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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일 | 1947년 2월 6일 |
주소 | 평양시 형제산구역[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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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영화 제작사.사실상 4·25촬영소는 군대 관련 영화만 제작하기 때문에 대체로 모든 영화는 여기서 나오는, 북한 영화의 총본산이다.
2. 역사
1947년 '국립영화촬영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창립되었다.초기에는 기록영화 제작도 함께 했으나 1957년 조선기록영화촬영소가 분리되어 나가면서 극영화만 담당하게 되었다.
1949년 첫 극영화 '내 고향'을 제작한게 처음이다.
이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로 개칭되었고 1955년 전쟁 이후 시설들이 복구되었으며 현재까지도 평양 형제산구역 중당동에 자리잡고 있다.
1957년에 크게 리모델링 했다.
1960년대부터 연간 10작품 이상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1967년 백두산창작단이 설립된 이래 1993년 김정일이 창작단 제도를 폐지시킬때까지 창작단들과 많은 영화들을 제작했다.
1970년대 집체창작이 강조되면서 엔딩 크레딧이 사라졌으나 70년대 후반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1972년 김일성훈장, 국기훈장 1급, 1987년 김일성훈장을 한 차례 더 받았다.
신상옥의 납북 이후 신필림도 북한 영화계에서 어느정도 비중을 차지했으나 탈북 이후 이곳과 4·25촬영소만이 남게 되었다.
3. 상징
이곳의 특성 상 이곳의 상징이 곧 북한 영화의 특성이기도 하다.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천리마동상과 '조선영화' 자막이 뜨면서 영화가 시작되는것.[2]
4. 제작 작품
4.1. 1940년대
- 내 고향(1949)
4.2. 1950년대
4.3. 1960년대
- 꽃피는 시절(1961)
- 붉은 선동원(1962)
- 정방공(1963)
- 다시 찾은 이름(1963)
- 끝없어라 나의 희망(1964)
- 대지의 아들(1964)
- 나의 매대(1965)
- 최학신의 일가(1966)
- 어느 한 농장에서(1966)
- 명랑한 무대(1966)
- 예리한 눈동자(1967)
- 유격대의 오형제(1968)
- 새날이 보인다(1969)
- 시간을 앞당기는 사람들(1969)
- 피바다(1969, 백두산창작단)
4.4. 1970년대
- 꽃피는 마을(1970)[C]
- 처녀리발사(1970)
- 수상한 전파(1970)
- 로동가정(1971)[C]
- 사과 딸때(1971)
- 밀림의 청춘(1971)
- 우리 렬차판매원(1972)
- 보통강반에 깃든 이야기(1972)
- 압연공들(1972)
- 꽃파는 처녀(1972)
- 처녀지배인(1973)
- 두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1974)
- 바다 먼 산촌에서(1974)
- 고압선(1975)
- 처녀관리위원장(1976)
- 대지에 뿌리내린다(1976)
- 우리 선전원(1976)
- 그는 우리와 함께 있다(1976)
- 이 세상 끝까지(1977)[5]
- 시련의 해(1977)
- 북은 내가 치겠소(1977)
- 누리에 붙는 불(1977, 백두산창작단)[6]
- 친위전사(1977, 백두산창작단)[7]
- 유원지의 하루(1978)
- 우리 옆집문제(1979)
- 안녕하십니까(1979)
4.5. 1980년대
- 조선의 별(1980~1987, 백두산창작단)[A]
- 우리 아래집문제(1980)
- 우리 웃집문제(1980)
- 우리 처가집문제(1980)
- 열네번째 겨울(1980)[9]
- 우리 누이집문제(1981)
- 우리 큰집문제(1981)
- 우리 사돈집문제(1982)
- 두 선장(1982)
- 양지말 사람들(1982)
- 미래를 꽃피운 사랑(1982, 백두산창작단)[B]
- 압록강을 넘나들며(1982, 백두산창작단)[B]
- 우리 작은집문제(1983)
- 사랑의 노래(1983)[12]
- 전환의 해(1983)
- 시련을 뚫고(1983)[13]
- 불타는 마음(1983)
- 등대(1983)
- 우리는 모두 한가정(1983, 대홍단창작단)
- 푸른 소나무(1984, 보천보창작단)[14]
- 꿈많은 처녀(1984, 왕재산창작단)
- 공장의 주인들(1985, 삼지연창작단)
- 생명수(1985)
- 장산리 녀성들(1985, 왕재산창작단)
-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1986, 삼지연창작단)
- 어머니의 마음(1986, 대홍단창작단)
- 우리 인민반장(1986, 대홍단창작단)
- 참된 심정(1986)
- 보금자리(1986)
- 우리 대의원(1987, 왕재산창작단)
- 시형과 제수(1987, 대홍단창작단)
- 우리 삼촌집문제(1988, 삼지연창작단)
- 내나라(1988)[A]
- 나의 행복(1988, 대홍단창작단)[C][17]
- 자신에게 물어보라(1988, 왕재산창작단)
- 기쁜 날(1988)
- 내가 본 나라(1988~2010)
- 심장에 남는 사람(1989, 삼지연창작단, 리춘구 작)
- 어제도 오늘도(1989, 왕재산창작단)
- 잊을수 없는 추억(1989, 대홍단창작단)
- 공청원들(1989, 왕재산창작단)
4.6. 1990년대
- 노래속에 꽃피는 가정(1990, 삼지연창작단)
- 첫 동지(1990, 보천보창작단)
- 효녀(1991)[18]
-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들(1993)
- 청춘이여!(1995)
- 해운동의 두가정(1996)
- 먼 후날의 나의 모습(1997)
- 가족롱구선수단(1998)
- 둘째딸(1998)
4.7. 2000년대
- 푸른 견장(2000)
- 자강도 사람들(2000)
- 푸른 주단우에서(2001)
- 부부지배인(2001)
- 청년들을 자랑하라(2003)
- 시대는 축복한다(2004)
- 한 녀학생의 일기(2006)
- 생명선(2009)
4.8. 2010년대
- 설풍경(2010)
- 인민이 너를 아는가(2011)
4.9. 다부작 영화
- 이름없는 영웅들(1979~1981)
- 언제나 한마음(1982~1985)
- 내가 본 나라(1988~2010)
- 민족과 운명(1992~2003)
5. 주요 연출가
6. 주요 소속배우
- 데뷔는 작품이 아닌 촬영소 입단으로 서술
6.1. 인민배우
- 김룡린: 1936년생, 1963년 데뷔, 2016년 사망
- 김세영: 1923년생, 1950년 데뷔, 1989년 사망
- 김선영: 1914년생, 1971년 데뷔, 1995년 사망
- 김옥희: 1949년생, 1967년 데뷔
- 김정화: 1954년생, 1979년 데뷔
- 리경진(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총장)
- 리지영(전직, 현 국립연극단 단장)
- 문예봉
- 박기주
- 박학
- 백민(제작자 일을 더 많이 했고, 1977년부터 1995년까지 18년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총장을 맡았다.)
- 신명욱
- 서경섭
- 석성제
- 엄길선(1995년부터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총장)
- 유원준
- 전두영
- 정선화
- 정운모
- 최창수
- 손원주
- 유경애
- 홍영희
6.2. 공훈배우
6.3. 배우
- 김태순
- 엄현희[19]
- 안창순
[1] 대한민국 이북5도 기준 평안남도 대동군 남형제산면[2] 4·25의 경우 세명의 남녀가 서있는 화면에서 조선영화 자막이 뜬다[C] 인민상 계관작품[C] 인민상 계관작품[5] 태성할머니로 유명한 김화숙을 원형으로 한 영화[6] 김일성의 항일혁명 활동시기 우상화 영화, 4·25촬영소와 공동창작[7] 김정일의 모친 김정숙 우상화 영화[A] 김일성 영화[9] 백설희를 원형으로 한 영화[B] 김정숙 영화[B] [12] 평양산원 선전영화[13] 최재하를 원형으로 한 영화[14]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우상화하는 영화[A] [C] [17] 전구강을 원형으로 한 영화[18] 정춘실을 원형으로 한 영화[19] 엄길선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