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보병사단 작전부사단장 마상현 Ma Sanghyun | |
학력 | 국방대학교 (군사전략 / 석사[1])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91년 ~ 현재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47기) |
현재 계급 | 준장 (대한민국 육군) |
현재 보직 | 제22보병사단 작전부사단장 |
주요 보직 | 제73보병사단장 국방부 군구조개혁추진관 육군본부 개혁실장 육군본부 개혁차장 지상작전사령부 정책실장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제25보병사단 제71보병연대장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 1대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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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장성으로 현 계급 준장, 현 22사단 부사단장이다.2. 생애
1987년 육군사관학교(47기)에 입교하여 1991년 졸업한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병과는 보병이며, 직능은 그간의 보직을 보았을 때 작전으로 추정된다.2001년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3. 주요 보직
- 준장
4. 여담
- 육사 47기 동기로 손식, 강호필 대장과 곽종근, 김규하, 김봉수, 임기훈 중장이 있으며 그 외의 임관 동기로는 해사 45기 출신인 황선우 중장이 있고, 공사 39기 출신으로 김형수, 진영승 중장이 있으며 3사 26기 출신으로 고창준 대장, 학군 29기 출신으로 고현석 중장이 있다.
- 73보병사단장 재임 중 일병 1호봉의 용사가 사복으로 런닝을 뛰던 마상현 준장에게 경례를 하지 않아 마상현 준장이 해당 병사에게 "내가 누군지 모르냐?"고 물었고 모르겠다고 하자 "내가 간부같냐, 용사같냐?"라고 물은 일이 있었다. 그 이후 예하의 전 부대가 식사 집합 간 경례 연습과 식사 이동 간 군가를 제창하게 되었고, 생활복 혼용이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 73사단장 이후 6차 보직을 22사단 작전부사단장으로 받았다. 곧 전역할 말년 준장에 동원사단장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사단장을 지낸 이력이 있는 준장을 상비사단 부사단장으로 보낸 것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직속상관인 22사단장이 강봉일 소장인데 마상현보다 4기수나 후배이다. 결국 마상현은 부사단장이 되면서 한참이나 후배를 직속상관으로 모시게 되었다. 참고로 저 정도 기수 차이는 중대장과 소대장 사이와 같은 차이이다.
- 전역이 7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단을 위해 활동한 모습들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의 전설적인 일화로는 따갑다 못해 쓰라릴 정도의 뙤약볕이 내려쬐던 7월, 그는 일주일동안 사단 GOP 전 구간과 북쪽의 해안지역을 도보로 한 곳도 빠짐없이 걸어다니며 아들뻘 되는 중대장, 소대장들에게 본인의 작전 노하우를 전수했다.
- 22사단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수호하는 말도 안되는? 작전지형 때문에 군 생활의 경험과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다. 실제로 마장군은 작전지역을 중대장과 함께 순찰하며 작전 노하우를 전수해줬는데, 20대 중•후반의 중대장이 50대 중반의 마장군을 헉헉대면서 따라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부대에서는 체력단련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한다.)
- 경계작전의 실패로 사단의 역사가 어두웠었지만 귀순자 유도를 성공하는 등 오늘날의 22사단 이미지 구현에 그의 노력이 있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책임지역을 빠짐없이 도보로 지형정찰 다녔던 부사단장도 유일무이 했고 전역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마장군의 모습은 참군인의 표상이자 귀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