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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일 | 1968년 4월 1일(제1기갑여단) | |||||
상징명칭 | 전격부대 |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
상급부대 | 제5군단 | |||||
규모 | 여단 | |||||
역할 | 제5군단 기갑지원 | |||||
여단장 | 준장 임국기(3사 29기) | |||||
위치 |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 |||||
1. 개요2. 역사3. 예하부대
3.1. 여단 직할대3.2. 제5전차대대 사자3.3. 제15전차대대 투우3.4. 제19전차대대 백호3.5. 제105기계화보병대대 진격3.6. 제138기계화보병대대 각흘3.7. 제628포병대대 천둥3.8. 제888포병대대 번개3.9. 그 외
4. 과거부대5. 출신인물6. 기타6.1. 근무환경6.2. 훈련6.3. 부대표지6.4. 상징명칭6.5. 여단가6.6. 편의시설
7. 여담6.6.1. PX6.6.2. 역사관6.6.3. 산책로6.6.4. 전격회관6.6.5. 영내카페6.6.6. 전격도서관6.6.7. 노래방 오락실6.6.8. WIN-WIN 클럽6.6.9. 카이저 클럽
6.7. 종교시설6.8. 캠프 카이저6.9. 부대영상[clearfix]
1. 개요
전격!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기갑여단인 제1기갑여단 전격부대는 제5군단 예하[1]의 독립전투여단(獨立戰鬪旅團)이다.현재 제1기갑여단은 최전방의 제6보병사단(좌청성), 제3보병사단(우백골)과 국군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제5포병여단과 함께 중부전선의 심장부 "철의 삼각지대" 철원을 수사불패(雖死不敗)의 정신으로 방어하는 제5군단의 최정예(最精銳) 주력 부대이다.
경례구호는 '전격(電擊)'을 사용한다.
2. 역사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철원 일대에 주둔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전차대대(제5전차대대, 1954년 2월 21일 창설[2])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기갑여단이다. 국군 최초의 전차대대는 1968년 4월 1일 전차대대를 통합하며 제1기갑여단을 창설[3]하였다.지금은 2기갑여단가가 바뀌었지만 초창기엔 초대 여단장이 직접 작사한 여단가도 같았다. 기갑여단 최초의 전차는 미국에게 원조받은 M48A1이다. 이후 1970년에 미국으로부터 M48A2C를 공여받아 배치하였고, 1978년부터 현대정공(현 현대로템)에서 전량 M48A3K 또는 M48A5K으로 개량되었다. 참조 - 대한뉴스 제670호-국토 방위는 철통 같다(제1 및 2기갑 여단 창설 기념식)]하고, 1971년 10월 4일 제1군단에 배속되었으나 1972년 10월 13일 제5군단으로 이관되었고, 여단 예하의 제1전차대대[4]는 군일명 제24호에 의하여 제2군단 독립 전차대대로서 이관되었다.[5] 이후 여단에는 1973년 제628자주포병대대와 제105기계화보병대대가 증편되었고, 1994년 제25전차대대[6]가 제26기계화보병사단 제76기계화보병여단으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2018년 9월 1일 제19전차대대와 제138기계화보병대대가 증편되면서 현재의 3개 전차대대, 2개 기계화보병대대, 1개 자주포병대대, 8개 직할부대 편제를 구성하게 되었다.
창설 당시는 경기도 가평군 망자면 현리에 주둔하였으나, 1972년 10월 1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로 1차 부대이동을 실시하였고, 이후 1977년 5월 27일 현재 위치로 2차 부대이동을 실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1기갑여단 사령부 부지로 사용하는 곳은, 주한미군 제7보병사단 제1여단 사령부 캠프 카이저가 사용하던 곳으로, 캠프 카이저가 철수하면서 제1기갑여단에게 1977년 5월 25일 부지를 인수·인계하게 되었다. 덕분에 각 사단 예하 여단이나 타 독립 여단보다 부지가 매우 넓은 데 비해, 기갑부대 특성상 건물 수도 적고 인원도 적다.[7] 여단 예하 부대가 대부분 여단 사령부 영내에 있고, 여단으로 2018년 9월 1일 예속 전환된 제19전차대대와 제138기계화보병대대가 여단 사령부 영내로 이전할 계획이 있지만, 이전해 들어와도 넓은 부지 덕에 여유가 있다. 그러나 작전상 여단 사령부 영내 이전 계획이 없는 제628자주포병대대는 최전방 철원에 우두커니 버티고 서 있다.[8]
제5군단 소속이었던 제8기동사단이 기계화가 되기 전까지, 군단 유일의 기계화보병대대[9]를 보유한 부대였다. 2016년 11월엔 제8기계화보병사단이 제7기동군단으로 이관되었고 제26기계화보병사단(해체)과 통합하여 경기도 양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다시 군단 내에서 유일하게 기계화보병대대를 보유한 부대가 되었다. 그리고 6군단이 해체되며 5기갑여단이 5군단 산하로 편입되며 다시 유일한 기계화보병 보유 부대라는 자랑은 내려놓게 되었다.[10]
3. 예하부대
제1기갑여단은 예하 3개 전차대대와 2개 기계화보병대대, 2개 포병대대 (영내 3개 대대, 영외 4개 대대) 그리고 공병대 방공대 등의 8개 직할대(영내)로 편제되어 있다.그 외 2개 동원사단의 전차대대를 지원받아 영내에 주둔시키고 있다.
제1기갑여단의 주력 전차 K-1E1[11] |
3.1. 여단 직할대
- 공병대: 1968년 4월 11일에 기갑여단에서 창설된 국군 최초의 기갑전투공병(Armored Engineer / Armored Sapper)부대이다. 기갑부대의 공병대는 전차와 장갑차의 통로개척 및 도하지원을 담당한다. 기갑장비를 도하시키기 위한 K-1 AVLB 교량전차, 지뢰지대를 개척하고 진격을 보장하기 위한 M9 ACE 전투장갑도자와 미클릭, 또한 이동 시에는 K200 APC를 이용하는 등 기갑부대에 걸맞은 기계화 공병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 숫자도 많기 때문에 기갑부대 공병의 특성상 기갑특기의 병사와 간부가 운용 및 관리한다. 2018년 말에 공병대로 개편됐다. 중대가 아닌 대급 부대 공병대인 이유는, 중대라고 하기에는 부대 규모가 크고 단독작전 임무의 중요도가 높아서 부대장의 계급이 대위가 아닌 영관급 소령이기 때문이다.
- 방공대: K-30 SAM (비호복합)을 운용한다. 방공대는 여단 사령부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소대별로 순환하며 전방 방공 진지(6사단 3사단 지역)에서 근무한다. 방공중대가 아닌 대급 부대 방공대이다.
- 정보중대: 정보통신중대와 다른 부대로 2018년 12월 1일 신설, TOD 등을 운용한다. 병력 위주의 경계작전 체계는 신형 TOD 등 기동형 과학화 장비 체계로 전환되고 있다. 각 소대별로 순환하며 전방 소초(6사단 3사단 지역)에서 근무한다.
- 정보통신대: 지상전술 C4I체계 운용, 위성장비 운용, 홈페이지 관리, 네트워크 지원, 여단 무전관리, 화상회의, 각종 행사 음성망 지원 등 업무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
- 화생방중대: 2018년 12월 1일에 신설되었다. K-10 제독차(K-721A1) 운용
- 전투근무지원대대: 2018년 11월 29일 창설된 육군 최초의 전투근무지원대대이다. 기존의 정비근무대(일반정비중대, 궤도정비중대), 보수중대, 의무중대, 직할대 3개 부대를 본부중대, 2개 정비중대, 보수중대, 의무중대로 통합·개편했다. 이중 본부중대는 2023년 해체되었다.
- 본부근무대: 여단 사령부의 인사, 정보, 작전, 군수, 교훈, 정훈 등 각 참모부와 경비소대
여단 직할대는 여단장 직속 부대로서 "◯◯여단(사단) 예하 ◯◯연대 ◯◯대대 ◯◯중대"가 아닌, "◯◯여단(사단) 직할 ◯◯중대(대, 대대)"의 편제로 상급 부대장(1기갑의 경우 여단장)이 직접 관리하는 부대를 말한다. (예: 제1기갑여단 공병대) 예하 부대의 경우 언제든 타 상급 여단(사단)으로 예속전환될 가능성도 있지만, 직할대는 상급 부대인 여단(사단)이 해체될 정도의 개편이 없는 이상 예속전환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상급 부대에 대한 소속감이 매우 강하다.
이들 부대는 상징명칭도 상급부대의 것을 사용한다. (예: "전격부대 방공대", 예하부대는 "전격부대 사자대대" 처럼 각 연대 대대 별로 상징명칭이 있다. 예: "6사단 예하 2연대 1대대"는 "청성부대 예하 용문산부대 흑룡대대") 또한 통상명칭(4자리 숫자)도 상급부대인 여단 사령부와 같은 4자리 숫자를 사용한다.
1기갑여단 직할대는 여단 예하 대대를 전투 지원하는 부대로서 부대원을 예하 대대로 파견 또는 지원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여단장 직속의 부대원이기 때문에 파견받은 예하 대대장이 여단 본부나 소속 부대에 보고 없이 규정 외의 일을 시킬 수 없다.
공병대 K1AVLB 교량전차 | 방공대 K-30 비호복합 |
3.2. 제5전차대대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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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대대 |
여단 영내 전차대대 중 하나이며 여단 창설 원년 대대이다. K-1E1 전차를 주력으로 운용한다.[13]
3.3. 제15전차대대 투우
여단 영내 전차대대 중 하나이다. K-1E1 전차를 주력으로 운용한다.3.4. 제19전차대대 백호
여단 영외 전차대대이다.수도방위사령부 소속으로 1970년 7월 1일 창설되어 독립문 근처 서대문구 현저동에 위치해 있었다. 2010년 12월 1일부로 제8보병사단이 기계화 되고, 2011년부터 각 보병연대가 기계화보병여단으로 개편되면서 수도방위사령부 직할 19전차대대는 2011년 12월 1일부로 제8기계화보병사단 제16기계화보병여단으로 예속전환되었다.
2018년 11월 30일 8사단이 26사단과 통합하여 과거 26사단이 주둔했던 경기도 양주로 이동하고 8사단 예하였던 16기보여단은 수도기계화보병사단으로 예속전환 되었으나 19전차대대는 2018년 9월 1일부로 제1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 되었다. K-1E1전차를 주력으로 운용한다.
현재 제1기갑여단 예하로 사령부 영외에 있지만 영내 이전이 계획되어 있다. 여단 예하 대대 중에 가장 후방(여단에서 5km 15분 정도)에 있는 부대이다
입구 앞에 백호동상이 큼지막하게 세워져있다.
3.5. 제105기계화보병대대 진격
여단 영내 기계화보병대대이다. K200A1을 주력으로 운용한다. 5군단 최초의 기계화보병대대이다.[14]3.6. 제138기계화보병대대 각흘
여단 영외 기계화보병대대이다. 前 제8기계화보병사단 21기계화보병여단 소속이었다. 2018년 11월 30일 8사단이 26사단과 통합하여 과거 26사단이 주둔했던 경기도 양주로 이동하고 8사단 예하였던 21기보여단은 해체되었으나 138기보대대는 2018년 9월 1일부로 제1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 되었다.[15]K200A1 운용대대
3.7. 제628포병대대 천둥
여단 영외 포병대대이다. K-55A1를 주력 무기로 운용한다. 여단의 대대급 부대 중 유이하게 포천이 아닌 전방 철원에 위치하고 있다.[16] 1953년 창설, 베트남 전쟁에 맹호부대 소속으로 파견되었으며, 참전 중 해병대 제2여단(청룡부대)에 배속기도 했다.[17]3.8. 제888포병대대 번개
대한민국 최초 자주포 창설부대[18]이면서, 전군 최초로 K9A1을 배치받은 부대이다.[19] 2022년 10월부로 1기갑여단의 소속이 됐다. 628포병대대와 마찬가지로 부대가 철원에 위치해 있다. 여담으로 기갑여단 중에서 유일하게 K-9 자주포를 운용하는 부대이기도 하다.[20]제5포병여단 시절인 2000년 2월 28일 TV 내무반 신고합니다에 방송탔었다. #
3.9. 그 외
- 제75보병사단 (철마부대) 직할 전차대대: 사단 주둔지(남양주시)가 아니라 제1기갑여단에 배속되어 있다. M48A5K를 주력으로 운용한다. 현재는 독자적인 막사는 없이 직할대 통합막사의 일부 구역을 할당받아 사용하고 있다. 일단 탄약고 등의 부대시설은 완공되었지만, 동원사단의 전차대대이고 부대 규모가 워낙 작아서 이런 한 가족 두 지붕 생활은 계속될 것 같다.
- 제73보병사단 (충일부대) 직할 전차대대: 여단 영외 제19전차대대 내에 있는 전차대대이다. 사단 주둔지(남양주시)가 아니라 제8기계화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있었으나, 19전차대대가 제1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 되면서 8사단과 함께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1기갑여단에 배속되어서 19전차대대와 두 가족 한 지붕 생활을 하고 있다. M48A5K를 주력으로 운용한다. 동원사단의 전차대대라서 역시 부대 규모는 작다. 2011년 동원사단 중 최초로 전차중대가 전차대대로 승격되었다. 2024년부로 M48A5K가 순차적으로 비축이 진행되고있다. 차후 K-1전차로 대체할 예정
- 포병대대 증편 (예정): 국방개혁2.0으로 기계화사단은 줄이고 있지만 기갑여단은 증강하고 있다.[21] 기갑여단에 전차대대와 기보대대가 증편되면서 포병대대의 증편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이미 서부전선의 제2기갑여단은 30사단이 30기갑여단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1개 포병대대를 30사단으로부터 예속전환 시켜 포병대대를 증편했다. 30기갑여단은 창설과 동시에 2개 포병대대를 보유하고 있다. 중동부전선의 제1기갑여단 및 각 기갑여단은 6군단과 8군단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전차대대 기보대대 포병대대를 증편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름만 여단이지 규모는 사단급이다.
현재 해체되었거나 해체가 예정된 사단의 장비와 인력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미 타이거 4.0에 의한 전력화의 일환으로 각 부대로 재배치 되고 있으며 육군 전체 구조를 슬림화하면서 만성적인 장비와 병력자원의 부족을 해소하고 첨단 장비와 기동 장비의 증설로 각 부대의 전투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4. 과거부대
- 제22전차대대: 現 제6보병사단 직할 전차대대(1983년 예속전환)
- 제25전차대대: 前 제26기계화보병사단 예하 76기계화보병여단(1994년 예속전환), 76여단과 함께 해체(2018년)
5. 출신인물
5.1. 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여단장. |
역대 제1기갑여단장 | |||||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타 |
초대 | 손장래 | 예) 소장 | 육사 9기 | 前 제25보병사단장 | 前 주미한국대사관 공사, 주말레이시아 대사 [22] |
7대 | 홍성태 | 예) 준장 | 육사 14기 | 前 육군기갑학교장 | [23] |
10대 | 이유수 | 예) 중장 | 육사 20기 | 前 제7기동군단장 | 기갑출신 첫 3성장군, 기갑출신 첫 군단장 |
20대 | 김주명 | 예) 준장 | 육사 34기 | 前 65사단장 | |
21대 | 박남수 | 예) 중장 | 육사 35기 | 前 수도방위사령관, 前 육군사관학교장 | 기갑출신 첫 수도방위사령관, 기갑출신 첫 육군사관학교장 |
24대 | 주은식 | 예) 준장 | 육사 36기 | 前 여단장 | [24] |
25대 | 김정천 | 예) 준장 | 학군 22기 | 前 육군군수학교장 | [25] [26] |
26대 | 신현기 | 예) 준장 | 육사 43기 | 前 제203특공여단장 | |
27대 | 박철희 | 예) 준장 | 육사 41기 | 前 여단장 | [27] |
29대 | 김창수 | 예)준장 | 3사 23기 | 前 제5군단 부군단장 | [28] |
30대 | 조창래 | 예)준장 | 육사 45기 | 前 여단장 | [29][30] |
31대 | 김병기 | 준장 | 육사 49기 | 現 제5기갑여단장 | |
32대 | 이영규 | 준장 | 육사 48기 | 前 여단장 | 前 제2군단 참모장, 제1군단 작전처장 |
33대 | 신창대 | 준장 | 3사 26기 | 前 여단장 | 前 제30기갑여단 여단장 |
34대 | 박중동 | 준장 | 육사 50기 | 前 여단장 | 前 제8군단 참모장, 제1기갑여단장 |
35대 | 임국기 | 준장 | 3사 29기 | 現 여단장 | 前 제13특수임무여단장 |
5.2. 장교
- 신수용: 학사장교. 5전차대대. 본부중대장
5.3. 병
- 김창훈
2002년 제1기갑여단 105 기보대 1중대 1소대 전역
- 배기철 - 민선 7기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1978년 2월 2일 입대, 무선전화병(통신병)으로 복무, 1980년 10월 30일 병장 만기전역.
- 정덕현
제1기갑여단 예하 105기계화보병대대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 정대원
제1기갑여단 직할대 본부근무대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경비소대에서 악명을 떨쳤으며 현재까지도 화제이다.
- 이혜성
제1기갑여단 예하 105기계화보병대대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 황건
제 1기갑여단 138기계화보병대대에서 k200A1 조종수로 군복무를 마쳤다.
- 김문규
제1기갑여단 15전차 본부중대 수송부에서 구난차량 운전병과 5분 대기조 부분대장으로 복무했다.
6. 기타
여단 사령부 부지가 굉장히 넓어서(3.174km²/96 만평) 가까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부대 위병소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지만, 위병소에서 영내 부지 중앙 부근에 있는 생활관 조차 걸어서 15분 이상 걸린다. 때문에 부대 안을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소속 병사들도 막연히 넓다~고만 느낄 뿐, 일반적으로 소속 대대 이외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로 넓은지 모르는 병사가 많다.[32]시설도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있으며 영내 및 영외의 모든 부대가 침대형 신 막사를 사용하고 있다. 각 대대별로 단독 신 막사를 사용하고 직할대는 통합 신 막사를 사용하지만 그중 규모가 큰 공병대와 방공대는 단독 신 막사를 사용하고 있다.
부대 크기에 대해 덧붙여 설명하면, 단일 규모 주둔지로서 국내에서 가장 넓은 부지는 평택 미군기지(420만 평)이고, 그다음이 용산 미군기지(280만 평)이다. 한국군 단일 규모 주둔지 중 가장 넓은 곳은 모 지역에 위치한 탄약창(350만 평)이며 제1기갑여단은 한국군 부대 주둔지로서는 세네 번째 부지 넓이인 96만 평을 보유하고 있다.[33] 부대 관계자가 "인구 24,000명이 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2.93km²/88.6 만평)보다도 크다."고 설명할 정도이다.[34]
사령부 영내에 산정호수에서 한탄강까지 이르는 지류 하천도 흐르고 폭포도 있다. 폭포는 길이 80여 미터, 높이 10여 미터, 하천은 폭 30여 미터의 협곡으로 깊이가 폭포에서는 10여 미터 정도이나, 한탄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다다르면 깊이 40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협곡이 된다. 캠프 카이저 시절부터 70여 년 가까이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지역으로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당연히 웹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도 찾기 힘들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그야말로 절경이다. 부대의 허가를 받으면 들어가 볼 수 있으나 보안상 매우 까다롭다.[35]
그야말로 정통 기갑부대이다. 독립 여단급 부대이지만, 보병부대 경험 없이 처음부터 주력 전차(MBT)를 3개 대대 운용하는 최초의 기갑여단으로 창설되었고, 당시 가장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기갑부대였다. 현재 육군에는 막강한 규모와 화력의 기계화사단이 다수 존재하지만, 결코 정통성과 기갑부대로서의 존재감은 뒤처지지 않는다.
그러나, 예전에는 이 부대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전후 창설된 여단급 부대이고, 5군단 포병여단은 어느 정도 높은 인지도를 가진 반면, 군사기밀 취급을 받던 기갑여단은 인지도가 낮았다. 더욱이 전방에 6사단과 3사단이 있고 인근에 8사단(前 5군단/現 7군단)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부대의 존재에 대하여 더욱더 묻히기 쉬웠다.[36]
게다가 검색창에서 1기갑여단을 검색하면 아직까지도 "주한미군 1기갑여단"이라는 결과가 많이 표시된다. 1965년 7월부터 2015년 7월까지 한반도에 주둔한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 예하 "제1기갑여단전투단"(1st Armored Brigade Combat Team)[37]으로 한반도 방어 임무 약 50주년이 되는 2015년 7월에 공식 해체되었다.
2018년 8월까지 "1기갑" 이라고 하면 "수기사?" 라면서 수기사 예하였던 제1기갑기계화보병여단(흔히 1기갑기보여단 / 現 8사단 예하)[38]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서로는 역사적으로도 관계없고 기갑부대와 기계화보병부대는 엄연히 다르다. 더욱이 부대 마크마저도 다르니 혼동하지 말자.[39]
5군단 예하 독립전투여단(獨立戰鬪旅團)인 '제1기갑여단'(지휘관:장성급 준장)은 전차대대 3개대대, 기계화보병대대 2개대대, 포병대대 2개대대 그리고 여단 전속 공병대 방공대 등 사단급에 준하는 8개 직할대를 갖춘 편제이다. 그러나 前 수기사/現 8사단 예하 '제1기갑기계화보병여단'(지휘관: 영관급 대령)은 전차대대 1개대대, 기계화보병대대 2개대대 군수지원대대 1개대대의 편제였다.(현재는 3개 기계화보병대대 편제) 그리고 사단 예하 여단과 연대 이하의 지휘소는 본부라고 부르지만, 독립여단 이상의 부대 지휘소는 사령부(사령관이 소속 부대를 지휘·운영하기 위한 본부 또는 지휘기구. 군대의 여단, 함대, 비행단급 이상의 지휘부, 또는 사령관이라는 명칭의 지휘관이 배치되는 곳)라고 불린다. 또한, 독립전투여단(獨立戰鬪旅團)인 제1기갑여단은 합동참모의장 마저도 평시의 부대이동 등 주요 군사사항은 국방부장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한다.[40] 이처럼 같은 여단이라도 사단급의 단독 작전과 전투 능력을 보유한 군단 예하 독립 기갑여단과 단독 작전이 어려운 사단 편제 하의 기계화보병여단은 그 규모 및 지위가 다르며 그 차이가 매우 크다. 게다가 현재(2020년)는 제8기보사단 제1기갑기계화보병여단 예하 18전차대대가 수기사 제16기보여단의 137기보대대와 맞트레이드 되어 제1기갑기계화보병여단은 전차대대 없이 3개 기계화보병대대로만 편제되어 있다.
2018년 9월 前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1기갑기계화보병여단'은 제8기계화보병사단 '제16기계화보병여단'과 (여단급) 맞트레이드 되어 現 제8기계화보병사단으로 예속전환 되었다. 그리고 제8기보사단에서 수기사로 예속전환된 '제16기계화보병여단'의 19전차대대는 수기사가 아닌 제1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 되었다.
이후 2019년 말, 제8기보사단 제1기갑기계화보병여단의 18전차대대와 수기사 제16기보여단의 137기보대대가 (대대급) 맞트레이드 되어 두 대대는 1년 만에 원래의 (여단은 바뀌었지만) 각자 사단으로 복귀했다.
1기갑여단과 1기갑기계화보병여단의 구분 | ||
고유명칭 | 제1기갑여단 | 제1기갑기계화보병여단 |
상징명칭 | 전격부대 | 번개부대 |
창설시기 | 1968년 4월 1일 | 1948년 1월 1일 |
소속부대 | 제5군단 예하 독립여단 | 제8기계화보병사단 예하 |
전차대대 | 3개 대대 | 없음 |
기보대대 | 2개 대대 | 3개 대대 |
포병대대 | 2개 대대 | 없음 |
직할부대 | 공병대 방공대 등 8개 부대 | 본부 및 1개 군수지원대대 |
부대표지 | 기갑마크 (오리지널) | 오뚝이마크 (8사단) |
지휘관 | (여단장) 장성급 준장 | (여단장) 영관급 대령 |
병종 | 기갑 | 기계화보병 |
6.1. 근무환경
제1기갑여단은 여단 사령부에 제5전차대대, 제15전차대대, 제105기계화보병대대 그리고 여단 직할대가 주둔하고 있다.영외 대대는 전방 철원의 제628포병대대 한 곳뿐이었으나, 2018년 9월에 제19전차대대와 제138기계화보병대대가 8사단에서 1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 되면서 세 곳으로 늘었다. 예속 전환된 2개 영외 대대는 여단 사령부 후방의 8사단 시절부터 주둔하던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령부에서 매우 가깝다.
6.2. 훈련
신병은 2주일간의 신병보호 기간 후에 1박 2일간의 이등병 캠프를 통해 자대 생활교육과 안보교육 등을 받는다. 이등병 캠프는 매달 있으나 후반기 교육 후 자대에 배치받는 시기에 따라 일병으로 진급한 이후 참가하는 병사도 있다. 적극적으로 질문, 답변하며 참여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1박2일 포상휴가를 받을 수 있다. 군 생활 중 유일하게 GOP에도 가볼 수 있다.
전방 부대이지만 5군단 예비부대이기 때문에 여단급 전술 훈련 외에도 군단급 FTX, 인근 사단과 함께 하는 공조연합 훈련 등 크고 작은 별의별 훈련이 거의 매달 있다. 심지어 2박 3일 짜리도 있고 기계화보병대대는 3분대기 5분대기 비상훈련도 거의 매주 있다. 훈련 분위기는 좋은 편이지만 기동훈련과 비상대기는 몸에 배어 있다. 정비했다 싶으면 훈련이고, 지원부대(통신, 정비)는 한 달 내내 지원 나가 있는 경우도 있다. 천둥대대는 여단 단독 훈련과 더불어 군단 포병부대의 훈련에도 참가하며 정기적으로 한미연합 훈련에도 참가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5군단 소속의 제1기갑여단이 7군단의 야외기동훈련에 참가하기도 한다. 특히 2017년 11월에 7군단은 예하의 제11사단과 제26사단이 동시에 ‘야외기동훈련’을 실시했고 여기에 제1기갑여단의 전차대대와 공병대 등이 포함되어 함께 훈련했는데, 훈련에는 유엔군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인 빈센트 브룩스 미육군 대장이 참관하여 브리핑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훈련 양은 많으며, 전투장비지휘검열과 혹한기 훈련은 물론이며 호국 훈련은 매년 참가하고 5군단이 보유한 단일 훈련장으로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승진훈련장(勝進訓鍊場)이 매우 가깝기 때문에 자주 간다.[42] 또한 철원에 위치한 지포리 사격장[43]과도 꽤나 가까워서 기관총 사격이나 전차포 사격훈련도 해마다 한다. 그래서인지 멀리서 전차포 소리가 자주 들린다.[44]
전술훈련을 할 때는 제6보병사단에서 관리하던 심일훈련장이나 오가리 훈련장을 방문하기도 한다. 심일훈련장은 한때 6사단 예하 부대였으나 현재는 해체되어 전술훈련장으로만 쓰이고 있다. 6보병사단이랑 매우 가깝기 때문에 6사단 주도로 국지도발 훈련을 자주 하는 편이다.
기갑부대라도 유격 훈련은 매년 실시하고 있으며 전차대대와 포병대대를 포함하여 1기갑여단의 전 부대가 628포병대대 옆에 위치한 금학산 유격훈련장에서 4박5일의 유격훈련에 참가한다. 유격 행군은 입소전 20킬로미터 퇴소 후 40킬로미터를 실시한다. 2021년 이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야외훈련이 제한되면서 금학산 유격훈련장은 폐쇄되었으며 대신 2022년 이후 3사단 백골유격장과 6사단 승포유격장에서 4박5일 유격훈련에 참가한다.
흔히들 ‘3보 이상 승차’하는 기갑 및 기계화보병은 행군이 없거나 별것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행군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행군은 모든 병종이 실시한다. 물론 기갑부대답게 타 부대보다 많은 전차병과 장갑차 조종수를 보유하고 있기에 행군 시 선두에서 방탄모도 없이 베레모 (또는 정글모) 쓰고 신형 전투조끼에 K5 권총[45] 하나 달랑 차고 걸어 다니는 전차병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신형 완전군장의 도입으로 인해 전차병 일반보병 구분 없이 모두 훈련간 완전군장을 착용하고 행군을 실시한다.[46]
2023년부터 2024년까지 1년이라는 시간동안 무려 여단장이 세번이나 바뀌였다. 부임하는 여단장에 따라 훈련 강도나 부대 규정이 상이하다.
6.3. 부대표지
제1기갑여단의 부대마크[47]는 1968년 4월1일 창설 이후 변함이 없다.부대표지(部隊標識)가 정식 용어이다.
마름모꼴 - "보병, 포병, 전차의 제병 합동전술"
적색 - "포병부대의 막강한 화력"
황색 - "기갑부대의 강력한 충격력"
청색 - "기계화보병의 신속한 기동력"
화살표 - "공격부대의 최첨단에서 적진을 향해 과감히 돌격하는 공세적인 필승의 의지"
육군은 2005년부터 저시인성(위장색) 부대표지를 전투복에 부착하기 시작했다. 국방부 직할부대와 합동참모본부, 공군, 해군, 해병대는 부대표지를 부착하지 않는다.
제1기갑여단, 제2기갑여단 창설 당시부터 사용중인 기갑여단 부대표지는 이후 처음부터 기갑여단으로 창설된 제3기갑여단, 제5기갑여단도 동일한 엠블럼에 숫자만 바꿔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보병부대에서 개편된 기갑여단은 부대표지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새롭게 디자인하여 사용하고 있다.
제102보병여단의 역사를 계승하며 (2007년 12월 1일) 개편된 제102기갑여단(일출부대)은 보병여단 시절의 부대표지를 계승하고 있다.
제11기계화보병사단과 제20기계화보병사단(해체)이 통합하면서 제11기계화보병사단 예하 제20기계화보병여단의 역사를 계승하며 (2019년11월29일) 독립 개편된 제3군단 예하 제20기갑여단(독수리부대)은 제3군단의 부대표지를 인용하여 부대표지를 새롭게 제작하였다. (제20기갑여단은 제20기계화보병사단을 계승한 것이 아니다.)
제30기계화보병사단(해체)의 역사를 계승하며 (2020년 11월 30일) 개편된 제30기갑여단(필승부대)은 기계화보병사단 시절의 부대표지를 계승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같은 기갑마크에 숫자만 다른 제2기갑여단(충성부대), 제3기갑여단(번개부대), 제5기갑여단(철풍부대)과 구분하기 어렵다. 제1기갑여단(전격부대)은 기갑마크에 "전격"의 상징인 "번개"를 형상화한 마크를 사용하기도 한다.또한 부대마크와 예하대대의 상징물들을 형상화하여 코인 2022년 신규로 제작하였다.[48]
6.4. 상징명칭
전격(電擊), 전격부대(電擊部隊)라는 경례구호와 상징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은 1989년 제10대 여단장 이유수 장군이 '필승'이라는 구호는 기갑부대의 특성에 어울리지 않고, 또 인접 사단과 동일한 구호 사용으로 부대 식별이 곤란하며, 부대에 대한 자긍심 또한 미약하다고 판단, 이에 기갑부대의 특성을 상징할 수 있는 구호를 찾던 중 당시 여단장의 지휘 목표인 '공세적인 선봉 전격 부대 육성'이라는 데서 착안하여 전격이라는 용어를 경례구호와 함께 부대 상징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격이란 "기동은 번갯불과 같아야 한다. 번갯불이 보일 때는 벼락은 이미 떨어진 것과 같이 적이 아군을 발견하였을 때는 아군은 적의 배후에 위치하고 꼬리만 보여서 적이 반격할 여지가 없게 되어 있어야 한다."는 프랑스의 전략가 '자크 앙투안 기베르(Jacques Antoine Guibert)' 장군의 1772년 전술 일반 이론 저술에 나오는 내용으로, 신속한 기동의 가치이론을 상징하며 (이후 영국의 군사학자인 '존 풀러(John Fuller)'와 전쟁사학자 '바실 헨리 리델 하트(Basil Henry Liddell Hart)'에 의해 연구되었으며 독일의 전략가 '하인츠 구데리안(Heinz Wilhelm Guderian )'이 처음 이 개념을 적용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 기동전술 개념을 발전시킨 기갑부대 기동전의 군사교리를 blitzkrieg(블리츠크리크)/전격전(電擊戰)이라고 형용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전격이란 번개와 같은 전차의 신속한 기동성을 의미하며, 치명적인 화력과 충격적 기세를 발휘하여 적의 전투력을 결정적으로 격멸시켜 전투를 이끈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blitzkrieg는 독일어다. blitz(번개, 섬광, 전광)+krieg(전쟁, 전투)의 합성어로 '번개와 같이 빠른 전투'라는 뜻이며 독일어 사전적 의미는 전격전(電擊戰)으로 고유명사화 되었다. 영어권에서는 독일어 blitz를 전격적인 맹공격(공세)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blitz가 영어로 받아들여진 것처럼 일반적으로 영어권에서도 '전격전'을 독일어 blitzkrieg를 그대로 사용하지만, 굳이 번역하여 "Lightning war"로 사용하기도 한다. 번역하면 "번개전"이 될 것이며 “전격전”이라는 의미는 되지 않는다.
blitz meaning in English
noun: an intensive or sudden military attack.
verb: attack or seriously damage (a place) in a blitz.
고대(古代) 대륙의 주(周)나라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49]이 지었다는 "육도(六韜)"라는 병서(兵書)에 병법으로서 전격(電擊)에 대한 설명이 기술되어 있다.
육도(六韜)는 문도(文韜), 용도(龍韜), 호도(虎韜), 견도(犬韜), 무도(武韜), 표도(豹韜)의 6장 60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호도(虎韜)의 군용 31편에 전차(전투 용 마차)를 이용한 전술에 대해 쓰여진 부분이 있다. “大扶胥衝車三十六乘, 螳螂武士三人共載, 可以擊縱橫, 敗强敵. 輕車騎寇, 一名電車, 兵法謂之電擊. 陷堅陣, 敗步騎.”, 그 뜻은 "대형 (돌격용) 충차 36대가 있다. 당랑(사마귀)처럼 (용맹한) 무사 3명을 태우고, (적진을) 종횡으로 공격하여, 강한 적을 물리칠 수가 있다. (이를) 치차기구, 일명 전차(電車)라고 하며, 병법에서 전격(電擊)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적의 진지를 무너트리고, 보병과 기병을 격파한다."이다.
현대 중국에서는 전격전(電擊戰)을 "閃電戰(闪电战 shǎndiànzhàn)"이라 하며 의미는 "Lightning war"에 가깝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에서는 일본식 한자로 "電撃戦(dengekisen)"이라고 쓰고 발음한다.
* 雖死不敗: 수사불패 - 비록 죽을지라도 패하지 않겠다.
여단은 여단의 상징물을 토대로 엠블럼을 제작하였으며 기계화부대를 나타내는 스프라켓를 번개가 뚫고 지나가며 여단의 최초, 최고의 원팀이라는 부대정신이 들어가도록 제작하고 전격의 글씨를 부각한 엠블럼을 2023년 제작하였다.
6.5. 여단가
선열이 목숨 바쳐 지켜 오던 이 강산 찬란한 아침 햇빛 우렁찬 전차 소리 보아라 우뚝 선 기갑여단 용사 민족의 자랑 기갑여단 용사 한 치의 땅이라도 무어라 뺏길쏘냐 무찌르는 전열에서 우리는 앞장서리 무찌르는 전열에서 우리는 앞장서리! |
초대 기갑여단장 손장래 장군이 직접 작사한 여단가이다.
타 부대의 사단(여단)가와 다른 특이한 점은, 가사에 ◯◯사단과 ◯◯부대같은 고유명칭이나 상징명칭 없이 최초의 기갑여단 답게 오로지 기갑여단이라는 호칭만 있다는 것이다. (타 부대의 경우 가사 안에 "3사단", "5군단 포병", "제2기갑여단" 등의 호칭이 들어있다.)
1968년 4월 1일에 제1, 제2기갑여단이 창설되었을 때 기갑여단은 제1, 제2기갑여단뿐이었고 처음에는 두 여단이 하나의 부대로 인식되어 여단장도 같았기 때문에 초대 여단장 손장래 장군은 어느 한쪽의 제1 또는 제2를 붙이지 않고 기갑여단으로 통일하여 작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갑여단을 기갑사단으로 개편할 계획이었으나 이루지 못했다) 이후 제1기갑여단이 제1군단에서 제5군단으로 예속전환 되면서, 여단가는 국군 최초의 기갑여단으로 인정받은 제1기갑여단이 계승하게 되었고 제2기갑여단은 새로운 여단가를 제작하였다.
6.6. 편의시설
2010년부터 2017년 사이에 여단장이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부임하는 여단장마다 장병복지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던 덕분에, 편의시설이 많이 생겼다.6.6.1. PX
PX는 영내외 각 대대와 직할대 PX, 영외 간부 숙소 PX를 포함해서 7개(영내 3, 영외 4)의 PX가 존재한다.직할대는 통합막사 PX를 이용하기 때문에 일과시간 이후에는 PX가 미어터지는 불편함이 있다. 그래서 간혹 가까운 진격대대 PX를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진격대대에서도 물건이 없으면 직할대 PX를 이용한다. 직할대 통합막사 PX 옆에는 민간업자가 운영하는 군장점이 있었으나 현재는 위병소 근처 이마트24 편의점 옆으로 이전하였다.
영내 진격대대의 PX는 영외 구 막사에서 영내 신 막사로 이전하면서 규모가 축소되었지만, 구 막사 시절에는 자동차 정비기능사, 자동차 차체수리기능사 시험장(기능공 시험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이 옆에 위치해 있어서 제5군단 내의 PX 매출액 2위를 기록할 정도의 전설을 자랑했다.
영외 기혼자 간부 숙소(산내들 IPARK)와 전격회관 사이에 위치한 PX는 보기에 따라서 영내 투우대대 PX보다 오히려 더 다양한 품목이 진열되어있다.
휴가 나갈 때 사용하는 출타용 배낭을 군장점에서 구입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이 있는데, 적어도 1기갑여단에서는 2019년부터 출타용 배낭을 개인 지급하고 있다. 그걸 사용하자. 실제로 출타용 배낭은 생활관 전원에게 지급해도 (지급되기 이전의 선임들이 미리 구입한 것도 있기 때문에) 남아돌 지경이라서 비는 관물대에 짱박아놓는 참사도 있었다.
6.6.2. 역사관
2020년 10월, 여단 내의 역사관이 재개장되었다.역사관은 교회 옆 동산, 수색중대 정비고 옆 건물 등, 두 번의 이동 끝에 여단 중앙으로 3번째 이동하여 새롭게 개관하였으며, 그동안의 여단 역사관과 달리 최첨단 VR 기반의 시설과 기갑 장비 외에도 헬기가 전시되는 등 많은 공을 들였다.
참고로 해당 역사관의 건물은 2010년대에는 직할대 통합식당으로 사용되다가 2014년 직할대 통합막사 완공 이후로는 보수중대의 시설창고로 운영되었고 통합 정비고 개편 이후로 한동안 빈공간이었던 곳이다. 때문에 역사관 뒤편에는 과거 지하부식고(토굴)와 토굴 위에 별도의 창고가 존재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역할을 하지 못할 뿐, 철거하지 않고 계속 유지 중에 있다.
6.6.3. 산책로
2016년, WIN-WIN동산이라는 이름으로 사령부 후면에 야트막한 동산을 개설하였다. 이는 2015년 당시 주임원사가 제시한 "산내들 수목원"과 연동되어 있다.진격대대 인원들이 대거투입하여 정원을 만들고 온갖 조형물을 만드는등 당시 상병이상 인력들은 목공일에 도가 틀 정도였음.
6.6.4. 전격회관
전격회관 電撃會館 blitz Hall | ||||||
위치 |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영북로 198 # |
전격회관은 영외 간부숙소 인근에 있으며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은 병사들이 종종 이용한다.[50] 총 2층으로 구성된 건물로 지하1층은 노래방, 1층은 식당, 2층은 객실이다. 다만 노래방은 현재 운영하지 않고 있다.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면회객과 병사들에게 인기가 많다. 주변 부대에서도 방문객이 꽤 되는 편이다.
전격회관 옆에 영외 PX도 있으며 병사와 함께 가족들도 이용할 수 있다.
이하 2021년 4월 기준
- 이용 대상은, 현역, 국방부 일반직 군무원, 육군 중사이상 복무 후 퇴직자, 타군 10년 이상 복무 후 퇴직자이다.
병사와 면회객은, 사전에 병사를 통해 신청하면 전격회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주의할 것은 전격회관 이용을 위한 외출은 이동시간 포함 4시간으로 제한되며 전격회관에서 반드시 식사를 하고 4시간 안에 부대 내 면회 장소로 복귀해야 한다. 물론 외박 시에는 시간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다.
- 식당 이용시간은, 평일 17시~21시, 주말 11시~14시(오전) / 17~21시(오후)이다.
훈제오리 4인분 (국내산 한마리) 23,000원
한우모듬 1인분(국내산A+ 200그램) 21,000원
이동갈비 1인분(수입산 3대) 18,000원
소막창 1인분(국내산 120그램) 8,000원
수입소고기모듬 (수입산 200그램) 8,000원
생삼겹살 1인분(국내산 200그램) 7,000원
돼지왕갈비 1인분(국내산 1대) 6,000원
식사류
김치찌개, 된장찌개 (국내산) 3,000원
냉면 (국내산) 3,000원
라면 1,500원
공기밥 700원
- 객실 이용시간은, 당일 16시~ 익일 11시이며 연중무휴로 운영하고 있으며, 요금은 2인 기준 12,000원(1인 추가 당 2,000원)이다.
- 그 외 목욕탕(대인 1,500원, 소인 500원) 이용이 가능하다.
- 정기휴일: 정비의 날(매주 월요일, 금요일), 매월 첫째 주 월~화요일
6.6.5. 영내카페
2016년 당시 여단장에 의해 추진된 북카페 사업과 연계되어 "카페 쉴만한 물가"와 "WIN-WIN 카페", 두 곳을 오픈하여 운영을 시작하였으나, 2017년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 갑질 사건이후, 공식적으로 <카페 쉴만한 물가>는 현역을 원복시키고[51] 폐지되어 현재 해당 자리(제2 본청)는 PX 형식의 전격 무인카페로 바뀌었으며, 위병소에 위치한 WIN-WIN 카페는 군인 가족 중에 희망자를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고용하면서 카페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역사관 카페 : 2020년 10월에 재개장한 여단 역사관 내에, 상기 "카페 쉴만한 물가"에서 사용하던 카페 장비를 이전하여 새로운 카페를 개설하였다. "역사관 카페"는 105기보대대에서 인력을 차출하여 운영하는 대신, 휴가나 각종 훈련 등으로 운영이 제한될 경우에는 휴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22년 8월 경 여단장의 지시로 운영을 종료했다.
WIN-WIN 카페 : 다른 이름으로 행복병영카페라고 부른다. 위병소 뒤 면회실에서 평일은 09:00 ~ 19:30에 운영하고 주말에는 13:00 ~ 19:30에만 운영한다.
아메리카노 레귤러 사이즈 1,300원, 카페라떼 레귤러 사이즈 1,800원이라는, 그야말로 원가 수준의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안정적인 품질과 일반 카페 대비 저렴한 금액으로 지금도 절찬리 운영되고 있으며, 이용객이 많다. 오히려 운영하시는 분이 제발 그만 와달라고 할 정도로 큰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6.6.6. 전격도서관
포천시와 경기도의 특수시책 병영작은도서관 조성사업으로 2010년 12월 30일에 준공하였다.6.6.7. 노래방 오락실
각 대대마다 코인 노래방과 오락실(플레이스테이션 4, X-BOX 360등)이 있다.(15전차대대, 105기보대대는 노래방만 있음) 직할대대 포병대대는 둘 다 막사 안에 존재하며 공병대는 별도의 컨테이너에, 기보대대는 오락실이 막사 안에 있고 별도의 컨테이너에 '기보랜드'라는 이름의 코인 노래방이 존재한다. PX에서 생긴 짤짤이가 여기 와서 다 사라진다는 후문이다. 이제 카드 결제기가 설치되어 카드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다.영내부대는 아직 알려지지 않으나, 138기보대대의 경우에는 오락실은 영내에 있으나, 노래방 만큼은 영외 컨테이너에 별도로 존재하고 있다.
6.6.8. WIN-WIN 클럽
영외에 있는 휘트니스 클럽으로 독신간부는 월 5천 원, 기혼간부는 월 1만 원의 회비로 운영하고 있다.6.6.9. 카이저 클럽
2010년에 여단장이 초급 간부의 근무여건 보장을 위해 세웠다. 주둔지가 미 7사단 '캠프 카이저'였던 것에서 이름을 지었다.독신 간부 대상으로 조식 및 석식을 판매하고 있다.
- 조식은 한 달 전에 미리 신청한 간부만 44,000원 언저리 돈이 급여에서 선공제된다. (한 끼 2,000원이다.)
물론 입구에 식사 여부 등을 체크하기 때문에 훈련 등의 이유로 결식을 하면 안 먹은 금액만큼은 환불해준다. - 석식은 3,000원으로 당일 선착순 판매이다.(약 70인분 정도라고 한다.) 방문하면 카드로 결제받는다.
- 토요일은 오전에 특별히 운영된다. 메뉴는 짜장면이고 탕수육은 미리 사전에 주문해야 한다. 그 외 갈비탕, 뚝배기 불고기 등의 단품 요리도 있다.
- 석식을 못 먹을 경우 라면정식(2,000원)을 주문할 수가 있다.
- 철저히 초급, 독신 간부 수요를 맞추기 위해 설날 및 추석 연휴 때도 특별 운영되기도 한다.
- 인근 위병 근무자(위병 사관, 위병 중사)들은 평일 한정으로 석식, 조식 식사가 가능하다. 이는 장병복지기금에서 지원되기 때문.
- 초기에는 조리병들이 직접 인근 중국집 등에 가서 짜장면 및 탕수육 조리 방법을 직접 배우고 왔다고 한다.
초기에는 초급 간부 식사 제공 및 주말 장병 회식 제공 (짜장면 등)의 목적이 있기 때문. 그래서 초임 소대장들이 소대 회식할 때 종종 이용하기도 했다.
2018년 이후부터 여단내 전 간부들을 대상으로 조식 2,000원 / 석식 3,000원에 운용중에 있다.
사전에 미리 여단에 이용신청을 해야 해당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 갑질 사건으로 인하여 간부식당 메뉴가 아닌 일반병식으로 운영하게 됨에 따라 운영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사전에 예약받고 선입금을 받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6.7. 종교시설
- 전격교회: 여단 영내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며, 여단 영내에서 오래된 건물은 교회 하나뿐이다.[52] 유일하게 군종장교가 상주하는 곳이다. 영내에 상주하고 있는 75사단 전차대대 병사도 예배에 참석하고 여단 영내에 있는 교회이지만 병사들 외에도 여단 간부와 그 가족 등 민간인도 많이 출석하는 덕분에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53]
- 충성교회: 영외 포병대대 내에 위치한 교회이다. 군종 목사님이 오시지 않고 파송 목사님이 오신다. 영외 부대 특성상 제일 가까운 종교행사장이라서 많은 출석 인원을 자랑하고 있다.
- 왕자교회: 영외 19전차대대 내에 위치한 교회이다. 제25전차대대가 주둔하던 시절에 지어졌으며, 제25전차대대의 별칭인 “왕자대대”에서 따온 이름이다. 대대 내에 함께 주둔하고 있는 73사단 전차대대 병사도 이곳에서 예배 드린다.
- 단결교회: 영외 138기계화보병대대 내에 위치한 교회이다. 기독교 한국 침례회 연세중앙교회에서 목사님을 파송하고 있다.
- 전격성당: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공소(公所)이다. 전격교회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1995년 8월 전격공소가 세워졌다. 사제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는 미사를 하지 않고, 공소예절을 한다. 정기적으로 5군단 승진본당[54] 신부가 방문하여 미사와 신자들에게 필요한 의식을 거행한다. 신부님이 5군단에서 오시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과 달리 토요일 오후 19시에 종교행사를 한다. 참고로 전례력 지침에 따르면 주일이나 대축일은 전날 일몰 후부터는 다음 날이기 때문에 괜찮다. 주일 미사와 동일하다. 특전 미사라는 말이 사라지고 토요 주일미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기갑호국사: 영외에 있는 절이다. 1기갑여단의 영외 절이지만 인근 사단 예하 부대 병사들까지 찾아오는 절이다. 불교 뉴스에도 소개된 것을 보면 스님께서 많이 노력하신 것을 확인할 수 있다.[55] 국수가 자주 나온다. 한 주는 잔치국수가, 한 주는 컵라면이 나왔는데 어떤 날은 팥죽도 나왔었다. 후식으로는 떡도 나온다. 다른 종교에 비해 후하게 나오기 때문에 종교행사 당일 점심이 별로면 불교 종교활동에 참석하는 것도 좋다. 기갑호국사는 영외에 있기 때문에 바깥공기 맡고 싶은 슬픈 영혼들은 버스 타고 종교행사도 참석할 겸 잠깐 나들이 갔다 와보는 것도 좋다. 현재 건물은 2012년 개축한 것이다.
6.8. 캠프 카이저
前 미군 캠프 카이저, 現 제1기갑여단의 주둔지는 북한군이 철원 평야를 어떻게든 통과하더라도 서울로 진입하려면 한탄강을 건너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병목지점이다. 캠프 카이저는 한국전쟁 이후 처음에는 미군 제7사단 버펄로 17연대가 주둔하였고, 재편조 육군사단(ROAD, Reorganization objective Army Division) 개념에 의거하여 제7사단 1여단(Camp Kaiser, Headquarters 1st Brigade, 7th Infantry Division)으로 개편되어 캠프 철수 직전까지 주둔하였다.미국은 1969년 7월 25일 닉슨 미국 대통령이 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른바 닉슨 독트린[56]을 발표하고,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 지 불과 1년 후인 1970년 7월 5일, 포터 주한 미국 대사가 한국에게 주한미군의 감축을 통보하였다.
아직 한미간에 협의가 진행되고 있던 1970년 10월 15일 주한미군 사령부는 미군 제7사단 1여단이 주둔하고 있던 캠프 카이저를 폐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공개 발표하고, 불과 한 달 뒤인 1970년 11월 15일 캠프 카이저는 폐쇄되었다. 캠프 카이저의 완전 철수 한 달 전인 1971년 3월 27일까지 미군 경계 부대가 잔류하였고 국군 제5군단 5공병여단 118대대의 시설 관리 후, 1977년 5월 25일 제1기갑여단에게 인계되었다.
제1기갑여단이 주둔하기 전에는 미군 “제7보병사단 예하 제1여단 사령부 및 본부중대, 제17보병연대 1대대 2대대, 제10기병 2대대, 호크 5포병 7대대 A포대, 제13공병 A중대, 제707 정비 C중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캠프 카이저 시절의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유일하게 영내 전격교회가 옛 모습을 조금 남기고 있다.
사진 출처 : 1963년 11월~1965년 12월 당시 캠프 카이저(Camp Kaiser)와 기지 주변 한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상기의 사진이 위치한 곳은 여단 교회인 전격교회 입구쪽으로 원래는 교회 옆 언덕에 각종 건물들로 위치하여 있으나, 현재는 해당 건물들이 모조리 철거되고 2010년에 그나마 있던 여단 역사관도 이전으로 철거되어 현재는 활용되지 않는 지역이다. 또한 지금은 나무가 많이 자라서 산으로보이지만, 사진상의 국기가 걸려있던 계양대는 지금은 철거되었지만 그 터는 아직도 볼 수 있다.
6.9. 부대영상
7. 여담
한때는 가장 최전방에 위치한 기갑여단으로 불렸으나, 2007년 12월 강원도 해안의 102보병여단이 제102기갑여단으로 개편되면서 가장 최전방의 기갑여단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현재는 제5군단과 중서부 전선에서는 가장 최전방에 위치한 기갑여단이다.부대 역사관이나 어딜가나 장비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이 모형은 부대 편제를 소개하기 위한 자료로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2014년부터 여단장의 지시로 비치하기 시작하였고, 여단의 프라모델 조립을 잘한다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울러 K-1 전차 및 K200 장갑차 모형은 모두 아카데미과학제 모형을 만들어서 구비하고 있다. 전격관에 가면 1기갑에서 운용 중인 기갑장비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시대별 장비프라모델도 전시되어있다. 티거 전차부터 T-14 아르마타까지.. 야외에선 퇴역한 장비들도 전시되어있다.
제15전차대대(투우대대)가 MBC방송 "진짜 사나이 2" 제67회(동반입대 기갑부대편)에 출연했다. 박찬호와 우지원, 류승수, 조재원, 이상호, 이상민, 갓세븐의 잭슨과 뱀뱀이 출연하였으며 촬영 당시 쓰였던 생활관은 본부중대 생활관이었다. 그 당시는 동기생활관 제도 중이었는데, 촬영 전에 촬영할 생활관을 두고 고심하던 끝에, 다른 생활관과 비교하면 사람이 적고 공간이 널찍한 중대 선임생활관 2곳을 선정해서 비워버렸다. 그러자 남아있던 선임들이 쫓겨나다시피 생활관을 옮겨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고, 쫓겨난 선임들은 짐을 싸서 후임생활관에서 생활하게 되는 서로 웃지 못할 불상사가 일어났다. 원래는 2층침대가 없는 생활관이었지만 그 탓에 2층침대가 추가되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쯤에 만들어진 15전차대대 마크(동그란 원 중앙에 전차를 배치하고 좌우로 빨간색 파란색 105기보, 628포병 그리고 원주변에 궤도 모양을 형상화한 마크)를 대대 중앙 현관에 붙여놓고 있었는데 진짜사나이 방영 때는 여단마크로 변경 되어 있었다. 2010년경 전역한 병사에게는 15전차대대 마크로 메달을 만들어 전역 선물로 주었다.
수기사 1기갑기계화보병여단장이었던 홍길대 대령의 바로 다음 부임지가 1기갑여단이었다. 대령으로 여단장을 역임 했으며 1기갑기계화보병여단장 시절에는 당시 수기사 사단장이었던 이광길 소장과 함께 말 그대로 경례만 잘해도 휴가증을 뿌리던 분이었다. 병사들 지갑에는 항상 휴가증이 한 장씩 있어야 한다고 했다.
2010년도에 예)주은식 준장 여단장 재직중에 경계근무자들이 경계근무중 땅 속에서 나오는 괴음을 청취하였고 이에 타 부대에의 협조를 받아 주둔지내에서 땅굴 탐사작업을 진행하였다. 탐사 결과 괴음의 정체는 지하수로 결론이 났으며, 그 지하수를 이용한 기갑차량 세차장이 신설되었다.
서울 은석초등학교와도 자매결연을 맺었는데, 60주년째가 다 되어간다.
비가 많이 내리는 경우 영내 연못 등이 범람하여 다양한 수생물 들이 땅으로 나와 있는걸 볼수 있다. 장어, 잉어, 붕어 등등.
군부대가 다 그렇듯 다양한 야생동물이 자주 출현한다. 고라니는 기본적으로 자주 나타나고 오소리나 너구리도 살고 있다.[57]CCTV 근무를 서다보면 화면에 다양한 동물들이 나오는걸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너구리가족이 줄지어 뽈뽈 이동하는걸 볼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이 멧돼지인데 CCTV 근무 중 멧돼지를 발견한다면 그 즉시 근무병들이 당직사관이나 사령에게 보고해서 조치가 내려진다. 가끔씩 부내 내에 멧돼지가 출몰해 용사들의 건물외부활동을 통제하는 일이 벌어진다.[58]
기갑부대라서 전차나 장갑차의 침수도하훈련을 위한 시설이 있는데 대부분은 안 쓰고 오래 방치되어있어서 물이 고인 곳이 많다. 여름이면 올챙이와 개구리, 무당개구리가 그곳에 터를 잡는다.
독사나 벌집이 많이 발견되는데 본다면 절대로 혼자서 제거하려하지 말고 상부에 보고해서 조치를 취해달라고 하자.
2023년에는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자 경계령이 발령됐다.
2022년 이후 근무환경이 매우 열악해졌다는게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훈련의 양은 많아졌는데 휴가는 주질 않고[59], 온갖 작업과 비효율적인 훈련에 동원 되면서 병사들이나 간부들이나 탈출을 노리는 곳이 되었다.
[1] 군단 예하 기갑여단을 군단 직할 부대로 생각하기 쉽지만, 부대장의 계급이 영관급 대령이 아닌 장성급 준장이며, 군단 예하 사단과 동급의 단독 작전과 단독 전투 능력을 갖춘 독립전투여단이기 때문에 엄연한 예하 부대이다. 여단급 부대와 혼동하기 쉬운 단급 부대는 군단 직할부대 또는 군단 포병여단 등의 예하부대로서 부대장의 계급은 연대와 동일한 영관급 대령이다. 또한 사단 예하 여단의 부대장 계급도 연대와 동일한 영관급 대령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육군은 사단 예하 여단과 연대 이하의 지휘소는 본부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독립여단 이상의 부대 지휘소는 사령부라고 한다.[2] 육군 최초로 미국에게 원조받은 M4 셔먼 주력 전차를 배치받았다.[3] 제2기갑여단과 함께 동년 동월 동일에 창설되었다. 오전에 1기갑여단이 탄생했고 오후에 2기갑여단이 탄생했지만, 1기갑여단은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기갑여단이 되었고, 2기갑여단은 대한민국 '최초'의 타이틀을 얻지 못했다. 심지어 초대 여단장(손장래 예비역 소장)도 같다.[4] 제1전차대대는 제5전차차대대 제15전차차대대와 함께 제1기갑여단 창설 원년 대대이다. 1953년 1월 25일, M36 잭슨 대전차 자주포를 운용하는 제52, 55, 58 독립 전차중대를 통합하여 한국전쟁 중 국군 최초의 전차대대로 창설되었다. 단 M36 잭슨은 본격적인 전차가 아닌 전차를 지원하는 대전차 자주포이기 때문에, 육군은 국군 최초의 주력 전차인 M4A3E8 셔먼 중형전차를 처음 배치받으며 1954년 2월 21일에 창설된 제5전차대대를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전차대대로 여긴다.[5] 국방사 1972.1~1981.12 참조, 2019년부터 제7사단 직할 전차대대로 이관.[6] 1980년 창설, 5군단 독립 전차대대였으나 1980년대 중반 1기갑여단으로 이관되었다. 1994년에 26사단 76기보여단으로 이관되었으나, 2018년 11월 30일 8사단과 26사단의 통합과정에서 76기보여단 해체와 함께 제25전차대대도 해체되었다.[7] 전차대대의 1개 분대는 전차 1대, 전차장 조종수 포수 (탄약수)로 3~4명뿐이다.(1개 소대 전차3대, 1개 중대 전차 11대) 인원이 많을 것 같은 공병대도 기갑공병의 특성상 1개소대가 10~15명 정도다. 물론 기계화보병대대는 인원이 많지만, 일반 보병대대 만큼은 아니다.[8] 때문에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628포병대대로 배치된다면, 이 문서의 정보는 대부분 쓸모가 없다.[9] 소위 짬 좀 된다는 부사관들은 신병들에게 '예전에는 기계화보병대대라고는 진격대대뿐이어서 부대를 그냥 기보대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라는 얘기를 해준다. 그리고 지금도 기보대라고 부른다. 진격대대의 옛 영외 주둔지 앞 버스 정류장 이름이 아직도 기보대앞.운천5리이다. 옛 영외 주둔지에는 현제 제5포병여단의 포병대대가 주둔하고 있는데, 포병대대 앞 정류소 이름이 "기보대앞"이니 당연히 옆에 있는 8사단 예하였던 기계화보병대대는 혼란스러워 했다.[10] 사실 기갑여단을 찾지 않아도, 2020년대 들어서 이름을 기보대대로 바꾸지 않아서 그렇지, 5군단 K808 차륜형장갑차가 3사단 23여단 2대대, 5시단 35여단 1대대에 배치되어서 기계화보병대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11] K-1E2로 교체할 예정이다.[12] 사진: 기갑수색중대는 수색대 흉장을 오른쪽 가슴 주머니에 부착한다.
[13] 6.25 전쟁(한국전쟁) 이후, 육군 최초로 M4A3E8 셔먼 이지에잇 중형(中型)전차를 배치받으며 1954년 2월 21일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전차대대이다. M4A3E8 셔먼 중형전차는 대한민국 육군 전차의 효시로 일컬어지며, 실질적인 전투력을 지닌 대한민국 육군의 첫 번째 실전용 주력 전차(MBT: 主力戰車, Main Battle Tank)였다. 한국전쟁 중 창설된 제1, 제2, 제3전차대는 M36 잭슨 대전차 자주포를 미군으로부터 인수하여 경(輕)전차로 간주하고 실전에서 운용했지만, 대전차 자주포를 전차처럼 운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육군이 보유한 본격적인 전차는 전후 처음 배치된 M4A3E8 셔먼 중형(中型)전차가 최초라고 여긴다. #중형(中型)전차(medium tank)는 중전차(重戰車)와 경(輕)전차 사이의 중간급에 위치하는 전차로서 주로 대전차전투를 포함한 기동전에 적합한 전차이다. 중전차(重戰車/50톤 이상/hevavy tank)와 구분하기 위해 '형(型)'자를 붙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14] 한때 5군단 유일의 기계화보병대대였으며 산정호수 가는 길목에 있었으나 2014년에 여단 영내로 이전하였다.[15] 1949년 6월 10일 창설, 2011년 12월 1일부로 제8기계화보병사단의 21연대 3대대가 기계화 되면서 21기계화보병여단 138대대로 변경 되었다. 여단에서 산정호수로 갈 때, 예전 105대대 가기 전에 있던 각흘봉부대이다. / 현재 제1기갑여단 예하로 사령부 영외에 있지만 영내 이전이 계획되어 있다. 여단 사령부 후방(여단에서 3km 10분 정도)에 있는 부대이다.[16] 때문에 본부여단과는 매우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단적인 예로, 이 문서에 적힌 편의시설은 전부 이용 못한다. 물론 본부여단 위치도 철원 바로 아래의 운천이긴 하지만, 이곳의 생활과는 천지차이다.[17] 前 수도사단(맹호부대) 직할 포병부대였으며 베트남전쟁에 파견된 포병부대 중 당시 유일하게 155mm포를 운용하였다. 베트남전쟁 이후 수도사단은 사실상 해체 상태였으나 최초의 기계화사단이었던 제32사단(현 32사단과는 다른 부대)의 단대호를 변경하며 1973년 3월 20일 수도기계화보병사단으로 재창설되었고, 그 과정에서 628포병대대는 1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 되었다. 1기갑여단이 관리하는 금학산 유격훈련장이 628포병대대 바로 옆에 있다. 사령부에서 출발한 유격대원들은 행군 후 일단 628포병대대 연병장에 집결한다. 신 막사를 사용하며 시설도 깨끗하고 정리가 잘되어 있다. / 여단 예하 대대 중에 가장 전방(여단에서 10km 30분 정도)에 있는 부대이다.[18] 1966년 주한미군에게 인수받은 M110을 전력화하며, 전군 최초로 8인치 자주곡사포 대대로 창설되었다.[19] 제5포병여단 직할부대였지만 2016년 11월 1일부로 5포병단 예하로 변경되었다. 2016년 4월 1일에 소속이 변경되었지만, 행정 체계가 완전히 바뀌지 않은 채로 있다가 동년 11월 1일에 제5포병단으로 행정 체계가 바뀌면서 배속되었다. 이후 국방개혁2.0으로 1기갑여단 예하로 배속되었다.[20] 제2기갑여단 예하 포병대대에서도 과거 K-9을 배치했으나 K-55로 교체되었다.[21] 2018년 8사단, 26사단(해체) 통합 ⇢ 제8사단 재편(완료) / 2019년 11사단, 20사단(해체) 통합 ⇢ 제11사단 재편(완료) ⇢ 제20기갑여단(6번째 / 2019년 11월 29일) 창설 / 2019년 말 2사단(2019년 12월 6일) 부대개편을 위한 해체 ⇢ 2021년 1월 1일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개편(완료) / 2020년 11월 30일 30사단 ⇢ 제30기갑여단 개편(완료, 7번째 기갑여단 창설) / 2021년 23사단 해체 ⇢ 제23경비여단 개편 / 2022년 27사단 해체 / 2022년 현재 8개 군단에서 6·8군단 해체(6군단은 5군단으로 통합, 8군단은 3군단으로 통합) ⇢ 6개 군단(수도군단, 제1,2,3,5군단, 제7기동군단) “참조 - 육군 2개 군단·6개 사단 해체…‘인구 절벽’ 대비 부대구조 정예화” / 2024년 6사단이 경기도(포천)으로 이전을 완료하고 6사단이 주둔하던 자리에 3사단과 5사단의 1개 연대씩 주둔 / 2025년 28사단 해체
육군은 ‘8개 군단·39개 사단’ 체제에서 병력 절감형 부대 구조개편을 통해 2025년까지 ‘6개 군단·33개 사단’ 체제로 개편할 계획이다. 기존 ‘6개 기보사·5개 기갑여단’ 체제가 ‘3개 기보사·8개 기갑여단’ 체제로 운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육군은 “앞으로 기갑여단에는 배속 전차대대가 많아지는 등 현재 여단과 사단의 중간급에 가까워진다”며 “전력이 증강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개혁 2.0이 완료되는 시점인 2025년부터는 군의 중심이 사단에서 여단으로 바뀐다. (해체되는 사단: 제20·26·30기계화보병사단, 제23·27·28보병사단, 제2보병사단은 신속대응(공정)사단으로 개편)[22] 초대 여단장 (孫章來 1927.02.19) 예비역 소장 (육사 9기)}}}
주월남 한국군 사령부 작전참모, 기갑학교장(준장 1967), 초대 제1 및 제2 기갑여단장(준장), 제25사단장(소장),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국장, 제13대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1985년 5월 20일~1986년 1월 8일), 주미한국대사관 공사, 제9대 주말레이시아 대사(1990년 2월~1992년 2월).[60]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이 조직한 미군 제10군단 예하 특수작전단(Special Activities Group) 직속 특공대대(대대장 육사 5기 배동걸 소령)의 작전장교 겸 제2중대장(중위)로 참전하여 300여 명의 독립대대원으로 경북 문경군 동로면 "적성리 전투"(1.4후퇴 당시, 1951년1월12일~15일)에서 북한군 2군단 10사단 예하연대 3000여명과 싸워 전멸(1250여 명 사살, 80여 명 생포)시켰다. 그에 비해 아군의 피해는 전사 9명, 부상 2명, 미군 부상 2명이었다. 존경받는 한국전쟁의 영웅이며 기갑전의 베테랑으로 기갑여단 창설의 산파역을 하였다. 또한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국장 시절 해병대 제2여단을 해병대 제2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주도하였다. 저서: 한국 전쟁의 기갑운용, 기갑부대 개편소고
[23] 7대 여단장 예비역 준장 (육사 14기)}}}
前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18전차대대장(중령), 前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26기계화보병여단장(대령), 前 국방부 기획국 정책과장(대령), 前 제1기갑여단장(준장, 1981년 5월 22일~1983년6월22일), 前 기갑학교장(준장), 前 육군대학교 교수부장(준장), 저서: 한국전의 기동전 분석(1996.6)[24] 2009년 준장 진급, 前 제1기갑여단장(준장, 2010년~2011년), 2012년 준장 예편[25] 제1기갑여단장(준장, 2011~2013), 前 제2작전사령부 군수처장(준장, 2013~2015, 前 육군군수학교장(준장, 2015~2016)[26] 군대 관련 짤로 박제되면서 본이 아니게 유명세를 탔다. 다들 한 번쯤 봤을 법한 졸고 있는 소위 뒤에서 따봉을 날리는 원스타가 바로 이 인물이다.https://www.dogdrip.net/dogdrip/135293737[27] 2015~2017[28] 前 제8사단 제10기계화보병여단장(대령, 54대 2011년 11월 16일~), 前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통합방위과장(대령→준장), 前 제6사단 부사단장(준장), 前 수도군단 참모장(준장), 前 제1기갑여단장(준장, 2018년 1월 9일~), 前 제5군단 부군단장[29] 前 한미연합군사령부 기획참모차장(준장), 前 육군교육사령부 전투발전1차장(준장), 前 제1기갑여단장(준장, 2019년 12월~)[30] 2023년 12월 말부터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임영되었다.[31]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32] 가장 구석에 있는 5전차대대 부대원은 정문 위병소까지 걸어가려면 한세월이라 정문쪽에 볼일이 많이 생기는 주말(면회 또는 외출시)에는 수송부 차량 운행대기 당직근무자가 매우 바빠진다.[33] 참조 - 캠프 카이저 코리아의 유산 (주은식 前1기갑여단장)[34] 판교라고 해도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산정 87만 평(2.9km²)인 여의도보다도 훨씬 크고,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가 97만 평(3.21km²)으로 비슷한 크기이다. #지도[35] 기갑여단 영내 폭포
[36] 3개 사단이 모두 메이커 부대로 워낙 유명한 데다가, 일반적으로 철원이라면 6사단과 3사단, 포천이라면 8사단을 떠올렸다. 그러나 현재 6사단 청성부대가 2018년 9월부터 19연대를 시작으로 8사단이 주둔하던 포천으로 이전하기 시작하였고 2024년까지 6사단 전 부대가 포천지역으로 이전한다고 한다. 6사단이 방어하던 GOP 지역은 5사단과 3사단이 나누어 맡게 될 것이며, 앞으로는 6사단이 포천에서 5군단의 예비사단으로서 철원의 5사단과 3사단의 뒤를 맡게 된다.[37] BCT: 타국에 파병되는 미군의 기본 부대 단위이며, 과거 미군 여단의 편제를 대체하고 있는 조직이다. 현재 미 육군은 현역 사단 및 주방위군 사단 아래 있는 대부분의 여단 조직을 BCT(Brigade Combat Team)로 개편하고 있다.[38] 2018년 중순까지 수기사 예하에 "1"부터 시작하는 '1기계화보병여단'과 '1기갑기계화보병여단'이 둘 다 있었다. 이 때문에 수기사 내에서는 약칭을 1기보여단과 구분하기 위해 '수기사 1기갑여단 또는 1기갑기보여단'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국군 최초의 독립기갑연대로 창설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갑을 붙여 그럴듯하게 사용하고 있으나, 기계화 이전에는 보병연대였고 현재도 사실상 전차부대가 없는 기계화보병여단이기 때문에 "기갑"은 장식에 불과하다. (이 부대는 기갑이라는 명칭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기계화보병여단으로 개편되기 이전의 보병연대 시절에는 기갑부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갑 명칭을 붙여 1기갑보병연대라는 해괴한 부대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1기갑기계화보병여단은 2018년 9월 1일부로 제8기계화보병사단으로 예속전환되었다. 1기갑기보여단 출신과 관계자들이 1기갑기보여단이라고 말하는 것이 귀찮아서인지 아직도 1기갑여단이라고 줄여서 말한다.[39] 독립 여단인 제1기갑여단은 기갑마크를 사용하고, 8사단 예하의 제1기갑기보여단은 오리지널 부대마크 없이 8사단의 오뚝이마크를 사용한다.
참조: 제1기갑여단 기갑마크 저시인성
[40] 국군조직법 제9조(합동참모의장의 권한) ① 합동참모본부에 합동참모의장을 둔다. ② 합동참모의장은 군령(軍令)에 관하여 국방부장관을 보좌하며,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군의 작전부대를 작전지휘·감독하고, 합동작전 수행을 위하여 설치된 합동부대를 지휘·감독한다. 다만, 평시 독립전투여단급(獨立戰鬪旅團級) 이상의 부대이동 등 주요 군사사항은 국방부장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③ 제2항에 따른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군의 작전부대 및 합동부대의 범위와 작전지휘·감독권의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41] 이런 사단신교대 출신은 대부분 본부중대로 배속된다.[42] 전차 등 장비를 끌고 갈땐 20~30km의 서행으로 길을 우회해서 가기 때문에 체감 상 멀게 느껴질 뿐이지 사실 차로 몇 분 안 걸릴 정도로 근접한 거리다. 쉽게 설명하자면 산정호수 근처에 위치해있다. 도로 파손 위험도 있거니와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기동을 할 때는 어느 때보다 신중한 편이다.[43] 이곳은 사격장 바로 옆에 위치한 제3전차대대가 관리하는 곳이다.[44] 전차포 사격은 한부대마다 1년에 한 두번만 진행하는 대규모 훈련이기에 여러 부대가 돌아가면서 사격장을 이용한다.[45] 45구경 M1911A1을 소지한 병사도 있다.[46] 그래도 일반 소총수나, 정보통신과 같은 다른 병과들보다 훨씬 나은점이, 소총 탄알집보다 훨씬 작은 탄알집 두개가 들어있는, 소총 탄알집 파우치보다 훨씬 가볍고 작은 파우치를 사용하며, 화기 또한 소총보다 가볍고 작은 권총을 차고 걷는다는 것에 훨씬 큰 장점이 있다.[47] 최초의 기갑부대 마크로서 기갑여단에서는 창설 당시부터 기갑마크라고 부른다.[48] 참조: 제1기갑여단 메달
[49] 여상(呂尙) 또는 강상(姜尙)은 모두가 잘 아는 낚시군의 대명사 강태공이다. 일반적으로 여상이라고 부르지만 성은 강(姜)이며 씨는 여(呂), 이름은 상(尙)으로, 여(呂)씨 부족의 상(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상은 주(周)나라 문왕과 무왕의 군사(軍師)로서 4만 5천의 군사로 72만의 상나라(또는 은(殷)나라)군을 대파 하는 기적적인 전쟁을 수행한다. 태공망(太公望)이란 태공(건국한 왕=문왕)이 원하던 사람이라는 뜻이다.[50] 제5공병여단 일부 병사들도 일동회관 대신 이용하기도 한다.[51] 카페에서 근무하고 있던 인원들은 모두 병사로, 입대 전에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으면 차출되는 파견 형태였다.[52] 교회 건물은 미군 카이저부대 시절부터 존재해 온 걸 꾸준히 보수만 했다. 지금은 깨끗하게 하얀 나무판자로 덮여있지만 원래 돌로 만들어진 벽을 잘 보면 찾아볼 수 있다.[53] 옛 전격교회 모습
[54] 구 이동본당,1994년 1월 18일 승진본당으로 개칭, 2018년 12월 기존 성당 건물의 노후화로 구 오뚜기성당(오뚜기본당은 8사단 이전과 함께 이전) 건물(2018년 3월 10일 신축)로 이전하며, 건물 명칭도 오뚜기성당에서 승진성당으로 변경 하였다.[55] 법보신문 기사[56] “국가 방위의 1차적 책임은 각 국가가 스스로 져야 한다. 아시아에서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가급적 피하겠다. 미국은 아시아 여러 나라와 조약 상의 약속을 지키겠지만,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을 제외한 내란이나 침략에 대해서는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해 대처해야 할 것이다.”[57] 재밌게도 군인들에게 길들여저 사람이 다가와도 달아나기는 커녕 멀뚱멀뚱 서있는 개체도 간혹 있다. 그렇다고 다가가서 쓰다듬거나 먹이를 주거나 하진 말자.[58] 멧돼지는 장성한 개체라면 철조망을 부수고 사람의 인명을 위협할 수 있는 맹수이기 때문에 부대에 나타나면 비상이 걸린다.[59] 40장 이상을 모을 수 없게 일부로 조절해서 준다는의혹이 병사들 사이에서 흐르고 있다. 코로나 군번들은 기본이 45장을 넘어갔는데 지금은 40장도 찾기 힘들다는 평.
[13] 6.25 전쟁(한국전쟁) 이후, 육군 최초로 M4A3E8 셔먼 이지에잇 중형(中型)전차를 배치받으며 1954년 2월 21일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전차대대이다. M4A3E8 셔먼 중형전차는 대한민국 육군 전차의 효시로 일컬어지며, 실질적인 전투력을 지닌 대한민국 육군의 첫 번째 실전용 주력 전차(MBT: 主力戰車, Main Battle Tank)였다. 한국전쟁 중 창설된 제1, 제2, 제3전차대는 M36 잭슨 대전차 자주포를 미군으로부터 인수하여 경(輕)전차로 간주하고 실전에서 운용했지만, 대전차 자주포를 전차처럼 운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육군이 보유한 본격적인 전차는 전후 처음 배치된 M4A3E8 셔먼 중형(中型)전차가 최초라고 여긴다. #중형(中型)전차(medium tank)는 중전차(重戰車)와 경(輕)전차 사이의 중간급에 위치하는 전차로서 주로 대전차전투를 포함한 기동전에 적합한 전차이다. 중전차(重戰車/50톤 이상/hevavy tank)와 구분하기 위해 '형(型)'자를 붙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14] 한때 5군단 유일의 기계화보병대대였으며 산정호수 가는 길목에 있었으나 2014년에 여단 영내로 이전하였다.[15] 1949년 6월 10일 창설, 2011년 12월 1일부로 제8기계화보병사단의 21연대 3대대가 기계화 되면서 21기계화보병여단 138대대로 변경 되었다. 여단에서 산정호수로 갈 때, 예전 105대대 가기 전에 있던 각흘봉부대이다. / 현재 제1기갑여단 예하로 사령부 영외에 있지만 영내 이전이 계획되어 있다. 여단 사령부 후방(여단에서 3km 10분 정도)에 있는 부대이다.[16] 때문에 본부여단과는 매우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단적인 예로, 이 문서에 적힌 편의시설은 전부 이용 못한다. 물론 본부여단 위치도 철원 바로 아래의 운천이긴 하지만, 이곳의 생활과는 천지차이다.[17] 前 수도사단(맹호부대) 직할 포병부대였으며 베트남전쟁에 파견된 포병부대 중 당시 유일하게 155mm포를 운용하였다. 베트남전쟁 이후 수도사단은 사실상 해체 상태였으나 최초의 기계화사단이었던 제32사단(현 32사단과는 다른 부대)의 단대호를 변경하며 1973년 3월 20일 수도기계화보병사단으로 재창설되었고, 그 과정에서 628포병대대는 1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 되었다. 1기갑여단이 관리하는 금학산 유격훈련장이 628포병대대 바로 옆에 있다. 사령부에서 출발한 유격대원들은 행군 후 일단 628포병대대 연병장에 집결한다. 신 막사를 사용하며 시설도 깨끗하고 정리가 잘되어 있다. / 여단 예하 대대 중에 가장 전방(여단에서 10km 30분 정도)에 있는 부대이다.[18] 1966년 주한미군에게 인수받은 M110을 전력화하며, 전군 최초로 8인치 자주곡사포 대대로 창설되었다.[19] 제5포병여단 직할부대였지만 2016년 11월 1일부로 5포병단 예하로 변경되었다. 2016년 4월 1일에 소속이 변경되었지만, 행정 체계가 완전히 바뀌지 않은 채로 있다가 동년 11월 1일에 제5포병단으로 행정 체계가 바뀌면서 배속되었다. 이후 국방개혁2.0으로 1기갑여단 예하로 배속되었다.[20] 제2기갑여단 예하 포병대대에서도 과거 K-9을 배치했으나 K-55로 교체되었다.[21] 2018년 8사단, 26사단(해체) 통합 ⇢ 제8사단 재편(완료) / 2019년 11사단, 20사단(해체) 통합 ⇢ 제11사단 재편(완료) ⇢ 제20기갑여단(6번째 / 2019년 11월 29일) 창설 / 2019년 말 2사단(2019년 12월 6일) 부대개편을 위한 해체 ⇢ 2021년 1월 1일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개편(완료) / 2020년 11월 30일 30사단 ⇢ 제30기갑여단 개편(완료, 7번째 기갑여단 창설) / 2021년 23사단 해체 ⇢ 제23경비여단 개편 / 2022년 27사단 해체 / 2022년 현재 8개 군단에서 6·8군단 해체(6군단은 5군단으로 통합, 8군단은 3군단으로 통합) ⇢ 6개 군단(수도군단, 제1,2,3,5군단, 제7기동군단) “참조 - 육군 2개 군단·6개 사단 해체…‘인구 절벽’ 대비 부대구조 정예화” / 2024년 6사단이 경기도(포천)으로 이전을 완료하고 6사단이 주둔하던 자리에 3사단과 5사단의 1개 연대씩 주둔 / 2025년 28사단 해체
육군은 ‘8개 군단·39개 사단’ 체제에서 병력 절감형 부대 구조개편을 통해 2025년까지 ‘6개 군단·33개 사단’ 체제로 개편할 계획이다. 기존 ‘6개 기보사·5개 기갑여단’ 체제가 ‘3개 기보사·8개 기갑여단’ 체제로 운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육군은 “앞으로 기갑여단에는 배속 전차대대가 많아지는 등 현재 여단과 사단의 중간급에 가까워진다”며 “전력이 증강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개혁 2.0이 완료되는 시점인 2025년부터는 군의 중심이 사단에서 여단으로 바뀐다. (해체되는 사단: 제20·26·30기계화보병사단, 제23·27·28보병사단, 제2보병사단은 신속대응(공정)사단으로 개편)[22] 초대 여단장 (孫章來 1927.02.19) 예비역 소장 (육사 9기)}}}
주월남 한국군 사령부 작전참모, 기갑학교장(준장 1967), 초대 제1 및 제2 기갑여단장(준장), 제25사단장(소장),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국장, 제13대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1985년 5월 20일~1986년 1월 8일), 주미한국대사관 공사, 제9대 주말레이시아 대사(1990년 2월~1992년 2월).[60]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이 조직한 미군 제10군단 예하 특수작전단(Special Activities Group) 직속 특공대대(대대장 육사 5기 배동걸 소령)의 작전장교 겸 제2중대장(중위)로 참전하여 300여 명의 독립대대원으로 경북 문경군 동로면 "적성리 전투"(1.4후퇴 당시, 1951년1월12일~15일)에서 북한군 2군단 10사단 예하연대 3000여명과 싸워 전멸(1250여 명 사살, 80여 명 생포)시켰다. 그에 비해 아군의 피해는 전사 9명, 부상 2명, 미군 부상 2명이었다. 존경받는 한국전쟁의 영웅이며 기갑전의 베테랑으로 기갑여단 창설의 산파역을 하였다. 또한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국장 시절 해병대 제2여단을 해병대 제2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주도하였다. 저서: 한국 전쟁의 기갑운용, 기갑부대 개편소고
[23] 7대 여단장 예비역 준장 (육사 14기)}}}
前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18전차대대장(중령), 前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26기계화보병여단장(대령), 前 국방부 기획국 정책과장(대령), 前 제1기갑여단장(준장, 1981년 5월 22일~1983년6월22일), 前 기갑학교장(준장), 前 육군대학교 교수부장(준장), 저서: 한국전의 기동전 분석(1996.6)[24] 2009년 준장 진급, 前 제1기갑여단장(준장, 2010년~2011년), 2012년 준장 예편[25] 제1기갑여단장(준장, 2011~2013), 前 제2작전사령부 군수처장(준장, 2013~2015, 前 육군군수학교장(준장, 2015~2016)[26] 군대 관련 짤로 박제되면서 본이 아니게 유명세를 탔다. 다들 한 번쯤 봤을 법한 졸고 있는 소위 뒤에서 따봉을 날리는 원스타가 바로 이 인물이다.https://www.dogdrip.net/dogdrip/135293737[27] 2015~2017[28] 前 제8사단 제10기계화보병여단장(대령, 54대 2011년 11월 16일~), 前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통합방위과장(대령→준장), 前 제6사단 부사단장(준장), 前 수도군단 참모장(준장), 前 제1기갑여단장(준장, 2018년 1월 9일~), 前 제5군단 부군단장[29] 前 한미연합군사령부 기획참모차장(준장), 前 육군교육사령부 전투발전1차장(준장), 前 제1기갑여단장(준장, 2019년 12월~)[30] 2023년 12월 말부터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임영되었다.[31]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32] 가장 구석에 있는 5전차대대 부대원은 정문 위병소까지 걸어가려면 한세월이라 정문쪽에 볼일이 많이 생기는 주말(면회 또는 외출시)에는 수송부 차량 운행대기 당직근무자가 매우 바빠진다.[33] 참조 - 캠프 카이저 코리아의 유산 (주은식 前1기갑여단장)[34] 판교라고 해도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산정 87만 평(2.9km²)인 여의도보다도 훨씬 크고,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가 97만 평(3.21km²)으로 비슷한 크기이다. #지도[35] 기갑여단 영내 폭포
[36] 3개 사단이 모두 메이커 부대로 워낙 유명한 데다가, 일반적으로 철원이라면 6사단과 3사단, 포천이라면 8사단을 떠올렸다. 그러나 현재 6사단 청성부대가 2018년 9월부터 19연대를 시작으로 8사단이 주둔하던 포천으로 이전하기 시작하였고 2024년까지 6사단 전 부대가 포천지역으로 이전한다고 한다. 6사단이 방어하던 GOP 지역은 5사단과 3사단이 나누어 맡게 될 것이며, 앞으로는 6사단이 포천에서 5군단의 예비사단으로서 철원의 5사단과 3사단의 뒤를 맡게 된다.[37] BCT: 타국에 파병되는 미군의 기본 부대 단위이며, 과거 미군 여단의 편제를 대체하고 있는 조직이다. 현재 미 육군은 현역 사단 및 주방위군 사단 아래 있는 대부분의 여단 조직을 BCT(Brigade Combat Team)로 개편하고 있다.[38] 2018년 중순까지 수기사 예하에 "1"부터 시작하는 '1기계화보병여단'과 '1기갑기계화보병여단'이 둘 다 있었다. 이 때문에 수기사 내에서는 약칭을 1기보여단과 구분하기 위해 '수기사 1기갑여단 또는 1기갑기보여단'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국군 최초의 독립기갑연대로 창설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갑을 붙여 그럴듯하게 사용하고 있으나, 기계화 이전에는 보병연대였고 현재도 사실상 전차부대가 없는 기계화보병여단이기 때문에 "기갑"은 장식에 불과하다. (이 부대는 기갑이라는 명칭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기계화보병여단으로 개편되기 이전의 보병연대 시절에는 기갑부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갑 명칭을 붙여 1기갑보병연대라는 해괴한 부대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1기갑기계화보병여단은 2018년 9월 1일부로 제8기계화보병사단으로 예속전환되었다. 1기갑기보여단 출신과 관계자들이 1기갑기보여단이라고 말하는 것이 귀찮아서인지 아직도 1기갑여단이라고 줄여서 말한다.[39] 독립 여단인 제1기갑여단은 기갑마크를 사용하고, 8사단 예하의 제1기갑기보여단은 오리지널 부대마크 없이 8사단의 오뚝이마크를 사용한다.
참조: 제1기갑여단 기갑마크 저시인성
[40] 국군조직법 제9조(합동참모의장의 권한) ① 합동참모본부에 합동참모의장을 둔다. ② 합동참모의장은 군령(軍令)에 관하여 국방부장관을 보좌하며,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군의 작전부대를 작전지휘·감독하고, 합동작전 수행을 위하여 설치된 합동부대를 지휘·감독한다. 다만, 평시 독립전투여단급(獨立戰鬪旅團級) 이상의 부대이동 등 주요 군사사항은 국방부장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③ 제2항에 따른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군의 작전부대 및 합동부대의 범위와 작전지휘·감독권의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41] 이런 사단신교대 출신은 대부분 본부중대로 배속된다.[42] 전차 등 장비를 끌고 갈땐 20~30km의 서행으로 길을 우회해서 가기 때문에 체감 상 멀게 느껴질 뿐이지 사실 차로 몇 분 안 걸릴 정도로 근접한 거리다. 쉽게 설명하자면 산정호수 근처에 위치해있다. 도로 파손 위험도 있거니와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기동을 할 때는 어느 때보다 신중한 편이다.[43] 이곳은 사격장 바로 옆에 위치한 제3전차대대가 관리하는 곳이다.[44] 전차포 사격은 한부대마다 1년에 한 두번만 진행하는 대규모 훈련이기에 여러 부대가 돌아가면서 사격장을 이용한다.[45] 45구경 M1911A1을 소지한 병사도 있다.[46] 그래도 일반 소총수나, 정보통신과 같은 다른 병과들보다 훨씬 나은점이, 소총 탄알집보다 훨씬 작은 탄알집 두개가 들어있는, 소총 탄알집 파우치보다 훨씬 가볍고 작은 파우치를 사용하며, 화기 또한 소총보다 가볍고 작은 권총을 차고 걷는다는 것에 훨씬 큰 장점이 있다.[47] 최초의 기갑부대 마크로서 기갑여단에서는 창설 당시부터 기갑마크라고 부른다.[48] 참조: 제1기갑여단 메달
[49] 여상(呂尙) 또는 강상(姜尙)은 모두가 잘 아는 낚시군의 대명사 강태공이다. 일반적으로 여상이라고 부르지만 성은 강(姜)이며 씨는 여(呂), 이름은 상(尙)으로, 여(呂)씨 부족의 상(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상은 주(周)나라 문왕과 무왕의 군사(軍師)로서 4만 5천의 군사로 72만의 상나라(또는 은(殷)나라)군을 대파 하는 기적적인 전쟁을 수행한다. 태공망(太公望)이란 태공(건국한 왕=문왕)이 원하던 사람이라는 뜻이다.[50] 제5공병여단 일부 병사들도 일동회관 대신 이용하기도 한다.[51] 카페에서 근무하고 있던 인원들은 모두 병사로, 입대 전에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으면 차출되는 파견 형태였다.[52] 교회 건물은 미군 카이저부대 시절부터 존재해 온 걸 꾸준히 보수만 했다. 지금은 깨끗하게 하얀 나무판자로 덮여있지만 원래 돌로 만들어진 벽을 잘 보면 찾아볼 수 있다.[53] 옛 전격교회 모습
[54] 구 이동본당,1994년 1월 18일 승진본당으로 개칭, 2018년 12월 기존 성당 건물의 노후화로 구 오뚜기성당(오뚜기본당은 8사단 이전과 함께 이전) 건물(2018년 3월 10일 신축)로 이전하며, 건물 명칭도 오뚜기성당에서 승진성당으로 변경 하였다.[55] 법보신문 기사[56] “국가 방위의 1차적 책임은 각 국가가 스스로 져야 한다. 아시아에서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가급적 피하겠다. 미국은 아시아 여러 나라와 조약 상의 약속을 지키겠지만,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을 제외한 내란이나 침략에 대해서는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해 대처해야 할 것이다.”[57] 재밌게도 군인들에게 길들여저 사람이 다가와도 달아나기는 커녕 멀뚱멀뚱 서있는 개체도 간혹 있다. 그렇다고 다가가서 쓰다듬거나 먹이를 주거나 하진 말자.[58] 멧돼지는 장성한 개체라면 철조망을 부수고 사람의 인명을 위협할 수 있는 맹수이기 때문에 부대에 나타나면 비상이 걸린다.[59] 40장 이상을 모을 수 없게 일부로 조절해서 준다는의혹이 병사들 사이에서 흐르고 있다. 코로나 군번들은 기본이 45장을 넘어갔는데 지금은 40장도 찾기 힘들다는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