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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구의 법정동 삼청동 三淸洞 | Samcheong-dong | |
| <colbgcolor=#ffdf00,#ffdf00>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 기초자치단체 | 종로구 |
| 행정표준코드 | 1111014000 |
| 관할 행정동 | 삼청동 |
| 면적 | 1.19㎢ |
| 인구밀도 | 1,003.36명/㎢ |
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법정동이자 행정동이다.2. 상세
행정동으로서의 삼청동은 법정동 삼청동 외에 사간동, 소격동, 송현동, 안국동, 팔판동, 화동을 포함한다. 북악산 동남쪽, 청와대와 경복궁이 속한 청운효자동 동쪽에 붙어있다.본래 조선시대에 가회동과 함께 북촌의 핵심 지역으로서 양반과 고관대작들이 많이 거주했으며, 19세기 이후로는 신흥 부유층들도 거주하기 시작했다. 다만 지금의 정독도서관 북쪽, 삼청동길 동쪽에 위치한 삼청동 35번지는 지금은 한옥들에 상권도 있지만 원래는 1920년대까지도 미개간지로서 숲이 울창하게 난 지역들이었다. 1920년대 후반에 소유자인 정희찬이 이곳을 개발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1930년대 중반에 다시 건축업자인 정세권과 김종량이 이곳을 사들여 개발하기 시작해 서민용 도시한옥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955년 행정동제의 실시 당시 현재의 행정동 삼청동을 관할하고 있던 행정동은 태화동, 별궁동, 수진동으로 3개였다. 태화동은 법정동 삼청동(35번지 제외)과 팔판동을 관할했고, 별궁동은 안국동, 소격동, 화동을 관할했으며 수진동은 사간동과 송현동, 중학동, 수송동을 관할했다. 1970년 행정동명 태화동은 삼청동으로 개칭했고, 행정동 별궁동과 수진동의 일부인 사간동과 송현동이 합동되어 행정동 안국동이 되었다. 1975년 행정동 삼청동과 안국동, 그리고 행정동 가회동의 관할이던 삼청로 35번지가 합쳐져 현재의 행정동 삼청동이 되었다.
중앙을 관통하는 삼청로를 중심으로 삼청동 카페 골목이 있어서, 북촌한옥마을이 있는 바로 옆 가회동과 더불어 젊은이들에게는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상대적으로 주거지는 많지 않다.[1]
한국금융연수원, 감사원, 숙정문, 주한베트남대사관, 북촌한옥마을 일부 등이 있다. 삼청로는 삼청터널을 통해 성북동의 대사관로로 이어진다.
동 면적의 상당 부분이 북악산이며, 청와대와도 가깝다. 국군서울지구병원과 몇몇 군부대들이 위치해 있으며, 한때 국군기무사령부(現 국군방첩사령부)도 이곳에 있었다가 경기도 과천시로 이전했다.
3. 동명 유래
도교에서 지향하는 이상향인 '삼청'과 이를 위해 '초제'를 집행한 소격서의 삼청전이 이곳에 있었기에 삼청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으나, 도교적 관념이 약해진 조선 후기에는 '산과 물, 그리고 인심'이 맑다는 의미에서 '山淸', '水淸', '人淸'이라고 하여 삼청동이 되었다4. 관할 행정동
4.1. 삼청동
| 종로구의 행정동 삼청동 三淸洞 | Samcheong-dong | |||
| <colbgcolor=#ffdf00,#ffdf00>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
| 기초자치단체 | 종로구 | ||
| 행정표준코드 | 3000043 | ||
| 관할 법정동 |
| ||
| 하위 행정구역 | 10통 42반 | ||
| 면적 | 1.49㎢ | ||
| 인구 | 2,114명[2] | ||
| 인구밀도 | 1,419명/㎢ | ||
| 정치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 국회의원 | 종로구 | |
| | 곽상언 (초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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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복지센터 | 삼청로 107[3] | ||
| 삼청동 주민센터 | |||
5. 인구
| (1966년~현재) |
|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 행정동제 실시 궁정동 + 청운동 + 신교동 + 세종로 일부 → 자하동 신설 창성동 + 효자동 → 청송동 신설 옥인동 + 통인동 → 인왕동 신설 누상동 + 누하동 → 누각동 신설 통의동 + 적선동 → 백송동 신설 필운동 + 체부동 → 매동 신설 사직동(법정동) → 사직동(행정동) 내수동 + 내자동 → 종교동 신설 신문로1가 + 신문로2가 → 신문동 신설 당주동 + 도렴동 + 세종로 일부 → 중앙동 신설 종로1가 + 서린동 + 청진동 → 광교동 신설 사간동 + 수송동 + 중학동 + 송현동 → 수진동 신설 종로2가 + 관철동 → 종각동 신설 공평동 + 인사동 → 대사동 신설 견지동 + 관훈동 → 전훈동 신설 안국동 + 소격동 + 화동 → 별궁동 신설 팔판동 + 삼청동 일부 → 태화동 신설 가회동 + 재동 + 삼청동 일부 → 백록동 신설 계동(법정동) → 계동(행정동) 원서동(법정동) → 원서동(행정동) 권농동 + 운니동 + 와룡동 일부 → 돈화문동 신설 익선동 + 경운동 → 운현동 신설 낙원동 + 돈의동 → 탑동 신설 관수동 + 종로3가 + 장사동 → 비파동 신설 묘동 + 훈정동 + 봉익동 → 대묘동 신설 예지동 + 인의동 + 종로4가 → 이현동 신설 연지동 + 원남동 → 통내동 신설 종로5가 → 종로5가동 전환 종로6가 → 종로6가동 전환 연건동 + 효제동 → 대학동 신설 충신동(법정동) → 충신동(행정동) 이화동 + 동숭동 → 낙산동 신설 혜화동(법정동) → 혜화동(행정동) 명륜1가 → 명륜1가동 전환 명륜3가 + 와룡동 일부 → 명륜3가동 신설 명륜2가 + 명륜4가 → 명륜4가동 신설 |
1966년 11,871명[1966삼청동] |
| 1970년 5월 5일 수진동 일부 + 별궁동 → 안국동 합동 태화동 → 삼청동 개칭 |
1970년 11,092명[1970삼청동] |
| 1975년 10월 1일 안국동 + 삼청동 + 가회동 일부 → 삼청동 합동 |
1975년 10,729명 |
1980년 10,102명 |
1985년 9,061명 |
1990년 8,180명 |
1995년 6,325명 |
2000년 5,374명 |
2005년 4,254명 |
2010년 3,517명 |
2015년 2,960명 |
2020년 2,640명 |
2025년 2,114명 |
2026년 6월 2,048명 |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현재는 겨우 2천 명 정도의 인구로 서울특별시의 427개의 행정동 중에서도 최하위권에 해당하는 인구수이지만 1966년에는 약 12,000명 정도의 인구가 이 지역에 살았다. 이때 삼청국민학교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부 주도의 강남 개발로 명문 학교들이 이전하면서 다른 종로구의 동네들처럼 도심 공동화 현상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삼청동과 안국동 2개의 행정동은 1975년에 합동이 되었다. 1980년에는 가까스로 1만 명을 넘겼지만 삼청동의 오래된 한옥이나 노후 주택을 허물고 새로 지을 수 없게끔 경관 규제에 묶이기 시작하면서 인구 감소의 흐름은 이어졌다. 그래도 1995년에는 6천 명대 인구 선은 지키며 주거지의 이미지가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며 '삼청동 카페거리'의 탄생으로 갤러리, 카페, 옷가게, 레스토랑이 밀려 들어오며 집세와 땅값이 천정부지로 폭등했다. 집주인들은 살던 집을 허물거나 개조해 고액의 상가로 세를 주었고, 세입자들은 올라간 주거비와 관광객들의 소음과 사생활 침해를 버티지 못하고 동네를 떠났다. 결국 삼청동의 인구는 3천 명대, 2천 명대로 계속해서 줄었다. 상업화의 물결에 과거의 주거 기능을 완벽하게 잃어버린 동이라고 할 수 있다.
6. 주요 명소 및 기관
6.1. 명소
- 삼청공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34-1 (삼청동) - 삼청공원숲속도서관[6]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34-1 (삼청동) - 삼청동 카페골목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일대 (삼청동) - 숙정문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산 25-22번지 - 맹사성 집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11길 74 (삼청동) - 번사창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18 (삼청동) - 지청천 집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26-1 (삼청동)
6.2. 기관
- 감사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12 (삼청동) - 한국금융연수원[7]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18 (삼청동) - 주한베트남대사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23 (삼청동) - 서울삼청동우체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09 (삼청동) - 북촌동양문화박물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11길 76 (삼청동) - 국군서울지구병원
- 삼청동 공관촌
7. 교육
초등학교는 없으며[8] 관내 초등학생은 가회동에 있는 서울재동초등학교로 통학한다.
중학교는 덕성여자중학교가 송현동에, 고등학교는 덕성여자고등학교가 안국동에 있다. 남자중학교는 없으며 관내 남자중학생들은 주로 계동에 있는 중앙중학교로 통학한다.[9]
화동 현재의 정독도서관 위치에 경기고등학교가 있었으며 1976년에 현재의 강남구 삼성동 74번지로 이전했다. 안국동 서울공예박물관 위치에 풍문여자고등학교가 있었으나 2017년에 강남구 자곡동으로 옮기면서 남녀공학인 풍문고등학교로 바뀌었다. 풍문여자중학교는 1946년에서 1992년까지 있었다.
8. 교통
8.1. 버스
8.2. 지하철
8.3. 도로
9. 출신 인물
10. 기타
삼청교육대는 삼청동에 있지 않았다. 다만 아예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닌데, 삼청교육대(삼청계획)를 주관한 국보위 산하 사회정화분과위원회의 본진이 삼청동에 소재했기 때문이다.가수 전인권이 삼청동 토박이이다. 태어나서 현재까지 쭉 거주 중이다. 비록 태어난 곳은 옆동네 사직동이지만, 그래도 바로 옆이고 아주 어릴 때부터 70년 가까이 삼청동에 살아서 고향도 삼청동이고 완벽한 삼청동 사람이다.
성북구 성북동, 종로구 평창동, 광진구 광장동, 사직동,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동, 동부이촌동,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여의도동과 더불어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무한도전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예언가였던 박명수가 이곳의 소재 목욕탕에 있었는데 이때 삼청동이라는 힌트를 줄 때 3개의 파란 큐브를 가지고 음성으로 East라며 보냈다.[10]
소설 백색부유물질의 배경이 삼청동이다.
삼청동에는 유명한 대통령의 안전가옥이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휘의 아들 민규식명의로 등기된 뒤 후손에게 상속한 주택으로 2005년 12월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의한 국가 환수 재산에 해당하지만 환수되지 않다가 경매에 들어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게 넘어갔고, 2011년 대통령실 소유 토지와 교환하는 형식으로 대통령실 재산으로 등록된 뒤 안가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탄핵 국면 때마다 등장한 '대통령 안가', 어떤 곳?
11. 관련 문서
[1] 대략 2000년도를 기점으로 이후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카페거리로 알려진 곳의 길가 가게들도 이 당시에는 대부분 사람 사는 집이었다.[2] 2026년 1월 주민등록인구[3] 삼청동 105-1[1966삼청동] 별궁동 4,871명 + 태화동 7,000명[1970삼청동] 안국동 5,199명 + 삼청동 5,893명[6] 삼청공원 구내에 있다.[7]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면 차기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꾸리는데, 이 인수위에서 많이 사용한다.[8] 삼청국민학교가 1942년에 개교하여 삼청공원 초입에 있었으나 1969년 11월 28일 폐교되어 서울재동초등학교로 통합되었다.[9] 중앙중은 원래 남자중학교였으나 2002년부터 현재의 남녀공학이 되었다.[10] 3개의 청색 동 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