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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구의 법정동 원서동 苑西洞 | Wonseo-dong | |
| <colbgcolor=#ffdf00>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 기초자치단체 | 종로구 |
| 행정표준코드 | 1111014900 |
| 관할 행정동 | 가회동 |
| 면적 | 0.156㎢ |
| 인구 | 1,704명[1] |
| 인구밀도 | 10,923.08명/㎢ |
1. 개요
원서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동이다. 북촌한옥마을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해있다. 행정동 가회동 산하의 법정동이며, 주민센터는 가회동주민센터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35 (가회동)에 위치하고 있다.[2]지명의 유래는 창경원(현 창경궁) 서쪽에 있는 동네를 뜻한다. 또는 창덕궁 후원(비원) 서쪽에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다만 비슷한 이름인 원남동이 창경원 남쪽에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고 이쪽이 정설이라서 비원 서쪽 동네라는 설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2. 상세
창덕궁 서쪽에 위치하며, 조선 왕실을 돌보던 나인과 중인, 하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다. 예조 산하관청 중 천문, 지리를 담당하는 관상감이 여기에 있었다.
서쪽, 북서쪽은 계동, 북동쪽, 동쪽은 와룡동, 남쪽은 운니동과 접한다. 계동은 같은 가회동이라는 행정동에 속하지만 와룡동과 운니동은 행정동 종로1.2.3.4가동에 속한다.
옆의 계동이나 가회동과 마찬가지로 일제시대에 집중적으로 개발되었다. 원서동 4번지는 바로 인근의 계동 2번지와 함께 경창군의 후손이자 대한제국의 관리였던 이재현의 소유였는데 그가 죽고 나서 일본인에게 넘어가 1920년대에 일본 은행들의 지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1930년대에 조선인 개발업자들이 이곳에 도시형 한옥을 지었다. 원서동 77번지는 임야, 즉 농지였는데 1920년대 후반 이후 대정기업이라는 회사의 주도로 개발되기 시작해 도시형 한옥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마찬가지로 임야였던 135번지는 1930년대에 대창흥업주식회사(현 원P&S)가 취득해 개발하여 1960년대까지도 빈민촌이었다. 창덕궁 소속 관청이 있었던 76번지와 임야였던 3번지, 9번지는 1940년대까지도 개발되지 않았다.
1955년 행정동 제도 실시 당시에는 독립된 행정동이었다. 1970년 행정동 계동에 편입된 이후 1975년 계동이 행정동 가회동에 합병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옆동네인 계동이나 북촌한옥마을이 있는 가회동, 재동 등 행정동 가회동 산하 다른 법정동에 비해 동네 분위기는 비교적 한적하고 조용한 편이다. 상가보다는 빌라와 다세대주택 등 주택의 비중이 높기 때문.[3] 원서동 거주 인구 비율은 행정동 가회동에서 약 45%를 차지한다. 원서동의 존재로 인해 행정동 가회동은 선거에서 삼청동과 다르게 대표적인 접전 지역으로 꼽힌다.
원서동 초입에는 원서공원이 있다. 과거 휘문고등학교가 위치했던 곳이다. 현대그룹에서 건물을 지으려 했으나 개발보다 보존을 중시한 동네 주민들의 반대로 공원이 될 수 있었다.
창덕궁을 따라 이어진 돌담길이 보이는 창덕궁길은 매력적이다. 창덕궁 외삼문 부근에 창덕궁에서 일하는 궁인과 일반인이 함께 썼다는 옛 빨래터가 있다.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탓에 대동세무고등학교 근처 주택가 골목에 가파른 경사가 있는 편이다.
고려사이버대학교 인촌관은 원서동이지만 사실상 월경지나 다름없다.
3. 주요 명소 및 기관
3.1. 지역명소
-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구 공간 사옥)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83 (원서동)
- 관상감 관천대[4]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75 (원서동)[5]
- 고희동 가옥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5길 40 (원서동)
- 송진우 집터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길 121 (원서동)
- 백홍범 가옥[6]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5길 22-8 (원서동)
- 사도시 터[7]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89 (원서동)
- 훈련도감 북영 터[8]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5길 22-4 (원서동)
3.2. 기관
- 북촌창우극장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길 29-6 (원서동)
- LG 상남도서관[9]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1길 18 (원서동)
- 궁중음식연구원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5길 16 (원서동)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시민센터[10]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길 73 (원서동)
3.3. 공원
3.4. 학교
4. 교통
4.1. 지하철
4.2. 버스
4.3. 도로
5. 출신 인물
6. 관련 문서
[1] 2025년 11월 주민등록인구[2] 한 때 동 주민센터 대수선공사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89 종로구민방위교육장(구 현대문화센터) 지하 2층(원서동)으로 임시 이전했었다.[3] 예전에는 한옥이 많았지만 1990년대 규제 완화 때 헐리고 빌라, 연립주택 등이 지어졌다.[4] 과거 이곳에 있던 조선과 고려의 관상감에서 사용한 일종의 천문대이다. 첨성대와도 유사하다.[5] 구 휘문중학교·휘문고등학교 부지 및 현 현대 계동빌딩 내에 위치[6] 서울특별시 등록문화재이다.[7] 조선 시대 궁궐의 미곡(米穀)을 맡던 관청이었다.[8] 현재는 일제강점기 때 공사를 진행하여 창덕궁 신선원전 권역이 되었다.[9] 옛 구인회 LG 창업주 자택으로, 국내 최초의 전자도서관이다.[10] 과거 한국불교미술박물관 자리이다. 2022년 개관.[11] 원래 휘문중학교·휘문고등학교 부지의 일부로, 현대그룹에서 매입하여 건물을 지으려고 했으나 많은 시민들의 반발 끝에 공원으로 조성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