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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수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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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임무3. 구분4. 특징5. 선발
5.1. 부사관5.2. 병
6. 편제7. 부대 생활8. 출신 인물9. 여담
9.1. 6.25 전쟁과 창군 초기의 수색대 형태9.2. 기갑수색대
10.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수색대(大韓民國陸軍搜索隊, ROKA Reconnaissance and Surveillance Unit)는 대한민국 육군특수임무부대로, 육군 사단 부대에 편성된 수색 부대이다. 여단 부대에 편성된 수색중대는 정보중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 임무

주로 적지종심작전부대로서 침투·정찰감시·화력유도와 적 특작부대 아군 후방 침투 시 이를 소탕하는 탐색격멸작전, 비무장지대 수색 및 매복작전을 수행하고 최전방의 GP 경계 임무를 수행한다. 2022년 기준 사단에는 수색대대가, 여단에는 수색중대가 편제되어 있다. 국군 부대 중에서 NLL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 고속정들과 더불어 북한군과 가장 지척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육군의 각 사단/여단에선 정예병력으로 평가된다.[1]

수색대로서 신교대 훈련병 중 체력이 좋고 정신이 멀쩡한 훈련병들을 우선적으로 차출시켜 배치시킨다. 따라서, 많은 훈련병들이 기피한다. 차출 우선순위는 FEBA에서도 사단이나 지휘관에 따라 전부 다르다.

3. 구분

전방사단과 예비사단 수색대 두 부류로 나뉜다. 철책경계를 맡은 전방사단의 수색대는 사단 본부와 떨어진 민통선 안쪽이나 근처 배치되는 게 대다수다. 이들의 임무는 매일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을 관리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수색대대가 DMZ 내에 있는 GP에서 근무했으나[2], 현재는 수색 작전과 매복 작전을 하고 수색중대에서 GP 작전을 맡게 바뀌었다. 원래 정전 협정에 따르면, DMZ 내에는 무장 군인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이들은 '민정경찰'이라는 흉장을 달고 경찰 신분으로 작전에 투입된다.[3] 이 때 MP 완장을 차고 투입되는데 이는 어떤 부대 소속인지 알지 못하게 하여 북측에 혼란을 주기 위함이다. 어차피 섹터별 관할 사단 정도야 북괴도 다 안다.

4. 특징

일과는 작전 위주로 돌아가며 체력단련을 중요시하여 보통 작전이 없는 날에 아침 5km 오후 5km 단체 구보를 실시한다. 가끔 10km 급속행군이나 5km 군장뜀걸음을 실시하는데 작전에 지친 병사들은 환자 테크를 시도한다. 실제로도 무리한 작전으로 특히 무릎과 발목 연골이 아작나는 경우가 많다.

사격훈련량은 실탄 작전을 전담하는 부대답게 타 부대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다. 대대의 5.56mm 교탄 소모량이 나머지 사단 예하 부대의 소모량 총합을 웃돈다. 작전기간 중엔 2-3일마다 주간과 야간 번갈아가며 수색과 매복, 경호 임무 상황에 대비한 기동간, 차량 탑승과 같은 즉각 조치 사격 훈련을 받으며 사격에 대한 감각을 유지시킨다. 또한 적 특작부대 침투시 격멸이 주 임무이기에 이에 대비한 하강수색식 헬기 강하훈련인 패스트로프훈련을 비중 있게 실시한다. 특공무술은 비중 있는 편은 아니나 무술시범단으로 행사에 참여하는 경우 2-3달간의 특공무술 집체훈련 뒤에 각종 행사에 뛰어다닌다.

DMZ 작전은 당연히 기밀 사항이며 수색과 매복작전을 위주로 진행한다. 작전 유형은 다양하며, VIP 경호 작전이나 기타 기밀작전도 수행한다. 전시에는 적지종심작전을 하며 각 팀별로 미리 정해놓은 북한 내 거점으로 침투를 실시하며 최전방수색의 경우 군단 특공보다 더 깊은 적지 종심으로 전선침투하여 화력 유도 및 첩보 보고 작전을 수행한다.

수색대에는 저격반이 편제되어 있으며 소수인원으로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예비사단 수색대는 DMZ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사단 본부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단본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이들을 보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아침점호시간. 다른 부대원들은 평범하게 구보하는데 수색대원들은 난이도 높은 구보를 수행한다. 타 보직 군인들은 이들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본다.

지역방위사단에서는 기동대라고 부른다. 군단 특공대와 전방사단 수색대가 적지종심작전을 수행한다면 기동대와 특공여단[4]은 후방특작부대소탕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단 수색대 내에는 소대급의 유격대가 존재하는데, 유격 훈련을 주관하거나, 유격 조교를 교육시키는 그 사람들 맞다. 이들은 군 생활이 정말 유격이다. 최전방 사단 유격조교의 경우 사단 수색대가 아닌 연대 수색대 중 GOP연대가 아닌 예비연대의 수색대에서 유격대가 있고 그 인원들이 유격 조교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사단 화학대에서도 소수 인원이 유격훈련중 화생방 조교 역할을 수행한다.

진짜 사나이로 유명해진 이기자 수색대가 이 예비사단 수색대 케이스에 속한다. 이 경우 이기자부대 자체가 최전방 사단이 아닌 예비사단이기 때문에 사단 수색대 내에 유격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최전방에서 GOP를 경계하는 사단의 수색대는 유격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가끔 전방 수색과 예비 수색이 술 자리에서 썰을 풀면 DMZ 수색은 생명수당 받으며 지뢰밭에서 작전뛰는 것으로, 예비 수색은 훈련받는 것으로 신경전이 있는데 상징성으로 치자면 훈련도 매우 힘들겠지만 작전은 훈련과 다르기에 알게 모르게 분위기는 DMZ 수색 출신 쪽으로 흐른다. DMZ 수색은 작전지역 땅을 밟는 자체가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비 수색이 절대 편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쪽은 작전 대신에 훈련을 상당한 수준과 빈도로 하기 때문.

실제 DMZ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는 편으로 심심치 않게 총격전과 침투상황이 발생하며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수색대와 북한특작부대[5]간 교전[6]으로 사망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아군의 손실없이 무공훈장 수여자를 배출한 92년 3사단의 은하계곡 완전작전이 있다.그 외 수많은 교전사례들이 존재하며 수색대 복무 시 작전위령비나 과거 교전으로 인한 작전간 사망 사고 사례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가장 최근엔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으로 두명의 대원이 다리를 잃었다.

때문에 수색대에선 DMZ 내 야간 매복작전 출동 시 항상 이번 작전이 그들의 마지막일 수 있으므로 출동 전 모든 대원들이 도열하여 작전간 무사 안녕과 승리를 기원하며 도열사와 함께 목례를 통해 배웅하는 전통이 있다.

과거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 후엔 보복작전으로 담당구역 적 GP를 하나씩 타격하여 점령하기 위해 수색대마다 810보복특임대가 편성되어 적 GP 타격 훈련을 하기도 하였다가 90년도에 해체됐다. 또한 북파공작원을 정기적으로 보내던 시기엔 DMZ내에서 길 안내 및 엄호하는 역할을 하며 각종 특수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시기 60~80년도엔 매주 100km 급속행군과 200km 산악행군, 그리고 년 1회 특공종합훈련 시 천리행군을 5박 6일 수행하였다.

이 시기 북한은 땅굴을 통해 침투를 기도하였는데 제2 땅굴 발견 후 내부 수색 소탕 작전에서 6사단 수색대원들이 투입되어 미리 설치된 부비트랩에 7명이 전사하기도 하였다. 병 복무기간 단축으로 병 복무기간이 18개월로 줄어들면서 병사들의 전문성과 숙련도 문제, 인구 감소로 인한 인적 자원 감소로 수색대는 부사관 위주의 부대로 개편 되었다. 다수의 부사관과 소수의 병으로 팀이 편제되며, 수색대의 경우 특전사에서 수색대로 전출 지원자들을 받아 배치되기도 한다.

5. 선발

2006년도까지는 수색대에서 직접 내려와 뽑아갔다. 신교대에서 차출이 되면 정말 특별한 사항이 아닌 이상 무조건 사단, 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2010년대에도 여전히 수색대에서 신교대에 와서 신체등위 및 훈련소 성적순으로 불러놓고 선발하며, 수색대가 신병 자원에 대한 1차 선발권을 보유한다. 2016년도에는 차출이 아닌 육군본부에서 내려온 대략 20명 내외의 명단으로 면접지원자격을 부여했다.

일단 신교대/훈련소에서 선발해둔 우수한 병사중에서 스스로 수색대를 자원하면 1순위로 들어가게 되고, 수색대를 생각해본적이 없다거나 대답을 어물어물 하면 이기회에 한번 생각해보라며 2순위로 지목된다. 그래도 부족하면 명백히 거부하는 사람 중에서 필요한 인원만큼 차출해간다.

면접을 보고 지원의사가 확실하면 수색대로 자대배치. 이후 DMZ 작전을 위한 기밀유지서약과 약 최소 2주에서 1달 동안 신원조회가 이루어진다.[7] 그 후 집체교육을 수료한 자들에게 흉장을 부여한다.

보통은 소수의 인원만 뽑아갔고 훈련병들 내에서는 무지막지 하기로 소문이 퍼져있어 선호되는 부대는 아니었으나, 군뽕찬 마초들과 더불어 최신 막사시설 낚시에 낚인 물고기들, 그리고 휴가 많이 준다는 소리에 혹한 훈련병들 덕에 인적 자원은 잘 유지된다. 부족하면 더 차출하면 되기 때문에. 휴가는... 많이 받는 건 사실이지만 아무 이유 없이 공짜로 휴가를 뿌려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5.1. 부사관

육군 수색대의 경우 113 특임보병(보병병과) 부사관이 배치된다.

특수전력 정예화, 부대구조 정예화 이전에는 병 위주의 편제였지만, 현재는 특수전력 정예화 개편이 대부분 완료되었으며, 간부 위주로 개편 되었다. 수색대는 팀 편성에서 이젠 다수의 부사관과 소수의 병 위주로 구성된다.

2015년 이후부터는 매년 부대 간부들을 육군특수전사령부 특수전학교 특공수색교육대에 3주간 위탁교육을 보내는데 주로 적지종심작전에 필요한 침투·정찰감시·화력유도와 그리고 적 특작부대 아군 후방 침투 시 이를 소탕하는 탐색격멸 등을 배우는 "특공수색교육"을 받는다.

초급반과 중급반 과정은 각각 육군 부사관학교와 육군 보병학교에서 특공수색반을 별도 편성해서 교육하며, 일반보병과는 다른 교육과정을 가진다. 또한 초급반, 중급반 과정 중에 육군특전사 특수전학교 특공수색교육대에 위탁교육을 보내 3주간(특공수색 초급, 특공수색 중급 각각 3주씩) 특공수색교육을 또 다시 받는다.

수색대 부사관은 보직, 필요성, 부대내 특정교육이수자 인원유지, 위탁교육T.O, 본인 역량 등에 따라 위탁교육을 받을 수 있다. 위탁교육의 종류로는 특공수색교육[8](육군특전사 특수전학교), 특전 의무 교육[9](육군특전사 특수전학교), 산악전문과정[10](육군특전사 특수전학교), 전문유격과정[11](육군보병학교), 저격수의 경우 특수전학교 저격교육도 받을 수 있다.

5.2.

수색대가 간부위주 편제로 개편된 2016년 이후로 전역 후 경찰특공대, 119구조대, 해양경찰특공대의 지원 자격 부대에 포함된다. 단 병으로 지원가능한 경찰특공대와 달리 119구조대는 근무경력이 3년 이상인 자로서 하사 이상의 계급으로 1년 이상 근무한 자여야만 한다. 물론 하사 이상 계급으로 1년 이상이므로, 병으로 근무하고 있다면 임기제부사관을 지원하여 임기제부사관으로 근무해서 자격요건이 요구하는 군복무 기간을 채우면 지원이 가능하다.

훈련병들 중에서 지원자를 받지만 지원자가 부족하면 차출이 되는데, 지원해서 오는 사람보다 차출되어 오는 사람이 더 많다.[12] 처음 입소할 때 간부가 자기 군복의 흉장과 공수휘장을 보여주면서 "수색대 지원 할 사람 거수", "군생활 멋지게 하고 싶은 사람 거수" 이런 멘트를 날리는데, 당연히 훈련병들도 수색대가 빡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외국에서 날아와 국군의 실태를 모른채 군뽕에 빠져있는 소수의 교포 2세가 아닌 이상에야 아무도 지원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GP는 2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외지에 갇혀서 경계임무를 뛰고 차단작전과 같은 위험한 임무를 끝없이 수행하기 때문에 민간인 시절엔 꿈도 못꾼 온 몸의 연골이 갈려나가고 정신이 사그라드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기술행정병 신청을 안했지만 신체 조건이 좋고 훈련병 때 마냥 열심히 하면 국인체에 뜰 자신의 소속이 GOP, 수색대와 같이 빡센 보직 나올 확률이 높다. 흉장 오버로크로 일반병보다 좀 더 화려한 민정경찰(DMZ POLICE)을 박고... 하지만 군대 안에서는 정예병력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우월심리나 영웅심리로 자원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사실 이렇게라도 자기암시를 걸지 않으면 제정신으론 못버틴다 또는 민정경찰 내지 사회에서 보디가드나 기타 몸을 쓰는 직종에 지원하기 위해 스펙을 쌓길 원한다거나 큼지막한 독수리 휘장에 혹해서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렇게 지원하는 이들 역시 전역을 앞둔 말년엔 군트릭스에서 깨어나 미필들에게 수색대 같은건 절대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이 경로를 타지 않고 수색대에 떨어지는 안타까운 경우도 존재한다. 특정 특기병, 예컨대 공병 폭파로 온 특기병이나 무전병들의 경우는 지원이고 뭐고 없이 무작위로 이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13] 특히 폭파병의 경우는 보통 X군단 예하 공병여단으로 배치받는 경우가 많아, 일반 보병사단으로 떨어지면 부대 배치 받을 때 공병대에 가기를 빌어야 한다. 이상한 곳으로 간다 싶다면 그게 바로 수색대다.환영합니다, 후임님! 자의로 오는 게 절대 아니다. 사단 수색대대는 사단직할대 특성상 수송부가 존재하고 운전병도 상당수 편제되어있으나, 여단 수색중대의 경우 별도의 수송반 없이 여단 군수지원대대에서 파견 오는 병력이 담당하므로 운전병을 별도로 뽑지는 않는다.

다만 이도 부대 사정에 따라 약간 다른데, 기본적으로 여단 군수지원대대에서 차량지원을 하나, 업무 효율을 위해 여단을 담당하는 최전방 포병대대의 수송지원을 받는 경우도 많다. 보통 1개 보병여단을 1개 포병대대가 지원해준다. 수색대대나 수색중대는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에 위치하는데, 민간인출입통제선을 관리하는 부대가 보통 포병대대이고 포병대대는 그 특성상 차량이 많이 편제되어 수송지원이 용이하기 때문. 가령 견인포대대의 경우 각 곡사포대에 포차 및 레토나를 합쳐 8대 내외, 본부포대에 포차 10여대 및 닷지차량 5대 내외, 레토나 3~4대, 엠뷸런스, 버스, 탑차, 구난차 등을 합쳐 약 50대 가량 된다. 자주포대대의 경우는 곡사포를 끌 일이 없으므로 훨씬 적다. 이 때문에 수색대대 인원을 수색정찰을 위하여 통문까지 태워주거나, 간혹 드물게 수색중대나 관측반 투입 시 GP까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화생방대방공대수송대의 관계와 같다고 보면 된다.

6. 편제

국방부의 한국전쟁사 전투별로 아군 전투서열을 참조하면 이미 과거부터 사단 수색대와 함께 연대 수색대 등이 존재하였음이 확인된다.(수색소대, 수색분대의 형태로 존재했으며 사단수색대대의 경우 기존 연대 수색소대와 대대 수색분대, 정찰소대, 정찰분대 인원등을 바탕으로 대대급으로 재창설됨) 수색중대는 적 민경대대에 대응하여 아군에서 편제했던 전초중대들로 연대 섹터의 DMZ에 위치한 GP 방어를 담당하면서 사단 수색대와 병존하였다. 이러한 사단 수색중대의 시작은 우리나라 최초의 특수전 부대의 시작이었다.

월남전 시기부터 각 연대별로 운용되던 수색중대는 1977년부터 1983년 사이[14] 단계적으로 해체되었는데, 일부 인원들은 원래 존재하던 사단 수색중대와 같이 사단 수색대대 창설요원이 되었고, 일부 인원들은 각 대대별 수색소대 창설요원이 되며 육군 수색대 편제는 각 보병대대별 수색소대와 사단 수색대대 체제로 변경된다.[15] 참고로 수색대대는 자체적으로 집체교육을 시키고, 수색소대는 신병들을 1년에 1~2회 수색대대에 파견해 집체교육을 받도록 하는 식으로 운용되었다.[이]

육군 수색대는 1993년부터 1998년 사이에 다시 한번 편제의 변화를 가지게 된다. 보병 사단 전초대대(정찰대대)가 사라지게 되며 GP 작전을 수행할 부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해체된 정찰대대 출신 인원들을 각 연대로 보내 연대 수색중대를 재창설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대대 수색소대도 단계별로 해체되며 일부 인원은 대대에 잔류해 대대 수색분대로 운용되며, 일부 인원은 정찰대 출신과 함께 연대 수색중대를 재창설하게 된다.(전초대대가 해체되면서 전초대대의 임무를 기존 사단 수색대대와 연대 수색중대가 하게 되었다. 연대 수색중대가 전초대대 해체 후 창설된 것이 아니다.)[17]

과거 사단 수색대에서 교육을 받던 대대 수색소대와 달리 다시 창설된 연대 수색중대는 사단 수색대대 파견교육 대신 자체적인 집체 교육을 실시하며, 자체 흉장을 사용하였다.[18]

수색중대와 수색대대는 평시 작전을 GP임무와 비무장지대 내 수색 및 매복임무로 나뉘고 그 임무를 대략 5년~10년 단위로 교체를 하였다. 지금은 수색대대가 비무장지대 내 수색과 매복임무를 수행하고 수색중대가 GP작전을 수행으로 고정되었고 이는 2001년 중반~2002년 후반에 단계적으로 교체한 결과이다. 즉 두 부대 모두 동일한 임무를 교체하며 작전을 수행했었고 또한 95년 중반에서 96년 중반 사이에도 임무 교대가 있었다.

6.25 전쟁 때는 적 후방 깊숙히 침투하여 정찰 감시. 목표 타격.후방교란. 보급로 차단. 통신시설 파괴. 지휘관 생포 등 군단. 사단사령부의 눈과 귀가 되어 전술적 척후병이 수행해야 하는 특수작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으며 월남전에 파병되어서도 적 후방 심장부까지 깊숙히 침투하여 적을 교란하였고 이후 특전사 제7, 9, 11, 13 여단 창설시 부족한 인원을 각 부대 수색대에서 1중대씩 배속했으며 특공여단, 특공연대 창설시 1개 중대씩 배속시켜 특수부대 창설의 모태가 되었다. 1980년까지는 특전사 편제인 지대 편제로 운영되다가 1981년 기존 사단수색대(중대 이하급 규모의 독립부대)에서 대대급 편제로 개편하면서 연대 수색중대 전초대대, 정찰대 인원들을 배속하여 몸집을 키웠다 결국 1996년까지 최종 대대급 정규편제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정찰대가 해체되면서 정찰대인원 대부분이 수색대로 이동하였다.(노태우 대통령이 창설하였고 수색중대, 수색대대와 임무가 겹쳐서 통합 및 해체됨) 마찬가지로 연대 수색대 역시 사단 수색대의 편제처럼 몸집을 불려갔다.하지만 육군 3각편제의 영향으로 기존 6개 소대에서 2개 소대를 수색대대로 배속시키고 현제처럼 3개소대를 갖고있는 3각편제로 최종 변경되었다.

현재 4개 중대로 운용중이며 일반 부대의 사병 체제와 달리 특전사처럼 장교, 부사관이 주축이 되는 직업군인 체제의 특수임무부대로 개편을 완료하였다. 다수의 부사관과 소수의 병으로 편제된다. 즉, 현재는 사단, 여단 수색대는 (육군 내에서 최정예로 간주) 임무 및 인원, 작전 반경등의 차이가 있어서 전역 후 경찰특공대, 소방구조대, 해양경찰특공대의 공채 자격은 사단 수색대 출신에게만 부여되고 있다. 수색대대는 본부중대, 1, 2, 3중대이며 각 중대마다 3개 소대가 있고 3개 소대는 3개의 팀으로 이루어진다. 팀 편제는 팀장 이하 *명의 각 주특기별 다수의 부사관과 소수의 병으로 구성된다.[19]팀 단위 임무를 수행하기에 결손 인원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전 인원이 모든 직책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또한 각종 화기에 대한 교육훈련을 받는다. 전 인원이 K1(K1A), K2(K2C1), K201, K3 사격 훈련을 받으며 적진이 작전지역이므로 적성화기인 AK 소총 실사격훈련 및 다루는 교육을 받는다. 수색대대마다 약간씩 다르겠지만 육군 27사단 수색대대의 경우 AK 소총 47형 및 권총 3가지 버전을 모두 분해 조립 사격 및 총기수입을 직접 하도록 교육 훈련한다. 적성화기 교육의 목적은 인민군에게 총을 뺏어서 쏘거나 작전 중 주워서 사용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7. 부대 생활

특전 조끼[20]의 경우 일반 전투조끼와 달리 탄띠를 매지 않기 때문에 허리가 굉장히 편한 데다, 대검을 왼쪽 가슴에 비스듬히 착용한다. 그리고 등에는 전투배낭보다 약간 작긴 해도 큰 주머니가 있어 침투할 때나 근무 투입할 때 따로 군장을 매지 않아도 이것저것 담아갈 수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여름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 전투조끼는 등이 트여있지만 특전 조끼는 등에 달린 주머니 때문에 꽉 막혀있다. 그래서 통풍이 안 돼서 가뜩이나 더운데 땀 배출도 안 된다. 그리고 만약 완전군장을 하게 된다면 등이 더욱 갑갑해진다.

결국 신형 몰리조끼와 방탄복이 나오면서 다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22년도 이후로 전방 수색대 병사, 간부들은 아예 플레이트 캐리어와 워벨트를 보급 받아 사용 중이다.

항상 모든 물품을 최신형으로 풍족하게 공급받으며 방탄조끼, 헬멧, 야간투시경, 야간조준기 등을 달고 사격과 작전에 나간다. 수색대의 특성상 야간 작전이 많으므로 야간감시장비가 충실하다는 점이다.

작전지역이 적지인 만큼, 일반적인 식사 추진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훈련기간 동안 모든 밥은 전투식량으로 미리 나온다. 그것도 흔하게 볼 수 있는 1형이 아니라, 즉각 취식형과 특전식으로 나온다고 한다.

근데, 이 전투식량이란 것이 한두 끼 정도는 평소 먹던 짬밥과 다르기 때문에 별미로 먹을 수 있지만, 계속 먹다 보면 미각을 잃는 느낌이 온다.

특전식의 경우, 정말 살고 싶어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맛은 겨울철 흙 점토를 밖에 내놓고 급속 냉각 건조시켜서 깨물어 먹는 맛이다. 야간 매복 작전 시 에도 이 특전식은, 북한군보다 한 발 앞서 수색대대원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수색대대는 분기, 혹은 반기마다 헬기 레펠 훈련을 하는데, 이때 위험수당이 지급된다. 지상 훈련, 모형탑 훈련을 거친 후 실제 헬기에서 레펠이나 패스트로프로 강하하는 훈련이다. -근래엔 레펠보다 신속한 침투를 위한 패스트로프 훈련을 실시하며 안전장치가 없기에 레펠보다 위험성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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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대대에서는 모의침투 훈련이나, 무박 100km / 200km 행군, 산악행군 등의 무박훈련도 받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천리행군도 받을 수 있다.




수색대대의 경우 장교, 병이 관계없이 똑같은 교육생신분으로 집체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훈련의 대부분은 체력단련(급속행군, 산악뜀걸음, 서킷트레이닝....)과 K3, K2, K1, K201, 그리고 적성화기인 AK 소총 등 다양한 화기 사격훈련, 독도법, 화력유도 및 정찰첩보보고를 교육받는다. 마지막 무박극기 4일기간 야간 침투 및 비트구축 훈련을 하며 생존훈련을 통해 전시 적지 종심작전을 대비하여 보급이 아닌 벌레, 닭, 토끼 등을 생식하는 생존훈련을 받은 뒤 25km 야간 급속산악행군으로 훈련을 마무리 한다. 다만 세부 훈련 내용은 지휘관의 재량과 사단마다 차이가 있다. 훈련 중 퇴소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다른 부대로 전출가게 된다. 무사히 교육을 수료하고 작전을 시작하면 작전이 더 힘들다는 걸 알게 된다.



모의침투 시 대항군으로 많이 나가 사령부나 탄약고에 딱지를 붙이러 가며 배수로를 활용하여 침투하기도 한다. 주로 야간 침투 후 산에서 비트를 구축하고 정감지 활동을 많이 한다.

가끔 특전사와 훈련하는데 이때는 특작부대 소탕을 목적으로 수색훈련을 실시한다.

8. 출신 인물

성명 비고
강타 제8기동사단 수색대대
곽동훈 (구)제27보병사단 수색대대
고석현 제22보병사단 수색대대
권아솔 제21보병사단 제OO보병여단 수색중대##
김대희 제11기동사단 수색대대
김수현 제1보병사단 수색대대
정재헌 제15보병사단 제38보병여단 수색중대
김준현 제15보병사단 제38보병여단 수색중대
김종필 제6보병사단 (구)제19연대 수색중대 [21]
김태우 (구)제27보병사단 수색대대
넉살 제7보병사단 수색대대
도남선 (구)제23보병사단 (구)제59보병여단 수색중대
박남현 제6보병사단 수색대대
백상현 제1보병사단 제15보병여단 수색중대
설영호 제6보병사단 수색대대
송중기 제22보병사단 수색대대
시우민 제21보병사단 제31보병여단 수색중대 [22]
안진 제1보병사단 제15보병여단 수색중대
윤다훈 제6보병사단 수색대대
윤진영 제8기동사단 수색대대
이재진 (구)제71보병사단 수색대대[23]
이현우 제1보병사단 수색대대
정중지 (구)27보병사단 수색대대
정찬우 제11기동사단 수색대대
조빈 제11기동사단 수색대대
조재원 제17보병사단 수색대대
투컷 제17보병사단 수색대대

9. 여담

수색대 흉장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지만 멋이 꽤 있다. GOP담당 사단 예하 수색대의 경우 민정경찰 흉장까지 포함. 특히 전 부대 디자인이 통일된 민정경찰은 흑색 흉장이 꽤나 까리하다.고 생각했던 아무것도 모르는 훈련병들이 반세기간 피를 봤다

수색대 병사가 달고있는 공수기장은 전원 공수교육을 받아서 받은 기장이라기보다는 시기에 따라 공수교육을 받은 기수가 간혹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인원들도 따라서 오버로크 박은 거라고 보면 된다. 이를 이유로 일부 수색대에서는 부대장 방침으로 공수기장을 패용치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원칙상으론 이것이 맞다. 당연한 얘기지만 필수로 공수훈련을 받아야 하는 사관학교 출신 장교나 특전사에서 전출 온 부사관들의 경우 논외.[24] 수색대, 기동대, 육군특공대의 경우 대한민국 육군본부, 각 군 사령부에 파견나가거나 요인 경호에 나가기도 하는데 당연히 그런 곳에는 특전부사관을 포함해 수색대원이 달고있는 공수마크의 의미를 아는 간부들이 널리고 널렸다. 사관학교 출신들은 공수기장을 달고 졸업하는 데다, 설령 공수교육 안 받고 임관하는 ROTC나 학사장교 출신이라 해도 나중에 특전사 근무는 한번쯤 해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육본 행사를 다룬 언론보도에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릴 정도이지만 굳이 이거 가지고 간부들이 졸렬하게 드잡이질을 하진 않는다. 2010년 이후에는 자진해서 달지 않는 경우가 많은 모양.

9.1. 6.25 전쟁과 창군 초기의 수색대 형태

6.25 전쟁, 당시에는 전문적인 수색 교육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상설 편제로 있었던 게 아니었다.

각 단위 부대(소대, 중대, 대대, 연대 등)에서 수색/정찰이 필요한 상황일 때마다 1개 분대 혹은 소대에게 수색 임무를 맡겨서 수색대의 역할을 맡는 식으로 운용되었고, 일부 부대에서는 특정 분대 혹은 소대가 아예 수색대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

6.25 당시 1사단 12연대 편제에 의하면 특공대(45명)가 연대본부에 편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에 의하면 전투단위에서 필요시 특공대를 조직하여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필요한 각 상황마다 분대나 소대를 임시로 선정해서 운용하곤 했던 수색대 개념도 전쟁이 끝난 후에는 필요성이 없어 운용되지 않아 수색대의 흐름이 끊기는데, 다시 수색대 개념이 부활한 것은 한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하면서부터이다. 이 시기, 월남전에 참전하게 된 백마부대맹호부대는 수색대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전문적인 수색교육을 통한 수색대를 보유하지 않고 있었기에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그린베레)으로부터 특수전 교육을 받고 창설된 육군 제1공수특전단에서 파월 백마부대와 맹호부대 예하 연대의 수색 중대에 파병되어 배속된 특전사 대원들 중 일부가 미육군 특전단 그린베레 제5특전단이 베트남 나트랑에서 운영하던 수색/특공 학교(일명 리콘도 스쿨, Recondo school)에 파견을 가서 3주간 장거리 수색/정찰(LRRP, Long Range Recon Patrol) 교육을 이수한 후[25], 교육내용을 맹호/백마 수색중대에 전수하고 지휘하여 우리 군 최초의 전문적인 수색/정찰 교육을 확립되었다고 한다.[26] 리콘도 스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프로젝트 델타: Detachment B-52 (B-52 분견대)제75레인저 연대의 역사 항목을 참고.

이들 파월 맹호/백마 수색대는 월남 파병 기간이 끝나고[27] 귀국 후에는 전역시까지[28] 본국에 있는 여러 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어 월남전에서 습득한 수색대 임무를 전수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파월 백마부대맹호부대에서 하던 수색 교육은 각각 보병 수색 교육과 기갑 수색 교육의 모태가 되었는데, 이중 백마부대의 수색병 집체 훈련[29]은 육군 전 보병사단 수색병 교육의 기초가 된다.[30]

가장 특이한 수색대를 꼽으라고 한다면 비룡부대 제25보병사단 수색대대이다. 1968년 전방 사단 경계 근무의 구조적인 헛점으로 인하여 삼팔선이 공비들에게 뚫리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1.21 사태(김신조 사건0이다. 김신조 일당 20여명은 고랑포를 넘고 법원리 뒷산을 지나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여 청와대까지 돌진하였는데 이때 고랑포는 미군 미제2보병사단제28보병사단이 경계근무를 서는 중간 경계 지점이었다. 이곳은 두 부대가 지키는 곳이라 경계가 삼엄할 수도 있지만 시체가 떠내려오면 귀찮아서 서로 반대편으로 밀어버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즉 서로 자기 구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안일한 분위기에서 고랑포가 뚫여버린 것이다.

김신조 사건으로 발칵 뒤집한 남한 사회는 군을 채찍질하는 여론 분위기로 싸늘하였고 군 내부적으로도 박정희의 분노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먼저 고랑포가 급소라고 생각하여 그곳만 따로 지키는 전담 사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고심 끝에 후방의 25사단을 철책 사단으로 끌어올려 김신조 루트인 고랑포와 그 좌우만을 전담해서 커버하는 전담 부대를 만들게 되었다. 즉 가장 좁은 급소 지역을 도맡아 경계하는 가장 강한 부대를 만들라고 지시하게 된다. 박정희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뒷목이 서늘한 국방부에서는 그동안 해오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대한민국이 교류하는 모든 국가에게 현 상황을 설명하고 각국의 특수부대에 관한 정보들을 특별 요청하였고, 당시 모을 수 있는 최신 정보들을 취합하여 이제 갓 만들어진 25사단 수색대대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켜버렸다. 훈련 중 한 가지 예를 들면 얼어붙은 호수 위로 데려가서 PT 체조를 시킨다. 얼음이 깨질 때까지 시키는데 한겨울에 얼음이 깨지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수색병들이 스스로 주먹과 발 그리고 박치기로 피투성이가 되어 수십센치의 얼음을 깨고 스스로 얼음물 속으로 기어 들어가게 된다.

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실미도 부대와 같은 북파 특수부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김신조 사건에 대한 보복작전으로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서 모두 자신만의 북파 부대를 만들었는데 강철부대 등에서 소개된 그런 부대가 있는가하면 끝까지 기밀을 유지한 해병대 내 북파부대인 망치부대 등이 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탄생한 25사단 수색대는 수색대대 중에서도 태생적으로 특이한 부대였으며 1992년까지 자체적으로 팔각모를 썼다. 지금은 평범한 사단 직할 수색대대로 6.25 전쟁 당시 북한 최고 선봉부대였던 인민군 제 15사단과 서로 마주 보며 근무하고 있다. 예비군 훈련을 가면 강당에서 틀어주던 흑백 필름의 유격장 영상이 있는데 25사단 수색대대 유격장에서 촬영한 영상이다.

9.2. 기갑수색대

본 문서의 부대들과 전혀 다른 성격의 부대이지만, 같은 ‘수색’의 이름이 들어가는 육군 부대로 기갑수색대가 있다.

참고로 기계화보병/기동부대 및 기갑부대 내에서 ‘보병부대 예하 수색대’의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는 지상정찰중대(정찰대)라고 불리며 별도 편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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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관련 문서



[1] 기동대가 설치된 사단/여단에서은 당연히 기동대가 이 위치이며, 군단부터는 당연하지만 특공대다. 육군 전체 단계에서는 특전사.[2] 정확히 말하면 원래는 70년대까지 연대 수색중대에서 하다 80년대부터 전초대대/정찰대대가 수행하던 임무이나 80년대 후반 정찰대 해체 후 연대 수색정찰대/수색중대가 재창설되던 90년대 중반까지만 한시적으로 사단 수색대가 수행했기에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전방 사단 수색대 근무 인원들만 이 임무를 맡다가 수색정찰대/수색중대가 이어 받았는데 현재는 수색중대 인원들이 GP 작전 임무를 맡고 있다.[3] 경찰 신분으로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범주가 경찰 > 군대가 아닌 군대 > 경찰 신분이기에 사실상 군인 신분으로 투입되는 것과 마찬가지다.[4] 제201신속대응여단, 제203신속대응여단. 이 두 여단은 제2신속대응사단에 소속되어 있다.[5] 정찰총국 소속으로 3명이 1개조로 침투훈련 및 침투.[6] 대부분 MDL이남으로 침투하면 수색대가 대침투작전을 펼친다. 보통 북한 특작부대는 야간 및 안개 등 관측이 제한되는 날에 지뢰 지대를 피해 침투로를 개척하였다가 월광이 없고 안개가 자욱한 날을 골라 침투를 하여 작전한다. 지뢰 도발 사건도 사건 발생 며칠 전부터 안개와 비로 인해 관측이 제한되는 상황이었다.[7] 직계가족과 본인의 범죄여부, 정신질환, 학생기록부, 반정부운동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 신원조회에 대해서 부가적인 설명을 하자면 외가쪽 3대까지 조회를 하며 친일, 빨갱이 연루 여부 등 보안상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고 본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다면 수색대에 배치를 받아도 최전방임무에서는 제외된다. 즉 수색대의 꽃인 GP 근무 및 DMZ 내 수색, 매복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 신원조회라는 것이 뚝딱 하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종 자대배치 이후 신원조회 이상으로 실제 작전을 수행할 수 없어서 전투병에서 타 보직으로 변경되거나 심한 경우 타 부대로 전출을 가기도 한다.[8] 수색대 부사관 전 인원[9] 수색대 팀 의무 주특기[10] 특전사 산악전문교육엔 장기부사관 중 일부 및 유격훈련시 교관임무를 수행하는 부사관[11] 2010년대에 새로 만들어진 과정으로, 전문유격과정엔 장기부사관 중 일부 및 유격훈련시 교관임무를 수행하는 부사관[12] 특공대와 신병교육대 조교도 그렇다.[13] 특히 수색대는 적지 안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무전병이 많고, 같은 사단에서 통신장비는 사단사령부 다음으로 제일 좋은 물건을 받는다.[14] 부대마다 시기가 약간씩 다르다.[15] 그래서 이 시기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복무한 인원들 중에는 대대 수색소대 출신들이 존재한다. 대신 수색중대 출신들은 없다. 일반 보병대대인데 간혹 주둔지 내에 사용하지 않는 낡은 헬기 레펠/패스트로프 훈련용 헬리콥터 모형탑이 아직 남아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수색소대의 흔적이다.[이] 시기 육군 전방 사단 수색대 외에 DMZ 내에 있는 GP 작전과 강안지역 수색/매복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전초대대를 운용하고 있었는데 이 전초대대는 이후 정찰대대[31]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수색대와 임무가 중복된다는 이유로 기계화 사단의 기갑정찰대를 제외하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육군/지상정찰중대를 참고.[17] 대대에 잔류한 일부 인원에 의해 거의 분대급으로 남아있던 대대 수색소대 역시 1998년 이전에 모든 부대에서 완전 해체되었다.[18] 전초대대/정찰대대 시절의 흔적이 남아서다. 전초대 시절엔 신교대 수료자들 중 최우수 신병들은 전초대대에서 뽑아가고, 2순위 신병들을 수색대대에서 데려갔는데, 이후 정찰대는 논산에서 정보병과를 받고 오는 인원으로 바뀌며 신교대 최우수 신병들을 수색대에서 데려가게 되었다.[19] 실제 DMZ작전을 수행하기에 자세한 편제와 인원은 보안 상 표기하지 않음.[20] 폭파 조끼, 공병 조끼, 수색 조끼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린다. 주머니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일 수 있게 되어있어서 공병 세트에도 들어가 있는 등 의외로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주머니가 탄창도 들어가지만 무전기도 쓸 수 있도록 덮개에 홈을 파놓고 주머니에는 구멍을 뚫어놓는다든가, 아랫배의 주머니는 폭약과 격발 기를 넣으면 꼭 맞게 되어있다든가, 등의 큰 주머니 속에는 통신기가 들어가는 작은 주머니가 또 달려있다든가.[21] 6.25 전쟁 당시 수색중대장으로 복무[22] 본래는 (구)제2보병사단으로 입대했는데 (구)제2보병사단이 폐지되어 제21보병사단으로 이관되었다[23] 탈영 이후[24] 참고로 특전사 소속 장병들은 계급과 병과, 보직을 불문하고 공수기본교육은 필수적으로 받는 것이 규정이며, 공수기본교육 수료 후에도 숙련도 유지를 위해 연당 4회의 정기강하를 실시한다.[25] 일부만 이수했다고 적은 건, 6개월 단위로 파병된 특전사 부사관 및 장교들 모두가 저 교육에 입소했으나 수료율이 50% 미만이어서이다[26] 1960년대 중~후반엔 베트남에 파병된 특전사 대원들은 독자적인 편제를 이루지 않고 맹호와 백마의 수색중대에 배속되어 작전했으나, 1970년부터는 특전사 대원들로만 구성된 파월 맹호/백마 공수지구대라는 편제를 만들어서 활동하였다. 단, 미육군 특전단이 운영하던 리콘도 스쿨(Recondo school)에서 훈련을 받은 건 1970년도 12월 파병인원까지이고리콘도 스쿨 마지막 교육입교 차수가 1970년 12월 차수고, 1971년 2월에 리콘도 스쿨은 문을 닫는다 1971년부터 파병되어 맹호/백마 공수지구대에 속해있던 인원은 이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그냥 특수전 임무를 수행했다. 즉, 미군으로부터 전수받은 장거리 수색정찰 교육과 임무 수행은 맹호/백마 공수지구대가 아닌 맹호/백마 수색중대가 수행했다는 의미이며 실제로 이 시기 맹호/백마 수색중대 출신 참전용사분들로부터 당시 베트남에서 수행했던 수색정찰 작전에 대해 들어보면 LRRP 방식의 작전을 수행했고, 교육도 받은 것이 확인된다. 하지만 본인들은 그게 미군식 장거리 수색정찰(LRRP)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는 게 함정...[27] 대게 1년이었으나 일부 2년간 파병 생활을 한 인원도 있었다. 참고로 파병인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국내에서 공수교육을 이수하고 월남으로 향했으며 그중 맹호/백마 수색중대 인원들은 주특기가 '보병'이 아닌 '특수전'이었으며 병과표식은 X자로 교차된 화살이었다[28] 당시는 군 생활이 길어 일반하사까지 복무하였다[29] 원래 코만도 훈련으로 불리다 90년대부터 솔개 훈련으로 명칭이 바뀐 4주간의 수색병 집체 훈련[30] 6.25 전쟁 이후로는 맹호부대와 함께 유일하게 실전을 경험한 부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