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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6:13:10

참전용사

1. 개요2. 6·25 참전용사3. 실존 인물4. 대우5. 창작물에서
5.1. 참전용사인 가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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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Veteran

전쟁참가사람을 뜻한다. 전쟁 영웅, PTSD[1]와 관련이 깊다. 대한민국에서는 참전용사라고 하면 대한민국 혹은 대한민국과 연합했던 측의 6.25 전쟁 혹은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2. 6·25 참전용사

파일:용사02.jpg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의 '숨은 참전용사 캠페인'으로, 생존 참전용사 5명과 작고한 참전용사 5명이 확인돼 2022년 처음으로 참전용사회가 결성되었다. #

멕시코 한국전 참전용사회 회장인 로베르토 시에라 바르보사(91)는 전쟁 후 단기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한국을 빨리 보고 싶다고 했다. 바르보사 회장은 이번 방한 길에 6·25전쟁 때 지녔던 무기 단도(短刀)를 가져가 한국에 기증하기로 하고, 이날 서정인 주멕시코 대사에 미리 전달했다.

같은 전쟁에 참여했음에도 국가마다 대우가 다르다. 프랑스 군대의 참전용사들은 최고 훈장을 받았지만 한국 군대의 참전 용사들은 현충원에 안장되지도 못했다. 6·25 참전 노병의 역설(2022년 10월) 영상을 보자.

2023년 7월에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정부의 초청으로 유엔군 참전용사 64명이 한국을 찾았다. 국가보훈부는 감사 만찬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수제화를 제작하여 제공했다.

3. 실존 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분류:6.25 전쟁/군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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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우


뉴욕 양키스의 경우. 7회초 종료 이후에 시행하며, 주로 WW2의 군인이 나오지만 베트남 전쟁 등 주목받지 못한 전쟁의 참전 군인도 초빙받는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 싸운 참전용사라면 그에 합당한 예우와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일부 국가에서는 종전 후 까마득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제대로 된 대우조차 못 받고 있는 참전용사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6.25 전쟁 참전용사들에 대한 복지가 매우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당장 국가보훈처에서도 높은 금액의 배상이나 예우는 고사하고 월마다 고작 몇십만 원의 지원금을 용돈처럼 지불하는 것이 전부이다. 참전용사들이 고령층이다 보니 노후 생활이 충족되지 않아 폐지줍기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하여 국민들로부터 정당한 대우가 필요하다고 비난이 쏟아진다.

대통령까지 나서 직접 거수경례를 하며 국민들로부터 뜨거운 환영과 예우, 국가로부터의 훈장과 배상금을 총족하게 받는 미국과도 국왕조차도 예를 갖추는 영국과도 비교해보면 확실히 열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대한민국의 편에 서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에티오피아에서는 훨씬 더 열악하다 못해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있다. 그들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허름한 낡은 집에서 빗물이 뚝뚝 세는 방에서 겨우 잠을 청하고 지내는 것이 일상이다.

왜 이렇게 된 거냐면 당시 에티오피아 제국입헌 군주국이였지만 황제의 권한이 막강했던 나라였다. 한반도로 파병을 명령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본국으로 귀국한 참전용사들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일레 셀라시에는 에티오피아의 독립을 앞당긴 인물이였지만 정작 자국 내 정치에서는 실정을 거듭했다.

끝내 경제 개발에 실패한 에티오피아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70년대 냉전의 입김이 아프리카에도 불어닥치고 에티오피아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공산화되어 제정이 무너지고 황제도 폐위당하고 만다.

공산주의 정권은 에티오피아군 강뉴부대원들이 6.25 전쟁 당시 같은 진영인 북한중공을 적대시하고 자유진영인 대한민국과 유엔을 도왔다는 이유로 심한 탄압을 벌였다. 다행히 1991년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 참전용사들의 명예는 가까스로 회복됐지만 이미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에티오피아의 경제사정으로 그들은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대한민국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교육과 원조를 통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강원도 춘천에 가면 에티오피아군 참전 기념비와 기념관이 있다. 국군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자.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된 지 10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11년에 최후의 참전용사 프랭크 버클스가 별세하면서 모든 1차대전 참전용사는 전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됐다. 이 전쟁에 참전한 어느 한 병사훗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세계사에 유례없는 최악의 독재자가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전쟁인지라 세계 곳곳에 남아있다. 군인 예우 끝판왕인 미국에서는 그야말로 전설의 영웅 취급을 받는다. 현재 미군 참전용사들도 집안 곳곳에 전리품과 훈장이 쌓여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외 연합국 측 참전용사들은 악의 축인 추축군과 맞서 싸워 더욱 영웅 대접을 받는다. 영국군, 캐나다군, 호주군, 뉴질랜드군, 남아프리카 공화국군, 중화민국 국군, 프랑스군에서도 깍듯이 대접한다.

하지만 추축국이었던 독일일본에서는 대접이 영 달갑지만은 않다. 당장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과 유럽 침공으로 수많은 유럽 국가들이 독일에게 치를 떨고 있으며 독일 연방도 나치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국방군으로 복무했던 장교 및 부사관 출신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법의 심판을 받게 했다.[2]

일본에서는 일부 극우들에게는 환영을 받지만 참전군인들은 전쟁을 매우 혐오한다. 아시아 곳곳을 무참히 짓밟고 식민지를 탄압한 막장 일본군이었지만 참전군인들은 대부분 전쟁하면 치를 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천황의 부름에 강제로 군에 끌려가 온갖 부조리를 겪으며 청춘을 버리고 상식을 벗어난 잔인한 전술과 기행을 일삼으며 그런 만행에 동참해야만 했다. 아베 정권 시절엔 일본의 재무장과 자위대의 군대화를 조장하던 정부에 비판에 목소리를 내는 참전군인들도 있었다.

참전용사들은 처음부터 장성급 장교제독이 아닌 이상, 그러니까 대위 이하의 계급으로 참전했다면 의외로 전역 시 계급이 생각보다 낮다. 참전용사에게는 군공이 존재하는데 군공이 있으면 진급이 엄청 잘 된다.

일례로 오정석 장군은 하나회가 기승을 부릴 당시 소위로 임관했던 육군3사관학교 출신 장교인 데다가 군사특기마저 기갑이라서 금방 전역할 신세였으나 소위로 임관한 지 얼마 안 가 자신이 전차장으로 재직[3]하고 있는 전차를 직접 끌고 가서 북한군 군함을 주포로 쏴서 격침시키는 군공을 세운 덕에 중장까지 진급해 2군단장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제대했다.

하지만 참전용사는 전쟁에 대한 깊은 공포와 전쟁 당시 겪은 큰 고생으로 인해 더 이상 군에 남아있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전쟁이 끝나자마자 제대하거나 설령 군대에 남아있다 하더라도 땡보만 골라 찾아다니는 습관이 생겨 많이 진급하지 않고 제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미군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작전 중 하나였던 둘리틀 공습에서 맨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리처드 E. 콜 당시 중위는 전쟁이 끝난 후에 약 20년간 더 복무하고 중령으로 제대했다. 물론 본인 의사에 따라 전투지원단 같은 땡보만 계속 전전했다.

그러니까 6.25 전쟁에서 대위로 참전했는데 끝까지 군대에 남아있었던 샘 워커가 상당히 희박한 사례이며 샘 워커는 대장으로 제대했다.

다만 그러한 미군도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들은 얘기가 달라진다. 당시의 반전여론과 함께 미군은 각종 논란에 휩싸이게 됐고, 많은 참전용사들이 예우는 커녕 온갖 사회의 멸시와 혐오를 받았으며, 이들이 한국군과 함께 노출된 고엽제는 이들을 끔찍하게 괴롭혔다. 정부는 이 모두를 방관했고,[4] 당시 불안정했던 미국 속의 사회문제까지 겹치게 되어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그 결과 많은 참전용사들이 노숙자가 되는 건 기본에, PTSD와 함께 여러 범죄까지 일으키며 몰락하게 되는 비극이 일어났다.[5]

5. 창작물에서

5.1. 참전용사인 가상 인물




[1] 전투 중(비전투도 마찬가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기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인 고통이 남게 된다.[2] 당연하지만 국방군에서 복무했다고 모조리 유죄 판결을 받은 건 아니고 전쟁범죄가 확실하게 입증된 자들에 한해서다. 오히려 적지 않은 수의 국방군 출신 인사들이 냉전이 시작되면서 새롭게 편성된 서독군동독군에 영입되었다. 국방군에서 영관급 장교로 퇴역했다가 연방군에서 까지 달고 퇴역한 경우도 있다.[3] 기갑 소대장은 전차소대장인데 본인 전차에서는 전차장을 겸한다.[4] 여기에 더해서 1970년대에 들어 미국 경제가 불경기가 되면서 군인 보훈 예산이 줄어들었는데 이걸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그대로 얻어맞았다.[5] 이러한 이미지가 영화화 된 것이 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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