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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19:53:47

제60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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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보병사단
第六十步兵師團
The 60th Infantry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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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의 기백을 이어받은 최정예 보병사단!
창설일 1975년 8월 1일(제60훈련단)
1990년 6월 1일(제60보병사단)
상징명칭 권율(權慄)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육군동원전력사령부
경례구호 충성
규모 사단
역할 평시 예비군 교육관리
사단장 준장 김명종(육사 48기)
위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1. 개요2. 상세3. 예하부대
3.1. 사단직할대3.2. 제160보병여단 조경3.3. 제161보병여단 이신의3.4. 제162보병여단 선거이3.5. 포병여단 변이중
4. 과거부대5. 출신인물6. 기타
6.1. 근무환경6.2. 유격훈련6.3. 동원훈련6.4. 권율회관6.5. 사단가
7. 사건사고8. 여담

[clearfix]

1. 개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을 근거지로 하고 있는 육군동원전력사령부 소속 제60보병사단. 상징명칭은 권율부대로 경례 구호는 “충성”이다.

2. 상세

대한민국 육군보병 사단. 1975년에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제60훈련단으로 창설되어, 1990년 제60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육군동원전력사령부 소속이다. 원래 1990년 창설 때부터 2018년 4월 5일까지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이었으며, 정확한 창설지는 현재 포병연대 및 1개 보병연대가 머물고 있는 화전동 주둔지다. 참고로 서울의 지역방위사단인 제56보병사단과 뿌리가 같다. 제56보병사단 창설과 관련된 비석이 제60보병사단 사단장실 앞에 있을 정도. 정확히는 1984년에 제60훈련단을 제56향토방위사단으로 승격시키고, 6년 뒤인 1990년에 제56보병사단 4개 연대를 분리하면서 생긴 게 제60보병사단이다.[1]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으로 있던 역사가 있는 만큼, 부대마크방패 모양인 것도 수도방위사령부 예하부대 시절의 흔적이다.

창설 당시의 명칭인 제60훈련단 시절에는 비호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1990년 사단승격 이후에도 그 명칭은 유지되었으나 2000년대 초반 모 휘하연대에서 주창한 권율부대라는 명칭을 흡수하여 사단명을 바꾸었다. 서울특별시지역의 예비군 훈련을 담당하며, 유사시 완편되어 작전에 들어가게 된다. 2011년에 제73보병사단에 이어서 두 번째로 차기동원사단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대개편이 가속화되어 현재 육군 모든 사단 중에서 병력의 수가 가장 적은 편이다.[2]

대대편성을 보면 한 개의 중대에 4~5명의 병사가 있고 대대에 20명 남짓한 병사가 존재한다. 대대는 4개의 중대와 본부로 포병은 3개 포대와 본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지만 대대장, 중대장, 주임원사 등등 간부만 10명 정도 된다. 병사 간부 비율이 2:1인 셈. 보통 작은 작업은 중대 단위, 큰 작업은 대대 단위, 더 큰 작업은 연대 단위로 이루어지게 된다. 병사에게는 나름대로 편한 부대라고 생각 될 수 있지만 중대장 정도 되는 간부 입장에선 다른 완편부대와 다른 대우를 받으며 같이 병사와 일하고 있다. 중대장이 아니라 분대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2년 전입온 중대장이 자기는 100명의 병사를 꿈꾸고 있었는데 현실은 5명이라고 말할 정도다. 연대 하나의 병사가 100명도 안 된다. 2019년 기준 직할대를 제외하고 대대당 약 18 ~ 21명 정도이며 육군의 복무기간 단축으로 인력수급난이 심한 편이다. 최저 15명으로 부대가 돌아간 적도 있다. 코로나 시대 기준 10명이서 부대가 돌아가기도 한다. 당연히 이에 따라 근무는 가중되었고 직할대와 일반 대대의 업무강도의 차이가 깊어졌다. 동원부대인 만큼 쌍용훈련이 있는 부대에 신병들을 조금이라도 더 넣어주고 있다.

고양시의 예비군 중 6년 이하 예비군들은 전쟁이 일어날 시 대부분 제60보병사단에 편제되어 현역으로 참전하게 된다. 물론 이외에도 많은 사단으로 가지만 통상적인 사단과는 기능과 편제 및 생활이 많이 다르다.

2016년에 백상환 사단장에 의해 4개 연대의 상징명칭이 변경되었다.#, #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3. 예하부대

파일:제60보병사단 부대마크.svg
제60보병사단 예하부대
제160보병여단 제161보병여단 제162보병여단
포병여단
※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3.1. 사단직할대

3.2. 제160보병여단 조경[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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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161보병여단 이신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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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162보병여단 선거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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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포병여단 변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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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거부대

5. 출신인물

5.1. 사단장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60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사단장
00대 윤영수 예) 준장 육사 32기 제6포병여단
17대 최형욱 예) 준장 3사 사단장
18대 김인태 예) 준장 사단장
19대 김태성 예) 준장 학군 19기 제11공수특전여단 [8] [9]
20대 이동재 예) 준장 육사 사단장 [10]
21대 정현석 예) 준장 학사 3기[11] 제7공수특전여단 [12] [13]
22대 백상환 예) 준장 육사 42기 제5보병연대장
23대 김덕영 예) 준장 육사 43기 육군훈련소 참모장 [14] [15]
24대 김홍만 예) 준장 학군 25기[16] 제3공수특전여단 [17]
25대 백자성 예) 준장 육사 45기 사단장 [18]
26대 김명종 준장 육사 48기 사단장 [19]

5.2. 장교/부사관

5.3.

6. 기타

6.1. 근무환경

근처의 수방사 지역방위사단인 제56보병사단과 더불어 서울이 가까운 부대이다. 은평구 바로 옆이다보니 버스타고 조금만 가면 수색역이다. 서울 버스 702서울 버스 707 등으로 이동 시 광화문/서울역까지 30분~1시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후방지역이 고향인 현역들에게는 장점. 연신내역에서는 택시로 부대 위병소까지 15분이라 여기서 놀기도 한다.[21] 영외연대의 경우 서울 도심과 더 가깝다. 일과 후 외출 때 스타필드나 신촌, 연신내를 많이 가는 편이다. 신촌, 홍대까지 버스를 타도 30분 남짓 걸린다.

영외연대는 영내연대에 비해 출타 시 지리적 이점이 있다.

부대 차원에서는, 신병 정훈교육이나 진급자 정훈교육, 부대집중정신교육 등의 기간에 서울역사문화박물관, 전쟁기념관,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하다. 혹한기 훈련 중에는 작전지역인 서울월드컵경기장 등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절대 훈련을 하거나 교육을 받는다고는 안 했다. 군대답게 시간을 보낸다. 물론 이 또한 부대 내 업무, 보직에 따라 상황이 조금 다르다.

연대 보병의 경우, 동원훈련 같은 큰 훈련이 잡히면 진짜 자기 직전까지 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일이 정말 없으면 점심 먹기 한 시간 전까지 대기하면서 부대원들과 떠들다가 생활관 청소하거나 주둔지 청소하러 가기도 한다. 괜히 일을 만들어서 한다는 말이 나오는 부대가 아니다.

또한 사람은 적은데 해야 할 일은 많으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만능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조리병의 경우엔 상당히 힘들다. 평상시라면 힘들어도 다른 부대랑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오히려 다소 낫지만 훈련 때는 죽어난다. 특히 예비군이 오는 동원훈련 때엔 그야말로 조리병의 무덤. 모 2012군번 제60보병사단 취사병 전역자의 말로는 예비군 1200인분의 식사를 부대에 남아있는 조리병 제외 4명이서 해결했다 했을 정도로 빡시다.[22]

2011년 말에 차기동원사단으로 개편 당시 인원이 반으로 줄었기 때문에 전시동원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날 것으로 판단하였고 동원물자준비에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23~24명의 병사로 1개 대대분의 치장물자와 탄약을 창고에서 빼내는 훈련을 하였다. 당시 전시동원 집결지가 아닌 사단연병장으로 치장물자를 운반하였음에도 불구하고[23] 훈련에 참여한 병사들은 48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하였다.

2012년도 당시, 사령부 내에 방갈로까지 딸려있는 식당을 공사했다. 중대별로 모두 한 번씩 이용하게 했으나, 신임 사단장 취임 후 폐쇄되었다.[24]

나무위키를 포함한 각종 사이트에서 이 사단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데, 워낙 출신 병사가 적기 때문이다. 네이버에 있는 훈련과 관련한 글 등도 다 엄청 과거의 일들이다. 부대개편 후 사단의 모든 현역병을 다 털어넣어도 000명 수준이고 부사관장교대한민국 군무원까지 다 넣어야 인원 자릿수가 바뀐다. 인원문제로 쓸데없는 훈련을 절대 하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훈련도 워낙 대충하니 사령부에서 한마디 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평소에 뭘 하는 것도 아니다. 오후 4시에 사단장이 조깅하고 그 옆에서 대대장들과 연대병력이 옹기종기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대다. 사단 연병장에 잔디가 깔려 있다. 누가 쓸지만 정하면 진짜로 잔디 운동장에서 축구도 할 수 있다. 심지어 수영장도 있었으나, 이유는 모르지만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폐쇄되었다고 한다.[25]

예하 연대 중 160연대와 포병연대가 영외주둔지 생활을 하는데 (구)제30기계화보병사단 사령부 바로 옆에 있다.[26] 이 영외연대와 포병연대 주둔지 안에 동원훈련장인 화전동원훈련장이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영외부대인 160연대, 포병연대는 막사환경 개선공사를 진행하여 침상형에서 침대형 막사로 변경은 되었다. 하지만 사실상 침대만 놓은 거지 막사는 그대로 사용하기에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본다.

사실 편안하고 아니고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기도 하니 반드시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으레 그렇듯 부대가 작고 병은 적은데 간부가 많으면 벌어지는 일인 쓸데 없는 작업이 너무나 많다. 특히 이런 부대들은 진급에서 밀린 고위 장교들 전역준비장소처럼 활용되는 부대라서 진급에 욕심이 많은 대대장이 지휘하는 곳에 배치가 된다면 자신이 군인인지 건설 노동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작업이 많다.[27] 수방사에 100km 행군을 연례 훈련화 시킬 뻔한 주 원흉의 사단이다. 이걸로 만족 못 해 200km 행군까지 하다가 사단장 변경 후 사라졌다.

서오릉의 창릉 쪽 문화재 훼손 주범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창릉 문서 참고. 이 부대에서는 서오릉의 일부가 잘 보인다. 서오릉으로 직접 갈 수도 있으나 자세한 건 군사작전의 영역이다. 다만 서오릉 주변 산불방재나 문화재 화재진압 관련하여 민관군 협력이 있기도 하다. 그 외에 고양시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권율 장군 관련 행사로 인력지원에 아주 자주 나가기도 하며, 행주산성을 방문하기도 한다.

유사시에는 작전계획상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지만, 동원사단의 특징 상, 동원령이 선포되기 이전에는 완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위에 언급된 것처럼 매우 적은 인원이 예비군에게 지급할 많은 치장물자를 관리한다. 특히 전장비 사열이 있을 땐, 휴가자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치장 창고와 탄약고를 턴다.[28]

군수물자와 관련해서, 대한민국 육군본부, 수도방위사령부, 사단내 사열이 연례행사로 이어진다. 치장창고 포순환이나 치장총기 진공포장, 치장물자 순환은 언제 입대한지 여부에 따라 복불복이 심하다.

심지어 예비군훈련 장비 중에 수통(물통)의 생산년도가 1944년일 정도로 열약하기 그지 없다.[29]

직할대의 경우 간부와 병사 간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 물리적으로. 건물이 코앞이기 때문. 심지어 어떤 시기엔 진짜로 한 건물 안에 일반병 생활관, 중대장실, 행정실, 대대장실이 같이 들어있기도 했다.[30]

영외 부대인 160연대 모 초소에 올라가면 고양시가 다 보인다. 킨텍스도 보인다. 그리고 뒷산 넘어서 상암월드컵경기장 및 상암MBC, CJ E&M센터가 있어 행사나 공연있으면 환호성과 폭죽 터지는 걸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

부대시설, 환경은 휴양지지만, 입대년도,보직에 따라 업무 편차의 불균형이 심하다.[31] 평소 생활은 타 부대랑 비교했을 때 쾌적한 편이지만 동원훈련, 중대/연대/사단전술평가, 호국훈련, 치장창고 물자 순환 등은 심하게 힘들다.[32]

2011년도 기준으로 전국에 2개 있다는 예포대 중 대전 북쪽지역 행사에 동원되는 예포대가 여기 포병연대 소속이였다. 그래서 국군의 날을 포함해서 예포대가 동원되는 행사 전날 밤이나 당일 새벽에 위병소 근무서고 있으면 견인포들이 줄줄이 나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워낙 작은 부대다보니 영관급 장교들과 매일같이 접촉 할 수 있다. 웬만하면 대대장이 병사들의 이름은 물론 간단한 개인정보도 외우고 있고 심지어 병사들에게 관심이 많은 연대장의 경우 일부 사병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기도 한다. 연대장이 병사들과 축구를 하는 경우도 아주 가끔이지만 볼 수 있다.

2007년엔 아침 점호시 간부들과 함께 점호를 했었다. 아침점호하려고 우르르 나올때 간부들 또한 집결해서 인사과장급이 출석여부 체크를 하고 함께 애국가 부르고 복무신조 복창한 뒤 뜀걸음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둔지내에 있는 간부들 무리를 심심치 않게 볼수 있었다. 사단장 및 참모부 또한 예외없이 볼 수 있었다. 점호 끝나고 지휘관들은 주말을 제외하고 병사식당에서 항상 동석식사를 하곤 했다. 당시엔 병사들도 주말엔 뜀걸음 안했다.

아침 뜀걸음 시 제대급마다 동선이 달라서 뛰다가 멈추고 하는 게 비일비재했다.

사단 본청 건물 앞에 서있으면 고양시 전체 야경을 감상 가능하다.

만약 사단 본부대 행정병으로 배치되어 상황근무를 서거나, 정보통신대대에 배치되어 통신근무를 서게 된다면 볼수 있다.

다만, 예비군 부대 특성상 곧 전역을 앞둔 장교들이 많이 오는 편이라 무리하게 무언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편이다. 중령 이상부터는 사실상 군생활 마무리하려고 오는 수준. 물론 중대장, 포대장의 경우 소령 진급을 위해 특급전사 양성에 힘쓰긴 하나, 체력 단련시간에만 빡세게 굴리는게 전부이고, 애초에 제60보병사단에서 중대장, 포대장 할 정도면 진급 자체도 잘 안된다.

6.2. 유격훈련



동원전력사령부로 편입된 후로 실시 하지 않는다

6.3. 동원훈련

동원훈련을 여기로 왔을 경우 현역 조교들이 이 훈련 기간에는 엄청나게 고생한다는 것을 알아주자. 언뜻 다른 동원훈련부대는 안 그러냐 싶겠지만 가뜩이나 인원 적은 부대가 그 많은 예비군을 받아서 관리해야 하고[33] 이게 제일 중요한 훈련인 부대다 보니 훈련 전후로 정말로 고생한다.

만약 본인이 제60동원사단으로 동원훈련을 가게 되었는데 훈련장이 지난해와 같은 곳이 아니거나 제60동원사단 동원장이 아니라면 그 훈련은 무조건 취소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반적인 동원훈련과는 다른 훈련을 받게 될 수도 있다.

6.4. 권율회관

권율회관
權慄會館
Kwon Yul Hall
위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304-8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사단급인지라 권율회관이라는 식당이 존재한다
여기는 병사가 운영을 하며 현역 4명,상근 6명으로 운영을 한다
사단 규모에 비해 시설이 많으며 고기,치킨,피자 등등 먹거리와 노래방,목욕탕 심지어 객실도 있다.

6.5. 사단가

조국의 부름받아 모여든 우리
나라사랑[34] 조국수호 호국충정 드높다
젊은 힘 젊은 슬기 하나로 뭉쳐
철통같이 지키련다 겨례의 터전
나가자 권율부대 승리를 위하여
그 이름 자랑스런 무적의 60사단

조국의 부름받아 모여든 우리
행주대첩 위업계승 젊은 기개 드높다
필승의 신념으로 굳게 뭉쳐서
역사광역 수복위해 선봉에 서리라
나가자 권율부대 승리의 길로
그 이름 자랑스런 무적의 60사단

60사단가

7. 사건사고

|2009년 이등병이 간부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8. 여담



[1] 이 때문에 제60보병사단 홈페이지를 보면 1~4대 사단장은 제56보병사단과 동일하게 나오며 뜬금 없이 5대 사단장의 임기는 타임워프를 해서 1990년부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제56보병사단 사령부를 제60보병사단이 가져오게 되었고 제56보병사단은 새로 사령부를 짓게 되었다. 제56보병사단이 북한산 북쪽 진관동 건너편 고양시 지축동으로 신축부지에 부대시설을 짓고 이전하였는데 그 때문에 전 병력이 부대조성공사로 사역작업을 다녔다고 한다. 제60보병사단 병력도 그랬다. 매일 식사도 부대에서 추진해서 먹으며 대대별로 섹터를 나누어 절개지 녹화작업인 조립식사방블럭설치에 투입되어 장비도 없이 막노동을 했다. 지금 같으면 하지 못할 일이었다. 예산 절감차원이었는지 공사비 비리였는지 모를 일이었다.[2] 극단적으로 몇몇 대대는 명색이 대대임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숫자의 인원만 있다. 일시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아예 TO 자체가 그렇다.[3] 2012년 기준, 본부근무대에서 본부대로 정식명칭이 변경되었다.[4] 기존에 각각 정비대대와 보수대대로 개별 부대였으나 2012년부로 통합되었다.[5] 前 백호연대[6] 前 횃불연대[7] 前 화살연대[8] 원광대학교 출신[9] 2011.12.13~[10] ~2015.11.09[11] 원광대학교[12] 학사사관 출신 최초 장성 진급자[13] 2015.11.09~[14] 알자회 출신[15] ~2019[16] 계명대학교[17] 2019~2020.12[18] 2020.12~[19] 2022.12~[20] 송승환은 제21보병사단으로 입대했다.[21] 이러한 조건 때문인지 외출/외박 시 서울 및 경기도 전역이 위수지역이다.[22] 2004~2006 군번 시절엔 조리병은 꿀보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평소 훈련량이 상비사단 못지 않았다. 거기다 훈련을 완편이라 상정하고 훈련해서 한 사람당 1인 다보직을 맡아서 훈련했다.[23] 전시 동원의 경우 사단이 아닌 다른 곳으로 집결한다.[24] 완공 당시에는 식당이라기보다 포차 느낌으로 병사들끼리도 중대장 허락하에 가서 식사 및 음주를 할 수 있었다.[25] 수영장 옆에는 과거 사단장의 낚시터에서 연못으로 마개조된 곳도 있었다. 수영장은 2012년 당시 사단장명령으로 메꾸고 연못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자리에 상기된 방갈로 딸린 식당이 건설되었다. 영외 연대의 경우 이런 혜택도 없고 구막사에 열악한 환경이지만 부대 개편으로 사라졌다.[26] 무한도전에 나온 바로 거기다. (구)제30기계화보병사단 입구 지나서 좀 더 가면 있다.[27] 2000년대 당시에는 아직 병력이 상대적으로 많던 시기였고 상근예비역 20여 명으로 구성된 작업 전담반이 따로 있어서 사단 본부 쪽은 그나마 작업이 덜한 편이었다.[28] 인원이 없어 사실상 중대 군수행정병들은 행정업무, 사열, 훈련, 작업에 4중고에 시달리고 행정업무도 군수와 인사를 병행하는 등 훈련만 되면 각대대 군수행정병은 풀야근이었다.[29] 치장된 수통은 1970년대 생산품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30] 2011년에 부대가 개편되기 전에는 1개 연대가 2개의 건물을 사용하여 3층짜리 건물은 한 층마다 1개의 대대가 사용하여 한 층에 대대장실, 행정반, 중대장실, 대대통신창고, 다용도실겸 체력단련실, 이발소, 각 중대 생활관이 있었고 나머지 하나의 2층짜리 건물은 연대장실, 지휘통제실, 연대행정반, 각 지휘관실, 무기고, 비문실, 의무실, 사이버지식정보방, 강당, 다용도실, 이발소, 체력단련실, 연대본부생활관 등이 있었다.[31] 정말 일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내내 불려 다닌다, 심지어 파견도 많이간다. 저 사람은 왜 안 쓰러지지?라고 생각하며 안쓰러워할 정도다.[32] 사람은 적은데 훈련은 완편을 상정하고 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여러 보직을 맡아서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병사수에 비해 간부 비율이 높은 편이다.[33] 한분대의 8명 가량이 완편 중대 인원급 30~40명의 예비군을 통제해야 했다.[34] 수방사 예하부대 시절에는 이 부분을 "서울사수"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