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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도네시아의 영화에 대한 문서.2. 영화 시장
MPAA(미국영화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2019년 인도네시아 영화 시장은 북미 영화, 중국 영화, 일본 영화, 한국 영화, 영국 영화, 프랑스 영화, 인도 영화, 독일 영화, 멕시코 영화, 러시아 영화, 호주 영화, 이탈리아 영화, 스페인 영화, 브라질 영화, 대만 영화, 네덜란드 영화 시장에 이어서 세계 17위로 나타났다. 위의 그래픽에서는 북미 영화 시장(114억 달러)이 따로 표시되어있지 않은데, MPAA가 미국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만 표로 따로 나온 것이다.
2017년 기준 인도네시아 영화 시장은 3억 미국 달러 규모로 세계 17위이다.
2011년 기준 전국 영화관 스크린 규모는 763개로, 인구 10만 명당 0.4개에 불과하여 영화관 공급이 부족하다고 꼽히는 국가이다.
자국 영화 비중은 제3세계 개발도상국 영화 시장이 대부분 그렇듯 20% 미만이다. 가장 큰 비중은 미국 영화이긴 한데 50%에 못미치고, 인도네시아 영화 시장은 일본 영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대략 20% 정도를 차지한다. 한국 영화나 중국 영화, 대만 영화는 합쳐서 10% 정도의 점유율이다. 단, 인도네시아에 수입되는 일본 영화는 대부분 애니메이션 영화들이다.
3. 역사
3.1.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최초의 영화 상영은 1900년에 이루어졌으며, 이때부터 주로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지에서 약간의 영화가 수입되어 바타비아, 반둥 등의 대도시에서 상영되었다. 최초로 인도네시아에서 제작된 영화는 네덜란드인 감독 L. 회벨도르프(Heuveldorp)의 무성영화 《루퉁 카사룽》(Loetoeng Kasaroeng)으로, 순다 지역의 민간 설화에 기반하고 있다. 네덜란드인이 감독과 스탭을 독점하고 현지 배우들만 캐스팅해서 제작한 영화이다. 마술적인 힘을 지닌 검은 루뚱원숭이(lutung) 구루 미낭(Guru Minang)과 지방 귀족의 딸들 푸르바사리(Purbasari), 푸르바라랑(Purbararang) 간에 벌어지는 초자연적 러브스토리를 테마로 하였으며, 1926년 반둥 소재 영화사에서 제작되어 동년 12월 31일부터 반둥의 여러 고급 극장들에서 상영되었다.이후 중국계 감독 진문선(陳文宣, Tan Boen Soan)이 소설을 각색해 영화로 만든 것(1928)을 시작으로 정정춘(鄭丁春, The Teng Chun), 이덕수(李德水, Lie Tek Swie), 웡(Wong) 형제[1] 등 다수의 동인도 거주 중국계 감독들도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동인도 윤리정책(Ethische Politiek, 1901–1942) 시대 후기, 동인도에서 영화는 대중적 오락으로 유행하여 1926년부터 1949년까지 112편에 달하는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이 시기의 영화 감독은 대개 동인도 화인(peranakan Tionghoa)이었으며 소수의 토착민, 유럽계 감독도 있었다. 토착민 동인도인 감독으로는 라덴 아리핀(Raden Ariffien)이 《진정한 사랑》(Asmara Moerni, 1941) 등으로 성공하였다.
3.2.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정복했던 일본령 동인도 시기에 일본 영화 시스템이 인도네시아에 꾸린 태평양 대본영을 통해 이식되면서, 도호나 쇼치쿠가 인도네시아로도 제작위원회 방식의 영화 제작 시스템을 이식했고, 전반적으로 전후 인도네시아 영화계에는 일본 시스템의 영향도 짙게 남았다. 21세기인 지금도 인도네시아 상업 영화는 일본을 모방하여 여러 회사들이 제작위원회를 꾸려서 리스크를 분산하는 시스템으로 제작된다. 일본 점령기에는 선전영화가 다수 유통되었다.초기 인도네시아 영화계 인물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 조선 출신의 친일파 영화 감독 허영이 있다. 허영은 일본 영화계에서 활동하면서 내선일체를 홍보하는 어용영화인 《너와 나》[2]를 만드는 등 당시 일본정부에게 영합하는 어용영화인의 행보를 보였으며, 태평양 전쟁 때에도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선전 영화를 촬영했다가 일본의 패전이 확실시되는 시점에서 귀국을 단념하고 인도네시아에 정착하였다. 정착 이후 허영은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을 지원한 뒤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 독립을 다룬 영화 《프리다》를 제작했다가 1952년에 생을 마감하여 자카르타의 프탐부란 공동묘지에 묻혔다. 이러한 행보 때문에 허영은 국내에선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온 경력까지 있는 친일파로 취급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영화 산업에 족적을 남긴 사람 중 한 명이자 인도네시아의 독립투사 중 한 명으로 대우받고 있다.
3.3. 수카르노 시대
독립 후에는 우스마르 이스마일(Usmar Ismail)이라는 걸출한 감독이 나타나 초기 인도네시아 영화사를 장식하였다. 이스마일의 영화로는 《밤의 시간을 지나서》(Lewat Djam Malam; Lewat Jam Malam, 1954) [3], 《귀한 손님》(Tamoe Agoeng; Tamu Agung, 1955), 《세 소녀》(Tiga Dara, 1957), 《도둑 소굴의 소녀》(Anak Perawan di Sarang Penjamun; Anak Perawan di Sarang Penyamun, 1962) 등이 인도네시아 영화의 고전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수카르노 때는 외국 영화의 상영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영화가 상영관 자리를 독차지할 수 있었고, 수하르토 시기에도 약간 완화되어 가기는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영화 수입 통제 조치 덕택에 인도네시아 영화는 오랜 기간 기지개를 펼 수 있었는데, 여러 영화사들이 연간 수백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영화 장르도 다양했다.
3.4. 수하르토 시대
1970년대의 고전영화로는 《폭풍은 지나가리라》(Badai Pasti Berlalu, 1977), 《1828년 11월》(November 1828, 1979) 등이 유명하다. 수하르토 시대에 검열이 강화되면서 인도네시아 영화는 질적으로 침체되었지만, 그래도 텔레비전 보급 시기가 늦어 영화의 인기는 오래 지속되었다.1970년대부터 인도네시아에 텔레비전이 점차 보급되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공영방송에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적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선호는 상당히 유지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민영방송이 허용되면서 영화관에 가는 것보다 텔레비전 시청을 선호하는 관객들이 늘어나면서 영화관 관객 수가 줄어들었다. 또 해외 영화에 대한 수입 제한도 급속히 완화되면서 통제에 익숙해져서 재미 면에서나 기술 면에서나 덜한 인도네시아 영화는 순식간에 할리우드 영화와 홍콩 영화 등에 휩쓸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인도네시아 영화는 암흑기를 맞았고 아시아 금융 위기까지 겹치면서 1년에 10편도 제작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3.5. 민주화 이후
인도네시아 영화계는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인도네시아 국내 영화 연간 제작 편수가 40편도 되지 않는 최악의 침체기를 겪었다. 그래도 90년대 말에 인도네시아가 민주화되면서 검열은 크게 완화되었고, 제작 편수도 2000년대 중반부터 회복되어 2010년대에는 연간 100편 전후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는 점차 다양한 장르의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영화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발전을 거듭해 최근에는 《레이드: 첫 번째 습격》 등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그러나 영화 시장의 경우 다른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점유율이 몹시 높고 영화관이나 배급사들도 여전히 미국 영화 수입을 선호하다 보니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인도네시아 영화는 덤으로 상영되는 경우가 2010년대에도 흔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다만 2011년에 잠깐 자국 영화 지원 기금을 위해서 수입 영화에 세금 부과를 하려다가 배급사에서 항의 차원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배급을 일시 중단하여 할리우드 영화가 잠깐 상영되지 못했던 일이 있었기는 했다. 그러나 국내 영화사들이 이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면서 원상태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2000년대 초중엽부터 인도네시아 영화 업계에서는 자국 영화 점유율이 일정 수준 이상은 되는 데다가 해외 수출도 되는 한국을 롤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고, 조코 위도도 정부 들어 대중 문화 진흥 정책을 펼 때 한국의 사례를 어느정도 참고하고 있는 듯하기는 한데 아직까지는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인도네시아 자국 영화의 점유율이 아주 낮지는 않다.
2010년대 중반에 CJ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면서 영화 산업의 재편기를 맞았는데 일단 자국 영화 점유율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호러나 액션 장르 평도 좋고, 국제 영화제에서도 조금씩 주목도가 늘고 있는 편이다. 2000년대에 부흥기였던 태국 영화가 군부 정권의 탄압으로 소강 상태에 들어간 것과 반대로, 민주 정권 체제가 자리잡아서 미래가 나쁘지 않은 편.
2010년 에드윈 감독의 동물원에서 온 엽서가 제6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경쟁 초청 되면서 49년만에 인도네시아 영화가 경쟁에 초청되었다.
2021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에드윈 감독이 인도네시아 감독 최초로 사랑과 복수로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다.
2022년 카밀라 안디니 감독이 나나로 인도네시아 여성 감독 최초로 제7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4. 영화감독
인도네시아 독립 초기의 고전 영화 감독으로는 수카르노 시대에 활동한 우스마르 이스마일(Usmar Ismail, 1921–1971)이 대표적이다. 수하르토 시대에는 슈만자야(Sjumandjaja, 1934–1985), 트구 카랴(Teguh Karya, 1937–2001), 윔 움보(Wim Umboh, 1933–1996), 아미 프리요노(Ami Priyono, 1939–2001), 아리잘(Arizal, 1943–2014), 아리핀 누르(Arifin C. Noer, 1941–1995), 리샵(M.T. Risyaf, 1947–), 슬라멧 라하르조(Slamet Rahardjo, 1949–), 에로스 자롯(Eros Djarot, 1950–) 등 여러 감독이 고전적인 작품들을 남겼다.민주화 이후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주로 활동한 신세대 영화 감독으로는 리리 리자(Riri Riza, 1970–), 가린 누그로호(Garin Nugroho, 1961–), 루디 수자르워(Rudi Soedjarwo, 1971–), 조코 안와르(Joko Anwar, 1976–), 니아 디나타(Nia Dinata, 1970–), 하눙 브라만툐(Hanung Bramantyo, 1975–), 이파 이스판샤(Ifa Isfansyah, 1979–), 모울리 수랴(Mouly Surya, 1980–) 등을 꼽을 수 있다.
5. 작품
전반적으로 소자본으로 제작하는 제작사가 많아 태국이나 필리핀처럼 호러나 액션같이 과격하고 피튀기는 영화 비중이 높다. 《레이드》,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이라든가 《마카브르》, 《메란타우》가 대표적.기타 장르에서는 사회적으로 아직 거부감이 큰 남성 동성애 등을 주제로 다룬 코미디 영화 《아리산!》(Arisan!, 2003)이나 아맛 토하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자바의 전통 무용예술 롱긍(Ronggeng)과 수카르노-수하르토 이행기의 역사를 다룬 《무용수》(Sang Penari, 2011), 현대 인도네시아를 살아가는 군상들의 삶에 주목한 드라마 영화 《내 마음의 복제본》(A Copy of My Mind, 2015), 자아 성찰과 내면적 성장, 성소수자 문제를 다룬 《아름다운 나의 몸에 입맞춤을》(Kucumbu Tubuh Indahku, 2018), 1998년 5월의 혼란기에 강간을 당한 피해자와 가족이 트라우마를 대면하는 이야기인 《마이의 스물일곱 걸음》(27 Steps of May, 2019) 등이 오늘날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2010년대 후반에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시대나 그 이전의 전통 시대를 다루는 사극 영화도 꾸준히 제작되고 어느 정도 유명세를 얻고 있다. 일부를 나열하면 17세기 자바 마타람 술탄국의 최전성기인 술탄 아궁 시대를 다루는 《1628년, 마타람의 술탄 아궁》(Sultan Agung Mataram 1628, 2018), 20세기 초 동인도 여성 교육을 부르짖은 카르티니를 다룬 《카르티니》(Kartini, 2017),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 후기를 다룬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의 대표작을 극화한 《인간의 대지》(Bumi Manusia, 2019) 등이 있다.
전통적으로 인도네시아 영화의 배경으로 주로 쓰인 자바, 발리, 도시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 오늘날 지역이 직면한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2010년대의 것 중 대표적으로는 《나이트 버스》(Night Bus, 2017), 《훔바 드림스》(Humba Dreams, 2019) 등이 있다. 일부 독립 영화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데, 가령 《두개골》(Tengkorak, 2017)은 고고학과 SF를 결합한 독특한 영화로 주목받았다.
6. 영화제
- 자카르타 국제 영화제
매년 열리는 인도네시아 영화제(Festival Film Indonesia, FFI)에서는 우수작을 뽑아 최우수영화상(Film Bioskop Terbaik, 치트라 영화상)을 시상하고 있다.
7. 영화관
- CGV 인도네시아: . 한국 CJ그룹의 CGV가 인도네시아의 현지 영화관 사업체를 인수하면서 진출했다.
- 시네마 21: 인도네시아 제1의 영화관 체인이고 점유율 또한 매우 높다. 다만 인도네시아 영화계에서는 시네마 21을 만악의 근원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하르토 사촌이 만든 영화관 체인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온각 특혜로 점유율을 높였고, 이를 이용해서 할리우드 영화들의 배급권을 독점으로 취급한데다가 지방에 영화관을 많이 만들어놓지도 않은주제에 돈이 안된다고 지역 단관극장들에 대한 영화배급을 크게 줄여서 지방 영화관의 싹을 말리다시피하면서 지방에서의 영화관람을 어렵게 한 전적(?)이나, 오메가 필름의 영화만을 거의 독점적으로 틀어주면서도 다른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를 잘 안틀어준다거나 하는 등 횡포를 부렸기 때문이다 독점으로 티켓값을 크게 올려서 인도네시아 서민들이 영화관 가기 어렵게 만든건 덤. 그나마 2016년 이후로는 외국계 영화 체인이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그나마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