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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00:22:31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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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광화문광장 전경.jpg
광화문광장
광장( / Square, Plaza)은 도시 속의 개방된 장소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넓은 공간이다.

광장은 보통 도시의 중심부, 혹은 한 생활권의 중심부에 만들어진다. 따라서 유동인구가 많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교차하는 만남의 장으로서의 기능도 한다.

광장이 설치되는 목적은 집회를 열기 위한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있으나, 이나 종교 시설 같은 대형 수용시설에서 한꺼번에 사람들이 빠져나올 때 그 사람들을 수용하여 분산시킬 만한 장소가 필요해서 생기는 경우도 있다. 만약 그런 장소가 없다면 정체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광장의 개방적인 특성과 시민들의 휴양을 위해 만들어진다는 목적 자체는 공원과 동일하지만, 공원은 광장과는 달리 녹지를 위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 다르다.

2. 역사

파일:레기스탄.jpg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유서 깊은 광장인 레기스탄 전경

2.1. 고대

현대적인 광장 개념은 유럽에서 발전한 것이며, 길게는 고대 그리스아고라에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여름이 건조하거나 서늘한 기후적 요인과 성당 건축의 발달, 폐쇄적인 도시구조에 대한 반대급부로 '열린 공간'을 선호하려는 유럽인들의 문화적 성향이 발달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1]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도시설계에서는 서양식 광장 외에도 도시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주작대로'가 광장의 역할을 대신했다. 성리학적 관념을 토대로 도시의 중앙 정북쪽에 궁이나 중심 관청을 두고 남쪽으로 곧게 뻗은 넓은 길을 내었다. 이 형태는 고대 중국의 호경(주나라), 함양(진나라), 낙양(한나라)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가장 형태가 잘 정립된 건 당나라 시대의 장안성이다. 이 형태는 당나라의 문화적 영향력 때문에 신라(경주), 일본(헤이안쿄, 나라, 교토) 등에서도 보인다.

이외에도 서양식 광장이 도시에서 갖는 공간적 의미 중 군중의 집합과 정보의 전파는 주로 '저자거리(시장)'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특히 범죄인의 처형이나 국가나 지방관의 정책의 전파, 일반 대중에게 전하는 명령의 알림 등은 시장이 들어선 곳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당연한 것이 성곽 안의 넓은 공터가 곧 장사꾼들 이장에선 좌판 깔고 장사하기 좋은 곳이며 시장이 열리면 사람들이 자연히 모여들기 때문에 공권력이 행정작용을 전파하기에 수월한 곳이기 때문이다.

2.2. 중세

중세에는 성당 앞에 넓은 광장이 생기곤 했다. 성당을 지을 때는 각종 공사 부자재를 두는 공터로 활용하다가, 성당이 다 지어지고 나면 성당에 방문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중세에는 성당이 도시의 중심지 역할을 했는데, 성당 앞에 있는 광장은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중이 모이는 장소가 되곤 했다. 정부가 반포하는 각종 칙령의 포고, 중요한 범죄자의 벌[2]이나 처형 같은 공권력 행사도 모두 광장에서 이루어졌는데 공권력 행사를 보다 많은 대중에게 빠르게 널리 알리기 좋은 입지였기 때문이다. 흑사병이 돌던 시절에는 광장에 약초를 잔뜩 쌓아놓고 거대한 모닥불을 지피며 시민들이 강강술래처럼 모닥불 주위를 돌며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오염된 공기를 불로 정화해야 흑사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효과는 없었지만.

현대 도시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이나 관청 등의 시설 앞에 설치되는 광장이 그 기능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사람이 모이는 곳에 관청 등이 들어섰고 역이 들어섰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이들 도시의 중심지 역할은 중세부터 지금까지 유럽의 도시에서는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예컨대 차범근이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서 UEFA 우승컵을 들어올린 곳도 프랑크푸르트 시청 발코니였고 시청 앞 광장에 사람들이 운집하여 우승을 축하하였다.

2.3. 현대

현대로 오면서 위의 특징은 고스란히 이어져, 매스컴과 SNS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집회 혹은 시위로 시민 개개인의 집단적 정치적 의사 표현은 주로 광장에서 이루어진다. 예컨대 여의도공원은 원래 나치 독일이나 공산주의 국가들(옛 소련, 개혁개방 전 중공, 현재의 북한 등)처럼 관제 동원 집회[3] 용도, 그리고 비상활주로를 겸하여 생겼지만 원래 정부가 기획한 용도와는 정 반대로 노동 운동의 성지가 되고 있다. 원래는 서울역에서 했는데 서울역환승센터로 역 광장의 반 이상이 차도로 편입되며 대규모 집회를 저렴하게(...) 할 수 있는 곳이 여의도공원 내 아스팔트 광장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 반면 자금력 풍부한 단체들의 집단 행사(예컨대 서울시내 대형 교회, 혹은 사이비종교(...)끼 농후한 수상한 단체들의 부흥회 등)는 체육관이나 육상, 축구경기장을 빌려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여튼 시민의 정치 의사에 국한하자면 서울에서 광화문광장, 정부세종청사 광장,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등이 시위 집회가 자주 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잔디마당 같은 경우는 '민의'가 모이는 곳이 곧 국회의사당이라서 "정치 1번지"라고 불릴 정도로 상징성이 높은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어중이떠중이들이 온갖 이유로 다 집회를 열려고 몰려들면 서여의도가 1년 365일 내내 마비되어버린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국회의사당 담장을 기준으로 집회금지구역이 설정되어 있다. 그래도 그 상징성 때문에 주변에 교통방해를 크게 주지 않는 1인 시위 등은 항상 열리고 있다. 이는 정부세종청사 광장도 동일하다.

사실 위 문단에서 쓰듯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는 군사정권에서 관제 집회는 열렸어도 정치적 의사표시를 발현하는 시위는 모였다 하면 탄압 대상이란 접에서 북한과 다를 바 없었다(긴급조치 9호).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거리응원 이후 진보 언론들의 "한국에 광장 문화가 돌아왔다"라고 대서특필한 건 4.19 혁명을 끝으로 한동안 사라졌던 시민들의 의견 발산이 다시 자생하였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시위 집회 자체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여의도광장 100만 인파 운집이라든가 1989년 노동자대투쟁 등 많이 발생하였지만, 특정한 이익집단(예컨대 노동조합이나 농민연대 등)의 위력시위가 아니라 서양의 광장 문화처럼 일반 시민 개개인의 여러 주장들이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문화가 정착된 것은 2002년 이후다. 심지어 지금 시대 들어서는 평소 집회를 "데모"라며 평가절하하는 보수 우익적인 성향의 시민조차도, 자기 이익이나 정치 주장을 펴기 위해서 광화문광장 같은 데에 모여서 촛불이나 태극기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좌파 우파 안 가리고 완전히 정착했다.

3. 종류

광장은 보통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이르는 말이지만, 교차로를 설치하기 위해 필요한 드넓은 부지를 교통광장으로 지정하기도 한다. 현대 도시에서는 일반적인 광장보다는 교통광장이 더 일찍 등장한 개념이다.

4. 목록

4.1. 대한민국

4.1.1. 서울특별시

4.1.2. 경기도

4.1.3. 대전광역시

4.1.4. 대구광역시

4.1.5. 경상남도

4.1.6. 부산광역시

4.1.7. 전북특별자치도

4.1.8. 광주광역시

4.1.9. 세종특별자치시

* 도시상징광장
* 조치원역 광장

4.2. 북한

4.3. 몽골

4.4. 중국

4.4.1. 홍콩

4.5. 이란

4.6. 우즈베키스탄

4.7. 튀르키예

4.8. 이집트

4.9. 이라크

4.10. 카타르

4.11. 사우디아라비아

4.12. 아랍에미리트

4.13. 레바논

4.14. 리비아

4.15. 튀니지

4.16. 알제리

4.17. 모로코

4.18. 러시아

4.19. 프랑스

4.20. 이탈리아

4.21. 영국

4.22. 독일

4.23. 미국

4.24. 아르헨티나

4.25. 타지키스탄

5. 관련 문서



[1] 동아일보 2009-08-05 《“유럽 광장은 시민사회 정체성 다지는 곳”[2] 교수형이나 참수형처럼 죄인을 죽여서 전시해놓는 것 말고도, 절도범 등을 살아있는 채로 형틀에 묶어서 일정 기간 광장에 전시해놓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돌을 던지기도 했다.[3] 이쪽은 시민 세력의 정치적 의사표시보다는 국가 권력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용도다. 의지의 승리 참조. 그래서 북한 같은 곳은 나라 경제 수준에 맞지 않게 도시 곳곳마다 수만 명 정도는 우습게 수용하는 스타디움이 꽤 많다.[4] 김영삼정부 때 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해서 현재의 여의도공원이 됨.[5]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곳으로, 센트럴을 출발하여 홍콩섬 각지로 운행되는 노선버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6] 본래 룩소르에 있다가 1829년 메흐메드 알리가 프랑스에 선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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