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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소설)


최인훈의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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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줄거리3. 등장인물4. 분석5. 실제6. 패러디

1. 개요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본작의 첫 문장

소설가 최인훈이 집필한 중편 소설로, 최인훈 필생의 역작이다.

해방 직후에서 6.25 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남북한의 이념 대립과 그 사이에서 파멸해가는 '이명준'이라는 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남북한 통일론에 대한 논의가 일시적으로 자유로워지면서 쓰여진 남북한 이념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한 최초의 소설로 꼽힌다. 이 당시의 시대상은 전세계적으로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들이 많아 나세르의 이집트,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자와할랄 네루의 인도처럼 제3세계의 맹주를 자처한 국가들이 외교적으로 큰 힘을 발휘했고 같이 중립국을 자처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경제력으로 매우 잘 살았다는 사실도 동시에 주목받았다.[1] 독립과 함께 이념갈등으로 분단과 전쟁으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엄청난 수의 이산가족이 발생하는 등의 풍파와 더해서 전후 재건도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이라서 북한과 일본은 잘만 성장하는데[2] 우리는 이게 뭐냐면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매우 강했던지라 차라리 중립국으로 독립했으면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강대국들도 무시하지 못하는 강력한 국력을 지니고 있었으리라는 지론이 큰 호응을 얻었을 때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중복 출제(1994년 1차/2006년)된 네 개의 소설[3] 중 하나라는 것에서 이 소설이 한국 문학계에서 얼마나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수능이나 모의고사에도 자주 출제되고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4], EBS 연계 교재[5]에도 수록되기도 해서 고등학생들에게도 익숙한 작품이다.

2. 줄거리

작중의 시간은 타고르[6]호에서의 이틀뿐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명준의 회상이다.

남한의 대학생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수난을 당하고 밀실은 넘치나 '광장'이 없는 현실에 좌절하다가 결국 연인 윤애를 남겨둔 채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 또한 표현의 자유가 극히 제한받는 각종 집단주의를 위한 광장은 있으나 개인의 '밀실'이 없는 곳이었다. 명준은 월북한 아버지[7]의 힘으로 전공을 살려 처음에는 노동신문에 들어갔는데 이러한 면들에 실망하고[8] 일부러 건설 현장으로 나간다. 노가다 일을 하다가 사고로 부상당해 입원했는데 거기에서 간호 봉사를 온 발레리나 은혜를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도피하듯 새 연인 은혜와 인연을 맺는다. 그러던 중 6.25 전쟁이 벌어지고 공산군 고위 장교로 참전한 명준은 친구 태식을 고문하고 친구 태식의 아내가 된 윤애를 강간하고 '악마도 되지 못한' 자신을 비웃는다. 강간하는 악몽꾼다.[9]
윤애 날 믿어줘, 알몸으로 날 믿어줘
낙동강 전선에서 명준은 간호장교로 투입된 은혜를 다시 만난다. 그곳의 한 동굴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던 중 은혜는 명준의 가진 것 같다는 말을 하지만 얼마 안 가 폭격에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후 포로가 된 명준은[10]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 행을 선택하게 된다. 남, 북에 모두 실망한 탓도 있었고 남한으로 가 봐야 빨갱이 취급받으며 계속해서 괴롭힘 당할 게 뻔하고 북한으로 가 봐야 남로당계인 아버지는 숙청당할 것이라[11] 명준 자신도 무사할 수 없었다.

명준은 중립국으로 지정된 인도로 향하는 타고르 호에 오른다. 그러나 중립국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찾지 못할 것을 갈등하던 명준은 처음 감시자로 여기며 총으로 쏴 버리려고 했던 갑판 위 두 갈매기[12]의 모습에서 은혜와 자신의 딸을 떠올리며 마지막 자유의 공간인 푸른 광장으로 뛰어든다. 결국 명준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빨갱이도 반동분자도 없는 곳자신의 손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튿날.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한 사람의 손님을 잃어버린 채 물체처럼 빼곡히 들어찬 남중국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 간다.
흰 바다새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마스트에도, 그 언저리 바다에도.
아마, 마카오에서, 다른 데로 가버린 모양이다.

3. 등장인물

4. 분석

사실 마지막에 명준은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고 봐야겠지만 그가 찾은 마지막 자유가 현실화될 수 없는 이상으로 멈춰 버린 것은 결국 명준이 시대의 희생양으로 남았다고 볼 수 있는 증거이다.

성애 묘사가 의외로 빈번히 나오는데, '인간애'를 나타내고자 하는 수단이다. 한편으로 소설을 읽다 보면 한국어스러운 표현을 쓰기 위해 통찰하고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수정을 거치면서 나타난 변화 중 하나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라는 첫 구절이 굉장히 유명하다. 처음부터 있었던 문장은 아니고 작가의 연이은 개정으로 인해 만들어진 멋들어진 문장이다. 초판 문장은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이면서 숨쉬고 있었다." 이다.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으로, 10여 차례 이상 수정되었는데 부분 표준어로의 수정,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로의 수정이 많으나[37] 이런 어휘 수정뿐만 아니라 내용상의 수정도 꽤 있었다. 1960년 새벽지에 처음 연재되었던 판본에서는 그 유명한 "중립국"에 대한 8페이지에 걸친 이야기가 없이 그냥 중립국으로 가는 걸로 나와서 중립국에 가는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지만 1961년 정향사에서 출판될 때는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에피소드가 삽입된다. 내용과 주제도 많이 바뀌는데 가령 갈매기 알레고리가 원래는 윤애와 은혜였지만 1973년 민음사본에서는 은혜와 그 딸로 바뀐다. 이로서 광장은 전쟁 속에서 피어난 모성애와 자녀 모티프를 통해 생명 지향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다다를 수 있었으며, 현실을 넘나드는 갈매기 역시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하늘새’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교환관계에 기반한 부성적 원리의 파국을 보여주던 광장은 증여관계에 기반한 모성적 원리를 지향하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이처럼 ‘광장’과 ‘밀실’의 이항대립 대신 ‘생명’을 추구하는 것은 ‘광장’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 생명의 풍요로움을 불어넣는 작업이다.[출처]

위즈키즈라는 어린이, 청소년용 잡지의 인터뷰에서 소설의 마지막을 자살로 선택한 이유는 자살이 가장 임팩트있는 결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작가가 직접 설명했다. 이 때문에 수정본을 제작할 때도 이 부분은 수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메시아'가 왔다는 이천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39]
이게 광장이 최초로 공개된 새벽 지에 실렸던 1960년 11월의 서문이다. 당시 사회는 4.19 혁명으로 들뜬 상태였으며 광장은 이런 민감한 주제가 자유롭게 이야기될 수 있던 굉장히 아슬아슬한 시대에 나온 작품이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이승만 정부검열당했을 테고 조금만 더 늦었으면 박정희 정부에 검열당했을 테니. 광장의 최초의 출판본인 정향사본 역시 1961년에 출간되긴 했으나 5.16 군사정변 전인 2월에 출간되었다. 검열 때문에 내용이 바뀌었다는 유언비어도 있으나 한마디로 검열 때문에 결말이 바뀌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되는 정본을 기준으로 같은 작가의 소설 구운몽과 한 책으로 묶어 파는 편이다. 표지를 그린 이는 소설가 김승옥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18년 7월 기준으로 통쇄 205쇄를 돌파했다고 한다.

5. 실제

당시 제3국행을 선택한 양측 포로는 인민군 74명, 국군 2명[40], 중공군 12명으로 총 88명이었다고 한다. 포로 송환을 담당한 인도에서 제3국을 선택한 88명을 모두 일단 자국으로 데려갔다.

이 작품의 영향으로 포로들이 중립국을 선택했다고 오인되지만 실제로 포로들이 원한 것은 중립국이 아니라 제3국행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다수(40~45명 가량)는 미국행을 원했다. 포로들 중 반절은 반공/친대한민국 성향이었지만 북한 출신이라 연고가 없는 남한에 굳이 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지 이념이 중립이 아니었다. 후술할 현동화 회장의 인터뷰에서도 나오지만 소설 광장과 달리 포로들은 이념보다는 각자의 이유로 제3국행을 원한 것이였다.

스위스, 스웨덴 같은 진짜 중립국들은 시작과 동시에 포로 안 받겠다고 공개 선언했기 때문에 중립국으로 갈 수 없었다. 중립국인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지만 포로들은 공산주의를 워낙 혐오하여 부모가 있는 북한을 버리고 온 사람들이라 유고행은 논외.

이에 인도는 크게 당황하고 전세계 국가들에게 포로를 받아 달라고 했지만 그 어느 나라도 답이 없었다. 멕시코에서 받는다고 했다가 안 받는다고 했다가 몇 년간 수 차례 말을 뒤집으며 낚시질한 것뿐이다. 포로들이 가장 원한 미국도 처음부터 포로들을 안 받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지치고 피곤한 포로 26명은 인도 잔류를 선택했으며 제3국행이 좌절되자 인도에서 북한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어 6명은 북한행을 선택했다.# 다만 남한만은 본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도에서 보내주지 않았다.

그러다 브라질에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몽땅 받아주겠다고 하였고 며칠 후에는 브라질의 경쟁국 아르헨티나도 15명까지 받아준다고 하여 다들 남미로 가게 되었다.[41] 이미 인도에 터잡고 살고 있던 포로들마저 거의 대부분이 남미행을 선택하여 다함께 1956년 초 남미로 떠났다. 이들이 남미행을 원한 것은 미국에 더 가깝기 때문이었고 멕시코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좌절되자 몇 명은 인도에 남았다.

결국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76인의 포로 중 48명은 브라질, 11명은 아르헨티나, 6명은 인도에 잔류했다. 여기에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 6명에 한국으로 간 사람 5명이 추가된다. 중립국으로는 아무도 안 갔다. 최초 정착지가 이렇다는 거지 이후 소원대로 미국으로 가는 데 성공한 사람도 있고 남북한으로 간 사람도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은 현동화(1932~2021)로 인민군 중위였으나 국군에 투항한 후 3국행을 선택하여 인도로 가 양계장과 가발공장 사업으로 대박을 쳤으며 주 뉴델리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직원으로 잠시 근무하기도 하고 재인도한인회 회장 및 고문을 역임할 만큼 활동을 활발히 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기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이념 대립에 환멸을 느낀 게 아니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이 출발하려는 경제적, 학문적 욕구가 더 컸다고 한다. 최인훈 소설 '광장' 주인공 모델 현동화 전 재인도한인회장 별세 2021년에 사망하였다.

중립국을 선택한 포로들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주영복의 <내가 겪은 조선전쟁>, <76인의 포로들>을 추천한다. 인민군 공병부 소좌 출신 주영복은 남미행을 선택한 포로들의 리더였으며 본인은 브라질로 갔는데 이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그와 함께 브라질에 간 사람은 56명[42]이며 이후 주영복은 포한사전을 만들어 현재까지도 포르투갈어를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6. 패러디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
문학교과서에 자주 수록된 명준이 각기 북한 귀환과 남한 잔류를 설득당하는 장면[43]소설 광장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남한과 북한 측 설득자가 무슨 소리를 해도 중립국. 4달라 드립이 성행하기 이전에는 비슷한 상황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이 부분만은 비교적 패러디하기 쉬워서 허생전, 방망이 깎던 노인, 운수 좋은 날 등과 함께 패러디 재료로 자주 활용된다.

주인공 영준이 향한 인도 공화국은 자본주의 체제가 맞긴 하지만 엄밀하게는 모든 중립국자본주의였던 것은 아니다. 냉전 시대 제3세계[44]의 실질적 맹주 역할을 했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나 소련미국 어느 쪽이든 적으로 보고 완전히 국가를 폐쇄한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등 중립국 중에도 공산주의 국가는 있었다.

A와 B라는 선택지 중에서 아무것도 고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난죽택과 유사하다.


[1] 사실 당시에도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나 1인당 국민소득 3천달러에 도달한 미국보다는 소득 수준이 뒤떨어지던 수준이었지만(스위스는 1700달러, 오스트리아는 930달러대) 한국보다는 훨씬 잘살았다.[2] 일본은 6.25 전쟁 특수를 맞은 후로는 호황기를 맞아 연 평균 8%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전자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고 북한도 전후재건이 착실히 이루어져서 1960년 기준으로 1인당 GNP가 137달러로 남한의 79달러에 비해 훨씬 높았다. 물론 북한도 절대적으로 잘 산 것은 아니고 평범한 개도국이었지만 당시 남한 사람 입장에서 북한이 부러우면서도 배아픈 시절이기도 했다. 일본과 대만도 마찬가지였다.[3] 다른 세 작품은 염상섭삼대(1994년 1차/1999년), 이문구관촌수필(2003학년도/2010학년도/2018학년도), 박태원의 천변풍경(2013학년도/2019학년도)[4] 미래엔과 비상교육의 문학 교과서 등에 주인공인 명준이 중립국을 선택하는 과정이 수록되어 있다.[5] 2022학년도 수능특강 문학 174-175쪽에 수록되었다.[6] 배 이름마저 중립국의 시인 이름이다. 즉, 명준은 타고르 호를 타고 타고르의 나라(중립국인 인도)로 가고 싶은 것이다.[7] 권력층이 되어 명준 또래의 새파랗게 젊은 아내를 맞아들여 부르주아처럼 살고 있었다.[8] 북한에선 기사 하나를 쓸 때도 온갖 언론탄압과 지배층의 입맛에 맞는 조작과 왜곡질을 엄청나게 해야 했기 때문에 자기 신념과 해석대로 기사를 쓰던 명준은 결국 위의 압력을 받았다. 이에 크게 실망한 명준은 아버지에게 이를 비판하지만 아버지도 이렇다 할 반응을 내비치지 않자 더욱 실망한다.[9] 2010년에 나온 개정7판에서 실제로 윤애를 강간하고 태식을 고문하는 부분이 명준의 악몽으로 아예 대체되었다. 깨어난 뒤에 꿈이어서 다행스러울 만큼 끔찍한 악몽이었고 태식과 윤애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도 현실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언급한다.[10] 포로 수용소에 갇혔을 때 북한의 소식을 들은 병사가 박헌영이 체포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11] 체포당했다는 박헌영이 남로당계 인사였기 때문에 같은 남로당인 그의 아버지 역시 이 시점에서 무사할 리는 없었다.[12] 하나는 큰 갈매기(은혜), 다른 하나는 그것의 반 정도 되는 작은 갈매기(딸)[13] 정작 위선과 통제, 억압과 강요밖에 없는 광장인 북한에 가서 북한에 대한 환상이 깨지자 명준은 오히려 그나마 자유와 개인의 영역이 보장되는 밀실을 찾는 경향성을 보이기도 한다는 해석을 하는 독자들도 있으며 명준은 광장, 밀실 중 어느 한 곳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두 개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완전하고 이상적인 (그러나 현실엔 부재하는) 사회를 꿈꾼다고 보는 독자들도 있다.[14] 당시의 남북관계가 얼마나 극으로 치닫기 일보직전이었는지 보여준 부분이다. 명준은 사실상 아버지가 무책임하게 혼자 월북하면서 남한에 덩그마니 남겨져 남의 밑에서 자란 사람인 데다 북한과 연관되지 않고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아버지가 어쩌다 북한 쪽 뉴스에 뜬 고위층이 되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연좌에 걸려들어 빨갱이 취급을 당했다. 경찰의 심문수사 장면을 보면 제대로 수사할 생각도 없고 그저 명준을 빨갱이로 다짜고짜 간주하고 빨갱이 맞잖아 하는 식의 답정너식 대화라는 걸 알 수 있다.[15] 혼전순결을 중시하는 윤애가 끝까지 섹스를 거부하자 실망한다. 명준은 자신을 불신해서 그런다고 생각한다.[16] 신문기자로 취재를 나간 명준이 쓴 기사에서 '노동자들이 일본군 군화를 신고 있다는 사실'을 썼다가 간부진에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자아비판을 강요받았다.[17] 역정을 내는 것도 뭣도 아닌 잠자리에 누운 명준의 머리를 쓰다듬는 선에서 끝났다. 명준은 차라리 화를 내길 바랬다고.[18] 초판에서는 진짜로 태식을 고문하고 윤애를 강간하려고 시도한 뒤 악마도 되지 못하는 자신에게 자조하였지만 이후 개정판에서는 그의 악몽인 것으로 바뀌었다. 명준 스스로도 꿈이라서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끔찍한 악몽이었다고 한다.[19] 처음에는 고문으로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똑같은 고문을 했음에도 반응이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오자 이에 실망한다.[20] 초판에서는 자원에 더해서 그가 태식과 윤애를 탈출시킨 것에 대한 처벌이기도 했다.[21] 은혜가 그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이다.[22] 남한에서 그는 월북한 빨갱이 아버지를 둔 것도 모자라 자신도 월북했으며 북한측에 서서 싸운 빨갱이 포로이기 때문에 적대감을 살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그는 이제 유일무이한 빽인 아버지가 숙청의 위기에 몰려 있기 때문에 가 봤자 숙청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23] 중립국에 가서 직업도 사람과 최소한의 관계만 맺을 그런 직업을 선택하고자 맘먹었다.[24] 이때 그 유명한 "중립국." 대사만 갖다가 (상상 속의) 남한 측 설득자와 (현실의) 북한 측 설득자 앞에서 흔들림없이 줄기차게 반복하는 장면이 나온다.[25] 원래는 감시자라 여겨서 총으로 쏴 버리려고 했지만 나중엔 이들을 은혜와 자신의 딸로 겹쳐보고 심지어 어미 갈매기가 쏘지 말라고 하는 환청까지 듣는다.[26] 작중에선 바다를 원초의 광장이라고 묘사하는데 명준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광장의 형태에 가장 부합하는 장소가 바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27] 그냥 잘 사는 부르주아 계통의 젊은 자식 세대들처럼 자유롭게 노는 것만 즐기는 유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다만 초판에서는 명준에게 고문당하는 과정에서 나름 강단있는 인물임을 보여준다.[28] 정작 명준이 북한에서의 새로운 연인에게 원했던 것도 남자에게 순종하며 모든 걸 다 바치는 구시대적 여성이었다.[29] 육지를 밟고 싶어서 그랬다고 한다.[30] 정황상 대다수가 장거리 항해에 질린 걸로 보인다. 다만 홍콩에 상륙하여 공산국이나 자유국으로 도주할 의도를 가진 것일 가능성도 있다.[31] 설득하러 나섰던 사람이 선장에게 거부의 말만 듣고 돌아왔다.[32] 명준은 애초에 배에서 먼저 내릴 생각도 없고 그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꺼렸다. 석방포로들 중 한 명이 자기에게 이전부터 같이 선장에게 요청하자고 추근거릴 때도 내심 싫다는 반응부터 보였다.[33] 북측의 설득 논리는 크게 3가지다.
1. 자본주의 체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제시해서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을 택하도록 유도함.
2. 일자리 제공, 인민의 영웅으로 존경하는 등 북한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제시.
3. 다시 돌아와도 지난날의 일로 인한 보복은 일체 없을 것임을 당부.
[34] 그것도 옆에 있던 중국군 장교가 무어라 하고 고함쳤다가 이후 명준은 소용없으니 포기하라고 말해서야 끝냈다.[35] 남측은 북측에 비해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에서 명준을 설득하려 든다. 남측의 설득 논리는,
1. 명준의 고향인 남한, 즉 조국애에 호소하여 남한 선택을 유도.
2. 대한민국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가치를 강조.
3.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과 책임, 존재의 필요성을 강조.
4. 남측 장교가 명준에게 사적인 도움을 제공할 것을 약속.
[36] 적어도 남한 측 설득자는 북한 측처럼 명준에게 강요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다만 북한 측 설득자와 달리 남한 측은 명준의 상상이다.[37] 대표적으로 '조국의 하늘은 매양 곱구나'란 반어법적 탄식이 '내 나라 하늘은 곱기가 지랄이다.'란 직설적인 고유어로 바뀌었다. 글 후반부[출처] 홍주영. "최인훈 『광장』의 신화적 모티프에 대한 연구: 1976년 개작을 중심으로." 문학과종교 21.4 (2016): 189-222.[39] 그 시니컬한(?) 작가가 이렇게 벅차올라 긍정적으로 말한 적이 흔치 않다….[40] 이들 남북한의 제3국행 포로를 통칭해 '76인의 포로들'이라고 하며 동명의 다큐가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도 소피 장(이영애 분)의 아버지가 중립국을 택한 북한군 포로 출신이었다는 설정이 있다.[41] 이때 멕시코는 그럼 자기들은 12명은 받겠다고 또다시 낚시질을 시전했다.(...)[42] 5명은 중공군. 그 중 한 명은 한국계[43] 남한 쪽의 설득 자리는 이명준이 자기 상상 속에서 만들어 보는 것으로 훗날 수정본에서 변경되었다. 왜냐하면 실제 역사에서는 중립국을 선택한 자라도 판문점에서는 자신의 원 소속에게만 설득을 받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반영한 것이다.그래서 남한 설득자가 나름 친절한 것이 묘하게 설득력 있게 되었다[44] 개발도상국이란 의미가 아니라 비동맹 노선을 의미한다. 해당 문서 참고[45] 중립국혜르노빌로 패러디되었다.[46] 다만 시대 설정 상 4달러는 전쟁 중, 이 중립국 내용은 전쟁 끝물 포로 교환 시기 이야기라 4달라가 더 앞선다.[47] 원본은 학교대사전 온라인판에 실려 있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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