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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14 20:23:03

백건우

백건우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은관.jpg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2010년
이름 백건우
분야 피아니스트
은관문화훈장(2등급)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수훈자
파일:프랑스 문예공로훈장.jpg
<colbgcolor=#002664><colcolor=#EDE4D3> 연도 <colbgcolor=#EDE4D3><colcolor=#002664> 2001년
수여 프랑스 문화부
이름 Geon Woo Baek
국적 Republic of Korea

}}} ||
<colbgcolor=#000><colcolor=#fff> 백건우
白建宇|Kun-Woo Paik
파일:external/eumyoun1.files.wordpress.com/ebb0b1eab1b4ec9ab0.jpg
출생 1946년 5월 10일 ([age(1946-05-10)]세)
서울특별시 중구
가족 아버지 백양, 어머니 김호자, 누나
배우자 윤정희[1], 딸 백진희(1977년생)[2]
종교 천주교(세례명: 요셉마리)[3]
직업 피아니스트
학력 서울남산국민학교 (전학)서울장충국민학교 (졸업)
배재중학교 (졸업)
한양공업고등학교 (중퇴)
줄리아드 스쿨 (중퇴)
활동 1956년 ~ 현재
서명 파일:백건우 서명.jpg

1. 개요2. 약력3. 영화배우 윤정희와의 결혼4. 북한 납치 미수 사건5. 디스코그라피6. 수상7.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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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피아니스트. 음악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끊임없이 연구하는 태도로 인하여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별명을 가졌다. 풍부한 레퍼토리와 서정적인 피아니즘으로 많은 팬을 보유한 세계적인 연주자이며, 현재 프랑스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60~70년대 충무로를 대표한 전설적인 영화배우 윤정희의 남편이기도 하다.

2. 약력

1946년 5월 10일, 서울특별시 중구에서 아버지 백양(白洋)과 어머니 김호자 사이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어와 미술을 가르치는 교사였던 아버지는 바이올린을 취미로 하고 합창도 지휘하는 등 예능 방면에 다양한 재능을 가졌으며, 어머니는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였는데, 이 때문인지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밀접한 환경에서 자랐다. 어린 나이부터 피아노 신동으로 주목받은 백건우는, 10세에 불과한 나이로 김생려가 지휘하는 국립교향악단과 함께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한양공업고등학교 1학년 재학 당시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1회 드미트리 미트로폴리스 콩쿠르에 참가했는데, 당시 콩쿠르 주최자였던 한나 색슨의 권유로 1961년에 도미하여 줄리아드 스쿨로 유학하여 로지나 레빈을 사사하였다. 어려운 형편에 떠난 유학길이라 힘들게 학업을 이어갔다고 하며, 사진에 조예가 깊었기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했다.

줄리아드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백건우는 유럽으로 무대를 옮겼는데, 빌헬름 켐프를 사사하게 되는 행운을 누린다. 빌헬름 켐프와의 인연은 백건우의 연주자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는데, 켐프의 때로는 종교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학구적 자세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줄리아드 대학원 석사 졸업으로 알려졌지만, 2009년과 2016년 줄리아드 스쿨 홍보부에 졸업 여부를 확인한 결과 대학원은 다니지 않았고, 학부를 중퇴한 것으로 밝혀졌다. "백건우 씨는 줄리아드 예비학교와 학부에서 공부한 줄리아드 동문이다. 1972년 학위를 받지 않고 학교를 떠났다." "I can confirm Kun Woo Paik is a Juilliard alumni, both in the Pre-College and College Divisions, and he left in 1972 without a degree." (Emily Werne, Manager, Alumni Relations | Development & Public Affairs, The Juilliard School 2015.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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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는 감정적으로 음악을 해석했어요. 섬세하지 못했죠. 나이가 들수록 조심스러워집니다. 음악이 나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이게 되죠. 내 느낌을 앞세우기보다는. 제 은사였던 빌헬름 켐프 선생이 한 음 한 음 신중하게, 거의 종교적인 태도로 음을 다뤘던 것이 기억나요. 물론 그런 방식이 모든 음악에 맞지는 않겠지만, 제가 같은 곡을 반복해 연습하는 것은 그 음이 담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찾아내려는 작업인 셈이죠."기사

켐프의 지도로 음악적 완성도를 높여간 백건우는 1971년 나움버그 콩쿠르(Naumberg Award)에서 우승, 1969년 리벤트리트 콩쿠르(Leventritt competition)의 결선에 올랐으며, 같은 해에 부조니 콩쿠르에 입상하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게된다.

3. 영화배우 윤정희와의 결혼

윤정희1972년 독일에서 뮌헨 문화올림픽과 재독 작곡가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공연이 동시에 열리자 영화인 자격으로 신상옥 감독과 참석했다. 이때 오페라 계단에서 좌석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같은 한국인인 백건우에게서 친절한 도움을 받았다. 공연이 끝나고 관계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그 청년이 윤이상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고 피아니스트 백건우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백건우는 윤이상과 잘 아는 사이이며, 독일 뮌헨에 연주 여행 차 《심청》 오페라도 보러 오게 된 것이었다. 이때 회식에서 젊은 친구들만 모여서 따로 맥주를 마시러 갔는데, 적극적이고 잘 놀던 다른 유학생들과 달리 수줍음을 많이 타고 말도 적었던 백건우가 윤정희의 눈에 띄었다. 그러던 중 백건우가 윤정희에게 꽃 선물을 건넸고, 서로에게 호감이 생겼으나 윤정희가 귀국한 후 백건우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이후 윤정희1974년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고[4], 한국 교포 식당에 들렀다가 백건우와 재회한다. 둘은 연락을 한 적도 없었는데 우연히 2년 만에 만난 것이었다. 이후 둘의 연애가 시작되고 비밀리에 연애를 이어 갔다. 어느 날 백건우가 같이 집을 마련해 살자고 제안했고, 윤정희는 처음엔 결혼 전에는 그럴 수 없다며 거부했으나 사랑이 커지자 곧 몽마르트르 언덕에 작은 방 하나를 얻게 되었다.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생활했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기 위해 차에서 내릴 때도 다른 방향으로 내리는 등 보안을 유지했다. 비밀 연애를 이어가던 중 부모님처럼 모시던 화가 이응노 선생[5] 앞에서 둘의 결혼 계획을 알리면서 둘의 관계가 알려졌다. 결국 둘은 1976년에 결혼했다.

부부는 프랑스에서 문화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프랑스로 귀화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파리에 거주 중. 부부의 외동딸 백진희도 현재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 등을 보면 백건우 - 윤정희 부부는 금슬이 매우 좋다. 취향도 잘 맞고 부부 여행도 자주 다닌다고 한다...고 했는데, 2021년에 이와 반대로 "백건우가 알츠하이머 투병중인 아내를 장기간 방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세한 내용은 윤정희 문서를 참고. 다만 본인은 극구 부인하고 있으며, 윤정희의 지인도 이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4. 북한 납치 미수 사건

당시 동아일보 보도 내용

1977년 7월 29일, 백건우는 아내 윤정희와 당시 갓난아기였던 딸 등 일가족이 구 유고슬라비아자그레브[6]에서 북한으로 납치될 뻔한 적이 있다. 다행히 납치 직전에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미국 영사관에 도움을 청해서 가까스로 위험을 면했다. 1984년 6월 19일에는 KBS 1TV의 인기 반공 드라마 지금 평양에선 100분 특집을 통해[7] 극중 김정일과 간부들이 이 사건을 언급하는 내용으로 나왔고, 이후 1996년에는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이 북한 로열 패밀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상세히 증언하기도 했으며 마침내 2003년 북한이 공식 문서를 통해 시인했다. 사건의 전말을 알기 쉽게 풀어쓴 내용은 해당 링크 참조.

백건우-윤정희 부부의 결혼때도 함께 했을 정도로 두 사람과 가까웠던 화가 이응노 화백은 앞서 1960년대에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바 있었는데, 백건우 납치 미수 사건이 결정타가 되어 빨갱이로 몰리면서 한국을 떠나야 했고, 끝내 귀국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위의 링크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이 납치 미수 사건에 이응노의 둘째 부인인 박인경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한 여성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백건우는 "세월이 지나 생각해보니 이 화백과 자기 가족이 납치될 뻔한 게 무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젠 (이 화백이 별세했으니) 너무 늦었다."고 한탄했으며, 한편으로는 박인경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이 당시 이 잡지사가 박인경도 인터뷰했는데, 박인경은 여전히 본인과 무관하고 미국이 끼어들었다는 등의 횡설수설로 일관했다.

5. 디스코그라피

6. 수상

7. 영상




1998년 예술의 전당에서 라벨 피아노곡 전곡을 연주하였다.


[1] 2023년 1월 19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타계[2] 프랑스 국적자로 프랑스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슬하 1남을 두었다.[3] #[4] 당시 윤정희의 프랑스 행과 결혼 과정에는 박정희&육영수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5] 그런데 이응노 화백의 둘째부인 박인경은 후술하는 백건우, 윤정희 부부의 북한 납치 미수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강한 의혹이 제기된다. 박인경이 북한 공작 기관의 앞잡이가 되어서 백건우, 윤정희 부부를 유인했다는 의혹인데, 물론 본인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6]크로아티아.[7] 다만 타이틀은 6.25 특집 연속기획 9탄 '함정'이었다.