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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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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1] 촬영된 북한 평양시락원영화관.

파일:PYH2013091900420001300_P2.jpg

북한에 보급 중인 4D 영화관. 기사 중국 쪽 4D 기술을 가져온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1. 개요2. 영화 시장3. 역사4. 작품5. 주요 작품 목록6. 영화인 목록7. 영화 관련 기관8. 영화관9. 관련 자료

1. 개요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映畵 / Cinema of North Korea

북한영화에 대해 다루는 문서.

2014년 몽골 영화 시장IMAX 영화관이 도입되면서 동아시아 영화판에서 유일하게 북한에만 IMAX 상영관이 없다.[2]

2. 영화 시장

북한 자체가 워낙 폐쇄적인 국가라 북한 영화 시장 규모에 대해 추산한 자료가 없다. 최빈국인 데다 제작편수가 많지가 않아서 시장 자체는 별로 크지는 않지만 시장만 크지 않을 뿐이지 여가시간을 영화로 때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은 많으며 여유가 있으면 음지의 장마당에서 외국 영화나 한국 영화를 몰래 구입해서 보기도 한다. 다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동정에 대해 다루는 영화는 내용이 뻔하고 레퍼토리도 반복되는지라 그냥 별 수 없이 보는것에 가깝기는 하다. 참고로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당국에서 지정했는데, 그 시절에도 김일성과 김정일 우상화 영화는 따분해서 틀면 보든 말든 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고. 물론 신상옥 감독이 제작한 영화나 남한에서 활동하는 공작원들을 소재로 한 첩보영화같은 것은 인기가 엄청나게 많아서 영화관이 꽉 찼다고 한다. 참고로 경제가 어느정도 돌아가던 시절에는 연간 관람횟수가 연 18회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았다고 하는데 한국이 1960년대에도 연간 관람횟수가 6회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은 수치인지 체감할 수 있다. 외국영화가 아예 상영되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미국 영화 대신에 중국 영화, 러시아 영화, 인도영화 등을 상영한다. 그리고 암암리에 한국 영화를 밀수해 돌려 보는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는 듯하다.

3. 역사

3.1. 김일성 시대

생각보다 중국이나 소련과 합작 영화를 만든 사례가 많다. 특히 소련과 합작한 경우 단순히 체제선전 말고도 역사물이나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꽤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15세기 키예프 공국의 전설 속의 영웅 일리야 무로메츠를 다룬 동명의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에는 당시 모스크바에서 유학중이던 최승희의 딸 안성희가 잠시 출연했다.

1957년 북한과 소련 합작으로 제작된 영화 "형제들"에서 안성희가 주연이자 무용감독을 맡았다. 이 영화에는 서울의 고급 술집 풍경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해 놨다.[3][4]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는 소련 영화나 중국 영화를 더빙해서 방영하는 더러 있었다. 80년대에는 동독에서 제작된 카를 마르크스의 생애를 다룬 연작 영화를 방영한 적도 있고, 다양한 소재의 동구권 영화를 방영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러한 영화 방영 스케줄로 종종 중국과 소련 사이의 북한의 외교 스탠스를 분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중국과 사이가 안 좋으면 소련 영화를 줄창 방송하고, 소련과 사이가 안 좋아지면 중국 영화를 줄창 방송하는 식(...).# 김정일 말기인 2011년 10월, '영웅 정성공'을 방영하였는데 여배우가 목욕하는 상반신 노출씬도 방영되어 쇼크를 주었지만 이후 문화 개방은 고사하고 외국 영화 트는 빈도가 다시 거의 없다시피 줄었다. 2024년, 북러정상회담 기념으로 독소전쟁을 다룬 소련 고전영화 2편을 틀어준 것이 그나마 특기할만한 사례.

3.1.1. 남북분단 ~ 6.25 전쟁

3.1.2. 6.25 전쟁 ~ 8월 종파사건

3.1.3. 8월 종파사건 ~ 김정일 집권

8월 종파사건 이후 북한 독재의 씨앗이 뿌려졌다지만 60년대 중반까지는 김일성 1인독재의 손이 심하게 뻗쳐있지 않았던 데다, 김일성을 우상화하기 위한 주체예술의 개념도 없던 시기였다.

일례로, 1965년 제작된 <나의 매대>라는 영화는 1991년 제작된 <효녀>라는 영화를 비교해서 드러낼수 있다. 두 영화는 상점 직원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으로 줄거리도 상업인이 단순 판매뿐만 아니라 생산도 책임지려 한다는점, 두 동료가 함께 했다가 나중에 갈라선다는 점, 부부생활과 상업에서의 관계 등 겹치는 요소가 많다. <나의 매대>에서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은 주인공이 감명받을때 딱 한번 화면으로 나오고, 대사로는 김일성과 관련된 용어는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효녀>에서는 모든 클리셰가 김일성의 교시, 방침, 당시 북한의 구호와 사상에서 비롯되어 결말도 김일성과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의도 또한 <효녀>의 경우, 김정일이 직접 제시한 정춘실 운동을 위해 제작된 선전영화이니, 60년대 중반이 사실상 북한이 평범한 사회주의 국가였던 마지막 시절이라는것을 알수있다.

1960년대 들어 김정일이 예술계에 손을 뻗치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 점진적으로 주체예술이 강조되며 혁명가극이 영화화 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피바다>, <꽃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 등의 혁명가극이 영화화되었고 반대로 영화 <금강산처녀>를 각색해 <금강산의 노래>라는 혁명가극으로 내놓은 경우도 있다. 특히 <피바다>와 <꽃파는 처녀>는 김일성1930년대 직접 발표한 작품이라 하여 중요하게 다뤄진다.

숨은영웅 따라배우기 운동이 벌어지던 1970년대 후반부터 특정 인물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숨은영웅은 아니지만 이전에도 항일혁명투사라고 치켜세우는 마동희를 그린 '영원한 전우'(1972)와 태성할머니를 그린 '이세상 끝까지(1977)'가 있었다.

숨은영웅의 일생을 영화화하는것의 본보기가 바로 '열네번째 겨울(1980)'이며, 이 영화의 주인공인 백설희는 14년의 연구 기간동안 결혼도 하지않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해 기름골을 발명해내서 1979년 김일성에 의해 로력영웅이 되었고 2일동안 로동신문 1면에 기사가 실렸던 인물인데, 1980년에 이 영화를 굉장히 많이 방영했다고 한다.

이후 자식과 며느리를 다 김일성의 항일운동에 바쳤다는 마동희의 어머니인 장길부를 원형으로 한 어머니의 마음(1986), 평안남도 숙천군에서 농장 관리위원장을 하며 1988년 전국영웅대회에 참가했던 로력영웅 한순희의 일생을 각색해서 만든 '생의 흔적'(1989)이 나왔다.

1990년대 들어가서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자 1991년 정춘실운동이 벌어졌는데, 이때 자강도 전천군 상업관리소 소장을 지낸 정춘실의 일생을 '효녀'(1991)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1992년 민족과 운명이 창작되면서 이전까지 얼마 안되던 이런 종류의 영화가 대폭 늘었다. 민족과 운명 시리즈에서 생애가 영화화된 사람들이 바로 외무부 장관까지 지냈다가 월북한 최덕신, 음악가 윤이상, 태권도 관련 인사 최홍희, 비전향 장기수 리인모, 북한에서 중앙재판소 소장까지 지낸 허정숙, 빨치산으로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최현이 있다.

당연히 80년대에도 <조선의 별>이 김일성이 직접 만든 노래[5]를 주제로 했다고 말하는것이 계속되었다.

<우리집 문제>와 같은 코미디 영화도 흥행했고, 60~70년대 당시 흥행작을 꼽자면 <피바다>(1969), <한 자위단원의 운명>(1970), <목란꽃>(1971), <꽃파는 처녀>(1972), <우리집 문제>(1973) 등이 있다.

이 외에도 60~90년대 북파 간첩들을 다룬 영화들로 <숨길수 없는 정체>(1970), <검은 장미>(1973), <또 다시 이어진 사건>(1982), <어느 한 해안도시에서>(1988) 등이 있다.

또한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을 다룬 영화 <대결>(1982), 영국인 간첩[6]이 북한을 위해 공작을 벌여 전쟁 승리에 비여한다는 내용인 <이름 없는 영웅들>(1979~1981) 등의 반미선전영화도 제작되었다.

사극으로는 춘향전(1980), 사랑 사랑 내사랑(1984), 홍길동(1986), 림꺽정(1986) 등이 제작되었다.

한편으로 김정일이 적극적으로 예술사업에 나서자 백두산창작단, 왕재산창작단, 대덕산창작단, 조선영화문학사, 4·25영화촬영소, 2·8예술영화촬영소 등의 영화문학 창작과 제작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생겨났다.[7]

또한 1970년대 사회가 급속도로 경직되며 문예봉, 심영 등 많은 영화인들이 종적을 감추기도 했는데, 문예봉의 경우 80년대 초반에 복귀했다.

1980년대 들어 북한이 전체적으로 외부 문물이 제한적으로나마 허용된다. 대표적으로 70년대까지 종적을 감춘 외국서적이 인민대학습당에 비치된것과 서구의 패독을 보여준다며 경외시했던 전자음악을 보천보전자악단을 통해 보급한것을 들 수 있다.

3.2. 김정일 시대

민족과 운명을 위시한 인물 형상화 영화가 많이 나왔는데, 이 가운데 최현을 형상화한 민족과 운명 최현 편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나왔다. 또한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오진우를 형상화한 '백옥'(1995)이 나왔고 김일성 생전에 나왔던 '생의 흔적', '효녀'의 후속편들도 나왔다.

다만 여기에는 심화조 사건이 엮여있는데, 80~90년대 영화로까지 나왔던 인생을 산 세명의 영웅들이 김일성 사후 모두 안좋은 일을 당한것이다. '효녀'의 주인공 정춘실은 심화조 사건과는 무관하지만 90년대 후반 해임되었고 '생의 흔적'의 주인공 한순희는 심화조 사건에 엮여 공개총살 당한 후 2000년에 복권되었다.

'열네번째 겨울'의 주인공 백설희 또한 심화조 사건에 엮여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2000년대에야 풀려났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백설희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것은 2003년 경이었다.

물론 이 세명은 모두 복권되었고 '효녀'의 후속편인 '둘째딸'이 1998년에, '생의 흔적'의 후속편인 '이어가는 참된 삶'이 2002년에 나왔다.

이 후속편들이 주로 다루는것은 역시 고난의 행군 정신. 또한 나라가 어렵다, 식량사정이 어렵다는 말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물론 꽃제비나 개판이 된 나라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나라가 어렵고 힘든것은 모두 미국의 봉쇄와 압박 때문이며 간부들의 일처리가 잘못되었고 김정일은 대단히 심려하고 있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지만 고난의 행군 시대부터 보이는 특성이라고 할수 있다.

3.3. 김정은 시대

2012년 8월 북한, 영국, 벨기에의 합작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Comrade Kim Goes Flying)'가 공개되었다. 북한 시골의 한 여성 광부가 평양에서 서커스 곡예사가 되는 꿈을 이룬다는 무난한 내용이며, 때문에 2012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수 있었다. 북한에서는 2016년 1월 3일 조선중앙TV에서 첫 방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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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낮 하루밤》의 새 오프닝
2022년, 6년만의 새 예술영화 《하루낮 하루밤》이 개봉됐다.
'공화국영웅이며 전쟁로병인 라명희동지를 원형'으로 하여 '각일각 생명을 위협하는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면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음모의 내막을 끝까지 폭로하는 한 평범한 처녀간호원의 하루낮, 하루밤사이의 투쟁이야기'를 담았다는 영화로, 조선4.25예술영화촬영소에서 제작했다.
이 영화부터 오프닝의 '조선영화' 타이틀이 새 CG 영상으로 바뀌었다.
파일:72시간포스터.png
조선예술영화《72시간》의 포스터
2022년경부터 촬영된,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72시간'[8][9]이 2024년 2월 개봉되었다. 영화는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대적 개념을 주입시키기 위해 중앙당 선전선동부의 지시로 만들어졌으며, "남조선놈들이 조선을 기습침공하면서 전쟁이 발발하자 영용한 조선인민군이 서울로 진격해 3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성과에 도취된 인민군 지휘관들의 태만으로 서울에서 3일간 지체해 남조선 해방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프로파간다성 내용이다. 주민들의 반응은 좋은데, 이 영화에 대해 '당시 군사지휘관들이 최고사령관(김일성)의 의도대로 연속 타격, 계속 전진했으면 남한을 점령했을 것'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영화 제작비가 막대한 나머지 당에서 영화 제작비를 다 거두어들일 때까지 TV로 방영하지 않고 영화관에서 상영할 것을 지시했다고 하며, 당국은 영화에 등장한 김일성이 비록 배우지만 수령님(김일성)의 영상을 아무렇게나 찍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영화 상영 도중에 주민들이 일부 장면을 손전화로 촬영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참고로 원래 북한의 영화표 가격은 북한 돈으로 18,000원(2.12달러)라는 높은 수준이었으나 최근에 5,000원(0.59달러)로 대폭 낮아졌는데, 이조차 입쌀 1kg(6,000원, 0.7달러)과 별반 나을 바가 없는 비싼 가격이다. 보통 일반 예술영화 영화표 가격은 1,000원이지만 새로 나온 영화는 3,000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비싼 셈이다. #

2024년 6월 초에는 북한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영화에 비사회주의적 요소가 있다며[10]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측에서 직접 영화 부문 일꾼들과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사상투쟁회의를 진행했다. 중앙당 선전선동부는 "영화 부문 일꾼들이 영화를 주체식으로 발전시키길 바라고 외국의 독특한 영화나 드라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고 지적했으며, 해당 회의 이후 10여 명의 영화 부문 일꾼들과 예술인들을 해임·철직 및 혁명화 대상으로 발표되었다. #

그런데... 2024년 7월 15일, 뜬금없이 72시간 상영을 금지하고 영화가 담긴 USB도 모두 회수하라는 김정은의 비준방침이 들려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주민들은 '두 국가 관계' 정책에 따라 남한의 지명을 금기시한 당국이 '72시간'에 '서울'이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을 문제삼았을 수 있다고 보았다. # '미제'가 기습적으로 도발한 침략 전쟁이라고 선전하면서 정작 영화에는 미군과 싸우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는 점, 인민군대는 탱크를 앞세워 진격하는데 한국군은 탱크가 한 대도 없다는 점이 6.25는 사실 인민군이 기습적으로 먼저 일으킨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서 금지시켰다는 의견도 있다.[11] 여하튼 이 영화를 본 대학생과 당간부들이 갑자기 퇴학, 출당 처분되는 일까지 일어났다. #

4. 작품

북한 영화라고 하면 매우 조악할 것으로 많이 생각하는데 의외로 상당한 수준이다. 일례로 북한의 첫 선전영화인 '내 고향' 을 본 어느 남한 영화 감독은 생각보다 괜찮아서 놀랐다고 밝힐 정도이며, <꽃파는 처녀(1971)>와 <푸른 주단 우에서>, <살아있는 령혼들(이하 2001)> 등처럼 해외 영화제에 출품된 것들도 있고, 특히 <살아있는 령혼들>은 1945년 우키시마호 사건을 다룬 북한 영화로서 최초로 CG와 미니어처 기법을 동원한 얼마 안되는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2003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된 바 있다. 집단체조 창작단원들의 역경과 고난을 다룬 <푸른 주단 우에서>는 주한 독일문화원장 우베 슈멜터의 도움을 받아 2004년 제54회 베를린 영화제에 특별상영되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으나, 나치 제3제국 시대 대중집회를 연상시킨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로 북한은 소련과 동구권의 영화 촬영기법을 많이 받아들여[12] 체제 초기엔 후기완 다른 꽤 창의적인 선전 영화들을 내놓았고 80년대 이후에 나온 영화들도 꽤 은유적으로 체제의 슬로건을 그리고 '선한 외국인'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체제 정당성을 설파하는 경우도 많은데 김정일화의 탄생 과정을 다룬 영화에선 '김일성의 도덕적, 능력적으로 완벽한 모습과 주체사상'에 감명받은 일본인이 '자본주의자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직접 김정일화를 만들어 진상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한 김치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영화에선 깨알같이 미국인들까지 등장시켜 김치를 찬양한다. 그럼에도 호주의 여류 영화감독 안나 브로이노스키는 북한식 사실주의 영화기법에 매료되기도 했는데, 이 사연은 2018년작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북한에서 인기있는 영화는 시리즈물로 제작되곤 하는데, 이름없는 영웅들 시리즈는 남한에서 활동하는 공작원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무려 20부까지 제작되었다.[13] 민족과 운명은 무려 60부까지 제작되었다. 물론 대부분 체제 선전이나 남한 비방을 목적으로 한 내용이 많아서 남한에서는 게시판이나 위키에 함부로 올렸다간 처벌을 당할 수도 있다. 아니 그 이전에 영화 자체가 너무 뻔해서 재미가 없다. 아니, 김정은이 보기에도 너무 재미가 없어서 북한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어도 김정은이 비준을 해주지 않아 감독들이 창작 의욕을 잃은 상태라고 한다. #

북한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작품은 "우리집 문제" 시리즈인데, 한국으로 말하자면 시트콤 같은 구성을 가진 코믹 가족영화다.# 북한 배우들의 액티브하고 유쾌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북한에서 코믹 영화의 대명사로 통하는 시리즈일 정도다. 다만 이 영화도 체제 선전에는 예외가 없어서, 대부분의 내용이 구습 타파나 사회주의 미풍양속을 권장하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 즉, 계몽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14] 다만 한국의 반공 영화처럼, 북한도 체제 선전을 위한 목적이라면 어느정도의 일탈 행위를 묘사하는 것은 허용해 주는듯 하다. 우리집 문제 시리즈의 8번째 작품인 "우리 사돈집 문제"에는 청소년의 음주와 흡연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15]

이와 별개로 북한 영화는 1년에 몇 편 정도 밖에 안 만든다.[16] 또, 개봉할 때에는 평양에서 시작해 지방으로 퍼지는 형식으로 하고 있다. 한국에서 멀티플렉스 체제가 구축되기 전에는 전국적으로 동시 상영하는방식이 아닌 개봉관->재개봉관->재재개봉관을 걸쳐서 순차적으로 상영하는 방식이었는데 북한에서는 아직도 이런 시스템이 남아있다.

그런데 북한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면 모를까 일본, 남한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남한 사람들 눈으로 보기엔 조악하기 그지 없어서 질이 많이 떨어진다.[17] 자본주의 체제의 열악함을 증명하겠답시고 한국 자체를 부산행이나 데몬 월드 급의 초특급 지옥으로 묘사해놓았다. 그냥 실소도 아까울 정도다. 근데 북한 배우들 중에선 남한이나 일본 배경의 영화를 찍을 때 너무 신나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정해진 것만 연기하다가 색다른 걸 연기하느라 속된 말로 좋아 죽으려는 배우들도 보인다.(...) 남한 자본주의 사회의 퇴폐성을 보여주겠답시고 만든 영화 금희와 은희의 운명에선 당시 인기배우 정춘란이 금희와 은희의 1인 2역으로 나오는데, 북한에서 철저히 금지된 퇴폐 무용을 하면서 신이 나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흑백논리적인 작위적이고 조악한 배경이나 설정이 매우 많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북한 건국 이전의 일제강점기조선왕조를 다룬 부분은 가히 북한 건국신화의 반영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폐허급으로 만들고 김일성 등장 이후로 순식간에 지상락원으로 변모시키며 외국인의 멘탈을 안드로메다로 날린다. 해방 이후 묘사도 '저 지옥같은 남조선과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배부른 공화국의 비교'만 줄창 나온다.[18]

북한 영화의 특징은 우수한 조선 민족에 장애 분자 따윈 없다정신승리법을 적극 반영하여, 나쁜 사람들은 모두 서구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은 가엾고 딱한 자들이며 교화의 여지가 있다는 식으로 나온다. 동구권에서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을 적극 묘사한 것에 비해 북한은 이미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교화에 감화된 인민'들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개혁에 참여하며 방해하는 것들은 뭐 당연하지만 미국인, 일본인, 친일반민족행위자, 한국의 반동, 지주 등은 전형적인 악당으로 나온다[19]. 멋있는 악역 따윈 없다고 봐도 된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일본인, 미국인을 비롯한 악당들은 우스울 정도로 사악하고 희화화되어 등장한다. 그리고 애정신은 전혀 없다. 심지어 미군들의 '전쟁범죄'를 다룬 선전영화에서도 미군들이 조선 처녀에게 달려들어 조선 처녀의 패물만 빼앗고 얌전히 간다.(...) 사랑싸움, 애정신의 묘사는 소련의 영향을 깊게 받아 꽤 서구적인 소재나 방식을 보여준 50년대 영화보다도 오히려 후퇴한 상황이다. 특정 배우가 숙청될 경우 그 사람이 나온 작품은 목록에서 지워지거나 아예 새로 만드는데, 대표적인 예로 1980년 김정일에 의해 공식적으로는 불륜 험의로 공개처형당한 미녀배우 우인희가 있다. 탈북 기자 주성하의 인터넷 칼럼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에 따르면 우인희의 출연작 등 흔적들은 북한 곳곳에서 사라졌지만[20]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거는 남아있다고 하나 사진 속 인물은 우인희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으며, 2020년에는 주 기자가 유튜브를 통해 우인희의 사진이 들어간 일본측 출판자료 5건을 공개했다.[21]

참고로, 김정일은 영화 및 사진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이론에 대한 책을 직접 쓰는가 하면, 영화 및 사진 기술 등에 대한 상당히 전문적인 비평을 하거나 취미로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물론 당연히 김정일이 쓴 영화 이론 책은 북한 영화계의 바이블(...)이 되었다. 그래서 김정일의 영화 컬렉션은 일본의 아베 요시시게 컬렉션처럼 한국 영화계의 떡밥 중 하나다. 원본 필름을 구할 수 없어서 '로스트 미디어'가 된 고전 한국 영화 중 일부를 김정일이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만추.

1987년 9월부터 2년에 1번씩 평양국제영화축전[22]을 열며, 전 세계 40여개 국가와 유니세프, 유엔아동기금이 참가하며 경쟁 및 비경쟁부문으로 나뉘어 경쟁부문 쪽은 예술, 기록, 단편, 만화영화 4개 부문으로 또 나눠진다. 등급에 따라 횃불금상, 횃불은상, 횃불동상 등 3개로 분산되며 분야별로 영화문학상, 연출, 연기 등 온갖 상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으로 비공인된 데다 북한과 친한 제3세계 및 개발도상국들을 많이 초청하는 데 그치며,[23] 초기에는 자국 영화가 강세여서 4차까진 횃불금상 2회, 최우수여우상 4회 기록을 보유했으나 1990~2000년대 이후에는 최우수상을 못 차지해 호흡기 다는 수준에 그친다. 평양 시민들에게만 보여주기 때문에 지방은 그냥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남한에서 북한 영화가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 1988년 NL운동권이 주도한 '북한 바로알기 운동' 때부터였다. 1990년대까지 대학가에선 NL 총학생회 등의 주도 하에 음성적으로 북한영화가 녹화된 비디오테이프 등을 유럽 등지에서 구해다 상영회를 열었는데, 상영 중 경찰이 들이닥쳐 테이프나 기자재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학생들을 체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1996년에는 한 여성이 독일 유학 시절인 1990년부터 2년간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북한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구했다는 이유로 국보법상 국가기밀 유출혐의로 구속기소됐으나, 1999년에는 북한 영화 20개 작품 중 <꽃파는 처녀> 등 7개 작품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합법적 루트로는 통일부 북한자료센터를 찾아가거나 <남북의 창> 등 북한 관련 프로그램에서 짧게나마 접하는 경우가 있지만 1998년 SBS가 최초로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를 방영했고, 2000년 신상옥 감독 납북시절 작품 <불가사리>가 분단 이래 처음으로 합법 상영되었다.

머리를 빠는 남자라는 책을 쓴 탈북자 김용이 서술하길,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영화를 보니 키스신에 여배우 가슴 노출도 나와 당시만 해도 북한 영화에선 이런 걸 금기시했는데[24] 이런 게 나오니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친구는 이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10번도 더 보러갔다고.... 강명도도 신상옥의 영화를 보고 눈이 돌아갔다고 회고했다.

5. 주요 작품 목록

6. 영화인 목록

북한의 모든 영화인들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조선인민군4·25예술영화촬영소 둘 중 하나에 소속되어있으며 꼭 전속이 아니라 다른 촬영소 작품에도 출연할 수 있다.

영화배우들 또한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유명세를 얻으면 혜택도 많아지고 사람들이 알아본다. 다만 북한 영화인들은 아무리 유명해도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배우와는 많이 차이가 있다.

여기에 쓰여진 사람들 모두 유명세와 상관없이 무조건 9시에 출근하여 조직사업에 참가하여야하며 200일 전투와 같은 큰 속도전에 큰 건설장에 동원되어 노래도 부르고 무대도 펼친다. 한마디로, 자본주의 국가의 배우들처럼 일이 없을때는 쉰다거나 작품을 고른다거나 매니저를 두고 차를 타는 모습은 찾아볼수 없고 무조건 다른 직군과 마찬가지로 평일에는 출근해야하며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성사업, 생활총화와 같은 조직사업도 모두 해야한다.

물론 영화배우들의 경우 정치적 신분은 높은 편이다. 김정일이 촬영소를 자주 찾은 탓에 영화배우들의 경우 핵심계층으로 꼽히는 '접견자'[34]에 속하는 이가 많다. 일반 노동자들은 공로가 많아야 1호사진을 찍거나 접견자가 되어보는데, 영화배우들은 공로가 많다면 여기에 명예칭호를 얹어 받으니 큰 권력이 있는건 아니지만 접견자가 많고 모두 평양에서 거주하는것을 보면 계층이 높은편이라고 볼수 있다.

하지만 되려 누군가를 교양하는 역할이라 정치사상적으로 빈틈이 없어야하는 무거운 책임까지 떠안고 있다.

7. 영화 관련 기관

8. 영화관

영화상영시설은 1000여개 정도 있는것으로 파악되고있다. 북한은 멀티플렉스 개념이 도입되어 있지 않아 1990년대 이전의 남한처럼 대부분 단관극장 형태이며, 지방에서는 예술회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인민극장. 다만 가격은 싸서 북한주민들에게 있어서 여가시간을 값싸게 때우는 수단이기는 하며 연인들이 데이트 할때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은것은 남한과 마찬가지이다. 인기가 높은 영화는 따로 암표를 팔기까지 할 정도다. 하지만 북한의 영화제작편수가 많지는 않다보니까 같은 영화를 장기간 반복해서 트는 경우도 많다고 하며, 이런 경우에는 비싼돈 주면서 외국영화나 남한영화를 몰래 보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다만 2010년대 이후에 개장하는 극장들은 시설이 남한기준으로도 괜찮은 편이기는 하다.

9. 관련 자료


[1] 공화국창건 60돐을 맞는 올해라고 되어 있다.[2] 이는 북한이 받고 있는 광범위한 대북제재 때문이다.[3] 사실 예술 분야는 남한보다 북한이 인재풀이 더 풍부했다. 해방 전에 피압박 민족이자 차별받는 '딴따라'로 취급당하던 예술가들은 사회주의에 호감을 가진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 해방공간에서 월북하거나 6.25 전쟁 중에 북한군을 따라간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 유명한 심영 등 월북한 예술계 핵심 인사들에 의해 강제로 납북된 경우도 많았다.[4] 해방 전에는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재즈를 듣고 연습했기 때문에 이 장면에서 더 생생한 묘사가 가능했던것 같다.[5] 북한에서 조선의 별이라는 노래는 불멸의 혁명송가라고 한다[6] 주인공인 유림은 영국계 기자로 나온다. 심지어 엄청난 갑부라는 설정까지 있다. 반면에 그가 사랑하는 순이는 미군에 침투한 간첩으로 나온다.[7] 4월25일은 김일성 생일 2월8일은 김정일 생일로 북한에서 두 날짜가 붙은 곳은 어떤 분야던지 최상위급 기관이다.[8] 4시간짜리 영화로, 영화가 너무 긴 나머지 2부로 나누어 상영해야 했다.[9] 2021년 10월, 중국영화 '장진호'를 본 김정은이 "우린 왜 저런 영화를 못 만드냐?"고 선전선동부문 일꾼들을 강하게 질책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제작비로 1000만 달러가 들었다고...[10] 의상, 소품, 줄거리, 주제 등에서 이런 요소가 있었다고 한다.[11]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습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미국이 3일만에 서울을 빼앗겼다는 게 말이 되냐"는 의견도 존재한다.[12] 간과하기 쉽지만 러시아 영화와 동유럽 영화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같은 현대 영화의 화법을 발명한 몽타주 이론가들도 전부 소련 출신.[13] 이 영화에 월북 미군들이 대거 출연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14] 사실 남한도 1980년대까지는 이런 식으로 계몽적인 주제의 드라마가 나오거나 코미디 콩트를 계몽적인 방향으로 진행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의 경우에는 당연히 방송사 간부들이 미리 검열을 하고 그랬다. 예를 들면 5공화국 시절에는 순자라는 배역이 비천하거나 웃기는 역을 하면 안되고 대머리나 주걱턱도 개그 소재로 삼는 것도 안된다는 식. 여하튼 이러한 드라마나 코미디극 가운데서 이름을 날리던 것 중에는 팔도강산 시리즈 등이 있었다.[15] "우리 사돈집 문제" 자체가 북한의 비행 청소년 문제를 계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다.[16] 인구 때문에 시장이 작은 아이슬란드는 1년에 10편밖에 안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대략 알수 있는 부분이다.[17] 북한에서 제작한 3부작 사극 영화 임진왜란(1991년)에서 등장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일본인들의 복식이나 소품 고증은 생각보다 의외로 볼 만하다. 대사가 문화어로 되어 있는 것만 제외한다면. # 해당 영화는 2002년에 SBS에서 광복절 특집으로 방영되기도 했는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2분법적 역사관에 입각해 다소 역사적 사실을 왜곡(평양성 탈환시 명나라 군대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없고 평민, 노비 등의 공을 지나치게 부각한 점 등)이 액션신이 많이 미흡하다는 것이 지적되기도 했다. #[18] 이는 일제강점기와 남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제작된 세트장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남한 세트장은 전형적인 6-70년대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19] 사실 남한에서도 친일반민족행위자와 지주는 거진 다 악당으로 묘사된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야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이들인 걸 떠나서, 나치 독일에 필적하는 희대의 전쟁범죄 집단의 부역자들이니 애초에 옹호해줄 건덕지가 전혀 없기때문이고, 지주 역시 역사적으로 소작농들을 악랄하게 착취해왔던 이들이 대부분인 만큼, 긍정적으로 묘사할 요소가 없다. 그러나 북한의 창작물들은 그런 것이 아닌 보통의 미국인이나 일본인등의 친서방 국가 출신 외국인들도 무조건 악당으로만 묘사하는데다, 그 와중에 은근슬쩍 '이런 미제놈과 일본 앞잡이들을 쳐부순 우리 수령님'하는 식의 역사 왜곡까지 집어넣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20] 그녀가 나온 모든 잡지와 출판물에서 그너의 얼굴은 도려내지고 기록들은 모두 불태워졌으며, 심지어 그녀가 출현했던 영화들은 여주인공을 바꾸어 다시 찍었다고 한다.[21] 신상옥 감독의 저서 <김정일 왕국> 일본어판에서도 나왔다.[22] 정식 명칭은 '쁠럭 불가담 및 발전도상나라(제3세계 및 개발도상국)들의 평양영화축전'.[23] 200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와 독일 등 일부 서방국가들이 초청됐다.[24] 사실 김일성이 대중문화에 대해서 꼰대적인 시각을 지닌데 반해 김정일은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열려있는 시각을 가졌다. 물론 인민들이 남한영화를 보는것에 대해서 대대적인 단속을 했지만 영화제작이나 드라마 제작에 있어 새로운 시도를 하는것에 대해서는 제법 열려있던 편. 물론 그와 별개로 김정일 집권기때의 북한영화도 구렸던것은 매한가지이기는 했다.[25] 신상옥 감독이 제작 중에 탈북하자 정건조 감독이 마저 완성했고, 신상옥 감독의 이름을 지워버렸다.[26] 1978년 체코슬로바키아 유럽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최창섭 선수를 모티브로 제작.[27] 북한에서 혁명투사로 대접받는 마동희의 어머니 장길부와 김일성에 대해 다루는 우상화 영화[28] 하씨(하)와 진씨(진) 두(량) 가문(문)의 이야기(록)[29] 노래는 남한 인디가수인 김꽃이 새로 녹음하였다.[30] 제작.[31] 투자.[32] 제작 당시에는 일본인 배역도 북한 배우가 연기해서 모든 언어가 문화어였으나, 일본판은 일본 사람들의 대화만 일어로 더빙했다.[33] 1999년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정성옥 선수를 모티브로 제작.[34]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과 만나본 사람. 당연히 흔하지 않다.[B] [A] 인민배우[37] 대표작은 '내 고향'[B] 공훈배우[39] 대표작은 '목란꽃'[B] 공훈배우[A] 인민배우[A] 인민배우[A] 인민배우[A] 인민배우[45] 대표작은 '우리집 문제'[B] 공훈배우[47] 대표작은 '우리집 문제'[B] 공훈배우[49] 대표작은 '도시처녀 시집와요'[A] 인민배우[51] 대표작은 '도시처녀 시집와요'[C] 김일성훈장 수훈 단체[53] 1972년과 1987년 2회 수훈[C] 김일성훈장 수훈 단체[55] 1984년 수훈[C] 김일성훈장 수훈 단체[C] 김일성훈장 수훈 단체[58] 1975년 수훈[C] 김일성훈장 수훈 단체[C] 김일성훈장 수훈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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