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23:22:55

납북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024FA2><colcolor=white> 상징
국기
람홍색공화국기 ·
국장
국장 ·
국가
국가 ·
국화
목란꽃 ·
국수
천리마 ·
국조
까치 ·
국견
풍산개 ·
국주
평양소주
역사 역사 전반
지리 관서 · 관북 · 해서 · 관동
인문환경 한민족 (북한인) · 문화어 · 행정구역 (주소체계) · 교통
인물 ·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
사상·이념 이념 전반 · 최고존엄 · 백두산절세위인 ·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 주체사상 (사회주의 대가정론) · 배움의 천리길 · 수령결사옹위정신 · 피포위 의식 · 대조선적대시정책 · 자력갱생 · 강성대국 · 지상락원 · 우리식 인권
정치·안보 정치 전반 · 조선로동당 · 국무위원회 · 최고인민회의 · 따뜻한 환영의 음악
외교 전반 · 남북관계 (아프리카 외교전) · 남북러관계 · 남북통일 · 대북제재
조선인민군 (육군 / 해군 / 공군 / 전략군) · 군복 · 열악한 현실 (빈곤함 / 수송능력) · 징병제 · 핵개발 · 미사일 개발 · 열병식 · 대남 도발 (원인) · 대남공작기관 (남파공작원) · 땅굴
사법·규범 사법 전반 · 중앙검찰소 · 중앙재판소 · 사회안전성 · 국가보위성 · 보위국
교시 ·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 · 조선로동당규약 · 사회주의헌법
경제 경제 전반 · 경제사 (1980년대의 대규모 정책 실패 · 2023년 · 2024년) · 북한 원 · 북한의 국채 · 지하자원 · 산업 · 돈주 · 장마당 · 북한산 상품 · 주체농법 · 비날론 · 8.3 인민소비품 · 조선우편 · IT (휴대전화 / 게임 / 이동통신 / 광명망) · 아파트 · 차량
사회 공민증 · 조선로동당당원증 · 계급 (기본 군중 / 복잡한 군중 / 적대계급잔여분자) · 조선소년단 · 궐기대회 · 생활총화 · 초상휘장 · 1호 사진 · 훈장 · 인권 · 려행증 · 주체의학 · 금당 2호 · 꽃제비 · 정치범수용소 (형성 / 실상) · 납북 · 월북 · 탈북
문화 문화 전반 · 요리 · 기호식품 · 노래 · 창작물 (콘텐츠 목록 / 북한 영화) · 스포츠 (축구 대표팀) · 관광 (개성 / 금강산) · 북한의 한국 묘사 · 북한 유튜브 채널 · 북한의 한류 · 소해금
기타 주체년호 · 공휴일 · 한반도의 지도자 목록 · 북한이탈주민(한국 외부의 탈북자) · 대북송금 · 대북전단 · 북한 관련 뉴스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2022년 / 2023년 / 2024년) · 북한의 국가장
둘러보기 틀
역사 역사
행정구역 광역행정구역 (평양시 / 개성시 / 남포시 / 라선시 / 강원도 / 자강도 / 량강도 / 평안남도 / 평안북도 / 함경남도 / 함경북도 / 황해남도 / 황해북도)
지도자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
인물 최고지도자 · 지도자의 배우자 · 당 총비서 · 국가원수 · 최고사령관 · 당 중앙위 위원 · 국무위원 · 인민군 지휘관
내각성원 · 내각총리 · 중앙재판소장 · 국가계획위원장 · 국방상 · 국가보위상 · 사회안전상 · 외무상 · 국가과학원장 · 김대 총장 겸 고등교육상 · 당 도당 책임비서 · 지방인민위원장 (평양시 인민위원장)
제도 법규범 · 인권 침해 · 사회계급 · 훈장
기관 최고통치기관 · 당 대회 · 최고사령관 예하 기관 · 당 조직 · 당 중앙위 전문부서 · 헌법기관 · 행정조직 · 외곽단체 · 해외 단체 · 학교 · 대학 · 예술체육단체 · 이동통신사 · 신문
자연 산지 · · 하천 · 해안 · 온천
건축 평양 길거리 · 신도시 · 일반철도 · 도시철도 · 고속도로 · 공항 · 항구
공공청사 · 평양 · 지방 · 유적 · 체제선전 · 사회기반 · 산업 · 보건의료 · 예술체육 · 버스터미널 · 교정시설 · 정치범수용소
군사 무기체계 · 군계급 · 군단 · 사단 · 미사일 · 핵·WMD
기타 공휴일 · · 스마트폰
}}}}}}}}} ||

1. 개요2. 상세3. 6.25 전쟁 당시4. 6.25 전쟁 이후
4.1. 1950년대4.2. 1960년대4.3. 1970년대4.4. 1980년대4.5. 1990년대4.6. 2000년대4.7. 2010년대4.8. 기타
5. 이후의 상황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군인, 민간인을 막론하고 북한국가주민이 북한에 납치되는 것을 말한다.

2. 상세

피해자는 주로 대한민국(남한) 국민과 일본 국민이었다. 한국에서 납북은 주로 전자를 말하며 일본인 납북 문제에 대해서는 납북 일본인 문서 참조. 반대로 남한 측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납남 사례도 존재하긴 하지만 납북에 비해서는 그 수가 매우 적다.

6.25 전쟁 당시 수많은 납북자가 발생하면서 결국 귀환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특히 강원도 어부들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우연히 휴전선을 넘거나 휴전선을 넘은 북한 군선에 의해 납북[1]되는 경우가 많았다. 6.25 전쟁 이후 이산가족이 생긴 이유 중 하나다. 납북되었다가 이산가족 방문으로 다시 만난 사례 기사 본문에서 납북자가 북한에서의 삶도 괜찮다고 말하는데 설득하는 이유가 땔감(...)을 무상으로 제공해서라고 한다.

위와 같이 납북자들은 북한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발언을 공식 석상에서 주장하거나 북한 치하에서 공직에 올라 활동하기도 한다. 사실 납북자는 북한에 가고 싶어서 월북한 게 아니라 강제로 납치당한 피해자고 저런 상황에 무조건 북한을 좋게 말하는 건 북한 정권의 지독한 감시와 강요로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에 월북이 아닌 납북자들의 저런 활동은 적극적인 가담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크게 문제 삼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어 영화화로 유명박열은 납북당한 후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란 단체의 회장을 역임했는데 납북되기 전 해방 정국 5년 동안 뚜렷하게 반공 우익 노선을 탔던 사람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했던 활동도 강제성이 있다고 인식되었고 1970년대 박열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대한민국 언론에서도 짧게나마 이것을 보도했으며 사회장 수준으로 추도식이 열리기도 했다. 즉, 반공이 국시였던 그 시절에도 납북당한 사람은 사정을 감안해서 평가했다.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거리가 가까운 자유진영 국가인 일본도 피해를 많이 입었고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직접 평양에 가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서 결국 김정일이 직접 인정하고 사과하기까지 했다. 그 외에 미국, 중국, 태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대만, 싱가포르,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레바논, 러시아, 루마니아, 프랑스, 영국, 요르단, 토고, 호주 등 국적과 인종에 관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납북당했다.[2]

재불 피아니스트 백건우 - 배우 윤정희 부부도 1977년에 온 가족이 납북 일보 직전까지 갔던 일이 있었는데 다행히 재빠르게 백건우가 눈치채서 모면했다.

3. 6.25 전쟁 당시

※ 고향이 북한 치하 북부 지방이었던 사람들은 ★ 표시를 한다.

4. 6.25 전쟁 이후

4.1. 1950년대

4.2. 1960년대

4.3. 1970년대

4.4. 1980년대

4.5. 1990년대

4.6. 2000년대

4.7. 2010년대

4.8. 기타

5. 이후의 상황

대한민국 통일부에 따르면 전쟁 중 납북된 사람이 11만여 명에 이르고 전쟁 후에도 3,800여 명이 납북되었다가 3,300여 명이 송환되거나 스스로 탈북하였으며 지금까지 516명이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YS-11기 납치 사건을 비롯한 북한의 한국인 납치 행위에 대해 대한민국 통일부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KAL기 납치 피해자 송환을 위한 대책협의회 등이 유엔인권이사회 인권최고대표사무소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UN WGEID)에 북한에 의한 납치 사건을 진정하여 유엔차원의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은 "납북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자발적 의사에 의해서 북한에 남아 살고 있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한편 일부 납북자들은 남한 정부에서 반공 체제 유지를 위해 자진 월북자로 날조하는 바람에 남겨진 가족들도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월북 문서에 더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6.25 전쟁 당시 한국군으로 참전했다가 북한으로 끌려가 1953년부터 33개월 동안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가 2001년 탈북해 한국으로 돌아온 국군 포로 2명이 2016년 10월 서울중앙지법에 북한 정부와 김정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2020년 6월 7일 서울중앙지법은 2100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7] 배상금은 국내 방송사나 출판사 등이 북한 조선중앙TV의 영상 및 출판물을 사용하고 지불한 저작권료 등이 대상이다.[8] 변호인단은 이 저작권료에 대하여 법원에 압류 및 추심 명령을 신청하여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은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이에 국군 포로 출신 2명이 소송을 냈지만 2022년 1월 14일 서울동부지법은 북한을 비법인 사단으로 보기 어렵고 경문협에 공탁된 저작권료는 북한 정부가 아닌 북한 내 저작권자의 것이라며 원고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에 국군포로송환위원회는 항소할 뜻을 밝혔다.

6. 관련 문서



[1] 납북되었다가 탈북한 울산 출신 어부 이재근의 말에 따르면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만났다 한다. 이 중에는 정부의 공식 납북자 명단에 없는 경우도 있지만 심지어 제주도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중에 납북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북한은 이들을 대남 간첩으로 이용했다.[2] 최은희의 증언에 의하면 외국의 여성들을 납치하기 위해 미남계까지 쓴다고 한다. 제법 얼굴이 잘생긴 공작원이 자신의 국적을 숨기고 여성을 유혹하여 결혼하자고 꼬신 뒤 북한으로 유인하여 납치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납북되어 온 외국인들은 대부분 공작원들에게 외국어를 교육시키는 일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3] 다만 그의 고향은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이였는데 6.25 전쟁 이전에는 연백군이 38선 이남에 있었던 고로 대한민국 땅이였다.[4] 시인이며 김소월의 스승이지만 후에 친일파로 전향하였다.[5] 심영황철에 의해 납북당했다.(야인시대의 그 국민고자 심영과 황철 맞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청천강까지 끌려가서 탈북하는 데에 성공했다.[6] 당시 도이나 붐베아는 이미 루마니아를 떠나서 이탈리아에 정착해 살았으니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누굴 좋아했느냐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 게다가 국민들이 헐벗고 굶주리거나 말거나 가렴주구를 일삼은 놈이라서 자기 나라 사람이 납북되었다고 해도 신경이나 썼을 리는 만무하다.[7] 원래 국제법상 주권면제 이론으로 인하여 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한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재판에서도 북한을 비법인사단으로 규정하여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8] 이 저작권료는 2004년 설립한 국내 법인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북한 저작권 사무국과 계약하여 2004년부터 저작권료를 북한에 송금했지만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송금이 중단되어 2020년 기준으로 법원에 20여억 원이 공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