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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일 | 1996년 12월 1일(제1경비단) |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
상급부대 | 수도방위사령부 | |||||
규모 | 단 | |||||
역할 | 서울특별시 대테러 작전 및 북악산과 인왕산 경비 | |||||
단장 | 대령 조성현(학군 39기)[1] | |||||
위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 |||||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를 근거지로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단급 경비부대. 1996년 12월 17일 창설되었으며, 청와대 외곽 및 북악산과 인왕산 일부 경비를 담당했다. 즉 전방 GOP, GP와 비슷하게 서울 도심 속 주둔지와 산 속 근무지를 6개월 단위로 교대[2]하며 근무했다. 인왕산이나 북악산에서 종종 보이는 군인들은 대부분 이 부대 소속 장병들이다.실제로 격오지 대우를 받아 과자, 컵라면 등의 특수근무자 증식도 나온다. 교대하는 단위는 두 대대인 청룡대대와 백호대대였으며, 그 변천사에 대해서는 아래 역사 문단 참고. 수방사 특성상 인력난에 시달리는 만큼 비번이 없는 건 물론이었고 청와대 근위부대라는 명칭에 걸맞은 각종 작전 및 훈련을 특정지 근무와 병행해서 진행했다!
대통령 경호부대로서 대통령 취임식과 6월 현충원 참배 경계작전에 투입되어 현충원 주변 경계를 위해 야영을 하며 2박 3일의 주야간 경계근무를 펼쳤다. 2000년 경까지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도 투입되어 주변 경계를 맡았다.
2. 역사
수방사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부대들 중 하나고, 심지어 나이 좀 있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수방사 = 제1경비단 병력 + 그 외 나머지 기타 등등' 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수방사 창설 목적이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정변 세력의 보호를 위한 친위대 성격이 강했고 그 핵심이 1경비단의 전신인 30, 33대대였기 때문에 예전에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제1방공여단과 제1113공병단이 편입되기 전까지는 수방사 직할부대 중에 경비단과 비교할 만한 사이즈의 부대가 기껏해야 군사경찰단 말고는 없었기도 하고, 방공여단과 공병단은 편입된 지금도 본부는 경기도에 있는 등 수방사 나머지 직할부대와는 좀 따로 노는 분위기가 강하다보니 여전히 수방사의 메인은 경비단으로 여겨진다.제1경비단의 시작은 5.16 군사정변 때 서울로 진입한 두 개의 수도권 지역 향토예비사단이었던 30사단[4]과 33사단[5]의 병력이다. 5.16 쿠데타 성공 이후에 이 두 개 사단에서 각각 1개 대대가 서울에 남아 그것이 30대대와 33대대라고 불리다가 1974년에 차지철이 경호실장이 되면서 경비대대에서 경비단으로 확대개편되어 30경비단과 33경비단이 되었다. 즉 수방사 창립 멤버다.
두 부대의 주둔지는 30단은 경복궁 내[6], 33단은 현 1경비단 주둔지 위치에 주둔했다. 친위세력인 만큼 30단과 33단에 중대급 소규모 전차 부대까지 운용을 하였으며 한국 수도이자 정치의 중심 서울 도심에 있는 유일한 전투병력이기에 요직 중 하나였다.
이때문에 12.12 군사반란의 핵심 병력으로 제30경비단장 장세동 보병 대령과 제33경비단장 김진영 보병 대령은 당시 직속상관이었던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을 배반하고 쿠데타의 주축이 되었으며 김진영이 잠시 자리를 비운 33단은 사령관 장태완 명령 하에 전차중대가 출동해 30단과 교전할 뻔 했었다. 게다가 정부군 상층부의 안일한 판단으로 9공수를 물러나게 하자마자 1,3 공수부대가 국방부를 공격하였고 김진영은 33단에 복귀하여 가용 전투병력을 모두 잃은 장태완 장군은 다 끌어모아 최후의 저항을 하려 했지만 부하들에게 만류되었으며 그나마 남은 전투병력인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가 배신을 때리며 반란군에 가담하자 눈물을 머금고 저항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7][8]
이들이 현재의 제1경비단으로 통합된 것은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6년으로, 하나회 숙청 완료 후 추후 또 군사 사조직이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 겸 군사정권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조직통합이 목적이었다. 통합 후 현재의 위치인 구 33단 주둔지에 자리잡았으며, (참고) 30단은 청룡대대, 33단은 백호대대로 격하되며 병력은 2/3로 축소되었다. 더불어 당시까지 경복궁 내에 함께 주둔했던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들도 삼청동으로 이전했다. 이후에도 근무영역은 그대로여서 청룡대대는 북악산, 백호대대는 인왕산에 한번에 2개 중대씩을 투입하여 6주마다 교대를 실시하며 전담 방어했으나 2001년부터 대대 단위로 부대교대가 실시되어 각 대대가 전 구역을 다 담당하게 되었다.
명색이 대통령을 지키는 경비부대인데 5.16 군사정변과 12.12 군사반란이라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양대 쿠데타 모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부대, 혹은 그 후신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권력의 핵심 중 핵심에 해당하는 부대라,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과 노태우, 그 외에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군사정권 시절의 군인 출신 정치인 상당수가 30단 또는 33단의 단장에 취임했었다.[9] 이 흔적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아서 1경비단장(대령)은 유사한 성격의 55경비단장과 함께 육군 보병 장교의 핵심 진급 코스 중 하나다.[10] 단가나 영내 여기저기 붙어있는 슬로건에도 근위부대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2009년도 노무현 대통령 경복궁 앞 추모식이 있었을 때에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비상출동 대기한적이 있다. 총기휴대는 없었던것으로 기억.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에 따르면 계엄령의 첫 스타트를 끊는 부대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1경비단 장병들은 이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임무가 청와대 지키는 거니까, 명령 받아서 출동하고서도 그게 계엄령 시작인 줄 모를 거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를 떠나 북악산을 시민들에게 돌려준다고 하니 경비단이 없어지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청와대나 광화문이나 서울 한가운데 있는 건 똑같다는 점, 그리고 유사시에 경비단의 역할 등을 생각하면 경호부대는 몰라도 경비단 자체는 존속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광화문 이전이 공수표가 되면서 경비단 역시 존속이 확정되었다.
2019년, 각 대대 편제가 4개 중대에서 3개 중대로 축소되었다. 30단/33단 시절과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것. 이는 병력 자원 감소 문제도 영향을 미쳤다.
2020년 11월 1일 북악산 일부 구간이 전면 개방되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대통령 경호라는 부대의 존재의의가 사라지게 되었다. 55경비단처럼 경호실이 통제하는 작전부대들은 용산으로 이동했지만 1경비단은 여전히 현 주둔지에 남아있으며, 용산으로 가려고 해도 이동할 공간도 없고 기존 국방부 경계부대들이 있어서 이동할 필요도 없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 지키던 '수호신부대', 등산객 안전지킴이 전락했다"
그렇게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 외곽을 경비하는 부대는 아니게 되었다 해도 부대가 주둔하는 북악산과 인왕산 부근은 서울 시청 및 주요 기관들이 몰려있는 중구 및 종로구 지역을 감제하는 중요한 장소이며 수도 서울을 수호하는 주요부대임은 여전하며 2023년에는 대테러 부대로 지정이 되었다. 다만 개편 과정에서 부대 규모가 또 축소되었다.
서대문구에서는 꾸준히 경비단을 내보내고 부지를 재개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2024년 3월 2일에도 서대문구 주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경비단을 이전시키고 그 부지에 바이오단지나 서대문형무소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테마관광지를 만들겠다고 한다. #
3. 예하부대
3.1. 단본부 직할대
- 본부대
주둔지에 있으면서 행정업무에 주로 종사한다.
- 전투지원중대
유일하게 경비단 주둔지에서 독립 되어 있는 주둔지 소초이다. 81mm박격포를 보유 하고 있으며 전시상황 시 화력을 담당한다. 과거에는 106mm 무반동포도 장비했다.
- 통신대
2013년 특정지 통신 업무 강조로 인해 본부대에서 분리되어 운영되었다.
- 수송대
지휘용 경트럭과 스리쿼터, 대형버스, 두돈반 등을 보유하고 있다.
- 기타 편제는 보안사항
3.2. 제1경비대대 청룡
1대대인 청룡대대는 본래 30단 시절부터 북악산 경비를 전담했으나 2001년부터 동시교대로 양쪽 섹터를 모두 경비한다.2023년 현재 교대를 하지않고 섹터 경비를 전담중이다.
3.3. 제2특수임무대대 백호
2대대인 백호대대는 본래 33단 시절부터 인왕산 경비를 전담했으나 2001년부터 동시교대로 양쪽 섹터를 모두 경비했다.2023년 현재 교대를 하지않으며, 2023년 대테러임무를 부여받아 특수임무대대로 개편완료 되었다.
33경비단 시절엔 이름이 비슷한 33헌병경호대와 종종 혼동되곤 했으며 심지어 언론에서도 가끔 헷갈려 하거나 아예 같은 부대인 줄 알기도 한다. 같은 수방사 소속 근위대라는 공통점에, 거기다 잘 알려지지 않은 레어한 부대라는 이유까지 겹쳐 둘을 혼동하는 사람이 꽤 있다. 참고로 33경비단의 명칭은 모태인 제33보병사단에서 온 반면 33헌병경호대의 명칭은 차지철이 직접 지은 이름으로, 둘의 고유명칭의 유래도 전혀 상관이 없다.
3.4. 제35특수임무대대 태호
2023년 제1경비단의 부대 개편으로 수도방위사령부 직할 독립대대에서 제1경비단 예하 부대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상징명칭은 '태호(太虎)부대'과거 부대 명칭은 제35특공대대(상징명칭은 '독거미부대')로 일반적인 육군의 특공연대처럼 부대 이름에 '특공'자가 들어가지만, 수방사 직할부대가 다 그렇듯 야전 성향이 강한 다른 육군특공대들과는 달리 시가전과 대테러에 특화된 모습을 보인다. 1991년 3월 2일에 창설되었으며, 수방사에서 부르는 약칭은 '삼오특공' 또는 '삼오특임'
3.5. 지원부대
- 화학단: 제독차량 2대가 단내에 늘 주차하고 있다.
-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 예하부대인 화생방특수임무단과 제23화생방대대가 운용하고 있다.
3.5.1. 과거 배속되었던 부대
전차중대: 수방사 전차대대 예하 전차중대가 배치되었었다.
과거에는 경복궁에 주둔하는 30단과 독립문에 주둔하는 33단에 별도로 전차가 1개 중대씩 배치되어 있었고, 이들이 1212 시점에는 반란군(30단)과 진압군(33단)으로 갈렸다가 쿠데타 측의 책동으로 진압 명령을 받고 출동하던 33단 소속 중대가 주둔지로 복귀하는 사건도 있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나 효자동 이발사 등을 보면 차지철이 탱크를 돌려서 노인들이 북괴군인줄 알고 심장마비에 걸렸다는 묘사가 있는데 그 탱크가 바로 이 부대 소속이다.
두 단이 제1경비단으로 통합된 이후에는 전차중대도 전차대대 1중대 하나로 줄었으며, 소속된 차량은 2000년 경을 기준으로 K-1을 13대[11], 중대본부용 K-200을 1대 장비했다. 전차대대 소속 다른 중대인 2중대, 3중대는 물론 수방사 예하사단 전차대대도 모두 M48A5K였으므로 당시에 경비단에 파견을 나온 1중대는 수방사 유일의 K-1 중대였다.
장갑중대: 수방사 전차대대 예하 장갑중대가 배치되었었다.
현재는 장갑중대는 경비단 직할이라고 하나, 1980년대 초에 복무했던 전역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장갑중대는 전차대대 예하 APC중대로서 남산 필동에 있는 수방사 사령부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30단과 33단에는 장갑차 1개 소대씩 파견을 나가 있었고 중대장이 수시로 점검하러 나갔다고 한다.
4. 출신인물
4.1. 역대 경비단장
청와대를 지키는 만큼 장성급 장교 진급률이 높은 대령 계급 지휘관 최고 요직 중 한 곳으로[12], 역대 단장은 대부분 고위직으로 진급했다.30단/33단장 시절부터 전임 1경비단장인 정재우 대령까지 역대 전원이 육사 출신이었으나 조성현 대령이 최초로 비육사 출신 단장으로 보직되었다. 대통령실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함에도 경호작전, 대테러작전 등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대임은 변화가 없다.
4.1.1. 30대대/30단장
75년에 규모가 연대급으로 확장되면서 대대에서 단으로 호칭이 바뀌었다.처음에는 소령, 이후 중령, 70년대 후반부터 대령이 단장을 맡았다.
||<bgcolor=#ffe475> 역대 ||<bgcolor=#ffe475> 이름 ||<bgcolor=#ffe475> 재임 기간 ||<bgcolor=#ffe475> 최종 계급 ||<bgcolor=#ffe475> 임관 ||<bgcolor=#ffe475> 비고 ||<bgcolor=#ffe475> 기타 ||
1대 | 손영길 | == | 준장 | 육사 11기 | 前 ==== | 소령으로 취임 |
2대 | 전두환 | 1967.8.11. ~ 1969.12.11. | 대장 | 육사 11기 | 前 대통령 | 중령으로 취임 |
3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4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5대 | 이종구 | 1973 | 대장 | 육사 14기 | 前 국방장관 | |
6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7대 | 이대희 | == | == | 육사 15기 | 前 병무청장 | |
8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9대 | 장세동 | == | 중장 | 육사 16기 | 前 경호실장, 前 안기부장 | 12.12 군사반란 당시 단장 |
10대 | 이현우 | == | 중장 | 육사 17기 | 前 경호실장, 前 안기부장 | |
11대 | 김상준 | == | 중장 | 육사 19기 | 前 합참 작전본부장 | |
12대 | 이충석 | == | 소장 | 육사 21기 | 前 합참 작전부장 | |
13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14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15대 | === | == | == | 육사 ==기 | 前 ==== |
4.1.2. 33대대/33단장
||<bgcolor=#ffe475> 역대 ||<bgcolor=#ffe475> 이름 ||<bgcolor=#ffe475> 재임 기간 ||<bgcolor=#ffe475> 최종 계급 ||<bgcolor=#ffe475> 임관 ||<bgcolor=#ffe475> 비고 ||<bgcolor=#ffe475> 기타 ||
1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2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3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4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5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6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7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8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9대 | 고명승 | == | 대장 | 육사 15기 | 前 국군보안사령관 | |
10대 | 김진영 | == | 대장 | 육사 17기 | 前 육군참모총장 | 12.12 군사반란 당시 단장 |
11대 | 김정헌 | == | == | 육사 18기 | 前 육군사관학교 교장 | |
12대 | 김종배 | == | == | 육사 20기 | 前 야전군단장 | |
13대 | 유효일 | == | == | 육사 22기 | 前 육군대학 총장 | |
14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15대 | === | == | == | 육사 ==기 | 前 ==== | |
16대 | === | == | == | 육사 ==기 | 前 ==== |
4.1.3. 역대 제1경비단장
#redirect 제1경비단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경비단장. |
||<-6><bgcolor=#ffe475> 역대 제1경비단장 ||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간 |
0대 | 윤영범 | 소장 | 육사 33기 | 前 국방비서관 | |
0대 | 김용현 | 중장 | 육사 38기 | 前 수방사령관 경호처장 現국방장관 | |
0대 | 정기봉 | 소장 | 육사 39기 | 前 1군지사령관 | [13] |
8대 | 구홍모 | 중장 | 육사 40기 | 前 수방사령관 現 미군기지 이전사업 단장 | [14] |
9대 | 최병혁 | 대장 | 육사 41기 | 前 연합사 부사령관 現 주사우디 대사 | [15] |
10대 | 김동열 | 준장 | 육사 43기 | 前 체육부대장[16] | [17] |
11대 | 전동진 | 대장 | 육사 45기 | 前 지작사령관 | |
12대 | 강호필 | 대장 | 육사 47기 | 現 지작사령관 | |
13대 | 손광제 | 소장 | 육사 48기 | 現 교육사 교리발전부장 | |
14대 | 지영수 | 대령 | 육사 49기 | 前 단장 | |
15대 | 구삼회 | 준장 | 육사 50기 | 現 지작사 작전처장 | |
16대 | 김지면 | 소장 | 육사 52기 | 現 제32보병사단장 | |
18대 | 김종화 | 준장 | 육사 53기 | 現 지상작전사령부 작전과장 | |
19대 | 권영환 | 대령 | 육사 54기 | 現 합참 지통3팀장 | [18] |
20대 | 정재우 | 대령 | 육사 55기 | 現 합참 정책과장 | |
21대 | 조성현 | 대령 | 학군 39기[19] | 現 단장 | [20] |
4.2. 장교/부사관
- 강건작 중장
제33경비단 중대장 역임
- 권영호 중장
제1경비단 1대대장 역임
- 김도균 중장
제30경비단 소대장 역임
- 김동수 소장
제33경비단 소대장 역임
- 마상현 준장
제1경비단 1대대장 역임
- 여인웅 준장
제1경비단 중대장 역임
- 원홍규 소장
제1경비단 소대장 역임
- 이재호 원사
제1경비단 주임원사 역임
- 조남풍 대장
제33경비대대 부대대장 역임
- 조종래 소장
제1경비단 2대대장 역임
- 허태근 준장
제30경비단 중대장 역임
4.3. 병
- 유승민(정치인)
1경비단 백호대대의 전신인 33경비단 출신이다. 경북고등학교 동기들의 증언에 따르면, 신교대에서 정말 열심히 훈련을 받아 1등으로 수료하여 신교대장이 "특별히 복무하고 싶은 부대가 있나?" 하고 묻자, 훗날 아내가 되는 당시 여자친구가 다니던 이화여자대학교 근처에서 복무하고 싶다고 솔직히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대에서 정말 가까운 33경비단에 배치받았다고. 당시 교통편은 알 수 없지만, 걷는 시간 포함 대중교통으로 20~30분 거리다. 우연히도 유승민이 복무하던 당시가 바로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 병력의 주축이었다. 물론 당시 유승민 본인은 일개 병사였으니 영향 따위는 전혀 없었다. 12.12가 끝나고 사령관 자리에 본인의 고교 선배인 노태우가 왔다. - 김호재
삼성 라이온즈 소속 내야수. 2015.10~2017.7월에 전역. 부대 여건상 병장이 될 때까지 운동을 할 수 없었고, 장충고등학교 후배인 박찬호가 나중에 후임으로 들어오자 자신이 병장이고 박찬호가 일병일 때 함께 캐치볼을 하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고 한다. 규칙적인 군대 생활로 체중이 12kg 가까이 늘었는데, 덕분에 힘이 붙어서 도움이 됐다고. - 박찬호
KIA 타이거즈 소속 내야수. - 하준수
NC 다이노스 소속 투수 - 김형욱
LG 트윈스 소속 내야수 - 노돌리(유튜버)
수방사를 "소방사"라고 잘못 알고 전입왔고 식당 알바를 해본 적이 있다고 하여 간부식당 취사병으로 복무하게 되었다. - 강호이(유튜버)
5. 기타
5.1. 근무환경
단본부는 서울 시가지 한복판에 아파트와 학교에 둘러싸여 있다. 군사보안이지만 하도 면회가는 곰신들이 많아서 네이버 검색만 해봐도 다 나온다. 심지어 구글 지도에 '제1경비단'이라 검색하면 위치가 대놓고 나오는 수준이다. 국군정보사령부 같은 다른 서울 소재 부대들처럼 1980년대까지만 해도 주변이 그냥 다 숲이었지만 그 후로 도시화가 급격히 진전되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 부대 특성상 제1경비단 주둔지는 수방사 직할 부대들 중에서도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 통합주둔지를 제외하면 유달리 도심에 있는 편이다.실제로 오후 전투체육때는 연병장에서 도수체조 등을 하면, 주위에 체육공원 언덕배기위로 올라와서 운동하는 노인들이 동물원 구경마냥 군인들을 구경한다.
실제 근무지는 물론 산속에 있으며 진짜 보안에 더 민감한 쪽은 이쪽이다. 다만 예하대대 및 지원중대 소속 경계병력이 아닌 단본부 행정병이나 일부 파견인원을 제외한 운전병들은 일반적인 수방사 병사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된다. 특정지 뿐 아니라 일부는 대통령경호처 및 그 예하기관에 파견나가 근무하기도 한다. 이 경우 같은 수방사 소속의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33, 55, 88)와는 별개의 파견인원으로 취급되며 어색한 동거관계가 이뤄지기도 한다. 제1경비단과 경호부대는 좀 데면데면한 편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처럼 중요한 부대이다보니 후방 부대임에도 현역으로 부대가 완편되어 있다. 전시에도 병은 예비군이 충원되지 않는다. 부대 특성상 전시에 수방사 예하사단에 지역을 인계하고, 어느 곳으로 이동한다. 간부[21]만 예비역이 충원될 수도 있다.
다만 장비 경신은 늦다. K2 소총도 30만번대의 낡은 물건에 2000년대 후반까지도 각 소대에 M60 기관총이 지급되어 있었다. K3 경기관총은 "내년에 나온다"는 소문만 몇십 년 동안 계속 돌다가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나왔다. 2010년 4월 K3 보급이 시작되기전 집체교육이 있었고, 2017년 3월에는 소대당 두 정씩 화기분대가 장비했다. M60때와 보유량은 같다.
1경비단 복무의 가장 큰 낙은 서울시내 야경보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는 위치의 부대들이 다 그렇지만. 주둔지 저녁 식사 후 식당 앞 흡연장에 서서 흡연하며 감상 할 수 있는 남산타워의 야경은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근무지인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더 높게 치는 전역자들도 있으니 개인의 주관이 개입된다고 보는 게 옳다. 또한 인왕산 근무부대는 등산객들이 많아 등산객 구경하는 것도 재미다. 물론 등산객도 감시대상이므로 감시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갈굼을 먹게 된다.
근무강도 뿐 아니라 군기도 매우 센 것으로 유명한데, 보통 2000년대 초 혹은 그이전까지 대부분의 군대가 말년에는 아무것도 안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그렇지가 않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말년휴가 나가기 전날까지 청소를 하거나 근무를 나가는 인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부대를 보는 눈이 워낙 많기 때문에 FM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장 주둔지든 소초생활이든, 주위에 민간인들 투성인 데다가 부대특성상 장성들이 워낙 자주 방문하다보니 타부대처럼 가라로 돌리다 걸리면 간부들 입장에서는 정말 큰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대대장급 이상부터는 전부 엘리트 진급코스를 받고 온 인물들이고 또 장군을 목표로 군생활 하는 사람들이라 당연히 FM이 일상화기 때문에 군기가 빡센 것이다.
서울 시내에서 유일하게 실탄을 휴대하고 민간인과 직접 접촉하면서 근무하는 부대라는 점도 빡센 군기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제55경비단도 실탄을 소지하긴 하나, 이들은 민간인을 접촉하지 않는다. 경비단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초소 근무중에 총과 탄약을 소지한 채 그대로 서울 시내로 걸어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경비단 배정 자원들도 모두 신원조회를 기본으로 받는다.
경비단에서는 2013년까지 주단위 동기제를 유지했다.[22] 이게 지속된 이유인즉슨 부대 운영 특성상 2, 3달 안에 많은 인원이 신병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월별로 선후임을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2014년[23]이 되어서야 당시 대대장에 의해 병영부조리 척결의 일환으로 월별 동기제로 전환되었다. 같은 시기 전방 육군 사단 중에는 1년 동기제가 도입된 곳도 있었다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뒤쳐진 것이다.
5.2. 선발
과거 쌍팔년도에는 전방 부대를 돌면서 몸 좋은 병사들을 그냥 골라서 뽑아 왔다는 고참 부사관들의 증언(1999년 경)이 있다.1경비단의 전신인 수방사 30경비단의 경우 1991년 이전에는 키 178cm 이상, 시력 1.5 이상, 격투기 유단자, 오다리제외, 청와대에서 요구하는 신원조회 통과자로 신교대에서 차출해 왔다. 1992년에는 키 175cm 이상으로 기준이 완화 되어 키가 175cm였던 한 병사의 별명이 "땅콩"이었다는 슬픈 전설(당사자에게 확인가능)이 있다. 그러다 1993년 2월 김영삼 전대통령 취임 후 문민정부라는 미명아래 수방사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일시적으로 뺑뺑이를 통해 175cm 이하, 안경낀 병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이전에는 키작고 안경 낀 병사가 없었다.) 몇 개월간 뺑뺑이를 통해 들어오다가 다시 차출로 변경되었으나 기준은 점차 완화되었다.
1995년 전후의 선발은 306 보충대 옥상에서 키는 175cm 이상, 오다리 제외(실제로 차렷 시켜놓고 무릎사이로 주먹 넣어봐서 뽑았다) 시력은 1.0 이상을 뽑았다. 30단과 33단 구분없이 필요 인원의 2배수를 뽑고, 훈련소에서 받는 성적과 신원조회결과 이상없는 인원이 최종적으로 남아 방교대에서 30단과 33단으로 분리되었고 탈락한 인원들은 위탁교육을 받은 사단에 남았다. 방교대에서는 아무래도 직접적인 청와대 외곽 근무를 서는 30단의 인사장교의 파워가 세서 먼저 30단 인원을 뽑고 나머지는 33단으로 갔다.(이 사실은 단 통합 후 인사장교가 불공정하게 인원 선발을 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격투기 유단자가 있을 경우 간혹 방교대에서 35특임으로 뽑혀가는 경우도 있었다. 30단과 33단이 통합된 직후 30단에서 온 인사장교가 1대대(전 30단)으로 괜찮아 보이는 인원을 먼저 다 빼돌리고 2대대(전 33단)에는 별볼일 없어 보이는 병사만 떨궈줘서 원성이 자자해지자 경비단 인사장교가 갈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1995년 기준으로 경비단에 안경을 끼거나 키가 작은 병사들은 모두 논산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단 본부중대에만 배속되었고, 중대단위의 행정병의 경우 일반 병들을 뽑았고 후에 주특기 번호만 변경해서 행정병 근무를 시켰다.
최소 1999년부터 2010년대 초까지는 (지금은 없어진) 306보충대에서 징집병들 중에서 입대 직후 신장(173cm), 안경 착용 여부, 문신 여부 등을 확인해 최종 배정 인원의 2배수로 뽑은 후 컴퓨터 추첨으로 대상자를 선정한 후 신원조회로 수방사 배속 여부를 최종 결정했다. 신원조회는 쉽게 말하면 사상검증이라고 보면되는데 대통령 직속 근위부대인만큼 3대까지 공산주의자가 없어야했다. 체력 테스트도 했는데 이건 웬만하면 통과되는 수준이었다. 이들은 대다수 일반 중대 전투병으로 가게 되지만 실제로는 군대가 다 그렇듯 자대에서 필요한 보직(행정병 등)으로 재배치받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이 위탁받은 사단에서 신병훈련을 마치고 방패교육대에서 대기하면 그동안 대통령경호실 지원부대, 사령부 본근대 경비중대, 35특공, 문서고관리대[24], 338 경비대 등 소규모의 특수한 부대들이 먼저 엘리트 인원을 싹 뽑았다. 그러고 나면 나머지를 경비단과 방공단이 나눠 갖는 식이었으며, 병력을 인수하는 날까지 경비단 사람은 방교대에 오지도 않았다.
1999년 입영자의 경우 키는 172cm, 안경 미착용의 두 가지 조건만 갖추면 선발이 가능했다. 14년 이전까지는 최소 170cm 이상이라는 암묵적 선발 기준이 있었으나 이후 병력부족의 이유로 그 이하 병사도 소수지만 보이기도 한다. 안경 역시 마찬가지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논산 출신 운전병이나 의무병, 화학병, 전문 행정병인 대대계원 이상이 아닌 전투병력 중에는 안경 낀 병사는 사실상 없었으나, 현재는 안경 낀 병사들도 바글바글한 듯하다.
그러던 것이 2013년 중반부터 수방사와 별개로 1경비단이 신교대에서 면접을 통해 우선선발을 하게 되었다. 보통 서울이라는 미끼에 낚인 불쌍한 영혼들이 다수지만, 1경비단이 빡세다는 게 알려져서 가기 싫다고 해도, 모집간부가 선발인원 채우느라 허우대 멀쩡하고 인성/학력 괜찮으면
물론 이는 경계병 한정으로, 특기병(운전병, 조리병 등)은 다른 부대와 동일하게 방교대에서 선발한다. 또한 행정병 등도 방교대의 보병 자원 중에 데려가기도 한다. 그 외 병과는 육군훈련소에서 차출한다
5.3. 경비단가
뜨겁게 차오르는 태양 같이 의지와 정열로 뭉친 용사들
북악과 인왕의 정기를 받아 서울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가슴에 깊이 새긴 결의로 내 조국 철통경계 위하여
천년을 우뚝 선 소나무처럼 굳건하게 나라 지켜나가자
청룡 백호 태호 함께 행동으로 충성 다하여서
전군 유일 최정예 근위부대 제1경비단
북악과 인왕의 정기를 받아 서울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가슴에 깊이 새긴 결의로 내 조국 철통경계 위하여
천년을 우뚝 선 소나무처럼 굳건하게 나라 지켜나가자
청룡 백호 태호 함께 행동으로 충성 다하여서
전군 유일 최정예 근위부대 제1경비단
- 2001년에 제정되었다. 그 이전에는 소대가, 중대가, 대대가는 있어도 단가는 없었다.
- 다섯 번째 줄의 "청룡 백호 태호 함께"라는 가사는 35특공이 경비단에 편입된 이후에 바뀐 가사다. 제정 시점의 원래 가사는 "청룡 백호 용맹 받아"였다.
6. 사건사고
- 1961년 5.16 군사정변 당시 제30경비단, 제33경비단의 전신인 제30보병사단과 제33보병사단이 가담했다. 다만 두 부대에서 쿠데타 정보가 유출되어 일부 부대가 출동하지 못했다.
- 1979년 12.12 군사 반란 때 현 제1경비단의 전신이자 당시 제30경비단, 제33경비단이 반란군 사령부 역할을 했다. 당시 하나회 멤버이자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심복 중 하나였던 장세동 보병 대령이 30경비단장, 같은 하나회 멤버 김진영 33경비단장이 있어 가능했다.[25] 30경비단 5분대기조는 반란군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총장 공관에서 이미 납치해 떠났으나 소통 오류로 반란군이 고립되어 있는 줄 알고 총장 공관에 출동했다가 도리어 고립되게 된다.
- 2022년 4월 12일, 근무지 내 모 소초에서 부사관이 K2 소총으로 자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7. 여담
2013년 1월 21일에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실시한 리멤버 1.21 훈련에 참가한 제1경비단 병력의 모습[26] |
- 여군이 없는 부대였다. 단 본부 행정반이나 정훈장교 등 특정지에 들어가 소초에서 생활할 필요가 없는 보직이 있는데도 여군은 없었다. 가끔 이동중에 방공단이나 제55경비 섹터에서 여군을 마주할 때가 유일하게 접하는 여군이었다. 2000년 경까지도 없다가 언제부터 채용했는지 모를 주둔지 병사식당을 책임지는 아주머니가 꽤 오랫동안 부대 유일 여성이었다. 한때 여성 민간상담사와 PX 관리관이 있었으나 상담사는 그 뒤에 남자로 바뀌었다. 2021년 현재는 각 대대마다 복지재정담당관이 여군으로 있어서 여군 2명이 복무중이다.
- 병사들 뿐 아니라 간부들도 힘든지 1경비단에서 근무하다 수방사 타부대로 전출 온 간부들은 진절머리를 낸다. 1경비단을 떠난 것에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사실 수방사 소속 부대들 상당수가 간부들에겐 상당히 기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대 특성상 업무는 많은데 전방과 같은 혜택은 없다 보니... 게다가 기혼 장교들에게 제공되는 군인아파트도 직책이 낮으면 코딱지만하게 마련이라 별로 좋은 환경이 못 된다. 물론 그 외에도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의 질이나 가족들을 생각하면 서울에서 복무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메리트라 여전히 많은 간부들이 수방사를 선호하기도 한다. 이 경우 자녀의 교육 문제 등을 생각해 타지로 인사이동을 해도 본인만 가고 배우자와 자녀들은 서울에 잔류시키는 주말부부도 꽤 된다.
- 옛날에는 영내에 K-1 전차와 KM900, K200 장갑차가 있었는데, 이들은 전차대대, 장갑대대 소속으로 파견을 나왔을 뿐 경비단 정규 소속이 아니었다. 주력은 단 주둔지에 있으면서 주둔지에서는 보통 장갑차 정비와 불침번을 하고 경비중대 특정 소초로 한 번에 장갑차만 1개 소대씩 파견을 나가는 방식으로 운용했다. 현재는 전차는 없으며 장갑차도 경비단 소속 별개 중대라고 하는데, 편제 변경 시점 등은 확인을 요한다. 낡은 KM900 장갑차는 2019년에 K808로 교체되었다. 기사.
- 18년 현재 단 직할로 장갑중대가 존재하며 단본부대와는 별개다. 육군훈련소에서 선발해서 데려오고 타 경비중대와 마찬가지로 4개월마다 부대교대를 한다.
- 2000년 경, 경비단 PX는 육군 전체에서 매출이 2위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PX 자체도 상당히 넓을 뿐더러 넓은 정원도 딸려 있어 면회시의 풍경이 보다 다양한 편이다. 본래는 면회외출도 가능하여 부대 밑의 공원까지는 나갈 수 있었으나 2015년도 초 쯤에 폐지되었다. 아마도 위수지역 이탈자가 하도 많아서 그랬을지도? 실제로 2000년에 수시로 허용 지역을 벗어나 홍대거리 앞 모텔에 가다가 걸려서 2주 영창을 다녀오고 타 중대로 전출된 고문관의 사례가 있었다.
-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2018년 기준으로는 넓은 정원은 없다. 공원에 있는 쉼터같은 조그마한 곳이 있긴 한데 진짜 조그맣고 오래된 공원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에 따라 넓게 보고 작게 보는 걸지도?
- 특정지에서는 본래 규정상 면회가 불가능했으나 2018년 현재는 잠깐 외출처럼 가능하다. 물론 과거에도 소대장 재량으로 잠시 눈감아주는 비공식적인 면회가 시행된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이 쪽으로 오는 면회는 주로 전역한지 얼마 안 된 전역자들이 후임들 위문할 겸 여럿이 함께 찾아오는 사례가 많았다. 여자친구들을 데려와서 후임들에게 염장을 지르기도 했다.
- 전투지원중대는 원래 단 주둔지에 같이 있었고 경계부대처럼 교대로 근무투입을 했으나 2000년 경 아예 별도 주둔지로 따로 독립해 나갔다. 주둔지와 떨어져있고 근무강도가 약하단 소문 때문에 경비단 내 자체 관심병사가 해당 중대로 전출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훈련강도는 매우 높은데 이는 그 유명한 81mm 박격포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비단의 그린캠프라는 인식이 있으나 그저 편견일 뿐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는 병사가 많다.
- 바로 옆이 아파트다 보니 이런 사례도 있다. 2000년에 부대 옆 아파트에 사는 신병이 전입을 왔는데, 이 무개념이 오렌지를 입은 채로 부대 담을 넘어 집에 갔는데 부모님이 두 손 잡고 부대로 다시 데리고 왔단다. 여기에다 중대원 중 누구도 그 신병이 없어진 사실을 몰랐다나 어쨌다나? 실제로 부대 담이 높지 않고, 택시 잡기도 쉬워서 마음만 먹으면 가장 탈영하기 쉬운 부대다. 그럼에도 이 부대에서 탈영병은 거의 볼 수가 없다.
- 2010년 여름 경에 5중대 이등병이 지휘통제실 위에 놓여져있던 실탄이 든 탄창을 가져다가 화장실에서 총기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에 대대 OP에서도 이병이 나무에 목을 메고 자살하는 일이 생겼다. 물론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대부분의 군내 사고가 그렇듯이 언론에서 다루어진 일은 없었다.
- 그 동안 빡센 군기와 상시 실탄 휴대 근무 때문에 별의별 사건이나 병영부조리, 가혹행위가 어지간히 많았다고 한다. 경계근무는 정해진 사수-부사수 두 명이 짝을 지어 서는데,[27] 이 때문에 근무시간은 부사수에게 지옥이었다고 한다. 사수 입장에서도 부사수가 작은 실수만 하면 자신이 선임들이나 간부들에게 개털리니 빡세게 잡을 수밖에 없고... 가장 기상천외한 가혹행위는 조정간 단발 상태의 K-2를 입에 물고 근무서기. 쌍팔년도 도시전설이 아니라 엄연히 2010년대 초반 전역자의 증언이다. 다만 이 문제는 어느 부대, 어느 시기나 다 마찬가지로, 사수 및 부사수의 성격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얼마든지 다른 사례가 나올 수 있음을 감안해서 볼 것. 혹시라도 당하게 되면 비단 수방사 말고도 대한민국 육군본부나 국방부 조사본부 혹은 군인권센터에 신고하는 게 훨씬 더 좋다.
- 예비역이라면 다 알고 있겠지만, 특정지 곳곳에는 폐기된 장비(...)들이 매몰되어 있다. 이 외에 등산로 주변에 존재하던 초소가 철거된 흔적을 볼 수 있는 곳도 군데군데 있다. 본래 군병력 순찰로였던 곳이 개방된 등산로가 된지라, 원래 있던 초소들은 갈수록 폐쇄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근무지가 옮겨지고 있다.
심지어 2019년에 인왕산 구역에서는 초소가 아닌 소초까지 하나 폐기되었다. 기사. 그 소초에 배치되던 소대 편제가 아예 없어졌는지 병력이 재배치되었는지는 불명이다.해당 소초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사용하였던 소초였고, 그때 인원은 재배치 되었었다.[28] 덤으로 이 소초 관리구역 내에는 수영장이 설치되어 있어서 단 내에서 자체적으로 활용하는 소대 단위 하계휴양소 노릇도 했다. 중대 단위 하계휴양은 방교대로 갔었다. 해당 소초 건물은 2022년경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 2021년에는 인왕산 구역에서 소초가 하나 또 줄어든 보도가 나왔다. 주민 쉼터가 된 내무반, 창밖에는 인왕산 파노라마 한때는 야간 초소 이동 간에 사용하던 공간으로, 소초까지는 아닌 분초였다고 하는데 병력이 현재처럼 축소되기 이전인 2000년대 초반에는 소초였다.
- 타 부대들에 비해 혹한기 훈련, 유격 훈련이 짧다. 2000년경에는 4박 5일이었다. 이중에 한나절은 숙영지 건설, 한나절은 화생방이므로 실질적인 "유격" 기간은 3박 4일. 수방사 예하이므로 유격은 방교대에서 받는다. 매년 1회 있는 유격에 분대장교육대 입소, 하계휴양까지 감안하면 경비단 병사들은 전입 이후 방교대를 최소 4회는 다시 가야 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시가전 교육도 받았으니 따지고 보면 더 많았다.
- 엄밀히는 경호부대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에 준하게 취급받으므로 경호부대처럼 대통령경호실 특별부식을 받는다. 대통령 생일이나 영부인 생일에 병사들에게 고기를 사서 보내는데, 양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3끼 고기반찬을 원없이 먹을 정도다. 또한 기무사 창립일에는 간단한 부식과 선물도 받는다. 1년에 1번 정도 가족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하는 행사도 열린다. 2000년경에는 병사들만 연 1회 중대 단위로 견학했다. 금속탐지기 검사를 거쳐 청와대 경내에 들어가면, 엘리트복을 입고 베레모를 쓴 55대 병사들이 지프차를 타고 견학 대열을 따라다녔다. 탄창 꽂은 K-2를 지향사격 자세로 겨누고...
- 이런 데서 나오는 특혜로 1997년 외환 위기 이전에는 특식으로 크림빵도 나오고[29] 격오지 근무처럼 추가수당도 있었으나 이후 폐지되고 복구되지 않았다.
- 역할이 역할이니만큼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는 비상대기 상태였다. 부대 내 가용한 모든 교통수단(육공, 버스)들이 연병장에 도열했다. 2016년 11월에도 내내 주말마다 비상대기 상태였다. 당시 면회도 제한되고 당연히 청원휴가를 제외하고 최소 2달여간 휴가가 통제되었다. 실제로 5차 촛불시위 시기에 북악산을 넘어 청와대 진입을 시도한 이적단체원 4명이 경비단 병력에게 체포되기도 했다.
- 2002년 헌병 총기탈취 사고 후 초병들에게 무선버튼을 나눠줬었다. 엑스반도에 부착 하고 근무서는데 이게 실수로 누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잘못 누르면 바로 한순간에 지통실에서 자동으로 5대기 비상이 걸렸다. 2000년대 중반 모 소초는 목에 무선버튼을 걸고 다녔다. 그 외 다양한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경보수단이 있었다. 2014년도 1월 군번 때는 이미 없어졌다는데, 대신 초소마다 벽면에 비상벨이 있었다고 한다.
- 비슷한 명칭을 한 부대들로 제2경비단, 제3경비단, 세종시경비단이 있는데, 이 부대들은 각각 대한민국 육군본부 직할과 제17보병사단, 제32보병사단 직할로 계룡대, 인천국제공항, 정부세종청사 외곽을 경비한다.
- 2016년 초까지는[30] 휴가나 외박 외출 출타시에는 전투복 복장이 아닌 육군 근무복[31] 복장으로 나가야 했다. 해서 전날 출타자 교육 시 근무복을 다리미로 칼각으로 다리고 복장까지 갖춰서 통과를 해야 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 1경비단 예비역들은 어깨에 방패마크를 달고 전투화를 신고 근무복을 입은 병사를 보면 "아 저 친구는 경비단 소속이구나!" 하고 자신의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전투복에 흉장이 달리기 때문에 경비대 소속인 것을 식별할 수는 있다.
- 2021년 육대전에는 경비단 장병이 과하게 혹사당한다는 익명의 제보가 올라왔었다. # 일주일에 적게는 84시간 많게는 96시간 근무를 한다고 하는데, 이는 코로나로 인한 격리자와 최근 군병력 감축으로 인해 만년 인력난에 시달려서 어쩔 수 없는 조치인듯 하다.
[1] 충남대학교[2] 교대주기는 2000년 이전에는 중대별로 6주, 2001년부터 한동안은 대대 단위로 3개월, 또 한동안은 4개월이었다.[3] 대표적으로 2008년 촛불집회,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등.[4] 당시 서울지역 향토예비사단. 지금은 서울 인근의 제30기계화보병사단(현 제30기갑여단)[5] 당시 경기 서부(인천, 영등포 포함) 지역 향토예비사단, 제33보병사단(현 제17보병사단)[6] 멀쩡한 궁궐을 허물고 들어앉은 것은 아니다. 조선총독부와 총독관저를 경호하는 일본군 부대 주둔지로 쓰던 자리에 들어갔다. 이 터는 본래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태원전 자리였으나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열기위해 허물어졌다.[7] 이들에게 배신의 댓가는 정말 달콤했다. 장세동은 현역 군인 신분으로 장관급인 대통령경호실장을 맡다가 성대한 전역식과 함께 중장으로 전역했고, 이후에는 부총리급인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영전했다.[8] 김진영은 이후 소장, 중장 시절에 두 차례의 부침을 겪지만 대장 진급에 성공하고 육군참모총장까지 되었다. 심지어 취임 직후에 김진영을 전역시킨 김영삼은 경남고 후배인 김진영에게 국회의원 뱃지까지 달아줄 생각이 있었다는 후문이다.[9] 본관 내에 있는 부대 역사관에는 역대 단장들의 사진이 죽 전시되어 있다.[10] 수도방위사령관이었던 김용현 중장(육사 38기), 구홍모 중장(육사 40기)등이 대령 시절 제1경비단장을 역임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지상작전사령관을 맡았던 전동진 대장(육사 45기)과 합동참모차장을 맡고 있는 강호필 대장(육사 47기)도 대령 시절에 제1경비단장을 지냈다.[11] 중대장차 1대, 3개 소대에 4대씩.[12] 비슷한 급의 요직이 제1보병사단 제11보병여단장, 제12보병여단장이다. 서부전선 최주요 섹터를 지키는 곳이라 역시 역대 여단장 거의 전원이 육사 출신에 장군으로 진급했다.[13] 2006년[14] 2008.11.10. 이임[15] 2008.11.10. 취임[16] 전역 후 21년 12월 2급 군무원 신분으로 취임[17] 2010~11년[18] 前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장, 前 제55경비단장. 중령 당시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장이었으며 귀순자를 안전하게 구출한 사례가 있다.관련기사 육사 생도 시절 연대장생도를 역임했다.[19] 충남대학교 졸업. 역대 첫 비육사 출신 단장이다. 비육사 출신으로 연대장급 요직에 왔지만 계엄에 여파에 휩쓸려 진급 가능성은 높지 않다.[20] 現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 중장을 합참 작전본부 작전기획부에 이어 연속으로 직속상관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진우 장군이 작전기획부장 시절 예하 실무자였다.[21] 중대 기준으로 부중대장, 대대 기준으로 장교보직인 부대대장(말년대위 또는 소령급)과 부사관보직인 본부중대 처부소대장(중사급)은 어느 부대든 항상 예비역 편제다.[22] 같은 수방사 소속인 군사경찰단도 비슷한 걸 한다. 기수 동기제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육군 군사경찰이 전부 후반기 교육 배출순서로 기수를 매긴다. 이래서 월 단위 동기제는 없다. 역사도 오래 됐으며 군사경찰단만 이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치기는 힘들어보인다. 그래도 운전병이 많은 육군수사단에선 별 의미가 없다.[23] 주둔지에 위치한 직할대인 본부대와 수송대는 이미 2012년 말부터 월단위 동기제를 시행하고 있었고, 이후에 본부대에서 분리된 통신대 역시 2013년 분리 운영과 동시에 월단위 동기제를 유지했다.[24] 일개 문서고관리대 병사를 면접씩이나 해서 뽑는 이유는 해당 문서 참고.[25] 당시 30경비단과 33경비단은 서울 방위의 정예부대로 수경사 소속이기는 했지만 수경사령관도 무장 출입은 불가할 정도로 독립적인 부대였고 때문에 반란군들이 몰래 모이기에는 딱 좋았다. 또 당시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이 자신의 라인으로 관리하던 곳이기도 했다. 비록 배속은 수경사였으나 대통령경호실의 통제를 받던 곳이기에 이런 행위가 가능했다. 지금도 제1경비단은 수방사 소속이나 실제로는 대통령경호처가 관리하다시피 한다.[26] 당시 단장은 전동진 대장, 훈련 참가 대대장은 조종래 소장.[27] 부대에 따라 근무형태는 케바케다. 근무 사수-부사수가 정해져 있지 않은 부대도 많고, 실탄 들고 혼자 서는 부대도 있다. 다만 이는 신원조회를 매우 빡세게 하는 모 부대.[28] 인왕산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한번씩 교육목적으로 찾아 가게된다. 교육에 집중 안된다면 뒤적뒤적 주위를 살펴라. 33단 시절 인쇄물이 있어서 놀라게 된다.[29] 지금은 이게 별 것 아닌 걸로 보이지만 지금처럼 풍족한 시대가 아니었던 점을 고려하자.[30] 강호필 단장 부임 이후부터...[31] 이 근무복은 개인 단위 지급이 아니라 소대 단위로 지급되어 수량이 늘 부족했다. 왕고부터 2/3 정도만 본인 근무복을 소지하고 있고, 나머지 후임들은 여러 명이 한 벌을 명찰만 갈아가면서 돌려입어야 했다. 전역한 왕고의 근무복은 당연히 그동안 근무복이 없었던 병사 중 최선임이 물려받는 게 상례다. 다만 유달리 키가 크다거나 한 경우 아직 이등병이라고 해도 일찌감치 자기 근무복을 차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