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월 2일~1950년 6월 26일
1. 개요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군인. 6.25 전쟁 중 전사했다.2. 생애
1918년 1월 2일 충청남도 공주군 탄천면 덕지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이며, 본명은 윤대여(尹大汝)이다. 이명은 윤상국이다. 중국 만주에서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34년 2월 개설된 중국군관학교 뤄양분교 특별훈련반에 입교하여 이듬해 4월 16일 졸업하였다. 졸업생 33명과 함께 난징으로 이동하였다. 난징에서 신한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동방중학에서 수학하였다.
1935년 7월 5일 난징에서 조선혁명당·조선의열단·한국독립당·신한독립당·대한독립당 대표들이 모여 혁명단체대표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보다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독립운동단체들이 통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민족혁명당을 조직하였다. 민족혁명당에 참가하여 군사부에서 군사 활동, 정보 수집, 선전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9월 25일 민족혁명당 추천으로 박호암·이의명·심명철·이만영·송해산 등과 함께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교하였다.
1936년 3월 김구의 지시로 오광선이 베이징에서 특무활동을 전개할 때, 박진양·김일룡·박태양·이무·박호암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후 오광선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자 톈진으로 이동하여 정보 수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해 5월 20일 톈진 바오딩에서 톈진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붙잡혀서 평북경찰부로 압송되었다. 1936년 12월 1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1945년 10월 중순 이해명·윤익헌·최용근·조이섭·장호문 등과 함께 한국광복군 국내 잠편지대 참모로 활동하였다.
그후 한. 만. 중으로 다니며 항일투쟁을 계속하던중 8.15광복을 맞이한후 한국광복군 국내지대 중대장으로 환국하였다.
광복 후 경찰로 활동하다가 육군사관학교 수료와 동시 육군대위로 임관되어 복무하던 중에 6. 25 사변을 당하여 의정부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다음날인 26일 전사하였다. 최종계급은 육군 소령이다.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동쪽 23묘역 868호에 있다.
3. 기타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독립기념관에는 윤여복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국립현충원의 안장자 이름은 본명인 윤대여로 등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