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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8 00:48:08

이인영(역사학자)

<colbgcolor=#004787><colcolor=#fff> 이인영
李仁榮
파일:이인영(역사학자).jpg
학산(鶴山)
출생 1911년
평안남도 평양부
사망 ?
학력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구제)마츠모토고등학교 (졸업)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사학 전공 / 학사)
약력 연희전문학교 강사
경성대학 교수
연세대학교 교수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역사학자, 서지학자.

2. 생애

1911년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부호의 아들로 출생했다.

1929년 3월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4월 마츠모토고등학교(現 신슈대학)에 입학했다.

1933년 3월 마츠모토고등학교 졸업 후 조선으로 돌아와 동년 4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했다.

1937년 3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사학전공을 졸업했다(문학사).

이후 진단학회에서 활동하면서 1940년부터 연희전문학교 강사로 근무했다.

1945년 8월 광복 후 일본인들이 귀환하고 난 모교 경성제대 강사로 임용되었고, 연희대학에도 교수로 출강하다가 문교부 고등교육국장으로 관계에 발을 들였다.

1949년부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및 연희대학교 교수를 겸임했다.

1950년에 간행한 ≪국사요론 國史要論≫은 바로 신민족주의 사관의 입장에서 한국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개설서였다. 주로 한국과 만주관계에 관심을 가져, 그 연구결과가 ≪한국만주관계사의 연구≫라는 논문집으로 1954년에 출간되기도 하였다.

비슷한 연배의 다른 사학자들처럼 그 또한 일제시대에는 실증사학에서 출발했으나 해방 후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손진태와 함께 신민족주의 사학을 주창했고, 이는 [국사요론]이라는 단행본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학산의 사관은 서울대 사학과 1기생인 손보기, 김성준, 이기백, 한우근 등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 자신과 손진태, 사회주의 계열인 박시형, 김석형 등이 납북되거나 월북하고 난 다음 이병도이선근, 신석호, 이상백으로 대표되는 실증사학 계열이 득세하며 학산 학풍은 인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지난 80년대 중반 제자인 김성준 교수의 노력으로 [학산전집]이 출간됐고 여기에 때맞춰 신민족주의 연구 열풍이 불면서 활발한 재조명 작업이 이뤄졌다.

학산은 대단한 고서 수집열을 자랑했는데 그가 모은 장서는 현재 평양의 인민대학습당에 보전되어있는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