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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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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12 ~ 1968.2

홍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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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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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홍석현 권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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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중앙그룹 초대 회장
홍석현
洪錫炫|Hong Seok-hyun
파일:중앙_홍석현.jpg
출생 1949년 10월 20일 ([age(1949-10-20)]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남양 홍씨 당홍계[1]
직업 언론인, 기업인
현직 중앙그룹 회장
중앙홀딩스 회장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재임기간 제20대 주 미합중국 특명전권대사
2005년 2월 22일 ~ 2005년 9월 23일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 / 학사)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 / 석사)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박사)
키메프대학교 (국제관계학 / 명예박사)
세종대학교 (공공정책학 / 명예박사)
포항공과대학교 (전자전기공학 / 명예박사)
극동연방대학교 (법학 / 명예박사)
종교 원불교[2] (법명: 석원)
부모 아버지 홍진기 어머니 김윤남
형제자매 누나 홍라희
남동생 홍석조, 홍석준, 홍석규
여동생 홍라영
배우자 신연균
자녀 장남 홍정도
장녀 홍정현
차남 홍정인
친인척 매형 이건희
조카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1. 개요2. 생애
2.1. 중앙일보에서의 행보2.2. 3차례의 세무조사, 그리고 삼성 X파일 사건2.3. 중앙일보·JTBC 회장직 사퇴와 정치 행보2.4. 박근혜 언론 외압 폭로2.5. 문재인 정부에서
3. 여담4. 경력5. 가족 관계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외교관이자 언론인. 중앙그룹 초대 회장 겸 중앙홀딩스 초대 회장.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기도 하다.

2. 생애

파일:홍석현 첫돐.jpg
1950년, 첫 돌을 맞이한 홍석현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산업공학 석사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세계은행(IBRD) 이코노미스트로, 1985년부터 이듬해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아버지인 홍진기이승만 정부 마지막 내각에서 법무장관으로 일할 때, 4.19 혁명 과정에서 시위대에 서슴지 않고 발포 명령을 내렸던 죄목으로 5.16 쿠데타 이후 사형 선고를 받았던 터라, 할머니가 어떤 공부를 해도 좋으니 법과대학은 가지마라고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에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제치고[3] 서울대학교에서 가장 입학 성적이 좋았던 전자공학과로 들어가게 되었다[4] 그러나 적성에 잘 맞지 않았고, 이후에 산업공학이 인기였던 터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으로 유학을 가서 산업공학 석사를, 경제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1964년에 부친인 홍진기가 삼성그룹의 계열사였던 동양방송의 사장으로 영입되고, 1967년에는 누이인 홍라희이건희와 결혼하게 되면서, 홍씨 가문과 삼성가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된다. 홍석현도 이 덕에 귀국 후인 1986년부터 삼성코닝 상무, 전무, 부사장을 역임하게 되었으며, 1994년에는 중앙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듬해 3월에는 사장으로 승진했고, 1999년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 된 이후 회장직에 올랐다.[5] 이때부터 중앙일보 한글제호 변경, 가로쓰기 시행, 섹션신문 발행 등을 주도하였다. 이후 세계신문협회 회장(2002~2005년), 한국신문협회 회장(2003~2005년)을 역임했다. 아시아 지역 출신이 세계신문협회장을 맡은 건 당시 홍 회장이 처음이었다.

2005년 2월부터 주미 대한민국 대사로 재직하다가, 1997년 대선 당시 삼성그룹의 수백억 대의 불법 비자금을 정치자금 명목으로 이회창 캠프로 전달하는 과정의 녹취와 관련된 삼성 X파일 사건 논란이 터진 뒤, 주미대사직을 중도에 사퇴하였다. 주미대사로 가기 전에 노무현 정부로 부터 차기 유엔 사무총장직을 약속받고 미국 워싱턴에 미국 대사로 부임했으나, 중도 낙마 후 결국 2006년 12월 27일에 중앙일보 대표이사 회장으로 복귀하였다.[6] 2011년부터 JTBC 대표이사 회장을 겸임했다. 2014년 JTBC 대표이사에서 물러났고 그 다음해에 중앙일보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2017년 3월, 중앙일보와 JTBC 회장직을 사임했다. 2014년부터 2018년 까지 한국기원 총재를 맡았었다. 이 밖에도 세계문화오픈(WCO) 조직위원회 위원장, 삼극위원회(Trilateral Commission) 아시아 태평양 그룹 부회장, 아시아재단 이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이사, 채텀하우스(Chatham House) 고문 등으로 활동을 했다.

홍석현의 정치 성향은 보수 우파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지만[7],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여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지내기도 하고[8], JTBC가 태블릿 PC 특종을 비롯하여 국정농단 보도에 앞장섰던 것 등을 생각하면, 홍석현의 정치성향을 간단하게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려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일보의 논조는 예나 지금이나 일관된 보수 우파인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러 저러한 이유 때문에 여러모로 미국의 미디어 재벌이자 정치인인 마이클 블룸버그와 비슷한 캐릭터라는 평도 있다. 둘 다 자국의 대표적인 미디어 재벌이며,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고, 특히 본인의 정치적 욕망이 크며, 본질적으로는 정치적으로 보수 우파에 친기업적 성향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민주당 등 리버럴 진영에도 한 발을 걸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블룸버그의 경우에는 요직인 뉴욕 시장을 세번이나 지내는 등 미국 주류 정치계에서 입지를 확실히 굳혔고, 자신이 설립한 블룸버그를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이자, 금융 정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창업을 통해 크게 자수성가한 경우이지만, 홍석현은 본인의 여러 적극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정치계에 성공적으로 발을 들이지도 못했고, 무엇보다도 창업이 아니라 삼성그룹이라는 재벌가에서 성장하며 상속과 계열분리의 형태로 기업체를 물려받은 것일 뿐이라는 점이 다르다.

2.1. 중앙일보에서의 행보

1994년 중앙일보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래 한국 일간지를 혁신하는 행보를 시도했다. 1994년 한국의 일간신문 중 최초로 일반/경제/스포츠 등 섹션을 분리한 신문을 발행했으며 최초로 전문기자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조인스’라는 온라인 뉴스 서비스를[9] 시작하고 2007년 중앙SUNDAY 일요신문을 창간했다.

2009년 중앙일보는 한국 일간지 최초로 판형을 대판에서 베를리너판으로 변경했다. 다만 이 때 신형 윤전기 도입을 위해 수천 억대의 엄청난 금액을 차입했는데, 마침 이 때가 종이신문의 몰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때인지라, 이는 두고 두고 경영실패 사례로 남았다. 이후 중앙일보는 이 차입금을 갚기 위해 막대한 자산을 매각해야 했고, 그로부터 십여년이 지난 2020년대가 되어서도 아직 당시 발생한 1천억 원대 이상의 차입금에 대한 재무적 부담이 많이 남아있다.

2.2. 3차례의 세무조사, 그리고 삼성 X파일 사건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실시된 언론사 세무조사에서는 홍석현 회장 일가가 아닌 고용인 송필호 사장이 구속되는 선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1999년에 실시된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에서는 비리 범죄 혐의가 드러나 2000년 5월 대법원에서 홍 회장은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최종 선고 받았다. 1999년 당시 나왔던 유명한 일화가 바로, "사장님 힘내세요!" 사건. 홍석현이 대검찰청에 출두할 때, 중앙일보 기자들이 대검 입구에 도열한 채로 홍석현을 응원하며 "홍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쳤던 것.# 이는 언론계에서 두고두고 큰 이슈가 되었고, 기자들이 오야붕을 모시는 조폭 꼬붕들마냥 사주를 호위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이 2년동안 있었던 일을 두고 언론계 안팎에서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대한) 언론탄압과 정치보복이라는 비판도 나왔으나, 7년 전인 94년 언론사 세무조사 실시 결과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인 만큼, 양자의 말을 모두 들어보고 판단해볼 부분이다.

그리고 그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복권 돼 중앙일보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으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주미한국대사로 임명되어, 대미외교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무렵 UN 사무총장 선거를 앞두고 국내외에서 출마가 유력한 후보로 주목받기도 했으나, 삼성 X파일 사건에 핵심적으로 연루된 것이 드러나[10] 주미대사직에서 5개월만에 사퇴하였고, 결국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UN 사무총장의 기회를 거머쥐게 된다. 이때 공항을 통해 귀국을 했을 때와 특검에 출두를 했을 때도 중앙일보 기자들이 대거 동원되어 홍석현의 호위무사 노릇을 했고,# 언론계에서도 큰 비난을 받았다.# 중앙일보 기자들의 행위가 얼마나 심했는지, 당시 특검을 취재하던 영상취재단이 중앙일보 기자들을 향해 취재 방해를 하지 말라면서 항의 성명을 내는 일까지 있었다.# 어쨌든 이후 2005년 12월 14일 검찰 도청수사팀은 불법도청 및 X파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홍석현에 공소시료 만료로 무혐의 처분하였다.(당시 수사 책임자는 황교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2014년 11월, 1999년과 2001년에 이어 3번째로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중앙일보와 JTBC의 모기업인 중앙미디어네트워크가 타깃이 되었다. 당시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세무조사를 두고 추측이 무성했는데, 오비이락격으로,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JTBC의 보도와, 끈질기게 파헤치는 취재 모습이 뭔가 관련이 있지않겠느냐는 "추정"이 조심스레 제기되기도 했다.

2.3. 중앙일보·JTBC 회장직 사퇴와 정치 행보

2017년 3월 18일 중앙일보 및 JTBC 회장직을 사임을 발표했다. 홍 회장은 당시 임직원에게 보낸 고별사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로 결심했다"면서 "남북관계, 일자리, 사회통합, 교육, 문화 등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나는데 필요한 시대적 과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 풀어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참고로 당시 언론계에서는 홍석현 회장의 정치적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며, 대선 출마 또는 새 정부에서의 요직을 맡아 정계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라는 평이 많았다. 실제로 홍석현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을 홍보하는 영상을 여럿 업로드하기도 했으며, 당시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김종인이나 정운찬 등과 회동하며 공개적으로 정치 세력 구성을 도모하는 움직임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급박하게 제3지대에서 선거 캠프를 꾸리거나 자신을 지지할 싱크탱크를 구성할 거라는 이야기가 정계에 많이 돌았다. 그러나 본인의 나이를 생각할 때 사실상 마지막 정치적 타이밍이었을 2017년 대선 출마에 결국 실패했고, 이후 2018년 지방선거 때도, 2020년 총선 때도 정치계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어느덧 자연인으로서 완연한 고령에 접어들었으므로, 현실적인 정치적 기회는 사실상 소멸한 형국이 되었다.

2.4. 박근혜 언론 외압 폭로

그러던 2017년 4월 16일, 박근혜로부터 "JTBC의 보도담당 사장 손석희를 갈아치우라"는 직접적인 외압을 두 번 가량 실제로 받았다라는 폭탄 발언을 유튜브에 올렸다. 본인과 아들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고. 구체적인 외압은 5~6회 가량 있었는데 그 중 두 번은 박근혜에게 받았다고 한다. 홍석현 본인은 "외압을 받아 앵커를 교체하는 것은 자존심이 용서치 않았다. 시대 착오적인 일이었다.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외압을 버텨냈다." 라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기사 및 영상

이에 더불어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소속 고위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박근혜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2016년 2월 경 독대를 했는데, 대화의 절반이 손석희를 갈아치우라는 압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통하지 않을 이야기'라며 난색을 표했더니, 박근혜는 "그렇다면 JTBC에서 삼성 광고를 빼라"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실제로 JTBC에는 삼성 광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10월 태블릿 PC 보도 당시 항간에 소문처럼 떠돌고 있었는데, 홍석현 전 회장의 발언으로 인해 사실임이 판명되었다.

또 조카인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재판 과정에서 한번 더 언급되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홍석현이 이건희의 말을 안 듣는다' 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2018년 11월 21일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또 한번 언급됐는데, 교체설이 나올 당시 주변 사업가들이 괴로움을 당했다고 한다. 또 압력에 관한 내용은 아들이나 다른 사람한테 알리지 않고,[11] 본인이 다 감내했다고 한다.

홍석현이 외풍을 감내하는 동안 JTBC는, 홍석현 본인이 공들여 영입한 언론인 손석희 사장의 지휘를 받으며 언론사로서의 위상이 다른 3개 종편사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졌으며, 특히 대선이 실시된 2017년과 이듬해에 연속 신뢰도 1위 언론사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2016년 하반기부터 정권 향방을 좌우한 정유라 특혜 논란최순실 게이트 보도에서 결정적인 최순실 태블릿PC 특종들을 터뜨린 것도 JTBC이다.

2.5. 문재인 정부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큰 공을 세워 문재인 정부에서 미국에 파견하는 특사로 임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으며 2017년 5월 실제로 임명되었다. 미국 유학 및 주미대사로 재임시절 많은 인맥을 구축했으며, 유력 언론사인 중앙일보와 JTBC를 경영한 데다 중앙일보가 미주에서도 활동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현지의 정치인들과 통할 수 있다는 점,[12] 남북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고 대북정책 관련 문재인 정부의 방향과 통하는 바가 있는 점 등이 고려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외교 분야에서 홍 회장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7051933330007101_P2.jpg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함께. 오른쪽은 안호영 주미대사

5월 20일, 나흘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다. 방문 기간 중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틸러슨 국무장관은 홍석현 특사에게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체제 보장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

2017년 5월 21일,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로 발표됐다. 그러나 언론사 회장을 지낸 신분으로 특보를 맡는 것은 적절치 않고, 미국 특사 활동을 했던 것처럼 국가에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자연인으로 돕겠다며 고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청와대도 해촉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특보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와는 달리, 홍석현의 경우는 대미 특사 외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공직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왔고, 이후에도 특보로서의 활동은 사실상 없었던 셈. 때문에 '사의'보다는 '고사'가 더 사실관계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 후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원로자문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3. 여담

4. 경력

5.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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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양군파 37세손 석(錫)○ 항렬.[2] 어머니 김윤남의 영향으로 입교. 원불교 원남교당 소속.[3] 50~60년대에는 화학공학과 출신들이 비료나 석유 화학같은 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4] 오남매 중 이화여대에 진학한 홍라영씨를 제외한 4명이 모두 서울대에 입학했는데,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유리한 조건에서 시작하기는 했다지만 공부머리는 타고난 집안인 듯. 애초에 부친부터가 일제시대에 조선인으로 판사가 된 수재였다.[5] 물론 해당 계열분리는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주식을 차명으로 홍씨 일가에게 이전한, 이른바 '위장 계열분리'라는 주장이 김용철 변호사로부터 나오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기사 참조.[6] 홍석현의 낙마 후, 그의 대타로 참여정부의 지지 하에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 된 사람이 바로 당시 외교부 장관이던 반기문이었다.[7] 일례로 1997년 대선 때는 사주인 홍석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으며, 삼성의 비자금 100억원을 직접 이회창 캠프로 전달하는 역할도 맡았다. 이 때문에 대선 결과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후에는 홍석현이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나중에 알려진 내용이지만, 심지어 당시 대선 결과 이회창이 낙선하자 "내 월급을 받고 DJ를 지원한 간부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면서 호남 출신 간부들을 해고하라고 지시했을 정도였다고.[8] 하지만 같은 보수 우파인 반기문도 참여정부에서 외교부장관을 지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런 노무현의 인사가 아예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민주당 대통령들(김대중-노무현-문재인)은 보수적인 인사를 내각에 기용하는 탕평책을 꽤나 많이 펼쳤다. 반면에 보수정당 대통령들은 거의 코드인사를 펼친 편이다.[9] 창설 당시부터 2000년까지는 공식 도메인이 www.joongang.co.kr 이었다.[10] 사법고시를 통과한 수재였던 동생 홍석조 검사가 유망한 젊은 법조인들에게 삼성의 뇌물을 뿌리는 창구 역할을 해왔던 사실도 같이 폭로되어 법복을 벗게 되었다.[11] 예외로, 손석희 사장은 교체설에 관해 홍회장에게 직접 들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내용 참고.[12] 일례로 박정희 정부 시절, 박동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함병춘 주미대사를 통해 미국 측에 연락하고자 했으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계속 만남을 거절해, 현지에서 언론사를 운영하는 통일교의 2 ~ 3번 째 서열 간부(박보희)를 통해 키신저 박사와의 만남을 주선한 적 있다. 박보희가 자기 사무실에서 마치 옆집 사람에게 말하듯 "Hey Kissinger, come here~" 하자, 바로 달려오는 키신저를 보며 우리 관리들이 놀랐다는 후문.[13] 홍석현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이따금 한국경제신문처럼 군 관계자들을 신규 독자로 맞이하고자 노력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일보에 비하여, 햇볕정책 성향의 의견을 다루는 기사에 벼린 비판 강도가 덜하며, 미국측의 동태 및 의향을 관찰하는 특파원 보도 쪽의 공신력은 오히려 전보다 커져, 여전히 남북 문제를 다루는 정보지로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14] 이재오가 차린 늘푸른한국당 강령 중에 이 부분과 유사한 점이 있고, 남경필 역시 바른정당 대선 경선에서 "대화와 제재 투 트랙 전략"과 "개성공단 재개"를 내세운 바 있다.[15] 이 때문인지, 본인은 보수/진보 양측 진영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지만 또 동시에 양측 모두에서 찜찜하게 여기는 시선을 받고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그래봐야 중앙일보 회장/삼성 외척이다" 라는 식이고 보수 진영에서는 "노무현, 문재인이랑 붙어먹은 강남좌파" 라는 식.[16]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초청[17] 북한이 이제 핵보다는 경제를 택할 수밖에 없는 국면에 왔다는 요지[18] 중앙그룹 회장을 맡고 있긴 하지만, 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은 아들인 홍정도 부회장이 거의 전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