보내는 경우는 있어도 사단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18] 점심시간 쯤에 돌다리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73사단 군인들을 볼 수 있다.[19] 구리시 거주자가 73사단에서 복무할 경우, 전역하고 73사단 예비군이 된다는 얘기이다.[20] 위수지역은 구리, 남양주인데, 사실 지도를 보면 구리와 남양주는 세로로 긴 형태이기 때문에 구리나 남양주의 끝자락으로 이동할 경우, 서울 동쪽으로 가는 것보다 멀다.[21] 56사단에 흡수 통합되어 사라진 57사단의 예비군 훈련장이었다. 관할 지역은 동대문구. 즉 동대문구 묵동 같은 데는 좀 가까왔지만 휘경동, 답십리동 같은 데 사는 예비군은 동원 훈련을 버스로 한 시간은 걸리는 남양주까지 가야 했다.[22] 이 부분은 각 연대별로 다르다. 203연대는 개편전 동원사단 시절 선진 막사 최우선 적용 사정으로 각 대대별로 흩어져 생활하다가 건물이 지어진 후 다시 합쳐지면서 대대까지만 선임 대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