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8-22 01:38:04

하인츠 지크프리트 하이드리히


1. 개요2. 형과는 반대되는 행적3. 사망

1. 개요

파일:하인츠 하이드리히.jpg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장례식에서의 하인츠 하이드리히[1]
하인츠 지크프리트 하이드리히(Heinz Siegfried Heydrich)는 나치 독일의 악명 높은 전범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동생으로 독일 국방군슈츠슈타펠 소속이었다. 친위대에서의 최종계급은 상급돌격지도자[2]였다.

2. 형과는 반대되는 행적

형과 함께 처음엔 하인츠도 나치에 열렬히 찬성했다. 군인용 신문인 디 판처파우스트(Die Panzerfaust)의 편집장이었던 그는 형이 사망한 이후인 1942년 6월 국장을 앞두고 게슈타포 본부에서 생전 라인하르트의 업무 서류를 담은 파일을 보게된다. 하인츠의 아들 페터 토마스 하이드리히의 회고에 따르면 그 다음날 모든 서류를 불태워버렸고 마치 정신이 나간 듯 멍한 상태였다고 한다. 생전 라인하르트가 홀로코스트의 주범이었던 만큼 정황상 친형의 학살행적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그는 신문사에 있는 인쇄기를 이용해서 유대인들의 신분 증명서를 위조하여 그들의 탈출을 도와주거나 유대인들을 수용소에서 빼내어 중립국에 풀어주기도 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최소 2명의 유대인이 하인츠의 도움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3]

3. 사망

1944년 게슈타포가 자신을 조사하려 하자 권총으로 자살했다. 사실 게슈타포는 신문에 쓸 종이 공급에 차질이 생긴 것에 대한 형식적 조사를 진행하려 했을 뿐 하인츠의 행적은 전혀 몰랐다. 다만 이설도 있는데 하인츠의 조카 하이더 하이드리히에 따르면 하인츠는 당시 진행 중이던 부패 및 절도 혐의에 대한 재판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고 주장했다.[4]
[1] 앞 줄 가운데 국방군 군복을 입은 사람이 하인츠 하이드리히이다. 하이드리히 왼쪽에는 친위대 최상급집단지도자 및 질서경찰 상급대장 쿠르트 달루게, 오른쪽은 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 무장친위대 및 질서경찰 대장 카를 헤르만 프랑크가 있다. 하이드리히 뒤쪽에는 아우구스트 아이그루버 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 및 대관구지휘자, 달루게 뒤에는 아우구스트 하이스마이어 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 무장친위대 및 질서경찰 대장, 카를 폰 피셔-트로이엔펠트 당시 친위대 여단지도자 및 무장친위대 소장이 있다.[2] SS Obersturmführer[3] Robert Gerwarth: Reinhard Heydrich. München 2011, S. 349 f.[4] Gerwarth, Robert (2011-11-15). Hitler's Hangman: The Life of Heydr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