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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작전사령관 직무대리 김봉수 金奉洙 | Kim Bong-su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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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8년 |
학력 | 연산중학교 (졸업) 남대전고등학교 (11회 / 졸업) 육군사관학교 (47기 / 학사) 미국 Webster University (경영학 / MBA) 미국 육군 전쟁대학원[1] (국제안보전략 / 석사) |
종교 | 기독교 |
복무 | 1991년 ~ 현재 |
임관 | 육군사관학교 (47기) |
현재 계급 | 중장 (대한민국 육군) |
현재 보직 | 제2작전사령관 직무대리 |
주요 보직 | 육군교육사령관 합동참모차장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제3군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제53보병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 육군본부 비서실장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과장 합동참모본부 정책과장 제22보병사단 제56보병연대장 제6보병사단 제2보병연대 3대대장 |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현재 계급은 중장, 제2작전사령관 직무대리를 역임하고 있다.2. 생애
충청남도 논산시 태생으로, 연산중학교와 남대전고등학교(11회)를 졸업하였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47기 생도 과정으로 입교하여 1991년 학사 학위 취득과 함께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2005년 미국 미주리 주 소재 웹스터 대학교(Webster University) 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하였으며[2], 2015년 미국 육군대학원에서 국제안보전략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3. 주요 직위
- 소위 1991년 임관
- 소대장
- 대위 1995년 진급
- 제55경비대대 작전과장
-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 경비중대장[3]
- 대령 2013년 9월 1차 진급
- 중장 2022년 6월 1차 진급[13]
4. 평판
- 2012년 10월에 발생한 제22보병사단의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 이후 해당 연대장으로(제56보병연대) 취임하여 성공적으로 부대 / 경계작전 안정화에 기여하였다고 평가받는다. 연대장 시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전방 부대 새벽 순찰을 하였으며, 지휘관에게는 엄격한 편이었으나 순찰 시 병사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사랑하는 우리 아들들'이라고 불러주며 인자하고 아버지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 제53보병사단장 시기에도 사단사령부에 위치한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들을 아들들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으며, 예하 여단장들과의 아침 회상회의 시에도 장병들을 언급할 때는 '우리 귀한 아들들'이라고 불렀다.
- 제22보병사단 제56보병연대장 시절 연대에 전입 온 신병들에게 정신교육을 할 때 군생활이 너무 힘들 때는 나에게 전화하라며 전입신병들에게 명함을 직접 나눠주는 좋은 지휘관이었고, 내가 다른 부대에 가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언제든 전화해도 좋다고 할 정도로 병사를 아꼈다.
- 국방부 정책기획관 보직을 맡을 때도 겨울이 되면 퇴근 중에 국방부 근무 중인 병사들에게 커피를 나눠주기도 하였다. 나눠줄 때마다도 항상 "우리 아들들"이라 하였다.
- 제3군단장이 되어서는 병사뿐만 아니라 초급간부들에게도 아들, 딸들이라고 해주었다.
- 바깥에선 상대방의 연령 및 지위고하 막론하고 90도 가까이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로 인품이 좋다.
5. 여담
- 보병 출신, 작전 직능으로서 육군 내 작전 및 정책 분야의 손꼽히는 요직을 두루 섭렵하였다. 준장, 소장, 중장 모두 1차로 진급하였으며[18], 준•소장 참모보직 중 최고 요직인 연합사 작전처장[19] 및 국방부 정책기획관[20]을 역임함으로써 정석적인 대장 진급 루트를 타는 등 육사 47기에선 가장 선두주자로 보였으나 중장 2차 진급자인 손식 장군이 2023년 10월 지상작전사령관으로 영전하게 되었다.[21]
- 소령 때 육군대학 정규과정에서 대통령상[22]을 수상하는 등 직능 분야에서 인정받는 장군이다. 육대를 수석으로 수료하였기 때문에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서 MBA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23].
- 대부분 장군들에게 해당되겠지만, 김봉수 장군은 전형적인 똑부스타일이다. 위에 평판에서 언급되었듯이 부지런하고, 꼼꼼하고 일을 많이 할 뿐아니라 머리도 좋은 편이다. 평상시에는 교범, 교리 등 군사와 관련된 책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GOP연대장 시절엔 거의 하루도 안거르고 전방에 순찰을 나갔으며, 휴가는 거의 안나갔다고 할 정도다.
- 2023년 6월 25일 예하부대인 제22보병사단에서 고성 제진검문소 공포탄 발사 사건이 발생했는데, 수하에 불응한 오토바이 운전자 일당을 초병들이 잘 제압하였다. 이 사례는 경계근무의 성공사례로 기록되었다.
- 2024년 상반기 인사에서 건군 제76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단장 겸 제병지휘관으로 이동하였는데, 원래 해당 해는 행사단장이 소장이 보임되는 해이지만 중장이 보임되는 이변이 생겼다.[24] 23년도 하반기에 국방부가 국회에 120억 예산안을 제출하여 그 중 80억이 반영되었고, 24년 2월에는 부대관리훈령을 개정해 대규모 국군의 날 행사를 임기 중 여러 번 실시하도록 개정하면서 대규모 행사를 계획했다는 점이 해당 인사의 근거로 보인다. # 이후 행사단장을 마친 후 2024년 10월 8일, 합동참모차장으로 임명되었다.[25]
- 합동참모차장에 임명된 지 한달 가량이 지난 후 11월 25일에 24년 하반기 장성 인사가 단행되었는데, 세간의 예상대로 대장급 인사는 없었으며 정진팔 중장과 보직을 맞바꿔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26] 그러다 12월 3일,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본인은 앞선 보직 이동으로 인해 큰 화를 피하게 되었다[27] 이후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의 직무정지로 인해 고창준 제2작전사령관이 직무대리로 임명되자, 제2작전사령관 직무대리로 임명되었다.[28] 김권 2작사 부사령관 직무대행(소장)[29]도 본인의 육사 47기 동기이다. 즉 사령관과 부사령관이 둘다 육사 동기라는 간만에 보는 진풍경이 펼쳐졌고 육본은 한술 더떠 참모총장(3사)과 참모차장(학군단) 둘다 비육사라는 창군 최초 진풍경이 펼쳐졌다.
- 이런 상황으로 인해 군단장 보직을 끝낸 후로, 전시 상황이 아님에도 8개월간 4개의 보직을 역임, 2024년 한 해에만 5개의 보직을 역임하는 진기록을 세워버렸다. 모 예비역 중장처럼 평판이 나빠서 계속 한직만 돈 것도 아니고, 윤석열 정부의 국군의 날 행사 규모 확대 + 중장급 원포인트 인사 +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등이 한 해에 모두 일어나면서 이런 상황에 놓였다.
6. 관련 문서
[1] U.S. Army War College[2] 육사 2기수 선배인 전동진 예) 대장도 해당 대학에서 MBA 학위를 취득하였다.[3] 대위로 보임되어 재임 중 소령으로 진급.[4] 출처[5] 대통령상 수상 참고로 육대 수석수료자는 군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많다. 육사 한 기수 위에 강신철 대장, 육사 동기 곽종근 중장, 한 기수 아래 박후성 중장이 수석 수료자로 모두 고위직에 진급했다.[6] 출처[7] # 비슷한 시기 육사 동기인 양태봉 중령(현 소장, 육군포병학교장.)이 동사단 포병연대 예하 27포병대대장을 역임하고 있었다.[8] 전임자 강신철, 후임자 손광제[9] 이 보직은 합참 합동작전과장과 함께 육사 출신 작전 직능의 대령들에게 있어서는 준장 진급에 있어 최유력 후보로 평가되는 보직이다. 합동작전과장과 함께 상당한 격무에 시달리는 보직이다.[10] 전임자 이규준, 후임자 손광제[11] 전임자 여운태, 후임자 여인형[12] 전임자 이두희, 후임자 김성민[13] 동기 김규하 장군과 함께 1차 진급[14] 전임자 신희현, 후임자 서진하[15] 전임자 박안수[16] 역대 최단기(51일) / 전임자 강호필, 후임자 정진팔[17] 전임자 정진팔[18] 소장 참모 보직인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문재인 정부때에 역임하였음에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인사에서 중장 1차 진급을 했다.[19] 최근 역임자는 무조건 진급하였으며, 합참 작전1처장보다도 진급률이 높은 현행 최고 요직이다. 전후임 연합사 작전처장들은 모두 육사이며 해당 기수의 최선두주자들이었다. 강건작 전 육군교육사령관(45기) - 이규준 육군교육사령관(46기) - 김봉수 3군단장(47기) - 손광제 육군교육사령부 교리발전부장(48기) - 문병삼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49기) - 강현우 15사단장(50기)로 이어지는 계보이다.[20] 전통의 요직으로서 작전과 정책의 양대 분야에 정통한 장군이 맡기에 중장 진급률이 가장 높다.[21] 장군인사는 단순히 능력만 있다고 되는게 아닌 정치, 출신, 출생지, 종교 등 다양한 요소를 따져서 되는 것이기에 장담할수 없다. 김봉수 장군처럼 중장까지 모두 1차 진급 및 해 기수 선두주자라고 일컬어짐에도 미끄러진 경우가 많아 진급 당해일을 봐야 알수 있다. 같은 예로, 소장까지 전 계급 1차 진급에 국방부 정책기획관과 더불어 소장급 최요직인 합참 작전부장에 앉아있던 곽종근 장군 역시 중장 진급 1순위였음에도 계속 미끄러지다가 47기 선두주자보다 1년 6개월 늦게 막차로 겨우 진급에 성공했다.[22] 육군대학에서 육군의 모든 소령을 다 받을 수 없기에 정규과정 입과도 힘들며 정규과정에서도 치열한 성적 경쟁이 펼쳐지기 때문에 대통령상(1등) 수상은 대단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직능(작전, 인사, 군수, 정보, 동원)을 부여받는다. 지금은 중령 2년차에 직능를 받는다.[23] 육군은 육대를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국방부장관상, 합동참모의장상 수상자 등 최상위권으로 수료한 장교에게는 임관구분 상관없이 군사 강대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육사 2기수 선배인 전동진도 이런 이유로 육대 수료 후 바로 미국으로 가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마찬가지로 임관 3년 선배인 학군 26기 출신 하영재 예) 준장 또한 육대를 최상위권으로 수료하여 바로 콜롬비아로 건너가서 콜롬비아 육군 지휘참모대학을 수료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로 육대 최상위권으로 졸업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소령들은 육대에서 치열하게 공부한다.[24] 그 여파로 원래 중장이 보임되던 육군사관학교장에는 소장이 임명되었다.[25] 지상작전사령관으로 재임 중이던 손식 대장이 2024년 9월 갑작스런 건강상 문제로 국군수도병원 입원 후 합동참모차장이던 강호필 대장이 지상작전사령관 직무대행를 수행하였는데 이후 한달 가량이 지나도 손식 대장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더이상 임무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강호필 대장을 정식 지상작전사령관으로 취임시켰고 그 결과 발생한 합동참모차장 공석에 김봉수 중장을 임명한 것.[26] 사실 둘 다 진급 막힌 상황이었다. 김봉수 중장은 이미 동기 2명(손식, 강호필)이 대장 계급을 달아버린 상황인지라 대장 진급이 막힌 상태였고, 정진팔 중장은 3차 정식 진급이었으나 사실상 임기제 진급이나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군단장 보직을 못 받았다. 그 대신 받은 보직이 한직으로 악명 높은 교육사령관이었다.[27] 만약 보직이동이 없었다면 그대로 계엄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실제로 합참차장 후임자인 정진팔은 계엄사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28] 현직 대장들과의 기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대장 인사 중 진급과 참모총장, 합참의장 인사는 국무회의 심의가 필요하다. 계엄 후 상황에서 대장 인사 관련 국무회의 심의는 사실상 어려운 점이다.[29] 2작사 부사령관은 중장 보직이나 소장이 직무대리 형식으로 보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