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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14:33:18

중립국

1. 개요2. 요건3. 역사
3.1. 태동3.2. 발생3.3. 체계화3.4. 쇠퇴3.5. 냉전과 그 이후
4. 영세중립국5. 일반 중립국6. 논란의 여지가 있는 중립국7. 중립을 철회한 국가

1. 개요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
최인훈의 소설 광장
중립국(, neutral country)은 중립주의를 외교의 방침으로 하는 나라를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쪽 편도 저쪽 편도 들지 않는 국가를 말한다. 보통 개인이나 단체의 중립은 국가 내부의 법률로 지정이 가능하며 국제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중립국이 국제관계에서 대립하고 있는 양대진영의 어느 한편과도 동맹관계에 서지 않고 정치적이나 외교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지켜나가는 중립주의(中立主義, neutralism)와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국가의 전쟁 참가 여부의 의사결정은 개별 국가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므로 중립국 자체는 개별 전쟁 때마다 각각 개별 국가가 선언해야 할 경우가 발생하며 전쟁에 참가한 교전국들이 중립국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봐서 공격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장래의 어떠한 전쟁에서도 중립의 지위를 유지하기로 선언하거나 국제적으로 보장을 받은 국가는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 또는 영구중립국(永久中立國)이라고 한다.

2. 요건

중립은 다른 국가간의 전쟁상태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중립국과 교전국과의 관계는 평화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평상시의 국제법에 따라 규율된다.

중립은 전쟁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형태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중립국과 교전국 간의 법적 관계인 것이다. 이는 아래에 나오는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중립국으로 인정받으려면 교전국의 비위를 거슬리는 행동을 자제해야지 말로만 중립국이라고 해 놓고 맘대로 행동하면 재수없을 경우 교전국 양측 모두에게 합동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립국으로 인정받으려면 외교능력이 아주 좋아야 하며 타국과 동맹조약 또는 상호방위조약 등을 맺을 수도 없어 국제적으로 자신의 편이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없으므로[1] 수준급의 국방능력도 필요하다. 국방능력도 외교능력도 없다면? 가진 거라도 없어야 한다. 탐나는 땅이 아니면 굳이 침략하지도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후술하겠지만 세계대전 급의 대사건이 벌어진다면 강대국들은 필요에 따라 중립국 지위를 무시하고 얼마든지 무력을 동원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2]

3. 역사

3.1. 태동

고대는 물론 중세까지 중립이나 중립국에 관한 관념은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한쪽 편을 들되 전쟁에는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실상의 중립국은 존재했지만 이 경우는 당연히 당면한 주적을 박살낸 후 제2순위로 교전해야 할 상대거나 이미 반 제압상태에 놓여서 무늬만 반대편을 드는 속국화된 국가인 경우가 많으며 전쟁 당시에만 한정적으로 존속했다.

고대 로마에서도 제국민은 로마의 적이 아니면 동맹자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였고 궁극적으로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영속을 전쟁에 의해서 실현하자는 것이었으므로 거기에 중립주의가 존재할 여지는 없다. 로마의 사정에 의해 잠시 정전을 맺거나 협약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게 영속된다고 보긴 어렵고 나중에 로마가 힘을 회복하면 협력하지 않은 죄를 물어서 침공당하기 일쑤였다.

중세 유럽은 교회 사회였으므로 이교도에 대한 기독교 국가의 전쟁에서 중립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건 당장 십자군 전쟁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기독교 국가들과 싸우던 이슬람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중세의 봉건제도 아래에서 각국은 지방적이고 봉쇄적인 자연경제를 기반으로 고립된 생존을 영위하고 있었으므로 아주 큰 전쟁이 아니라면 제3국의 경제적 문제나 사회적 이해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동양도 마찬가지라서 중국조공을 하면 우리 편이고 안 하면 (원칙적으로는) 적국이지 중간 단계 따위는 없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조공국이 중국을 안 돕는 경우가 있지만 이럴 경우 나름대로 중국이 납득할만한 사유를 만들어내야 하며 나중에 중국이 힘을 회복하면 공격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지라 주로 중국 내부의 국가가 교체되는 교체기에만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상당 기간 동안 중립이나 중립국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은 이유는 본질적으로 중립이란 "적의 편이 아니다"보다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더 강력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교전국이나 상대방 입장에서는 잘 해봐야 당면한 적을 처리한 다음 순서로 제거해야 할 의심스러운 녀석 정도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3.2. 발생

그러다가 16세기의 절대왕정 국가들이 국제적인 상업활동을 통하여 국가의 부와 권력을 축적하면서부터 전쟁 중에 중립국의 이익과 교전국의 필요를 조화시켜야 할 중립제도의 조건이 마련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네덜란드 등 해양국가들이 교전국에 의한 제한조치에 반발하고 중립국의 교전국과의 정상적인 무역거래를 주장하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의 유럽 특성상 전쟁이 잦아지고 어떤 한 국가가 거대한 주도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군웅할거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립이 뭐냐, 적인지 아군인지 확실히 해라" 식으로 다짜고짜 적대했다가는 전쟁에 별 관심이 없던 다른 나라들까지 이런 폭거를 빌미로 전쟁에 가세할 위험이 있었으므로 이를 인정해주었다. 즉, 각각의 개별적인 전쟁에 따라서 중립국이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8세기 말엽에는 중립국의 상업활동에 관한 국제법규의 내용이 성립되기 시작하였으며 1780년1800년의 무장중립(武裝中立)을 거쳐 1856년 파리조약에서는 중립국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반영하는 동시에 국제상거래의 안전을 보장하는 전시 중립법규의 골격이 마련되었다.

3.3. 체계화

그러나 교전국의 중립국에 대한 의무는 전시(戰時)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새로운 의무가 아니고 평시(平時)에 지켜야 할 의무를 그대로 유지함에 불과한데 중립국이 교전국에 대하여 지는 의무에는 다른 나라들의 전쟁 때문에 부과되는 특별한 의무로서의 성질이 있었다. 즉, 중립국이 짊어지는 의무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체계화가 필요했으므로 1899년 및 1907년 헤이그 평화회의의 결과로 탄생한 많은 육전이나 해전법규와 함께 1909년 런던 선언은 중립법규를 체계적으로 완성시킨 국제적인 문서라고 보면 된다.

일단 중립국의 교전국에 대한 의무는 교전국 양쪽에 대한 공평함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저렇게 복잡한 규정을 다 준수하면 중립국이 제대로 정치적, 경제적인 활동을 하기 어렵다. 당장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물자란 것이 과연 현실에 존재하는지만 생각해도 답이 딱 나온다. 그래서 밀무역 같은 것이 성행한다.

3.4. 쇠퇴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후부터 중립이나 중립국은 점차 국제관계에서 중요성을 잃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각각의 전쟁에서 중립을 선언한 국가인 일시적인 중립국은 국제적으로는 별로 인정도 받지 못하며 영세중립국에 한해서만 중립국이라고 보는 시각이 정립되었다. 영세중립국이라도 교전국의 한쪽 당사자가 껄끄럽게 생각하면 중립국이라고 판단하지 않고 적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는 각종 분쟁 시 중립국의 기자 등이 취재하러 들어가면 그리 좋지 못한 대접을 받고 추방되거나 교전에 휘말려 납치당하거나 살해되는 등의 사례등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3.5. 냉전과 그 이후

2차대전 전후에 펼쳐진 냉전 시기에는 중립국이 꽤 많았다. 이는 냉전이 실제 전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차가운 전쟁', 즉 평시 대치 상태였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일촉즉발 상황에서는 "적 아니면 아군"을 정해야 할 필요성이 크지만, 평시의 국제정세에서는 언제는 편을 들다가 언제는 외면하는 등 운신의 폭이 훨씬 자유롭다.[3] 냉전 시기에는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느 쪽과도 동맹을 안 맺으며 그 두 진영 사이에서 중도적, 중립적인 입장을 택한 국가 블록이 제3세계이다.[4] 다만 이들은 확고한 한쪽 편이 아니었다는 의미에서 제3세계인 것이지, 엄밀한 중립을 지킨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들의 스탠스는 "도와주는 쪽 우리편"에 가까웠다.[5] 또한 제3세계란 개별 국가가 아니라 집단이었으므로 제3세계 국가끼리는 내부 동맹이 활발했다.

냉전이 끝나면서 이러한 종류의 중립국도 큰 의미는 없어졌다. 실제로 대표적인 중립국인 스위스는 이 시기에 중립국 정책에 상당한 회의를 가졌고, 유엔이나 유럽연합에도 가입하여 엄밀한 의미에서는 중립국이 아니게 되었다.

201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냉전에서는 냉전 시기와 유사하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중립국 역할을 하는 국가들이 다시금 등장했다. 싱가포르가 이 시기 미중 패권 경쟁을 기반으로 중립국으로 부각된 국가이다. 신냉전 시기의 진영은 이념을 기준으로 하던 냉전 시기보다도 더욱 모호해서 이합집산이 매우 쉬워졌고, 중립이란 개념도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는 개념이 되었다.[6]

4. 영세중립국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이란 조약에 의하여 자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구히 타국가간의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는 한편 타국가에 의하여 자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이 보장된 국가를 말한다.

원칙적으로 이러한 조약상의 보장이 없으면 영구중립국이 될 수 없으나 오스트리아처럼 영구중립을 희망하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영구중립을 선언하고 타국이 이것을 승인함으로써 개별적으로 성립된 2개국간의 합의가 다수 집적되어 조약의 체결과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는 수도 있다. 영구중립의 제도는 그 국가의 안전과 독립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것을 완충국으로 하여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세력균형이 국제관계의 기초를 이루고 있었던 시대에는 존재 의의가 컸으며이걸 이용해서 강대국 간의 협의가 중립국에서 이루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국지적인 전쟁도 각국의 이해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세계 대전처럼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거대한 전쟁이 발발한 사례가 생기고 대량살상무기들과 핵전쟁의 출현 등 전쟁 기술이 극도로 발달함에 이르러서는 이 제도의 존재 의의도 전술한 대로 크게 감소되었다.

21세기 이전에 영세중립국의 중요한 실제 예시로서는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영세중립국임을 주장하는 나라는 안도라, 모나코, 몰타, 스위스,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7], 투르크메니스탄 등 7개국이다.

4.1. 스위스리히텐슈타인

파일:스위스 영세 중립.jpg

[8]

스위스는 중립국의 상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중립의 수준과 역사가 타 국가들에 비해 매우 긴 편이며, 1815년 이래 항상 중립을 유지하려고 대단히 노력해 왔다. 다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은밀히 협력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중립국으로서의 가치가 크게 훼손된 바 있다. 또한 6.25 전쟁때 한국에 물자지원도 해준 사례가 있다. 국제연맹에는 조건부로 가입하였고 국제연합에는 영세중립국의 지위와 양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가입하지 않았다가 2002년 3월 3일 유엔 가입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 유엔 가입이 통과됨에 따라 2002년 9월 10일 190번째 회원국으로 UN에 가입하였다. 이에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영세중립국은 2002년 9월 10일부로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즉, 스위스도 더이상 온전한 영세중립국은 아니며 UN 결의에 따라 행동할 의무가 정해졌다. 스위스는 UN 가입 이전에도 중립 여부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2차 대전 전후 마셜 플랜으로 원조를 받은 것이었다. 심지어 당시 스위스는 2차 대전 참전국도 아니었다.

다만 스위스가 UN 회원국이 아니던 시절에도 UN의 하위 조직 상당수는 제네바에 설치되었다. 이는 중립국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면도 있지만 과거 국제연맹 본부가 제네바에 설치됐던 영향이 더 크다. 국제연맹 본부 건물은 그대로 UN 유럽 사무국이 됐고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노동기구 등 산하 조직들 대다수를 UN이 계승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립국으로서의 금기를 깨고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우크라이나군에 원조를 제공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다. 자세한 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반응/우크라이나 지지/유럽 문서 참조. ‘이로서 스위스는 완전히 중립국이 아니게 되었다’는 의견과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중립국으로서 비판했다’는 의견이 양립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한 쪽의 편을 공개적으로 들어준다는 이례적 선택을 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향후 스위스의 중립국 지위에 대한 재정의 논의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스위스는 1950년 6.25 전쟁에서도 중립국임에도 대한민국을 지원한 적이 있었지만 중립국 지위에 문제가 되지 않았듯이 우크라이나 지원도 중립국으로서의 인도적 지원 정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한편 스위스는 자국 동쪽의 소국인 리히텐슈타인의 외교권을 행사하고 있어 리히텐슈타인에 한해서만은 중립적이라고 볼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가장 강하게 밀접되어 있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의 규모나 영향력이 미미하기도 하고[9] 스위스가 리히텐슈타인을 통해서 제3국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않기 때문에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간의 특수한 관계는 스위스의 중립성을 거론할 때 일반적으로 무시된다.

4.2.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는 1955년 10월 26일에 국내법으로 영세중립이 일방적으로 선언되고 이에 대하여 미국이나 소련 등 강대국들이 부여한 개별적 승인의 집적으로 영세중립이 성립되었다. 이러한 형식으로 영세중립이 성립된 것은 오스트리아가 역사상 처음이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가 완충국으로서의 위치를 획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스트리아는 스위스와는 달리 UN에도 일찍 가입하였다. 영세중립국이 UN 회원국의 의무와 양립하지 않는다는 샌프란시스코 회의 당시의 해석이 그 후에 변경되어 UN 헌장에의 중립이 재평가됨으로써 오스트리아의 UN 가입이 가능해졌다.

다만 오스트리아는 1995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후 중립성을 의심받았다. 2017년 출범한 항구적 안보협력체제(PESCO)에 가담한 후에는 중립국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더욱 커졌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게 제재를 가하는 등 현재의 오스트리아를 중립국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이 상태로 유럽군이 창설된다면 오스트리아는 논쟁의 여지조차 없이 중립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현재까지 NATO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같은 중립국이었던 스웨덴핀란드가 2020년대 NATO 가입에 성공했고 주변국인 독일체코, 그리고 한때 한 나라로 있었던 헝가리 등도 가입했지만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을 이유로 NATO 가입에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4.3. 바티칸몰타모나코

1929년 이탈리아 왕국과의 라테라노 조약에 의하여 형식상 영세중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바티칸의 영세중립국 위치는 기독교를 신봉하는 국가나 국교가 없는 국가 정도에 한하며 이슬람, 불교, 힌두교 같이 다른 종교를 믿는 국가에서는 잘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바티칸은 교황이 다스리는 종교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세중립국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미묘하다.

그나마 21세기에는 옛 교황령과 달리 지금은 그냥 성당 몇 개짜리의 세계 최소국가이자 유럽 통합이 추진 중이라 앞으로도 별 탈은 없을 듯 하다.

중립국이기는 하지만 현재 중국북한 등 공산권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특히 북한6.25 전쟁 당시 한국의 가톨릭 신부, 수녀와 신자들을 대거 납북했던 전적이 있고 가톨릭을 적대 종교 1순위로 지정하여 한국의 성당과 성지를 파괴한 전적도 있어서 국제 가톨릭계와도 원수에 가까우며 기독교, 불교 등도 종교로 인정하지 않는다. 중화권 중에서는 얼마 안 되는 대만(중화민국)의 단독 수교국이자 대만 정부를 인정한 국가다.

몰타와 모나코와 달리 중국과 미수교 상태이며 대만과의 단독 수교국이지만 미중갈등에서는 중립을 지향하고 있다.

4.4. 투르크메니스탄

독립 직후에 영세중립을 모색해 왔고 1995년에 UN회원국 만장일치로 영세중립국으로 승인되었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주도하는 구 소련권 국제기구에도 정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지 않으며 독립국가연합(CIS)도 정회원국이 아닌 준회원국이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친러 국가다.

5. 일반 중립국

5.1. 인도

인도는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 냉전 시대에도 미국이나 소련 어느 편도 들지 않는 비동맹중립국임을 표방하였다. 6.25 전쟁 당시에도 유엔군과 공산군 양측을 동시에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하지만 히말라야산맥을 사이에 둔 주변국인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였고 파키스탄과 앙숙지간으로 있는 등 중립국이면서 일부 주변국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특히 파키스탄과는 카슈미르를 두고 힌두교와 이슬람의 갈등 뿐 아니라 국경 분쟁과 전면전까지 벌였다.

2020년 이후 미중갈등에서는 중국을 견제하는 Quad 4개국(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멤버로 참여하고 있어서 중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고 있으며 이 때문에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반대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군사, 경제 등 방면에서 교류하고 있기 때문에 NATO만큼 확고하게 친미 진영에 가담했다고 보기는 힘들며 중국,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 협력기구의 정회원국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인도는 중립 의사를 나타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 결의안도 기권했으며 대러 제재 참여도 거부했다. 다만 러시아의 부차 학살은 규탄하는 스탠스를 취하기도 했다.

요컨데 인도의 중립국 표방이란 공산진영과 자본진영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제3세계로서의 표방일 뿐 모든 종류의 분쟁에서 중립의 자세를 취한다는 뜻까지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 인도 정도 되는 강대국은 양강 세력 구도에 편입되지 않고 자기 세력을 만드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외교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한쪽에 끼기 싫으면 중립을 표방하고 그렇지 않고 어느 쪽에 완전히 편을 드는 게 이득이면 끼는 식이다.[10] 즉, 인도로서는 애당초 모든 방면에서 중립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11]

5.2. 싱가포르

국제적으로 영세중립국으로 공인받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신냉전 및 아시아 국제 정세에서 중립국으로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싱가포르외교 노선친미, 친영 노선이지만 중화권 국가라는 특성을 이용해 중국과도 발을 걸치고 있다.[12] 특히 오늘날 반서방-서방신냉전 구도에서는 반서방의 주축인 중국과 연이 있다는 점이 이점이며 아시아 국가이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간 문제를 중재하는 데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반서방 국가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독재 권위주의 국가에 딱히 정치적 압력을 넣지 않는다는 점도 외교적 이점 중 하나다.

그래서 스위스처럼 수많은 국제기구아시아 지부를 휩쓸었다. 양안관계, 중일관계, 남북관계, 러일관계 등을 중재한 적이 있다. 한국중국대립 구도, 인도파키스탄대립 구도, 중동 대 대립 관계들을 중재하는 포지션을 갖고 있다.

리셴룽 총리는 직접 중립국 노선을 위한 수준의 자국의 군사력을 확보하고 외교 무대에서는 싱가포르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러 분쟁 국가들의 중재를 시도하겠다는 독트린을 내세웠다. 리셴룽의 중립국 독트린이 명시적으로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마잉주 - 시진핑 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 김정은 정상회담(2018년 북미정상회담) 등 외교 관계가 첨예한 국가들의 중재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위치 때문에 나타나는 재미있는 현상으로, 타국에서 제재를 받는 중인 후진국 독재자들이 의료를 위하여 많이 찾는다. 치안이 우수하여 암살 위협이 낮고 후진국인 자국에서 하지 못하는 고난도의 처치나 수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5.3. 오만

이슬람 세계의 수니파-시아파 갈등 속에서 중립국 역할을 한다. 이슬람 양대 종파인 수니파, 시아파에 속해 있지 않고 소수종파인 이바디파에 속해 있다 보니 둘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한다. 그래서 일명 '중동의 스위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다만 이는 이슬람 세계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냉전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친서방 국가다.

5.4. 아일랜드

아일랜드는 20세기까지 영국의 오랜 지배를 받아온 영향으로 반영(反英)감정이 강하고 독립운동을 꾀하면서 영국과 맞서왔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영국의 정적인 나치 독일을 지지할 것으로 보였으나 그렇다고 자신들을 괴롭혀 왔던 영국 편을 들기에도 애매하여서 중립을 유지했으며 UN에도 1955년에 가입했다. 현재까지 NATO에도 중립을 이유로 가입하지 않았고 EU에는 회원국으로 있다.

중립국이라고는 하지만 과거사 문제와 북아일랜드 문제 등으로 영국과 갈등을 빚은 적도 있고 냉전 시절에도 영국과의 감정도 그렇지만 공산권 편을 들기도 애매한 위치라 중립을 유지했다.

6. 논란의 여지가 있는 중립국

6.1. 스페인

제2차 세계 대전까지는 중립국을 표방했다. 실질적으로 당시 지도자였던 프란시스코 프랑코스페인 내전에서 독일의 지원을 상당히 받았고 파시즘 독재정권을 수립했다. 프랑코는 사실상 아돌프 히틀러를 지지하며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 1개 사단 규모의 스페인군 병력을 의용군으로 위장하여 동부전선에 파병했고 스페인의 항구도시들을 대서양에서 작전하는 U보트들의 중계 및 보급기지로 제공했으며 독일이 필요로 하는 일부 전략물자를 조달하는 등 독일의 전쟁수행을 간접적으로 도운 정황들이 많았다.

연합국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고 스페인까지 추축국으로 간주하여 같이 공격할지 논의할 정도였지만 직접적인 무력집행 대신 경제 및 외교적으로 철저히 고립시키는 것으로 대응했고 이 방침은 1950년대 후반까지 유지했다. 그래서 전후 미국이 추진한 마셜 플랜에서 스페인은 수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프랑코가 사망한 후 1975년 왕국으로 환원된 스페인은 민주화가 되면서 친서방으로 전향했으며 나토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등 중립을 철회했다.

6.2. 포르투갈

살라자르독재체제도 동시기 이웃나라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과 같은 행보를 보였으며 살리자르는 이탈리아무솔리니파시즘을 모방하며 독재노선을 걸어 왔다.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무솔리니식을 표방한 독재정권은 중립노선을 표방해서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2차대전 당시 연합국에 아소르스 제도의 항만과 공항을 사용할 수 있게 허가하는 등 간접적으로 협력했는데 그 점을 참작하여 전후 미국의 마셜 플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6.3. 모로코

공식적으로는 중립국, 비동맹 외교를 표방하지만 동쪽의 반미, 반불 성향을 가지고 있는 알제리와 대립하다 보니[13] 친미, 친불 성향이기도 하다.[14] 모로코는 미국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바로 이듬해인 1777년에 '모로코-미국 친선 조약' 을 체결하여 미국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정한 나라다.

그래서 대체적으로는 친미 국가로 분류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중이나 반러 성향인 것은 아니고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으며 무기도 도입하고 있다. 다만 국민감정에 있어서는 중국과 러시아보다 미국을 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7. 중립을 철회한 국가


[1] 이에 관련해서 니콜로 마키아벨리군주론에서 중립보다 확실한 동맹이 낫다고 저술했다.[2] 과거 대한제국청일전쟁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중립을 표방하였지만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 모두 이를 인정하지 않아 한반도 자체가 남의 나라 전쟁에 전쟁터가 된 역사가 있다. 자세한 건 저 세 항목 참조.[3] 만약에 제1세계와 제2세계 사이의 세계대전이 발생했다면 이런 회색지대는 단숨에 크게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1990년대 냉전은 소련 붕괴동구권 혁명의 형태로 평화롭게 끝났다.[4] 맨 위에 서술된 소설인 광장의 어느 쪽으로 가겠냐고 물어봤을 때 중립국이라고 대답한 장면의 중립국이 바로 자유진영도 공산진영도 아닌 제3세계 국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5] 남북한 아프리카 외교전도 그러한 맥락에서 펼쳐진 사건이다. 문서에서도 다루듯 전반적으로 제2세계가 좀 더 제3세계와 밀접하긴 했다. 제3세계 국가 중에선 제1세계 식민지 출신이 많았기 때문이다.[6] 그래서 대한민국 역시 냉전 시기라면 꿈도 못 꿨겠지만 신냉전 시기에는 미중 사이에서 중립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의가 나오곤 한다. 다만 냉전 식의 대립을 북한과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한반도 정세상 여전히 쉽진 않다.[7] 이쪽은 외교권을 스위스에 위임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8] 위부터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냉전, 탈냉전. 맨 밑에 탈냉전 모습 때는 스위스가 웃고 있다.[9] 한국 성남시 면적에 인구는 3만 8천 명밖에 안 된다.[10] 사실 근세 유럽에서 각 전쟁에 대해 유럽 각국이 중립을 선언했던 것도 이런 식이다. 전술한 대로 당시 유럽은 여러 비등비등한 세력이 대립 중이었으므로 어느 정도 규모의 세력이 중립을 표방하면 전쟁 당사자들도 괜히 적을 늘리기 싫으니 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11] 반면 약소국으로서 국제 질서에 의해 중립을 보장받은 중립국은 되도록 모든 방면에서 중립이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강대국으로부터 "왜 전에는 누구 편 들더니 지금은 중립 운운하냐" 식의 이중잣대 시비를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12] 싱가포르에는 미군이 주둔 중이지만 싱가포르군은 중국 인민해방군과도 합동 군사 훈련을 한다(...)[13] 다만 알제리는 완전한 반미 국가는 아니며 민주화 이후로는 미국과도 어느 정도 잘 지내려고 하고 있다.[14] 모로코는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론 갈등을 빚고 있으나 현재 모로코에선 프랑스어가 영어보다 상용화되어 있으며 대학교 수업 등지에서는 프랑스어와 아랍어를 혼용한다.[15] 다만 독일이 노르웨이 침공을 개시하는데도 철을 열심히 팔아먹은 데다 계속전쟁이 발발하자 독일이 핀란드를 지원하려고 할 때 길을 열어주는 등 독일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점령당한 상태에서 해상봉쇄를 뚫고 영국이나 다른 서방국가와 무역하기도 어려운데 독일과 협력하지 않으면 무역로가 사실상 끊길 판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나마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유대인을 포함한 피난민들을 받아서 나치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기는 했다.[16] 추축국은 계속 튀르키예가 참전하기를 바랬지만 케말이 생전에 누누이 히틀러는 미친놈이며 손잡아선 안된다고 경고한 덕인지 계속 추축국에 가담하지 않았다.[17] 핀란드는 추축국에 협력하기는 했지만 추축국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