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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22:55:54

장석조

장석조 | 오인용데빌
파일:AKR20170321173000704_05_i_P4.jpg
출생 1978년 3월 29일 ([age(1978-03-29)]세)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동[1][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고척고등학교 (졸업)
계원조형예술대학[3] (애니메이션과 / 전문학사)
가족 손윗형제,[4] 아내 최송희[5], 슬하 2녀
종교 천주교 (세례명: 안셀모)[6]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1998년 5월 ~ 2000년 7월)[7][8][9]
플랫폼
현황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오인용데빌
구독자: 40만명[기준]
조회수: 138,208,801회[기준] 실시간
외부 링크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특징3. 연출작
3.1. 플래시 애니메이션3.2. TV 애니메이션
4. 목소리 출연5. 여담
5.1. 2024년 2월 25일자 군대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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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플래시 애니메이션오인용의 멤버이자 전 대표. (2002~2019년, 대표 2002~2007년)

2. 특징

오인용에서의 닉네임은 '데빌'. 너무 착해서 역설적으로 '데빌'이라 불린다고 한다. 또는 대학교 시절, 농구 때 골을 넣고 씨익 쪼개는 모습이 악마를 닮아 그렇다고 한다.[12] 그밖에도 개인 카페에서는 '스톤버드'[13]라는 별명도 썼다.

현재는 유튜브 채널에서 플래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 중. 또한 "장석조와 사람들"이라는 개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오인용이 일시적으로 해체될 때 여러 플래시 애니를 제작했다. 그 중에는 국방부 홍보 애니도 있다. 페이스북

2002년, 오인용을 창립한 주인공으로 오인용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다. 훗날의 회고에 따르면, 장석조는 대학을 졸업한 후 본래 모 모바일 회사에 입사했으나 약속과는 달리 수습사원으로 지내는 기한이 늘어나고 임금마저 체불되자 참다 못해 함께 입사했던 친구 및 회사에서 새로 알게 된 동료 백건(지정훈)[14] 등과 의기투합하여 자신들만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팀을 꾸리기로 결정한 후 퇴사한다. 장석조는 이처럼 오인용 팀의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오인용 팀의 대표까지 맡았다. 재미있게도 그가 오인용의 대표가 된 이유는 가위바위보 내기에서 졌기 때문이라고.[15]

대부분의 오인용 멤버와 마찬가지로, 플래시 제작자뿐 아니라 목소리 연기자로도 자주 겸업하였다. 오인용 내에서는 주로 조연들의 목소리를 담당.[16] 찢어질 듯한 느낌의 신경질적인 하이톤과 시끄럽고 정신사나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주특기이지만, 의외로 진중한 중저음의 톤도 잘 구사한다. 일상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조금 톤이 높기는 하지만 진중한 목소리이다. 오인용 멤버들 중에서는 가장 높고 미성에 가까운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가끔 여성 캐릭터를 맡기도 하였다.[17]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2020년대 이후에도 군대썰 만화를 낼 때 나레이션에서 좋은 목소리를 내는 걸 보면 타고난 미성인 듯. 하지만 자신의 군대시절 썰 유튜브 만화 동영상을 보면 오인용 시절 자신의 다양하고 높은 성량을 자랑하는 목소리 덕에 노래방에서도 그 특기를 제대로 발휘했다는 모양.

연기하는 캐릭터들도 대체로 성격이 급한 스타일인데다가, 하필이면 오인용 멤버들의 일상을 소재로 한 《오인용 통신》, 《배틀 오인용》, 《근성 오인용》, 《이웃집 오인용》, 《으라차 오인용》 등의 플래시 작품에서도 다소 과격한 성격으로 묘사되는 바람에 한동안 팬들에게 실제 성격도 급하고 막나가는 것이 아닌가 오해받기도 했다. 다만 《다큐 오인용》을 보면 이는 모두 재미를 위한 극중의 연출일 뿐, 실제 성격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리더십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인물.

오인용의 플래시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연예인 지옥》, 《신 연예인 지옥》 등의 기획, 연출, 제작을 도맡았던 원작자로 오인용 내의 숨은 최대공로자였다. 연예인 지옥 후기를 보면 이 모든 것을 다 완수한 후 뻗어버린 데빌의 모습이 작게 나온다. 그래서인지 이에 관련되어 문희준의 소속사로부터 고소를 당했을 때에도 장석조는 다른 친구들이 같이 고소당하지 않도록 자신이 모두 책임을 지려고 하였으며, 경찰서에 소환되자 피소인은 자신 한 사람 뿐이라고 진술했다.[18] 장석조 본인의 회고를 보면, 처음에는 나름 사회부조리를 고발한다는 생각 때문에[19] 문제의식을 잘 느끼지 못했으나 소송을 당한 후에는 정말로 자신이 큰 잘못을 했다는 점을 절감하고 큰 후회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자신이 잘못했음을 시인하는 애니메이션을 끊임없이 제작하고 있다.

2010년에는 춘천문화방송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청춘병법 아미아미의 제작을 총괄했다. 실제 군 복무를 마친 예비역 병장 김수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병무청이나 군 부대에서도 간간이 틀어주는 애니메이션이다.[20] 여기서 장석조 본인은 말년병장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스승의 날 특집 애니메이션에 따르면 딸이 2명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21]

여담으로, 폭력교실에서 2반 김창후를 연기했던 탓에 아직도 김창후 캐릭터 담당 성우로 오해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김창후 성우가 잠시 부재중일 때 임시로 냈던 목소리다.[22]

2019년 2월 새로운 데빌 캐릭터를 공개했다. 미시마 카즈야 그리고 2월 8일에 수익창출 정지 처분을 먹었음에도 자신은 영상을 지속적으로 업로드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3월 구 연예인 지옥 외전편 삭제, 신 연예인 지옥 8편을 삭제 후 편집하고[23] 재업로드한 뒤, 수익창출 정지가 풀렸다.

이후 카카오페이지에서 '666부대' 웹툰을 연재했고 작품을 마무리 지으면서 길었던 연예인지옥 시리즈를 끝마쳤다.[24] 현재는 유튜브 개인 채널(오인용데빌)에서 개인 창작 활동 중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업로드를 하는데, 자신이나 구독자의 사연을 받아 만화로 각색하여 올린다. 이후 666부대가 완결되어 완결 영상을 올렸고, 장삐쭈도 그에게 찾아가 경례를 해주는 등 축하를 받았다.[25] 이 군대사연을 어느정도의 각색을 섞어 만들어 제작하는데, 꽤나 조회수가 높은 영상들도 많고 전반적으로 조회수가 꾸준하게 잘 나오고있다. 나름대로 작가 인생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볼수있다.

3. 연출작

3.1. 플래시 애니메이션

3.2. TV 애니메이션

4. 목소리 출연

5. 여담

기본적으로 사람이 좋고 순한 성격이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들은 어느 정도의 공격성은 가진 경우가 많은데 장석조 감독은 천성적으로 공격성이 없는 편. 사실 장석조 감독 뿐만 아니라 오인용 멤버 전원이 극중에서의 거친 입담과 달리 워낙 순하고 싫은 소리 자체를 못한다. 이건 다큐 오인용에서도 장석조 감독이 밝힌 바 있다.

이런 점 때문인지 자기 군대 썰 유튜브 만화에서 자신을 유독 핍박하는 선임 썰이 자주 나온다. 대표적인 게 이파종, 김창남, 그리고 김명훈.[34] 군대도 어떨 때는 계급보다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저 셋은 장석조를 만만하게 보고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육군 보병 주특기(병과) 중 가장 빡세다는 공병대대에서 어지간하면 체격이 되는 사람을 뽑는 법인데 장석조는 체구가 꽤 작은 편이고[35] IMF 때 워낙 입대인력이 넘치는 통에 뺑뺑이 운이 나빠서 공병대대로 떨어졌으며 안 그래도 작은 체구에 당시엔 꽤 말랐던 편이라[36] 한 덩치 하는 공병대대 선임들이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했다. 스스로도 피지컬 최강들이 몰린 공병대대를 작은 체구에 한낱 그림쟁이가 왔다고 자조했을 정도.[37] 모진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어도[38][39] 후임들에게 내리갈굼을 하지 않고, 본인 선에서만 끝냈다는 것도 그가 그만큼 대인배라 가능한 것이지 그 당시 1998~1999년도 군대라면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이다. 본인 스스로는 군대썰 만화를 유튜브에 올리면서 자신은 '내가 군대를 바꾸고 말겠다!'고 하는 혁명가 타입과는 거리가 멀다고 밝혔지만, 당시 여건 기준으로 충분히 후임들을 위해 할 일을 해주고, 미술 실력을 살려 7명의 휴가를 벌어준 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좋은 선임상이다.

물론 착한 선임상이라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얄짤없이 선을 긋거나, 무시하는 모습도 보여주는걸 보면 착한 사람이 화내면 무섭다 측에 속한걸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전역한 김창남이 자기 부대 연병장에서 허형우랑 같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자, 반갑게 맞이하는 허형우와는 다르게 김창남에게는 쌀쌀맞게 굴었으며, 한번 고참은 영원한 고참이라고 개소리를 시전하자 면전에다가 "얼뻘 새끼"라고 욕을 박았다. 그리고 후임 중 김용만 (98년 12월 군번)이랑 장난치디가 선임에게 씨X이라고 욕설을 박은 것도 모자라, 사과 한마디 없이 생까자, 김용만이 자기 아래 후임이었던 구영모 (99년 3월 군번)와 크게 다퉜을 때도 김용만이 아닌 구영모를 감싸면서 사건을 묻었다.[40][41]

다큐 오인용 9편에서 이런 성격이 잘 드러나는데, 연예인 지옥으로 인해 가수 문희준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로부터 고소를 당했을 때 다른 팀원들을 모두 다독이며 안심시키고 자신이 스스로 책임지고자 했을 때 다리가 저절로 후들거리고 엄청나게 쫄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럴만도 한게 일반인 누군가의 고소도 아니고 연예계 굴지의 기획사 SM에서 호화법무팀을 꾸려서 직접 고소를 했으니 당시 20대 중후반에 불과했던 장석조 감독 입장에선 만약에라도 유죄를 받을 경우, 팀의 해체 그리고 형사처벌과 민사소송까지 당하게 되니 젊은 나이에 전과자 꼬리표에 금전적으로 회복불능까지 갈 수 있었기에 그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부드러우면서도 워낙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라 장석조 감독이 SM 측 변호사와 협상도 하고 사태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여러가지 벽에 부딪히고[42] 이후 1년 뒤 수많은 문희준의 악플러들에 대한 처리가 끝나고 결국 오인용이 고소의 막차를 타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고 자신이 모두 책임질 각오로 혼자 조사를 받으러[43] 가서 의연하게 자신의 책임임을 밝히자 담당경찰도 표정이 누그러지면서 원만한 합의를 권해줬다고 한다.

그 다음에 문희준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하고 합의를 위해 협상을 했으나 문희준의 매니저가 문희준씨가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하신다며 끊어 협상은 결렬되고 고소가 진행되는 듯했으나 얼마 뒤 문희준이 SM을 나오면서 고소는 자동 취하되어 해결되었다고 한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에 강한 책임감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써 비록 가위바위보로 강제로 리더가 되었지만 이 시기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오인용의 리더는 장석조 감독이 가장 최적임자이며 그 자격이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 덕분인지 돈복은 부족해도 인복이 꽤 많은지라 대학 선배와 동기인 손효석 & 오영태가 먹을 걸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와주는 등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물론 다큐 오인용에도 나오지만 손효석에게 놀러와 달라고 하면서 "효석이 형, 오실 땐 양손은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 아시죠?^^" 하며 먹을 것 좀 사달라고 돌려서 말해주기는 했다.

연예인 지옥으로 유명해지면서 항상 무릎에 물 찼다는 드립으로 유명해서 20년 동안 만년떡밥으로 실제로도 무릎에 물찬거 아니냐고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2021년 10월 17일 군대썰 만화에서 그건 자기 맞선임 썰이고 자신은 무릎에 아무 이상도 없다고 만화 막판에 오피셜을 날렸다. 쫑! (終!) 해당 영상

남성 캐릭터는 크게 디테일을 신경쓰지 않고 대충 그리는 반면[44] 여성 캐릭터는 엄청나게 정성을 들여서 그린다.

본인의 신병교육대 시절 면제받지 못한 자의 훈련소 편과 짬밥의 추억에서 상한 두부가 식재료로 사용된 그 날은 식중독에 걸려 본인을 포함 전 대원들이 설사병으로 고생했다고 한다.[45]

군대 사연에 올라온 영상 내용 중 일부가 유튜버 개복어의 썰왕썰래와 겹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전설의 말년 중대장대한민국 육군 병장 VS 멧돼지&고라니가 있다. 장석조 본인도 이에 대해 몰랐기에 개복어에게 허락을 구했으며, 개복어도 흔쾌히 받아줬다고 한다. #1 #2

여담으로 두발정리 안해서 해군 전원에게 찍힌 폐급 말년병장썰와 같이 타 커뮤니티 만화로도 올라올정도로 유명한 썰도 종종 올라오고있다.#[46]

상당한 애연가였으나 2007년에 금연을 했다.

시청자의 군대 썰을 만화로 재현하는 방송을 하기 전, 본인의 군생활을 썰로 풀 만큼 상당히 평범하지 않은 군생활을 겪었는데, 1990년대 말이라는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해도 절대 평범하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우선 자대배치부터 예사롭지 않은데, 자대배치를 받고 부대에 왔을 무렵, 분대 선임들이 모두 파견을 떠나 혼자 남아있었으며, 당시 속옷 빨래를 해서 널어놨다가 모두 도둑맞기도 했으며,[47] 눈앞에서 뇌전증 환자인 선임이 발작을 일으키다가 기절한 장면도 본 적이 있으며, 중대 내에 병사들의 돈을 훔치는 선임도 있었는가 하면, 폭우로 대민지원을 나가던 도중, 공병과 보병 사이의 자존심 싸움에 휘말려들어 고생을 하기도 했고, 상병 시절에는 아들 군번 후임병들 중 한 명이 여단에 내무부조리들을 모두 찌르는 바람에 몇몇 선임들이 영창을 가고, 중대장과 행보관이 교체되기도 했다.[48] 소아마비 환자를 후임으로 받은 적도 있었으며,[49] 심지어 병장 시절에는 자신의 분대원이 다른 분대의 선임병과 주먹까지 오가며 싸운 일을 겪기도 했고,[50] 말년에는 당직을 서는 친한 간부의 허락으로 그 간부의 영내 독신자 숙소에서 심야까지 게임을 하고 내무실로 복귀하던 도중, 부대 내 외진 장소에서 의문의 시선과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그 때는 헛것을 봤다고 치부하고 내무실로 돌아와 잠을 청했지만, 다음날 후임병에게 취사병중 한명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수 밖에 없었는데, 그 취사병이 자살을 시도한 시간은 그 날 새벽이었고, 장소는 장석조 감독이 의문의 시선과 마주친 그 장소였다. 즉, 그 의문의 시선의 주인은 자살시도를 하던 취사병이었던 것. 동기와 함께 말년 휴가를 나갔다가 복귀했을 때는 버스 표가 모조리 매진되어 시간 내 복귀를 못할 수도 있었던 찰나, 버스 기사의 배려로 다행히 돌아 올 수는 있었지만, 복귀했을때 시간은 자정이었고, 당시 당직 간부는 상당히 무섭기로 소문난 중위였으나, 말년이라 봐줬던 모양인지 늦게 복귀한 것과, 사제 티셔츠를 입고 온 것을 걸렸음에도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최근 시청자 군대 사연썰 중에서 2004 세계기독군인대회 당시, 나이지리아 전 독재자이자, 학살자였던 야쿠부 고원을 만난 썰과 2002 한일 월드컵 국대 출신 훈련병[51]과 같이 훈련소에서 보냈던 썰 등등, 유명인과 엮인 썰들도 종종 보인다.

5.1. 2024년 2월 25일자 군대썰 논란

2024년 2월 25일 업로드된 선임의 포상 휴가를 훔치고 만창 보낸 이등병이라는 제목의 군대썰 애니메이션이 논란이 되었다.

영상 시작부터 장석조 감독이 이 썰을 영상툰으로 만들지 말지 고민하다가 제보자가 욕 먹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선임한테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 제작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군대 썰 시작마다 '소중한 구독자분의 사연이니만큼 무례한 댓글은 지양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경고문을 달아놓는 최송희 하사 역시 "큰 용기를 내어 보내주신 사연이니만큼 무례한 댓글은 지양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면서 영상이 시작된다.

악플이 예상되니 심사숙고해보라는 경고가 과언이 아니어서, 영상 속 제보자의 행동은 정말 가관이었다. 자신한테 친절히 대해준 맞선임을 초면부터 선임들에게 혼나고, 외모가 못났다는 이유만으로 폐급이라 단정짓질 않나, 맞선임이 남몰래 피나게 연습해서[52] 따낸 만발 표적지를 옆 부사수 동기에게 자기 것과 바꿔치기해서 휴가를 타내질 않나[53], 서로 말년이 되었을 때, 싸지방에 몰래 게임을 다운로드해서 하다가 보안 검열 때 들켰는데, 그 선임이 대신 뒤집어쓰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대로 맞선임을 만창으로 보내버린, '진짜 폐급은 자기가 폐급인 걸 모른다'는 걸 입증하는 고문관이었다. 전역 후 대면해서 사과라도 했다면 모를까, SNS를 수소문해 학교에서 민간인으로 살아가는 선임을 찾아서 대면할 기회가 있었는데 끝내 나서지 않고 유튜브로 그 선임한테 사죄하고자 사연을 보냈다면서 제보자가 그 선임한테 사죄하는 것으로 영상이 끝난다.

당연히 댓글창은 우려대로 제보자를 향한 비난으로 가득 찼고, 끝내 장석조 감독은 군대 썰 연재 중 처음으로 댓글창을 닫았다. 물론 자신이 잘못한 걸 알면서도 그걸 자랑스럽게(?) 사연으로 제보한 제보자의 잘못이 크지만 제보자가 욕 먹을 걸 잘 알면서도 해당 사연을 걸러내지 않은 채 끝끝내 영상툰으로 만들어 해당 제보자를 욕받이로 만들어놓고 댓글창을 닫아버린 장석조 감독 역시 잘못이 없다고 할 순 없다.

[1] 1978년 당시에는 영등포구 관할이었는데, 1980년 구로구가 신설되면서 구로구에 편입되었다.[2] 면제받지 못한 자 2편에서 자신이 개봉동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3]계원예술대학교[4] 면제받지 못한 자 시리즈에 등장하는 편지지에 막내아들이라고 써져 있는 것으로 보아 형이나 누나가 있는 걸로 추정된다.[5] 아마추어 성우로 활동 중이며, 주로 여군등 기타 여자 배역을 많이 담당한다. 2023년 1월부터는 아웃트로 영상에서 고정적으로 등장.[6] 영상에서도 종종 이야기 한적있고 축복소녀작품에서도 자신의 세례명 안셀모를 이야기 주인공에도 언급됐다.[7] 기초군사훈련은 제3군단 예하 (구)제2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받았으며 자대는 같은 군단 예하의 제3공병여단에서 복무한 것으로 추측된다.[8] 오인용데빌 영상들을 보면 '여단'이라는 단어가 종종 나온다.[9] (구)제2보병사단 신병교육대는 2019년에 (구)제2보병사단의 신속대응사단 전환준비로 제21보병사단으로 이관된 후 2021년에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재창설되었다.[기준] 2024년 9월 29일[기준] [12] 본인의 말에 의하면 무뇌중의 성우를 맡아준 한바다(당시 마교주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씨가 정식으로 지어준 별명이라고 한다.[13] 석조→石鳥→돌 새→Stone Bird라는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 오인용이 잠시 해체될 때 썼다.[14] 다른 오인용 멤버들과는 달리 2년 선배이다.[15] 오인용 팀 창립 당시에 멤버들은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인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팀의 대표를 맡는다는 점 자체를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라도 리더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고심 끝에 단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을 대표로 뽑기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결정된 대표다 보니, 딱히 눈에 띌만한 권한은 없었으나 장석조 본인은 대표라는 위치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남들보다 2배는 더 많은 작업을 자발적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16] 이는 자신의 목소리가 작품에 나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라고.[17] 오인용 초창기 작품인 식맨아맨의 광년이가 대표적인데, 살짝 얇고 높은 목소리를 낸 후에 에코를 넣어서 여자 목소리처럼 변조한 것이라고 한다. 이게 나름대로 그럴싸해서 초창기 오인용의 팬들 중에는 정말로 여자를 대려와 연기를 시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큐 오인용 2화에서 비화가 나오는데 원래는 같은 플래시 회사에 일했던 여직원 J양에게 시키려 했으나 J양이 연기를 잘못해서 씨드락 : 아냐, 걔는 연기가 너무 안 돼.(딸기우유만 날릴 듯)(과거 백건jr 에서도 목소리를 해줬으나 장석조 감독 말로는 자기가 보기에도 영 별로였다고 한다.) 장석조 감독이 최대한 높은 톤으로 연기한 뒤 피쳐링으로 약간 조정을 하자 그럴 듯한 연기가 나왔다고 한다.[18] 그럼에도 《연예인 지옥》의 정지혁 병장이나 김창후 이병 등의 캐릭터들이 너무 흥하는 바람에 원작자인 장석조 본인은 묻히는 경향도 있다. 심지어 오인용의 리더를 정지혁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도 많다. 훗날 진짜로 리더가 되었다.[19] 연예인의 병역비리 및 군생활의 각종 부조리 등. 사실 당시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문희준이 을 한다는 것 때문은 아니었고 다큐 오인용에서 장석조 감독 본인도 락 좀 하면 어떤가 하고 크게 신경쓰진 않았고 락에 대해서도 말 그대로 락은 씨드락 밖에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떠돌던 연예인 찌라시에서 문희준이 어깨탈구 군면제라는 걸 그대로 믿어버리고 당시에는 분기탱천했었다고 한다. 자신이 공병대대에서 군생활할 때 면제사유가 충분했던 선임(박형근), 후임(김병민) 둘이 있었는데 그 둘은 각각 간질발작과 소아마비를 앓고서도 복무를 한 터라 이런 케이스도 군생활했는데라는 마음이었던 듯 하다.[20] 그림체가 그림체인 만큼 저거 오인용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21] 이 중 한 명은 2012년생이며, 해당 영상(2018년 업로드)에서 내년에 초등학교에 간다는 말로 알 수 있다.[22] 구 연예인 지옥 출시 예고편에서도 김창후 이병이 나왔는데, 이때도 장석조가 맡은 것으로 보인다. 잘 들어보면 폭력교실의 김창후와 목소리가 흡사하다.[23] 저작권 문제로 일부 음원을 삭제했다. 엔딩에 나오는 팝송을 군가로 대체했다.[24] 작가의 말에 의하면, 본인의 창작인생에 있어서 이 작품만큼은 어떻게서든 꼭 완결시키고 싶었다고 소회했다. 아무래도 데빌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뜻깊은 작품이기 때문에 그런듯.[25] 이후 장석조 또한 장삐쭈의 신병 시리즈 중 '저녁점호' 편에 "역시 군대이야기는 장삐쭈"라고 답글을 달았으며, 상술한 완결 영상에서는 복무했던 부대를 오랜만에 방문한 장석조 작가를 만난 한 초병이 장삐쭈로 착각하는 내용도 나왔다.[26]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을 통해 오인용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문희준 희화 캐릭터로 인한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고소 전쟁으로 인해 오인용 자체가 해체되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기 때문이다.[27] 시간이 흐르면서 오인용 맴버들은 각자의 생업으로 인해 자연스레 오인용 활동에 소원해져 애니메이션 작업을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려워졌고, 또한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쇠퇴기로 하락하는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28] 신병위로휴가 나가기 전까지의 신병 시점[29] 이 시절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예인 지옥'이 만들어졌다.[30] 신 연예인 지옥 시즌 1에서는 민상식이 맡았다.[31] 다데빌에 혁군일기와 더불어서 유이하게 안 나온 주연 캐릭터이다.[32] 데빌 캐릭터 중에 유일하게 목소리도 정상이고 상어이빨이 아닌 멀쩡한 외모로 나온다.[33] 혁군일기와 으랏차 오인용을 제외한 장석조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들이 모였다.[34] 악질 선임이라면 정영호도 있었지만, 그나마 정영호는 자신을 덜 갈궜기에 제외된 듯 하다. 박형근 또한 본인을 자주 갈구는 선임이라서 굉장히 싫어했지만, 후천적 간질이 있었음에도 끝까지 의병제대 없이 현역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리스펙은 했다. 다만 박형근 성향을 보면 자기도 일이등병때 간질병으로 고생하고 작업에서 거의 다 열외했으면서 상병장되자 동기믿고 후임들이나 갈구며 짬대접만 받으려한 인간이었다는걸 생각하면 현역제대와는 상관없이 인성이 별로 좋지않은 편이다.[35] 다큐 오인용 만화를 보면 오인용 다른 멤버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다.[36] 훈련소 때 51kg까지 떨어졌다고 한다.[37] 그나마 김명훈과는 짬을 좀 먹은 이후에 서로 당시의 일을 미안해하며 원만한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38] 본인이 유튜브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독립 공병대대의 1중대였는데 같은 대대에 속한 다른 중대들에게 지옥이라고 악명이 자자했다고 한다. 매 영상마다 다양한 부조리가 드러나며, 소대장은 하나같이 개차반에, 행보관은 무술 단증이 없거나 사격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개인정비 시간을 박탈하고 휴가도 제대로 못 쓰게 했으며, 중대장은 그렇게 행보관에게 괴롭혀진 병사들이 더 괴롭힘당하기 싫어 열심히 쏘니 그게 실적이 되어 오히려 행보관 편인 등 가관이었다.#[39] 결국 아들 군번 중 한 명인 김두형이 신병 휴가를 나가자마자 여단 헌병대에 신고하고 여단장을 만나 부조리를 적어 고발했는데, 무려 A4 용지 3장 반을 앞뒤로 꽉꽉 채울 분량이었다고 한다. 김두형의 고발로 강제로 전출당한 상병장만 30명에, 행보관은 먼 타지에 위치한 부대로 전출되었고 중대장은 불명예 전역되었으며, 김두형 역시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다. 부조리가 상상 이상이었던 모양. 당장 본인도 자신의 부대를 부조리 백화점이라고 표현했으며, 김두형은 고문관이었지만 적어도 1중대의 후임들에게는 영웅일 수도 있다고 회상한다. #[40] 본인에 의하면 감쌌다고 말했지, 당시 중대장에게 보고하면 진급에 눈이 먼 똥별이었기에 분명 자기가 부조리를 발견한 것처럼 보고를 할게 뻔했고, 병사들 간에는 하극상이란 없고 폭행만 있는지라 보고하면 둘 다 영창 갈 게 뻔했기 때문에 사건을 쉬쉬하자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것도 있다.[41] 이 사건 이후로 그 누구도 구영모를 건들지 않았으며, 김용만은 이 사실에 노발대발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나마 둘을 중재하던 장석조가 전역한 뒤, 같은 부대 후임 말에 의하면 김용만과 구영모는 결국 또 크게 싸웠고, 둘의 동기들까지 싸움이 붙어서 영창 가고 부대가 난리났다고 한다.[42] 5대 일간지에 5단통 광고로 사과문을 올릴 것을 SM 측 대표 변호사가 제시했으나 한 곳에 5단통 광고 문의를 하자 장석조 감독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 나와(액수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변호사 측에 읍소를 했으나 결렬되었다.[43] 물론 강남경찰서 앞까지 장동혁(씨드락)과 민상식(씩맨)이 같이 가주긴 했다.[44] 하지만 말이 대충 그린다고 해도 현실에 나올법한 외형으로 데포르메해서 표현한다. 그리고 구독자의 사연 만화에서 등장하는 정상인 캐릭터나, 참군인 캐릭터의 경우는 미남 혹은 미중년으로 표현한다. 반면 폐급 캐릭터의 경우는 굉장히 비호감스럽게 묘사한다.[45] 이 중 동기인 노영기는 두부 알레르기가 있어서 혼자 멀쩡했다.[46] 참고로 해당 말년병장은 제대후에도 SNS에 신상이 털려서 조리돌림을 당했다고 한다.[47] 이는 맞선임이 널려있던 다른 속옷들을 훔쳐다주어 해결했다.[48] 하지만 이전 중대장과 행보관은 체력, 사격, 태권도 저조자에게는 휴가를 나가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보관과 중대장이 바뀐 것은 중대원들 모두가 환호했다. 새로 부임한 행보관은 장석조 감독을 크게 터치하지 않았지만, 중대장은 사사건건 장석조 감독과 부딪혔다.[49] 소아마비 환자가 있는 것이 왜 평범하지 않냐 하면, 소아마비는 원래 면제 사유였다. 그런데 그 후임은 신체검사에서 3급이 나와서 현역병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임, 간부들의 배려 아래 크게 모난 부분 없이 군생활을 잘 수행했다고 한다.[50] 이는 병장이 된 동기들과 합의하여 조용히 묻기로 했다. 문제삼으면 먼저 주먹을 휘두른 선임병도 영창을 가기 때문. 그런데 그 둘은 장석조 감독이 전역한 직후, 크게 싸움을 벌여 두 사람의 동기들까지 말려들었고, 관련자들이 죄다 영창에 갔다.[51] 영상에선 H씨라고 표기했지만, 그림체라든가 댓글 내용들을 유추하자면 현영민으로 추정.[52] 괜히 다 보는 데에서 연습하면 자기 아래 후임들이 선임들에게 "쟤는 열심히 연습하는데, 쟤보다 짬 딸리는 너희들은 뭐냐"라고 갈굼받을까봐 몰래 창고에서 연습했다고.[53] 당연히 부사수에게 걸려서 중대장 귀에 들어갔고, 맞선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중대장은 노발대발하며 제보자를 영창에 보내려고 했지만, 맞선임이 제보자가 소대 막내라 많이 힘들다며 만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